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캔디와 바이올린의 물방울

우린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레몬캔디는 갑작스레 격분한 듯 소리쳤다. 당신이 네오소다팝시티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디지털 세계 속에 떠돌던 우리 유령들은 형체를, 아바타를, 목소리를, 눈과 코와 얼굴 픽셀들을 모조리 잃고 사라져버렸어요. 왜 그걸 없애버린 거예요?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요. 레몬캔디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린 몸도 정신도 영혼도 없으니까. 우린 당신의 세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었는데, 우린 그곳에서만 우리의 부재를 잊고 마음껏 떠돌 수 있었는데. 난 당신에게 몇 번이고 편지를 보냈죠. 언니, 우리의 우주를 돌려줘요, 하면서. 하지만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의 몸 속에 파묻혀 당신이 잃어버린 세계 따위는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죠.

그건 가짜였어.

가짜라면 여기도 마찬가지죠. 플라톤의 동굴에 비추어진 허상 이야기를 당신도 알 거예요. 난 빛으로 짜여진 이 소립자들의 불가해한 세계도 당신이 만들어냈던 세계처럼 원상이 없는 허상의 복제품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모두 허구일 뿐이죠. 오직 허구만이 가치있는 거예요. 왜냐면 실재하는 건 모두 허구니까. 지독한 음울과 암흑, 아픔은 실재하는 허구죠. 어디에도 없지만 반드시 실재해요.

어디에도 없다고.

그래요. 당신의 몸도, 우리의 몸도, 하지만 우린 정말 아팠어요. 우리의 고통은 실재했고 우리의 고독, 절망과 우울은 모두 그곳에 있었어요.

너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돌이킬 방법도, 돌이킬 생각도 없기 때문이었다. 너는 그 애와 같은 상실을 감내하고 싶었다. 상실 없이는 어떠한 이야기도 시작되지 않으므로.

레몬캔디는 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이야기한다.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 누군가가 제 집이라고 믿던 장소를 망가뜨리고 그건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믿음을 미신으로 만드는 것 그만큼 끔찍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고. 실은 나도 당신과 비슷한 죄를 저지른 적이 있어요. 하고 레몬캔디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삼촌이 더 이상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게 된 건 그가 작곡에 매진하고 이모의 노래에 매혹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다 내 탓이죠. 어릴 적에 삼촌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난 처음으로 비애를 느낄 수 있었어요. 삼촌의 연주는 돌이킬 수 없는 간격을 두고 떨어진 피아노의 검은 건반들만을 내리누르며 울부짖는 소리 같았어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삼촌은 바이올린의 한 현만을 그으며 무척이나 넓은 스케일을 오가면서 연주했는데 그런데도 연속되어 있는 음계들을 오고가는 느낌이 아니라, 매 음정마다 깊고 끔찍한 심연을 건너가는 것 같았어요. 하나의 심연은 다른 심연과 맞닿아 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챌 수 없죠. 심연은 각자의 생 내부에만 도사리고 있는 것이고 그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난 삼촌의 연주에 너무나 매혹된 나머지 그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매일 저녁마다 삼촌의 골방에 들어가서 바이올린을 켜 달라고, 바이올린을 가르쳐달라고 졸라대는 날 그는 구태여 내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이올린 연주를 제대로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어요. 다만 말없이 그의 바이올린을, 물결처럼 일렁이는 단풍나무의 살결을 건넸을 뿐이죠. 삼촌은 바이올린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바이올린에 어깨받이를 연결하고 그것을 왼쪽 어깨에 올려놓는 방법도, 조율을 하는 방법도, 현에 손가락을 짚어 음정을 조절하는 방법도, 손가락을 떨며 음을 멜랑콜리의 빛깔로 채색하는 방법도, 활을 쥐는 방법도, 활로 현을 긋는 방법도, 여러 음을 한 활에 이어 내는 방법도, 활을 끊어서 스타카토음을 내는 방법도, 활을 조금씩 들어서 튕겨 연주하는 방법도 알려 주지 않았죠.

난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삼촌의 연주를 그토록 많이 지켜봤음에도 바이올린을 어깨에 얹을 생각조차 못하고 앞면이 바깥쪽을 향하도록 들고는 바이올린의 현을 손가락으로 튕겨대기 시작했죠. 바이올린이 아니라 기타나 가야금을 연주하듯이 말이에요.

