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대기 소녀의 물방울 – 육식

믿을 수 없어, 소녀는 계속해서 되뇌었다. 황홀하고 끔찍한 붉은 안개 속을 서성이면서. 나뭇잎들이 내쉬는 숨의 지문과 같이 새하얀 눈의 결정들이 떨어져내리던 오후였다. 소녀가 차가운 공기 속에 목을 누이고 바람이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도록 놔두는 오후, 하얀 햇빛이 붉은 대기를 뒤덮으며 부드럽게 제 뼈를 으스러뜨리는 오후, 동물들이 물컹한 외피를 공중에 파묻고 내밀한 수다를 지껄이는 오후. 그 오후, 소녀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들었다. 높고 날카로운 소리, 그녀에게 생을 구걸하는 소리, 생이 내팽개쳐지는 소리,

소녀는 메슥거리는 속을 다잡으며 붉은 안개를 따라 걸었다. 서쪽에서 떠오른 불길한 새벽벽의 그림자를 따라서. 머지않아 그녀의 앞에는 계시처럼 눈 위에 흩어진 웅덩이들이 나타났다. 누군가의 발자국, 바람에 더 깊이 파여 검붉은 속살을 드러낸 발자국들이었다. 소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물의 발자국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윤곽은 도저히 생물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의 발, 체온을 가지고 있는 발이라면 발자국의 끝면이 둥근 호를 그리며 파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발자국은 무서울 정도로 선명했다. 온기조차 없듯. 소녀는 두려워하면서도 그녀를 덮칠 불쾌한 안개를 향해 걸었다. 검은 숲은 그녀의 고향이었으므로 어떤 괴물을 마주치더라도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붉은 고기. 시뻘겋게 벗겨진 짐승의 사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피부가 도려내진 생살에서 불그죽죽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참혹한 모양이었지만 소녀는 죽은 짐승이 개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녀는 검은 숲을 떠도는 부드러운 빛깔의 털들을, 즐거이 짖어대며 뛰어다니는 검은 짐승들을 수천, 수만 번 보아왔다. 소녀는 그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그들은 소녀를 볼 때마다 샐쭉한 입을 비틀며 으르렁거렸지만, 그들도 소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무뿌리들이 울렁거리면서 죽은 개의 사체를 향해 달겨들고 있었다. 소녀가 알기로 이 숲에서 육식을 하는 것은 식물들뿐이었다. 동물들이 식물을 먹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이 제공하는 달콤한 열매에 만족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잘라 수액을 빨아먹기 시작한 때부터, 그들의 살들, 부푼 숨이 나오는 향긋한 이파리들을 떼어 삼키기 시작한 때부터, 식물들은 짐승들의 살갗에 뿌리를 파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물들은 이토록 잔혹하게 굴지는 않았다. 가죽을 벗기다니! 처음부터 살아 있지 않은 인형을 다루듯이, 인형의 피부를 갈아입히듯이, 곰팡이가 번진 인형의 피부를 벗기듯이 동물의 피부를 벗기다니!

소녀는 잔뜩 굳었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식물들이 복수를 시작한 것일까? 소녀는 나무를 베어내던 목수들의 몸짓을 떠올렸다. 나무뿌리를 겁간하듯 흉측하게 날이 선 도끼로 나무의 줄기를 몇 번이고 내려치던 몸짓, 파인 상처가 점점 속까지 파고들어가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지던 거대한 줄기. 고통을 호소하듯 일렁거리면서 허공까지 차오르던 줄기들.

