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자살의 물방울 2

선생의 가죽이 그녀를 굽어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주름이 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하는 검붉은 가죽. 너는 왜 사진을 찍느냐고 묻는 목소리. 소녀는 사진을 찍는 일을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었음에도, 사진을 제출하라는 과제, 명령과도 같은 선언은 오로지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대신, 잊고 싶어서요, 하고 말한다. 잊고 싶어서.

너는 퍼포먼스를 하려는 거니? 사라지고 싶다고? 움찔거리는 가죽주머니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기묘한 목소리.

아니요. 사라지는 건 퍼포먼스여야 하나요? 퍼포먼스가 아니면 사라질 수 없나요? 퍼포먼스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나요? 난 그저 잊고 싶을 뿐이에요.

소녀는 스스로 내뱉는 말이 제 속의 깊고 엷은 겹들을 베어내는 것을 느낀다. 사라짐, 그것은 더 이상 그녀의 말, 그녀의 욕망이 아니다. 그녀는 꿈 속에서 물을 찾아 돌아다니며 비명을 지르는 미친 개의 광증을 듣듯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의 절망적으로 편평한 표면을 마주보듯 그녀로부터 떠나간 사라짐을, 낯설고 위악적인 욕망의 반영을 듣는다. 사라지고 싶어서, 그것은 소녀에게 불가능한 욕망이다. 그녀는 아직 어떠한 현상으로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녀는 사실이 아니므로. 아무도 그녀를 보고 있지 않고 지금 그녀에게 불가해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진 교사조차도 기실 그녀의 악몽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녀는 사라질 수 없고 사라짐을 욕망할 수도 없는 것이다. 사라짐에 대한 그녀의 욕망은 지독히 모순적인 것이다. 그녀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으므로. 사라짐을 위해 선재되어야 하는 가시성의 조건을 만족한 적이 없었으므로. 텍스트와 텍스트, 우주와 우주, 환상과 환각을 횡단하는 내내 그녀는 혼자였는데, 그녀의 가상은 현실의 반대항이 아니었고 현실은 가상의 반대항이 아니었으며, 늘 같은 문장들, 늘 같은 테마, 늘 같은 어휘와 담론 사이에 그녀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그녀는 무엇을? 그녀는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사라짐 자체가 아니라 사라짐에 대한 욕망임을 인정해야 한다. 유년에 대해 글을 쓰면서 유년을 오염시키는 작가들처럼, 퍼포먼스에 대한 글을 쓰면서 퍼포먼스의 영속적이고 일회적이었던 항구성을 와해시키는 비평가들처럼, 그녀가 찍으면서 동시에 파기한 죽음은 대체 무엇인가?

소녀는 교실 뒤편으로 걸어간다. 현실과 운명 사이의 매개항에 불과한 유령들은 그녀를 붙잡을 수 없다. 유령은 실존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유령에게도 물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유령은 근본적으로 비물질적인 존재이므로, 물질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는 정의상 유령일 수 없으므로-소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소녀의 사유 범위 내부에서 그녀를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지켜보지 않는 텅 빈 눈으로. 뒤집어진 눈동자로 제 머릿속을, 검붉은 내부를 찬찬히 뜯어보는 심해의 짐승들처럼.

여가수 요제피네의 찍찍거리는 음성, 그 가녀리고 천박한 울음소리가 얼마나 애틋한 것인지 소녀는 동의할 수 없다. 절망적인 운명의 기호를 타고나지 않은 이들에게 손금이나 별자리, 생년과 그에 상응하는 행성의 운행 따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소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평생토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생에 점멸하는 부조리하고 천착적이며 자폐적인 기호들, 소시민의 기호들, 조악한 기호들, 어떠한 대담성도 영웅성도 비극성도 갖추지 못한 통속적인 불행과 결핍의 기호들. 소녀는 위대한 철학자도 예술가도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거대한 암흑혹성의 궤도와는 무관한 빈곳에서 태어났으므로. 그녀는 거울 속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더러운 하수도의 거울에서. 껍질이 벗겨진 검붉은 설치류들의 시신과 고양이의 앞발과 비만한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기적적으로 생환한 노인이 산소결핍의 휴유증으로 평생토록 말을 더듬도록 만든 가죽 혁대와 새벽마다 한적한 동네를 돌며 푸른 먼지가 쌓인 우체통에 읽을 줄 모르는 글자들을, 그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했던 운명의 기호들을 꽂아넣어야 하는 임무를 마치지 못하고 열 살 남짓한 어린 소년소녀들만을 매음굴에 팔아넘기는 일당에게 납치되어 돼지를 참수하는 역겨운 칼로 잘려나간 우편배달부 소년의 성기와 종말을 앞두고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던 채석장 창부의 음부, 산란한 바퀴벌레들과 거미의 실패한 거미줄과 실패한 편지, 실패한 언어와 실패한 생과 실패한 죽음이 부글거리는 역겨운 거품과 함께 섞여들던 세계의 악취나는 심부에서 소녀는 태어났다.

