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재판

재판은 있었으나 재판은 없었다.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돼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돼지들의 법정이 아닌 사람들의 법정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을 바라고 여자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것일까? 죽은 소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그 자리에서 심판할 수 있었다. 그가 그녀를 죽였다면, 다른 돼지들과 마찬가지로 고기로 만들었다면 그녀는 지금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남자는 알몸으로 웅크려 울었고 울고 있었고 그를 뒤따라 들어온 숲의 주민이 그녀를 신고했다.

경찰서에 구금된 돼지들을 보고 부랑배들과 좀도둑들, 사기꾼들과 비렁뱅이들이 낄낄거렸다. 그녀는 개의 체취가 묻어 있는 더러운 입마개를 하고 철창 한구석에 묶였다. 비가 내렸고 빗물은 그녀를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그녀를 휩쓸고 사라질 것처럼 그녀에게.

남자는 엎드려서 울었다. 아니다. 그는 울지 않았다. 비가 내렸을 뿐이었다. 그는 여자를 즉시 죽일 수 있는 정당한 살해의 권리를 떨어뜨린 것처럼 서럽게, 그러나 무감하게 웅크려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열 마리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복수할 수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열 마리의 자식들, 열 마리의 돼지들 그건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열 마리의 생, 열 마리의 배고픔, 열 마리의 미래 그건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곧 아이조차 아닐 것이었다. 돼지들은 순식간에 성체가 되어버리므로. 아이들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아이를 간직한 채로, 작고 미묘한 흔적, 그들의 전부에 불과한 흔적만을 남긴 채로.

그는 여자를 죽였어야 했다. 그녀의 입 속에 도축용 칼을 쑤셔넣고 아이들의 창자를 꺼내 소시지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녀는 재판받지 않았을 테니까. 그랬다면 그녀는 그 일을 계속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그랬다면 그녀는 구원받았을 테니까. 그가 그녀의 죄를 직접 인정해주었다면, 그래서 그녀에게 끔찍한 벌을 즉각 내려주었다면 그녀는 기꺼이 낙원으로 갔을 테니까. 돼지의 몸도 열 마리의 새끼돼지들도, 끝없는 갈증도 허기도 없는 낙원, 한없이 고요한, 죽음과도 같이 적막하고 안정적인 상태의, 부유하는 구름과도 같은. 그녀는 구름이 되어 그녀를 스치는 모든 풍경들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초월적이며 아름다운 빛과 어둠의 풍경들, 코끝을 쥐어뜯는 악취도 깨진 유리 같은 비명도 죽은 소녀도 나무들도, 나무 둥지에 가만히 숨어 그들을 엿보다 소란에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던 개미들도, 한스의 내장에 기생하여 헤엄치던 회충도 소녀의 눈을 새까맣게 뒤덮은 파리들도 너무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신적인 적막과 아득한 폭풍우의 세계.

사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너무 젖어 있었다. 비마저도 그의 울부짖음이 부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비는 슬프지 않았다. 슬픔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녀는 이미 죽었고 소녀의 죽음이 꿈이었다고 변명해보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녀와 아이들은, 끔찍한 굶주림으로 헐벗은 작은 생을 잡아먹고 말았다.

그녀가 정말 살아있다는 사실을 한스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달고 향기로웠던 것이다. 그랬기에 씁쓸한 악취가 진동했던 것이다.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소녀를 사랑했고 소녀를 잡아먹은 것이다. 그녀는 그 순간 소녀를 지나치게 사랑했다. 소녀를 용서하고 싶을 만큼. 소녀를 이해하고 싶을 만큼. 소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마저 인정할 만큼, 그녀는 소녀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소녀를 밀봉하고 있던 여린 자루는 순식간에 튿어졌고 젖은 흙처럼 짙고 향기로운 속살이 우르르 비어져나왔다. 여자는 황홀하게 고개를 묻고 탐닉하였다. 열 마리의 무한한 허기 역시 그녀의 곁에서 머리를 박고 소녀를 탐했다.

