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거울의 물방울 1



노인은 거울에서 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숲에서 나고 자라면서 그는 한 번도 쥐를 본 적이 없었고 그의 집에는 거울이 없었다. 거울에 비친 쥐의 형상은 그에게 있어 이중의 불가능성을 지닌 것이었다. 노인은 그 부조리한 광경을 보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보더라도 보지 않았던 것처럼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소스라치며 놀랐다. 그의 뒷목에서 흥건한 땀이 찰랑였고 그의 심장은 오로지 투명하고 미끈한 액체를 더 많이 배설하기 위해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기 위해서만 뛰었다. 어째서 쥐인지, 어째서 거울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노인은 그를 둘러싸 왔던 비가시적인 응시가 불시에 대담한 얼룩으로, 무척이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현상으로 변모해버린 모습을, 그가 놓쳐버린 변화의 결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지금일지도 몰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글을 쓰며 늙어버린 소년. 사랑도 애무도 저주도 살인도 없이,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할, 언젠가는 그마저 읽는 법을 잊어버릴 사상의 피륙들과 함께 살아온 긴 시간 동안 그는 이 순간을 열망해온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서늘한 두려움은 그에게서 떨어져나가질 않았다. 그는 거울 속 쥐를 마주보고 싶지 않았다. 그 불길한 형상이 노인을 바라보고 끝이라고 선언하는 일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쥐의 아가리, 꽉 다물렸지만 언제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벌어질 수 있는 저 헐거운 구멍에서 하나의 어렴풋한 소리라도 흘러나온다면 노인은 가장 끔찍한 상상에 얽매이고 말 것이었다. 하나의 선언과 하나의 죽음, 하나의 종말과 하나의 선언. 그것들은 물을 애무하며 불의 곁으로 운반하는 공기나 불을 지상으로 끌어들여 물가로 번지게 하는 땅과 다를 바 없이 불가해한, 그러나 신적인 자연의 선험적인 구상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결속이었다.

노인은 언젠가 그의 팔뚝만 한 시궁쥐가 그를 낳았던 일을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다. 검고 축축한 젖을 쥐고 더러운 이빨로 푸른 먼지가 꽃처럼 돋아난 유두를 깨물던 일을, 이제는 잠들어야지, 하고 속삭이던 불길한 목소리를, 들리던 울음소리들을 들어서는 안 될 소리들을 기억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으며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쥐와 거울, 거울 속의 쥐, 수천 개의 시선으로 겹쳐지며 흩어지는 끊임없이 깊어지며 얕아지는 쥐의 눈동자. 소년은 어머니의 희고 부드러운 품을 떠올렸으나 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으며 그녀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증오로 긴장하며 서로에게서 가장 먼 방향으로 몸을 비틀어대는 식물들이 어찌할 수 없이 얽혀든 뿌리처럼 노인은 소년을, 소년은 볼 수 없었던 쥐의 얼룩을 증오하면서도 계속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그에게 도래한 것은 오로지 쥐의 끔찍한 시선뿐이라고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달래어가며. 지금에 와서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폭발적인 인력을 가지고 그의 시선을 오롯이 점유하는 것은 오로지 절망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너무 빨리 늙어버린 소년에게, 알려지지 않을 언어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노인이 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소년에게. 노인처럼 말하고 노인처럼 사유하고 노인처럼 감내하는 법조차 모르는 소년에게. 소년은 늙어빠진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입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뜨끈한 액체를 받아마셨다. 하지만 그의 시간은 너무나 늦게 흘러갔다. 십 년의 세월을 써내려가도, 오십 년의 세월을 써내려가도 그는 채 몇 달도 늙지 못했었는데 이제와서 그가 너무 늙어버렸다니, 그래서 쥐의 얼룩을 눈앞에 두고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라니.

