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과 혁명의 바깥의 물방울 1

지긋지긋한 가상훈련이 끝나던 날 그들은 총을 지급받았다. 총의 의미를 곧바로 해석해내지 못한 이들은 그들에 손에 놓인 운명을 타인의 것을 바라보듯 멍한 얼굴로 내려다보았지만 총의 즉물적인 본질을 간파해낸 이들,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황홀감에 사로잡힌 이들은 입속에 총구를 쑤셔박고 축포를 터뜨렸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는 머리를, 피와 골수액, 절망과 불안, 기대와 회한을 쏟아내며 급격히 수척해져가는 얼굴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은 제게 던져진 운명을 받아들여 연극 무대에 던져진 총이, 발사되어야만 하는 총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나 그들은 지금까지 그랬듯 몽롱한 시선만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제 몸을, 얼굴을, 상처를 제 것이라고 믿을 수 없게 된 자들은 일상적인 사라짐의 세계에, 극단적인 파괴와 단절 바깥의 세계에, 유령처럼 희미한 자아의 영상이 서서히 부식되기만을 기원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 머물렀다.

살아남은 자들, 결단하지 못한 자들은 그들이 되어 우주선에 올라탔다. 코코펠리 여왕은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원하는 자는 제 육체와 정신을 모두 고국에 남겨두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왕의 칙사로부터 그 자비로운 선택지에 대해 들었을 때 그들 중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백치처럼 멍한 얼굴로 유달리 검고 숱이 많은 수염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군인들을 이끌고 칙사는 연구소로 향했다. 앳된 얼굴과 부조화를 이루는 무성한 수염을 들썩거리면서 그는 여왕이 코코펠리의 달에서 착수했다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댔다. 그는 유난히 경박한 말투로 이야기했는데 사내로서는 모든 관료들이 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우스꽝스러운 아이 같은 인물만이 특별히 그러한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여러분이 얼마나 큰 행운을 손에 쥔 건지 알아야 해요, 하고 그는 운을 떼었다. 아니요, 그 총 얘기가 아니에요. 당신들에게 그럴 용기가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요. 한 번 미루어진 일은 영영 시작할 수 없기 마련이니까. 특히 그것처럼 대단한 일은 더 그렇죠. 한 번 실패한 사람은 영원히 실패하기 마련이에요. 우린 그런 운명을 타고난 거니까요. 그래요. 당신들은 살 운명을 타고난 거예요. 그저 생존 자체가 대단한 행운이라니 뭐니 그런 무책임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들도 알다시피 산다는 건 나날이 좆같아지는 일이라 가장 좆같다고 느꼈을 때가 그나마 가장 덜 좆같았다는 걸 깨닫게되는 날이 언제고 찾아오기 마련이죠. 당신들은 다 사지 멀쩡해 보이는데-아니 다리를 전다고요?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 그럼 당신 전부는 아니더라도 당신들 대부분은 자연이 제공한 육체 그대로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뇨, 그런 말은 아니에요, 제길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잖아요, 어쨌든 더 나빠질 수 있는 걸 기억하라는 말이에요 지금 당신들의 육체가 나중의 육체보다는 더 건강할 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겠죠 어디 한 번 반박해 보라고요 제기랄-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나요? 특히나 당신이 가는 곳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데인지, 얼마나 야만적인 이들이 당신들의 피와 살을 갈취하려고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냐고요.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자, 봐요.

