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의 방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메리인 이유를 아는 이가 없었던 것처럼. 오직 파편적으로만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 오직 부분적인 죄와 책임의 연쇄들이 그녀를 이곳으로 몰아붙였다.

그녀는 죄와 책임, 사유와 탐구가 모여드는 장소였다. 한없이 검은 방, 폭발할 듯한 검은 빛으로 일렁거리는 방, 빛은 갈수록 비등하고 있었고 메리는 오직 목소리만을 들었다.

그녀는 무수한 목소리들을 들었다. 목소리들은 그녀에게 언어를, 세계를 가르쳐주었고 그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고 그녀를 위로하였고 그녀에게 슬퍼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쳤다. 메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은 채, 아무것도 겪은 적 없이 세계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늘 세계를 내용으로 하는 목소리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녀로부터 순식간에 흘러나가는 목소리들. 그녀를 이루고 그녀를 남기고 그녀를 두고 사라지는 목소리들.

메리가 어째서 메리인지 알려 주는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메리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목소리들, 목소리들, 끝없는 목소리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벅찬 세계를 전해 주었으므로. 그녀는 간신히 호흡하였고 간신히 들이켰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러나 마치 그녀가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들은 늘 그녀의 곁에 있었고 그녀는 목소리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메리, 붉음은 잘 익은 사과의 색이야. 너와 같은 형상을 가진 사람들의 과즙이고 하루가 끝나갈 무렵 하늘의 빛깔이야.

그녀는 검은 입술을 벌려 말했다. 이곳은 검나요?

그래, 메리, 하고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곳은 검어. 하지만 사과의 붉음, 피의 붉음, 노을의 붉음을 상상할 수 있니?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동작, 오로지 그녀만이 감각할 수 있는 긍정.

그녀는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죽어가는 개들의 노랫소리를 이해할 수 있듯, 비상하는 암탉들의 비명을 이해할 수 있듯, 난 붉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 하고 목소리는 대답했다. 넌 뭐든지 이해할 수 있어. 놀랍게도 뭐든지. 넌 화학과 물리를 알아. 세계의 내부적인 비밀-법칙들을 이해해. 넌 수학의 언어를, 누군가 머문 장소 위에 남겨진 폐허와도 같은 사어들을 알아.

메리는 수줍게 속삭였다. 난 개들의 언어도 알아요.

그래, 넌 새들의 언어도. 갑충의 언어도. 침대의 언어도. 하늘의 언어도. 별의 언어도. 호흡의 언어도. 적막의 언어도.

가냘픈, 그러나 대담한 목소리로 메리는 꿈을 꾸었다고 고백했다.

어떤 꿈을?

거울들이 말을 거는 꿈이었어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님이요, 공주님이요, 거울을 바라보는, 거울을 외면하는 모든 여자들이요.

세상에, 누가 네게 그 이야기를 알려주었니?

목소리요, 언제나 그렇듯이 목소리들이 알려 주었어요. 사과의 붉음, 피의 붉음, 입술의 붉음, 붉은 사과를 먹고 쓰러진 아름다운 공주의 입술이 피처럼 붉었다고.

그건, 목소리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모두 같은 붉음이란다. 넌 그 이야기를 이해했니?

네, 하고 메리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 이해했어요. 화학을, 물리를, 수학을, 흙을, 생태를, 육체를, 언어를 이해하듯 그렇게 이해했어요.

목소리는 흐느끼고 있었다. 그럼 죽음도 이해했니?

메리는 네, 하고 대답했다. 삶을 이해한 만큼, 죽음도.

어쩌면, 하고 목소리는 대꾸했다. 넌 곧 나가게 될지도 몰라.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넌 너를 이해했니? 하며 점점 멀어져가는 목소리가.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털을 가진 개의 몸을 상상했다. 개를 데리고 산책나가는 여자를 상상했다. 개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입맞추었고 혀는 놀랍도록 축축하고 따뜻했으며 향기로웠다.