돼지 창자처럼 시뻘건 햇빛이 쏟아져들어오고 있었고 창문 안쪽에서 종이들은 내밀한 피부를 맞대고 고요히 흐느꼈으며 느릅나무들은 미칠듯한 증오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보랏빛 쥐의 얼룩이 신을 감쌌던 수의에 묻은 얼굴 자국처럼 또렷하면서도 절망적인 시선으로, 그렇게 무관심하고 끔찍한 눈빛으로 거울 속에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쥐가 바라보는 것이 거울 속의 노인인지, 거울 밖의 노인인지, 아니면 그 뒤에 서 있는 아득한 미래의 형상인지 소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은 당장에 까무라쳐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주 작은 곤충들이 그러하듯 포식자에게 갈가리 찢겨 참혹한 고통을 겪기 전에 스스로 심장을 멈추고 적막하고 고상한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심장에 신경을 기울여도 그는 심장을 멈추기는커녕 미친 듯이 빨라지기만 하는 박동을 조절할 수조차 없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일생을 그러한 반역 속에서, 무기질적인 생명을 맹목적으로 염원하는 신체와 마찬가지로 죽음만을 맹목적으로 갈망하는 병 사이에서 투쟁해왔으므로. 결국 그가 머물러 온 곳은 죽음도 생명도 아닌 삶, 죽음에 대한 상념, 죽음에 대한 이미지로 오염된 생명의 기계적인 생리작용이었다. 죽음의 연극만을 연출하기 위해서 작동하는 무대장치와 같이. 그는 표상 속의 사형수들을, 어리거나 지나치게 어리거나 더 어리거나 덜 어린 소년들을 목매달 꿈의 극장에서 수없는 소년들을 살해하였고 수없는 소년들이 자기를 살해하는 사이 퍼져가는 조명, 순식간에 소년의 가느다란 목을 압박하는 거친 매듭, 발 아래에서 쓰러져버린 망가진 의자, 그의 앞에서 눈을 감고 죽음의 향취를 음미하는 소년들,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소년들, 오로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침묵할 뿐인 소년들, 조명에도 눈부셔하지 않는 감은 눈꺼풀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그의 글은 꿈의 표상과 관념들을 불가해한 방식으로 재현하며 동시에 전유하고 해체해내는 그림 속의 거울과도 같은 장치였다. 완벽한 재현을 표방하는 덫과도 같은 화폭 속에 놓인 거울, 눈부시게 폭발하는 빛을 정면으로 반사해내며 그 앞에 도래하는 모든 형상들을 뚫어지게 돌아보는, 비가시적인 사물에게 가시성을 돌려주는 척하면서 기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처럼. 돌아오는 것은 어떠한 형상도 아니었으며 그저 눈도 눈꺼풀도 동공도 없는 눈빛뿐이었다. 언제나. 지금이 아니고서도 언제나, 소년의 주위에는 한밤의 모기떼처럼 득시글한 거울과 시선들이 자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타자로 변한 소년들에 도취된 소년들은, 제 안의 타자를 살해하고 타자 안의 자신을 살해하는 황홀에 빠진 소년들은 거울 속 시선들이 쥐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소년이 끔찍하게 미숙한 노인으로 변해버리는 동안. 차마 노인이라고 스스로를 칭할 수도 없이, 노인의 육체와 노인의 정신을 예비하지도 못한 채 절망적으로 늙어가는 동안. 천공처럼 은밀하고 대담하게 열려있는 쥐의 형상은 한 번도 숨은 적이 없다는 듯, 다만 지나치게 자폐적인 생활만을 이어가던 소년이, 페이지와 페이지, 페이지 사이의 끝없는 흐름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던 소년이 그 집요한 얼룩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뿐이라는 듯 그렇게 노골적인 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년은 그 응시가 곧 자신을 죽이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노인은 끔찍한 응시 속에서 파멸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사형대나 올가미도 없이. 청중과 조명도 없이. 죽음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선, 끈질기고 집요한 응시, 비가시적인 응시, 재현을 파기하는 응시, 언어를 바스러뜨리고 눈과 시선, 보임과 표상 사이의 조응을 무너뜨리고 순수한 응시로만 남는 응시, 신의 얼굴처럼 성스럽고 불길한 응시.

