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2

그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담담하게 사드를 읽었다. 소녀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끊임없는 취약한 생명력으로 소녀는 무호흡의 상태에서 한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슈바르츠발트에서 우리는 행복할 거예요. 우리는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척할 거예요. 한 번도 망가진 적이 없는 척할 거예요. 엄마가 죽어버렸다고 믿지 않는 척할 거예요. 죽음을 바라지 않는 척할 거예요. 한 번도 죽지 않은 척할 거예요. 실존하지 않는 척할 거예요. 다만 존재하는 척, 그리고 숲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척할 거예요. 새들을 본 적도 없는 척할 거예요. 나무들을 볼 때마다 목 매단 자살자들이 떠오르지 않는 척할 거예요. 검게 변한 발들이 매캐한 냄새가 떠오르지 않는 척할 거예요. 우리는 행복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곳에서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 슈바르츠발트는 거대한 연극무대가 될 것이고 고대의 모든 도시 주민들이 그랬듯 우리는 연극이 현실이라는 것을 연극만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거예요.

아직 살아 있는 그 어느 승객들도 자신이 소녀의 주문과도 같은 웅얼거림에 등장한 목 매단 자살자라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 상상할 수 있는 죽음에 속하지 않았으니까. 삶에 속하지 않았듯, 죽음에도.

올리브빛의 그을린 얼굴을 가진, 버스 중간 열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갑작스럽게 속삭였다. 멍하니 창문을 보면서, 얼어붙은 잿빛의 도로와 끝없이 펼쳐진 검은 침엽수들. 그는 사냥꾼 그라쿠스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운 옛날 그는 소년이었고 리바 시청의 비서로 근무했다. 숲을 제외한 모든 것이 몰락하기 전에 그는 그라쿠스의 상여를 직접 메고 왔다. 그는 그라쿠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아무런 전조도 없이 까마귀의 예언도 없이 떠나가는 기척조차 없이 행방불명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슈바르츠발트에서 그라쿠스를 다시 본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어느 한 곳에 없는 존재는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으니까.

기사는 중년의 사내가 망령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창 밖을 향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서글피 웅얼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그라쿠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소리쳤지만-승객들은 소녀가 끝까지 숨을 참지 못하리라고 확신했다- 중년 사내는 완고하게, 그가 네 아버지라고 속삭였다. 네 아빠는 그라쿠스야 이 계집애야 그라쿠스도 네 애비도 똑같이 실종되었으니까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으니까 똑같은 사람일 수밖에 없는 거야.

소녀는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모멸감에 바들바들 떨었다. 소년이 달래었지만 결국 소녀는 참지 못하고 흐느끼고 말았다.

그러나 소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소녀는 아직, 무호흡의 상태로 버스에 앉아 있었다.

종점까지는 아직 삼십 분 정도가 남았다.

소녀는 더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상하지 않고 그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살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그들은 견딜 수 없었으니까.

소녀는 비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슈바르츠발트에는 불행처럼 돌연한 기적이 마련되어 있을 거예요. 아빠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고 우리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겨울이 끝나지 않아도 좋아요. 오빠는 날 팔아넘기지 않을 거고 지하실에서 목을 졸라 죽이지도 않을 거예요. 난 더 이상 쥐를 먹지 않을 거고 새의 목을 부러뜨리고 고양이의 멱을 졸라 죽이지도 않을 거예요. 오빠는 밤마다 내 머리칼을 빗겨줄 거고. 봐요. 얼마나 오래 빗지 않았는지 벌써 다 헝클어진 이 머리칼을. 오빠는 매일 빗겨줄 거예요. 그리고 가장 따뜻하고 깨끗한 물을 떠다 줄 거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거예요.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죽지 않을 거고 설령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해도 다시 살아날 거고 마녀의 새들을 전부 죽인 뒤 숲을 나와 집으로 갈 거예요.

집에는 엄마와 아빠가 있을 거예요. 우리를 버려서 미안했다고, 데리러 오지 않아서 미안했다고, 우리가 죽기를 바란 것이 아니라고 엄마는 울면서 이야기할 거고, 우리는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용서해 줄 거예요.