대체 누가 실패한 삶의 조각들, 혹은 오물들만이 모여드는 진창에 소녀를 버렸는지 알 길은 없었다. 소녀가 아는 것은 다만 그녀가 태어난 거울과 거울에 비추어드는 무의미한 껍데기들의 기호들뿐이었다. 그녀는 개미떼처럼 거울 표면을 기어다니는 쓰레기의 기호들을 읽을 줄 알았으나 그것들의 의미는 알지 못하였다. 그녀가 안다고 믿는 개념들, 이를테면 증오나 절망, 고독이나 이념과 같은 불가해한 단어들이 대체 어디로부터 도래하여 그녀의 안에서 독특한 울림을 맺는 것인지 그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물과 가스, 폭발과 열기의 우연한 섞여듦으로 인하여 고유의 배열을 갖게 된, 그렇게 감각하고 사유하고 살아가게 된 고분자의 유기체가 그러하듯 그녀는 그저 그녀의 안에서 깨져버린 수면의 결정처럼 도사리고 있는 세계의 틀을 살아내었다. 르네상스의 예언자가 괴물이 되고 마녀가 되고 악마가 되었다가 다시 병자가 되어버리는 사이에도. 사라짐을 통해 존재를 완결짓는 것들이 그녀의 곁에서 그녀가 읽어낼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버리는-어쩌면 읽어낼 수 없는 기호, 포착할 수 없는 순간으로의 변화를 그녀는 사라짐이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다- 사이에도. 초경의 피가 뒤섞인 오줌, 알코올 중독자의 녹색 변과 절단된 토르소, 잉깔라진 얼굴과 썩어 문드러진 무화과 열매, 파릇한 잎이 도사리고 있는 가지들과 찢겨져나간 페이지들은 계속해서 흘러들었다. 그녀는 끔찍하게 외로웠지만 외로움을 보편의 고통으로 물질화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추상적이며 비현실적인 세계는 오로지 물질들 뿐이었다. 검게 썩은 치아와 하얀 머리카락, 죽은 벌레의 체액이 묻어 있는 휴지조각과 날카로운 플라스틱 파편, 그녀는 참혹한 존재들의 무게에, 그 견딜 수 없는 과잉의 세계에 하나의 물질도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출구를 찾지 못한 외로움은? 물질화하지 않고, 지독히 무용하고 역겨운 기호로 만들지 않고 고통을 발화하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비물질의 언어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유령의 언어로? 가상의 언어로? 그러나 물질 바깥의 세계도 비물질의 세계도 그녀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녀에게 언어는 언제나 단단하고 징그러우며 역겨운 살성이었다. 심지어는 사유마저도. 사유마저도 그녀에게는 물질이었다. 끝부분이 날카롭게 잘려나간 골프채와 고무부분이 닳은 휠체어와 침전물이 누렇게 늘러붙은 링겔 호스와 쥐의 거대한 앞니와 유행하지 못한 노래와 떨어져나간 귓바퀴, 그녀는 피와 고름의 악취에 절은 물질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재배열하며 사유하였다. 그녀는 먹지 않아야 할 것들, 푸른 독과도 같은 썩은 물질들을 게걸스레 삼켰고 그녀의 내부에 들어오는 동시에 썩어가며 변형되는, 그래서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정당성의 학적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질료들로만 사유를 했다. 이 순간에도 정합적인 의미관계를 맺지 못하고 순식간에 미끄러지며 무너져내리는 기호들. 누렇게 변해버린 원피스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어루만지는 손길, 눈부시게 하얀. 쥐의 멱을 부여잡듯 그녀의 음부를 꼬집고 물어뜯는 경악스러운 실체의 결핍.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고 외면하던 교실에는 그녀를 똑 닮은 유령들이 서성이고 있었고 그녀는 그들의 이름,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 소년의 이름조차 알 수 없었고 그에게 이름을 물어볼 수도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에게 이름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이름을 물어볼 수 있는 단 한 번의 순간, 한 번의 관용이, 오해가, 착각이 허용될 순간은 이미 무참하게 지나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순간, 사실 존재한 적도 없는 순간, 그녀는 이미 그의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사실은 그 말조차 거짓인 것이, 그녀는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고 기억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들의 이름은 오로지 그들의 더러운 몸, 조각조각 잘려나간 몸,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검은 토르소뿐이었는데 그녀에게는 삶이 없었고 조각조각 잘려나간 몸도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검은 토르소도 뭉그러진 성기도 무참히 찢겨진 음부도 없었으므로 그녀가 정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오로지 고독, 절망, 아직 실행하지 못한 자살에 관하여 말더듬 장애를 앓듯 계속해서 더듬더듬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으므로-오로지 반복 반복반복반복 재생산도 재출현도 아닌 반복반복반복반복 사영기하의 점근선처럼 영원히 가까워지고 멀어져가는 거짓된 깊이의-그녀가 머무르는 한결같은 문단 한결같은 텍스트와 한결같은 담론 하지만 고독과 절망과 아직 실행하지 못한 자살조차도 그녀의 운명이 아니었으므로 사실 그녀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녀의 존재는 그녀의 고독은 그녀의 절망은 아직 실행하지 못한 그녀의 자살은 그녀의 고통은 그녀의 존재는 모두 거짓이었는데 만약 당신이,

