개와 연극의 물방울

우리는 거미줄 속에서, 자신이 직접 짜내려간 아름다운 관 속에서 먹이와 함께 죽어가는 거미처럼 앞으로 내달리며 기꺼이 우리가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들었어요. 누군가 우리의 사진을 찍었지만, 붉은색과 흰색, 검은색의 자그마한 물방울들로 가득찬 흐린 안개 속에서 우리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우린 진짜 사자가 아니었지만 우리의 울음만은 진짜였어요. 예술은 진실한 가짜여야 한다고, 현의 목소리가 네 안에서 중얼거렸다.

연극이 성공적이었다면, 왜 난 한 번도 우리에서 뛰쳐나온 사자들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거지?

아직 우리의 소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제 트릭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잘린 사슴의 허벅다리 대신 사자 우리에 들어가 그들이 굶주리기만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며 밤을 새우던 사내의 이야기를 아무도 써 주지 않았으니까. 그의 트릭이 너무나 진실했기 때문이에요. 사자의 포식 이후에 뼈라는 증거가 남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사내는 헐거워진 잠금쇠를 풀고 스스로 만든 밀실에서 다시 도망쳤고 달아나는 그에게 사자들은 눈짓조차 주지 않았죠. 마치 그의 생존을 비웃듯, 그의 삶이 그들과는 무관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듯.

앞문이 열리고 교사가 들어왔다. 그는 현의 목소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자리에 들어가 앉으렴, 하고 말했다. 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꿈의 무대에서 내려와 학생들이 정갈한 군집을 이루고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넌 맨 뒷줄의 높은 책상으로 다가갔다. 의자가 없는 책상은 졸음이 오는 학생들을 깨우기 위해 서서 공부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들여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책상은 이렇다할 흠집도 없이 깨끗했다. 고통스러운 지루함에 손을 사타구니로 집어넣으려던 아이가 썩어가는 살 어디에도 닿지 못한 손을 다시 올려 작은 칼을 쥐고 조금만 힘을 주면 부러지는 얇은 칼날을 아주 조금만 꺼내어 온통 흉터를 내놓은 작은 책상은 이곳에 없었다. 넌 차마 매끈한 새 책상에 상처를 내놓을 엄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앉아 뿌연 얼굴이 어스름한 목소리로 개를 묻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묻을 수 있는 개는 오로지 직접 키우던 개뿐이며, 남이 기르던 개를 함부로 묻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또 법이 바뀌어 자신의 개라고 해도 적절한 장례를 치르지 않고 매장하는 것은 불법이며, 개가 죽기 전에는 꼭 그의 사진을 남겨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붉은 넥타이를 매단 소년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사진기가 없으면요?

그럼 개를 기르지 말아야지, 하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붉은 넥타이를 매단 소녀가 중얼거렸다.

넌 손을 들고 그렇다면 사자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교실의 뒤편, 칼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은 책상 앞에 서 있는 너를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 떠들고 이제 실습을 해 보자.

교사의 제안에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날뛰었다.

누가 개 역할을 할래?

웅성거림 속에서 선뜻 나서는 아이는 없었다. 사자가 되어야 하는 너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교사는 지원자가 없으니 투표로 정하자고 말했다. 교사는 맨 앞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투표용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아이의 작은 등이 꿈틀거리는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사는 조각조각 잘린 희고 작은 종이들을 줄별로 나누어 주었고, 아이들은 제 손과 팔이 어떠한 암시도 내비치지 않도록 최대한 웅크린 채 무언가 짤막한 어휘를, 개의 이름을 적어내렸다. 물론 네가 있는 가장 뒷줄까지 넘어오는 흰 종이는 없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아이와 그 옆자리의 아이가 칠판 앞으로 나와 표를 세는 동안 너는 아이들이 적은 개들의 이름을 지켜볼 수 있었다. 개표 시간은 길어졌다. 한 표씩을 받은 이름들 뿐이었기에 칠판 앞에 선 아이가 모든 이름들을 받아 적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너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의 이름이 한 번씩 불리고 나서야 개표는 끝났다.

