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과 혁명의 바깥의 물방울

베푸는 눈, 수치를 가르치는 눈, 응시만을, 환각만을, 보이지 않는 것만을 내버리고 떠나가버린 눈.

대지의 내장 속에서 피어난 초록이 배설하는 공기를 들이마시고 또다시 배설하며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지만 기실 아무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비참하게, 무엇보다도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싶었고 상처받고 싶었다. 살해하고 상처주고 싶었다. 죽음보다도 치명적인 상처를. 끝없는 잠보다도 고약한 고통을 발명하고 싶었다. 죽음과 절망의 창조주가 되고 싶었다.

그들을 지휘하는 사내가 결과적으로는 백인-남성이며 우주의 패권을 잡을 코코펠리 혹성의 시민이라는 사실, 한때 성공한 마술사였으며 마술이 실패한 이후에도 먹고사는 일에 크게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하릴없는 공상에 매몰되어도 괜찮을 정도로 넉넉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는 여자와 아이와 노인과 유색인종들의 고통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도 지금 그가 그들을 진두지휘하며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군인들은 그에게 뒤로 물러서서 그들 대열의 가장 끝에서 함께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사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백인-남성이 타자들의 진두지휘를 맡을 수는 없다는 사실, 그가 아무리 고독하고 소외되었어도 그들 결속의 한가운데에 위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가 또다시 지배받는 자의 위치에 놓인 그들의 고통에 공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에 고통에만 몰두하고 있었기에 타자들이 사내를 어떻게 느낄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사실 스스로의 고통에만 침잠한 것은 그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장기들처럼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패자들의, 파괴자들의 물결 속에서 함께 움직였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본질적으로 소외된 것이었기에,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이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몰두 자체가 서로에 대한 소외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들을 결속시키는 무언의 끈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은 실패자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그 순간 누구보다도 잔혹한 학살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강력한 물결이었고 무엇보다도 지배적이고 무엇보다도 폭력적이고 무엇보다도 퇴폐적이며 무엇보다도 부도덕한 악의 행렬이었다. 그들은 타자를 살해하는 타자였고 결국엔 동화시킬 수 없는 죽음들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리는 죽음들이었다.

사내는 어떤 계시처럼 그에게 다가든 문장, 미행자-실종자에 대한 문장을 기억하려 몇 번이고 되뇌었으나 지긋지긋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을 때, 그가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던 어휘들은 모두 조각조각 흩어져 그의 눈과 귀, 입술 틈새에서 빠져나가고 말았다. 그는 치명적인 존재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사내는 지독한 서글픔에 손가락들을 펼쳐 그의 틈새에서 빠져나가는 황홀한 문장들을 어떻게든 몸 속으로 밀어넣으려 안간힘을 썼다. 일순 그는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고 그가 그토록 갈망하고 그를 그토록 괴롭히던 것이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꿈에서라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그를 그토록 안심시킨 문장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사내는 그 문장을 이루던 신비로운 어휘들의 배열이 그에게 또다시 마약같은 이완을 가져다줄 것임을 확신하며 귀와 코, 입과 눈의 틈을 틀어막으려 애썼지만 그리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틈이 너무 많았고 아니, 이제 차라리 그는 오로지 틈만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여겨졌고 이제는 그 문장이 무엇이었든 손쓸 수 없이 갈기갈기 찢겨져 복구할 수도, 다시 그를 조심스레 잠재울 수도 없으리라는 짐작이 점점 그를 압도해왔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원점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지독한 갈망은 끝내 버리지 못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따위 삶이 끝까지 계속될 것이며 끝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은 초자연현상을, 기상현상을, 천둥번개와 가뭄과 호우를 묵묵히 받아들이듯이 유령들의 폭동을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이방의 언어로 부르짖는 호소는 그들에게 어떠한 감동도 줄 수 없었으며 그들을 설득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물론 유령들 역시 주민들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대화와 사교의 현장으로부터 쫓겨난 소외된 언어들이었으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언어의 오랜 부조리를 붉은 피와 살육으로 드러내는 일뿐이었다.

전등, 초상화, 실린더, 창문, 교회 종탑 아래로 사람을 밀어내고, 짐승들의 발을 자르고, 도착적인 살해행위, 성기에 총검을 쑤셔넣고

인위적인 사고사들.

한때 관념들의 의미로서 세계를 단단하게 지지하고 있던 사물들, 나뭇잎과 유리창, 떡갈나무 의자와 식탁, 리넨 셔츠와 침대 시트는 모두 폐허로 무너지고 이제 남은 것은 제 유령 같은 반영을 들여다보고 있는 추상적인 어휘들 뿐이었다.

