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아원 2

소녀는 사탕을 그대로 호주머니에 넣고서는 소년을 따라 두 번째 방으로 건너갔다. 꽃잎은 백아흔세 개였다.

두 번째 방은 모래와 작은 공들로 뒤덮여 있었다. 소년은 그곳이 놀이방이라고 말했다. 구석자리에서 맨발을 쪼그리고 앉아 모래성을 만들던 소년 두 명이 그들을 건너다보았다.

소년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그들에게 소녀를 소개했다. 소년은 그들이 모두 교사라며 소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할 것을 요구했다.

소녀는 소년을 따라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했다. 소년들은 꺄르륵 웃으며 모래성을 헤집어 놓았다. 그들은 소녀의 옆에 서 있는 소년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소년은 소녀의 귀에 입술을 붙이고 저들은 임시로 채용된 교사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정규직 교사들이 눈 먼 아이들 곁을 항상 따라다니면서 지키는 반면 저들은 자신들이 고용된 시간 외에는 결코 아이들 곁에 머무르지 않으면서 최대한 자신들의 직업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덧붙였다.

소녀는 소년이 놀이방의 교사들을 경멸한다고 느꼈으나 그 까닭은 알 수 없었다.

소녀가 눈 먼 소녀들 곁에서 책을 읽던 소녀들에 대해 묻자 소년은 그들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고, 거의 적대적일 정도로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구석 자리에서 허물어진 모래성을 다시 쌓고 있던 소년들이 소년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소년은 교사 소녀들이 읽는 책의 문장들은 학생 소녀들이 읽는 점자의 문자와 정확하게 대응되는 부분이라고 외쳤다. 진정한 교사들은 학생들과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며 교사들은 학생들이 보지 못한 것을, 그러나 학생이 보기를 갈망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학생에게 전한다고 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진정한 교사는 학생과 감응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는 학생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사 소녀들은 특별한 언질 없이도 학생 소녀들과 정확하게 같은 문장을 읽을 수 있고 그러한 독서방식은 학생들에게 반드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소녀는 교사와 학생이 정확하게 같은 문장을 읽는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소년은 그들이 읽는 문장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소년은 광적일 정도로 자신의 말을 맹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교사들은 학생들과 치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눈 먼 아이들이 교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듯 교사 역시 눈 먼 아이들을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다고 소리쳤다.

소년이 울먹거리는 동안 소녀는 소년을 위로해도 좋을지, 학생이 교사의 눈물을 닦아주어도 괜찮은 것인지, 이곳의 다른 아이들, 눈 먼 아이들은 교사의 눈물을 어떻게 견디는지 고민하다가 곧 눈 먼 아이들은 교사의 눈물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쳐 소년이 우는 모습을 고요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소년은 능숙하게 눈물을 갈무리하고 소녀를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서늘하고 눅눅한 방의 어둠은 너무 짙어서 오히려 바깥까지 검은 빛이 새어나가는 것 같았다. 소년은 코끝과 입술만 검게 물든 얼굴로 이곳은 체벌방이라고 속삭였다.

이곳에서 벌을 받는 것은 오직 눈 먼 아이들과 진짜 교사들뿐이라고, 맹아원에서 눈 먼 아이와 교사는 한 쌍으로 움직여야 하므로 체벌방에 누군가 갇혀야 할 일이 생길 경우 그들은 반드시 같이 벌을 받아야 하지만 체벌방에 언제 들어가고 나올지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고 했다.

소년은 체벌방에 들어가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라고 충고했지만 정확히 어떠한 방식으로 어떠한 행위를 조심해야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소년 역시 체벌방에 들어가고 나오게 되는 구체적인 조건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체벌방에는 실제로 몇몇 교사들과 학생들이 들어갔으며 또 나온다고 했다. 소년은 한 번도 체벌방에 들어가본 적은 없지만 그곳에 들어가면 어둠 속에 꽁꽁 묶인 채 문 아래 작은 구멍으로 들이밀어지는 음식만을 먹고 방안 한쪽 구석에 있는 대야에 변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언제 체벌방에 들어가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교사나 학생은 없지만 적어도 체벌방에 들어간 자들은 반드시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체벌방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교사나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고 소년은 설명했다.

제 시간에 이불을 개지 않고 청소를 하지 않은 교사나 놀이방에 숨어서 놀다가 학생을 방치한 교사 교사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학생이나 교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해를 한 학생 모두 체벌방에 갇혔지. 그들은 모두 죄를 고백했어. 그들의 죄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체벌방에 들어가지 않은 교사들은 CCTV로 그들의 범죄를 모두 확증하고 기록해야 했어. 그동안 학생들은 교사들의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잠을 자고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지.

