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아원 1

소녀와 부모는 긴 복도를 따라 걸었다. 베이지색 벽지에는 분홍빛의 꽃무늬들이 반점처럼 퍼져 있었다.

소녀는 꽃무늬들을 따라 걸었다. 부모는 소녀가 자신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나 희미한 웃음소리가 소녀의 내부로 번져와 종종 간신히 붙잡고 있던 숫자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내부는 습했다. 부모는 소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소녀는 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녀의 무릎이 느슨해졌다. 몸들이 서로 밀착되었다.

소녀는 벽 밖으로 쏟아져내리는 꽃잎들을 보았다. 그들은 몇 개의 닫힌 문을 지나쳤다. 그들은 어느 문으로 향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처럼 그들은 허둥거렸다. 그들은 오해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활짝 열린 문 안쪽에서 남자의 작은 머리를 보았을 때 그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진을 통해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교장이었다.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있었던 사진과는 달리 사내의 실물은 놀랄 정도로 괴이한 비율이었다. 얼굴은 새처럼 작았으며 몸은 돼지처럼 부풀어 있었다.

부모는 소녀를 데리고 사내의 책상 앞 바닥에 앉았으나 교장은 새 부리처럼 자그마한 입을 벌리며 키득거렸다.

그는 곧 교사에게 의자들을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교장은 그들을 책망하듯 말했다.

부모는 교장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일찍 온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지 골몰하느라 멈칫거렸다.

교장은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고 곧 소녀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열린 문 바깥에서 들어왔다. 그는 양팔로 의자를 들고 머리 위에 다른 의자의 좌석 부분을 올려놓고 있었다.

저분이 교사인가요? 부모는 교사의 어린 외모에 깜짝 놀라 물었다. 마치 학생처럼 보이는군요.

그들은 이 말이 농담으로 받아들여질지 판별해보겠다는 듯 신중하게 말을 던졌다.

교장은 소년이 학생이며 동시에 교사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생입니다. 하고 교장은 덧붙였다. 이곳의 교사들은 대부분 대학생입니다. 그들은 아직 배워야할 것이 남아 있으므로 학생이고 또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 있으므로 교사입니다. 교사와 학생은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 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교사가 되어버리는 건 아니죠.

하지만, 하고 소녀의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학생은 언젠가 교사가 되고 더 이상은 학생이 아니게 되지 않나요. 난 한 번도 학생에게 배워본 적이 없어요. 교사는 언제나 교사였죠. 처음부터 교사로 태어난 것처럼. 아마 그들은 학교에 다닐 때에도 교사였을 겁니다.

교장은 서글프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경우도 있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겁니다. 교사가 어느날 갑자기 학생이 되어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몇몇 교사는 처음에는 그저 교사로 채용되었을 뿐이었죠. 그들은 이전에도 교사였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학생이 되어버린 거죠. 처음 그들이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할 때만 해도 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린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죠. 더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 말을 치명적인 암시로 만들어버렸어요. 어느날 갑자기 학생이 되어버린 겁니다. 교사직을 그만두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그들은 교사이고 또 학생이 된 거죠.

소녀의 아버지는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나 교수는 교사의 둥근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오히려 잘 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장은 그들이 대답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 배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워야 함을 가르칩니다. 누구보다도 절실히 배워야 하는 것이 학생의 직분이죠, 그런 의미에서 교사가 학생인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닙니다. 아니, 학생보다 더 좋은 교사는 없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소녀의 어머니는 숨을 들이키고 다시 내뱉으며, 저분은 너무 어리지 않나요 설마 다른 교사들이 전부 저분처럼 어린가요? 하고 물었다.

교장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교사를 채용할 때 그들의 나이를 보지 않습니다. 물론 이력서에는 나이를 기재하도록 되어 있지만 나이에 신경을 기울이는 채용관은 아무도 없죠. 우리는 나이를 신경쓰지 않습니다. 교사가 갑자기 학생이 되어버릴 수 있고 학생이 교사가 될 수 있다면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아이는 아주 늙고 어떤 어른은 아주 어린 법이죠.

하지만 장담하건대, 교사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소년이 듣지 못하도록 속삭였다. 따님보다 더 나이가 어린 교사는 없을 겁니다.

