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캔디의 물방울

곧 사연 많은 남자를 죽일 수 있을 거예요.

너는 옷장 속에 방치된 침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익숙한 메일을 확인했다. 다시, 그녀의 메일이었다. 넌 이미 한때 네온소다팝시티의 이야기꾼이었던 레몬캔디의 사연을 다시 떠올렸다.

병원이 붕괴되고 나서 우린 무너진 잔해 속에서 그녀들을 찾았어요. 짓이겨진 멍울들은 제 몸을 트고 피어나는 꽃처럼 아렸고, 붉고 노랗게 번져간 꽃잎들은 아름다웠어요. 우리는 그녀들의 짙게 피어난 채 향기를 견디지 못한 듯 꺾여버린 목들을 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죠. 그녀들을 상징하는 노란 꽃들과 그녀들 중 무엇이 진짜 꽃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들은 아름다웠어요. 그래요. 정말로, 우리는 무엇이 진짜 꽃인지 알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우리는 꽃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진 꽃잎들을 작은 쓰레받기로 모두 그러모아 파란 양동이에 넣고 화장터로 가져갔어요. 양동이에서는 싸구려 향수를 엎어놓은 것처럼 달콤한 악취가 진동했어요.

우리는 숨을 쉬며 그녀들을 떠올렸어요. 우리는 숨을 쉬며 꽃들을 떠올렸어요. 그때 난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뒷자리에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앉아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운전석 옆에 매달린 거울로 힐끔거리고 있었어요. 혹시 그녀들도 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거든요. 알잖아요. 유령과 함께 드라이브를 할 때면 신경써야 할 것들이 있거든요. 음악이라든가 탈취라든가 좌석 등받이의 상태라든가, 유리창에 유령처럼 어스름한 물안개가 끼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그건 유령들을 모욕하는 과장된 캐리커쳐처럼 보일테니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죽어버려서 생전처럼 예민하게 아파하진 못할테지만, 그렇게 슬퍼하지도 못할테지만, 그래도 난 그들의 남겨진 몸 앞에서 그들을 모욕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들의 슬픔에겐 내게 항의할 성대가 없지만, 내게 삿대질할 손가락이 없지만, 우리와의 동반을 거부하고 도망칠 다리가 없지만, 내 목을 조를 팔이 없지만, 그래도요. 난 그들의 슬픔을 아늑하게, 온전히 운반하고 싶었어요.

중요한 건, 내가 보고 말았다는 거예요. 거울 속에서 노란 꽃잎들이 들어 있는 양동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꽃잎들을 움푹 집어들고 삼키는 검푸른 입술을. 붉은 혀로 섞여드는 꽃잎들을, 뭉그러진 꽃의 살들, 이제 향기로운 입안과 꽃잎 중 무엇이 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침과 눈물이 양동이로 떨어지는 것도 분명히 보았어요.

그녀의 입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짙은 단내가 났는데, 난 조수석에 앉아서도 뒷자리에서 풍기는 그녀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아니에요. 양동이에서, 아니, 유골함에서 풍기는 살의 냄새가 아니었어요. 그건 그녀의 냄새였어요. 확실해요. 난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노랗게 저문 살 속에 담기는 순간부터 그녀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정말, 정말 지독한 냄새였어요. 살아있는 이의 타액에 뒤섞여 으무러진 살과 살 속에 침몰하여 썩어가는 타액이 얼마나 매혹적인 악취를 풍겼는지, 당신은 아마 상상도 못 할 거예요. 물론 그 자리에 나만 있던 건 아니었죠. 이상하게도 아무도 그 악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니에요. 내 착각이 아니라니까. 그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냄새였어요. 심지어 난, 그 악취가 내 감관의 가능성조차 넘어선 무언가라고 생각했어요. 감관이 평소처럼 건조한 산문으로 표상할 수 없는 감각, 감관이 단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인 이미지들, 꽃망울처럼 노랗고 붉은, 아니, 성운처럼 노랗고 붉은 덩어리들이 투명하게 커지다가 폭발하는 모습이 두 눈 위로 떠올랐어요. 시각과 청각, 촉각, 미각, 후각 모두 그녀의 냄새를 표현하는 데 골몰하며 일상적인 사물들을 묘사하는 일은 미루어두고 있었죠. 그때, 난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래요. 그곳에 있던 건 나를 습관적으로 구성하고 있던 이명과 환각, 체온 바깥 사물의 냉기와 눈동자의 미끄덩한 냄새가 아니라, 슈퍼문처럼 노랗게 일그러진 그녀의 냄새 뿐이었어요. 그곳에는 그녀뿐이었어요. 그녀는 내가 되지 않았지만 난 그녀가 되었죠. 그녀의 이름과 머리칼, 긴 손가락과 더러운 혀는 모두 내 몸을 비켜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동시에 내 자리까지 확장되고 있었어요. 난 그녀로만, 그녀의 냄새로만 이루어진 성분이었으니까.