체벌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런 죄도 없다고 항의하던 교사나 학생도 체벌방에서 나올 무렵에는 반드시 죄를 고백했지. 그들에게는 언제나 죄가 있었고 그들은 처음으로 어둠에서 쏟겨나왔을 때 양심에 따라 그들의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어.

넌 학생과 교사가 함께 벌을 받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건 오해야. 학생과 교사는 언제나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학생이 죄를 지었으나 교사는 무고한 경우나 교사가 죄를 지었으나 학생이 무고한 경우는 있을 수 없지. 교사와 학생은 언제나 서로의 공모자야.

만약 학생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할 경우 교사는 곧장 복도에 있는 벨을 눌러서 교장실에 보고해야 하지. 그럼 학생은 적절한 처분을 받고 뉘우치게 될 거야. 아무도 처벌방에 갈 필요가 없어. 하지만 그들이 범행을 숨길 경우 모든 것이 달라지지. 음습하고 난폭한 의혹이 그들의 얼굴에 짙게 나타날 때 그들은 처벌방으로 보내져. 그러니 교사는 적절한 순간에 그들의 잘못을 보고함으로써 처벌방으로 가는 순간을 최대한 유예해야 하지. 게으른 교사는 거의 반드시 처벌받게 되어 있어.

만약 교사가 신고하는 것을 잊고 있다면 학생이 그에게 신고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어야 해. 처벌방으로 끌려가는 순간에 신고를 하는 건 너무 늦으니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조심성이 많은 교사는 사흘에 한 번 신고를 하기도 하지-은 고해성사를 해야 해.

교사는 학생과 자신의 잘못을 꼼꼼히 기록해 두어야 해. 그런 의미에서 반항적인 학생을 담당하는 교사는 운이 좋은 편이야. 학생의 잘못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신고하는 과정도 훨씬 간단하지. 하지만 얌전하고 순종적인 학생을 담당하는 교사는 학생의 은밀한 잘못,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불순함을 찾아내기 위해 훨씬 커다란 노력을 기울여야 해.

소년은 소녀에게 시범을 보여주듯 문 옆, 복도 벽에 있는 벨을 누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복도에는 희미한 빛이 번져 있었다.

소년은 고백할 것이 있으면 얼른 말해 달라고 했지만 소녀는 하나의 잘못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소년은 소녀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굴면 곧 처벌방에 갇히게 될 거야. 네가 맹아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방은 더 견디기 어려울 거야. 우리는 지쳐가는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겠지.

소녀는 눈 멀지 않은 것이 잘못일지도 모른다고, 확신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하고 소년이 물었다. 아무런 죄나 지어내서는 안 돼. 정말 잘못이라고 느끼는 것만 말해. 네가 눈 멀지 않게 된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넌 예외적인 규정으로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야. 정말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해?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소녀는 잘못한 것을 생각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은 식당과 주방,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몇 명의 소년들과 소녀들이 더 있었다. 그들은 소녀와 눈을 마주치고 그녀가 새로운 교사라고 오해하였기에 소년은 그들에게 일일이 소녀가 눈 멀지 않은 맹아임을 소개해야 했다.

소녀는 눈 멀지 않았음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 멀지 않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눈이 멀 듯, 그렇게 소녀는 눈 멀지 않게 되었을 뿐이었다. 소녀는 꿈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처럼 접합된 세계, 조금은 부옇지만 대체로 선명한 세상을 보았다.

소년과 교장이 장담한 대로 소녀는 맹아원에서 맹아들과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점자를 배웠고 구연동화를 들었다. 소리와 냄새, 촉감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방법을 배웠다. 모래의 거칠고 부드러운 속삭임, 불빛의 희멀건 흐느낌, 점자 페이지 사이사이에서 새어나오는, 부식되어가는 부드러움. 그러나 소녀는 뜬 눈으로 세계를 보았다. 그녀에게 가장 강렬한 감각은 다름 아닌 시각이었다. 이미지들은 향기처럼 깊고 날카로웠다.

소녀는 교사 소녀들의, 형상의 기호로 가득찬 책을 훔쳐 싶어했으나 소녀의 담당 교사인 소년은 허락하지 않았다. 소녀는 다른 맹아들과 함께 점자를 배워야 했다. 소녀는 놀랍도록 빨리 배웠다. 그녀는 평생 글자였던 것처럼, 오로지 글자로만 사유하고 살아왔던 것처럼 글자를 느꼈다. 그녀는 점자를 손으로 더듬지도 않고 오로지 눈의 은밀한 어루만짐만으로 읽어내어 소년의 질책을 받고는 했다.