칙사가 지껄이는 소리를 몽롱하게 흘려들으며 확신에 찬 그의 걸음걸이를 모방하여 앞으로 걸어가던 그들은 거대한 파리의 날개처럼 투명하고 매끄러운 유리문이 저절로 제 배를 가르며 벌어지는 장면을 얼떨떨한 낯으로 목격하였다. 언젠가부터 그들의 삶은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로 점철되었다. 시간이니 숫자니 뭐니 하는 것들이 그들의 일상에 들어오고 그들 일상의 언어로 변하고 나서부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들이 향유하는 일상은 끔찍이도 생경하게 변해버렸다. 그들은 더듬더듬 거리며 시간을 세었고 숫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일더하기일은이이더하기이는사사더하기이는…하는 식으로 하나씩 역산해 가며 지독히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나가야 했다. 숫자와 시간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말하려고 해도 말하는 순간순간 그에 대해 언급해야만 할 때가 찾아왔고 그들은 더 이상 이전에 어떠한 식으로 숫자에 대한 언급도 고려도 없이 자유로이 지껄여댔는지 이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숫자와 시간뿐 아니라 아무것도, 이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러했는지도 몰랐다. 네 발로 기어다니던 시절 입 안에 넣고 쥐어뜯으며 냄새를 맡고 색을 감각하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이름을 부르면 완전히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물들은 처음부터 그들 인식-착각의 영역 바깥에서 기묘하고 불가해한 형태로 이지러지며 유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몸조차도 그들의 의지를 배반하고 그들을 여기까지 이 낯설고 지긋지긋한 지상까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역설적인 시간까지 실어나르지 않았던가. 그들은 차츰차츰 이해하지 않고 순종하는 방법을 배워갔다. 왕의 성별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낯설어졌지만 변화에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그러했든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맞추어나갔다. 달라진 기후, 달라진 대기, 달라진 중력, 달라진 습도에 맞추어 몸을 구부리고 땀구멍을 열고 입술을 벌리고 옷을 갈아입듯. 그들은 여왕의 이름도 얼굴도 체향도 알지 못했지만 여왕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숫자와 시간의 개념을, 그러한 변화가 야기하는 효과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구석자리에 숨어있다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유령을 발견하는 것처럼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유령은 불꽃이나 폭음처럼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며 처음부터 그 자리에 도사리고 있었음에도. 예기치 못한 것은 존재가 아니라 그들 감각의 깨어남임에도.

칙사는 입술을 음흉하게 일그러뜨렸지만 덥수룩한 수염에 가려진 부드러운 입술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피아노처럼 아름답고 불길한 음률을 품고 누워 있는 무수한 관들, 그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생김의 관 수백 개가 절망적인 계시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훤히 들여다보이는 관은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죽음의 끔찍함을 매장하여 가리는 것이 아니라 발가벗겨 드러내는 투명한 뚜껑들. 그들은 칙사의 걸음걸이를, 지나치게 확고한 나머지 오만하게까지 느껴지는 움직임을 쫓아 관들 가까이 다가갔다. 관 모양의 수조는 여덟 면이 모두 투명했으며 그 안쪽에는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시신이 잠들어 있었다. 시신의 갈색 주근깨와 풍성한 속눈썹,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커다란 앞니와 짙은 눈썹,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과 자그맣게 부풀어오른 가슴, 갈빛의 유두와 움푹 들어간 작은 배꼽, 머리칼과 같은 갈색 거웃과 그 틈으로 언뜻 비추어지는 여성기의 모습은 투명한 액체 속에 잠겨 다소 납작하게 보였으나 놀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사내는 한 번도 여자의 벗은 몸을 그토록 자세하게 관찰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시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투명한 관 속에 누워 있는 몸에서는 어떠한 생명의 징후도 느껴지지 않으나 낮을 쏘다니는 몸들, 옷과 분, 우울과 권태에 가려진 얼굴들의 조악하고 흐릿한 면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며 사실적이었다. 그들은 어지럽고 모호한 빛이 아닌 명료하고 가느다란 선만으로 그려진 세밀화처럼 보였다. 빛과 감정, 생명의 움직임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하고 정교한 선영들. 칙사는 그것들이 누구의 몸도 아니라고 했다. 아직은요, 하고 그는 덧붙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사내의 물음에 칙사는 아이처럼 장난스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당신 몸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당신들은 여왕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아셔야 해요. 우린 더 이상 처음 입고 나온 몸에 갇혀서 지낼 필요가 없어요. 옷이 낡으면 갈아입을 수 있듯 우리 몸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제 몸은 감옥도 아니고 본질도 아닌 시대가 오게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오? 하고 누군가가 사내의 물음을 메아리처럼 반복했다. 칙사는 촌구석에 사는 야만인들에게 플라톤을 읽어주는 선구자처럼 경건하고 참을성 있게 그들의 멍청한 물음에 대답했다. 숫자 말이에요.

숫자?