너는 칠판에 적힌 무수한 개의 이름들 중 한 개의 이름도 외우지 못했다. 교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하며 그럼 모두가 번갈아서 개의 역할을 하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개의 역할은 모두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개가 되는 것을 기피할 필요도, 미루어둘 필요도 없다고 누구든 빨리 나와 실습을 이어가자고 이야기했다.

유달리 얼굴이 하얀 소녀 두 명이 교단 앞으로 나와 가위바위보를 한 뒤 한 명이 제 자리로 돌아가고 남은 한 명은 새파란 눈으로 아이들을 둘러 보았다. 소녀는 불안한 듯 몸을 떨며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교사는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개를 묻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개의 연기를 하고 있으므로 누구에게도 개를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어딘가의 농장에서 개를 구입해왔다고 가정하고 개를 길들이는 가장 간단한 일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했다. 개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개를 쓰다듬고 이름을 불러주며 개의 형상과 목소리를 기억해야 한다고 선생은 덧붙였다. 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과 울음소리가 떠올라야 하며, 바로 그 고유한 인상이 자신의 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의 연기를 번갈아가며 하면서 개의 표상을 매번 바꾸는 일은 고된 작업이 되겠지만 적어도 첫 번째 개를 기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교사는 말했다.

아이들은 소녀를 부르던 어휘 대신 그들의 첫 번째 개를 지칭하는 유일한 단어로 소녀를 부르며 한 명씩 소녀의 머리를, 턱 밑을, 어깨를, 등을, 배를 쓰다듬었다. 교사와 아이들이 둥글게 열을 맞추어 서 있었고, 둥근 줄의 한가운데에 소녀가 앉아 있었다. 모두가 소녀의 떨리는 몸을 조심스레 쓰다듬고 개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리하여 마침내 모두가 하나의 공통된 ‘개’라는 인상을 공유하였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그들의 개를 묻을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아이들과 교사는 모두 함께 모여 소녀의 사진을 찍었다. 소녀는 그다지 웃지 않았지만 그들은 개가 웃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죽은 개를 묻을 때가 되어서는 몇몇 아이들이 발작을 일으켰다.

그들은 개를 묻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의 하나뿐인 개가, 고유한 개의 인상이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돌아올 수 없는 검은 흙 밑에 묻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듯했다. 식물처럼 굳어진 그들의 개는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개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죽은 개와 살아 있는 개의 차이를, 식물과 동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가위바위보에서 졌던 두 번째 얼굴이 하얀 소녀, 앞선 개와 쌍둥이처럼 닮았던 소녀가 다시 개의 원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뒤 개의 머리를, 턱 밑을, 배를, 등을 한 번씩 쓰다듬고 나서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 울던 아이들 역시 새로운 개의 표상에 적응해 나갔다.

그렇게 원 안에서 죽은 개들을 묻는 동안 아이들은 개의 표상을 덮어 씌우는 데에, 개를 묻고 개와 이별하며 새로운 개의 형상을 심상으로 바꾸는 일에 익숙해져갔다. 실습은 해가 질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실습이 끝나고 나자 교사는 감격에 겨운 얼굴과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아는 모든 개를 묻었다고, 우리가 가진 모든 개를 배웅했다고 선언하였고, 한때 개였던 아이들은 검은 흙을 털고 두 발로 일어나 네가 서 있던 교실의 뒷자리를 향해, 익숙한 사물들만이 사물 특유의 무딘 시간을, 정지한 듯한 시간을 셈하고 있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성공한 연극 배우들처럼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는 어휘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며, 동시에 누구에게나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개의 무덤 앞에서 교사는 네게 이야기했다. 어느새 연극을 마친 유령들은 교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자신도 너처럼, 현처럼 글을 썼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소설을 썼을 때 사람들은 이 글이 너무 산문적이라고 했어요. 마치 논문같이 느껴진다고 말이에요. 시를 썼을 때에도, 사람들은 내가 쓴 게 시가 아니라 에세이에 가깝다고 이야기했죠. 반대로 논문을 썼을 때에는 너무 시적이라고 이야기했어요. 내가 쓴 글의 문장들은 객관적인 학문의 논리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이에요.

