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크로필리아 음악가의 물방울

할아버지가 삼촌을 얼마나 신뢰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적어도 이모에 대한 그의 사랑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할아버지의 연구실 바닥에 앉아 한없이 위로 떠오르는 금빛 먼지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할아버지가 유령에게 말을 건네듯 중얼거리곤 했거든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는 법이야. 그런 사람들은 꼭 누군가를 배신하게 되어 있지. 그게 저 자신이라 할지라도.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난 돌연 너무나도 무서워졌어요. 말의 내용에 상처를 받았던 건 아니에요. 내 눈을 바라보지 않고 금빛 먼지를 증류하듯 한없이 냉정하게 토해내는 그 말의 어투가 소름끼쳤어요. 난 차마 할아버지에게 당신은 사랑을 받고 자랐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지요. 할아버지의 사랑 역시 실패했다는 걸, 그가 온몸을 시간의 열기에 불태워가며 일그러진 피부로 부르짖었던 사랑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할머니는 마리 이모와 놀랄정도로 똑같은 생김새였어요. 할머니를 보았던 기억은 없지만 언젠가 할아버지의 벗어둔 바지 주머니 속에서 빛바랜 사진을 보았을 때, 사진의 아랫면에 찍혀 있는 날짜가 아니었더라면 난 마리 이모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고 착각했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마리 이모를 유독 아꼈던 이유도 짐작이 갔죠. 이모는 말하자면 할아버지의 지론에 넘치도록 부합하는 사람 같았어요. 그녀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았고 누구나 사랑할 줄 알았죠. 그녀는 온정과 신의를 호소하는 구걸꾼들에게 기꺼이 입맞춤을 베풀어 주었고 품에 안을 것을 원하는 여인들에게 기꺼이 포플러 꽃을 한아름 가득 내밀어 주었어요.

하지만 그뿐이었죠. 그녀는 사람을 미워할 줄을 몰랐어요. 누군가 그녀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은밀한 욕망에 그녀에게 침을 뱉고 소리를 질러도 그녀는 작은 비둘기처럼 까맣고 반들거리는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다른 곳으로 곧장 옮겨갈 뿐이었죠. 그녀는 누구의 머리채도 잡지 않고 누구에게도 욕설을 퍼붓지 않았어요. 이웃을 위해서 우는 일은 흔했지만 이웃 때문에 우는 일은 드물었죠. 아침 호수에 내리쬔 햇빛과 함께 자유로이 떠다니는 가녀린 포플러 뿌리처럼 그녀는 이곳저곳을 흘러다녔죠.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떠나가면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녀를 쓰다듬고 애무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들의 자리에서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한 번도 마리 이모의 사랑에 대해 충고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넘쳐흐르는 물을 받고 조금의 저항도 없이 그대로 고꾸라지며 맴도는 물레방아처럼 굴었어요. 마리 이모는 단 한 번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았고 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어요. 난 마리 이모가 우리 가문의 유구한 고독과 걸맞는 인물인지 여러번 내 자신에게 질문해보곤 했지만 끝내 적당한 대답을 찾을 수 없었죠. 아침해가 떠오를 때 숲속의 공주처럼 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달콤한 파스텔빛 캔디들을 받아오는 그녀는 다른 누구보다도 마을 사람들과 긴밀하게 결속된 것처럼 보였지만 새벽이 저무는 무렵 캔디에 섞인 비소에 꺽꺽거리며 울부짖는 이모, 할아버지가 정신없이 조제한 응급약을, 은빛으로 일렁거리는 거품을 잔뜩 들이키고 숨을 몰아쉬는 이모를 볼 때면 그녀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마을의 유령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죠.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포플러를 보고 그 꽃이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잖아요. 당장 다음날 그 포플러가 제 몸을 찢고 튿어져도 사람들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거예요. 그저 안타까워할 뿐, 아름답고 건강했던 포플러의 모습을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건 이모 자신도 마찬가지였죠. 그녀가 매번 꺾어오곤 했던 꽃들에 대해 그녀는 한 번도 죄책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목을 잘라 살해한다고, 꽃들의 예민한 살과 성기를 쥐어뜯는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태연하게 꽃다발을 만들어 다닐 수는 없었을 거예요. 사실 그녀가 직접적으로 해친 것은 꽃뿐이었죠.

칼 삼촌은 독처럼 그의 심장을 시꺼멓게 물들이는 질투에 시달렸어요. 그는 날마다 눈에 띌 정도로 수척해져갔죠. 그는 날마다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문장에 골몰하며 지냈어요.

검붉고 큰 사과는 얼어붙었다. 검붉고 큰 사과는 얼어붙었다.

