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3

안에 있을 때, 하고 소녀는 말했다. 우린 언제나 바깥을 떠올려. 그러나 바깥에 있을 때 항상 안을 생각하는 건 아니야. 바깥은 괴로울 정도로 춥지만 우린 언제나 바깥에 대해 생각해.

이 베란다는 무척 애매한 높이지. 여기서 뛰어내려서 온전하게 착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아마 다리나 머리가 깨지고 우린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버릴 거야. 하지만 우린 언제나 바깥에 대해 생각해. 이곳 밑으로 뛰어내려 달아나는 삶에 대해. 날아가는 삶에 대해. 나무들이 더 검은 곳으로, 희미한 초록빛도 남지 않고 완전히 새까만 곳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우리가 기르던 암캐는 실제로 바깥에 나갔지. 완전한 바깥, 내부와 걸쳐져 있지 않은 바깥, 베란다도 지붕도 아닌 바깥. 우리는 그 애가 바깥에 나갔다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어. 누구나 알고 있었지. 도대체 어떻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인지 몰라. 창문은 언제나 닫혀 있었고-이모가 그 애의 시신을 버리던 때를 제외하고는-베란다에서 우리는 한 번도 그 애를 본 적이 없었는데.

누군가 그 애와 공모한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 우리 집에는 문들이 많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문들은 모두 바깥에서만 열리는 문들이었고 만약 바깥을 드나드는 이모나 이모부가 그 애를 보았다면 당장 잡아들였을 게 틀림없으니까. 우리 중 누군가, 베란다 밖으로 그 애를 끄집어내어서 그 애를 날려보낸 게 틀림없어.

그 애는 천사처럼 희고 귀여웠으니까 정말 천사처럼 날았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날아갈 수 있는 바깥만 있다면. 실제로 정말 많은 것들이, 인간을 제외한 무수한 것들이 제 몸을 날려보내고는 하니까.

그 애는 바깥에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애를 배어 왔고 이모는 불결함에 치를 떨면서 그 애를 경멸했지만 그 애는 묵묵히 새끼들을 낳았지. 열하나나 되는 새끼들을.

우린 그 애가 낳은 새끼들을 소중히 돌보았어. 거미줄에 맺힌 이슬을 먹이고 그 애의 젖에 입을 물리고. 하지만 새끼들은 모두 죽어버렸지. 그리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어. 아무도 그 애들을 버리지 않았는데 창문 밖으로 떨어뜨린 적도 없었는데. 창문은 그 애를 떠나보낼 때 이외에는 열린 적이 없었는데도 새끼들은 열하나나 되는 새끼들은 마법처럼 사라져버렸어. 우리 중 누군가가 베란다 밖으로 그 애들을 날려 보낸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우리가 아닌 우리가.

소녀들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소녀들은 졸음에 겨워 점점 느리게 말하고 느리게 들었다.

우린 바깥에서 죽고 싶어. 우린 안에서의 죽음을 베란다나 베란다 안쪽에서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어. 하고 끝없이 늘어진 음성이 말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떨어지는 걸로는 부족하지. 망가지는 것, 부서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죽기 위해 우리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해. 이렇게 추워지기 전에 새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우린 이 나무에-소녀들은 베란다 난간 곁까지 뻗어나온 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올라앉은 새들을 잡았어. 쉽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지. 그때-기억해?- 새들은 끝없이 많았으니까. 자생적으로 불어나는 푸른 먼지구름처럼. 우리 중 누군가가 새들의 날개를 꺾어서 사람을 실어보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날개를 만들자는 발상을 이야기했을 때, 우리는 어리석게도 날개를 사용할 순서를 정하느라 끔찍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 사실 그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는데도 말이야.

우리는, 하고 소녀가 말을 이었다. 나 외의 다른 소녀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으니까. 한 명이라도 비열하게 거짓말을 하면 모든 순서가 꼬이게 되는 거지.

가령 두 번째 소녀가 첫 번째 순서를 자청한다고 생각해 봐. 우리는 자신이 첫 번째 소녀라고 주장하는 두 명 혹은 세 명의 소녀들 중 누구의 진실을 믿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두 명 혹은 세 명의 소녀들 중 또다시 진실한 정도에 따라 순서를 정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 공방에서 두 번째를 인도받은 소녀와 처음부터 두 번째로 선정되었던 소녀,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또 다른 소녀 셋, 혹은 그 이상이 또다시 두 번째를 할당받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순서 정하기는 한없이 늘어질 수 있어.

