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소녀 3

왕비는 소녀의 이름을 백설공주라고 지었습니다. 백설공주는 무척이나 작고 연약한 아이였습니다. 새벽조차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질 눈처럼.

왕비는 소녀를 낳자마자 죽고 말았습니다. 왕비가 어째서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왕비의 생명, 한때 왕비로 살았던 여자의 몸이 백설공주의 탄생 이후에도 계속 숨을 쉬고 음식을 우물거리며 흐느끼며 살아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말년의 왕비, 아이를 낳고 미쳐버린 여자는 더 이상 왕비가 아니었으며 왕비가 아닌 여자는 귀신과도 같은 존재라 왕궁 안팎의 사람들은 그녀가 죽었다고 여기고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왕궁의 다락방, 하녀들이 묵던 방에 홀로 유폐되었습니다. 백설공주를 낳던 날, 산파와 하녀들은 그녀에게 눈처럼 새하얗고 빛처럼 눈부신 아이를 건네었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 하녀들은 왕비가 감격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을 추스린 뒤에도, 탯줄과 피가 낭자한 밑을 정리하고 따뜻한 물에 피가 흐르는 몸을 녹이고 보양을 위해 잡은 오리와 칠면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사흘 동안 죽은 사람처럼 잠든 뒤 깨어난 뒤에도 왕비는 여전히 백설공주를 못본 채 했습니다.

왕비는 밑이 깨진 물그릇처럼 흐느끼며 어서 아이를 치우라고, 그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왕비를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토록 어여쁜 아이를 낳고서 슬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아들을 낳아 실권을 장악하려 했던 게 아니라면. 그러나 문제 될 것은 없는 것이, 그녀는 아직 젊었고-사실 젊다기보다는 어리다는 말에 더 가까운 나이였으며-아이는 얼마든지 다시 낳을 수 있으니까. 왕은 아직 그녀와 함께 잠자리를 하고 있었고 후궁도 들이지 않았으며 그녀에게는 얼마든지 기회가 더 있었으므로, 그녀는 원하기만 한다면 아이를 다섯이고 여덟이고 열이고 낳을 수 있을 테니까. 겨우 아이 한 명, 그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새하얀 공주를 낳고서 그렇게 침울해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녀가 두 번째 아이를 유산하고 난 뒤에 그녀에 대한 의심은 더 부풀어갔습니다. 왕궁의사가 그녀에게 새 아기씨를 임신했다며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자마자 그녀가 짐승처럼 소리치며 울부짖는 모습을 본 이는 한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날 왕비와 왕, 왕궁의사 옆에서 시중을 들던 시종과 하녀들은 왕비가 돌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병으로 제 배를 쑤셔대었다고, 끔찍할 정도로 붉은 피가 그녀의 배와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렸다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의 곁에서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소곤거렸습니다.

왕은 그 이후로 다시는 왕비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고 그녀를 불길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다못해 이미 낳은 아이라도 잘 돌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하고 주방 하녀가 속삭였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또다시 온갖 구정물과 오물에 찌들 은식기들을 헝겊으로 반질반질하게 닦아내던 하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습니다. 왕비는 아이를 돌볼 생각도, 젖을 내밀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어미를 찾아 울어젖히는 아이의 끔찍한 비명을 참다못한 왕은 방문을 걸어잠그고 흐느끼기만 하는 왕비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불경하게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백설공주에게 젖도 주지 않고, 눈부시게 하얀 젖을 까 내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하는 그녀를 왕과 대신뿐 아니라 시종들까지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미의 책무조차 다하지 못하는 이가 만백성의 어미 역할을 해낼 수 있을 리 없으며 가장 기본적인 의무조차 저버리는 그녀는 더 이상 왕비일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하녀들은 그녀의 젖을 움켜쥐고, 왕비님 어미는 젖을 주어야 하는 거예요. 하다못해 말 못하는 짐승들도 새끼에게 젖을 주는데 왕비님은 이렇게 튼실한 젖을 가지고 대체 무얼 아끼시는 건가요, 하고 다그칠 정도였습니다.