그래요. 당신네들은 숫자의 의미를 간과하고 있어요. 기껏해야 과일을 세거나 생선을 살 때 계산하는 용도 이외로는 숫자가 어디까지 번식해서 어디까지 진화해나갔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죠. 우리를 달까지 실어나른 것, 달에 기지를 세우고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그곳에 건설하고 몸을 온전히 담그지 않아도 마음껏 죽이고 죽을 수 있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낸 것도 당신들의 존재가 발산하는 열기를 인식하고 자동적으로 열리는 문의 움직임도 전부 숫자로 만들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쥐떼처럼 드글거린다는 사실을 난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아니, 대체 당신들은 뭘 보고 살아가는 거예요? 여왕님이 도착하고 난 뒤 생겨난 어마어마한 변화들이 대체 어디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모두 숫자로 만든 거라고요. 이제 당신들도 숫자로 만들 수 있다고요. 숫자는 마법적이고 신성한 언어예요. 우리의 자의적이고 불완전한 언어, 발성기관이 망가지면 제대로 발화할 수조차 없는 언어와는 차원이 다른 신의 언어예요. 숫자는 미신과 다를 바 없는 자의적인 연결관계로 사물을 지칭하는 법이 없죠. 숫자는 사물들 스스로도 잊고 있었던 본성을 되돌려주는 천사의 언어예요. 지상의 중력과 열기, 습기에 짜부러지고 곰팡이가 피어 더럽혀진 몸이, 제것이 아닌 이질적인 살과 이질적인 수열에 마구잡이로 뒤섞여 흉측하게 변해버린 냄새나는 몸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천상의 노래를 되돌려주는 거죠. 천체들의 음악, 완벽한 화성의 수적 배열, 천체들의 궤도와 원자의 구조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천체의 자그마한 모형이며 천체의 알레고리이고 또 동시에 천체인 셈이죠. 라이프니츠는 선각자였어요. 우린 더 명료하거나 덜 명료한 신을, 수라는 신을 반영하고 있는 존재들인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무엇이건-심지어는 저 자신의 무지까지도- 부정하고 보는 회의적인 습성에 따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칙사는 저 자신의 연설에 도취되어 그들의 반응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흥분에 찬 그의 목소리는 그가 무척이나 어리다는 사실을, 지저분한 수염으로 가리려 했던 그의 입매가 놀랍도록 매끈하고 부드럽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든 사물은, 세상은 하나의 확고부동한 수열이에요. 그걸 잊어버린 사물들이 빛과 대기에 현혹되어 자꾸만 모습을 바꾸면서 방황할 뿐이죠. 이전까지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모호한 언어의 대기만을, 동굴의 울퉁불퉁하고 어두운 벽면에 비추어지는 흐릿한 인영만을 세계라고 믿으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이젠 다르죠. 여왕님이 빛을, 숫자를 들고 나타났으니까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왜곡된 현상을 정갈한 본질로 되돌리고 번역해내는 거예요. 더 이상 비밀은 없어요. 우리의 본질, 세상의 본질은 더 이상 불가해한 신비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모든 것은 하나의 정합적인 수열일 뿐이에요. 당신들의 몸과 의식도 예외가 아니에요. 우린 당신마저도, 당신의 사유와 불안과 정념과 고통마저도 숫자로 번역해낼 수 있어요. 게다가 당신이 원하는 당신만을 남겨줄 수도 있죠. 수열의 경이로운 점은 무엇이든 한계까지, 하나의 숫자만 남을 때까지 분리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린 당신의 몸 전체를, 당신의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 병균, 당신의 대장과 정신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기생충과 당신의 머리를 맴도는 음악, 당신의 의족과 의수, 당신이 쥐고 있는 휴대폰과 의족, 의수와 의안, 악세서리와 옷까지 전부 한 번에 복사해낼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분리해낼 수도 있어요. 당신이 심신이원론을 믿는다면 몸-연장과 정신-사유를 분리해낼 수 있고, 정념과 이성을 구분 지을 수도 있으며 의식과 무의식, 꿈과 현실, 심지어는 낮에 꾸는 꿈과 밤에 꾸는 꿈까지도 분리해낼 수 있죠. 전자를 떼어내는 일과 똑같은 거예요. 무엇이든지 둘로 나눌 수 있어요. 조악한 이분법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건 차이를 사유할 수 없는 자들이 세계를 거대하고 확고불변한 하나의 축만으로 갈라내려는 그런 유치한 짓거리가 아니라고요.

