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캔디의 물방울 – 서커스의 짐승

레몬캔디는 종종 그의 고향 마을-그가 고향이라고 믿었던-에 찾아오곤 했던 서커스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본래는 대도시의 유원지에서 공연을 하던 서커스단이라고 했는데, 사막에서 붉은 보석이나 신비한 향신료들을 가지고 오는 행상들처럼 간혹 우리 마을에도 들리곤 했죠. 특히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는데, 그건 그들의 흐린 시야로 뒤덮인 삶에 있어 그토록 화려하게 반짝이는 것은 기껏해야 서커스 단원들이 입는 붉은 벨벳 의상 정도에 그쳤기 때문이겠죠. 대부분의 어른들은 서커스 공연이 무척이나 유치하고 천박하다며 비판했고 그들이 마을 광장 한가운데에 쳐 놓는 천막에서도 불쾌한 냄새가 난다며 그들의 방문을 금지하는 성명운동을 하기도 했죠. 그래서 서커스 공연의 관객은 대개 어린아이나 노인들 뿐이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하잘것없는 카드마술 따위에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저 입안 가득 달콤하고 씁쓸한 냄새가 나는 액체를 들이붓고 소년들이 내뿜던 붉고 파란 불의 빛깔, 그 오묘하고 향기로운 색채가 내게는, 늘 거무스름하게 바래버린 붉은 벽돌에 둘러싸여 지내던 내겐 너무 매혹적으로 보였기 때문일 거예요. 서커스 공연을 보러갈 때 난 대부분의 시간처럼 혼자였어요.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유령과도 같이 높고, 또 나를 비켜지나가는 무심한 목소리로 자신들만의 수다를 계속하고 있었죠. 난 그들의 증폭되는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들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그들의 말들 중에서 하나의 단어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처럼요.

서커스 천막이 마을에 들릴 때는 불꽃처럼 황홀한 색으로 물들인 나방의 날개들이 하늘을 뒤덮었죠. 화려한 색을 입은 날짐승들은 설탕에 절인 과일처럼 달콤해 보였어요. 소년들이 내뿜는 불에 가만히 손을 얹어본 적도 있어요. 소년은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고, 그 검은 눈이 너무 무섭고 수치스러워서 객석의 가장 뒤편으로 도망쳤던 걸, 그곳에서도 계속해서 그 까만 눈을 들여다보았던 걸 기억해요. 현란한 불꽃들과 노쇠한 짐승들 뒤에서 눈동자의 검은 빛깔이 마치 죽음 직전의 왜소한 별처럼, 망원경을 거꾸로 뒤집어 반대쪽 렌즈에 눈을 대고 관찰하는 별처럼 점점 멀어졌던 걸, 멀어지면서 더욱 선명하게 반짝거렸던 걸 기억해요.

난 그 검은 빛깔에 맞부딪히는 내 눈들이 금방이라도 시꺼멓게 그을러버릴 것만 같은 편집증적인 환상에 시달렸어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화려한 불빛 너머에서 왁자지껄하게 웃고 있었죠. 하지만 그 환한 웃음소리들은 어쩐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이해하겠나요? 자연스러운 웃음소리라는 걸 난 그때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야, 자연에서는 아무도 입을 벌리고 횡격막을 경련하면서 숨을 몰아쉬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하릴없이 웃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물론 이모는 볼에 깊은 보조개가 파이도록 활짝 웃고는 했지만 그건 대개 입술을 끌어올리고 눈꺼풀을 내리뜨는 미소일 뿐이었죠. 할아버지나 칼 삼촌은 웃는 일이 드물었고요. 이모의 연인이었던 그 사람의 호쾌한 웃음소리는 기억이 나지만 그건 어쩐지 작위적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서커스단에서 낄낄거리며 난장으로 뒤섞이는 웃음소리는 일정한 규칙도, 리듬도 없이 자연스러웠죠. 난 소름이 끼쳐 어쩔 줄을 몰랐어요.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며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호흡하고 있었는데, 나는 감히 그들에게 그 웃음의 이유를 물어볼 수조차 없었죠.

눈이 너무 아팠어요. 눈이 아파, 눈이 아파, 하고 훌쩍거리는 높은 목소리가 목 안쪽에서 울려퍼졌어요. 난 그대로 뛰어 도망쳤어요. 시야에는 새까만 눈빛,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만화경에 비친 상처럼 기이하게 일그러지는 검은 물결밖에는 보이지 않았죠. 짙은 비린내에 검은 연기가 붉게 가라앉았고 그제서야 난 서커스의 천막 안쪽에 도착했다는 걸 알았어요.