교사가 갑자기 학생이 되는 경우도 있다면, 소녀의 아버지는 기대하는 어투로 말했다. 이곳에서 학생이 교사가 된 경우도 있습니까? 우리 딸도 이곳의 교사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건 완전히 다른 경우는 아니지만 절차상의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군요. 가령 교사가 학생이 된 경우, 그는 전혀 다른 기관-대학교-에 입학시험을 보아서 합격하여 대학교에 다니고 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교사가 되는 경우에는 별도의 채용 절차가 필요하죠. 부모님도 이해하시겠지만 학생을 선발하는 절차와 교사를 채용하는 절차는 전혀 다르니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학교에서 모교 출신 학생이 채용된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눈 멀지 않은 교사만을 채용하고 눈 먼 학생만을 선발하니까요. 하지만 응시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학교를 다니는 중에 언제든 교사 채용 시험에 응시할 수는 있습니다. 채용 가능성만을 제쳐놓고 생각하시면 다른 학교와 정확히 같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따님이 교사 채용 시험에서 합격했다고 가정해 보자면 일반 학교의 학생들이 그렇듯이, 따님은 학생이었다가 교사가 되는 것이겠죠. 물론 원한다면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 채용 시험에 응시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그럼 따님은 가장 어린 교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오랫동안 학생으로만 남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학교에 입학한다면 그러한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자유입니다. 터무니없는 꿈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학생들의 직분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교장은 엄숙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우선은 입학 면접에 통과해야겠죠. 저희는 따님의 입학을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다만 한 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제출하신 서류에 거짓이 있다고 판별되는 경우 따님의 입학은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저었다. 서류에 거짓은 없었어요. 모두 국가에서 발급받은 거예요.

소녀는 교장의 작은 머리에 덥수룩하게 돋아난 머리칼을 세고 있었다. 머리칼들은 엉망으로 뒤얽혀 있었고 또 보이지 않는 곳에 파고들어 있었기에 머리칼을 세는 일에는 상당한 정도의 상상력이 요구되었다.

교사 소년이 소녀의 곱슬머리를 건드리며 장난을 치는 탓에 소녀는 벌써 스무 번째 머리칼을 다시 세어야 했다. 소년은 소녀의 머리칼 위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얹은 채 킬킬거렸다.

소녀는 돌아보지 않고 교장의 머리칼만을 응시하였다. 꽃잎 하나와 다섯, 열둘과 서른셋, 소녀는 교장의 이마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보았다. 소녀는 머리칼의 끝이 파고드는 교장의 검은 눈을 보았다. 느슨하게 휘어지며 응시하는 두 눈, 소녀는 일그러진 소녀들을 보았다.

이게 마지막 기회입니다. 서류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지금 밝히시는 게 좋을 겁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소녀의 어머니는 그의 손등을 꼬집으며 먼저 소리쳤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 서류들은 진짜예요. 다만,

교장은 다만? 하고 말을 받았다.

다만,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선생님, 기적이요. 맹세컨대 그 서류들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지만 그 진실이 항상 현재와 상응할 수는 없는 거예요.

우리 애는 어제 눈을 떴답니다. 밤새 얼굴이 눈물로 다 젖어서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걸 보고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전 이 애 눈이 완전히 망가지려나보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반대였어요. 선생님. 믿어지시나요?

어제 아침에 이 애는 방 안에서 비틀거리면서 제게 다가오더군요. 전 그때 문 앞에서 이 애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요. 이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언제나 이 애를 발견하고 이 애에게 다가가는 건 저였지 이 애가 아니었어요.

딸은 내 품에 끌어안겨서 울더니 곧 식탁으로 가서 물을 마시더군요. 이 애가 혼자 물컵에 손을 뻗고 컵을 잡아서 물을 마시는 걸 보고 이 이는 죽을 듯이 놀랐어요. 하지만 이 애는 마치 평생 멀쩡한 눈으로 살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죠. 그래서 우리도 이 애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애의 눈에 우리가 고스란히 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죠. 우리는 이 애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 애를 응시하다가 갑작스럽게 이 애와 눈을 마주치고 깜짝 놀라곤 했어요. 하루에 거의 수백 번은 눈이 마주쳤을 거예요. 우리가 이 애를 들여다보았듯이 이 애가 우리를 바라본다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가 없었어요.

여자는 교장에게 말하지 못한 말들에 대해 생각했다. 딸의 눈은 놀랍도록 투명하고 검었으며 그곳에서 여자는 웃고 있었다고. 여자는 웃고 있지 않았음에도 부드러운 곡률에 되비친 여자는 물결처럼 미소짓고 있었는데 그것이 소스라치게 두려웠다고.

소녀는 어디에서나 여자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소녀를 감당해내지 못했다. 여자는 버릇처럼 소녀를 응시했으며 그때마다 소녀는 곧고 투명한 응시를 되돌려 주었다.

여자는 더 이상 소녀의 여린 눈꺼풀과 부드러운 입술, 연한 분홍빛이 도는 볼과 목선에 대해 생각할 수 없었다. 여자는 소녀를 관찰하기 위해 소녀의 응시를 감당해야 했다.