그 문장이 무엇을 비유하고 있었는지는 나도 정확하게 알지 못해요. 그저 그가 작곡일기장에 지독한 악필로 휘갈겨 쓴 문장들이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오르내릴 뿐이죠. 그래요. 삼촌은 그가 증오했던 슈만이나 클라라, 사랑을 이룬 모든 연인들보다도 유명한 테러리스트였으니까요. 그가 울린 여인들은 모두 그의 노래를 부르며 죽었고, 그가 더럽힌 여인들은 모두 그의 노래 앞에 머물다 갔으니까요.

그러고보니 갑자기 생각이 나는 부분이 있어요. 난 오래도록 지하실과 다락을 혼동해왔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사실 우리 집에는, 그러니까 꼭대기층 지붕 아래에 있던 하나의 커다란 방에 불과했던 할아버지의 집에는 지하실 같은 게 없었어요. 우리는 커피집 주인이 소유한 건물에 세들어 사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우리집 건물을 가리키며 이게 우리집이야, 라고 말했을 때 아무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는 군요. 그애들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그건 누구의 집도 아니야. 그냥 카페일 뿐이지. 하고 말해 주었죠. 나중에 그 애들을 한 명씩 집으로 초대하고 나서야 그 애들은 내 말을 믿어 주었죠.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에 누군가의 가정집 같은 건 없다던 그 애들의 확고부동한 믿음을 잊어버렸죠.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늘어뜨렸던 귀여운 여자 아이도 초대한 적이 있는데, 그 애는 우리 집에서 같이 외계인들을 살육하는 게임을 즐기다가 시간을 함부로 다루었던 치명적인 연구 끝에 다리의 근육이 지나치게 노화되어 앉은뱅이가 되어버린 할아버지를 보고, 너희 할아버지 장애인이야? 하고 맑은 목소리로 물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난 그 애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죠. 그 애는 스스로도 멋쩍은지 조용히 게임을 마친 후 인사도 없이 돌아갔던 것이 기억나요.

그때 그 애는 그 애의 이름도 그 자리에 버려두고 갔죠. 그날 이후 아무도 그 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어요. 그 애의 부모조차도요. 그 뒤로 친구들을 우리의 다락에 데려오는 일은 없었죠. 우리집에는 항상 할아버지와 나, 칼 삼촌뿐이었죠. 진짜 마법사라뇨? 그런 사람은 없었어요. 말했잖아요. 우리 집에는 가사도우미조차 없었다고요. 언제나 할아버지와 나, 칼 삼촌뿐이었다고.

아, 그래요. 주말만은 예외였죠. 사실 주말엔 우리집이 사라진다고 믿었어요. 하늘을 가리던 우중충한 천장이 사라지고, 하늘 높이 드리워진 구름마저 사라지면 휑하게 드러난 투명한 허공에서 유령들이, 언젠가 우리집에 골목길에, 계단에, 잡화점에, 혹은 더 이상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느 장소에 이름을 두고 온 혼령들이 우리집으로 미끌어져 들어간다고 생각했죠. 마법사라는 사람도 그런 유령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죠. 아니라고요? 그는 우리와 함께 지냈던 가족이었다고요? 그가 마리 이모의 연인이었고 칼 삼촌의 유일한 경쟁상대였다고요? 칼 삼촌이 마리 이모를 질투하듯 그 또한 질투했다는 사실을 내가 이미 증언한 적이 있다고요?

글쎄요, 솔직히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난 당신이 증언을 들었던 그 시점의 사람과는 별개의 인물이니까요. 그래요. 시간 말이에요. 증언을 하는 매 순간의 내가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거예요. 그 정도는 당신도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당신의 유령을 만나면서, 여자의 노래를 듣고 이곳까지 흘러들어오면서 내 몸은 많이 지쳤고 그만큼 내 기억도 많이 왜곡되었으니까. 기억과 사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기억이 가지고 있는 세세한 시간들은 순전히 몸의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고대의 의사들도 알고 있었다는 걸 잊으면 안돼요. 물론 마리 이모에게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에요. 그녀는 그녀의 하나뿐인 연인을 위해 삶을, 그녀를 예속하고 있던 깊고 날카로운 갈고리를 맨손으로 잡아 뜯었으니까. 다만 지금 기억나는 건 그의 호쾌한 웃음소리와 나를 안아들 때 마주쳤던 깨끗한 눈동자, 넓은 이마와 두툼한 손가락 정도밖엔 없는 것 같아요.