그때, 누군가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느냐면서 뒷좌석의 창문을 열었어요. 달리는 차량과 직각으로 교차하는 기묘한 돌풍이 불었고, 그녀의 성분들, 그녀의 자리를, 그녀의 몸을, 그녀의 경계를 늘려가던 향기는 단단한 유리창에 온 몸을 들이박고 튕겨져 반대 창으로 추락하고 말았죠. 냄새는 순식간에 희박해졌어요. 다시, 운전을 하는 사내의 커다란 등과 그을은 얼굴, 커다란 손과 거울 속에서 쉴새없이 양동이로 떨어지고 있는 그녀의 눈물 같은 것이 보였지요. 체온보다 조금 차가운 시트의 희박한 냉기, 흐느끼는듯한 이명,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고 침묵을 종용하는 목소리, 시야의 구석자리에서 홀로 징그럽게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붉은 얼룩 같은 것들, 나를 구성하던 모든 감각들이 분명한 윤곽을 되찾고 돌아와 내 허물어진 살을, 그녀의 냄새를 따라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부드러운 액체를 다시 단단히 붙들어 매고 짓눌러 고요하고 평범한 피부의 윤곽을 만들어냈지요. 냄새는 다시, 감각이 평소와 같은 일상적인 어휘 내에서 서술할 수 있는 강도로 잦아들었어요.

우린 멀미도 하지 않고 화장터에 도착했죠. 노란 살을 들고 걸어가는 그녀의 노란 피부는 마치 꽃과 같았어요. 불 앞에서 난 혼란스러웠죠. 그녀의 눈물과 침이 떨어진 양동이, 더럽혀진 꽃잎들과, 꽃을 머금고 노랗게 일어난 그녀, 꽃과 같이 아름다운 그녀 중 무엇을 화장해야 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녀는 웃으며 양동이를 들고 불을 따라 기어들어갔어요.

그제야 난 그녀가 유령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난 그녀를 두고 불 밖으로 걸어갔어요. 그녀가 안네 마리가 아니었다는 걸, 그녀의 입술은 그보다 얇았고 그녀의 혀는 그보다 붉었으며 그녀의 손가락은 그보다 길었다는 걸 삼촌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어쩌면, 어쩌면 마리 이모는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할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다행히 칼 삼촌도 있었죠. 난 거의 십 년 가까이 그 집을 비우고 떠돌아다녔으니까, 그곳이 낯선 이의 장소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한때 내 장소였던 집이 이젠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유년처럼. 다행히 그곳에는 삼촌이 있었던 거예요. 나는 할아버지의 실험실-이제는 공중을 떠돌던 시간의 금빛 물방울들 대신 희게 빛나는 먼지만이 가득한- 한때 꽃이 가득했던 이모의 방, 평범한 서재였던 내 방을 차례차례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칼 삼촌이 머물던 다락으로 올라갔어요.