그래. 사라지는 것을 찍는 것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지기 위해서라고 말해도 너를 부정하지 않으마. 이미 부정되어 있는 것을 다시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하니까. 자, 보렴. 네가 찍은 형상, 벌써 사라지고 없는 형상, 결코 네가 될 수 없었던 사라짐, 새까만 잉크 같은 두 눈이 너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도 괜찮겠니. 사실 두 눈은 아무것도 들여다보고 있지 않지만, 그는 네가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사라짐은 네가 포착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그녀의 음부를 어루만지며 속삭인다고 해도 소녀는 그의 이름조차 알 수 없을 테고 그럼에도, 그러니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고 그녀는 말할 수가 없었고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조차 없었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더 이상 욕망하지 않는 물과 같은 아름다운 사유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강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듯이 빗물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듯이 늑대가 새끼 개를 잡아먹고 새끼 개가 새끼 쥐를 잡아먹고 새끼 쥐가 자벌레를 잡아먹듯 겸허하게 살아가는 동방의 언어, 가족의 사랑이 마을의 사랑으로, 국가의 사랑으로 세계의 사랑으로 확장되어가는 점진적인 언어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그녀의 것이 아닌 언어를 이해하는 방법을 그녀는 배우지 못했으며 자기지시적인 언어, 부재하는 그녀를 지칭하는 언어, 그러니 아무것도 지칭할 수도 지시할 수도 없는 텅 빈 언어, 그러나 텅 빌 수도 포기할 수도 겸허할 수도 감사할 수도 없이 남은 찌꺼기들의 언어, 잔존하는 악취의 언어, 그녀의 언어는 오로지 지독하게 끈질기게 남아서 이 악취의 구덩이로 흘러드는 창녀의 손톱과 살인자의 잭나이프와 빗물과 하수에 엉겨들어 더 이상 누구의 것도 아닌 혈흔과 뱀의 허물을 허겁지겁 아가리 속에 밀어넣다가 기도가 막혀 질식한 새끼 고양이의 작은 앞발과 푸들을 물어 죽인 허스키와 오리를 물어죽인 살쾡이와 길거리에서 입을 맞추고 있는 게이 커플에게 돼지의 피오줌을 뿌리며 모욕하는 에이즈환자와 너의 짐승성은 가짜이고 너는 가짜 짐승이므로 너의 수난도 고통도 가짜라고 울부짖는 거대한 입과 당신을 동정할 수도 연민할 수도 사랑할 수도 혐오할 수도 없다고 쩍 벌어진 살을 우물거리면서 비명하는 정육점의 소머리와 호스피스 병동에서 소란을 피우며 죽음의 세계로 날아가는 노란 풍선을 되찾기 위해 껑충껑충 뛰는 작은 아이를 사랑스럽게 지켜보다가 그 규칙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뜀박질이 갑작스럽게 어떠한 불협을 낳는 순간, 피아노의 성스러운 음계를 조율하는 명장이 검은 건반을 누르면서 갓난 아기의 기저귀에 코를 박고 수음을 할 때 그 달콤한 악취를 어루만지는 그러한 손길로 낡은 해머가 팽팽하게 조율된 세 개의 현을 두드리면서 내뱉는 신음에 몸을 기울이고 사타구니를 문지르는 순간, 견고하고 수학적인 층위가 추악한 관능으로 냄새나는 욕구로, 어린 여자아이들의 허벅지를 훔쳐보며 그녀들의 벗은 몸을,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싸구려 티셔츠를 상상하는 시선과 같은 기호로 변화-혹은 회귀-하는 순간, 노란 풍선을 향해 뻗은 검붉은 손, 맑은 침이 흘러내리는 검붉은 입술과 싱싱한 피를 흘리는 검붉은 무릎이 무언가를 위반하였다는 것을 불현듯 깨닫고 치밀어오르는 역겨움을 견디지 못해 아이에게 달겨들어 그 애의 뜨뜻한 입술을 틀어막으며 징벌하는 매섭고 차가운 눈빛을, 질시와 추방의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은 아이의 언어였으므로, 그녀는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은 연민과 사랑, 혐오가 잔존하는 불온한 언어로, 잊고 싶어서요, 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어떠한 철학이나 이념 때문도, 그녀를 경유하며 그녀의 무의식적인 사유를 통하여 행사되는 무참한 폭력과 권력들 때문도 아니고 숭고한 희생이나 투쟁, 결속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는데 그녀가 끝까지 황홀하고 역겨우며 횡설수설하는 언어로,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결국에는 누구도 상처줄 수 없는 기만적인 언어로, 사실은 누구라도 물어뜯고 누구라도 무참히 더럽히고 누구라도 울리고 누구라도 끌어안고 싶은 서글픈 언어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잊고 싶지 않아서요.

그녀가 아직 사라짐을 욕망할 수 없다는 것, 누군가 이 더러운 진창에서 끈질기게 반짝거리는 부조리한 거울에 손을 뻗어 쥐의 오물과 시신의 구균과 말파리의 알들이 드글거리는 불결한 살에 베어 그녀에 감염되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것, 그녀의 함정에 빠져버린 누군가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였으면 좋겠다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군가일 수 있었던 모든 텅 빈 시선을, 텅 빈 눈을, 텅 빈 기호를 잊고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하지만 교사의 무성적인 시선, 깨지지 않는 악몽, 넘쳐흐르지 않는 망상, 표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울, 환영도 내부도 없는 거울, 머리는 가리는 가면인 얼굴을 갖지 못한 고깃덩이.

교사가 그녀의 유일한 작품을, 그녀에게 가능한 유일한 언어를 승인해주기 전에 그녀는 교실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었다.