왕비에 대한 괴롭힘은 은밀하게 이루어졌지만 누구나 그녀를 함부로 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미쳐버린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차피 울고, 울기만 하는 그녀, 울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달리 할 말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왕비의 여남은 젖을 소의 젖처럼 주물러 짜내던 하녀가 그녀의 귓속에 고운 모래가루를 부을 때도, 그녀에게 침을 뱉고 머리칼을 잡아당길 때도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왕비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검은 물 위를 하염없이 떠다니는 것 같다고, 이 비참한 표류가 영영 끝날 것 같지 않다고.

하녀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끔찍할 정도로 길고 할 일은 많은데, 하물며 당신의 게으른 젖을 짜내고 엉킨 머리칼을 풀어주는 일도 모두 내 몫인데 당신이 무얼 떠다닌다는 거예요?

하녀는 새하얀 모래가 번져든 왕비의 둥근 귓바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습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녀는 왕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보석과 장신구, 기름진 음식과 천사같이 어여쁜 아이, 누구나 당신을 부러워하는데 어째서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누리려 하지 않는지. 당신은 불어 터진 손으로 모르는 여자의 머리를 빗길 필요도, 진드기들이 늘러붙은 이불을 빨아낼 필요도, 하루라도 닦지 않으면 지긋지긋한 거미들이 진을 치고 차지하려는 구석자리와 투쟁을 벌일 필요도 없잖아요, 내가 당신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애새끼처럼 울어대기만 했다면 당장 궁에서 쫓겨났을 거예요.

겨울이 얼마나 긴지 당신은 모르겠죠. 하룻밤이나 이틀 새에 끝나버린다면 겨울이 아니죠. 궁 안의 겨울은 여름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저 창밖으로 희멀건 눈송이와 아름다운 흰빛에 젖어든 나무들이 보인다는 것 이외에는 여름과 하등 차이가 없지만 궁 밖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겨울은 정말 끔찍하게 길답니다. 궁 밖의 여자들, 집도 없이, 수도원에도 가지 못하고 떠도는 여자들은 미쳐버리고 말아요. 그녀들이 하루종일 중얼거리는 은밀하고 불길한 말들에 심기가 거스른 이들은 언제든지 그녀들을 마녀로 몰아 태워 죽일 수 있죠. 그렇지만 긴 겨울 길고 긴 바깥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들처럼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추위에 썩어 문드러진 이빨, 노인처럼 텅 비어버린 입 속에서 줄줄 새어나오는 말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녀들은 말하지 않고서는, 미친년처럼 중얼거리지 않고서는, 불길해지지 않고서는 겨울을 지새울 수 없어요.

한 번의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몇 개의 구름을 세어야 하는지 몇 개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물론 당신 남편도 모를 테고 당신 아이도 평생 알 일이 없겠죠. 아마 어릴 적부터 이 궁에서 나고 자란 하녀들도 모르겠죠.

하지만 난 알아요. 난 궁 바깥에서, 어디의 안쪽도 아닌 곳에서 태어났으니까. 난 모든 바깥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내게 백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도, 축복의 기도를 올려 주는 사람도 없었죠.

엄마는 우리가 평생 집을 가질 수 없다고, 외고조할머니가 마녀였으므로 그녀의 피를 나눈 이들 모두 어느 정도는 마녀이고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방랑을 선고받은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내게 젖을 줬어요. 왕비님, 아시겠나요? 젖을 줬다고요. 그 희멀겋고 묽은 젖에 고개를 박고 난 살아남았어요. 그녀는 왕비님처럼 새하얗지도 않고, 그녀의 가슴은 왕비님 것처럼 부드럽고 건강하지도 않았지만, 불결한 벼룩과 이가 들끓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내게 젖을 줬어요. 그녀는 한 번도 내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젖을 줬죠. 그래서 난 아이에게는 젖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쥐의 오줌처럼 매캐하고 눅눅한 젖이라도 하나의 생을,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요.

엄마는 내게 글과 예절을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우리 죄와 내력에 대한 이야기는 자주 들려줬죠. 특히 우리 외고조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녀가 마녀였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엄마는 외고조할머니가 마녀재판을 받았다는 것, 재판으로 공인된 마녀였다는 것, 법정 기록으로 그녀의 죄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듯했어요.

