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의 물방울

어쩌면 네 죄는 글일지도 몰랐다. 네가 견뎌야 하는 실존을 네가 낳은 글들도, 너의 환상들도 감내해야 하는 걸까? 넌 네 환상들에 실존의 죄를 지우고 있는 것일까? 죽음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망각의 얼굴 가까이 기어간 이들이 자신의 글을 모두 불태워달라고 한결같이 부탁했던 것 역시 베가 낳은 아이의 실존을 짊어지고 옥상에서 함께 뛰어내려 산산조각난 거울로, 누구의 실존도 생명도 짊어지지 않는 파편으로 부수어버리는 어미들과 같은 심정에서 나온 필연적 귀결이었던 것이 아닐까? 망각을 위해 잊히기 위해 기다림의 저편에서 기다림을 품은 채 태동하고 있는 망각의 기억을 위해, 너희는 잊고 또 잊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더는 잊히기 싫어 써내려간 너희의 실존조차, 망각에 대한 글조차 모두 태우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너희의 살갗은 이미 그 하나뿐인 통로를 향해 경계도 잃고 타들어가고 있는데.

너희는 슬픈 척조차 하지 않았지. 서로를 위해 울어주는 척조차. 유령은 울 수 없으므로. 유령의 몸에서는 눈물이 흐르지 않으므로. 유령은 몸조차 없으므로. 유령은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니므로, 유령은 한없이 유동하며 공간없이 살아가는 기억일 뿐이므로. 그러므로 유령이 되기 위해 너희는 기억을 고쳐써야 했다. 텅 비어버린 흉측한 유년의 개념을 채워넣어야 했다. 살아볼 수 없는 이야기로, 앓아볼 수 없는 고통으로.

네가 내 손에 손가락을 얽고, 몸을 잊고, 물질을 잊고 오직 하나의 목소리로, 서로의 나선형 매듭 사이에 얇은 피부를 출렁이며 겹쳐오는 음계들로, 물질을 입고, 몸을 입고 서로를 멀미 앓는 날이 왔더라면.

진실을 표상하던 어휘들, 무언가를 믿게 만들었던 어휘들이 있었다.

어휘는 투명하지 않다. 너희가 지상에서 조금이라도 발을 띄우기 위해 목을 매달아야 할 어휘의 직조물은 다른 무엇보다도 지상에서, 지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너희의 환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상에 연 닿아 있는 그 어휘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너희는 삶에 오염된 언어로 죽음을 논하려 한다.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죽음, 그래서 더 간절한 죽음을. 하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삶도 마찬가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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