벌써 작품사진을 제출한 아이들은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수런거림 사이에 숨어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의 거울이 아무것도 비추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선뜩하게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가죽 풋내가 진동하는 이 어린 청년의 얼굴, 열정도 치기도 생기도 수치도 없이 한없이 무감하고 검기만 한 데스마스크와도 같은 얼굴, 눈부시게 창백한 검은 얼굴, 그녀에게 새로운 기호를, 정정의 기호를 요구하는 확고한 침묵. 결국 그녀는 메스꺼움을 이기지 못하고 갓 태어난 쥐새끼처럼 굳게 다문 입술을 벌리고 무언가 말을 하려 했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잊고 싶다는 말이 거짓이었다고, 사실 그녀는 기억되고 싶다고 읽히고 싶고 갈가리 찢기고 싶고 상처받고 싶고 분신하고 싶고 병들어 눈물 같은 소변을 질질 흘리면서 무대 위를 횡단하고 싶다고 사자에게 뜯어먹히는 어린 고양이처럼 찢겨지며 몽롱하게 변색되어버린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히치하이킹을 하여 남미를 횡단하다가 겁간당하고 살해당한 여자를 기억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 어떠한 진리내용도 갖추지 못한, 심지어는 사실조차 되지 못한 은밀한 잔존물들, 달빛이 미친 듯이 고통스럽다고 중얼거리는 배춧잎의 작은 속삭임처럼, 그녀가 찍고 싶은 것은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찍을 수 없는 것들뿐이라고, 그녀의 상실을 기념하는 한 장의 사진, 가시성의 본질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끊임없이 보이기를 염원하는 버려진 거울의 비가시성을 깨뜨려 가시성의 세계로 환원되는 순간, 그녀는 결코 볼 수 없는 순간, 거울 자신은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순간, 거울은 반영할 수 없는 가시성, n차원의 세계로 날아가는 개들을 환송하는 눈 먼자의 비애.

선생은 녹슨 가죽지퍼를 검게 그을은 손가락, 양초의 심지처럼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으로 열어내며 속살거렸다. 겨우 그따위 사진으로 과분한 비극을 바라서는 안 돼, 얘야. 아름다운 죄를, 누구라도 너를 돌아볼 수 있도록 참혹하고 비극적인 죄를 창조할 시인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는 그러한 숭고한 창조적인 정신을 보여야 하는 거란다. 네 지겨운 웅얼거림, 이제는 참을 수가 없는 통속성, 원치도 않은 위로를 강제하는 감상적인 울음소리처럼 과장되고 희극적인 애도의 통곡소리, 장례식장에 고용되어 곡을 하는 낯모를 소리꾼들의 애통한 비명처럼, 얘야 네가 하는 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가장 범속한 찍찍거림조차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니? 몰락을 축성하는 메시아의 날갯짓을 상징이 아닌 알레고리로 받아들일 때에만 호소할 수 있는 절망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겠니?

거울의 병든 피부를 긁어내리는 쥐새끼들의 더러운 발톱, 파상풍균이 끊임없이 분열되고 있는 수학적인 표상들, 십육은 십육의 제곱은 십육의 제곱의 제곱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 감각주의자에게 가리켜보이는 쥐의 검은 발톱을 가리키는 성현의 손가락밖에는 볼 수 없는 병든 눈, 아니 손가락조차도 볼 수 없는 먼 눈.

선생님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하고 말했을 때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는 아직 집을 찾지 못했다고 일러주는 목소리도 몽롱한 안개 속에 갇힌 채 손가락을 얽으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없었다. 어디서부터 당신은 나를 듣고 있지 않았던 건지, 언제부터 나는 당신을 상상할 수 없었던 건지.

소녀는 제 형상을 보고 까무라치며 발작하는 쥐새끼들로부터 더는 새로울 것도 없는 오물들로부터 현실과 다를 바 없이 해져버린 낡은 꿈의 닳고닳은 이미지로부터 눈을 돌린다. 그녀에게 있어 꿈은 더 이상 무의식의 신비로운 세계도, 자유로운 오성과 상상의 미학적 영토도 아니다. 꿈은 불가해하지만 결코 황홀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은 익숙한 진창의 연장, 이미 구성성분이 밝혀진, 제 비밀이 다 까발려졌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해묵은 먼지들의 얼룩일 뿐이다-소녀는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다, 별이 뜨지 않는 깊은 진창 속에서 과거도 미래도 약속도 기억도 모두 잊어버린 성좌구조, 그녀와는 무관한 구원의 약속, 그녀와는 무관한 배반과 그녀와는 무관한 원죄. 찌꺼기들로 이루어진 배우들은 어떠한 신적인 가상도 만들어낼 수 없다. 턱 위에 소녀의 음부를 매달고 거미의 엷은 다리들을 모아 듬성듬성한 머리칼을 심고 속이 훤히 뚫린 머리 속에서 두꺼비의 말캉한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는 선생의 기만적인 형상.

잊고 싶어서요.

소녀는 그의 끈질긴 침묵을 들여다보며 대답한다. 잊고 싶어서요. 고대의 여인들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우리라는 말은 달콤한 거짓이었고 우리는 유예된 기적이라는 속삭임도 거짓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알려진 자명한 사실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터무니없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한다.

거울 속에 묻힌 진실의 씨앗, 고귀한 음표와도 같은 씨앗의 전설은 모두 거짓이에요. 거울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얕은 표면일 뿐, 미래를 회상하는 기도를 통해 발견해내는 메시아의 자비로운 눈빛은, 망각의 깊고 찬란한 심연을 직시하는 메시아의 혜안은 지독한 원시여서 바로 앞에서 어른거리는 편평한 얼룩은 볼 수 없는걸요. 우리에겐 회고할 만한 추억이 없고 역사도 없고 자책할만한 죄도 없는걸.