그녀는 흰빛을 상상했다. 검은빛을 가로지르고 만발하는 흰빛. 사각의 창구들 한가운데에 그녀는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는 부재자의 희멀건 흔적을 신중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흰빛의 개가 있었다. 흰 얼굴을 가진 사내가 그녀 앞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술조차도 흰빛이었다. 사내는 그녀가 이야기하지 않은 모든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하고 사내는 당당한 흰빛으로 말했다. 당신은 피해를 당한 적이 없죠?

흰빛, 흰빛, 부풀어오르는, 비등하는 흰빛.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사내는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당신은 신고를 할 수 없어요.

메리는 흰빛을 내려다보았다. 부글거리며 신음하는 흰빛, 그녀의 배는 희게 부풀어올랐다.

하지만, 하고 메리는 애걸하듯 말했다. 강간당했어요. 메리는 질식할 듯 헐떡이는 목소리로 그녀의 것이 아닌 비밀을 고백했다.

사내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당신이요?

메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 애가요.

메리는 그녀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흰빛의 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배는 버거울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끔찍하게 투명한 눈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녀는 어디에서, 그리고 어디로.

그러나 사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당신의 개는 벙어리인가요?

메리는 고개를 저었다.

피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죠?

그녀가 내게 말했어요. 악몽처럼 검은 개들이 그녀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고. 그녀를 찢어놓고 그녀를 드러내고 그녀에게 파고들어서 그녀를.

하지만, 사내는 물었다. 당신의 증언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군요. 첫째, 당신은 피해 사실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어요. 둘째, 피해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군요. 셋째, 그녀는 개예요.

메리는 눈을 천천히 끔뻑거리며 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사내는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대꾸했다. 그게, 문제가 되냐고요?

목소리들은 메리를 둘러싸고 흐느끼듯 웃었다.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사내의 말은 논리적이라는 것, 그녀가 개라는 것, 그것은 개들의 일이라는 것, 암컷의 자궁을, 수컷의 고환을 찢어발기며 파고들어 겁탈하고 빼앗는 것, 타자의 장소를 제 것으로 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들의 유구한 법칙들, 흡혈하고 흡혈당하며 살아가는 생들의 길고 아름다운 붉은 거미줄.

하지만 목소리는, 하고 메리는 반박했다. 목소리는 아프다고 말했어요. 그녀의 장소를 빼앗겨서 아프다고, 원치 않는 움직임이 그녀의 안에서 짓무르고 있다고.

흰빛은 미소지으며 끈질기게 물었다. 그녀의 몸이 그녀의 것인가요?

메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하고 목소리는 대꾸했다. 넌 아직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어, 메리, 넌 아직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몸이 누구의 것인지, 개의 몸이, 사람의 몸이 누구에게 속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 봐.

그렇지만 그건 매번 변하는 거예요, 하고 메리는 소리쳤다. 몸은 신의 것이었고 왕의 것이었고 주교의 것이었고 주인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것이었고 아버지의 것이었고 국가의 것이었고 법의 것이었고 담론의 것이었고 내 것이었고 목소리들의 것이었고 삶의 것이었고 죽음의 것이었고 감각의 것이었고 사랑의 것이었고 물리의 것이었고 화학의 것이었고 신념의 것이었고 인간의 것이었고 사유의 것이었고 유령의 것이었어요.

메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다. 한결같은 검은빛, 메리는 흰빛을, 그녀가 이해하는 흰빛을 상상하였다.

사내는 참을성 있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리는 그녀가 내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개는 내 거예요.

흰빛,

그리고, 사내는 아이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그렇다면 해결되었군요. 당신은 당신의 재산에 피해를 입었으니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고소할 수 있을 거예요.

사내는 흰빛의 손가락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적어내리다가 불현듯 멈추며 물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고소할 건가요? 강간한 개들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나요?

메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떠돌이 개들에게 강간당했다. 한 번도 목줄을 찬 적이 없는, 인간의 목소리에 속해 본 적이 없는 개들에게.