우린 모든 가능한 상황들을 상상해 보기 위해 이런 시뮬레이션을 열두 번 해 봤어-열세 번이야, 하고 옆의 소녀가 거들었다-어쩌면 열세 번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시뮬레이션을 한 번 하는 데에 거의 한 달이 소모되었고 열두 번, 혹은 열세 번 하는 데에는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짐작할 수 있겠어?

그 사이에 새들은 자취를 감춰 버렸지. 우리는 새들이 사라지는 사태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새들은 언제나 있어 왔고 당연히 앞으로도 있을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새들은 순식간에 사라졌지. 처음에는 조금씩 줄다가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어.

아무도 새들이 사라질 거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는데. 우린 새들이 언제나 있을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지.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기억하는 최초부터 새들은 있었으니까.

어쩌면, 소녀는 흐느끼듯 말했다, 새들은 죽은 게 아닐지도 몰라. 그들은 우리를 두고 먼 곳으로,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떠나가버렸는지도 몰라. 우리가 그들의 날개를 갈취하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악용하기 전에. 하지만 날개를 갖고 태어나지 않은 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 날고 싶은 게, 날기 위해 새들의 것을 강탈해야만 하는 게.

소녀는 그렇다면 자기 날개를 가지고 도망친 것도 그들의 잘못은 아닐 거라고 대답하지는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소녀들은 그리 슬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마치 연극의 대사를 읊듯, 기묘하게 무감한 분위기가 그들 사이에 감돌고 있었다.

소녀는 개들을 죽인 게 너희냐고 물어보았다.

소녀들은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소녀는 안심하며 대답했다. 새들은 사라지지 않았어. 꿈에서 새처럼 작은 남매가 수백 마리의 새들을 품속에 가득 안고 검은 숲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

소녀들은 사실이냐고 묻지 않았다. 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모든 과거만큼이나 사실이라는 것을 소녀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거짓은 불필요하다는 것도. 거짓이 반드시 사실이 아닐 필요는 없다는 것 역시.

하지만, 소녀는 말을 이었다. 꼭 날개여야 할 필요는 없는지도 몰라. 오히려 날개나 깃털보다도 더 넓고 더 가볍고 더 커다란, 가령 침대보 같은.

소녀들은 침대보를 구하는 일은 사라진 날개를 구하는 일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더 불가능하다고. 설령 새들이 다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그들이 침대보를 구할 수는 없을 거라고.

소녀는 그들이 맨바닥에서 자냐고, 그게 아니라면 소파에서 자는 것이냐고 물었다.

소녀들은 그들이 침대에서 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침대는 하나뿐이라고. 킹사이즈의 침대가 한 개.

우리가 더 어렸을 때는 열한 명이 모두 잠들 수 있었어. 이모와 이모부는 하나뿐인 안방, 우리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안방, 한 번도 초대되어본 적도 없고 한 번도 함부로 침입해 본 적이 없는 안방에서 잠드니 킹사이즈의 침대는 모두 우리 몫이지. 우리가 새처럼 작을 때에는 열한 명이 모두 누워도 자리가 남았어. 하지만 우리는 곧 침대가 모자라질 것이라고 예감했어.

두 명 혹은 세 명의 아이가 베란다에 숨어 지낸 건 결과적으로 현명한 일이었지만 충분히 현명한 일은 아니었어. 지금 침대에는 간신히 열 명이 몸을 포개고 잠들 수 있을 뿐이지.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여덟 명, 아니 일곱 명,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두세 명만으로도 침대가 가득 찰 거야. 그러면 베란다에는 두 명 혹은 세 명은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나와 살아야 할 거고, 문을 두드리고 교대하는 메커니즘은 완전히 반대로 작동돼야겠지.

하지만 문은 바깥에서 열릴 거고. 우린 끔찍하게 혼란스러울 거야. 안쪽에서 바깥을 요구하면 바깥에서 결정적으로 선택하는 시스템을 우리는 십일 년 가까이 유지해 왔어. 바깥의 우리들은 언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바깥에 그 시간을 알리는 것은 안쪽에서의 두드림이지만, 최후의 결정, 가장 실용적이며 직접적인 행위를 실행하는 것은 바깥에서의 작업이지.

우린 어느날 갑자기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어.

갑작스럽게 문을 걸어잠그고 영원히 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바깥을 양보한다는 것, 바깥으로 나온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어. 하지만 안과 밖이 뒤집혀버린다면 우린 바깥에서 문을 두드려야 할 거고 바깥에서 문을 열어야 할 거야. 모든 일이 바깥에서 일어날 거야.

결국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아무도 문을 열지 못하게 되겠지. 안쪽으로 유배된 두세 명의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도 문을 두드릴 수 없고 문을 열 수도 없게 되어버리겠지. 그러면 그 애들은 돌이킬 수 없이 자라날 거야. 더 이상 소녀도 아이도 아닐 정도로. 그 애들은 어른이 되어버릴 거고 우린 무너져내리겠지.