삼촌은 비웃지도 않았어요. 난 점점 자신감에 차올라 더 큰 소리로 바이올린의 현들을 튕겨대기 시작했죠. 마구잡이로 현을 잡아 뜯는 동안 손가락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거기에 신경쓸 여유도 없을 정도로 난 연주에 몰두해 있었어요. 내 손끝에서 튀어오르는 엉망진창의 음정들이 머지 않아서 삼촌의 연주와 같은 깊은 우수로 바뀌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죠. 음정들이 묻혀 있던 관에서 재기발랄한 음표들을 마음껏 구출해내며 난 영웅행세를 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나자 한쪽 손으로 현을 움켜잡은 뒤 현을 뜯어내면 다른 소리가 난다는 발견을 하게 되고 난 스스로의 천재성에 도취되어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계속해서 더 격렬하게 현을 쥐어뜯기 시작했죠.

삼촌은 끝까지 아무런 말 없이 날 지켜봤고 그래서 난 내 연주가 정답이라고 난 누구의 교습 없이도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 천재성을 타고났다고 믿게 되었죠. 오른손 검지와 중지 손가락에 하얀 물집이 부풀어오르는 걸 발견하고 나서야 난 약간 질겁하면서, 동시에 흥분과 만족감에 취해 손을 바르르 떨며 삼촌에게 바이올린을 돌려 주었죠.

그는 얌전히 바이올린을 받아들고 내 앞에서 검은 팩을 돌려가며 조율을 시작하더군요. 내가 너무 거칠게 다루어서인지 현은 처참하게 늘어나 원래의 궤에서 한참은 벗어나 있었어요. 물론 당시에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삼촌이 검은색 팩을 돌려가며 이상한 음들을 쥐어뜯는 걸 지켜보았죠. 난 그의 연주가 내가 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앙상하게 들리는 데에 말없이 기뻐했어요.

삼촌이 바이올린을 한쪽 어깨에 얹고 활을 그어 조율을 확인해본 뒤 예의 그 길고 일렁거리는 연주를, 짙은 그림자로 만들어놓은 물결과도 같은 음률을 떠내려보내는 것을 목격하고서야 난 내 연주방식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처참한 심정으로 깨달았어요. 그날 이후 난 다시는 삼촌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날 그의 침묵은 지독한 모욕으로 느껴졌고 난 굴욕감에 치를 떨며 한동안 삼촌에게 말조차 붙이지 않았죠. 아마 삼촌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 그는 이모의 향긋한 연노란색 피부에 취해 있었으니까. 내가 말도 안되는 음악에 도취되어 천재성을 꿈꾸었듯 그는 이모와의 불가능한 만남이 기적과도 같은 현상과 맞닥뜨리는 가능성을 연구하는 데에 골똘해 있었으니까.

결론적으로는 삼촌도 사랑의 신봉자들과 같은 결론을 내렸죠. 그가 사랑을 얻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신체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던 질긴 끈들을 풀고 죽음의 방둑을 따라 흘러내리는 순간뿐이라는 걸요. 단단한 세포벽 속에 갇혀 있던 피부를 꿰뚫고 그의 내부를 떠돌던 질병을 삽입하여 그와 같은 병에, 죽음에 이르는 병에 감염시키는 일뿐이라는 걸. 죽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이모는 결코 그를 부드럽고 포근한 음부 속에 받아들이고 삼촌의 내부를 떠도는 불분명한 병균들을 기꺼이 흡입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걸. 삼촌이 이모의 편지지나 영수증들, 신발과 손수건, 그녀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꽃과 그녀의 어깨에 묻은 잔디 따위를 병적으로 수집했던 것도 그즈음이었을 거예요.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그의 골방으로 들어가던 날, 난 향기를 잃고 썩어가는, 변형된 살들-꽃과 풀의 살, 그녀의 입술에 머물러 있던 나뭇가지의 살 따위-이 풍기는 악취를 알아차렸죠. 그때는 삼촌의 연주에, 정확히는 삼촌의 우수를 훔쳐 그보다 풍성한 연주를 할 나 자신의 천재성에 사로잡혀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얼마나 끔찍한 냄새였는지.

