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소녀 4

그런 곳에서 애를 낳고 버렸다면 아무도 외고조할머니를 고소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곳에서. 누구나 죽고 누구나 버려지는 곳에서. 하지만 왕비님, 그녀는 그렇게 홀연히 사라질 수 없었어요.

엄마는 끝까지 외고조할머니가 어디에서 애를 낳았는지 말해주지 않았죠. 하지만 내가 짐작하기로는 그녀는 스스로의 의지로 광장 한복판에서, 누구도 애를 낳지 않는 곳에서, 모두에게 노출된 곳, 다리 사이에서 피를 흘리는 여자가, 알몸의 여자가, 몸을 쪼개고 갈라내는 여자가 세계에 무방비한 상태로 현전해서는 안되는 곳, 시장바닥이나 철도역, 아니 광장이었을 거예요, 분명. 주일마다 사형수들의 목을 매다는 곳. 은밀하지 않은 죽음들이 공공연하게 상연되고 두려움보다는 긴장에 질려버린 배우와 같은 사형수들이 저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을 빙 둘러보며 흐느끼듯 미소짓는 곳.

사형수는 고해신부의 품속에서 닦아낸 매끄러운 얼굴을 이리저리 선보이며 꿈결 같은 성황을 만끽하고, 간수의 인도를 받아 우아한 걸음걸이로 사형대까지 올라서고, 십자의 제단과도 같은 무게를 지닌 사형대 앞에서 그는 오로지 그의 죽음을 떠받치기 위하여 희생된 나무의자 위에 올라서고, 간수는 올림픽 경기의 우승자에게 메달을 달아주듯 그의 목에 견고한 올가미를 걸어주고, 사형수는 긴장에 몸을 움츠린 거대한 유기물과도 같은 군중을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극적인 마지막을 장식할만한 대단한 대사를 생각해내지만, 어설프게 대사할 바에는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묵묵히 웃는 곳. 관중들에게 간수는 그가 열여섯 명의 소년들을 현혹하여 오도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사람들은 현혹과 오도가 내포하는 구체적인 행위와 결과에 대하여 고심하다가 결국 뚜렷한 내용을 찾아내지 못한 채 서서히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형대가 있는 곳.