틈만 나면, 그러니까 아득히 먼 곳을 보지도 않으면서 노려보는 이상한 눈을 하고는 Which witch wished which wicked wish? Which witch wished which wicked wish? 하고 중얼거리지 않을 때면, 양팔을 날개처럼 벌리고 시궁쥐와 비둘기들을 쫓아 달려나가면서 우우하는 기묘한 소리를 내지 않을 때면, 내게 젖을 먹이면서-그래요 나는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나도록 말을 알아듣고 말을 배우고 걸을 수 있을 때가 되도록 젖을 먹었어요. 엄마는 매년 동생들을 낳았고 우리들은 두 개밖에 없는 젖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의 입술을 꼬집고 머리를 밀쳐내곤 했죠. 나이가 많은 아이는 어린 아이보다 더 유리했어요. 더 어린 아이 더 힘없는 아이 그런 주제에 더 많은 젖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굶어죽을 때까지 우리는 그녀의 젖에 진드기처럼 달라붙었어요. 그래도 그녀의 젖은 마르지 않았죠. 나중에는 눈 녹은 물처럼 끔찍하게 묽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마녀의 죄를 혈통으로 이어받고 태어났기에 운이 좋다면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해 줬죠. 구원은 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기적이니까요.

구원을 받으면 우리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묘한 주문을 더 이상 중얼거리지 않아도, 천공의 아득한 높이를 헤아리지 않아도 겨울을, 마치 낮처럼, 마치 봄처럼 순식간에 지나보낼 수도 있을 거라고요.

오래지 않아 그녀 자신은 구원받게 될 거라는 비밀을 어린 소녀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해주기도 했지요. 함께 밤을 보낸 사제의 호주머니에서 천국행 티켓을 훔쳐냈다고요.

봐요. 이거예요. 하고 하녀는 속옷에서 잔뜩 구겨진 황금빛 종이조각을 꺼내어 왕비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건 당신에게만 보여주는 거예요. 엄마가 잠든 틈에 몰래 뺏어왔죠. 아마 엄마는 천국에 가지 못했을 거예요. 티켓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는 우리가 베고 잠들던 쓰레기봉투를 전부 뜯어서 미친 듯이 파헤쳐보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시궁쥐들의 배를 갈라 일일이 확인해 보았지만 자식들의 몸을 뒤져볼 생각은 못했어요. 엄마는 우리가 자신의 몸과 같다고, 정확히 말하면 그녀 몸의 연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아직 그녀의 자궁 속에 고요히 담겼을 때 그녀의 피와 살로 형성된 생을 도저히 그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던 거겠죠. 엄마는 우리가 그녀의 손과 발, 내장만큼이나 그녀에게 협조적일 것이라고 여겼겠지만 손과 발, 내장이 언제든지 그녀를 배신할 수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거예요. 가난하고 비천한 육체는 언제든지 병드는 법이죠. 내부의 세포들은 박테리아와 공모하여 병균이 제 몸을 잠식하고 세포들을 공격하는 것을 도와주고 공모자들과 의탁한 박테리아는 몸속에서 끔찍하게 불어가며 신체를 감염시키고는 하니까. 난 내 모태를 배신해서라도 천국에 가고 싶었어요. Which witch wished which wicked wish? 하고 중얼거리지 않아도 겨울을 날 수 있는 곳, 미치지 않고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곳.

그래요, 난 엄마처럼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서 내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이와 벼룩이 있는 길거리의 미친 여자를 공식적인 일원으로 받아주는 곳은 없었어요. 사창가조차도 우리를 거부했죠. 이가 빠지고 불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불결한 여자, 그런 여자는 돈을 받고 몸을 팔 수도 없었어요. 엄마가 화분처럼 밀쳐지고 버려진 사탕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동안에도 경찰들은 킬킬거리며 자리를 뜰 뿐이었어요. 경찰들은 사물을 돌보지 않으니까요. 엄마는 천국에 가지 못했을 거예요. 천국에 사물을 위한 자리는 없으니까. 기적적으로 구조된 생쥐, 임금의 품에서 생을 마친 강아지가 아니면, 왕비를 수태시킨 황소가 아니면 사물은 사물의 규칙에 따라 먼지로 흩어져 영원히 사물들의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으니까.