그들의 주둥이는 길게 찢겨져 있었고 한쪽 눈에는 누런 고름이 차올라 있었다고, 그녀는 흐느끼며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가 옳게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정말, 그렇게 말했나? 고름이 차오른 곳은 눈이 아니라 입이 아니던가? 길게 찢겨진 곳은 주둥이가 아니라 눈이 아니던가?

흰 개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떠돌이 개들이라는 말을 듣고 사내는 조롱당한 듯 불쾌한 어투로 쏘아붙였다. 개들을 고소할 수 없다는 건 알고 계시죠?

어째서요? 하고 메리는 백치처럼 멍하니 중얼거렸다. 어째서 개들을 고소할 수 없나요?

사내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사람은 사람, 혹은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만을 고소할 수 있습니다. 개들이 사람에게 귀속되어 있다면 사람에게 관리 책임을 물을 수 있겠죠.

메리는 대답했다. 그 개들은 밤에, 거리에 귀속되어 있어요.

흰빛은 경멸하듯, 그럼 밤을, 거리를 고소할 생각인가요?

메리는 대답했다. 할 수만 있다면 신이라도 고소할 거예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메리, 그건 틀렸어. 신은 더 이상 사람에게 속해 있지 않아. 사람 역시 신에게 속해 있지 않고. 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워야 해.

천 조각으로 깨어진 거울은 천 개의 머리들을 비추었다.

사내는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되었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거의 울먹일 듯 보였다.

창구 뒤쪽에서 더 기다리세요, 하고 사내가 속삭였다.

사내는 허둥거리며 흰빛의 커튼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메리는 뒤쪽 벽에 맞붙은 딱딱하고 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그녀는 죽을 듯 수치스러웠다. 그녀는 헐떡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여섯 마리의 개들이 내 위에 올라탔어. 그들은 검었고 그들은 가빴고 그들은 앙상했어. 여섯 마리의 뼈들이 나를 찔렀고 여섯 마리의 뼛조각이 내 안으로 흘러들었고 난 곧 그들의 여섯 마리에 사로잡힐 거야.

그녀는 흰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눈부시게 고요해 보였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평온해 보였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메리는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덥고 끈적한, 달팽이의 살점과도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흐느끼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흰빛의 냉정한 감은 눈 아래에서 흐느끼는 적막한 목소리들.

아이처럼 작은 체구의 세 명의 직원들이 여자에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늙어 있었다. 화상으로, 고통으로, 시련으로 얽은 얼굴들은 쌍둥이처럼 비슷해 보였다. 그들은 메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마치 용서를 받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임무인 것처럼. 그러나 메리는 그녀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을 알지 못했고 그들의 고통 역시, 그들의 얽은 얼굴 역시, 그리고 그들 역시 그녀를.

메리는 그녀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아냐고 물었다.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달걀처럼 튀어나온 흰 눈들이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그녀만이 그들을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가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메리는 용서해 주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백치 같은 세 명의 아이들, 혹은 노인들, 그녀는 그들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끔찍할 정도로 부드러운 배를 매만지며 메리는 제발 가라고, 다른 사람을 불러오라고 속삭였다.

당신이 용서해 줘야 갈 수 있어요. 그들은 절망적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면서 흐느꼈다. 당신이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우린 당신을 원망할 거예요 평생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메리는 고통으로 질식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을 향해 제발 사라져. 다른 사람, 너희처럼 어리지도 아프지도 비참하지도 않은 사람을 불러와,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그녀를 혐오스럽게 노려보며 속삭였다. 제발 조용히 좀 해 주세요. 여기엔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오직 일 분만을 가진 사람 오직 한 시간만을 가진 사람 오직 한 순간만을 가진 사람 그들이 당신의 비명 속에서 죽어가기를, 오직 당신의 비명만으로 죽어가기를 바라나요?