아빠는 더 이상 내 목을 조르지 않을 거고, 날 증오하지 않을 거고, 우리 누구도 증오하지 않을 거고, 다시 나무들을 베기 시작할 거예요. 부활한 목수들도 아빠 옆에서 나무를 벨 거고 우리는 나무가 흘리는 피의 시원하고 상쾌한 향기를 맡으면서 웃을 거예요. 토막난 나무들을 사기 위해 목재상들이 우리 집 앞에 줄을 설 거예요. 목을 매달지도 않았고, 칠칠맞게 오줌과 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구더기의 온상이 되지도 않았고, 파리들을 자유롭고 건강한 두 손으로 쉽게 쫓아버릴 수 있는 그런 목재상들이 올 거예요. 우리는 그들을 기쁘게 맞아들일 거예요.

난 죽지 않을 거고, 오빠는 울지 않을 거고, 내게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지도 않을 거고, 난 오빠를 용서하지 않을 거고, 그래요. 우리는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엄마와 아빠는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고, 밧줄을 두고 왔다며 집으로 돌아가서 우리를 잊으려 애쓰지도 않을 거고, 기억해도 괜찮은 것들을 모두 기억할 거고. 왜냐하면 슈바르츠발트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잊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잊어야 할 것들은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그 정도로 우리는 행복한 척 할 수 있을 테니까. 망가지지 않은 척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척 죽고 싶지 않은 척.

어쩌면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죠. 엄마가 그랬듯, 아빠가 그랬듯, 아이는 사냥꾼으로 자라날 거예요. 슈바르츠발트에는 사냥감을 연기할 새들이 많을 테니까 우리는 새를 연기하며 아이의 앞에 사로잡혀 눈물흘릴 거예요. 상냥한 아이는 우리를 풀어줄 거고.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다시 사냥감을 연기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소녀는 불현듯 말을 멈추고 버스의 통로 앞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종점이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기사는 종점에 소녀와 소년의 아버지가 와 있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은 침엽수림밖에는 없는 폐허였고 살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가는 이들은 없었다.

슈바르츠발트에, 하고 기사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너희 아버지는 없을 지도 몰라.

소녀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끔찍한 무표정으로 보이지 않는 내밀한 대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모두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토록 오래 숨을 참고 버틸 수는 없으니까. 아니, 그들이 전부 살아있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아는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창문 아래로 뛰어내린 것일까? 창문 밖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을 텐데. 그곳에는 텅 빈 거리뿐이었다. 한동안 하수도 깊은 곳까지 스며든 역겨운 추위를 피해 튀어나온 쥐들과 까마귀, 비둘기와 양계장을 탈출한 닭들의 시체를 먹고 번성했던 그 거대한 고양이떼조차도 모두 얼어죽어 음침한 붉은 빛의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린 곳에, 삶은 식물성의 검녹빛밖에 없었다.

그녀는 다른 모든 이들이 죽고 싶어 하는 정도만 죽고 싶어 했다. 그녀는 영하에서 멈추어버린 항구적인 겨울을 그리 괴로워하지 않았고 팔 층으로 이사가는 일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에게서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반긴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피 냄새가 아니라면 그에게서 어떤 냄새가 났던 것일까? 단단하게 얼어버린 시체의 냄새? 푸른 마네킹의 냄새? 녹아버린 고무의 악취? 그는 그녀에게서 나던 향기로운 얼음의 냄새를, 추위에 바래버린 살결의 희미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안쪽에 코를 박아도 그녀의 냄새는 이전처럼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이 간혹 그들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 애들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아이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그 애들을 집 안에 들이지 않았다. 팔 층으로 이사한 뒤에는 더더욱.

하지만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엄마, 혹은 아빠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살아 있는 아이든 죽은 아이든 그 애들이 모두 실종자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실종자들은 모두 유령이라는 것도, 유령을 집 안에 들여서 좋을 것 없다는 것도.

아이들은 원한도 공포도 없이 떠돌았다. 그 애들은 그저 깊고 안정적인 내부만을 갈망할 뿐이었다.

단 한 번 그는 그녀 몰래 아이를 푸줏간 안으로 들인 적이 있었다. 그 애는 터무니없이 치렁치렁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투명한 레이스들은 재와 먼지에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자아이는 길을 잃었다고 했다. 유리문을 열자마자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짐승의 악취가 진동하는 푸줏간 안으로 들어섰다.