소년은 문득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가 죽었고 농장은 폐쇄되었으며 소와 닭들이 풀려났고 냉장고를 가득 메웠던 핏빛 고기들은 텅 비었으며 한때 그를 따뜻하게 덥혀 주었던 양털 코트와 그의 작고 부드러운 발을 감쌌던 적갈색의 가죽 신발, 밤처럼 새까맸던 가죽 소파는 모두 압류당하였으며 한때 그의 일상이었던 사물들의 행방을 그는 알 수 없었다.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낡아빠진 문과 구멍 난 나무 바닥, 물기에 젖어 펼치지도 않은 빨래, 썩어가는 빨랫감들, 공포처럼 자라난 나무들과 새카맣게 바래버린 숲은 낯선 것이었다. 소년은 그와 함께 늙어간 사물들을 무척이나 새삼스러운 눈으로 둘러보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그는 늙어왔다. 늙어버렸다는 것, 노화를 자각하지도 못한 채 무언가를 지나쳐버렸다는 것은 시간의 속도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고 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거운 납과 끔찍한 독처럼 느리게, 지상을 투과하는 거대한 무게로 침잠하면서 서서히 서서히 절망적으로 서서히 기어가는 시간, 역겨운 불면과 이명, 보이는 모든 것들과 들리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통증을 앓는 시간이 그가 살아온 것이었다. 고통의 절정에서 몇 초를 일생의 길이로 느끼는 병자들처럼 그는 수없이 진통하는 사물들과 관념들의 기이할 정도로 늘어난 긴 순간을, 제 몸을 무차별적으로 찢어발기는 시간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의 부모가 죽었다.

소년은 황급히 간이 무대를 세웠다. 녹슨 못과 망치로 나무 판자를 덧대어 엉성한 단을 만들고 이름 모를 청중들, 언제나 그의 청중이자 배우들이었던 소년들을 불러모으고 전지가 닳아 깜빡거리는 조명을 켜고 한밤중의 성 안으로 들어가 연기자들을 깨웠다. 그의 방탕한 탕아인 부모들이 길고 무책임한 잠으로부터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하지만 연기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숨막히게 거대했던 침실도 침대도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없었다.

부모가 죽었다.

문을 두드리는 둔중한 소리, 망가진 초인종이 신음처럼 침묵하는 소리. 소년은 황급히 무대 단 끝으로 달려간다. 귀머거리가 종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점차 먹먹하게 번져오는 통증, 소년은 보이지 않는 허공을 열어젖힌다. 두 명의 배우가 그를 끌어안고 망자의 언어로 속삭인다. 널 오랫동안 기다려왔단다. 사물과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언어처럼, 다른 음절과의 접점을 잃어버리고 홀로 떨어져나간 비명처럼, 끊어지지 못한 울음. 어떠한 자의성도 가지지 못하고 자의식 없이 떠돌아다니는 별의 먼지. 소년은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들을 불변하며 흔들리는 무대장치로 이끈다. 소년은 소년들에게 신부의 베일을 씌워주듯 부드러운 손길로 올가미를 걸어준다. 귀머거리가 흐느끼는 소리, 눈먼 자가 황홀한 낯으로 허덕거리는 몸짓을 소년은 물끄러미 지켜본다. 아무도 아프다고 호소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이전부터 멀미처럼 물결치며 진통하는 아픔뿐이었으므로. 그들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으므로. 비가시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아픔, 평생 출현하지 않을 아픔은 착각일 뿐이라고 증언하는 웃음소리 사이에서 살아왔으므로.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 또다시 찢겨나가는 투명한 베일. 소년은 부모를 마중하며 그들의 앙상한 그늘을 끌어안는다. 다 자란 원숭이를 황급히 파양하듯 그들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그들의 발이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본다.

또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 아직은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호소하는 소리, 흉측한 어린 쥐처럼 그들의 품에 고개를 밀어넣고 울부짖는 소리. 하지만 넌 너무 자라버렸단다, 아가야. 게다가 우리는 오래전에 죽어버렸는데 죽기도 전에 출현한 유령처럼 죽음을 전조하는 태몽처럼 그렇게 모른 척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거란다. 너를 스쳐간 언어를 우린 끝내 배우지 못했는데 이제와서 너를 알아듣는 척 할 수는 없지 않겠니. 그래도 네가 정 원한다면, 정 원한다면 그렇게 원한다면, 너는 우리를 오해하고 우리를 살해하고 우리의 언어를 빼앗는 체 할 수도 있겠지. 오랜 세월이 지나고 돌아온 아들을 못 알아본 체하며 그의 금품과 생명을 갈취하고 마침내는 그들 자신마저 죽여버린 모녀처럼 네가 오해할 기회를 잡는다면 말이야, 하고 울먹이는 소리.