그때, 난 예감하고 있었어요. 그날 다락의 어둠은 유독 밝았거든요. 마치 누군가의 희미한 체온을 머금고 뭉그러진 암흑처럼. 난 구석자리에서 떨고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어요. 어둠에 뒤덮인 그림자는 살과 꼭 붙어 꼭 그의 형상만한 크기로 일렁거렸죠. 난 그의 등으로 다가갔어요. 삼촌은 나를 뒤돌아 보지도 않고 말했죠. 마리, 당신이 가 버린 줄 알았어. 또 나를 두고. 그는 곧장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유령을 끌어안았어요. 그리고 그녀의 유령에게 입맞추었죠. 난 그녀처럼 가느다란 손가락과 그녀처럼 노란 얼굴, 그녀처럼 길고 숱이 많은 속눈썹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안개처럼 미지근하고 축축한 입술. 턱에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실험실의 개들, 종소리를 들으며 침을 질질 흘리며 죽어간 삼백마리의 개들처럼 그의 침이 입안으로 흘러들었어요. 내게 입을 맞추던 유령, 그가 입을 맞추던 유령이 서로의 몸 속에서 붉은 입안을 떨며 속삭이고 있었죠.

난 당신을 두고 떠났어요.

거짓말. 유령처럼 차가운 입술은? 지독한 꽃향기는? 당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당신은 착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냄새가 모두 내 냄새는 아니에요. 당신이 형용할 수 없는 대상이 모두 나인 것은 아닌 것처럼. 들어봐요. 그녀의 입술은 그보다 얇았고 그녀의 혀는 그보다 붉었으며 그녀의 손가락은 그보다 길었다는 걸, 당신에게 알려주기 위해 찾아왔으니까.

나는 삼촌의, 삼촌은 나의 노란 피부를 보고 입을 다물었어요. 난 찬물로 몸을 씻고 오래도록 방치되었던 내 서재로 들어갔죠. 그날부터 난 삼촌 곁에 살았어요. 그는 종종 겨울 파카를 뒤집어쓰고 나가 두 사람이 한 달동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통조림과 생수를 사 왔고 난 종종 여름옷처럼 얇아진 낡은 옷을 입고 나가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책과, 삼촌이 작곡을 하고 내가 글을 쓸 종이들을 사왔죠. 우리는 종종 이모의 유령에게 입맞추었지만 이모의 유령은 여기에 없다는 걸 밤마다 악몽을 꾸며, 햇빛을 쬐며, 뜨고 지는 별을 보며 문득문득 깨달았죠. 그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린 둘 다 이모를 닮았고 둘 다 이모를 사랑했으며 둘 다 간혹 유령을 보았지만 둘 다 이곳만큼은 유령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무지개를 찾으러 떠났던 소년이 무지개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에 엉뚱하게 정착한 것처럼, 우리도 유령이 아닌 유령을 계속해서 오해하며 입을 맞추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삼촌의 냉장고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어째서 그전까지는 몰랐던 걸까요? 정말 유령에 홀리기라도 했던 걸까요? 그의 다락 한가운데에 엉뚱하게 누워 있는 냉장고를 어떻게 발견하지 못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수많은 입맞춤을 하는 동안, 그렇게 수많은 하루들을 건너가는 동안, 구석자리에서 흐느끼는 그를 부르는 그 많은 아침 내내. 그곳의 어둠은 그리 짙지도 무겁지도 않았는데.

유령과 입을 맞추고 난 찬 물에 몸을 씻었어요. 다시 삼촌의 방으로 가자, 그는 여느 때처럼 구석자리에 얼굴을 숨긴 채 잠들어 있었죠. 이제 난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그가 잠들어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어요. 그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난 무언가에 발을 부딪히고 말았어요. 보지 않아도 뭉그러진 살이 시뻘겋게 부풀어오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죠. 그제야 어둠 속에서 진동하고 있는 하얀 윤곽선이 눈에 들어왔어요. 관처럼 길쭉하고 네모난 모양에 하얀 표면, 부들부들 떨며 새어나오는 기묘한 냉기. 그건 냉장고였어요. 틀림없었죠. 그런데 냉장고라니. 냉장고가 있었다면 그는 어째서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먹을 정도의 통조림만을 사 온 것인지, 알 수 없었죠. 혹시 이것도 유령인가? 아니야. 유령은 모두 죽어버렸다. 화장터에서 제 몸을 태우며 흐느끼던 여자를 목격한 건 다름아닌 너였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어요. 난 하얗고 평평한 면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난 냉장고의 움푹 파인 뼈를 잡아당겼고 곧, 난 냉기에 희미해진, 그러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한 악취를, 유령의 악취를, 죽음의 악취를, 삶의 악취를, 이모의 악취를 맡을 수 있었어요. 냉장고에는 칸막이도 없었어요. 그곳에는 사람이라면 먹어선 안될 금지된 음식만이 누워 있었죠. 노란 피부와 가녀린 손가락, 숱이 많은 속눈썹과 검은 입술, 난 그에게 그녀의 부재를 전할 필요도 없었던 거예요. 그녀의 몸은 확실히 이곳에 남겨져 있었으니까, 마음을 잃은 몸은 이곳에, 하지만 몸을 잃은 마음이 이곳에 없다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리 없으니까.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잘 다녀왔어, 하고 말해주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난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짐도 외투도 챙기지 않고 집을 뛰쳐나왔죠. 유령을 잃은 내 비참한 유령을 구석자리에 남겨둔 채로.