레몬캔디의 목소리를 들으며 너는 책장으로 다가간다. 무작위로 펼친 책에는 성좌처럼 흩어져 있는 물방울의 파편들이,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장마가 되기를 기다리는 찢겨진 목소리들이 도사리고 있다. 언젠가 네가 계획했던 똑같은 문장들과 똑같은 상념, 똑같은 기획과 똑같은 철학을 읽어낸다. 마치 한쪽이 다른 한쪽을 모방하여 태어난 것 마냥 흡사한 모양과 사상. 하지만 그는 받아들여졌고 너는 거절당했다. 네 순서는 늦었으며 너는 결국 그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채 그를 모방한 것이 되고 말았다. 넌 네 얼굴이 고스란히 얼룩져 있는 거울상과 같은 책장을 산산조각 내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쌍둥이처럼 꼭 닮은 계획과 문장들, 문단의 배열과 챕터들, 넌 오래도록 기다려오지 않았는가. 누군가의 우연이 너와 같은 글을 출산하고 그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를. 하지만 그건 네 아이는 아니다. 핏덩어리 같은 문장들이 다른 젖을 먹고 자라나며 부풀고 세상을 누비는 동안 꼭 닮은 쌍둥이 자식은 지붕과 천장 사이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썩어가고 있다. 언젠가 네가 거푸 속으로 중얼거렸던 문장들을 니체에게서 보았을 때, 그래서 그 문장들이 니체의 문장으로 변질되었을 때, 그때는 어째서 지금과 같은 상실감을 느끼지 못했던가.

하지만 레몬캔디의 문장들에는 악의가 없다. 그의 문장들은 따뜻하고 안온하며 결국에는 삶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그는 버려진 아이가 아닌가? 고양이를 살해하고 전리품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제 아이인양 둘러메고 종탑으로 향하고 있는 그림자는 누구의 망령인가? 망가진 별자리처럼 일렁거리는 그림자가 나선형의 부드러운 미로와 같은 종탑을 오른다. 종지기는 오래전에 귀가 멀었지만 종을 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번개가 내리쳐 그가 발산해내는 서글픈 소음을 탑 바깥으로 추방해내기 전까지 그는 계속해서 그에게는 들리지도 않는 음악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살아갔다. 그에게만 들리지 않던 종소리는 이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 종 속으로 몸을 던졌던 작은 아이가 흘렸던 오줌, 시꺼먼 피가 섞인 오물이 종을 더럽혔고 당질과 무기염류, 아미노산이 종 속에서 울려퍼져야 할 신비로운 소리의 핵을 순식간에 부식시키고 만다. 종은 울리지 않는다. 아니, 종지기는 제 머리를 바스라뜨릴 듯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종을 두들겨패지만 누구도 그들의 절규를 듣지 못한다. 종이 매일 밤 흐느끼는 소리를 그 지독한 비명을 아무도 듣지 못한다. 망가진 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으니까. 유령이 된 종지기는 매일같이 종을 치려 하지만 물리성을 잃은 손, 더 이상 형체도 촉감도 고통도 공포도 없이 절망만으로 전율하는 손은 종을 더듬거릴 수조차 없다. 종지기가 흐느끼며 울부짖는 소리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종탑에서 추락하여 거꾸러진 시신을 아무도 닦아주지 않고 아무도 묻어주지 않고 아무도 그의 육신을 불태워 노래로 달래며 그의 유령에게 이제는 사라져도 좋다고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어째서 그의 비명을, 이렇게 시끄럽고 아픈 절규를 아무도 듣지 못하는 것인지, 그토록 높고 아름다운 종탑에서 그토록 찬란한 번개에 맞아 계시처럼 거꾸러진 그의 시신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유령은 계속해서 울어젖힌다. 종은 유령의 깨져버린 머릿속에서, 줄줄 흘러내린 오물과 뇌수의 바깥에서 사유하며 절망하며 울려대지만 미세한 파동조차 그 자리에는 없다.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자리가 없었고 그들은 처음부터 자리를 가질 수 없는 불구로 태어났다. 아기의 불순한 오줌, 죽어가면서도 생을 위해 걸러내려 몸부림친 그 한 방울의 오물 때문에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짓지도 않은 죄를 견뎌내야 했고 누구도 그들에게 끝을 선고해주지 않았다. 그들을 지켜보는 간수는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종탑에서 떨어지고 사지가 뒤틀리고 말간 침과 오줌, 변이 역겨운 악취를 내며 새어나가도 종지기의 서러운 몸을 물어뜯는 짐승은 없었다. 파리들과 나방, 게와 쥐, 부패균조차 그의 살을 뜯어먹지 않았다. 죽음은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자세 그대로 나자빠져 들리지 않는 소음을 헤 벌어진 입 밖으로 게워내고 있었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썩지 않을 플라스틱처럼 내버려진 시신을 유령은 외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숱한 죽음은 그의 것이 될 수 없는가. 어째서 그의 곁을 스쳐간 숱한 음률들처럼 그의 종소리는 사라져버릴 수 없는가.