우린 축 속의 축을, 그 축 속의 축을, 축 속의 축 속의 축을 계속해서 갈라낼 수 있어요. 거칠고 포악한 동일화의 작업이 아니라 오히려 섬세하고 치밀한, 극단적인 미분화 작업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거죠. 이제 우린 연속성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 끔찍하게 모호하고 축축한 대기를, 몸을 벗어던지고 원하는 만큼 순수해질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당신이 믿을 수 없고 당신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종양이나 암덩어리, 수포와 흉터, 심지어는 얼굴이나 다리, 팔, 손이나 귀까지도 당신의 존재에서 분리시킬 수 있어요. 더 해볼까요? 당신의 광증, 우울, 장애와 자살강박,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망상들, 당신의 입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여성기와 꿈 속에서 남몰래 죽인 뒤 혓바닥 아래에 숨겨놓은 작은 태아의 시신까지 모조리 절제해낼 수 있다고요. 피도 상처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기억도 욕망도 갈증도 절망도 손발톱을 잘라내듯이 간단하게 분리해낼 수 있어요. 우리를 따라다니는 지속적인 혐오, 인간의 본질이라고 믿어왔던 스스로를 향한 천착적인 증오마저도 떼어낼 수 있다고요. 안 믿기시나요? 증거가 필요해요? 당신 눈앞에 있잖아요. 당신들은 처음부터 계속 보고 있었어요. 우리가 숫자를 알아내면 무얼 할 수 있는지, 몸이 숫자가 되면 숫자도 몸이 될 수 있으며 의식이 숫자가 의식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숫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몸도 의식도 그 어떤 빌어먹을 것도 전부 창조해낼 수 있다는 걸요. 배양액 속에 담가놓은 몸들은 원래 누구의 것도 아니었어요. 그건 우리가 임의로 배열해놓은 숫자들일 뿐이에요.

그래서 뭘 할 수 있다는 거요? 사내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칙사의 두눈이 둥그렇게 부풀수록 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지껄이는 소리를 한 문장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숫자가 뭐, 행성이 뭐 어떻다는 건지, 숫자와 숫자 숫자 숫자 사이에 이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어휘들, 그리고 숫자와 숫자, 숫자 숫자.. 칙사의 말은 지금껏 사내를 둘러싸고 웅성거리던 세계의 전언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사내는 불가해한 말들은 철저히 무시하며 살았다. 찍찍, 찍거리는 울음소리를 밟아 터뜨리고 독을 먹이고 영원히 닥치게 만들면 그걸로 좋았다. 모두 그런 식으로 살았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모든 일이 바뀌었다. 사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찍찍, 찍거리는 빌어먹을 암호를 전부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찍찍, 찍거리는 건 사내뿐이었다. 씹팔 숫자가 뭐고 몸이 뭔지 알게 뭐란 말인가? 그가 일생을 앓아왔던 고통을 들을 수 없고 들릴 수 없는 무기력을 마치 종양을 떼어내듯 절제해낼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떨어져나가는 것은 어느 쪽인가? 찍찍, 찍거리는 사내인가 찍찍, 찍거리는 이웃들인가? 그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내일 것이다. 저들에게 찍찍, 찍거리는 소리는 오로지 사내에게서만 나오는 소음일 뿐이었으므로. 그들은 쥐를 박멸하듯 사내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몰이해를, 오로지 불가해한 울렁거림과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로만 이루어진 사내를 독살하고 말 것이다. 저 빌어먹을 애새끼가 하려는 건 분홍색 혓바닥을 가진 선인장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해부하려 하는 일이었다. 사내가 장애와 불가해성, 들쭉날쭉한 모호성을 뚫어내도록 몸을 내어주고 나면 무력하게 뚫려버린 두개골에서 뭉글거리며 새어나가는 건 누구인가? 죽음이 버리고 간 껍데기처럼 비참하게 남는 건 누구인가?