소녀를 낳은 아버지조차도 소녀를 그토록 깊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녀를 잃은 아버지조차도 소녀를 그토록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자는 그의 칼에 찢어져 소녀처럼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내놓은, 그래서 이제는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린 열 마리의 불화 역시 그렇게 죽어버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소녀는 정말 그의 딸이었을까? 소녀는 정말 그에게 속해있었을까? 그에게도 악취 나는 허기와 균열이 있었기에 복수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남자에 대해 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스는 생의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곳을 탐했고 곧 죽을 것이었다. 생의 심부에 독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생에의 지나친 탐닉은 죽음을 부른다는 것을 여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녀는 여자의 거대하고 질긴 위장에서 소화되었고 산산이 흩어져 여자의 핏줄을 쏘다녔고 여자의 피와 살에 엉겨붙었고 유치장 구석자리에 배설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소녀의 몸은 없었다. 여자는 소녀를 삼킨 그녀의 몸이 소녀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경악스럽게도 아무런 죄책감도 슬픔도 없이 행복해했다. 그들은 다만 조금 두려워했을 뿐이었다. 낯설고 축축하고 더러운 환경에, 그러나 그들의 어미가 그들 곁에 있었으므로, 배가 불렀으므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던 가장 향기롭고 맛있는 살을 양껏 삼켰으므로 그들은 행복했다. 그녀의 젖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 아이들이 꾸는 꿈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낯은 투명했다. 붉은 핏물이, 소녀의 것이었던 몸이 흐르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그러나 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여자의 착각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증오스러웠다. 아이들의 행복이, 잔혹한 무지가, 용서받을 수밖에 없는 순결한 몸들이. 그들은 더 이상 그녀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의 것조차 아니었다. 그녀의 살과 피와 생을 뭉텅이로 베어먹고 도주하여 그녀의 곁에서 잠드는 불그죽죽한 머리들, 마치 그들이 아무것도 훔친 적 없는 것처럼, 그녀가 그들에게 젖을 베푸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그들이 그녀의 삶을 대신 이어 살아줄 것처럼. 모두 거짓이었다. 그들이 더 이상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몸을 누구에게도 내맡길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이 그녀의 악취나는 몸을 대체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소녀가 더 이상 없는 것처럼. 소녀가 죽은 것처럼. 그녀의 조각난 몸이 부활할 수 없는 것처럼. 여자가 아이들을 물어죽이고 아이들을 되삼키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여자와 동일하지 않은, 그러나 여자를 닮은 여자의 효과들. 그들에게 여자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여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여자는 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효과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너무 지쳤던 것이다. 소녀를 독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종적인 열 마리의 아이들은 감히 그녀의 폭식을 저지할 수도 없었을 테니.

경찰들은 이틀 내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몸에 들러붙는 오물과 파리떼 속에서 기약 없는 이틀을 보낸 뒤 여자와 아이들은 예고도 없이 법정으로 끌려갔다.

변호사는 다소 무감한 열성으로 여자를 변호했다. 그녀는 허기와 모정, 본능에 이끌려 살해를 범한 것이라고.

여자는 전부 거짓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녀는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닥치는 대로 먹을 정도로 배고팠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녀를 먹었던 것이다. 그녀는 먹어서는 안 되었던 소녀만을 먹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고유한 범죄였다. 하지만 여자는 호소할 수 없었다. 변호사의 말을 끊을 수도 없었다. 그곳은 그녀의 법정이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심판받는 대상조차 그녀가 아니었을지 모르므로. 그들은 불온한 돼지들을 당장 죽여버리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재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판사는 사형을 명령했고 여자는 도살자의 손에 내맡겨졌다. 그러나 열 마리의 새끼돼지들에 대해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범죄는 여자의 것이었으니.