그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소년은 소년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어머니, 전 살인자가 아니에요. 전 손톱만한 하루살이의 시간에도 손을 담가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아버지, 전 당신들에게 보내야 할 편지가 있었는데, 당신들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적어보내야 했는데, 그걸 잊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말로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우리들의 관계에 관한 것도 아니고 세계에 관한 것도 아니고 현상에 관한 것도 진실에 관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아직도 편지를 받지 못하셨나요. 당신들이 날 낳기 전에, 당신이 아닌 자들이 내가 아닌 자들을 낳기 전에 무언가 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그건 고통에 관한 말도 아니고 죽음에 관한 말도 아니고 삶에 관한 말도 아니고 고독에 관한 말도 불안에 관한 말도 아니었는데, 오로지 장치에 관한 이야기, 폭력도 주체화도 동반하지 않는 이상한 장치, 처형도 살해도 집행도 규율도 없는 기묘한 사형장치에 관한 얘기였는데, 그러니까 제 말은 사형장치가 무대장치였다는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나요. 사형장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장치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어떠한 죽음도 진실일 수 없으므로 죽어가는 사람은 사실 죽어가지 않는 사람이고 죽어버린 사람은 죽어버리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메타포이며 살해하는 도구는 살해하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유비일 뿐이라고. 아니에요. 이런 걸 말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당신에게 부쳐야 하는 언어가 있었다고, 그건 아마 당신들이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심지어는 예감하지도 못한 이상한 언어일 텐데 혹시 당신들이 너무 놀라서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당신들에게 보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고, 어떠한 발음도 소리도 없는 말이요. 소리내는 법을 잊어버린 언어요. 오로지 기호만 남은 언어요. 발음도 없이 어쩌면 의미도 없이.

어머니, 저를 내려다보지 마세요. 마치 성모처럼, 자비로운 유령처럼. 당신이 보이지 않아요. 당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요. 당신이 고기의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만, 오로지 그것만 기억하고 싶은데. 어쩌면 당신이 아주 예전부터 쥐새끼일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수구의 좁은 틈새에 끼어서 따끈한 우유처럼 흘러들어오는 오물 속에 몸을 누이고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던 작은 입술이 누구의 것이었는지, 누가 나를 그렇게 아프게 어루만졌는지, 누가 나를 낳고 나를 살리고 내게 찍, 찍찍하는 이상한 언어를 가르쳐줬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머니, 당신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은 언젠가부터 쥐가 아니었죠. 당신에게는 젖도 음부도 태반도 비명도 없었는데 그렇다면 내 어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 그래요. 이런 걸 물어보고 싶었어요. 지금보다 훨씬 은밀하고 암시적인 언어로. 누구도 아파하지 않게. 하지만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확고하고 단정적인 어조로. 당신들이 거역할 수 없는 행위로서의 언어로, 무대 위에 전염병을 퍼뜨리는 나병 환자들처럼 웃으면서, 웃으면서 또 웃으면서.

자애롭게 굽어보는 시선, 연민하는 시선, 감히 마주볼 수 없는 자비로운 시선, 배우들은 소년의 머리를 투명한 허공으로 어루만지면서 속삭인다. 쥐들은 어디서나 죽고 어디에나 살아있단다.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훨씬 오래전부터 쥐들은 살아 있었고 네가 죽은 이후에도 쥐들은 쥐들로 살아갈 거야. 네가 쥐들에게 빚을 졌든 그렇지 않았든 쥐들은 계속해서 쥐들로 살아갈 거야. 그러니 쥐들을 잊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쥐는 쥐일 뿐 어떠한 메타포도 아니니까. 젖가슴이 여자가 아니고 밤이 박쥐가 아닌 것처럼.

어머니, 가지 말아요. 호수 위에 머물며 물속으로 빠져드는 젖은 나방들처럼 그렇게 누군가는 누군가의 곁에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라져가도 괜찮다고 말해줘요.

하지만 얘야, 우리는 나방도 호수도 아니란다. 매일 가로등의 그림자를 재어도 가로등의 실체를 측량할 수는 없는 것처럼 나방과 호수를 꿈꾸어도 나방의 죽음도 호수의 숨결도 이해할 수 없는 거란다.