소년의 목소리는 듣기 싫을 정도로 거칠고 불안했으나 소녀는 소년의 오목한 안와와 부드러운 코끝, 젖은 과일처럼 붉은 입술을 좋아했다. 소녀는 쇠를 가는 것처럼 불쾌한 소리가 아닌, 가늘고 붉은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에 집중하였다, 교사가 된다면 점자가 아닌 글자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러나 교사 채용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이미 점자가 아닌 글자를 읽을 수 있어야 했다.

소녀는 언제나 소년과 함께 생활하였지만 잠을 잘 때만은 맹아 소녀들의 방에서 다른 세 명의 맹아 소녀들과 함께 잠들었다. 그녀들은 소녀가 눈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소녀와 눈을 마주친 교사들만이 소녀가 맹아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잠들기 전에 서로의 부드러운 볼과 코, 이마를 쓰다듬으며 사라지지 않은 환영과도 같은 존재를 확인하였다. 소녀는 기꺼이 그녀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소녀들은 소녀들이 거울 속 그림자처럼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소녀는 손끝으로 그녀들의 섬세하고 연약한 얼굴을 쓰다듬었지만 소녀는 오직 그녀들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이미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어렴풋한 그림자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하나에서 셋으로 셋에서 하나로.

소녀는 그들이 무엇을 꿈꿀지 궁금했다. 번져가는 부드러운 살결들, 촉각적인 세계에서 그녀가 어떠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

소녀들은 소녀를 자매처럼 반겼다. 그녀들은 소녀가 그들의 네 번째 쌍둥이인 양 소녀를 반겼다. 그러나 소녀는 소녀들이 서로를 짚고 끌어안으며 서로의 살에 밀착하는 동안 살로부터 떨어진 눈, 닿지 않기에 볼 수 있는 반짝이는 환영과도 같은 신비로운 기관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자신이 다른 소녀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눈 멀지 않은 소녀들의 방에서 눈 멀지 않은 소녀들의 꿈 곁에서 잠들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소녀는 평범한 책이 아닌 점자책을 읽어야 하는가? 소녀는 눈 멀지도 않았는데. 달걀처럼 번들거리는 아름다운 눈꺼풀들을 내려다보며 소녀는 난폭하고 치명적인 우월감을 느꼈다.

소녀는 더 이상 맹아이고 싶지 않았지만 맹아의 세계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곳에서 그녀는 특별했고 그녀는 유일한 눈이었고 그녀는 빛을 그러모을 수 있는 유일하고 섬세한 렌즈였다.

바깥에서 그녀는 얼마나 잘 볼 수 있을까? 모든 것을 형상화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얼마나 대단한 이미지를 꿈꾸어낼 수 있을까? 소녀는 자신의 시력이 얼마나 좋은 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잠든 소녀들을 무자비한 연민으로 사랑하며, 소녀는 그녀들을 버리고 나가지 않겠다고, 교사가 되어 그녀들 곁에 남겠다고 맹세했다. 교사 채용 시험에 합격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었다. 소녀는 점자를 익혔듯 순식간에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글자를 익힐 것이었다. 그녀에게 모든 언어는 외국어였으므로, 그녀는 모든 외국이었으므로 모든 외국어는 그녀에게 속할 것이었다.

소녀는 교사 소녀의 책을 훔쳤다. 글자를 익히는 일은 쉬웠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흐느낌의 언어를 발설하듯 소녀는 페이지에 닿는 순간 그녀가 읽어야할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는 페이지 속으로 스며들었고 글자 위를 자유로이 춤추며 횡단하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소녀는 그 책이 서커스단에 팔려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불을 뿜거나 외줄을 타거나 맹수들을 조련하는 훈련을 했다. 특이한 외모를 가진 아이들은 간단한 재주만으로도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거리에 버려진 무수한 쥐들과 같이 특색이 없는 아이들은 축축하고 음침한 지하 감옥에 갇혀야 했다. 서커스 천막 아래쪽, 철문으로 가리어진 깊은 굴 속에 숨겨진 채, 아이들은 빛 속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묘하고 치밀한 걸음걸이를 연습하였다. 아이들은 꿈 속에서도 비밀스러운 묘기를 연습하였다.

하지만 아이의 몸짓,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초월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일상이 낳은 아이였고 아이들의 일상은 아이들이 개발한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일상적인 아이가 아니기 위해 아이를 초월해야 했다.