난 새벽기차를 타고 도망쳤어요. 노을에 그을러 붉고 투명한 껍질에 무참히도 부연 연기가 훅훅 내뱉아지면 위로 위로 끊임없이 밀려나가는 듯했던 역사의 천장을 기억해요. 난 표도 사지 못하고 역사에 쭈그려 앉아 몸을 떨고 있었죠. 행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마다 약속된 시각과 예정된 자리에 서 있었어요. 그들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었죠. 그곳에 진짜 방랑자는 없었던 셈이에요. 예전엔 그런 사람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도시와 도시를 유랑하는 사람들, 시계도 없이 제 몸에 흐르는 시간을 나침대 삼아 언어와 언어 사이에 흐르는 수맥을 따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요. 살에 파고든 기생식물의 뿌리처럼, 촘촘하고 정교한 모세혈관처럼 도시의 곳곳으로 파고든 길목들을 파고들며 그곳의 그늘마다 웅크리고 앉은 이들에게 주먹질을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에요. 그곳의 응달에 고요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부랑자들을 뒤흔드는 소리 같은 거요. 시뻘겋게 일어나 붉게 엷어진 피부 채로 단단한 거스름이 생겨 마치 부서진 빨간 플라스틱 판처럼 생긴 배를, 초록 양동이에 상반신을 담고 잃어버린 하반신을 그 양동이 속에 숨기고, 하반신의 부재를 숨기고, 늘어진 창자에서 새어나오는 오물을 고스란히 숨기고 있던 사람들의 그릇을 뒤집어 오물 채로 내동댕이 치며 전염병과 같은 노래를 옮기고 다니는 사람들 말이에요. 부랑자에게 훔쳐낸 돈을 다른 부랑자들의 양동이에 던져넣고 부랑자에게서 훔쳐낸 노래를 다른 부랑자에게 들려주는 사람들. 난 구석자리에 앉아 그런 사람이 내게로 다가오기를, 나를 까뒤집고 흔들며 모욕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 사람이야말로 내게 열차표를 줄법한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 쉽게 보이진 않았죠. 내가 없는 사이 이 도시는 수맥이 막혀 썩어가는 하천처럼 짙은 녹빛으로 변해버렸던 거예요.

난 하는 수 없이 예정된 칸과 시간에 정갈한 몸을 누이고 시간이 완벽한 윤곽을 재단해주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끼어들었어요. 구태여 역무원을 속일 필요도 사람들의 뒷주머니에서 표를 훔칠 필요도 없었죠. 그들이 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도 그들을 따라 들어갔어요. 삼촌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의 그림자 냄새가 배어든 탓인지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않았죠. 열차 안에서 표 검사를 하는 역무원조차 나를 피해갔어요. 그래요. 난 화장실에 숨어있을 필요도 없었다니까요. 열차의 칸과 칸 사이에 이물처럼 끼어 있는 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어요.