그래도 난 계속해서 글을 썼어요. 그건 시도 산문도 소설도 논문도 될 수 없었지만, 적절한 문장도 타인을 설득하는 문장도 논리적인 문장도 될 수 없었지만 난 계속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죠. 그래요. 난 마치 유령에 홀린 것처럼,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비정합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누군가는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 천박하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신을 받든 무녀가 그의 언어로 타인의 미래를 예지해야만 하는 저주를 안고 살아가듯 나는 나조차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어휘들을 타의에 의해 정해진 필연에 따르듯 배열해낼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뮤즈의 도움을 받아, 뮤즈의 입술로 시를 읊고 난 뒤 음유시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청중들을 마주보면서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요. 청중들이 보내는 박수갈채를 들으며 그는 그 음악이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난 내가 쓴 글이 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문장들이 목 안쪽에서 단단하게 맺혀가는 느낌을, 손끝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느낌을 난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었으니까요. 난 진심으로 글을 썼어요. 하지만 진실이 고스란히 예술이 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사실 그대로의 재현은 누군가 내게 말했듯 다소 천박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니까. 그래서 난 가짜가 되었어요. 유령이 쓰는 글은 실재할 수 없는 거예요. 손톱 안쪽을 찌르는 통증이, 목과 가슴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길고 끔찍한 틈의 모양이 아무리 생생해도.

선생은 개를 묻었던 검은 흙을 함께 상상했던 공동의 꿈 한복판에 섰다. 그는 증인석에서 선서를 하는 사람처럼 비장하고 또 다소 지친 듯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알고 있어요. 당신들의 연극이 거짓이었듯 내 연극도 진실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우리는 평생 개를 키우지 못할 거예요. 개를 가진 적 없는 사람은 남의 개조차도, 길가에 버려진 개의 시신조차도 묻지 못할 거예요. 우리는 평생 개의 표상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개의 개념이 지니는 어렴풋한 인상에는 체취도 울음소리도 젖은 눈도 푸르스름한 핏줄이 내비치는 두툼한 혓바닥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개를 묻지 않고 우리는 무얼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개를 묻지 않고 난 아무런 수업도 아무런 연극도 할 수 없는걸. 난 개를 기르는 사람들의 흉내를 내며 그들의 연극을 할 수밖에 없는걸. 우리의 연극은 진실성도 핍진성도 상실한 허구일 뿐인걸,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너는 선생을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한때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너희는 아무도 꿈을 꾸고 있지 않았다. 죽은 여자들의 꿈 속에서 너희는 타인의 비극을 훔쳐보았을 뿐이었다. 불타버린 초록 혹성에서 너희만이 다치지 않았고 너희만이 사라지지 않은 채 오류를 가진 코드처럼, 다른 언어나 행위로 변환되지 못하는 문자들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여자가 꾸었던 꿈은, 여자가 적었던 문장들은, 여자가 만들었던 악성코드는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비관적인 물음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었다. 너희는 너희에게는 장소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유령은 산자들의 물리법칙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못한다. 마음은 심지어 다른 마음에 닿을 수조차 없다고 증명해낸 영미철학자의 논문을 너는 떠올린다. 산 자들의 논리에 의해, 세계와 문장들, 문장의 외부와 내부를 이루는 정합적인 법칙에 의해 마음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몸 역시,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마음은 감히 몸과 투쟁할 수도 없다. 영혼이 몸을 앓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투쟁은 오롯이 몸에게 속한 활동이다. 마음은 다만 마음 아닌 것을, 마음 아닌 것은 다만 마음 아닌 것을 듣고 앓을 뿐이다. 너는 선생의 유령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묻었던 개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는 처음부터 개를 묻은 적이 없어요.

하고 선생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처음부터 아무도 죽인 적이 없어요. 당신은 아무도 묻어준 적이 없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아무것도 쓰지 않았어요.

어쩌면 당신은 개를 죽여야 했는지도 몰라요, 하고 네가 말했다. 개를 죽이지 않고서는 개를 묻을 수 없으니까. 당신의 연극은 진짜가 될 수 없었던 거예요.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어린 사자들이 날뛰던 날에 갈기 속 피부를 뜯어내는 뜨끈한 햇볕을 당신들은 느끼지 못했죠.

Series Navigation<< 존재와 모순의 물방울출혈의 물방울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