아니, 안쪽에 남는 게 우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안쪽에서 늙어가는 나를, 킹 사이즈의 침대를 전부 차지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상상하는 건 불가능해. 그건 발생할 수 없는 미래, 한 번도 일어나본 적이 없는 미래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침대보는 안쪽에서 잠드는 아이들 거지, 바깥으로 나온 우리 건 아니야. 침대보는 안을 위해 예비해두어야 해, 안을 상상할 수 없는 애들은 침대보를 쓸 수 없어. 침대보는 처음부터 영원히 안에 속해 있는 거였으니까.

소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소녀들은 소녀에게 들어가도 좋다고 말했다. 우리 때문에 너까지 베란다에 남을 필요는 없어. 그 집 베란다 창문은 우리 베란다 문과는 다르니까.

소녀는 소녀들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 그들이 교대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들을 두고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꿈처럼 나른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해서, 소녀들은 대답했다. 우리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야. 우린 열한 명이나 되고 아마 너희는 우리를 전부 만날 수는 없겠지.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설령 일 년을 기다려도 우리를 전부 볼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당장 네가 우리를 전부 보았다고 해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우린 놀랄 만큼 닮았고 결국 모두 같으니까. 우리조차도 우리가 다르다고 믿을 수 없으니까.

소녀는 그들이 다르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나무와 나무만큼이나 새와 새만큼이나 다르다고, 그렇지만 소녀는 끔찍한 졸음에 지쳐 그들을 한 마디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시간이 녹슬어버린 것 같아. 하고 소녀는 문득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벌써 며칠 밤이 지났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밤이야. 지금이 낮을 지나친 밤인지 새벽에 못 미친 밤인지도 모르겠어.

소녀들은 소녀의 말을, 악몽처럼 어눌하고 몽롱한 속삭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너희는 정말 악몽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 소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꿈은 모두 흑백이니까. 소녀들은 서글픈 목소리로 대꾸했다. 오늘 안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 하고 소녀는 대답했다. 너희들이 원한다면 이쪽으로 넘어와도 좋아. 사실 이 집이 우리 집은 아니지만 잘 이야기해 볼 수 있어.

소녀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넌 그 집에 사는 아이가 아니라는 걸.

갑작스레 그들 아래에서 가로등이 발작하듯 흰빛을 내밀었고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흰빛의 검은 얼굴들을 더 선명하게 응시할 수 있었다.

소녀는 소녀들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긴 눈꼬리, 묘하게 뒤틀린 입매가 소녀와 닮았다는 사실을, 특히나 그들의 고유한 인상을 결정짓는 무형의 실제와도 같은 세부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

소녀는 그들을 연민하기 시작했다. 불빛에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았다면, 바닥에서 자는 건 어때? 하고 묻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소녀는 소녀 자신도 가끔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세계에 무관심하였으니까.

소녀들은 고개를 저었다.

희게 밝혀진 얼굴들의 세밀한 동작까지도 이제는 선명하게 보였다. 이제야 겨우 첫 번째 밤이 밝아왔다는 사실에 소녀는 조금 절망하였으나 소녀들에게 집중함으로써 그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소녀들은 바닥에서 자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침대시트는 오래도록 갈지 않아 더럽고 바닥은 매일같이 윤이 나게 닦아서 깨끗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우린 침대 위에서만 자. 실제적으로 얼룩이 있느냐 곰팡이가 피었느냐 먼지가 쌓였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야. 중요한 건 개념적인 깨끗함이니까.

소녀는 개념적, 하고 소녀들의 말을 되뇌었다.

개념적인 살해도 가능할까? 하고 소녀는 문득 내뱉었다. 우리 집에는 남자애들이 너무 많아. 아홉이나 되는 남자애들이 집안 곳곳에 들끓지. 하지만 그 애들을 죽일 수는 없을 것 같아. 엄마는 그 애들 모두를, 사실은 하나나 둘이어도 좋은 그 애들을 너무 사랑하거든.

소녀는 그녀의 남자아이들이 열한 명의 소녀들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변명하듯 덧붙였다. 물론 이 모든 건 개념적인 이야기야. 이해하지?

소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하고 소녀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소녀는 소녀들의 말투를 따라하며-실제적인 살인이 불가능하다면 개념적인 살인은 가능한가 하는 거야.

소녀들은 놀란듯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남동생들이 개념적인 존재라면 그 애들을 죽이는 것도 개념적인 살인이지 않아?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애들은 실제적일 정도로 선명해서 그 애들을 죽이는 건 실제적인 살인이 될 수 있어. 우리 엄마는 그 애들을 정말로 믿고 있으니까.