더러운 철제 그릇에 담긴 고깃덩이와 날벌레들이 떠있는 더러운 물에 코를 박고 게걸스럽게 쩝쩝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짐승들의 등 뒤에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재킷을 갈아입는 단원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죠. 난 그때까지 그 짐승을 무어라고 부르는지도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 짐승의 구체적인 생김새, 그 짐승을 부르는 일반적인 명칭을 추측할 수 있을 만한 특징들은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 난 그저 그게 사람보다 더 아래에, 그러니까 자기 항문보다도 더 낮은 곳에 머리를 박고 사람보다 더 많은 다리로-다리의 개수가 네 개였는지도 확실치 않아요. 물론 네 개가 아니었을 가능성은 극히 적겠지만- 더러운 흙바닥 위에 서 있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죠. 짐승은 그의 등뒤에서 짐승의 껍질을 벗어내는 단원의 존재가 익숙한지, 급소를 훤히 드러내고서도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오로지 더러운 살점을 씹어삼키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다가 짐승이 두 눈을 까뒤집으며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했어요. 난 소스라치게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죠. 혹여 광증에 사로잡힌 짐승이 구두를 고기로 착각하고 삼키다 목이 막혀 죽은 숱한 개들처럼 두 발로 서 있는 내 다리의 개수를 착각하고, 또래에 비해 긴 편이었던 내 팔을 공중에 들려 있는 두 다리로 착각하고, 나를 네발 달린 짐승으로 알고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짐승에게 가까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난 고양이에게 사로잡힌 쥐처럼 바짝 얼어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만 같았어요. 순간 난 거품을 물며 죽어가고 있는 게 개가 아니라 나라고 느낄 정도였죠.

나라면 모두 착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래요. 나는 어쩌면 정말 네발 달린 짐승이었고 거품을 물며 죽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그때는 그런 상상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이 모두 착각이라는 생각, 나는 두 다리와 삶이라는-그때는 네 다리와 죽음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느껴졌던- 다른 진실에 속해있고 그 진실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짐승의 피륙을 벗고 그 아래 갈색으로 그을은 짐승의 피륙을 내보이던 단원을 불러 도움을 청하려 했죠.

그때 단원은 아직까지 내게 의미심장한 상징과도 같이 느껴지는 행동을 했는데 그건 당시 나로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었죠. 그는 죽어가는 개를 흘깃 바라보더니 좀 전까지 입었던 옷보다 더욱 화려한 색채의-아마 붉은 색이나 금색 옷이었을 거예요- 드레스처럼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고 나를 지나쳐 내가 도망온 길을 그대로 따라 공연장으로 돌아섰죠.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얼굴이 짙은 화장에 가려져 있었다는 걸 기억해요. 특히 그의 짙은 속눈썹과 속눈썹 아래로 속눈썹의 그늘이 얼굴의 반을 가리며 부드러운 나무 그늘처럼 그의 얼굴에 깊은 어둠을 드리우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나는 그의 무심한 태도에 경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꼭 신비로운 가면에 감싸인 것처럼 매혹적이게까지 느껴졌어요. 짐승의 가죽을 벗고 화려한 천과 환한 분으로 얼굴을 가린 그는 더 이상 냄새나는 피륙 속에 갇힌 짐승의 영혼과는 무관한 존재처럼 보였죠.

그가 떠나고 나서 가여운 짐승은 온몸을 미친 듯이 부들부들 떨며 죽어갔어요. 순식간에 희게 새어버린 털이 분홍빛 맨살 아래로 떨어져내리던 광경을, 하나의 생명체가 죽음의 직전에 순식간에 노화해버리는 광경을, 하나의 몸에 흐르던 시간이 병에 걸린 듯 발작하며 질주하는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난 그 짐승의 코의 생김이나 건강할 때의 피붓결과 같은 특징들-대개는 종과 종을 구분하는 표지로 작용하는 외적인 표지들-은 기억할 수 없지만 수북이 쌓인 털 아래로 흘러내리던 노란 오물의 냄새와 짙은 짐승의 체취, 홀로 떨며 제 몸에 인박인 고통을 만끽하던 짐승의 절망적인 표정만은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건 마치 웃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거진 귀까지 벌어진 입 속에서 헐떡거리며 새어나오던 발작적인 호흡과 흉하게 드러난 치열 아래로 비어져나온 붉은 혀, 혓바닥 사이에서 끊임없이 비참하게 흘러내리던 타액의 모양 모두 공연장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해맑은 폭소와 닮아 있었죠.

난 바퀴벌레의 눈을 보고 연인의 눈물 젖은 눈을 떠올리던 남미의 여자처럼 무시무시한 공포에 사로잡혔어요. 짐승은 폭소하는 얼굴로 허공을 멍하게 응시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그의 최후를 기다리고 있는 유령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죠. 그 짐승은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어요. 육신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육신의 조직마다 들어차있는 독을 모두 앓아내야 한다는 저주스러운 삶의 비밀을 그 순간 알아냈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난 죽은 짐승의 시신 앞에 주저앉았어요. 그 자리에 앉아서 개처럼 지저분한 오물을, 뜨끈한 체온을 가진 채 몸 밖으로 나가 순식간에 시체처럼 식어버리는 타액을 흘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나서였죠. 난 계속해서 짐승의 시체를 바라보았어요. 그것이 짐승의 시체인지, 짐승의 유령인지-짐승들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로 오래도록.