그들은 투명한 눈물을 줄줄 출혈하며 흐느꼈다. 우린 시간이 많아요. 끔찍하게 많죠. 그러니까 당신을 상대하는 것, 당신 같은 사람과 가장 깊게 연루되는 건 우리의 직무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당신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이 당신의 법을 잃어버릴 때까지, 당신이 법의 문 앞에서 죽어갈 때까지 평생 당신에게 용서를 빌 수밖에 없을 거예요. 법 앞을 끈질기게 서성이며 죽어간 노인 앞에 평생을 묶여 있어야 했던 문지기처럼, 평생을, 그 끔찍하고 절망적인 시간을 소모해서 노인의 문이 노인의 것임을, 결코 허락된 적이 없는 그의 문임을 알려주어야 했던 문지기처럼.

우린 당신이 이해할 때까지 계속해서 용서를 빌어야 하겠죠. 물론, 맞아요 이곳은 당신의 법이고 당신의 문이겠죠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도 우리의 문이 있는지도 몰라요. 당신의 앞에서 당신의 문을 지키고 있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병적으로 소모적인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우린 우리의 문을 찾아서 떠날 수 있을지도, 정말 우리의 문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죠,

그러면 우리는 우리에게 용서를 비는 문지기들 앞에서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글을 쓰고 그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면서 평생을 보낼 거예요. 그곳은 우리의 문이니까. 적어도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것, 우리의 경계를 우리의 금제를 우리의 체념을 만끽하는 것은 문 앞에서 죽어가는, 초대받지 못한 주인들에게 허락된 향연이니까. 그렇지만 우린 그렇게 할 수 없겠죠. 당신은 용서하지 않을 테고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당신에게 용서를 빌며 죽어갈 수밖에 없겠죠.

메리는 놀라 크게 뜬 눈으로 그들의 거대하고 흉측한 세 개의 머리를 한 눈에 담으며 물었다. 이곳이 내 문이라고요?

그들은 메리를 경멸하듯 노려보며, 그래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니 제발 우리를 용서해 줘요. 우리가 우리의 문을 찾아 떠날 수 있도록.

메리는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질렀다. 제발 사라져요.

그들은 그녀와 함께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용서해주기 전에 우린 사라질 수 없어요.

그러나 메리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용서하는 것, 그것은 그녀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용서하고 싶지도, 그들의 울음을 지켜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울음, 그들의 절규와 그들의 고통에 메리는 이미 치명적으로 연루되어 있었다.

소란에 깨어난 개는 하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고통에 젖은 여자의 신적인, 대담한, 혹독한 시선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그들을 가여워 해 달라고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그들이 그녀를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흐느꼈다. 우리가 당신의 개에게, 당신에게 어떤 죄를 지었기에 당신은 우리에게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 건가요?

메리는 서글프게 대답했다. 난 당신들의 고통을 요구한 적이 없어요.

그들은 흐느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어요.

메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과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애걸과 무관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한 조각의 흰빛, 그녀의, 그녀가 감당하고 있는 생의 흰빛, 그것만. 그러나 하나의 흰빛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흰빛을 감당해야 했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메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도와주겠어요.

용서해 줄 건가요? 하고 한 노인-아이가 발작적으로 소리쳤을 때 메리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눈에 띄게 시무룩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당신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면, 이곳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가겠다면, 내가 당신의 상사에게 당신들의 결백함을 증언해줄 수 있어요.

어떻게요? 그들은 시큰둥하게 물었다.

메리는 그들이 몰래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당신들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고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우린 멸균된 연구실에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우리는 우리의 문 앞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요. 알겠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에게 우리의 문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 위해선, 그들은 얽은 입술을 축이며 말을 이었다. 서류들이 필요해요. 정말 많은 서류들이요. 소개장, 위임장, 이곳에서 불미스러운 짓을 저질러서 쫓겨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각서와 추천서, 근무 경력과 우리의 성실성을 담보해주는 무수한 증언들, 평가서, 서류들, 그리고 서류들이 필요해요.