우린 유령이니까요. 처음부터 유령이었으니까. 아무도 우리에게 사라지는 방법을, 잊고 잊혀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우리의 무덤을 만들어 주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우리를 위해 울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의 종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레몬캔디의 중얼거림. 그는 시뻘건 피를 뚝뚝 흘리며 돌아다니는 가엾은 어린아이가 된다. 항문에서 녹색의 변이 질질거리며 새어나온다. 피부처럼 새빨간 성기, 생살을 드러낸 여린 주름에서 유백색의 애액이 튀어오른다. 넌 끊임없는 분열의 상태에 사로잡혀 자기최면과 같은 죽음과 번식을 반복하고 있는 그의 체액을 맛본다. 넌 순식간에 부식되어버린다.

네 내면 속에서 번식하고 있던 문장들이 깜빡거리며 미친 듯이 뒤섞인다. 이제는 어떠한 의미도 읽어낼 수 없고, 어떠한 형상도 닮은 체 할 수 없는 문장들은 어린 아이의 배설물에 뒤섞인 종처럼 먹먹한 울음만을 게워낸다. 끊임없이 산란하는 기표들. 의미를 읽어낼 수 없는 상호작용. 누구와도 매개되지 못한 채 결국에는 같은 울음, 같은 절망, 같은 고독, 같은 결핍만을 서성거리는 글자들 사이에서 발산하는 화학작용, 네 내부에서 껌뻑거리면서 죽어 있던 신경들을 활성화시키는 유백색의 오물, 목적과 질서를, 합목적성을 가장하던 수열들이 작은 식물의 뿌리처럼 정처없이 얽히고 뒤섞이며 기묘한 형상을 짜내려간다. 아무도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으로 이지러진 균열을. 최초의 울음을 묻어둔 종, 아직 내질러지지 못한 채 유예되고 있는 아이의 비명은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에, 어미의 뱃속과 같은 부드럽고 축축한 질구에서 숨이 막혀 죽었기에, 죽음의 우주와 같은 검붉은 쇳물 속으로 다시 녹아들었기에, 제 탄생을, 제 추방을, 제 죄악을 자각하기도 전에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기에 죽을 수 없었다. 태어나지 않은 자는 죽을 수도 없으므로 종탑 꼭대기에서 추락한 종지기는 여느 망자들처럼 사라지고 잊힐 수 없었다. 기억되지 않은 이름은 잊힐 수도 없으므로. 그렇다면 너희는 끝내 죽을 수도 잊힐 수도 없는가?

그날 그 방에서 난 삼촌의 바이올린 현으로 목을 매달아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바이올린 현은 내 질긴 살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가늘고 유약하죠.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여려야 하는지도 몰라요. 무엇이라도 베어낼 수 있을 만큼 날카롭지만 가늘어야 하는지도 몰라요. 나무의 몸체 한쪽 끝과 다른쪽 끝에 단단히 엮여서 손가락의 애무를 받으며 고요히 떨고 있는 그 음률을 질투했다고 하면 당신은 비웃을까요? 그래요. 당신은 웃지 않겠죠. 삼촌처럼. 그의 침묵은 당신의 침묵처럼 부드럽지 않았어요. 삼촌은 나무의 살로 재구성된 하나의 몸체를 완전히 제압하고 현실에 대한 경험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건 돌이킬 수 없는 패배였어요. 앞으로 하나의 육체도 그토록 애달픈 소리로 울릴 수 없으리라는 걸 난 이미 짐작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직은 파괴되지 않은 환상에 젖어있을 때였어요. 현실은 파괴될 수 없으며 산산조각 날 수 있는 건 환상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때였으므로, 난 금이 가기 시작한 환상이 이미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는 사실을 큰 어려움 없이 모른 척 할 수 있었죠. 우리집은 그리 호화스럽게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원하는 만큼 돈이 될 만한 금을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요. 할아버지의 작업 공간에 떠다니는 금빛 액체를 길쭉한 비커에 담아 뚜껑을 잠근 뒤 창문 바깥에 내놓으면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꽁꽁 얼어붙은 신비한 물질을 금과 뒤바꾸려고 안달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죠. 햇빛을 금빛으로 투과시키며 반짝이는 결정은 시간의 응결체였어요. 한 사람의 생을 순식간에 돌파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독이었고 한 사람의 생을 대지의 삶처럼 길게 늘일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영약이기도 했죠. 시간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생을 한없는 위기 상태에 처해 있는 것처럼, 혹한에 굶주린 육체가 감지하는 것처럼 기이할 정도로 증폭시켜줄 수 있다는 영약을 원했고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할아버지를 찾아와 기꺼이 시간의 값을 치렀죠. 독을 원하는 사람은 영약을 원하는 사람만큼이나 많았어요.