선생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제 눈을 천박하게 늘어난 혓바닥으로 할짝거리면서 전율한다. 오로지 폭력으로 현현할 신의 존재를 기다리는 방탕주의자의 왜곡된 순교처럼, 신을 기만하고 신을 살해하기 위해, 신에게는 어떠한 금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신성한 동물을 도살하여 아름다운 연기 속에 피어올리던 제사장처럼, 인간이 신이 된 이후에는 천박한 짐승이 아닌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신과 같이 순결한 영혼을 가진 인간을 제물로 바치던 신도들처럼, 소녀는 괴물처럼 거대한 화물트럭에 깔려 으스러진 소년의 부재하는 검은 이빨을 딱딱 맞부딪히며 속삭인다.

내게 죄를 내려주세요. 죄를 지은 자만이 기도할 수 있는 해방을, 죄만이 구할 수 있는 구원을, 지복을, 쥐는 아직도 많아요, 선생님. 지금도 거울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매일같이 자라나는 날카로운 이빨을, 갉아내지 않으면 제 살을 뚫고 제 목을 찌르고 저를 살해할 날카롭고 가련한 무기를 이리저리 문대면서 죽어가고 있는걸요. 어쩌면 그들은 모두 필름에 맺혀든 검붉은 얼룩이 꿈꾸는 악몽일 뿐이에요, 선생님, 수난받는 동물의 인간성과 순교하는 인간의 동물성을 동시에 현상하는 비겁한 웅얼거림처럼 말이에요. 찍찍하고 울어보세요, 선생님. 당신이 내 실패한 언어를 받아들인다면, 신이 자궁을 쏟아내며 죽어간 여인들을 묽게 여문 무화과를 썩히며 말라가는 나무를, 소나무의 환부를 쥐어짜며 송진을 갈취해가는 무참한 손길과 선함의 개념을 공존하게 하는 신성한 모순을 범하였듯이 당신이 내 실수를 아무런 말 없이 순진하고 하얀 백지들과 함께 뒤섞어 교단 아래 서랍에 집어넣고 우리들을 모두 내보냈다면 말이에요 그러면 쥐의 죽음을 찍은 거뭇한 얼룩은 무의식의 세계로 시간성 바깥의 세계로 사라진다고 착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선생님.

호수를 둘러싼 검푸른 안개와 같은 소란 속에, 거울에 등을 담그듯 비밀스럽게 파묻혀 있던 남자아이가 고무줄을 총알 대신 장전해 놓은 나무총으로 그를 겨냥한다. 그는 갑작스러운 수치와 무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붉고 기다란 혀를 목구멍 안쪽으로 황급하게 밀어넣으며 주춤거린다. 검은 고무를 녹여내는 역겨운 화학제조공장의 냄새가 풍겨나고 교사는 소녀의 입술을 부드러운 어깨를 가슴을 배를 음부를 쓰다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입술도 부드러운 어깨도 가슴도 배도 음부도 없고 교사에게는 그녀를 쓰다듬을 손이 없으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을 찍으면 되는 거죠 선생님. 잊지 않을 것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죠 선생님. 왜냐하면 예술은 추억도 고백도 아니어야 하니까. 선생님, 하지만 어쩌면 나는 예술을 하고 싶은 게 아닐지도 몰라요. 선생님. 그냥 사진을 찍고 싶어요. 봐, 난 조리개를 다룰 줄도 모르고 조도를 맞추는 방법도 모르고 렌즈에 눈을 가져다대는 방법도 모르고 적절한 피사체를 구하는 방법도 모르고 사진으로 이루고 싶은 이념도 없고 찍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래도 사진을 배우겠다고 여기까지 온 건 사진을 찍고 싶어서예요. 또다시 떠내려오는 쥐새끼들, 들어올 수도 없는 입구를 긁어내리며 핥짝거리며 미친 듯이 수염을 움찔거리며 발발거리는 쥐새끼들. 선생님, 죽은 쥐가 아니라면 산 쥐를 찍으면 되는 건가요. 쥐가 아니면 나는 찍을 게 없어요. 쥐를 사랑하는 것도 연민하는 것도 증오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여기에는 쥐들밖에 없는데, 끝도 없이 번식하고 불어나고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살아가는 쥐새끼들, 죽음을 향해 기어들어가는 건지 삶을 향해 찍찍거리는 건지 노래를 하는 건지 유언을 하는 건지 절망하는 건지 행복해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쥐새끼들 쥐새끼들 쥐새끼들밖엔 없는데, 선생님 쥐새끼가 아니라면 무엇을 찍으면 좋은 건가요. 갈기갈기 찢어진 예수의 신체를 나누어먹는 성체성사 자리에서 먹는 게 성스러운 육신도 예술의 신성도 아닌 쥐새끼의 고기라면 말이에요. 선생님,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단합하는 게 아니라 처참하게 오염된 살로 젖어든 괴물들이 되어버린다면 말이에요, 선생님. 그때는 죽은 쥐를 찍어도 되는 걸까요.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수백 번 수천 번 뒈지고 다시 부활하는 살을 먹는다면 우리가 쥐새끼를 숭배한다면 그러면 내 작품은 예술이 되는 건가요.