주일이 지나면 순식간에 와해되는 거대한 군중은 단단한 개인을 철석같이 믿는 시민들로 돌아가고, 그들은 곧 왕정을 파기하기로, 서로에게 주어진 영원한 단차들을 자각하며 공모하고 그들 스스로에게 하늘로부터 주어진 주권을 부여하기로 언명하지만, 사형대 앞에서 한데 모여 웅성거리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대한 구름과도 같은 군중들, 그 속에서 순식간에 용해되는 주체들, 거미줄과 같은 상호연관적 생명의 개념이 태동하는 오디세이아의 바다에서 그러나 여전히 견고한 고독, 해갈되지 않는 심연과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세포들, 공의존관계의 생물들이 서로의 학명조차 알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듯 공명하지 못하는 고통과 불연속의 나락, 그 모든 부조리에도 사형수는 부글부글 끓어넘치는 검은 물을 보았고 물들은 그를 보며 웃었고, 그래요. 홀연히 사라질 수 없는 인간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도 그는 검은 물을, 끓어넘치는 검은 물을 보았는데, 그의 머리 위에는 현존하는 우주가 있었으나 그는 우주를 볼 수 없었고, 그의 등 뒤에는 아득히 펼쳐진 대양과 사막이 있었으나 그는 볼 수 없었고, 선천적인 눈병을 앓는 맹인처럼 그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니, 그래도 무언가가, 인간 이후에도 인간의 세계가, 몸이 없는 세계, 기관도 눈도 없는 세계가 그곳에, 바로 그곳에 현전하고 있다는 섬뜩한 감각을 지울 수 없었으니, 그의 의식은 육 초도 되지 않아 서서히 흐려져가기 시작하였고, 완전히 기절한 그, 그러나 아직은 죽지 않은 그가 여전히 미약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발버둥을, 허공에서의 서글픈 춤을 마친 배우가 완전히 죽었다고 믿는 군중들은 그의 여운을, 몸을, 떠나간 춤을, 신체를 떠나간 숨의 오인을 묵묵히 바라다보며 침묵하였고, 그동안에도 배우의 콧속으로는 숨이 흘러들고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그가 죽어가고 있었던 이유는 숨이 막혀서도 심장이 멎어서도 아니었고, 판사의 선언에 따르면, 정신과의의 진단에 따르면, 망령된 미혹만을, 악마적인 사유만을, 파국에 대한 관념만을 생산해내던 절망적인 소굴에 피를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피를 마시고 자라나는 생각들은 멎어들었고, 기절한 그는 꿈조차 꾸지 않았고, 그의 호흡은 그를 가장 애타게 부르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이, 신도 악마도 없는 세계를 하염없이 떠돌기만 하였고, 막혀버린 목동맥, 천사의 허벅다리처럼 새하얀 얼굴, 그는 의식도 무의식도 꿈도 악몽도 없는 사유에 빠져 있었으니, 새로운 피가 들고 나지 않는 머리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지 않는 세계에서는 그가 일생동안 축적했던 사념들이 검은 물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합류하였고, 어쩌면 외고조할머니는 군중 속에서 그의 새하얀 얼굴 속에서 증폭되는 무참한 이미지들을 짐작하였을 것이니, 그래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의 자리를 자신의 자리라고 믿었을지도 모르니, 뱃속이 검은 물처럼 출렁거리고 흘러넘치던 밤 외고조할머니는 양수가 질질 흐르는 허벅다리를 지면에 붙이고 짐승처럼 기어가면서, 아니, 뱀처럼 기어가면서 흐느꼈을 것이고, 기적적으로 도달한 사형대 앞 이제는 오로지 삶만으로 활기찬 광장에 드러누운 채 흠뻑 젖은 다리 사이에서 그녀를 찢어내는 쪼개짐에 몸을 내맡겼을 것이고, 손목처럼 가느다란 허리,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뱃속에서는 셋이나 되는 아이가, 특별히 작지도 않은 아이들이 잔혹할 정도로 커다란 머리를 드밀고 나왔고, 군중들은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주변에서 땀을 닦아주던 여자는 기절까지 했는데, 그 기묘한 광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 밤을 다음 밤을 다음 다음 번 밤을 결코 지새울 수 없을 것이니, 뱀처럼 쓰러진 여자의 잘록한 허리에서 내장처럼 쏟겨나오는 아이들, 그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몸을 씻어내면서도, 흐느끼면서도, 눈물의 흐릿한 막 너머에 투과되어 맺힌 여자의 벌어진 다리를 볼 것이니, 그곳에서 괴물처럼 찢겨나오는 머리, 그 머리들은 분명 사람의 머리였으니, 그들이 사랑하는 아이들의 머리, 그들의 머리, 인간의 머리가 분명하였으니, 누군가 참지 못하고 그녀를 마녀로 고발하였을 때, 가장 절망적인 설명이라도 갈구하던 이들은 혹여 누군가 그 가설을 완전히 기각해버릴까 두려워 잘록한 허리 속에서 기생충처럼 새어나오는 사람의 머리에 대한 끔찍한 추산을 평생토록 그들을 따라올 환영으로 남겨두고, 그들을 버려두고, 그들의 악몽을 버려두고 사라져버릴까 두려워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폭력적인 왕복운동으로 깨질 듯이 뭉개지는 사유, 외고조할머니가 낳은 세 명의 아이는 국가기관에 맡겨졌고, 떠돌이 아이들이 모여드는 고아원에서 열다섯이 될 때까지 빌붙어 먹고 자고 먹고 자기만 하던 게으름뱅이들은 평생 마법을 쓸 수 없을 테지만 그래도 또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았고, 모두가 그들의 어미에 대해, 그들의 어미의 어미에 대해, 그들의 어미의 어미의 어미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니, 난 악몽 속에서도, 꿈 없는 잠 속에서도 외고조할머니의 하얗고 가녀린 다리를 보았어요.