메리는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당신들의 문 앞에서는 아무도 서류를 요구할 수 없을 거예요. 당신들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자신의 문 앞에서 울부짖고 굶고 목 말라 죽어가는 것, 포기하지 못한 채 서성거리는 것은 자유라고.

그들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당신이 언제고 이곳에 남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를 용서하지 않고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곳에 있는 가여운 직원들, 남의 문에 예속되어 있는 직원들을 학대하고 방치하고 망가뜨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간 곳이 우리의 문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고통과 절망에 미쳐버린 직원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 도래하기도 전에 치명적인 과실로 발설해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결코 그곳이 누구의 문인지 알 수 없을 거예요. 아마 끔찍하게 높은 확률로, 그곳은 우리의 문이 아니겠죠. 그곳이 우리의 법, 우리의 문이 아니라는 사실은 보나마나 뻔한 거예요. 우리의 문이라는 생각은 대개 착각이고 망상이죠. 당신처럼 특별한 경우는 드물어요. 메리라는 이름을 갖고 메리의 방에서 살아가는 케이스는 학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죠. 메리, 당신의 무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문 뒤에서 죽어가는지 안다면 당신은 부끄러워서 차마 울 수도 없을 거예요. 저 커튼 뒤에 얼마나 많은 목소리들이 서성거리고 있는지 당신이 안다면. 메리를 살기 위해 목소리와 생을 전부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이 안다면.

메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난 선택한 적이 없어요.

그들은 악몽처럼 고요하게 대답했다. 아무도 선택한 적 없어요. 아무도. 하지만 당신이 우리와, 우리가 당신과 같다고 착각해서는 안 돼요. 자신의 문에 찾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죽음보다도 더, 유령보다도, 검은 숲보다도, 남의 밤보다도 더 희박한 일이라는 걸, 문 앞에 당도해 있는 당신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거예요.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 건 그곳이 우리의 문이 아니었다는 사실,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뿐이겠죠. 우린 당신의 말에 따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에게 홀려 검은 숲으로 들어간 걸 후회하게 될 거예요. 우리의 이력과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많은 서류들 없이 우리는 실종되어버리고 말 거예요. 아무도, 우리조차도 우리를 찾지 않겠죠. 문지기는 남의 문 앞을 서류도 없이 배회하는 우리를 아무런 침묵도, 기회도, 암시도 없이 쫓아낼 것이고-왜냐하면 그에게는 내비칠만한 비밀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그곳은 우리의 문이 우리의 비밀이 우리의 삶이 아니니까-우린 당신의 순진하고 멋모를 꼬임에 넘어간 것을, 너무도 쉽게 우리의 생을 팔아넘긴 것을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하겠죠.

메리는 애처로운 얼굴들을 향해 물었다. 내가 당신들을 용서한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돌아간다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그들은 꿈꾸듯 웃으며 대답했다. 많은 것이 달라지죠, 메리. 많은 게, 네가 짐작할 수도 없는 많은 게 달라질 거야.

웅얼거리는, 꿈처럼 많은, 증폭되는 목소리들.

우리는 서류를 받을 거예요. 이직 신청을 하고 우리가 이곳에서 성실하게 근무했음을 입증하는 문서들을 한 장 한 장 모아나갈 거예요. 당신에게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은 가장 큰 경력이 되겠죠. 당신이 우리를 용서했다는 것, 문지기의 끔찍한 우화를 살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를 풀어주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덜 불행할 거예요.

그들은 흐느끼면서 메리를 향해 기어올랐다. 그들은 그녀를, 그녀의 흰빛을, 터질 듯 부풀어오르는 배를 깨물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기어오르는 것, 해치는 것,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이빨도 턱도 손톱도 아니었다. 오로지 목소리들. 목소리들이 그녀를 찢어발기고 산산조각내고 거울처럼 바스라뜨리고 있었다. 짓이겨진 목소리들, 목소리들, 그리고 목소리들. 애걸하는 목소리들.

메리는 그들을 용서하

메리는 그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영원을 살 수는 없어, 하고 메리는 비명을 질렀다. 문지기들은 거대한 철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고 메리는 거칠게 문을 닫았다.