며칠이 지나 이모는 내게 서커스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나는 고개를 저었죠.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어요. 짐승이 죽어가는 모양을, 경련하며 떨리던 얼굴과 발작하는 듯 낄낄거리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날 본 장면을 내가 가진 언어들로 도저히 표현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이모는 서커스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면서 그날 아침에 집으로 배달온 신문을 보여 주었죠.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기사는 짐승의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었어요. 기사의 왼쪽 면에 큼직하게 실린 사진은 짐승이 아닌 짐승의 그림자처럼 그 뒤에서 옷을 갈아입던 단원, 짙은 화장 속에 뇌쇄적인 눈빛을 파묻은 사내에 관한 것이었죠.

기사는 서커스 천막 한가운데에 내버려진 단원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기술하고 있었어요. 사진에서 그는 짐승의 가죽을 걸친 채 죽어 있었죠. 기사에서는 타살이 의심되는 정황도 있지만 특별한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심장마비와 같은 갑작스러운 절명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전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의 맨얼굴을, 특별히 붉지도 않은 입술과 반쯤 열려 있는 검은 눈동자를, 흑백의 둥근 물방울로 뒤덮여있는 그의 화장기 없는 얼굴, 마치 짐승과도 같이 엎어진 몸 위에 매달려 있는 자그마한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았죠.

난 그날의 기사를 이모 몰래 스크랩해서 일기장 뒤쪽에 오려 놓았어요. 한동안 난 그의 벌거벗은 얼굴을 상상하며 잠에 들곤 했어요. 꿈에는 발작하는 짐승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사내의 검은 물방울 투성이의 얼굴이 번갈아서 등장했어요. 긴 몽정으로부터 깨어났을 땐 결국 죽어가던 짐승과 죽어버린 사내의 얼굴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죠. 어째서 난 죽은 짐승의 눈을 핥아 보지 않았던 걸까요? 어째서 난 죽은 짐승에게 입을 맞출 수 없었던 걸까요?

그때 깨달았어요. 죽음이 버려두고 간 몸에 손을 대고 삶의 껍데기를 해치고 그로부터 구더기를 옮아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걸. 난 한 번도 마들렌의 맛으로부터 콩부레의 환상적인 전경을 기억해내지 못할 테고 결국 흔한 유년조차도 상상하거나 창조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어린아이의 허벅다리를 물어뜯는 검은 개보다도, 동족의 사지를 잘라 제 욕구를 삽입하는 절지동물들보다도 더 진실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살아가게 될 거라는 걸. 난 내가 누구도 해치지 못하리라는 걸, 누구에게도 병을 옮기지 못하리라는 걸, 그래서 내 속에서 썩어가는 독을 홀로 느끼며 결국에는 누구에게도 그 독의 색채에 대해 전해주지 못한 채로 죽어가리라는 걸 알고 있어요. 펠리체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끝내 온전히 닿지 못할 편지를 계속해서 써내려가던 유대인 작가처럼 행동할 수조차 없어요. 난 편지를 보낼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걸.

내가 당신의 이름이 되어줄 순 없어요.

알아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마요. 난 당신보다는 나를, 독에 대한 명료한 인상을 간직하고 있는 나를 질투하고 있으니까. 난 타인의 존재만큼이나 나 자신의 부재를 질투하고 있어요.

고통은 부재하지 않는데.

이야기를 들어줄 이름은 여전히 부재하는걸.

이야기를 계속 할까요? 하고 레몬캔디가 물었다. 부적합한 어휘들이 이미지를 손상시키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괜찮다면요.

괜찮아요. 훼손되지 않은 기억은 없어요. 이미지를 실재하는 것처럼 내놓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밖에 없으니까. 당신의 말이 진실일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계속해도 좋아요. 아니, 계속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조차 가질 수 없게 될 테니.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삼촌과 그리 닮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당신은 그와 당신이 닮았기 때문에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렇죠. 삼촌이 나와 같은 유령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삼촌은 괴테의 묘비처럼 반짝이는 유령이었어요.

그를 증오하는 사람만큼 흠모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건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삼촌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이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꿰고 있듯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난 우리집을 늘 무덤과도 같이 여겼어요. 하얗고 더러운 천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그 속에 반사되는 흐릿한 상들만을 통해 세계를 유추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언젠가는 여린 감관들을 뒤덮고 있는 질긴 천을 찢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죠. 난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아늑한 공간으로 날아들며 머리를 부딪히고 죽어가는 작은 새들과 다를 바 없었어요. 베일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심지어는 누군가의 부재도, 망각조차도 없다는 걸 내게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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