부락 사람들은 모두 통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았다. 나무의 토막난 시체 위에서 식사를 하고 나무의 절단된 사지에 앉아 나무를 쪼개어 만든 프레임 속 창 밖의 풍경을 보고 대기와 안개에 대해 생각한다.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기 위해, 하나의 생을 절단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도끼질이 필요한지 소녀는 목수들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며, 그들을 위해 나무뿌리와 배추 이파리, 붉은 사과알들로 만든 도시락을 가져다주며 생각했다. 소녀와 목수들은 나무들의 피냄새에 젖어 황홀한 기분을 느끼면서 그들의 씨앗과 열매를 베어물었다. 끊임없이 일렁이던 나무뿌리들, 투명한 관들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들은 어떤 비명도 내지르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흐느꼈는지도 몰랐다. 햇빛에 바스러지듯 타오르는 나뭇잎들의 녹색으로 반쯤 잘려나간 허리에서 흘러내리는 투명한 피로, 이제 그만 하라고 제발 끝내라고 울부짖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들의 울음을 듣지 못했다. 당장의 오후, 붉고 아늑한 오후, 일상의 오후를 만끽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나무가 허리 깊숙이 패인 도끼자국에서 맑고 끈적한 피를 흘리며 부러진 손가락 같은 뿌리들을 높이 올려 허우적거리는 동안에도. 너희는 울컥울컥 새어나오는 수액을 비웃으며 나무가 서서히 죽어가는 꼴을 지켜보았다. 거센 노동에 지친 목수들은 간혹 그런 잔혹한 장난에서 힘을 찾곤 했으며 소녀는 그들의 모습이 아이처럼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그들의 유치한 면을 좋아했다. 소녀의 어미는 목수들이 천박하다며 식사 시간마다 은밀하게 그들에 대한 경멸을 내비치곤 했지만, 소녀는 그녀의 어미보다 목수들이 자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으며 훨씬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생을 가지고 노는 유머를 즐겼던 것이다. 오래 전 조상들이 붉은 대기가 만연한 혹성으로 이주하기 전에 그녀와 닮은 여자 아이들이 나뭇잎을 뜯어내어 나무의 눈앞에서 빻아대고 개미의 다리를 뜯어내며 기뻐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그러한 잔혹함은 생물의 천성이라고 말하려는 양.

소녀가 죽은 개의 시체 앞에서 떠나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지독한 악취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녀는 개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싶었다. 너희는 같은 짐승이었고 어쩌면 식물로부터 같은 저주를 받을 대상이었는지도 몰랐으므로, 개의 죽음은 소녀와 목수들이 식물들에게 가했던 유머-고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므로. 소녀의 눈에서 출혈하듯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눈의 피막이 벗겨진 것처럼 따끔거렸지만 소녀는 눈을 감지 않았다. 붉게 달아오른 맨살, 소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짐승의 생살이 그녀의 눈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남기를 바라듯.

소녀는 주춤주춤 냄새 쪽으로 다가갔다. 허공을 향해 솟구친 나무뿌리들이 언제든 달려들 수 있을 듯 위협적으로 일렁거렸지만 그런 위험을, 그런 복수를 소녀는 충분히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개는 입과 눈, 콧구멍과 항문을 모두 활짝 벌린 채였다. 소녀는 얇은 피부, 몸의 외피가 흔들리는 살과 피, 근육들을 얼마나 단단히 감싸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개의 생살은 미칠 듯 붉었고 그 붉음은 사과의 꽉 감싸인 붉음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망가진 붉음, 도륙당한 붉음, 숨겨져야 했던 붉음이었다. 소녀는 이전에도 마른 우물에 빠져 머리가 깨진 채 죽은 개를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시신은 이렇게 붉지 않았다. 새벽에 우물가를 산책하던 사람이 개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고 소녀는 소란 틈에 끼어들어 죽음의 광경을 구경하였다. 그때 개는 제게 닥친 불행에 놀란 듯 검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네 다리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구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벌린 입에 들어찬 혀,눈부시게 붉고 축축했던 그 혀는 인형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상처난 머리 부근은 검붉은 얼룩이 져 있었으나 더 이상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멎어버린 심장은 더 이상 피를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소녀는 이웃 여자에게 물어 알게 되었다.

아, 소녀는 황홀한 붉은 안개를 들이마시며 개 대신 누워 있는 그녀의 몸을, 생살이 벗겨진 채 매혹적인 피를 계속해서 흘리고 있는 그녀의 절망적인 알몸을 생각했다. 매일 식물들의 사체에 둘러싸여 식물들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점점 식물처럼 둔해지고 식물처럼 큰 키로 자라났듯, 열매처럼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나뭇잎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지게 되었듯, 그녀의 생살에 뿌리를 파묻고 죽었음에도 끊임없이 울컥울컥 새어나오는 붉은 피를 빨아드린 식물은 지금보다 붉어지게 될까? 소녀는 소름끼치도록 미끈거리는 살 아래의 살을 쓰다듬었다. 개를 좋아하던 목수들이 그들을 따라온 개에게 하듯, 턱 아래 물컹한 살을 어루만지고 시뻘건 이마와 맨들거리는 등을 쓰다듬었다. 소녀의 손과 팔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황홀한, 너무나 황홀한 악취가 소녀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녀는 턱밑에서 차오르는 말간 침을 삼키며 개의 내밀한 체액으로 흠뻑 젖어든 그녀의 손을 노려보았다.