무척이나 조숙하고 피로한 얼굴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유달리 기다란 목. 마른기침을 하는 아이에게 물을 떠다 주자 아이는 황급히 물을 들이키고는 접수대 의자에 앉아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애는 고맙다고 말하고는 사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사내가 마지못해 그 애의 앞에 서자 여자아이는 계속해서 손짓을 하며 더 가까이 다가오라고 했다.

사내가 여자아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서야 여자아이는 사내의 유달리 둥글고 커다란 귓바퀴에 입술을 가져다대고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난 천사예요.

그것이 죽음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특히 그렇다는 사실을 사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수줍고 오만하게 속삭였다. 정말이에요. 난 착하고 죽었으니까. 무엇보다도 천사가 되기 위해서 죽었으니까 천사예요.

하지만, 하고 여자아이는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픈데 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날 데리러 올 천사가 늦는 걸까요? 천국의 시간은 지상의 시간과 다른 걸까요? 내가 너무 늦게 죽어서, 아니면 너무 빨리 죽어서 천사가 날 찾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사내는 소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충동, 배반에 대한 욕구, 열병과도 같은 슬픔 때문에 그는 소녀의 내밀한 착각에 묵묵히 가담하였다.

사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날개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어.

여자아이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날개요?

그래. 개나 고양이, 설치류들이 천사가 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고양이는, 하고 소녀는 속삭였다. 천사가 되지 못하나요?

그래.

소녀는 주춤거리면서 속삭였다. 그럼 나도 천사가 아닌가요?

아직은 아니지. 사내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이끌려 계속해서 지껄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천사가 될 수 있나요?

날개가 있어야지. 새보다도 거대한 날개, 사람의 아이들은 새보다 몸집이 크니까 더 커다란 날개가 있어야 해.

그럼 날개를 만들어줘요. 소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사내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천사가 되면요, 아저씨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나는 아주 바쁘지만, 그래서 약속할 수는 없지만, 다른 천사에게 부탁이라도 해서 소원을 들어줄게요.

사내는 그럴 필요 없다고 중얼거렸다. 네가 정말 천사가 되면 좋겠구나, 하고 말하면서 사내는 정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사내는 푸줏간 문을 닫고 온종일 소녀의 옆에서 뼈들을 닦았다. 대용량 쓰레기 봉투에서 썩어가는 뼈들을 꺼내 수돗물에 깨끗이 닦고 남아 있는 살점들을 예리한 칼날로 떼어내었다. 소녀는 접수대 의자에 앉아 작은 발을 달랑거리면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허밍을 했다. 소녀가 부르는 노래는 그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지만 정확히 어떠한 곡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 중에, 하고 소녀는 자랑스럽게 속삭였다. 내가 가장 먼저 천사가 되는 거예요. 엄마나 아빠보다도 오빠보다도 더 먼저 내가 천사가 될 거예요. 날 보면 다들 울겠지만 그래도 자랑스러워할 거예요. 루루가 천사가 되지 못했다는 건 안타깝지만 내가 천사가 되면 루루의 유령도 보살펴줄 수 있을 거예요.

난 오래도록 루루를 원망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기뻐요. 루루는 나랑 약속을 했거든요. 꼭 천사가 되기로 천사가 되면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꿈 속에서 루루는 엄마처럼 부드럽고 천사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는데 죽고 난 뒤에 루루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죠 꿈에서도 루루를 다시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루루가 천사가 되지 못했다면, 날개가 없어서 아직도 도시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거라면 난 루루를 용서할 수 있어요.

루루의 목은 따뜻하고 말캉했어요. 루루는 내 어깨를 다 긁어 놓았는데, 그래서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렸는데, 내가 루루에게 좋은 일을 해 주는 거라고, 죽으면 천사가 될 수 있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루루는 날 노려보기만 했죠.