엄마는 사물로 죽었어요.

그녀가 천국행 티켓을 훔쳐내기 위해 사제의 호주머니를 뒤질 때 그녀의 도둑질에 분개한 사내는 엄마의 목을 졸랐고, 죽은 그녀를 쓰레기통 옆에 밀쳐내었죠. 구정물과 때에 절어 검게 변한 그녀의 목에는 손자국도 남지 않았어요.

나와 동생들은 그녀가 살해당하는 모습, 버려지는 모습, 쓰레기봉투 한 겹도 입지 못한 헐벗은 여자가 신음 한 번 내지르지 않고 죽어가는 모습을 전부 지켜봤어요. 죽은 여자의 젖을 빨던 동생들이 내 가슴으로 쥐새끼들처럼 올라타던 날 난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렸어요. 왕비님, 버려지고도 죽을 수 없는 사물, 영원한 폐허를 떠도는 사물로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죠. 두려울 건 없었어요. 내게는 천국행 티켓이 있었고 우리 외고조할머니에게는 죄가 있었으니까 죽음의 순간 난 사물로부터, 끔찍하고 긴 겨울로부터 탈피하여 구원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지금도 믿고 있어요. 천국행 티켓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면 그 고매하고 현명하신 귀족나리들이 어째서 앞다투어 이걸 사려고 안달했겠어요?

천국에서 마주치는 순간, 신은 내게 흐르는 마녀의 피를, 내게 흐르는 죄의 내력을 한순간에 알아볼 거예요. 그야 그는 신이니까, 그리고 내게 영원한 해방을, 영원한 죽음을, 영원한 구원을, 겨울도 밤도 바깥도 없는 안식을 내려주시겠죠, 그는 자비로우니까. 누구나 그가 자비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사물이 아닌 자, 사물들의 천국이 아닌 사람들의 천국에 입성한 죄인들에게 그는 한없이 자비로운 법이니까. 아내를 겁간하고 형제를 살해한 죄인도 그는 용서하시니까. 그에게 침을 뱉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살해한 무뢰배도 그는 용서하셨으니까. 난 그분의 성스러운 발, 조각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발에 입을 맞추고 무한과도 같은 죽음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 이전까지는 무엇을 해도 좋은 거죠. 천국에만 갈 수 있다면 그분은 반드시 날 알아보실 것이고 반드시 날 용서하실 테니까.

난 왕궁 경비병들이 날 찾아내 죽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새벽에 왕궁의 담을 넘어 정원으로 숨어들었죠. 나이가 지긋한 하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노인이 나를 묵묵히 내려다보는 동안 난 끔찍하게 벌렁이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어요. 그 사람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응시했는데, 난 그녀가 당장이라도 경비병을 불러 내 목을 내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그녀는 날 죽이는 대신 내게 자비를 베푸는 길을 선택했어요.

난 그녀를 따라서 하녀들이 묵는 다락방으로 갔고 왕궁에는 하녀가 절망적으로 많으니까, 심지어 쥐새끼들이나 거미들보다도 더 많으니까, 아무도 하녀가 한 명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죠.

그날 이후로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어요. 내가 무엇이었는지 내가 무엇인지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왕비님, 하지만 누구라도 날 내쫓을 수 있죠. 난 날마다 악몽 속에서 그녀를, 비루먹은 쥐새끼처럼 왕궁에 숨어든 나를 불러든 그 노인을 봐요. 어쩌면 그 사람은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녀가 나를 발견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쫓아내기로 마음먹는다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를 불러들였던 그날처럼 날 바깥으로 내버릴 수도 있는 거죠. 식기 밑에 숨죽이고 숨어있는 거미들을 비로 털어내어 창밖으로 밀쳐내듯이, 하루 반나절도 지나기 전에 지독하게 쌓여드는 먼지들을 계단 밑으로 털어내듯이.