개는 더 이상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육신을, 삶을 묶어두던 질긴 주머니를 잃어버린 개는 한없이 출렁거리는 살과 장기들을 드러내 놓은 채로 뛰어다니며 으르렁거리고 꼬리를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괜찮아. 아무도 모를 거야.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소녀는 황홀한 냄새를 향해, 그녀의 육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 종의 오랜 습성, 이제는 잊혀진 습성, 그러나 사라지지 않고 붉은 안개 밑바닥에서 출렁거리고 있던 습성의 갈망에 따라 혀를 내밀었다. 소녀는 팔꿈치를 검붉게 적신 달콤한 악취를 게걸스럽게 핥았다. 그녀는 한 번도 이러한 방식으로 식사해 본 적이 없었다. 남의 생을, 남의 삶을 갈취하듯 이렇게 무례하게 침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척이나 능숙하게 팔뚝과 손을 핥았다. 달콤하고 역겨운 비린내는 놀라울 정도로 짰다. 짭조름한 감각에 그녀는 더욱 기민해졌다. 몽롱한 물결이 사그라들자 욕망의 구체적인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피부와 둥글고 작은 코, 거대한 아가리와 날카로운 이빨, 이빨, 이빨, 그리고 이빨들. 식물의 부드러운 이파리를 달여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긴 피부를 뜯어내고 생살을 물어 삼키기 위한 날카로운 송곳니들. 소녀는 머릿속에서 짐승의 피와 살을 향해 투명한 피를 흘리고 있는 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녀가 무시해왔던 검은 개, 그녀를 무시해왔던 검은 개가 그녀의 앞에서 비명 같은 으르렁거림으로 소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소녀는 그의 말을, 그의 욕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죽은 개가 소녀에게 달겨들었다. 소녀의 붉은 살점을 깨물어 삼키고 소녀의 은밀한 곳을 더듬어 헤치며 그녀를 겁간하고 살해하고 육식하였다.

소녀는 육식을 했다.

마구잡이로 물어뜯긴 개의 사체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으나 소녀는 오히려 헤집어진 시체로부터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역겨운 붉은 살점이 그녀의 목구멍 안쪽, 뱃속 깊은 곳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감각, 차고 끈적한, 생경한 피의 감각이 그녀의 위장에서 검붉은 바다처럼 울렁거리고 있었다. 흰 등뼈와 갈빗대, 연분홍빛 위장과 두개골, 잘려나간 귓속의 깊다란 구멍은 적어도 소녀가 처음 이곳에서 죽음의 광경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안에서 출렁이는 죄의 감각, 검은 개에게 온몸을 물어뜯기고 살육당하는 고통이 그녀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물어뜯고 물어뜯기고 싶었다. 먹고 먹히고 싶었다. 붉은 사과를 먹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브는 죄악감에 못이겨 흐느끼며 용서를 구걸했지만 붉은 살을 먹고 투명한 호수물을 검붉은 피와 살점으로 더럽힌 뒤, 씻겨나간 나신으로 검은 숲 너머 검은 나무의 시신으로 지어진 집 안에 들어간 소녀는, 그녀의 오랜 기벽 탓에 젖은 나체로 돌아다니는 것을 꾸지람조차 하지 않는 부모에게 달콤한 저녁 인사와 키스를 선물한 뒤, 소녀에게서 풍기는 지워지지 않는 죄의 냄새를, 죄의 정체를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순결한 부모를 뒤로한 뒤 방으로 들어가 하얀 리넨 시트에 개의 피냄새, 개의 피와 개의 살로 변해버린 개의 몸을 누이며 검은 개가, 검은 피부마저 벗겨진 시뻘건 나체, 온연한 나신으로 반들거리는 개가 소녀를 쫓아 오기를, 소녀의 침대로 찾아와 그녀의 목을 물어뜯고 그녀의 엷은 가죽을 벗겨내고 그녀의 피를 마시고 더러워진 주둥이, 오직 살을 물어뜯기 위해 만들어진 날카로운 송곳니로 그녀의 자궁을 물어뜯어 삼키기를, 그녀의 희고 가지런한 갈비뼈가, 잘려나간 귓속의 깊다란 구멍이, 연분홍빛 위장과 흰 등뼈가 드러낼 때까지 그녀를 포식하기를, 그녀에게 복수하고 그녀의 안에 있는 검은 개를 살육하기를 기다렸다. 그녀와 다른 시간을 사는 육체, 다른 욕망을 담은 붉은 살이 그녀의 고독을 날카롭게 베어내기를, 어긋남의 합일을 통하여 그녀를 끌어안아 주기를. 그리하여 만나기를, 끌어안고 베어내며 물어뜯는 어긋남이 그녀의 비린 입 깊숙한 곳까지 난폭한 숨을 내쉬기를.