왕비님, 그녀의 사형대는 여느 사형수의 사형대와는 달랐을 거예요. 그녀는 사형대에서 즉결심판을 받았겠죠. 산모의 둥근 배에 귀를 붙이고 태동만 들어도 뱃속에 있는 아이의 성별을 노련하게 알아차리는 산파처럼 마녀와 마녀 아닌 자를 정확하게 구분해내는 판관, 벌써 268명이나 되는 마녀들을 색출한 전력이 있는 이교도 심판관은 외고조할머니가 정확하게 25kg 나갈 것을 예측했다죠.

저울에 달아볼 필요도 없었어요. 베르길리우스 서사시를 듣고도 외고조할머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녀는 곧 그녀를 뒤덮을 불 위를 묵묵히 걸어가면서 그녀의 악마성을 스스로 증명해보였죠.

무엇이 보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투명한 유리구슬과도 같은 눈,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고 오로지 굴절하고 왜곡시키기만 하는 빛의 그릇을 가만히 내어보였겠죠.

판관은 그녀가 제 미래를 자백하였다고 선언하였지만 사실 얼토당토 않은 말이에요. 누구나 그녀의 미래를 알고 있었을 거예요. 마녀들은 산 채로 불태워지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깊은 곳에 파묻혀 있던, 드러나지 않은 채 살고 있던 세포들이 모조리 불타며 저마다의 고통과 저마다의 폭발과 저마다의 손상, 완전하고 복구불가능한 상해를 앓는 그러한 상태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직 불 붙지 않은 사형대, 장작으로 쓰일 나무토막들이 그녀와 함께 최후를 맞을 자리로 던져지기 전에도 그녀는 제 괴물 같은 아이들, 그러나 영락없이 인간의 모양을 한, 인간의 장기와 인간의 피부와 인간의 눈과 인간의 귀, 인간의 사지와 인간의 손가락, 인간의 발톱과 인간의 입술을 가진 인간과도 같은 아이들에게 젖을 물려 주었다고 해요.

어쩌면 그 순간 그녀는 우리에게 그녀를 흘려넣었을지도 모르죠. 엄마의 엄마는 엄마에게, 엄마는 내게 그녀를 흘려넣었다고, 그렇게 믿는다면 한결 수월해요. 그게 무엇이든, 우린 천국에 갈 테니까.

우리가 단단하고 고고하며 완벽한 단자가 아니라면, 동시에 영원한 하나의, 완벽히 화합하는 거대한 세계 자체가 될 수 없다면,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엄마의 엄마에게 젖을 물리고 엄마의 엄마는 엄마에게 젖을 물리고 엄마는 내게 젖을 물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왕비님. 어려울 건 없어요. 할 수만 있다면 나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숯불에서 달구어지는 새끼돼지처럼, 불타오르는 조상의 고기를 먹고 먹이고 또 먹고. 다른 짐승들이 그렇게 하듯이.

물론 짐승들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게 당위이고 진리라는 말은 아니에요. 사실 왕비님, 전 그렇게 어려운 말은 잘 모르지만 남편의 죽음도 국가의 죽음도 자식의 죽음도 아닌 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오직 자신을 애도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든 여자들이 있다는 걸 어쩌면 나도 당신도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공주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아무도 당신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아요. 사실 누가 사랑을 알겠어요? 그런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어휘를,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기만과도 같은 개념을 감히 누가 알려줄 수 있겠어요? 당신은 그냥 젖만 물려주면 돼요. 그럼 모든 게 해결될 거예요.

아무도 당신을 불태우지 않을 거고, 아무도 당신을 길거리에 내버리지 않을 거고, 얼음 호수 깊숙한 지층, 아무도 발굴할 수 없는 축축하고 음험한 지하에 매장할 일도 없을 거예요.