선생은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얘야, 넌 예술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어. 추악한 것, 끔찍한 것, 더러운 것, 특별한 것, 소수적인 것이 예술의 정의는 아니란다. 넌 햇볕 아래에 나체로 드러누워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는 아이들의 동시가 역겹다고 말하지만, 돌틈 아래에서 흰 몸을 분신해가며 죽어가는 작은 벌레가 흘리는 녹빛 피의 역겨움과 그 역겨움을 구분하려 하지만, 얘야, 너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어. 위대한 작가들은 확고하게 선언하는 자들, 정치적인 자들, 평화주의자들, 채식주의자들, 투쟁하는자들, 반성하는 자들이지 너처럼 분열하는 자들은 아니란다. 넌 너보다 약한 것들, 사랑스럽고 연약한 것들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무엇보다 잔혹하게 찢어발겨 죽이고 싶지. 고양이의 목을 졸라 죽이는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황홀해하다가도 아무렇지 않게 고양이를 사자의 먹이로 던져주는 사육사의 모습에서 아무런 부조리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지. 갓난 아기의 통통한 분홍빛의 벌레 같은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으면서도 아무데서나 똥을 지리는 아이를 매질하며 훈육하는 아버지들을 보면, 얌전하고 예의바른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는 교사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지, 창녀들을 겁간하고 살해하는 남자들이 끔찍이 싫지만 어머니를 위하여 투쟁하는 남성들, 어머니의 덕목을 추앙하고 그들의 어깨를 주무르고 그들의 늘어난 유방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들의 못 배운 언어조차도 순결하다고 말하는 시인 남자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지, 무엇보다도 너의 죽음을 바라지만 상상도 할 수 없이 끔찍한 병에 걸린 부랑자가 네 부드러운 뱃속에 돼지 도축용 칼을 쑤셔박는다고 생각하면 두려워, 고기를 썰던 칼로 식물을 갈기갈기 도륙하고 싶지만 어린아이가 달팽이의 눈을 자르고 낄낄거리듯이 그렇게 망가뜨리고 싶은 것은 아니야.

선생님, 저는 제가 아닌 아무것도 죽이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가 나를 죽이기 전에 손을 뻗는 게 두려워요. 나를 두고 죽어간 자들이 역겹고 부러워, 내 사진이 아주 얇고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손금도 없는 손바닥을 무참하게 베어낼 수 있게. 까뒤집어진 속살이 영영 아물지 않도록. 아마 난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잘려나간 나뭇가지 깊은 곳에서 흰빛의 싹이 돋아나는 방식으로, 탯줄째로 버려진 새끼 강아지가 검은 쓰레기봉투에 담긴 채 삶을 애걸하며 우는 방식으로,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신음하고 회피하고 고통받는 몸이 살아 있다는 걸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죽은 쥐의 사진을 수천 시간 동안 들여다봐도 난 죽은 쥐가 될 수 없겠죠. 사진은 거울이 아니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요. 누군가 거울을 치워준다면 우리는 어디로 사라지게 되는 걸까요. 선생님 어째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는 거죠. 어째서 난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거죠. 이름도 추억도 미래도 없는 당신을. 모두가 발가벗고 찢겨지며 엉망진창으로 이어붙는 살들이라면, 질서도 규칙도 논리도 정합성도 연속성도 없이 마구잡이로 여기에서 저기로 엉겨붙으며 아물고 영원히 아물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괴물의 조직이라면 누군가 날 이어받아서, 선생님, 예술이요, 내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 명작도 모범도 아닌 예술, 자해도 감상도 아닌 예술을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요, 내가 좀 더 용감했다면 식물들을 물어뜯고 다녔을지도 몰라요. 이름도 모르는 풀들, 잎과 잎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넓거나 잎들이 빽빽하게 자라나는 활엽수나 침엽수들,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과잉의 생들을 하나하나 부러뜨리고 찢어발기고 베어내면서 도륙한 식물들의 사지로 머리를 장식하고 목을 장식하고 손목을 손가락을 발목을 장식하고 돌아다녔을지도 몰라요. 그러다가 누군가 날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 자리에서 소스라치면서 비명을 지르고 말겠죠. 선생님, 누구나 꽃을 꺾고 나무를 베어내고 소나무의 피를 받고 줄기를 갈아내어 만든 식탁 앞에 앉아 화분을 어루만지며 사랑한다고 말한다면요. 내가 비정한 손으로 헛구역질을 해가면서 뜯어낸 나무의 줄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식물 살해가 죄가 아니라면, 식물은 주권을 갖기에는 적합한 삶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그러므로 삶을 호소할 권리를 갖춘 주체도 누군가가 책임질 수 있는 대상도 아니며 말라뒈진 식물을 화장하는 것은 불법이고 그들을 버리기 위해서는 검은색 분리수거용 쓰레기 봉투를 구비해야하며 네 행위는 비인도적인 약탈도 범죄도 아니라고 꽃집 점원이 이야기해준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다른 누구도 나보다 먼저 시작하지 않은 범죄를 개발할 수 있을까요? 살인자의 담론에, 동물살해자의 담론에, 식물살해자들의 담론에 함몰되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어디에 있죠? 난 꽃을 사랑하는 여자가 꽃을 어루만지고 꽃을 뽑아내며 꽃을 착취했던 방식으로 꽃을 살해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난 나를 죽이는 방식으로, 내 목을 꺾어내고 내 머리칼을 쥐어뜯고 내 배를 쑤시고 내 내장 깊은 곳을 잘 벼려낸 칼로 한겹한겹 조심스럽게 잘라내는 여자의 방식으로 꽃을 죽이고 싶은 거예요. 신이 제 몸을 살해자들에게 내어주며 그들에게 죄를 가르치던 방식으로, 오로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신의 살해자라는 절망적으로 신성한 죄를 짊어지우던 방식으로.