그것은 하루만의 일은 아니었다. 여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소녀의 불가해한 응시에 갇혀 있었다. 여자는 소녀가 눈 멀었을 때보다 더 오랫동안 소녀에 대해 생각했으며 소녀의 곁을 맴돌아야 했다. 소녀는 여자를, 여자의 응시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여자는 소녀가 그녀의 내부를, 아직 여자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붉은 살과 점막을 뚫어지게 응시했으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분명 그때 소녀는 눈 멀었음에도.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소녀는 정말 눈 멀었었나?

소녀는 경악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서툰 것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었지 소녀는 아니었다. 소녀는 그들의 서툰 관찰을 비웃듯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시선을 그들에게 쏘아보내고 있었다. 마치 소녀의 응시는 정확하며 그들의 응시는 틀렸다는 듯.

그들은 소녀의 곧은 응시와 마주칠 때마다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소녀의 볼과 눈꺼풀, 입술과 목 언저리를 떠도는 시선, 멀미처럼 흔들리는 눈을 소녀는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소녀의 말은, 소녀의 행동, 소녀의 표정과 소녀의 얼굴은 이제 모두 여자의 눈, 여자의 응시를 향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소녀가 반영하는 여자의 웃음을 헐벗은 눈으로 보아야만 했다.

그녀는 끔찍하게 벗겨진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응시, 대체 언제부터?

안과 의사는 소녀가 눈 멀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녀의 눈 멀었음을 증명하는 여러 증서들도 작성해 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구부러진 글자들이 가로놓인 진단서를 그들은 상장처럼 보관해 두고 있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눈 먼 소녀의 부모였고 그것만으로 행복하였다. 그들은 여자도 남자도 아내도 남편도 소녀도 어른도 실패한 배우도 실패한 작가도 한량도 아니었다. 그들은 눈 먼 소녀의 부모였다.

그러나 소녀는 오래 전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소녀는 그들의 안심한 미소를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소녀는 그녀의 안심한 시선을 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소녀는 죽을 듯 행복한 그들을 보았을 것이다.

눈 먼 소녀 앞에서 그들은 서로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소녀의 불구보다 오래 살아남자고 다짐하였다. 그들은 소녀의 눈멂을 소녀보다 더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그들 앞에서 소녀는 순식간에 눈멂을 벗어내었다. 마치 더러운 허물을 벗어내듯이 소녀는 그들이 사랑하던, 그들의 신이었던 눈멂을 구겨버렸고 그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소녀의 눈멂을 강탈당하였다.

의사는 소녀가 죽을 때까지 눈 먼 채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소녀는 눈 먼 소녀였다. 아무도 그들에게 소녀가 회복될 수 있음을 경고하지 않았다. 그들이 영원토록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눈멂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음을 아무도.

소녀는 침을 내뱉듯 여자의 얼굴에 독처럼 치명적인 응시를 내던졌다.

여자의 피부는 산성과도 같은 시선에 얽어 주름졌고 여자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늙어버렸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들은 소녀의 눈멀음을 잃었다. 소녀의 눈멂을 애도할 새도 없이 소녀는 그들을 바라보며 눈맞춤을 요구하였다.

여자는 소녀가 절망적으로 낯설었으나 누구에게도 그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여자는 눈물이 차 구부정한 시선으로 교장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으면서,

생각해 보니 우리는 안과로 가야 했어요, 선생님, 학교가 아니라 안과로요. 하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죠. 우린 오늘이 면접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어요.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 얘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난 꽃잎을 세고 있어, 엄마, 라고 하더군요. 꽃잎을 세고 있다고요.

소년의 손가락이 소녀의 귀 끝을 스쳤다. 소녀는 소스라치며 소년을 돌아보았다. 소년은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소녀에게 건네었다. 소녀는 레몬맛 사탕을 입에 물고 형광으로 반짝이는 사탕 껍질을 주머니에 넣었다.

글쎄요.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어서 말입니다. 하고 교장은 웅얼거렸다. 따님이 일반 학교로 가지 않고 여기서 교육을 받아도 괜찮을까요?

소녀의 아버지는, 우리는 아주 오래 기다렸어요 선생님, 하고 애원하였다.

교장은, 그래요, 벌써 삼 년 동안 대기하셨더군요. 하지만 우리 학교는 아주 특수하고 유일한 기관이니 대부분의 학생들은 삼 년 이상 대기하여 들어온답니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하고 소녀의 아버지는 침울한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했다. 삼 년이 아니라 삼 년 육 개월이었습니다 선생님, 만약 삼 년째에 자리가 났다면 그래서 삼 년째에 이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면, 선생님 그랬다면 우리 아이는 영락없이 눈 먼 아이였을 것이고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정말 눈 먼 아이라는 사실을, 차도도 없이 눈 멀어버린 아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당신은 삼 년 육 개월이 되던 날, 그러니까 오늘 말이에요 선생님, 아이를 쫓아내셨을 겁니까? 갑작스럽게 눈 멀지 않게 되어버렸다고 해서 이 애를 눈 먼 아이들의 천국에서 쫓아내실 겁니까?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소녀는 계속해서 치근덕대는 소년이 빨리 교장실에서 나가기를 바라였으나 아무도 소년을 쫓아내지 않았다. 부모에게는 교사를 쫓아낼 권한이 없었으며 교장은 소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다.