도살자는 소녀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의 몸은 밤처럼 검게 번들거렸다. 양복을 입은 그는 도살자라기보다는 변호사나 사무직원처럼 보였다. 종부성사는 없었다. 유언도 사형 전야조차도 없었다. 재판정에서 죽는 것, 사형 판결을 받고 변호사의 곁에서 아이들이 목도하는 앞에서 죽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돼지답지 않기를 바랐던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일까? 도살장에 끌려가 죽기 위해 태어날 아이들만을 미친 듯이 낳아대는 천박한 암퇘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죽기 위해 배불러가며 억지로 포식해가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을 먹는지도 모르면서, 도축업자가 들이붓는 사료에 행복하게 머리를 박고 꿀꿀거리면서 그렇게. 그런 삶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도살자의 상냥한 인도에 따라 얌전히 목을 내맡기고 함뿍 웃는 대가리를 떨어뜨리는 돼지들 옆에서 수군거리면서 제 날을 세어나가는 돼지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행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행복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어버리기를 바랄 정도로 그녀는 살아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녀에게 삶은 행복이 아닌 모든 것이었으므로. 돼지목장의 시스템,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계와 그 내부의 화목이 그녀의 눈에는 도시의 아릿한 불빛들처럼 기만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도살자의 뒤를 개처럼 따라다니고 죽음에 순종하며, 그러나 그들은 진정 죽음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삶의 절단을 바랄 뿐이었다. 죽음으로 돌진하여 죽음을 대면하지 않기를, 죽음에 대한 사유 이전에 죽어버리기를, 그래서 죽음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죽음을 속속들이 관찰하지도 죽음에 압도당하지도 않고 평온하게 죽어버릴 수 있도록 행복을 영속화시킬 수 있도록.

여자는 행복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행복을 원하지 않았다. 행복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릴 것이었다.

도살자의 손목은 희고 앙상했다. 죽음을 위해 손질된 묵직한 칼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엄마는 정말 죽는 거야? 하고 아이가 속삭였다.

그래. 엄마는 죽을 거야. 하고 여자는 대답했다.

엄마, 엄마는 정말 살인자야?

그래, 엄마는 살인자야. 하고 여자는 대답했다.

너희도 봤잖니, 너희도 함께 먹었잖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열 마리의 아이들은 여자의 가슴에 입을 대고 여자의 향기를 간직하기를 원했다. 망자의 체취를 잃고 싶지 않아 환기조차 시키지 않고 방을 밀폐시켜놓는 자식들처럼, 아이들은 울고 있었다. 그들은 여자가 죽는 모습을 보아야 할 것이었다. 그것 역시 무지한 살인자들에게 내려진 형벌이었으므로.

아이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 아이들은 무엇을 깨닫게 될까? 형벌과 죽음 이후에도 아이들은 행복할까?

열 쌍의 검은 눈이 여자를 올려다보았지만 여자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정말 죽을 거야, 하고 한 아이가 속삭였다.

엄마는 죽을 거야. 엄마는 없는 거야, 하고 아이들은 흐느꼈다.

그렇지만 얘들아, 엄마는 처음부터 어디에도 없었단다, 하고 여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의 벌거벗은 붉은 몸에 찬물을 뿌리고 두터운 목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도살자는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거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을 바라고 있었다. 불가능할 정도로 깊은 고통을, 열린 상처로 파리들을 끌어당기는 붉은 고통을, 피가 다 쏟아진 이후에도 한껏 벌어진 위험한 고통을 여자는 끔찍하게 갈망하고 있었다. 가장 내밀한 삶에 도달하기를, 그래서 환희와도 같은 죽음을 들이킬 수 있기를, 뜬 눈으로, 가장 명료한 정신으로 죽음의 증오스러운 맛을 전부 감각할 수 있기를 여자는 바라고 있었다.

여자는 마취를 거절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고통의 증폭도 경감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몸을 그대로 투과하는 고통을 그대로 느끼고 싶을 뿐이었다.

도살자는 그녀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집요하게 마취를 권유했다. 그건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울 거라고 도살자는 말했다. 난 너를 죽여서 지옥에 가고 싶지는 않아, 하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찢어져 죽어가고 있었다. 도살자가 억지로 쑤셔넣은 마취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처럼, 여자는 생생히 살아서 찢어지는 몸을 느끼고 있었다. 두터운 칼이 여자의 내부를 파고들었고 여자는 영원과도 같은 순간을 느꼈다.

돼지들의 시야에서 하늘은 지나치게 높았으나 나무들에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사형 판결이 내려지고 그녀가 그 자리에서 죽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은 그녀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었다. 재판이 끝나고 사형이 집행되기까지의 짧은 휴식 시간 그녀는 그녀가 끝을 맞이할 자리를 바라보았다. 도살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네가 고기라는 걸 알면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을 거야. 재판은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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