난 아직도 나와 먼지를, 나와 바퀴벌레를, 나와 거지들을 구분할 수 없어요. 왕궁 밖에서 웅성거리며 미친 듯이 이교의 성경을 외치는 부랑자들이 내 친족들이라는 사실을 왕비님, 당신 말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어요. 난 쫓겨나고 싶지 않아요.

난 쥐약을 먹고 죽어버린 쥐들을 내 시신을 치우듯 밀어내요. 왕궁으로 숨어든 길고양이에게 독을 푼 우유를 먹일 때마다 난 내 몸 어딘가가 썩어가는 것을 느껴요. 주방에서 해체되는 돼지를 볼 때마다, 마른 행주에 닦여나가는 먼지를 볼 때마다 난 아직도 벗어내지 못한 천성과도 같은 내 물성을 느껴요. 하루라도 그릇을 닦지 않으면, 당신의 머리를 빗기지 않고 당신의 기만적인 젖을 짜버리지 않고 쥐의 시신을 치우지 않고 행상들을 내쫓지 않고 유리창을 닦아내지 않고 당신 남편의 수발을 들지 않으면 난 일말의 여지도 없이 자비도 없이 쫓겨나고 말 거예요. 이곳은 천국이 아니고 당신 남편은 신이 아니니까.

효용이 없는 나는 사물처럼 아니 사물이 되어 버려지고 말겠죠. 그뿐인가요, 버려져야 하는 것과 버려야 할 것의 경계를 명료하고 날카롭게 갈라내지 않으면 난 언젠가 죽은 쥐와 벌레 먼지 대신 나를 쓸어내고 말 거예요. 칠면조 다리 대신 제 손을 삶아내고 만 요리사처럼.

난 그가 언젠가 제 살을 잘라내고 마리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는 항상 죽은 고기와 제 살을 구분하지 못해서 애를 먹곤 했거든요. 고기는 출신과 유전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의 문제라고, 움직이지 않고 경련조차 하지 못하고 정지한 것, 저항하지 못하고 쓰러진 것, 더는 사람의 표정을 짓지 못하고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것, 고기는 동물의 식물과도 같은 상태라고, 그러니 끔찍하게 지쳐버렸을 때는 고기가 된 자신과 다른 고기를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는 거라고, 막 제 손을 썰어내려는 그를 내가 화들짝 놀라 말리던 날 그는 내 품에 안겨 울면서 말해주었죠.

솔직히 말해서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고통을 내 상태에 대입해서 생각해 볼 수는 있었죠. 다른 모든 현상들을 이해하듯, 그의 이야기를 내 서사에 편입시켜서, 그가 무엇도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고, 그는 아이를 제 일부로 착각하는 어미와 같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왕비님, 난 당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당신은 하루종일 고기와 고기 아닌 것을 구분하려는 치열한 긴장 속에서 고기 아닌 것으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할 필요가 없으니까. 쓰레기들을 쓸고 정리하며 나를 쓸어내지 않기 위해 먼지를 창문 밖으로 털어낼 때 나까지 털어내지 않기 위해 부조리한 노력을 바칠 필요가 없으니까.

그저 젖을 주면 된다는 거예요. 하물며 미친 부랑자에 불과했던 우리 엄마도 할 수 있었던 일을 하면 된다는 거예요. 당신은 겨울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겨울을 올려다볼 필요도 없고 그저 젖만, 그 쉽고 단단한 젖만 내놓으면 될 텐데.

원한다면 당신은 반역을 꾀할 수도 있고 왕에게 순종할 수도 있어요. 나라에서 제일가는 화가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 남기라고 할 수도 있고 성모들만 입는다는 푸른 드레스로 온몸을 칭칭 감을 수도 있죠. 아무도 당신을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겨울과 여름을 구분할 필요도 없어요. 겨울과 여름의 언어를 알지 못해도 당신은 겨울도 여름도 아닌 실내를 살아갈 수 있어요.

왕비는 계속해서 울기만 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이든.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은 제외하고, 당신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은 제외하고. 당신이 공주에게 젖만 준다면, 그 애를 어르고 달래고 사랑한다고 몇 마디 속삭이기만 한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어요.