소녀는 더 이상 거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소녀는 더 이상 거울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어미의 젖가슴이, 자궁의 냄새가 아름답고 황홀하다고, 동시에 절망적이라고 속삭이는 사내들의 욕망, 어미의 자궁을 갈라 고개를 묻고 싶은 소녀의 욕망과 고양이의 뱃속에 들어가 연약한 장기를 갈가리 찢어놓고 싶은 시궁쥐의 욕망, 죽음으로 삶을 정복하고 싶은 정치가들의 욕망과 죽음으로 삶을 노래하고 싶은 시인들의 욕망과 개미를 짓밟아 죽이는 소년들의 욕망과 흐느끼면서 죽은 개미의 시신을 입 속에 밀어넣고 시큼한 몸을 뱃속으로 밀어넣는 소녀의 욕망과 남의 개를 훔쳐 묻고 싶은 노인의 욕망과 개를 기르고 어루만지고 싶은 욕망과 개를 살해하고 싶은 욕망과 신비로운 문양이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거미의 항문에 입을 맞추고 싶은 욕망과 검고 북슬북슬한 벌레를 으스러뜨려 죽여버리고 싶은 욕망과 죽은 벌레의 사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싶은 욕망과 벌레의 사체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넣고 영영 잊어버리고 싶은 욕망과 심각한 피부병변으로 얼룩덜룩하게 뒤덮인 불구의 아이를 병실 창문 아래로 집어던지고 싶은 욕망과 불우한 생을 자애롭게 감싸안고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싶은 욕망과 비극을 살아간 여배우를 동경하는 욕망과 그녀를 창녀라고 부르고 싶은 욕망과 창녀가 되고 싶은 욕망과 화이트채플의 창녀들을 면도날로 잔혹하게 살해하고 싶은 욕망과 그토록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싶은 욕망과 나뭇가지로부터 떨어져나온 낙엽처럼 가볍게 사라져버리고 싶은 욕망과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셀 수 없는 개수의 거울조각을 떠다닌 달처럼 집요하게 남고 싶은 욕망과 개를 기르고 싶은 욕망과 개가 되고 싶은 욕망, 경멸받고 싶은 욕망과 학대받고 싶은 욕망, 상처주고 싶은 욕망과 무엇보다도 상처받고 싶은 욕망, 그 모든 욕망들이 정상화되지도 환원되지도 조화하지도 뒤섞이지도 않은 채 공존하지도 않은 채 그저 함께, 어쩌면 함께이지도 않은 채 각자의 신체, 혹은 관념, 혹은 무의식이라는 감실 속에서 지쳐버린 몸을, 정동에 시달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다면, 누구도 껴안아 줄 수 없는 몸, 누구도 정당화해줄 수 없는 몸, 누구도 이해해줄 수 없는 몸, 영원히 홀로일 몸들의 불온한 욕망에 대하여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소녀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 그녀는 순수한 백치일 수도, 정의로운 현학자일 수도 없으므로.

소녀는 그녀가 상상한 모든 범죄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며 동시에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의 언어가 어찌할 도리 없이 재현해내는 범죄의 부조리한 공격성, 그것을 지극히 천박한 것으로 만드는 이분법적인 결속의 장치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다. 니힐리스트가 되지 않고 신을 모욕할 수 있는 방법, 호모포비아가 되지 않고 게이들을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소녀는 알지 못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속일 수 있다면, 다만 그녀 자신이라도 터지지 않을 덫에 묶어놓고 끌어안을 수 있다면.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 현재가 존재한다고, 실상이, 사실이, 진실이 존재한다고 설득할 수 있다면. 그녀가 나고 자란 거울은 치명적인 흰빛뿐이다. 거울의 외벽을 할짝거리는 벌레와 오물들은 결코 그녀의 내부로 침입할 수 없다. 거울에는 애초부터 내벽이 없으므로. 그녀에게는 더러워질 곳도 손상될 곳도 훼손될 곳도 없으므로. 소녀는 처음부터 더러운 표면뿐이었으므로. 계속해서 삶의 방향으로 소녀를 밀어내고 있는 붉은 내장의 움직임.

선생님, 난 죽고 싶어요.