왕비님, 사실 난 아직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나 없이도, 내 몸 없이도, 누구의 몸 없이도 세계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요. 정말 세상이 있다면 어째서 내 앞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나만을 기만하고, 나만을 속이고, 나만을 소외하는 것인지. 왕비님, 이 왕궁은 당신들의 세계이지만 내 세계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당신이 공주님께 얌전히 젖을 물리고 그렇게 당신을 흘려보내고 나면, 그러면 난 더 이상 당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예요. 원래 침실 하녀는 더 고귀하고 더 유능한 이들이 발탁되는 자리니까. 아마 당신은 하녀들의 나이대가 점점 어려지는 걸, 당신을 어루만지는 손이 점점 서툴러지는 걸, 그들의 말투가 무례할 정도로 경박해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장작더미 위에 올라서던 여자의 하얀 발을 당신은 상상해 본 적이 없겠지만, 가끔 난 당신과 함께 잿더미 위에 맨발로 다가서는 생각을 해요. 흘러넘친 당신을 누구의 입에도 물리지 않고, 흙도 아닌 검은 재 위에 떨어진 젖에서는 새싹 하나 돋아나지 않겠죠.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 젖을 물리지 않았다면, 끔찍하게 저려오는 세계의 법칙을 고스란히 낭비하고 쏟아냈다면, 우리가 재에 도달하고 나면, 그제야 불은 출혈하기 시작할 거예요. 불은 불 이후의 세계를 맹시하고 있어요. 폐허마저도 해체시키고 다시 물화하는 창백하고 끔찍한 욕망의 눈. 난 감긴 눈이 얼마나 탐욕적인지 알아요.

왕비님, 당신은 지금 눈을 뜨고 있지만 당신이 언제든지 눈을 감고 불을 바라보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순수하고 매혹적인 소녀와 소년들은 일렁이는 것, 창백하게 전율하는 물결이나 아득한 불을 바라보면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곳, 지명도 방위도 모르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거북스러울 정도로 황홀한 현기증 속으로 뛰어들기 마련이니까. 당신은 아이처럼 작고, 아이처럼 가녀리고, 아이처럼 불온하니까.

왕비는 검은 빛으로, 푸른 빛으로, 노란 빛으로 출렁이며 번져가는 하녀의 안개와도 같은 얼굴을 멍하니 들여다보았습니다.

목소리는 늘 왕비의 곁에 있었으나 그녀가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찾아 손을 뻗을 때, 목소리는 늘 그녀의 곁에 없었습니다.

목소리는 왕비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왕비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저 목소리를 붙들어두고 싶다는 생각에 메아리처럼 그 말을 반복하였습니다.

목소리는 왕비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왕비는 메아리처럼 사랑하지 않는다고 따라 말했습니다.

목소리는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왕비님, 공주님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하지만 왕비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녀가 이름 지은 아이, 눈밭처럼 새하얀 아이를 보고 싶지 않다고요.

하녀는 침으로 축축하게 젖어든 왕비의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습니다. 왕비의 고귀한 가슴에 입술을 묻고 흐느끼는 하녀와 하녀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흐느끼는 왕비의 모습이 발각되고 난 뒤, 하녀는 왕궁에서 쫓겨났고 왕비는 자연을 거스른 간통을 저지른 죄로 고발되었습니다.

왕궁 뒤뜰의 느티나무에 더러운 하녀복으로 목을 매고 자살한 여자의 이름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나뭇가지는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휘청였지만 여자의 무게를 고스란히 받치고 있었습니다. 헐벗은 여자의 다리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고 생리중인 여자는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는 믿음에 따라 경비병들은 누군가 그녀를 겁간하고 목매달아 죽인 것이 틀림없다고 판단하여 왕에게 보고를 올렸습니다.