아무도 당신에게 더러운 가래침과 토사물이 얼룩진 접시를 닦으라고도 하지 않고 왕이 기르는 개들의 변을 닦으라고도 하지 않아요. 그 빌어먹게 고상한 젖만 주면 된다는데. 다른 여자들은 누구나 젖을 준단 말이에요. 우리 젖은 비천해서 가엾은 애새끼에게 물려주고 당신 젖은 그래 얼마나 고상해서 그렇게 꽁꽁 감싸둔단 말이에요? 당신은 위선자고 기만자예요.

하녀는 갑작스레 발작하듯 울부짖으면서 왕비에게 매달렸습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제 아이에게 젖을 물릴 용기도 없으면서, 당신을 볼 때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치가 떨릴 만큼 부끄럽게 느껴져. 당신은 아이에게 젖을 주는 여자들을 전부 짐승으로 만들고 있어요. 난 끔찍하게 지쳤는데 당신이, 방 안에서 울기만 하는 당신이 나보다 더 지쳤다고 말하면 나는 이제 뭘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요.

왕비는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만 저었습니다. 그녀는 하염없이 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하녀는 왕비의 컵의 가장자리를 훑어내리듯 왕비의 귓바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훌쩍이는 소리가 방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누구도 그녀의 비밀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오직 왕비의 망가진 귀만이 그녀의 비밀에 젖어들 수 있도록.

그래도 당신 아이는 축복받고 태어났잖아요. 왕비님. 나라에서 제일 가는 요정 세 명이 당신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연회에 참석했던 날에도 당신은 여기서 나오지 않고 울기만 했죠. 그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당신 남편은 또 얼마나 화를 냈는지 알긴 해요? 그래도 당신 아이는 당신이 없어도 왕의 딸이고, 또 공주니까 그들은 저마다 축복의 주문을 걸어 주었죠.

그날도 난 당신 곁에서 당신을 설득하고 있었는데. 당신은 젖을 물릴 아이도 있잖아요. 모두가 당신이 임신했다는 걸, 당신이 눈꽃보다도 아름다운 여자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고 있죠.

그렇지만 난, 하녀는 모래를 부어넣은 왕비의 왼쪽 귀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소곤거렸다.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같은 방을 쓰는 하녀조차도 알지 못하죠. 배가 조금도 부르지 않았거든요. 우리 외고조할머니가 마녀재판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죠.

외고조할머니는 세쌍둥이를 낳은 죄로 재판을 받았는데 문제는 그녀가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사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간혹 쌍둥이, 세쌍둥이를 한 번에 낳는 여자들도 있으니까. 쥐들만 해도 열댓 마리 되는 새끼들을 한 번에 낳곤 하잖아요.

문제는 그녀가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뱃속에 품고서도 비쩍 마른 허리를 자랑했다는 데에 있었어요. 외고조할머니는 유행에 맞추어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 속옷을 입고 봄날의 구름처럼 부드러운 원피스 차림으로 시내를 나돌곤 했는데, 그녀의 허리는 손목처럼 가늘었다고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간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증언했죠.

아마 평소처럼 다락 어딘가, 언제나 그녀 혼자 머무는 어딘가에서 애를 낳았다면, 검은 쓰레기봉지에 꽁꽁 싸매어 곧장 버렸다면 아무도 그 세 개의 핏덩이가 그녀의 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왕비님은 모르시겠지만 거리에는 동사한 쥐들과 아이들, 필요량을 초과한 고양이 새끼들이 버려지곤 하니까요. 겨울철이 되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헝겊 주머니 안에 고양이 새끼 서너 마리를 집어넣고 호수 위에 두껍게 덮인 얼음층을 깨어내고 바스락거리는 그 주머니를 악몽만큼이나 깊은 얼음의 지층 아래에 매장하곤 했어요. 얼음을 파헤칠만한 여력도, 다른 누군가 뚫어 놓은 구멍을 답습할 시간도 없는 이들은 쓰레기통 옆에 마구잡이로 시신들을 쌓아두고는 했는데, 그 속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겠어요. 짐작이 가시나요. 그래서 사람들은 시신의 얼굴에, 그것이 사람이었든 짐승이었든 짐승조차 아닌 무언가였든 검은 쓰레기봉지를 감싸 묶어주곤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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