그래. 그도 바이올린을 연주했었죠.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무척이나 고풍스럽고 아름다웠어요. 저녁식사와 함께 곁들어진 파티에 어울릴법한, 마치 물먹은 달처럼 상냥하고 유쾌한 음악이었죠. 이모도 그의 음악을 즐겨 들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테이블에 걸터앉아 장난스레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 기대어 그녀의 턱 아래에서 현의 진동에 따라 조금씩 떨리는 그의 활을 든 손을 어린아이같이 천진한 눈빛으로 지켜봤던 장면도 생각나요. 하지만 내게 그의 연주는 그리 인상적이진 않았어요. 결국 우리집의 비참한 말년을 지킨 건 칼 삼촌이었고, 죽음 이후까지 마리 이모를, 그녀의 흔적을, 박제조차 하지 않아 냉장고 속에서 조금씩 썩어가는 그녀의 살을 끌어안은 건 칼 삼촌이었으니까요. 그 사람의 이름조차 난 기억나지 않는 걸요. 아니요. 할아버지가 내게 그런 저주를 걸었을리는 없어요. 그 사람은 할아버지와도 잘 알고 지냈고 그에게 연금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그에게 애정을 가질지언정 그를 증오할 만큼 그에게 깊은 감정을 쏟지는 않았으니까요. 할아버지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건지도 모르죠. 그는 남들을 해칠 위인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는 천성적으로 우수를 타고난 칼 삼촌과는 결이 다른 인물이었어요. 그는 아무런 음심도 없이 마리 이모를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그녀를 질투로 괴롭게 하는 일조차 없었죠. 물론 그의 실종 이후 마리 이모가 보인 광적인 증세를 생각하면 그가 순전히 무해한 인물이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그건 그의 본의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리스 비극의 영웅들이 스스로 눈을 찌를 때 그의 곁에서 사막의 길을 함께 헤매었던 가여운 여인의 비극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오이디푸스 비극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그가 쾌락을 위해 눈을 찌른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그가 끝내 고통을 사랑하지 못하고 죽어갔다는 것, 그게 난 지금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는데 마리 이모의 연인이었던 그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에게는 자살의 징후나 자살자들이 공유하는 음울한 눈빛, 수척한 볼과 안짱다리, 다소 뒤뚱거리는듯한 걸음걸이, 급격한 침묵, 침묵의 어색함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스스로의 내장을 들여다보는 듯 가물거리는 눈짓과 같은 특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아마 그는 영웅들을 위한 모험을 떠나던 길에 사고를 당해 죽었을 거예요. 그는 우리와는 달리 세상 속에 단단히 붙박여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그만큼 세상과 친밀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나요? 칼 삼촌처럼 오래도록 우울을 앓은 사람들은 바깥에 지레 질려버려서 그를 무한히 받아주고 증오하며 내팽개치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부드럽고 어두운 제 속을 열어주는 스스로의 심연에 함몰되어 감히 바깥으로, 제 심연에 비하면 너무도 얄팍하고 볼품없는 바깥으로 눈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법이거든요. 짙은 우수를 숙명으로 타고난 자들의 외감은 둔감하고 그들의 내감은 곰의 벌집같은 콧속처럼 지극히 예민한 법이니까요. 바깥에 등을 붙인 채로 제 귀를 찔러오는 찬 바람조차 아리게 느끼지 못한 채 일생동안 파 놓은 가슴 속의 구덩이만큼 신비롭고 서글픈 장소는 없죠. 망자들에게 무덤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마 같은 이유 때문일 거예요. 깊고 아늑한 무덤일수록 죽은 자의 우울감과 어울리는 법이니까. 그들은 뜨끈하고 부드러운 흙의 속살에 매혹되어 감히 바깥으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겠죠. 살아서부터 제 속에 그런 무덤을 파놓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은 제 몸 밖으로 눈을 돌리기 쉽지 않죠.

그런 의미에서 칼 삼촌이 이모를 사랑한 건, 그녀가 무덤가 옆에 피어 있는 꽃과 같은 사람이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그 자신은 이모가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밝고 환한 사람이었다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 그 자신은 절대 경험하지 못할 계절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이모의 광증은 무덤, 깊고 비린 흙의 냄새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녀는 사실 그녀의 연인보다도 칼 삼촌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니에요. 난 이모를 미워한 적이 없어요. 칼 삼촌을 연민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그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가 그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혹시 내가 그의 아들이 아닌지 오랫동안 남몰래 고심해 보았을 만큼.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칼 삼촌 같은 사람이 자궁을 가진 사람과 관계를 맺은 적 있을 리 없으니까요. 벌들이 들끓는 꽃의 풍경은 그의 뱃속에서나 피어나는 풍경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꽃이 되지도 못했고 꽃을 찾아 나서지도 못했죠. 그는 이름조차 없는 꽃이었고, 심지어는 꽃조차도 아니었던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단 한번도 그는 이모를 깊이 안아본 적이 없을 거예요. 이모에게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이 일단락되고 죽음의 심연에 끌어안긴 그녀에게 삼촌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한 그는 이모를 바라보며 시름시름 시들어가기만 했을 거예요.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어렸던 내가 바라보았던 현상들이 세계의 전부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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