왕은 한때 그의 죽은 아이를 배고 낳았던,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젖을 흘렸던 여자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왕비는 불 속에서 춤을 추는 여자의 유령을 보았고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해처럼 타오르며 새까맣게 익어가는 여자, 미라처럼 비쩍 말라가는 여자의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눈의 형체마저도 파괴하는 선뜩한 빛이 그들을 감싸안았고 왕비는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채로 그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들의 경계를 이루던 윤곽이 녹아내렸고, 수도의 느티나무마다 목을 매단 여자들, 그들의 다리 사이에서는 한결같이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외상은 없었으니, 생리 중인 여자들, 구제할 길 없는 백치라고 해도 여자는 더러운 날, 피 흘리는 날에는 목을 매지 않는 법이므로 자살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었다는 구두장이는 (정말이에요. 제가 나리들 앞에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귀신이었어요. 정말 귀신이었다니까요. 아니요.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셨습니다. 조사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마을 술집 어디서든 다 물어보세요. 제가 다녀간 적이 있었느냐고) 새벽녘에 제 앞을 헤엄치듯 걸어가는 새하얀 나신을 보고 식겁하여 몸이 굳었고, 순식간에 하늘 위로 범람하듯 뛰어오르는 유령, 그때는 영락없이 숲의 귀신에게 홀렸거니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녀는 나를 죽이고 말 것이니, 언젠가 아주 어릴 적에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들려주었던 말처럼 목을 매달고 있는 것은, 허공으로 뛰어오르고 멈춘 것은 그녀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고 자기 자신일 것이 뻔하니, 그러나 그는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입버릇처럼 말하던 죽어야지 하던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으니, 그에겐 아직 더 마셔야 할 술이 있었고(아니에요. 그날은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확인해보시라니까요) 쓰다 만 일기도 있었고, 아직 결혼도 하지 못했고, 남들 다 낳는다는 애새끼도 없었고, 언젠가 기회만 된다면 과일가게에서 알짱거리는 백치 여자를, 귀머거리 여자를, 벙어리 여자를, 길거리에 버려진 그렇고 그런 여자를 하나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고 훈육하고 길들이리라. 거리에서 몸이나 팔면서 이빨을 뽑아 팔고 머리칼을 잘라 팔고 팔리지 못한 잔여분은 고양이에게 물어뜯기기만 하면 다행인 그렇고 그런 여자들을 데려다 키우리라. 그녀들을 살리고 기르고 애까지 낳도록 돌봐주면, 성도 없는 그녀들에게 그의 이름을 절반쯤 떼어다 붙여주고 어머니가 그에게 그랬듯 기르면 그는 천국에 갈 것이니까.

그가 어릴 적 부모 몰래 길렀던 쥐새끼 한 마리가, 그만 보면 시뻘건 꼬리를 개처럼 휘휘 저으며 쫓아오던 쥐새끼, 단 한 번도 그의 손을 깨문 적이 없던 쥐새끼, 더러운 잿빛 몸뚱이를 이리저리 비비 꼬며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닿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음식을 얻어먹으려, 아니 어쩌면 오로지 그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서 애교를 부리던 시궁쥐처럼 그 작고 가녀린 쥐새끼, 일 년도 채 살지 못하고 뒈져버린 쥐새끼, 쥐덫에 걸리고 쥐약을 먹고 주둥이에 거품을 보글보글 문 채로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쥐새끼들, 그는 그의 쥐새끼를, 무수한 쥐새끼들 중에서 똑같이 기다란 주둥이에 날카로운 앞니 두 개, 바싹 마른 코와 낚시줄 같은 수염을 미친 듯이 바들바들 떨어대는 쥐새끼, 그는 똑같이 생긴 쥐새끼들 중에서 그의 쥐를, 그가 길들이고 그를 길들인 한 마리의 쥐를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으니, 그는 그의 쥐를 하나뿐인 쥐를 묻어주지도 못하였고 그를 위해 울어줄 수도 없었으니, 그날 그가 다짐한 것은 언젠가 다시 쥐를 기르게 된다면 반드시 그의 목에 리본을 달리라. 절대 끊어지지 않을 단단한 가죽으로 만든 리본.

그는 훌쩍이며 말하기를, 리본을 달지 않은 쥐새끼가 그를 사랑하였듯 꼭 그러한 방식으로 이번에는 쥐새끼가 되어, 처음에는 아니어도 끝날 때는 주인과 노예가 뒤바뀌는 SM처럼.

(아뇨. 전 그런 곳엔 드나든 적도 없고 그런 취미도 없어요, 나리. 누구나 이런 비유를 하잖아요. 하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우주와 별들의 마법적인 화성에 대해서 말하잖아요. 꼭 우주인이 아니라도요. 맹인들이 빛과 색에 대한 묘사로 그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가꾸는 것처럼, 철저한 유물론자가 메시아와 구원에 대한 시를 쓰는 것처럼. 아, 그래요. 수사학적인 표현이에요, 나리. 물론 아시겠지만.)