그러니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는 말에 할아버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바이올린 교사를 구하고 곧장 레슨비를 치러줄 수 있었어요. 대부분의 음정들을 글리산도로 연주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던 남자였어요. 음과 음 사이를 오갈 때 손가락을 유난히 천천히 끌며 각각의 떨림이 담지하는 단절을 메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죠. 본질적으로 불연속성의 우주 속에 머물고 있는 각각의 음들은 어떠한 환상으로도 이을 수 없는 거라고, 하나의 파동에서 다른 파동으로 넘어가는 것은 세계를 횡단하는 일과 같으며 당신의 느릿한 손가락은 사실 어떠한 심연도 넘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충고하는 대신, 난 삼촌을 따라 침묵했어요.

바이올린 선생은 내 침묵에 심한 모욕을 받은 듯 표정을 굳히고 내게 바이올린을 건네더군요. 그는 선생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어요. 그는 내게 바이올린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부터 알려 주었죠. 바이올린에 어깨받이를 연결하고 그것을 왼쪽 어깨에 올려놓는 방법도, 조율을 하는 방법도, 현에 손가락을 짚어 음정을 조절하는 방법도, 손가락을 떨며 음을 멜랑콜리의 빛깔로 채색하는 방법도, 활을 쥐는 방법도, 활로 현을 긋는 방법도, 여러 음을 한 활에 이어 내는 방법도, 활을 끊어서 스타카토음을 내는 방법도, 활을 조금씩 들어서 튕겨 연주하는 방법도 차례차례 알려주었어요. 그가 먼저 시범을 보이고 내가 그를 따라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식이었어요.

교습이 진행될수록 내가 타고난 천재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차근차근 드러났죠. 난 더없이 절망한 상태에서 그가 가르쳐주는 동작들을 기계적으로 따라했어요. 그의 설명과는 달리 활을 쥔 손가락과 손목에는 끔찍할 정도로 힘이 많이 들어갔고 활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구부러져야 할 손목은 밀랍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 뻑뻑한 음만을, 나 스스로도 참기 어려운 경직된 비명만을 배설해낼 뿐이었죠. 일 년이 지나도, 삼 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절망적일 정도로 성장이 더딘 내 상태와는 무관하게 할아버지는 계속 시간의 독약을 팔아넘긴 값을 내 흉측한 소음을 위해 바이올린 교사에게 넘겼고 교사는 그가 받은 시간의 값만큼의 진도를 메우려 했죠. 난 연습조차 하지 않았어요. 비브라토, 살타토, 글리산도, 피치카토와 같은 수많은 주법들을 익히고 사분의 이 사이즈 바이올린이 사분의 삼 사이즈로 바뀌는 동안, 말의 꼬리털들이 너덜너덜하게 뜯겨져나가는 동안에도 경직된 연주는 여전했죠.

교사는 언제나 연습부족을 탓하면서 지독하게 굳어 있는 내 손가락을 활의 나무 부분으로 툭툭 때렸어요. 그래도 힘은 빠지지 않았죠. 오히려 갑작스러운 충격에 놀라 더 단단하게 굳은 손가락은 바이올린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애원하게 만들기는 커녕 그 가여운 악기를 추악한 소리로 울부짖게 종용할 뿐이었죠.