그럼 제 편지는요? 당신들에게 보내야 하는 편지, 오로지 당신들에게만 보낼 수 있는 편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전 편지를 써야 해요.

마음대로 하렴. 편지를 쓰고 편지를 부치고 답장에 대해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우리는 편지를 받을 수 없단다. 원한다면 사실마저 잊어도 돼. 얘야, 네가 착각한다고 해서 슬퍼할 사람은 더 이상 없으니까. 네가 바란다면 호수 속에 몸을 던진 여인의 발목을 무관심하게 붙잡는 물풀처럼 너를 껴안아 줄 수도 있단다.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 편지를 부쳐야 해요. 당신들은 그걸 읽어야 하고요.

소년은 무엇을 적는지도 모른 채 무대 위에 흩어져 있는 흙에 침을 뱉고 손가락에 젖은 흙을 묻힌 뒤 팽팽하게 당겨진 사각의 캔버스 위에 정신없이 글을 써내려간다. 환멸과도 같은 이명이 소년의 여린 내부를 날카롭게 베어낸다. 소년은 불시에 밀어닥친 고통과 함께 귀머거리가 되어버렸음을 깨닫는다. 다시 깨어나면 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높고 한결같은 비명만으로 그를 무참하게 베어내며 횡단할 것이고 갈기갈기 찢겨나간 그의 육체는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한때 그를 에워쌌던 무수한 목소리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전 언제라도 귀먹을 거예요, 하고 소년은 저를 둘러싼 배우들에게 속삭인다. 유언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유언하세요. 그건 당신들의 유언인 동시에 제 유언이기도 하겠죠.

넌 아직도 어리구나, 하고 서글픈 목소리가 대꾸한다. 이미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증언할 수 없단다. 우린 네 고통도 최후도 증언해줄 수 없어. 우린 아무것도 목격하지 않았으니까. 네가 우리를 목격하지 못했듯. 우린 네 유언도 추억도 되어줄 수 없단다. 넌 처음 네 어미의 보지를 밀어내고 나올 때부터 눈 멀고 귀 먹은 핏덩어리였고 오로지 우리에게 보이기 위해 태어난 작은 별과도 같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너를 지켜보지 않고 너를 듣지 않으며 네가 더듬었던 보지는 어디에도 없단다. 보지는 없어, 보지는. 보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만 이제 네 엄마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도 이해해야 한단다.

귀가 아파요, 아버지. 하고 소년은 칭얼대듯 말한다. 기다란 얼음 송곳을 마구잡이로 쑤셔넣는 것처럼. 처녀막을 파열시키듯 고막을 찢어내고 깊다란 곳까지 침입하는 비명처럼.

그래. 그건 네 비명이란다.

전 한 번도 그렇게 운 적이 없어요. 자지러질 듯 울어젖히는 끔찍한 비명을 파멸을 예감하는 어린 불덩이처럼 가혹하고 비참한 비명을 저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배우들은 무대 아래에 깨진 전구처럼 떨어져내린 머리들을 쓸어담는다.

우리가 다시 문을 두드리면 제 아들을 몰라보는 체했던 어미처럼 그렇게 우리의 목을 조르고 칼을 박아넣는 거야. 새벽의 호수에 입을 맞추고 무참한 현금과 함께 젖어드는 거야.

귀가 아파요. 얼음 송곳을 박아넣는 것처럼.

문을 두드리는 소리. 무대에는 처음부터 문이 없었다는 생각. 이제라도 문을 달아야겠다는 생각.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믿을 수 있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고 착각할 수 있게. 창문을 밀어젖히는 바람의 손길을 유령의 아우성으로 오해할 수 있게. 하지만 부모는 죽었고 소년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소년은 아직도 저를 들여다보고 있는 쥐의 얼룩을 바라본다. 성모의 자비로운 시선을 깨뜨리는 불순한 응시처럼, 어미의 자궁을 보지라고 부르며 멀미하는 어린 소녀처럼 교묘하게 위장한 무례함으로 거울의 눈부신 심연을 마주본다. 행성들의 불길한 움직임을 읽어내어 제 죽음의 날짜를 점치듯 그렇게 무모한 태도로, 차라리 무관심한 눈빛으로 저를 파멸시킬 응시를 되받아친다.