하지만 꿈 속에서 루루는 분명 내게 약속했어요. 천사가 되어주겠다고. 그래서 우리를 돌봐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는 건 잘못이에요.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아저씨한테는 약속을 해 줄 수 없어요. 엄마랑 아빠 그리고 오빠까지 세 사람을 돌보는 것만 해도 끔찍하게 바쁠 테니까. 엄마는 세 사람을 돌보는 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울고는 했어요. 특히 아빠가 베트남 인민들을 쏴 죽이겠다고 손가락을 치켜들고 애처럼 웅웅거리면서 총 놀이를 해댈 때면. 엄마가 시를 쓰느라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게 앉아서 중얼댈 때면 그때는 아빠가 흐느끼기 시작했죠. 아저씨도 시를 쓰나요?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누런 접착제가 순식간에 응고되는 탓에 그는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다행이에요. 시를 쓰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에요. 오빠는 엄마가 시를 써서 미쳐버린 거라고 말했죠. 시를 쓰기 전에 엄마는 다정하고 상냥했어요 밤마다 내 머리를 빗겨주는 건 오빠가 아니라 엄마였죠. 엄마는 내 몸을 부드럽게 씻어줬고 끼니 때마다 감자를 굽거나 익히거나 삶거나 저미거나 다지거나 잘라서 깨끗한 접시에 담아 내오곤 했어요. 우린 엄마를 사랑했어요. 저녁에는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공주들이 등장하는 동화를 읽어주기도 했죠.

하지만 시를 쓰고 나서부터는 변했어요. 엄마는 너무 자주 울었고-이전에도 울긴 했지만 그토록 자주 그토록 신경질적으로 그토록 듣기 싫은 소리로 그토록 광폭하게 울지는 않았어요-식탁에 꼼짝없이 앉아서 노트만 노려봤어요.

난 엄마가 쓴 걸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지만 오빠는 엄마가 아주 이상한 걸 쓴다고 했어요. 엄마가 죽음에 대한 시만을 쓴다고요. 목을 매달거나 물에 펄펄 끓거나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리거나 사지가 찢기거나 팽형당하거나 맞아 죽거나 음독되어 거품을 물고 죽어가거나 장기가 짓물러 죽어버리거나 불에 타 죽거나 거대한 유압 프레스에 온몸이 눌려서 으스러져 죽거나. 오빠가 유압 프레스에 눌려 죽은 가족에 대해서 말해 주었을 때 난 너무 역겹고 메스꺼워서 헛구역질까지 했죠.

오빠는 엄마가 미쳐버렸다고 했어요. 아빠도 보이지 않는 베트남 인민군들을 총살하지 않을 때면 엄마가 미쳐버렸다고 중얼거렸죠. 글을 쓰는 여자들은 많지만 편지나 일기, 다정한 가족들과 아름다운 정원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는 여자들은 모두 정상적이며 건강한 여자들이지만 그런 글을 쓰는 여자는 모두 미쳐버린 여자라고요.

엄마는 노인처럼 웃고 아이처럼 울었어요. 이전에는 달랐죠. 시를 쓰기 전에는 오히려 아이처럼 웃고 노인처럼 울었어요. 엄마가 웃을 때는 맑은 종이 깨지는 것처럼 쾌활한 음률이 울려퍼졌고, 울 때는 은밀하게 숨 죽여서 흐느껴서 우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는데, 시를 쓰고 나서부터는 대낮에도 노트를 노려보다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했고, 엄마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아주 어린 아이처럼 시끄럽게 그리고 집요하게 울어대서 우리는 다른 이야기 공주들이나 기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없었고, 새들의 지저귐을 상상할 수도 없었고, 잠들 수도 없었고 꿈을 꿀 수도 없었고, 양손으로 귀를 막고 귓바퀴가 짓눌려서 으스러질 것 같을 때까지 귀를 누르고 숫자를 세는 일밖에는 할 수 없었는데, 그렇게 귀를 막아도 찢어질 듯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고, 아빠가 엄마에게 손가락을 겨누고 총살해도 베트남 인민 수백 명을 잡아 죽여도 그 소리는 멎질 않았는데, 굽거나 삶거나 익힌 감자를 가져다 주어도, 미지근한 물로 입술을 축여도 엄마는 아이처럼 계속 울기만 했는데, 우리는 무력하게 울음소리를, 그 미칠 듯한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오직 울음소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요.

엄마가 울 때면 난 언제나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을 때 엄마는 끔찍하게 늙어버린 것처럼 음흉하게 헐떡거렸죠. 그게 전부였어요.

날카롭게 잘라낸 소의 갈비뼈를 이어붙이면서 사내는 도축한 소가 소녀만큼이나 작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사내가 그녀에게 내밀 변명을 끝내 궁리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사내는 문득 소녀에게 고양이를 죽일 때 슬펐냐고 물었다.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가 건네준 두 뭉텅이의 거대한 뼈 뭉치를, 날개 모양으로 어설프게 이어낸 뼈들의 유기물을 들고 소녀는 사라졌다.