바이올린 교사는 내 연주에 깃든 끔찍한 절규의 고통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는 언제나 내가 정확하게 박자를 연주하고 기교를 부리려는 일에 몰두하는 탓에 감정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거라고, 마치 기계장치처럼 연주하는 것이라고 윽박질렀죠. 또 내가 인간적인 연주를 하지 못하는 건 근본적으로 기교에 숙달하지 못했기 때문, 그래서 악보를 읽어내고 그대로 연주하는 일에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죠. 하지만 난 기교를 연습하고 악보를 외워낸다고 해서 삼촌처럼 서글프고 축축한 연주를 해낼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내 절망적인 긴장은 연습과 숙달의 문제가 아닌 재능의 문제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죠. 그래서 연습을 하는 일이 더 끔찍하게 싫었던 거예요. 연습을 해서 곡에 숙달될수록, 선생이 가르쳐준 기교들에 익숙해 질수록 선천적인 장애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는 내 양 팔과 손가락, 손목과 어깨의 경직 상태는 영원히 풀릴 일이 없다는 걸 더 선명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어느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교수형이 집행될 시간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바이올린 교사가 오는 시간을 셈하며 두려움에 떨다가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쥐고 내 나름의 소리를 마음껏 발산하던 때를 돌이켜보던 때를 돌이켜보았죠. 그때 난 사분의 이 사이즈도 사분의 삼 사이즈도 아닌 온전한 어른의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했죠. 어쩌면 내 어깨에 불치의 병처럼 깃든 경직은 악기의 탓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완전한 악기가 연주를 불구로 만든 치명적인 원인이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삼촌의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어쩐 일인지 평소라면 방의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서 문장이나 악보, 여하튼 어떠한 기호들에 심취해 있을 삼촌은 그날따라 어디에도 없더군요. 아마 이모를 뒤쫓아 밖에 나갔거나 했던 거겠죠. 아니, 어쩌면 망상과도 같은 환희-불구의 병이 벌써부터 완치되었다는 행복-에 젖어 뛰어든 내 눈에 어둠 속에 웅크려 있는 삼촌의 그림자처럼 흐릿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뿐일지도 모르죠. 어쨌든 난 악보와 생물학 관련 문서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책상 아래에서 검은 관처럼 생긴 바이올린 케이스를 발견했죠.

난 숙련된 부검의처럼 능숙하게 바이올린의 몸체를 둘러싸던 피부를 해체하고 그 속에 고적하게 누워 있는 소리의 집결체를 들어 올렸어요. 활을 꺼내고 송진을 바르고 활털을 조이고 바이올린에 어깨받침을 끼우고 팩을 돌려 음률을 조율하기 전부터, 그저 바이올린을 들어올리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난 모든 망상적인 추측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양팔은 끔찍하게 굳어버렸고 고질적인 경직의 증상이 날 다시 덮쳐왔어요. 불완전한 건 악기가 아닌 내 신체였고 불구의 운명을 선고받은 것은 내 육신이 아닌 절망이 깃든 내 정신이라는 것을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내게는 어떤 아름다운 음악도 깃들어 있지 않았고 내 팔의 경직은 텅 비어 있는 단단한 살갗의 무기질적인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투박한 상징에 불과한 것이었죠. 앞으로 한 번도 난 바이올린을 울릴 수 없고 내가 염원했던 음악을 연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에, 고적하게 벌어져 있는 심연과 심연의 불협을 우아하게 짚어낼 수 없으리라는 직감에 난 온몸을 미친 듯이 떨어댔어요. 달처럼 창백하고 희게 굳은 팔 밑에서 불운의 현기증이 피부를 밀어내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아름다운 울음들이 차고 단단한 침묵으로 맺힌 채 날 비웃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악기에 손을 대던 첫날, 꿈을 털어놓던 첫날 내게 예견된 불능을 묵묵히 감싸던 삼촌의 침묵과 똑같은 적요였어요.

바이올린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시큼한 악취가 풍겼고 난 견디지 못하고 삼촌의 낡은 책상에 바이올린을 내려치고 말았죠. 바이올린의 뒷판은 순식간에 부서져 떨어져나갔어요. 난 부서진 잔해들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삼촌의 방에서 뛰쳐 나왔어요.

그 뒤로 삼촌은 내 앞에서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았죠. 그래도 난 바이올린 연주를 그만둘 수 없었어요. 레슨을 그만둔 뒤에도 망가진 파편과 침묵, 최초의 굴욕과 모멸이 얼룩으로 배어든 다락을 떠난 뒤에도 난 오래도록 바이올린을 연주했죠. 아직도 불구와 같은 경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내 바이올린은 역겨우리만치 메마른 꺽꺽거림만을 내뱉지만 난 그렇게라도 연주를 하지 않으면 그렇게라도 울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어요. 매몰찬 침묵으로부터, 내 불구와 오해를 묵묵히 시인하는 인식의 세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그런 절망적인 소음이라도 필요했던 거예요. 설령 그게 내 불구를 시인하는 경직된 연주 그 자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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