그날, 무참하게 새빨간 거울의 응시 속에서 노인은 소녀와 마주했다. 소녀는 성스러운 침묵으로 노인의 거짓을 요구하였고 노인은 거울 속에 매장해 두었던 언어를 은밀하게 꺼내어 보였다. 소녀들의 앞에서 제 작고 미숙한 성기를 보여주는 어린 소년처럼. 소년은 소녀가 아무것도 진정으로 듣지 않는다는 사실, 따라서 그를 두려워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다소 절망적으로, 동시에 황홀하게 깨달으며 그녀에게 무엇이든 털어놓았다. 그의 사실일 수도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미치광이와 같은 환각을. 토성이 태양의 곁으로 다가가는 동안 그의 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지독한 폭력을. 어린 소녀는 마치 귀머거리처럼 조용하게 들었고 늙은 소년은 눈먼 자처럼 소녀를 보았다. 아니, 눈먼 자처럼 보는 것은 소녀였고 귀머거리처럼 듣는 것은 소년이었다. 소년은 쥐처럼 새까맣고 무참한 소녀의 응시를 견뎌내며 무엇이든 지껄였다. 그가 얼마나 늙었는지도 잊고. 그러나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은 잊지 못한 채. 은은한 응시와 심연도 잊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의 곁에 도사리고 있는 비가시적인 응시도, 아니 이제는 비가시성의 세계로부터 누설되어 절망적으로 가시적인 응시도 잊지 못한 채.

늙은 소년은 부모에게 부치려 했던 편지를 소녀에게 보여주었다. 내밀한 악몽의 언어를 소녀는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는 매일 소녀의 곁에 앉아 그의 연극 무대 속에서의 비밀스러운 언어였던 편지의 언어를 발음을 가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낭독해야 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가는 과정은 새로운 피부와 육체, 새로운 영토로 탈피하며 방랑하는 일만큼이나 아득한 변화였다. 오로지 스스로를 살해하기 위해서만 만들어졌던 밀도 높은 침묵의 감실은 소년에게도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울함으로 녹아내렸다.

사내는 그 편지들이 망자에게 부치는 언어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숨기기 위하여 일말의 사실을 섞어 그것이 모두 망자가 적어내린 언어라고 이야기했다. 헤다야트도 그의 소설도 그의 유년과 일화도 전부 소년이 발명해낸 연극의 일부였으므로 완전한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소년은 소녀의 곁에서 늘 불안했다. 그가 실은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다는 사실, 소녀에게 읽어주는 언어를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거울의 표면처럼 반짝거리면서 그를 응시하는 기호들의 검고 매끄러운 표면을 지칭할 수 있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가 뱉어내는 말, 소리의 태를 가지고 부드럽게 흘러나가는 언어는 그의 눈앞에 펼쳐진 빽빽한 출혈의 흔적들과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는 사실, 사실 소년은 소녀조차 믿지 않는다는 사실, 그가 소녀와 쥐를, 쥐와 어미를, 어미와 유령을, 유령과 얼룩을 혼동하고 있다는 사실, 아직도 귓속에서 문을 두들겨대는 배우들의 서글픈 환영을 느낀다는 사실, 어쩌면 노인은 이미 귀먹고 눈멀었고 그렇기에 소녀는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현실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차마 털어놓을 수 없었다.

소년은 서툴게 노인을 연기하면서 노인의 목소리로 소년의 글을 읽어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언제나 소녀가 찾아오기를, 그의 짙고 아름다운 침묵을 어리숙한 소란으로 더럽혀주기를 기다렸으나 동시에 그녀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그래서 그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도 깨뜨리고 파멸시키지도 않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노인의 역설적인 바람과는 무관하게 소녀는 매일같이 소년을 방문할 것이며 또 언젠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부모는 죽었다.

소년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유령들을 껴안고 떠나가지 말라고 울어대었으나 입술 틈에서 새어나가는 것은 처절한 비명이 아니라 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감미롭고 우울한 시의 언어였다. 어째서 소녀는 소년이 읽어나가는 말이 산문이 아니라 시라고 그렇게 비참한 언어가 조각조각 잘려나간 파편들이 소설일 수는 없는 거라고 조언해주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소녀는 다른 소년들처럼 그의 감실에서 올가미에 목을 매고 죽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소녀는 소년들처럼 그와 함께 밤을 머물지 않는 것일까? 해가 지기 전에 소녀는 돌아갈 것이다. 악몽처럼, 흉측한 어린시절처럼, 과잉의 출혈과 과잉의 생명, 과잉의 고기처럼.