기차는 국경을 넘고 아득한 북쪽으로 올라가는 횡단열차였어요. 북쪽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면 언젠가 추락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죠. 역의 이름을 안내하는 외국어가 수 차례 뒤바뀌며 회전하는 동안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음절과 음절들이 들리지 않는 형태로 배열되며 기묘한 소리를 내어도, 그 소리를 알아들은 승객들이 나를 지나치며 열차에서 내려도 나는 노래도 부르지 않고 가만히 쭈그려 앉아 있었어요. 북쪽으로 올라가던 기차가 북쪽으로 내려가고, 다시 북쪽으로 올라갈 때까지. 모음의 종류와 배치들을 바꾸던 외국어가 익숙한 입술의 형태로 돌아갈 때까지. 난 그대로 앉아서 기다렸어요. 익숙한 모어가 문을 열었을 때, 난 익숙한 이목구비를 가진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내렸어요. 미련이 남았던 건 아니에요. 그저 그곳에서, 한 바퀴를 뒤집어 돌아온 고향에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요. 당신과 했던 약속이 맞아요. 난 지도도 없이 무작정 걸어나갔죠.

길을 잃을까 두렵진 않았어요. 당신에게 도착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계속 걷다 보면 시간이 나를 인도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당신에게 다가가는 동안 난, 골목의 응달, 가느다란 혈관 구석에 종기처럼 웅크리고 있던 부랑자들도 발견했죠. 그들은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어요.

하느님은 우리를 벌하시리라. 겁 없이 태어나 돌아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얼른 죽게 하시고 선로에 뛰어든 위인들을 얼른 죽게 하시고 옥상에서 떨어진 어린 천사들을 얼른 죽게 하시고 날개가 한쪽만 달린 사람들을 반편이라 비웃던 이들을 살려 두리라 그들에게 명예와 수치와 진실과 시간과 장소를 주리라 비웃던 이들 겁간하던 이들 내몰던 이들 고문하던 이들 고문받던 이들의 시퍼런 손뼈에 입을 맞추며 울던 이들을 영원히 살게 하시리라 그들은 강물에 떨어져 죽지도 않을 것이고 겨울 강에 몸을 던져도 나룻배를 타고 지나가던 연인에게 구조될 것이고 아파트 창문에서 떨어져 죽지도 않을 것이고 목을 매 죽지도 않을 것이고 가스를 마시고 죽지도 않을 것이고 잘린 손목에서 더는 못쓰게 되어버린 손가락에서 하얀 피를 흘리며 죽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의 자살은 완전하지도 불완전하지도 않을 것이니 그들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이리라 살아남은 자들은 영원히 살 것이니 살아서 글을 쓸 것이니 하느님은 우리를 벌하시리라

난 그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죠. 그의 노래가 곧 내 노래가 되리라는 것도. 난 부랑자의 기도를 따라 불렀어요.

하느님은 우리를 벌하시리라. 살아남은 우리를 벌하시리라. 우리는 끝까지 살아가리라. 추억도 미래도 없이, 삶만이 계속되리라.

그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들이 당신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어요. 그들의 기도는 너무 매혹적이었으니까. 특히 우리가 벌을 받으리라는 구절 말이에요. 그 말은 나를 구원하는 속삭임 같았어요. 내가 벌을 받고 있다니, 지독하고 참혹한 벌을, 죽음보다, 그래, 가장 비참한 죽음보다도 더 비참한 벌을 받고 있다니. 여자의 잘린 가슴이 코코넛 열매 같다며 비웃던 사내와 같은 벌을 받고 있다니. 악몽에 쫓기며 더러운 바닥에, 사람의 목을 올가미로 잡아끌며 낄낄거리던, 목을 따인 사람이 검붉은 피를 흘리며 꼴사납게 죽어갔다고 낄낄거리던 살인자의 증언 속 바로 그 바닥에 엎드려 꺽꺽 날숨을 구토해내던 사내와 같은 벌을 받고 있다니. 소녀의 배를 주무르며 진창에 거꾸로 처박고 그녀의 무고한 두 팔이 제 목을 졸랐다며 거짓으로 제게 호소하던 사내와 같은 벌을 받고 있다니. 살아남은 것만으로 그 벌을 받을 자격이 있다니. 이봐요. 난 비극을 갈망하던 여느 여주인공처럼 비참하게, 가장 비참하게 죽어가길 바라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가장 서글픈 비극을 위해서는 무참하고 억울한, 그리고 무고한 삶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죠. 삶이 길면 길수록 죽음도 아픈 법이니까. 오래도록 헐떡거리며 견뎌낸, 고통뿐인 지루한 삶은 죽음의 일부로 포섭되기 마련이니까. 그런 사람의 삶에서는 죽음에 대한 갈망과 증오를 벗겨낼 수 없으니까. 그런 비극 속에서 삶과 비극은 엉망으로 얽혀든 모세혈관과도 같으니까. 억지로 떼어내려 한다면 출혈을 하겠죠. 낯 모르는 은인이 그의 손목을 감싸쥐고 지혈을 해 벌이 끝나지 않은 이 삶에 붙들어 놓을 때까지.