나무를 무참히 베어내고 사람을 난도질 하면서, 건물에 방화를 하고 쓰레기통과 우체통을 두들겨 패면서, 차창을 깨뜨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가차없이 망가뜨리면서, 풀과 고기, 사람과 무생물, 자연과 인공물의 구분 없이 모든 것에 평등하게 깃들어 있는 스피노자의 자연신처럼, 사이보그들의 기계장치 신처럼 모든 것을, 세계를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난장 속에서 코코펠리의 군인들은 타들어가는 나무이고 싶었으며 임부의 배를 걷어차는 시인이고 싶었고 임부의 뱃속에서 뭉그러진 고깃덩이가 되어 죽어버린-그리고 처음부터 뭉그러진 고깃덩이었을- 아이가 되고 싶었으며, 살육하는 모든 것, 살육당하는 모든 것이고 싶었다. 환자용 간이 침대에서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져내려 잘 펴지지도 않는 다리를 비참하게 질질 기며 소용도 없을 도망의 활로를 찾아가는 환자이고 싶었고 그의 가느다란 다리를 군화로 짓밟아 부러뜨리는 학살자이고 싶었다. 그들은 모든 것들을 공평한 방식으로 파괴하고 살해하였다. 그 끝은 그들 자신의 죽음이 될 것이었다. 아니, 그들 자신의 죽음마저 필요 없을지도 몰랐다. 이미 그들은 수차례, 수십 차례 자살하고 있었으므로. 세계에 대한 파괴는, 미지에 대한 파괴는 그들 자신에 대한, 이곳 낯선 혹성에서의 삶에 대한, 미래에 대한 파괴와 마찬가지였으므로.

폭도들은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검은 숲과 함께 타들어갈 준비가, 본질의 불완전성을 깨달은 신처럼 자연이 아닌 역사로 전락할 준비가. 완전히 망가져버릴 준비가. 그러나 혼돈의 힘은 갈수록 미약해졌고 그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지쳐갔다. 어쩌면 그들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못한 게 아닌가? 검은 숲은 처음부터 검었고, 짐승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를 도륙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행한 것은 자연과 질서에 반발하는 파괴행위가 아닌 자연에 대한 지극한 순응의 기도행위가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행하지 않는 것인가? 행하지 않음으로써 행하는 모든 일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선택하는 모든 기회들, 살지 않음으로써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그들의 내부에서 진창처럼 뒤얽히고 있었다. 나무들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코코펠리 군인들 중에는 육식주의자도 있었고 채식주의자도 있었으며 닥치는 대로 아무것이나 먹는 이도 있었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이도 있었다. 나무에 대한 살상 행위는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자학 행위였고 누군가에게는 포식을 위한 사냥이었으며, 목수들에 대한 살해는 누군가에게는 동족의 살해였고 누군가에게는 나무에 대한 복수였다. 갖가지 상처와 살해, 욕망과 평화, 복수와 갈망, 정의와 퇴폐가 뒤얽히는 가운데 그들은 시뻘건 불을 놓았다. 그들이 파괴할 수 없었던 작고 가느다란 풀들이 서로에게 암과 같은 독을 나누어 주었고 불은 서서히 숲 깊은 곳까지, 그들에게 드러나지 않던 숲의 내장까지 번져갔다.

문학은 선을 향하는 걸음이라지만 대체 무얼 선이라고 하는지 선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선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인 모순이 아닌지 하는 해묵은 의문은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그저 걸었고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지향점이 선인지 악인지도 알수 없었다. 길은 어디에도 없었고 어디에나 지긋지긋하게 있었으므로. 마치 성으로 연결된 곳곳의 보이지 않는, 그리고 보이는 수천개의 통로들처럼. 간혹 드나들 수 있으나 언제든지 드나들 수는 없는. 언젠가 하찮은 이유로 들어갈 순 있으나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들어갈 수 없는, 절실하지 않은 자에게만 개방된 기회의 통로처럼. 절실한 자에게는 냉혹히도 문을 닫고 속을 걸어잠그는 문들처럼.

그들은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정의의, 판관의 어법이 아닌 부정과 모호함의 미로 같은 언어만으로 이야기했다. 그들의 파괴 행위는 이미 정립된 세계의 자잘한 벽들, 사물과 어휘를 모두 으스러뜨리는 새로운 언어-부정의 어법의 창조극이었다.