작은 몸 속에 어른에게도 버거울 법한 무수한 음식들을 우겨넣고 소화시키는 것을 보여주고 어른의 보폭으로, 가느란 다리를 찢어질 듯 벌려 성큼성큼 걸어가야 했다. 어른의 키에도 까마득한 높이에 매달려 공중을 횡단하고 빙글빙글 돌아보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지하에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서는 씻을 수 없는 지린내가 풍겼기 때문에 그러한 아이는 영영 무대에 설 수 없었다.

반년 안에 아이들은 훌륭한 배우로 성장해야 했다. 서커스 무대 위의 배우들은 모두 그러한 혹독한 방식으로 길러졌다. 그렇기에 지하 연습실의 빈곤하고 무참한 상태에 대해 지적하는 배우는 누구도 없었다. 아이들은 오직 빛 밖으로 올라서는 생각에 매달려 찢어질 듯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상황을 한탄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떤 아이가 그들이 있는 곳은 연습실이 아니라 감옥이라고 소리쳤을 때도 아이들은 무대로 올라서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아주 유명해질 작정이었다. 지하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성공한 배우였고 그들의 현재는 이미 비참하지만 자랑할만한 추억거리였다.

아이들은 발가락을 세워 가장 작은 부분만을 지상에 밀착한 채 날아오를 듯 위태롭게 걸어다녔다. 지하 연습실의 아이들은 갈수록 불어났기 때문에 아이들은 서로 부딪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비명을 지른 아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열심히, 신중한 걸음걸이로 방안 구석구석을 쏘다니던 아이 중 하나였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아이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더 이상 배우가 되고 싶지도 않고 서커스에 나가고 싶지도 않고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다고. 다만 끔찍한 지하 생활을 모면하는 것, 그것만이 그가 바라는 일이라고.

아이들은 어리둥절하게 쓰러진 아이를 내려다보았지만 곧 다시 고개를 들고 연습에 집중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따뜻하고 비릿한 붉은 고기와 여자들의 부드럽고 황홀한 유방, 솜사탕처럼 달콤한 품과 관중들의 열성적인 환호성, 무대 가장 높은 곳의 날카로운 긴장 모두를 원하고 있었으므로, 다만 빛만을 원한다는 아이의 요구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은 오래도록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곧 쓰러진 아이를 잊었다.

흐느끼던 아이는 지하의 천장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철문이 그들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음식은 지하실 한쪽 벽 아래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므로 아이는 한 번도 천장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그들은 그곳으로 나갈 것을 꿈꿨음에도. 아이는 천장 위에 우주가 매달려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우주에 속해 있다는 생각, 우주 한복판, 종잡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위치에 드러누워 있다는 생각.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아이는 환영을 꿈꾸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환영이 아니었다.

아이는 불현듯 벌떡 일어나 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비명은 아득한 곳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하고 아이는 속삭였다. 어쩌면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다른 아이들은 아이가 새로운 연극을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기만으로 서커스 무대에 서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불과 추락, 비상과 죽음의 위협이 난무하는 서커스 무대에서 흐느낌만으로는 주목을 받을 수 없었다. 흐느낌은 도처에 있었으므로, 눈을 감고 입술을 다물면 귓속으로 흘러드는 물의 살, 죽은 채 전율하는 조각난 심장들의 노랫소리는 모두 그러한 흐느낌이었으므로.

아이는 지하 연습실의 벽쪽으로 다가가 손을 짚고 연습실을 빙 둘러 걸었다. 한쪽 벽 가까이에 길게 내려온 밧줄이 있었다. 아이는 밧줄이 바깥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졸도할 듯 희게 질렸다. 아마 그네 연습을 하던 공중 곡예사들을 위한 장치일 것이었다. 아이들은 종종 이 장치에 매달려 연습을 하곤 했으나 끝까지 올라간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매달리기 위해, 매달려 공중을 향유하고 부유하는 연기를 하며 묘기 연습을 하기 위해 그 밧줄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아이는 밧줄을 독점하기 위해 황급히 밧줄에 매달렸다. 밧줄은 가시투성이였기 때문에 아이의 작고 여린 손바닥은 곧 피로 흥건해졌다. 아이는 고통에 흐느꼈지만 매달리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손바닥 사이로 파고든 가시들 덕분에 아이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밧줄에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아이는 천천히 손을 뻗어 밧줄 위로 올라갔다. 오래도록 밧줄의 존재를 잊고 있던 아이들은 발끝으로 선 채 그들의 머리 위까지 기어 올라간 아이의 붉은 맨발을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아이들은 아이가 아름답고 황홀한 묘기를 보여줄 것을, 흰 새처럼 날아올라 무대로 향할 것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가 곧 떨어지기를 그들의 비극을 더 매혹적으로 장식하기 위해 처참하게 떨어져 죽어가기를.