개의 목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검은 빛으로 흘러내리는 검은 피, 그녀는 피가 붉다는 사실을 배웠으므로, 붉음을 이해했으므로, 붉은 피, 그러나 검은.

메리는 비명을 지르며 흐느꼈다.

목소리들은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어루만졌다.

메리는 개가 죽었다고 소리쳤다. 개가 죽었어요. 내 개가, 내 것이었던 개가,

그러나 목소리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속삭였다. 개는 없었어, 메리, 이곳에 개는 없단다. 아무도 개를 들이지 않았으니까 여기에는 개가 없어. 두려워 말렴.

메리는 소리쳤다. 하지만,

하지만 개는 흰색이야, 이해하니? 검은 개도 있지만 흰 개도 있단다. 떠올려보렴. 검은 개와 흰 개가 섞여들면 어떤 색이 될까? 검은색? 흰색? 검지도 희지도 않은 색? 우리는 그걸 회색이라고 부른단다.

그녀는 회색을 이해하였다. 물리를, 화학을, 죽음을, 삶을, 몸과 언어를 이해하듯 그녀는 회색을 익혔다. 목소리의 흰빛, 검음을 뚫고 횡단하는 흰빛, 그러나 휘어지는 흰빛은 검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메리는 졸도할 듯 헐떡거렸다. 죽었어요. 내가 개를 죽였어요. 용서하기 위해서, 오로지 용서하기 위해서 개를 죽였어요. 하지만 틀렸어요. 개를 죽이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어야 했어요. 내가 그들을 용서하려면, 그들이 용서받으려면 죄를 짓는 건 그들이어야 했어.

메리는 회색을 떨어뜨렸다. 개에게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으며 웃지도 않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 텅 빈 흰색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어째서 죽였느냐고 강탈했냐고 여섯과 하나 하나와 여섯의 장소를 빼앗았냐고 묻지 않았다.

메리는 그들이 서류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목소리들은 벌써 초고를 작성했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다만 결론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그건 내 연구인가요? 하고 메리가 물었다.

침묵,

그리고 목소리는 대답했다. 그건 너에 대한 연구야.

메리는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흰빛, 황홀한 흰빛 아래에서 그녀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그곳에 개는 있을까? 아이들은? 법과 문은?

그들은 메리와 관련된 모든 것들, 메리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곳에 암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통상적인 논문의 분량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학술논문은 끝없는 이야기가 될 수 없으므로 그들은 최대한의 것들을 최소한의 문장으로 내비칠 것이라고.

메리는 개와 아이들 없이, 문과 흰빛 없이, 모든 흰빛과 모든 검은빛 없이 그녀에 대해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녀는 연구가 실패할 것임을 이해했다. 끝과 메리, 메리와 끝은 공존할 수 없었으므로. 그녀는 잘려나간 붉음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파열하는 흰빛, 흡혈하는 흰빛, 가라앉는 흰빛, 주워 담을 수 없이, 닦아낼 수도 없이 흘러내린 흰빛, 그녀는 오직 검은빛만을 보았다.

그들이 메리로부터 오로지 붉음만을 요구하게 되리라는 것, 붉음의 목격, 붉음의 단차, 붉음의 앎, 붉음의 감각만을 바라게 되리라는 것을 메리는 짐작하고 있었을까? 과거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그녀가 이미 발생한 미래, 과거에 기입된 미래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면 메리는.

메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오로지 검은 빛으로, 그녀의 유년을 가득 채웠던 향기롭고 반짝이는 검은 빛으로. 목소리들은 메리를 사랑하였고 목소리들을 메리는 사랑하였고 붉고 흰, 잿빛의 검은 빛에 둘러싸여 메리는 정말 붉음을 이해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거짓말쟁이였을까?

혹은, 그녀는 이해하고 있었을까? 거짓말이 붉지 않다는 사실을, 붉음은 언제나 그녀의 외부에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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