욕망의 대상이 없듯 파괴의 대상도, 그들이 무너뜨리고자 했던 정의와 논리의 언어도 근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도저한 깨달음에 사로잡혀, 그들은 검은 바다 위에서 몽롱하게 흔들리는 고기잡이 배의 등불 같은 눈을 껌뻑거리며 불타는 안개 속을 헤매었다. 그들은 유령을 살해하는 헛된 몸짓으로 거울 속 허상들의 목을 조르고 그들의 투명한 피부에 불을 질렀다. 타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다른 혹성 또한 그들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는, 그들도 만질 수 없고 소리를 주고받을 수도 없는, 그들의 혹성에는 어떠한 자리도 가질 수 없는 먼 별이나 유령과 같은 존재라면, 그들은 이 유령의 땅에서 대체 무엇을 파괴하고 있는 것인지. 결국 그들은 처음부터 이해할 수 없었던 외지인의 언어만을 무참히 부러뜨리고 있었을 뿐이었고, 가늘고 붉은 목을 아무리 부러뜨려보았자 그들 자신의 모어는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의 고향 도시도, 여왕도, 그들을 실어나른 버스도, 군대도 무엇도 부수지 못한 채로 그들은 대체 무엇을 그토록 광폭하게 부수어댄 것인지. 그들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로, 오로지 도래할 깨달음과 환멸의 순간을 미루기 위해 그들은 밤새도록 파괴의 행위를 이어나갔다. 습관적으로 삶과 걸음, 식사와 호흡을 이어나가는 무수한 생물들처럼,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이해하지 않기 위해 독과 같은 공기와 음식, 피로로 명료한 생각을 이지러뜨리는 동식물처럼. 그러나 그들은 이미 치명적인 이해의 한복판에 속해 있었다. 무엇이든 부재했으며 그럼에도 그들은 이 부조리 속에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 인식과 의식, 감각보다도 확실한, 유일하게 명료한 하나의 관념을.

서둘러 끝을 내야 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의 끝, 그들이 손수 놓은 불이 메시아처럼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약속된 미래는 한갓 꿈처럼 그들을 스쳐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들이 놓은 불에게마저 소외되고 나면, 그러면 그들은 더 이상 무얼 버티고 무얼 기다려야 하는가?

아무것도. 당신들이 기다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사내는 제가 겁탈한 소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너무도 지쳤다. 스스로 불 속으로 기어들어갈 여력조차 없다. 다만 검은 숲을 붉게 더럽힌 불이 그들에게까지 다가오기만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자살, 자살, 자살 오로지 자살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살뿐, 그들이 해야 하는 일, 그들이 진작에 했어야 하는 일, 하지 못하고 지금껏 호흡과 울음, 비명과 애걸, 독백으로 회피하고 있었던 일, 자살, 스스로 끝을 맺는 일,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실패하고 말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그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을 미루어두고 평생 유예된 순간만을 떠돌며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평생. 자살을 대체하는, 그러나 결코 자살을 대체할 수는 없을 호흡과 울음, 비명과 애걸, 구토와 배설을 반복하며. 이젠 제발 끝이 도래하기를. 그들은 숱한 자살자보다 고통받았고 외로웠으며 죄를 지었고 벌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자살의 성공여부 역시 그러한 전제조건과는 무관하다는 것,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인과의 법칙은 모두 지어낸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게 아니라면 그토록 죽음을 갈망하는 그들이 아직도 자살하지 못하고 살아있을 리가 없으므로. 그들은 또 실패하고 말 것이다. 실패에 진력이 나고서도 그들은 계속해서 갈망한다. 진창이 되어버린 머리가 깨진 유리조각처럼 산산조각난 영혼이 한밤의 개에게 모두 물어뜯길 때까지, 더는 비참해질 수 없는 지경까지 휑하게 비어버릴 때까지.

이제 돌아갑시다. 쥐떼처럼 우글우글 모여 있던 살의 점들 사이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군인들은 밤과 비에 젖은 연약한 아이처럼 공포에 떨며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좋은 거요? 정말 그걸로 되었소? 하고 누군가 물었지만 군인들은 그저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된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그걸로 된 것이 아니라면 안된다. 그러한 서글픈 문장들만이 그들의 그림자 사이로 떠다니는 모양을 그 자리에서 우글거며 떨고 있는 모두가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끔찍하리만큼 지쳤고 이젠 무엇이든 그만두고 싶었다. 파괴도, 고독도, 갈망도, 절규도, 원망도, 실존도, 삶도, 심지어는 죽음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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