교장은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숙고하고 있는 듯 끔찍하게 느릿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그토록 원하-신-다-면, 그러니까 당신들은 아무것도 속인 것이 없다는 말이죠, 따님은 정말 눈 먼 아이였고 안과 의사도 그것을 확증했으며 국가도 그것을 승인했다면 그렇다면 아주 예외적으로 따님을.

교장은 홀로 중얼거리다가 갑작스럽게 소리쳤다. 알겠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조항으로 따님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따님은 다른 눈 먼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님은 점자를 배우고 눈 먼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눈 먼 아이들을 위한 부축과 간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은 소녀의 예외조항과 관련된 여러 서류들을 즉석에서 작성하여 프린트하였고 부모는 인감도장을 찍었다. 서류엔 소녀가 다른 맹아들과 같은 교육을 받게 될 것이며 다만 소녀가 원한다면 재학 중 언제라도 교사 채용 시험에 응시할 기회가 제공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부모는 소녀를 끌어안고 주말에 찾아오겠다며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소녀에게 속삭였다. 소녀는 울지 않았다. 부모가 사라진 뒤에도 소녀는 버려진 개처럼 부모의 빈자리를 응시하지 않았다.

소녀에게 장난을 치며 키득거리던 소년은 갑작스럽게 소리치며 소녀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하였다. 교장은 검은 가죽의자에 앉아 그들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년은 이제 자신이 소녀의 교사이며 소녀는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소년의 말에 따라야 한다고 소리쳤다.

소녀는 귀를 막지도 않고 눈을 감지도 않고 소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소년은 소녀를 이끌고 교장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 어디에도 부모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뒤돌아보지 않았으므로 교장이 책들 사이로 서서히 파묻히는 모습을, 마치 날카롭고 탐욕스러운 이빨을 내보인 페이지에 잡아먹히듯 엎드려 감추어지는 광경을 보지 못하였다.

소녀는 벽지에 새겨진 꽃잎들을 세느라 걸음을 멈추었다. 앞서서 가던 소년은 한없이 멀어진 소녀를 신경질적으로 부르며 빨리 오라고 재촉하였으나 소녀는 꽃잎을 세는 일과 걸어가는 일을 한 번에 해낼 수 없었다.

결국 소년은 소녀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소년은 이곳의 학생들은 아무도 꽃잎들을 세지 않는다고, 설령 꽃잎들을 세더라도 그것은 가상의 꽃잎이지 벽지에 있는 실제적인 꽃잎들은 아니라고 소리쳤다.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넌 이곳의 학생처럼 굴어야 해, 왜냐하면 넌 이곳의 학생이니까. 적어도 교사 채용 시험에 합격해서 교사가 되기 전까지는 넌 맹아로 살 수밖에 없어.

소년은 소녀에게 여러 방들을 둘러볼 기회를 주었다. 소년은 여러 열쇠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꾸러미를 꺼내어 서툴게 문을 열었다. 땀에 젖은 손가락이 몇 번이고 미끄러졌다. 소년은 만능열쇠는 교장만 가지고 있다고 우물쭈물 변명했다.

소녀는 아무것도 물은 적이 없었지만 소년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넘겼다.

첫 번째 방에는 네 명의 소녀들이 있었다. 소녀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소녀들의 흰 손가락이 페이지를 애무하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소녀는 점자책을 읽는 소녀가 두 명뿐임을 발견했다.

소년은 맹아원에서는 언제나 일대일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너에게 내가 있듯 눈 먼 아이 둘에 눈 멀지 않은 교사 둘이 함께 있는 거야.

소녀는 눈 먼 아이가 더 이상 눈 멀지 않게 될 때, 눈 멀지 않은 교사가 눈 멀게 될 때 그들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소녀들은 쌍둥이처럼 닮았으므로, 소녀들은 모두 희고 작고 가녀렸으므로.

소년은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눈 먼 아이는 영원히 눈 먼 아이이고 눈 멀지 않은 아이는 영원히 눈 멀지 않은 아이라고.

소녀는 소년이 그녀보다 약간 키가 작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년은 소녀에게 두 번째 사탕을 주며 곧 소녀도 점자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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