방주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묵은 짐을 버려야 한다고 칙사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사내를 버리고 가기 위해 사내를 데려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사내가 버려두고 가는 썩은 종양과 배설물, 와해되어가는 파편들과 찍,찍 찍거리는 미칠듯한 울음소리가 사내라는 걸 감춘 채, 그가 버려두려는 것은 사내뿐이라는 사실을 감춘 채. 숫자들의 유토피아가 칙사의 말처럼 정결하고 순결한 세계라면 그곳에 사내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을 것이었다. 사내뿐만이 아니었다. 숫자와 본질의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살아온 이들, 여기까지 몰려온 이들은 유토피아가 그들의 것이 아님을, 유토피아에 거주할 수 있는 주민들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데아와 현상의, 지상과 지하의 수직적인 구도에도 그들의 자리는 없었다. 자연을 특수와 시간의 영역에 밀어넣는 작업으로서의 역사에서, 현존하는 사물들을 무수하고 연속적인 분류의 체계에 밀어넣는 신의 계획에서, 색색의 유리구슬들을 그 색과 크기, 반짝거리는 정도와 무게, 경도와 생산지와 같은 무수한 유사성의 기준들에 따라 배열하는 작업에서 그들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었다. 숫자로 점철된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버려진 해변에 모여들어 혁명의 코뮌을 만들어냈으나 혁명주의자들의 나체 공동체도 그들의 자리는 아니었다. 벌거벗고 모여든 이들은 미친 듯이 서로 섹스하며 감염시키고 감염되고 통렬하게 죽어가는 액트업의 에이즈 환자들처럼 서로의 불완전한 육체를 만끽하려 했다. 그들은 수적 논리의 정교하고 단단한 벌집과도 같은 배열들로부터 자유로이 떨어져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껴안고 뒹굴고 젖어들었다. 그들은 오로지 몸만을 믿었다. 그들의 영혼과 마음과 고결함과 불운과 절망과 환희는 모두 조금씩 썩어가는 그들 몸이었다. 흘러내리는 살갗, 정합적인 수들의 구조 속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열띤 장소에만 자리하는 살, 그들의 뼈는 구조를 지탱하는 골조가 아닌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살을 꿰뚫어 관능을 더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들의 살은 뼈에 갇혀 구조의 포장지로 전락하는 대신 자유롭게 넘쳐흐르며 서로의 붉고 끈적한 살 속으로 젖어들었다.

그들은 육체가 앓고 있는 병과 고통을 온전히 느끼기를, 그래서 병든 육체로서 살아남기를 선택했고 메워질 수 없는 고통과 고통 간의 간극을 고대의 달뜬 연인들이 늘 그래왔듯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서로를 껴안으며 서로의 내부로 들어가려는 파괴적인 욕망, 태어남의 순간 잃어버린 몸과 몸의 연속성을 되찾으려는 갈망을 해갈하려 했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와 자본을 상징하는 장신구와 양복, 드레스와 구두, 시계를 모두 벗어던졌다고 해서 그들의 헐벗은 몸이 모두 평등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보다 아름다운 몸, 보다 기형적인 몸, 보다 관능적이고 보다 뜨거운 몸에 매혹되었다. 그러한 몸의 계급은 사회적인 지위보다도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것이었다. 타고난 범상함과 비참함, 추레함을 가릴 수 있는 옷도 없이 사내가 그들의 살내 나는 해변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나체는 어느 모로 보나 평범했다. 조금 비어져나온 아랫배와 여유증으로 유달리 축 늘어진 가슴, 가늘고 볼품없는 털이 듬성듬성 돋아난 허벅다리와 짧고 앙상한 종아리, 여드름 자국으로 점철된 등과 거북이처럼 깊은 주름이 팬 늙어빠진 목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희망을 바라고 돼지처럼 부드럽고 말캉한 살을 드러낸 채 활보하는 방탕주의자들의 해변을 찾아갔을 때 그에게 다가와 입술을 훑고 사타구니를 움켜쥐는 살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사내는 유령이 된 기분으로 저들끼리 붙어먹고 애무하며 핥짝거리고 뒹굴어대는 포르노 연극을 지켜보아야 했다.