조사관은 증인-용의자에게 쓸데없는 말은 말고 요점, 사실, 적확한 현상에 대해서만 간결하게 진술할 것을 요구하였고 증인-용의자는 침을 삼키고 다시 증언하기를,

SM처럼 끝날 때는 그가 쥐새끼가 되어 쥐새끼처럼 하염없이 사랑할 그런 여자를 데리고 올 작정이었다고.

(전 정말이지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요. 아직은 이름 없는 그녀가 내 목에 손수 매듭지은 단단하고 부드러운 올가미를 걸어 준다면, 그녀의 스카프나 가디건, 원피스를 찢어 묶은 매듭을 상냥하게 내려뜨린다면 난 거절도 거부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기대어 끝을 바라볼 텐데. 나리, 난 왕의 아내 궁중 서기관의 아내 의사의 아내 판사의 아내 경비병의 아내 백수의 아내 거지의 아내 이주민의 아내 군병의 아내 사과장수의 아내 생선장수의 아내 화가의 아내가 약제사처럼 섬세한 손길로, 치밀한 계산과 온정으로 독살한 사내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질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나와요. 내겐 그런 손길, 삶을 끝내고 손수 매듭지어줄 그런 하얀 손-그리 희지 않아도 좋아요-이 필요할 뿐인데, 죽음을 피해 몸부림치는 작자들에게는 그렇게도 쉽게 도래하는 죽음이 어째서 내게는 오지 않는지.

내가 공주님을 탐하려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리. 난 그저 눈먼 여자 아니면 귀먹은 여자 다리가 없는 여자 목이 없는 여자 하반이 마비된 여자 침대에 갇혀서 짐승같은 비명만 꽥꽥대는 신경증자. 아무나 다 좋아요. 매듭을 묶을 손만 있다면. 해도 달도 아닌 불가해한 빛, 그런 부글거리는 흰빛 아래에서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손. 도끼로 머리를 내리쳐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손을 다 찢어가며 바스라진 유리조각으로 날 난도질해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내 이마에 십자가를 그려달라고 하지도 않겠어요. 그저 눈먼 화가들이 그려내는 숙명과도 같은 형상 없는 무늬로 날 매달아줄)

그런 여자를 데려오면 그러면 언젠가 머지않은 종말의 날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 하느님은 그의 목에 달린 리본만큼이나, 그가 은밀하게 기르던 쥐의 꼬리만큼이나, 그리고 그가 입양할 유기된 여자의 연장된 삶만큼이나 두꺼운 동앗줄을 내려줄 터이니, 그는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줄에 목을 매달고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니, 그는 아직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미래의 아내가 그의 자비와 그의 은혜와 그의 선행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서 어찌할 수 없을 정도였음에도 두려움에 질려 꼼짝도 못할 정도로 선뜩한 광경, 눈처럼 새하얀 여자가 하늘로 승천하다가 갑작스러운 몽상과 권태에 질려버린 듯 체념에 사로잡힌 듯 나무 위에서 뻣뻣하게 굳어서 멈추어있었다고, 증인-용의자는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증언하였고,

(하늘 위에 투명한 지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성모의 투명하고 견고한 베일이 미동도 없이 침잠해 있다는 양 그렇게 서 있었어요, 나리. 시신은 관이나 물 속에 있어야 하잖아요. 난 그렇게 허공에 떠 있는 시신은 처음 봐서 당연히 유령이겠거니, 그리고 정작 목을 매달고 죽어가는 건 나이겠거니 생각했다니까요.)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밤이 희게 바래가고 영락없는 아침이 밝아오고 새와 개들이 우짖는 소란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그는 증언하기를,

비스듬히 기울어 미끄러지던 땅 위에 주저앉아서 그는 숨을 몰아쉬었고 손은 젖은 흙에 새빨갛게 젖어들었고 여자의 다리 아래에서 흘러넘치던 피와 검은 반점들, 천사들의 행렬과도 같은 꿈틀거림은 검게 부글거리던 물은 끔찍하게도 개미떼였으니, 그는 그의 손가락 사이로 기어올라 그를 간질이고 그를 물어뜯고 그를 훼손하는 개미들을 황급히 털어내었고, 미친듯한 울렁거림. 기울어진 땅에 쏟긴 토사물은 뒤집어진 하늘 저편으로 쏟기었고, 그래도 아마 하느님은 이해해주실 것이, 그분은 용서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용서해주시기 마련이니까. 그분은 세계의 사물들이 매일같이 배출해내는 불결한 오물 따위는 모욕으로 여기지 않으실 테니까.