접착제로 이어붙인 아슬아슬한 구조물을 소녀의 어깻죽지에 달아줄 수도 없었다. 구조물은 소녀에 비해 너무 무거웠고 사내는 살아 있는 살에 죽은 뼈를 접합하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그러니 소녀는 양손에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기묘한 구조물을 들고 사라졌다.

그리고 사내는 다시는 소녀를 볼 수 없었다.

소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꿈 속으로 찾아오는 천사의 이미지조차 없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제 꿈 속의 삶과 바깥의 삶을 구분할 수 없었으므로, 불면하며 꿈을 꾸기 시작한 뒤부터 악몽이 꿈 바깥까지 끈질기게 따라붙기 시작한 뒤부터 그에게 꿈은 현실의 다른 이름이었으므로, 소녀와의 만남은 꿈이고 동시에 현실이었을 것이다. 무호흡으로 종착역에 다다르는 승객들처럼. 그녀가 목을 졸랐다면 그는 기꺼이 죽었을 것이다. 반항도 원망도 없이. 그러나 그녀가 꾸는 꿈에, 그녀의 연극에 사내는 참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밤 늦게 홀로 연기하였으며 홀로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추락 없이는 비상이 불가능했으리라고 믿었을지도 몰랐다. 단 한 순간이라도 떠오르기 위해서는 죽음의 높이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이제 얼어붙지 않은 깊은 물은 없으니까.

그녀가 죽고 난 뒤에도 간혹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제 그를 찾아올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열쇠 구멍에 눈을 붙이고 매번 그녀의 부재를 확인하였다. 초인종을 누른 아이들은 이미 체념한 듯, 그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듯 시체처럼 무감하고 피로한 얼굴로 서 있었다. 혹은 초인종을 누른 뒤 그가 열쇠 구멍에 눈을 가져다대기도 전에 벌써 사라진 이들도 있었다.

그가 뼈로 만든, 소와 돼지의 갈비뼈와 무릎뼈 종아리뼈를 이어붙인 날개 모양의 어설픈 구조물을 양손에 들고 사라진 소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아직도 흐느끼고 있었다. 소녀가 과시하는 거침없고 오만한 생명력에 승객들은 놀란 듯 보였으나 어리석게 입 밖으로 경악을 내뱉지는 않았다. 희미한 멀미에 시달리는 승객들. 그들은 흐느낌과 고통과 경악과 분노와 원망과 피로를 참아내며 숨을 멈추고, 이것이 불가능한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들이 어느덧 밤을 내달리는 불투명한 창문에 유령처럼 희멀겋게 되비쳤다. 그러나 그들은 유령이 있었다. 그들은 바들거리면서 간신히 숨을 참아내는, 고통스럽고 역겨운, 그러나 단단하고 향기로운 몸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 있는 몸을. 좌석 등받이에, 창문에, 혹은 낯 모르는 타인의 어깨에, 좌석 위에 올려놓은 구부러진 무릎에 받혀진 십수 개의 얼굴들, 그들은 방탕주의 학교에서의 악몽과도 같은 고문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희생자들 같았다. 역겨운 악몽을 잊기 위해 미친 방탕아들이 건네준 금은보화를 순식간에 탕진해버리고 추억도 미래도 없는 먼 곳으로 떠나는 망명자들.

사드를 읽는 운전기사의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이 어떠한 불구를 은폐하고 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녀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드를 펼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그의 욕망이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갯죽지를 움칠거리는 새들. 그는 그 엉성하고 조잡한 구조물이 날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비상을 연습하는 암캐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버리듯이 소녀도 그토록 무겁고 조잡한 뼛조각들, 그것도 그녀 자신의 뼈가 아닌 뼈로 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갑작스럽게 떠올렸고, 그러니 소녀는 아마 정말로 죽었을 거라고, 말도 안 되는 그 두 개의 거짓을 들고 높은 곳에서 비상을 시험하다가 죽어버렸을 거라고, 죽고 난 뒤에는 원망도 고통도 없었으리라고, 마치 그녀 자신이 목 졸라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털어놓은 그 고양이처럼, 천사가 되지는 못했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절망적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아마, 소녀는 지상에 도달하여 파멸하는 그 순간까지 비상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사내는 생각했다.