당신은 내가 늦었다고 했죠. 난 언제나 이끌림을 따라 태엽을 감는 당신의 투명한 손가락을 향해 자동장치처럼 삐걱대며 노래를 부르며 기도를 하며 걸어갔지만, 그렇기에 조금도 늦어졌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약 늦었다면, 그래서 당신의 운명을 망쳐놓았다면, 그래서 당신을 황홀하게 해 주었다면, 그건 아마 그 노래 때문이었을 거예요. 난 그 노래 때문에 잊고 있던 갈망을 다시 떠올렸으니까. 죽어가던 모든 이들의 비참을 모두 겪어보고 싶다고, 그래서 가장 낭만적이고 부조리한 죽음을 맞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난 어머니를 범하고 아버지를 죽인 채, 아버지를 범하고 어머니를 죽인 채 사막을 떠돌던 눈 먼 부랑자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내겐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었죠. 그들은 서로를 벌하고 범한 뒤 각자의 환상 속에서 죽고 말았죠. 그들은 살아남은 자의 부류에, 그리하여 영원한 벌이 약속되었다는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지 않았던 거예요. 마리 이모도, 할아버지도, 다 마찬가지였죠. 그들은 나를 두고 가면서 유언조차 남기지 않았어요. 그들은 내게 이렇다 할 유산조차 남겨주지 않았죠. 할아버지가 떠나간 집은 요제프 칼 삼촌의 유령이 차지하고 있었고, 마리 이모의 아름다운 나체 또한 칼 삼촌의 냉장고에 잠들어 있었어요. 난 아무런 약속도 절망도 없이 떠돌았어요.

당신에게 이끌려 가는 순간, 갑작스러운 인력이 나를 이끌어 당신의 아파트까지 데려가는 순간,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에요. 난 곧 죽으리라는 걸, 그래서 벌을 받는 사람의 부류에도, 살아남은 사람의 부류에도, 먼저 죽은 사람의 부류에도, 시를 쓰는 사람의 부류에도, 자살자의 부류에도, 광자의 부류에도, 부랑자의 부류에도 속하지 못하리라는 걸 직감했어요. 곧 당신은 내게 예정된 모든 현재를, 모든 비극을 빼앗아가리라는 것도. 난 하찮고 범상한 죽음을, 하느님조차 발견하지 못할, 그래서 구원받지도 벌을 받지도 못할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난 서재의 구석자리에 앉아 울었던 날처럼 당신의 아파트 현관 앞에 앉아 당신을 기다렸죠.

여기는 귀신들만 사는 집이에요.

하고 말했을 때, 당신의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당신을 기억해요. 나를 무참하게 살해하던 당신의 창백한 팔을 기억해요.

그래요. 난 당신에게로 돌아갔어요. 당신의 노래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응달 속에 웅크리고 있는 나를 응시하던 검은 눈동자를, 수천 겹의 날개를 겹쳐 놓은 것처럼 검게 반짝거리던 시선을. 당신은 다시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지만. 당신의 앞에서 울음을 애걸하며 울어야 했던 쪽은 나였지만. 그래도 난 당신에게로, 매혹적인 노래의 방향으로 돌아온 거예요. 기도조차 포기하고. 죄를 범한 자들에게 내 무고를 의탁함으로써 죄를 짓고 있다는 황홀한 죄악감마저도 포기하고. 그러니 당신은 나를 버리고 떠나선 안 돼요. 난 끝까지 당신에게로 돌아갈 테니까. 당신의 문 앞에서 초인종을 따라 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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