어두운 객석에서 사내는 텅 빈 의자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그의 추레한 엉덩이가 짓누르고 있는 의자의 딱딱한 살갗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의 멀뚱한 시선은 연인들의 쾌락을 돋우는 습하고 짭조름한 바닷바람과 낄낄거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하얀 갈매기, 그들의 발아래에서 까끌까끌한 가려움을 일으키며 흩어지는 하얀 모래와 마찬가지였다. 사내는 결국 벌거벗은 짐승들의 원시적인 낙원에서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가야 했다. 그는 제 절망적인 미래를 예견하지 못하고 날뛰었던 일을, 새벽 무렵 해변의 외곽에서 다른 나체들과 함께 셔틀에서 내린 뒤 접어놓은 옷가지들을 얌전히 챙겨놓는 대신 차오르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얇은 드레스와 셔츠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던져버리며 미친 듯이 낄낄거리는 젊은이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을 따라 바다로 달려가 곱게 개켜놓은 옷가지를 내버렸던 일을 후회했으나 시간과 함께 떠내려간 옷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내는 다시는 입지 않기 위해 바닷가 멀리 떠내려보낸 셔츠와 바지-하다못해 바지만이라도- 찾아내려 외진 바닷가에 들어가 비참하게 팔을 휘저어댔지만 수중에서 몸을 섞으며 흐느끼는 돼지같이 매혹적인 살결들 외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벗어던진 껍질은 그를 비웃듯 먼 곳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다못해 남의 옷가지라도 훔쳐내기 위해 해변 일대를 죽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벌거벗은 몸이 매혹도 자연도 일상도 아닌 장소로, 벌거벗은 몸이 가장 비참한 지위를 갖는 곳으로, 나신은 그저 가난과 광증의 기호일 뿐 어떤 관능도 될 수 없는 한낮의 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영원-그러나 사내에게는 반나절조차 아니었던-과도 같은 찰나가 약속된 낙원으로 그들을 실어나른 셔틀버스는 오로지 그들을 이곳에 내려놓기 위해서만 들어왔으므로 같은 버스를 타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끔찍이도 긴 여행길을 걸어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늘어진 가슴과 축 처진 엉덩이에 달라붙는 시선, 작고 비뚤어진 성기에 들러붙는 눈길, 보기 싫은 주름으로 뒤덮인 그의 몸뚱이와 얼룩처럼 돋아난 피부병 자욱을 비웃는 눈초리에 시달리며 절망적으로 끈적거리는 검은 도로를 맨발로 걸어나가야 했다. 그는 누군가 제 몸에서 게워낸 오물을, 가래침과 구토물, 소변으로 살을 적시며 끔찍이도 길고 구불거리는 미로와도 같은 길목들을 지나쳤다. 패전국에서 포로로 끌고 온 코끼리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사내는 위풍당당하게 찾아갔던 대륙에서 진흙 폭탄과 질병에 시달리다 끝내 무력하게 패배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코끼리였다. 해변에서 그는 수치에 휩싸여 이리저리 날뛰어대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승리를 기약하며 건너갔던 바다를 다시 횡단해야 했다. 대륙과 대륙 사이의, 도시와 도시 사이의 검푸른 간극은 절망적으로 넓었다. 사내는 비좁은 나무 상자에 실려 쥐들의 오줌 위로 구르고 제 토사물을 되삼켜 꺽꺽거리면서 육신이 불러일으키는 멀미를 견뎌내야 했다.

그토록 바라던 주목과 오염의 순간에는 어떠한 관능도 없었다. 차라리 발기라도 했다면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흥분할 수 없었다. 식어빠진 오줌과 끈적한 침, 아스팔트에 갇힌 흙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고여든 썩은 빗물은 절망적으로 차가웠다. 사내는 미칠듯한 울렁거림을 느꼈다. 구토를 하고 싶었고 오줌도 누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오줌을 누고 싶었으나 제 오줌에 시꺼먼 죽은 피가 섞여나올 것 같은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자궁에 고여 오래도록 배출되지 못한 채 썩어버린 생리혈처럼 검은, 한없이 검은 피가 축 처진 성기 아래로 줄줄 흐를 것 같았다. 시꺼먼 오줌을 떠올리자 그는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구토를 하고 말았다. 그는 격렬한 흐느낌과도 같은 구역질을 억억거리며 제 토사물을 밟고 앞으로 걸어가야 했다. 갈무리하지 못한 변이 묻은 그의 궁둥이를, 끔찍이도 뜨뜻하고 역겨운 토사물이 질질 흐르는 그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낄낄거리는 아이들이 미칠 듯 두렵게 느껴졌다.

사내는 자신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과 환각의 세계조차도 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어디에서나 지긋지긋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망적인 방랑과 고독의 세월, 그의 몸 전체에 늘러붙은 미칠듯한 가려움증이, 구토감이, 배뇨감이, 그의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검은 피의 세월이 그의 생애 내도록 계속되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되고 있는 기호들, 죽은 채 떨어진 새끼 비둘기와 누렇게 변한 이를 달싹거리며 쓰레기를 줍는 걸인의 굽은 등, 머릿속에서 신경질적으로 울려퍼지는 찍찍, 찍, 찍거리는 소리의 의미를 그제야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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