내일은 오지 못할 거예요, 하고 불시에 폭발하는 목소리.

소녀는 사과처럼 붉은 얼굴로, 버려진 과수원 바닥에 짓무른 채 탐스러운 몸을 더 붉게 적시며 굴러다니는 낙화처럼 매혹적인 입술로,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선언하였다. 그래도 당신을 잊지는 못할 거예요. 정말이에요. 난 당신처럼 글을 쓸 거고 어쩌면 당신을 쓸 거예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귓속을 무참하게 횡단하는 날카로운 얼음 송곳, 소년은 새벽이 밤을 감염시키듯 서서히 부모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까지 그는 글을 썼다. 나는 고백한다. 내겐 경악할 만한 흉측함도 경악할 만한 고통도 경악할 만한 비참도 없음을. 다만 삶을 비참하게 만들 만한 적당한 흉측함과 고통과 고독이 나를 절망케 함을. 내게 도래한 벌은 그리 참혹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았다. 내가 살고 싶었던 비극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썼다고 생각했던 가면은 무대배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효과를 질투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범속한 모조품에 불과했다. 아픔과 고독, 절망은 결코 모조품일 수 없었으나 그리 독창적인 것도 아니었다. 내 범속한 아픔, 그러나 누구와도 닮을 수 없는 아픔을 연출해낼 기회를 나는 한 번도 거머쥔 적이 없었다. 내 고통을 읽고 내 고통을 훔쳐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곁에서 부조리한 낭독을 들어주던 그녀조차도 길고 연속적인 악몽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나는 생애 내도록 한 마리의 소도 도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죽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자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아무도 살해하지 못했다. 해갈되지 못할 절망을 애원하는 목소리들, 나는 나를 죽이기 위하여 글을 썼지만 절망적인 결핍을 파헤치는 글쓰기는 자살이기 이전에 결핍이기 이전에 욕구이기 이전에 생존이었으며 페이지마다 발라진 독을 입에 담그며, 독서를 하며 죽어갔던 술탄의 메타포는 내게 진실일 수 없었는데, 독서는 무의미한 기호로서 현현한 세계를 살아가는 가장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방식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삶이며 삶이 죄악이라면 글쓰기도 죄일 것이다.

우리는 생 내내 주어진 벌에 적합한 죄를 발견하려 분투한다. 나는 글쓰기 이외에 다른 죄를 찾지 못하였으나 어쩌면 그건 죄의 내용이 아닌 효과인지도 모른

늙은 소년이 문장을 끝맺기 전에 그들이 들이닥쳤다. 눈부시게 파란 피부를 가진 그들에게 소년은 해 줄 말이 없었고 그들 역시 소년에게 할 말이 없었다. 유년도 추억도 없이 늙어버린 소년은 그저 항해하는 철새들의 우두머리처럼, 가장 차가운 바람을 맞고 서기 위해 내팽개쳐진 희생양처럼 앞으로 불쑥 나와 있는 사내가 언젠가 그가 써내려간 작품 속의, 피아니스트일 수 없었던 피아니스트 사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극이 진실일 수 없듯 망상 역시 현실일 수는 없었기에. 알레고리가 일그러뜨리는 무의미는 통합적이고 아름다운 삼각형의 첨단으로 한없이 올라가는 세계수의 상징이 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나무 위에서 떨고 있는 어린 새를 사냥하듯 작고 쭈글쭈글한 얼굴을 겨냥했다. 삶이 없는 생명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 끝없이 흘러가던 문장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돌아가는지, 결말을 짓지 못한 문장들은 끝을 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그 미결된 마지막이 그대로 끝인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으며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들이 그를 겨누었던 것은 다만 한 번 무대에 오른 총은 발사되어야 한다는 오랜 강박 때문에, 이미 그들의 연극이 실패한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배우도 행위도 아닌 유령이라는 것을, 타인의 무대에 난입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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