그들이 아이를 기억해 줄 수 있도록. 아이를 위해 울어줄 수 있도록.

아이는 찢겨져나가는 손바닥의 고통을 잊은 채 하염없이 위로 올라갔다. 아이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선발 절차조차 없이 바깥으로 나간 최초의 아이가 될 것이었다.

아이는 검고 아득한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우주와 별들과 무대가 있었다. 아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그것들을 일별하며 사라질 것이었다. 아이들의 검고 붉고 노란 머리통들이 흰 막과 같은 대기에 가리어 점차 흐려져 보였다.

그는 위를 발견한 최초의 아이였다. 그는 서커스 저녁 무대, 가장 관중이 많은 시간대의 메인 무대에서 주연을 맡을 것이었다. 아이는 여전히 땅에 몸의 일부분을 밀착시킨 채 걸어다니는 아이들을 비웃으며 찢겨져나가는 손바닥을 가시에 박으며 위로 위로 올라갔다.

아이는 황홀한 연민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지하에 남아 죽어가는 아이들을 광폭하게 사랑하였으며 죽을 듯 가여워했다.

아이는 피가 흥건히 묻은 밧줄을 몸 속으로 밀어넣으며 위로 나아갔다. 아이는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공중을, 바깥을 가지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희망으로 아이는 울렁거렸다. 아이들은 기울어지며 쓰러지며 밀려나며 구석에 엉망으로 개켜져 있었다. 아이들은 경악하여 아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밧줄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이가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아이는 불길한 통증을 느꼈다. 아이는 피투성이였고 아이는 기절할 듯 피로하였다. 아이는 바깥에 근접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음과 박수소리, 흐릿한 환호성소리가 밧줄을 타고 아이의 손 안쪽, 아이가 알지 못하는 물길을 따라 흘러들어왔다.

아이는 이미 바깥에 있는 듯 평온하고 애틋했다. 유리 잔들이 맞부딪히는 소리, 출렁거리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 떨며 우는 소리, 웃는 소리, 소리 소리들이 아이의 안에서 경련했다.

아이는 무대 한가운데에 피투성이 메시아처럼 등장하여 그들을 공포에 빠뜨릴 것이다. 황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관객들은 곧 비명처럼 광폭한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를 반길 것이다. 아이는 서커스단의 천사로 살아갈 것이다. 날개도 없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천사. 아이는 지하 연습실에 천 개의 가시 밧줄을 내려뜨릴 것이다. 아이들은 장미처럼 새초롬하고 달콤한 피를 흘리며 무대 위로 올라올 것이다. 아이들은 그 모든 아이들을 가질 것이다.

아이는 현기증에 흐려진 눈으로 검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이는 더는 올라가고 싶지 않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단 한 순간, 한 순간의 결정으로 아이는 모든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미래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미래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죽을 것 같은 질투에 사로잡혔다. 한 순간을 건너간 아이가 차지한 모든 찬란한 박수와 웃음, 끝없이 벌어진 공중의 절단과 그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어휘들에 대한 질투, 아이가 미리 엿본 미래에 대한 고통스러운 질투, 아이는 관객들이 그를 끌어안고 입맞추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어디에 갇혀 있었는지, 어째서 아이들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는지 기억해냈다.

아이는 가시에 갈기갈기 찢겨진 손바닥을 떼어내었다. 아이는 젖은 손을 양쪽으로 펼치고 날아올랐다.

교사 소녀는 책을 잃어버렸음을 신고했고 그녀는 또 다른 책을 지급받았다. 교사의 책이 교체됨에 따라 눈 먼 소녀의 책도 바뀌었다.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 전혀 다른 어휘들과 언어를 처음부터 읽어나가야 했다.

소녀의 범행은 몇 차례 반복되었다. 소녀는 이야기를, 특히 훔쳐낸 이야기를 사랑하였고 도저히 도둑질을 멈출 수 없었다. 소녀는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도둑에 대한 이야기마저 훔쳐내었다.

도둑은 아이들의 묘비를 훔쳐 정원에 꽂아 두었다. 묘비 아래에는 훔쳐낸 꽃들을 묻었다. 색색의 꽃들이 만연한 정원에서 도둑은 체포되었다. 도둑은 자신이 꽃을 훔쳤음을 순순히 자백하였지만 도둑은 오직 아이들의 묘비를 훔쳤다는 죄목만으로 재판받았다.

도둑은 죽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가 길가에 방치되어 있는 돌을 주워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그에게 죄가 있다면 오직 아직 생에 속해 있는 꽃들을 자르고 훔쳐왔다는 것뿐이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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