그는 안심하고 구토를 했다고 증언하였고, 꺽꺽거리면서 흐느끼는 사내, 엎드려서 오열하는 사내.

그러나 그를 고발한 증인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그는 여자의 시신 옆에 멀거니 서서 수음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 용의자-증인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저었고, 돌이켜 생각하니 그가 본 것은 신의 현현도 귀신의 미혹도 아니며 그저 흔해빠진 죽음, 자살하는 여자,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은 오줌을 누고 똥을 누고 구토까지 마친 뒤에 공복으로,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로 집안 구석자리에서 은밀하게 목을 매달긴 하지만 목을 매달고 죽는 일 자체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니, 그도 그의 엄마도 그의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목 매달고 죽은 시신을 본 적이 있으니,

(아마 나리도 분명히 본 적이 있으실 테죠. 그녀는 자살한 거예요. 그뿐이에요. 누구나 죽듯, 자신을 살해하는 누구나 그렇듯 목을 매고 죽은 거예요. 그뿐이에요.)

그는 관청에서도 심문대에서도 지하감옥에서도, 그녀는 나무 위에 목을 매달더라고, 이름 모를 그녀를 죽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수도를 떠도는 괴상한 살인마도 강간범도 아닌 그녀의 유령이 틀림없다고 증언하였고,

그때만 해도 경비병들은 아침 일찍 시체 옆에서 서성거리며 수음을 하던 무뢰배의 증언을 믿지 않고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였지만,

그가 지하 감옥에서 철창에 두툼한 코를 짓뭉개며 그녀는 자살하였다고, 그저 자살한 것뿐이라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듯 그렇게 자신을 죽인 것뿐이라고 외쳐대어도 무시했지만,

비슷한 증언을 하는 목격자들이 셋으로, 다섯으로, 열로 스물로 쉰여섯으로 늘어나자 더 이상 여자들의 무고를 믿을 수 없었으니,

구두장이는 환기구에 구두끈으로 매듭을 엮고 목을 맨 채로 발각되어 가늘고 단단한 올가미가 생과 다리를 이어주던 피의 흐름을 영원히 분리하기 전에 최후를 위하여 마련된 그의 악몽, 끝없는 악몽의 상연이 끝나기 전에 그가 영원히 안착하려던 공중의 환몽으로부터 거칠게 뜯겨나왔고, 부드러운 검은 물에서 갑작스럽게 쫓겨나 허우적거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죽은 어미의 뱃속에서 허겁지겁 피난하여 나온 어린아이 같았으니, 비늘이 벗겨진 고등어처럼 흠뻑 젖은 그는 세계 이전의 단꿈에 젖어 있던 태아가 잔혹하게 폭발하는 붉은 현상들, 끔찍한 소음과 풍경들을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멀어버릴 듯 아득한 눈 뒤에서 흐느끼듯 간수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익사한 사람처럼 헐떡거리며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부의 무언가 아직 해부학자들도 철학자들도 이름 붙이지 못한 정교하고 서글픈 평형의 판막을 찢어발기듯 날카로운 숨을 비명하였고, 감옥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천국의 올가미로부터 쫓겨난 구두장이가 수도 외곽의,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백치 여자들이 이처럼 드글거리는 정신병동에 갇혀 손과 발을 포박당한 채로 죽음의 천사를, 천국으로 향하는 동앗줄에 매달려 그를 등지고 하염없이 멀어지는 혹은 가까워지는 메시아의 꺾인 머리를, 공포도 없이 찢어진 비명을, 속이 텅 빈 의미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 몸부림치는 동안,