그래. 나도 죽고 싶단다. 하고 대답하는 앳된 청년의 얼굴. 수줍은 듯 절망한 듯 부드럽게 일그러지는 입술. 죽음을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니. 생명정치의 시대에서 죽게 내버려두는 생이 아닌 생, 의도치 않게 적합한 생의 구조를 지니고 태어난 생은 평생 살게 만드는 권력의 내부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니. 삶 그 자체가 정당한 힘이 되는 세계에서 삶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어떠한 잡다한 정보라도 알려준다는 인터넷 검색차에 자살방법을 검색하면 생명을 사랑한다는 캠페인 문구, 미성년에게는 부적절한 검색내용이라는 문구가 등장하지. 생명정치의 세대에서 정당한 삶의 형식 속에서 태어난 자들에게 죽음은 금지되어 있어. 내가 어릴 적에 우리 부모님은 죽음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내 입을 깨끗한 물로 벅벅 닦아내었단다. 죽음에 대한 발언은 내가 충분히 자라날 때까지 철저히 금기시되었어. 생식기나 성행위, 오물과 부랑자들에 대한 말과 마찬가지로. 칸트는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 계몽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미성년 상태는 타인의 지도 없이는 지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어. 그렇다면 자살이 미성년에게 금지되었다는 말은 계몽되지 못한 이들, 지성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의 이들에게는 자살이 부적절하다는 말일까? 비약을 생의 자양분으로 삼는 내 천성에 따라서 오독하자면 적합하게 지성을 발휘하는 상태에 도달한 이들, 계몽된 이들의 행위를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래, 정합적으로 해석하자면 오히려 반대의 결론이 나와야 하겠지. 계몽한 이들은 자살이 아니라 삶을 선택한다고. 올바르게 지성을 사용하는 이들은 세계시민의 윤리대로 생을 추구할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난 계몽되고 싶지 않아. 계몽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난 탈출하고 싶지도 않고 발전하고 싶지도 않고 잊고 싶지도 않고 성장하고 싶지도 않아. 난 동물과 자연을 혐오하면서 동물과 자연이 되고 싶어. 아이에 대한 증오를 잊지 않으면서 아이가 되고 싶어. 얘야, 네가 처음 쥐의 죽음을 찍어오던 그 순간부터 난 너를 죽이고 싶었단다. 하지만 선생님, 그건 당신의 욕망이 아니라 제 욕망인걸요. 우리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망상이니까. 아니야, 내 존재는 네게 의존적이지. 난 네 사진 속에 일그러져 있는 쥐새끼의 얼룩일 뿐이니까 네가 더 이상 아무것도 찍지 않는다면, 네가 거울이기를 포기한다면 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걸.

선생님,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더 이상 아무것도 반영하지 않는다면 저는 거울일 수 없겠죠.

다른 무언갈 반영할 수도 있겠지. 꽃나무나 달, 추억 같은 것.

여기에는 꽃나무도 달도 추억도 없어요. 죽어가는 쥐새끼나 덜 죽은 쥐새끼나 죽지 않은 쥐새끼나 죽은 쥐새끼뿐이죠.

사진을 찍어 오렴 얘야 어서, 죽은 쥐새끼든 죽지 않은 쥐새끼든 네가 적당한 사진을 찍어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하교할 수 없단다 아무도 아무도

벌거벗은 아이들은 쥐처럼 가무잡잡한 털을 서로의 품에 맞비비며 소녀를 노려보고 있다. 거울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더러운 이빨들.

어서, 얘야 어서, 너도 빨리 이곳을 잊고 싶잖니 벗어나고 싶잖니. 잊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 않았어?

가슴도 얼굴도 발도 상처도 없는 소녀의 거울을 끽끽거리며 미친 듯이 긁어내는 더러운 발톱들.

끝을 바라는 거예요 선생님. 더 이상 망각되지 않기를 열망하지 않도록 현존에 대한 부조리한 욕망을 잊고 싶다는 거예요. 잊고 싶다는 건 어쩌면, 부끄럽게도 그런 조악한 의미밖에는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난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으니까. 한 번도 읽힌 적이 없고 한 번도 소비된 적이 없고 한 번도 연민된 적이 없고 한 번도 경멸된 적이 없으니까 사라짐에 대한 소망마저 내게는 과분한 거예요. 그거 아세요, 선생님? 시궁창 깊은 곳에는 햇빛도 달빛도 하다못해 가로등의 인공적인 흰빛도 비추어지지 않아요. 빛 없이는 그림자조차 포착할 수 없죠. 그러니 당신이 보았다는 얼룩도 당신의 반영도 당신의 존재도 당신의 환상도 전부 거짓인 거예요. 어쩌면, 그래요 어쩌면 난 처음부터 거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요.

말 장난은 그만하렴 얘야, 사진을 찍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니. 죽음을 갈망하는 적합한 형식 없이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니.

이 비좁은 평면에서는 익사를 할 수도 추락을 할 수도 목을 맬 수도 손목을 그을 수도 머리를 내리칠 수도 할복을 할 수도 없는데 희미한 빛이라도 몽상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내 존재가 유령처럼 서서히 일어나서 죽음을 향하여 끌려가고 있다고 상상하려 하지만 사실 그 반대라는 걸 알아요. 죽음으로부터 깨어난 아이는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으면서 삶을 향해 걸어갈 뿐이죠. 애초부터 예정되어 있는 향일의 방향을 왜곡시킬 수는 없어요. 아무리 절망적인 진창에서, 쓰레기장에서 태어난 해바라기라도 어둠이 아닌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게 되는 법이니까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목을 매는 철학자도 죽은 살을 뜯어먹는 박쥐들의 좀먹은 날개가 아닌 천사의 투명한 날개를 몽상하는 법이니까요.

지하실이라고 했니? 너, 지하실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선생은 웃는다. 비열하지도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웃음. 열댓 살 정도 먹은 어린 소년이 소녀의 동그란 귓바퀴에 입술을 대고 속삭거린다.

너, 지하실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지하실이 어떤 곳인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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