오직 불완전한 합일만을 위한 절단면, 그녀는 제 속에서 너덜너덜하게 물어뜯긴 개의 살점을, 떨어져나간 피부를, 더는 매끄럽지 않은, 온연하게 밀봉되었다는 환상이 깨어진 살갗을 느낄 수 있었다. 어긋난 면과의 거친 포옹을, 서로의 불구를 겹치는 황홀한 결속을, 그녀의 오염된 몸에 한데 젖어 병들어갈 악몽을.

군인들은 한밤의 형제들처럼 무리 지어 소년을 뒤따라갔다. 소년은 숲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밤의 정다운 손짓에 취해 안개를 따라 걷느라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숨소리는 듣지 못했다. 소녀 역시 소년의 부드러운 침묵과 밤의 소란에 도취되어 재잘거리느라 낯선 이들의 호흡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들은 소년이 녹색 군복을 벗고 푸르스름한 나신을 드러내는 것을, 소녀의 붉은 나신 위에 몸을 겹치고 그녀의 단단한 몸 위를 부드럽게 헤엄치며 붉은 귓속에 침묵의 밀어를 흘려넣는 것을, 소녀가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웃음소리로 소년의 물결과 같은 몸과 밤의 새빨간 나체를 적시는 것을, 무엇보다도 그녀의 마술적인 언어가 향기롭게 뒤얽히는 육신의 춤 속에서 선연한 빛깔을 띠고 어우러지는 것을 홀린 듯 지켜보았다.

그들은 소년과 소녀, 밤의 침묵과 소란에 얽혀 있는 비밀을 차지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매일 밤 검은 숲 속을 떠돌고 있는 소녀와 같은 비밀스러운 언어를 찾아 헤매었다. 소년이 그들의 잠을, 그들의 부재를 확인한 뒤 달려나가면 그들 역시 일시에 일어나 검은 숲 곳곳으로 흩어져 소녀와 같은 노래를 속삭이는 붉은 목을 찾아 서성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검은 숲 사방에 흩어져 있는 붉은 얼굴의 주민들을, 마술과도 같은 언어로 비명을 지르며 그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이들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에게 소년과 소녀, 밤이 함께 했던 비밀을 함께 나눌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거친 이방인의 무례한 울음소리에 비명을 지르며 흐느낄 뿐, 어떠한 몸짓도 함께 나누어주지 않았다. 붉은 몸의 사내와 여인, 노인과 아이들은 푸른 피부의 유령을 보고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소년이 소녀 속에, 소녀가 소년 속에, 밤이 그들 속에 조심스럽게 파고들어 멎지 않는 황홀한 떨림을 전율하였던 것과 같은 아름다운 비밀을 그들은 끝내 함께할 수 없었다.

군인들은 소녀의 꿈속에서 파란 피부의 유령이 예감처럼 떠돌며 그녀를 아주 오래전부터 어루만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꿈속으로 걸어들어온 푸른 피부의 소년을, 그의 침묵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소녀의, 소녀는 소년의 꿈이었으나 이방인들이 붙잡아 소리치고 있는 붉은 몸들은 그러한 절망의 유령을 꿈꾸며 기다려 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방인들은 섞여들지 않는 침묵, 어우러지지 않는 울음, 죽은 물고기의 눈처럼 검고 선연하게 그들을 맹시하는 핏빛 어둠을 견디지 못했다. 메마르고 황폐한 침묵, 폐허와도 같은 울음소리는 그들이 원하던 감미로운 비밀이 될 수 없었다.