창문에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새를 닮은 여자들의 얼굴을 그는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었다. 그녀들의 부드럽고 연약한 얼굴은 냉혹하게 얼어붙은 지상에 맞대어 감추어졌고 그에게는 그녀들의 고개를 돌려 입 맞출 용기가 없었다.

정신착란과도 같은 혼미한 멀미 속에서 사내는 무책임하게 엑셀을 밟고 있었다. 그가 공중을 향해, 절벽을 향해 버스를 내몬다고 해도 그를 저주할 승객이 없으리라는 것을 사내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고 희망보다는 절망에 순종한 채로, 기울어진 고개를 똑바로 세워 젖힐 여력조차 없이 그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무력하게 실려가고 있었으니까. 슈바르츠발트 혹은 무無로 도달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희고 풍만한 달을 보고 난 뒤에야 그는 이미 종점을 지나쳤다는 사실을, 더 이상 종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가 악몽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승객들은 여전히 열두 명이었다. 그는 달을 향해 차를 몰다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충돌하여 죽어버린 미치광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슈바르츠발트에 갈 거예요, 하고 소녀가 속삭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잠꼬대를 하는 것인지 깨어서 말하는 것인지 혼동되었다.

그러나 소녀는 슈바르츠발트에 갈 거예요, 하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아빠가 데리러 오지 않아도 우리는 슈바르츠발트에 갈 거예요.

소녀가 너무도 반복적으로 같은 어조로 중얼거리는 탓에 오히려 소녀는 체념한 것처럼 여겨졌다.

사내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주행의 관성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 바퀴들이 광폭하게 밤을 찢어발기는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승객들은 경악하여 눈을 떴고 그는 갑작스럽게 이제 숨을 쉬라고 종점에 도착했으니 당신들은 전부, 전부 내려야 한다고 소리쳤다. 밤 주행에 성에로 뒤덮인 흰빛의 얼굴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이곳이 종점이 아니라고, 당신이 우리를 기만했다고 항의하는 승객은 없었다. 그곳이 어디든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나무는 어디에나 있었고 이제는 같은 곳에 목을 매달지 않기 위해 서로 다른 나무를 찾아 다툴 필요도 없었다. 나무들은 끔찍하게 많았고 인류의 수를, 죽은 인류의 수까지도 훨씬 웃돌 정도로 많았고 그들은 밤 어디에나 널려 있는 나무 하나를 골라잡으면 그만이었다.

끝까지 고집스럽게 남아 있는 소년과 소녀만을 싣고 사내는 다시 엑셀을 밟았다.

슈바르츠발트로 가는 거예요? 하고 소녀가 의아하게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소년도 소녀도 더 이상 사내에게 묻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왼손으로 넥타이를 거칠게 풀었다. 소년과 소녀는 두려움 없이 올곧은 검은 눈으로, 쌍둥이처럼 닮은 네 개의 고요로 사내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숨을 참고 있었다.

정차한 곳은 숲이었다. 끈적이는 덫과 같은 안개가 잿빛 대기를 뒤덮고 있었으며 검은 나무들이 오만하게 결집하여 이미 절멸해가는 짐승들, 그들이 어떠한 공격이나 위협을 할 필요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오랜 본능에 따라 자라나는 것만으로 목을 매 죽음을 바칠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범죄를 준비하는 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피로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사내는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소년과 소녀는 사내를 순순히 따라 내렸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사내는 매듭을 묶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와 슬퍼하기에 그는 지나치게 오래 죽음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는 홀로 남겨질, 결국 슈바르츠발트에 도달하지 못할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지도 않았다. 사내는 그들의 아버지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아이들에게 지키지 못할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었고 사드의 방탕아들의 범죄는 그의 범죄가 아니었으므로.

그는 아무런 죄의식도 후회도 없이 이름 모를 거대한 나무에 다가갔다. 탐욕스럽고 음탕한 뿌리가 불쑥 튀어나와 있는 고목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의 나무들은 불가해할 정도로 빨리 발육하였으므로 실제로는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나무일지도 몰랐다.

버스 뒷문 앞에서 그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이 불쑥 말했다. 비슷한 꿈을 꾼 적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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