너는? 너는 어떤데? 하고 소녀들이 물었다.

소녀는 그녀 역시도 남동생들이 실재한다고 느끼며 또한 그렇게 믿는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하고 한쪽의 소녀가 의젓하게 결론지었다. 순수하게 개념적인 살인은 불가능하겠네. 신을 죽이는 작업이 개념적이며 동시에 실제적인 일이듯.

인간을 죽이는 작업이, 하고 옆의 소녀가 말을 받았다. 언어를 죽이는 작업이 개념적이며 동시에 실제적인 일이듯.

하지만 누군가는 신을 죽였지. 하고 한 소녀가 노래하듯 말했다.

누군가는 인간을 죽였고 누군가는 언어를 죽였어. 하고 또 한 소녀가.

어쩌면 남자아이들을 죽이는 건 그것보다 훨씬 쉬울지도 몰라. 남자아이는 신과 인간과 언어에 모두 속하니까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 아니 이미 죽은 게 틀림없지. 신과 인간과 언어가 죽은 게 확실하다면-분명 확실해 아직 어딘가에는 살아있더라도 대체로는 죽었으니-남자아이들은 이미 반 세기도 더 전에 죽은 거야. 만약 법정에 서게 된다면, 하고 또 한 소녀가. 니체를, 푸코를, 바르트를 증거로 제출해. 네 살인이 개념적이며 사후적인 작업이었다고. 남자아이들은 처음부터 죽어 있었다고.

그때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녀들은 갑작스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너무도 서둘러 문고리를 열려고 버둥거리다가 넘어졌으며 문고리에서 손이 미끄러져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들이 간신히 문고리에 손을 올려놓았을 때,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은 손으로 문고리를 오른쪽으로 돌렸을 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소녀들은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문고리를 왼쪽으로 돌렸으나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갔을지도 몰라! 하고 한 소녀가 중얼거렸다.

갔을지도 모르지, 하고 또 한 소녀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소녀들은 갑작스럽게 문은 바깥에서 잠겨 있으며 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한듯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들은 원피스에 달려있는 하나뿐인 호주머니를 뒤적거렸으나 불행히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 빈 손만을 황망하게 꺼내보일 뿐이었다. 하나뿐인 작은 주머니 속의 공백을 착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들은 하염없이 주머니만을 뒤적거렸다.

소녀가 열쇠를 잃어버렸느냐고 묻자 소녀들은 그 불길하며 절망적인 사실을 스스로 확증하는 일이 두렵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가로등에 희게 빛나는 우유 같은 눈물만을 번들거리며 소녀를 돌아보았다.

소녀들은 도움을 청하는 것 같았지만 소녀로서는 그녀들의 열쇠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열쇠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소녀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소녀는 그들이 지나쳤던 곳, 그들이 장난치고 생활하였던 곳을 돌아볼 것을 진중하게 충고하였다.

소녀들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흐느낌에 한껏 벌어져 찢어진 끔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소녀들은 베란다로 나왔고 베란다에서 지냈을 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베란다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방향에 서 있었고 어디에 앉았고 무엇을 했는지를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소녀들은 속삭이듯 울부짖었다.

그때 또다시 세 번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소녀들은 화들짝 놀라며 무너져내렸다. 끔찍하게 절망하는 소녀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이 너무도 괴로웠기에 소녀는 그녀들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들에게로 건너가도록 허락만 해 준다면. 소녀는 비좁은 베란다에서 열쇠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확신했다. 절망에 빠진 소녀들의 눈,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열쇠를 소녀는 단숨에 찾아내 그녀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었다. 소녀는 소녀들의 절망과는 무관한 타인이었으므로 그녀들을 구하는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쉬울 것이었다.

소녀는 베란다 난간으로 뛰어올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지지대가 될 만한 것은 그녀 옆까지 무성하게 불거져 나온 나뭇가지밖에 없었으나 나뭇가지를 붙잡는 순간 영원히 나무에만 의지해야 함을,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이 갇혀버릴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양손을 새처럼 넓게 벌리고 균형을 잡아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들은 울음을 멈추고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들은 숨을 죽이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이미 폭발한 울음이 쉽게 잦아들지 않아 바람처럼 거친 숨을 내쉬어야 했다. 숨을 참아 완전히 침묵하려는 노력은 몇 초 간격으로 수포로 돌아갔고, 소녀들은 헐떡거리면서 붉어진 얼굴로 소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베란다와 베란다 사이는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소녀들의 베란다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난간을 도약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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