왕은 점성술사를 불러들여 토성과 목성, 아직 이름지어지지 않은 행성들과 별들 사이의 묵시적인 관계에 대하여 그들이 상승하고 하강하며 수축하고 팽창하는 기묘한 긴장관계에 대하여 물었으니,

점성술사는 그 모든 불길한 징조들, 수도에 파다한 몰락의 전조들을 암시하듯 이렇게 이야기하였고,

자연을 거스르는 여자가 토성을 거꾸로 돌려놓고 있습니다,

왕은 끔찍할 정도로 비참하고 우울한 여자 하나를 떠올렸으니, 왕은 불경한 소문이 퍼지기 전에 왕비를 유폐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왕비는 왕궁의 내부에,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다락에 유배되었습니다. 왕비가 갇히고 난 뒤, 하혈하며 목매다는 여자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몰락의 징후가, 거짓말처럼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이유가 왕이 수도의 느티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라고 지시했기 때문인지, 수치도 없이 더러운 몸을 목매단 여자들을 모조리 불태우라고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왕비의 유폐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일들의 상호연관 때문인지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연을 거스르는 여자의 흉조에 대한 예언을 들은 이후 왕은 다시는 왕비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왕비, 미친 여자가 다락방에 유폐되고 난 뒤부터 더 이상 그녀의 얼굴을 씻기고 향유를 바르고 머리칼을 빗어주는 손길은 없었습니다.

간혹 담당 하녀들이 욕지거리를 하며 그녀의 냄새 나는 요강을 비우고 고기 경단과 먹다 남은 쿠키 따위를 가져다줄 뿐이었죠. 왕도 시종들도 공주도 하녀들도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 대해 잊어갔습니다. 어미의 역할을 하지 못한 왕비, 게으르고 방탕한 왕비를 옹호하고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왕비를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왕비 스스로가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녀의 진실을 들을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어째서 그녀가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은 것인지, 제가 낳고 이름 붙인 아이에게 어째서 정을 붙이지 않았던 것인지, 어째서 왕비로서의 모든 책무를 잊고 방안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던 것인지에 대해 흉흉한 소문만이 나돌 뿐이었습니다.

미쳐버린 여자의 말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말을 잊고 울기만 했으므로, 흐느낌은 순전히 개별적인 언어기에 누구도 그녀의 흐느낌을 모어로 삼을 수는 없었으므로, 그녀의 울음소리는 사절로 방문한 코끼리가 울부짖는 소리에, 시종들이 은쟁반을 떨어뜨리는 소리에, 공주가 우렁차게 울부짖고 발길질하는 소리에, 늙어빠진 대신들이 모의를 수군거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냥꾼은 불처럼 어른어른 흔들리는 소녀의 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소녀가, 한 번도 바깥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소녀가, 절망조차 자랄 자리 없이 작기만 한 머리에 그러한 사유를 배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사냥꾼은 소녀에게 왕비는, 하녀는, 구두장이는, 목을 맨 여자들은 대체 누구냐고, 마녀재판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 읽었냐고-물론 들었을 리는 만무하므로-물었다.

소녀는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야기 바깥에 꼭 내부와 대칭되는 세계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언어와 사물이, 현상과 세계가 무관하다면, 그림의 내부에서 운동하는 힘과 그 무형적인 힘을 포착하는 관능이 그림의 바깥과는, 감상자와는 전혀 다른 층위에서 독립적인 관능을 상연하고 있다면, 왕비는 왕비가 아닌 왕비이고 하녀는 하녀가 아닌 하녀이고 구두장이는 구두장이가 아닌 구두장이고 목을 맨 여자들은 목을 맨 여자들이 아닌 목을 맨 여자들이겠죠.

사냥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얘야, 아무것도.

소녀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무언가를 이해했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죠. 당신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지하실은 습해요. 끔찍하게 습하죠. 흙 밑은 모두 이렇게 습한 것인지 흙을 억지로 파놓은 이 지하실만이 빠져나간 흙의 앙갚음을 하듯 습기로 빈 공간을 메운 것인지는 알 수 없어요. 그래도 이 공간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지하실 바깥에서

소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개처럼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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