이방인들은 분노에 휩싸여 그들을 위해 울어주지 않는, 오로지 그들을 떨쳐내기 위해 울부짖는 서글픈 목들에 불을 질렀다. 첫 살인이었지만 그것이 처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수백 번에 걸친 예감과 환상 속에서 그들 자신이 이미 절감하고 있는 바였다. 군인들은 수백 개의 거울 속에 겹쳐진 깨진 상들 사이에서 살해당했고, 되비쳐진 군인들은 살해당하며 동시해 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방인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붉은 얼굴들이 영원히 이방인들에 대한 공포만을 노래할 수 있도록, 차라리 이방인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적대만이 그들의 영원한 불협으로 간직될 수 있도록.

소녀는 그녀의 살갗을 핥고 피가 날 때까지 깨무는 버릇이 생겼다. 오줌과 생리혈을 받아 마시는 기벽이 시작된 것도 개의 사체를 처음 먹고 난 뒤, 그녀가 육식이라는 원죄를 범한 뒤부터였다. 소녀는 그녀의 안을 채운 개의 고기를 느낄 수 있었다. 놀랍도록 짭조름한, 오로지 생명만으로 이루어진 살과 피의 거친 악취. 한때 그녀의 절망을 닮아, 그녀가 기다리던 죽음의 유령을 닮아 사랑하게 되었던 소년의 입술에서도, 그의 입안 깊은 곳에서도, 그의 항문과 성기, 호숫물에 젖어 경련하며 더 거센 열기를 발산하는 피부에서도 개의 고기와 같은 맛이 났다. 소녀가 소년에게 더욱 빠져든 것은 그에게서 그녀가 품고 있는 개의 비밀을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살과 침, 정액과 오줌이 풍기는 강렬한 악취를 소녀는 날마다 포식했다. 소녀는 푸른 유령의 몸을 끌어안고 황홀하게 일렁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검은 개의 살을 물어뜯었다. 소년은 유령과 개, 소녀가 갈망하는 모든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었다. 소녀는 이전에는 맡을 수 없었던 소년의 깊은 악취와 비릿한 살의 맛을 모두 만끽할 수 있었다. 소녀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소년의 푸른 피부에, 개처럼 짭조름한 살에 빠져들었다.

소녀가 소년의 눈을 핥을 때면 소년은 장난스러운 애무에 간지러움을 느끼듯 조심스레 웃었다. 소녀는 맑은 눈물의 짠맛을, 개의 피처럼 짙은 짠맛을 작고 여린 혓바닥으로 계속 쓰다듬었다. 소년도 종종 소녀의 몸을 핥았다. 소녀는 소년 역시 그녀와 같은 개를 몸 속에 기르고 있음을, 그도 개의 살을 탐하는, 쫓겨난 이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소년에게서는 소녀와 같은 검은 개의 살 맛이 났으므로. 어쩌면 소년은 육식의 죄를 범해서 그의 고향으로부터, 그의 혹성으로부터 영원히 쫓겨난 것일지도 몰랐다. 소녀는 끊임없이 그녀의 죄를, 검은 개를 뱃속에 기르는 비의를 소년의 귓가에 속삭이며 흘려넣었다. 소년은 감미로운 침묵과 살갗으로, 달고 비린 입맞춤으로 그녀에게 화답했다.

소녀가 소년을 탐식하는 동안 소년 역시 소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개의 울음처럼 불가해한 그녀의 울음소리와 짭조름한 살갗을 맛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 수 있었다. 너희는 서로의 몸을 이루는 개의 피륙을 빨아먹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서로의 개를 깨물고 서로의 개를 애무하고 서로의 개를 찢어발기고 서로의 개를 위협하고 서로의 개를 핥으며 서로의 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소녀는 유령과 같은 절망 속에서 자라나는 개의 고기를 사랑했다. 투명한 죽음의 얼굴과 시뻘건 생의 살점, 소녀는 소년이 가진 죽음과 생의 살을 동시에 탐닉했다. 그녀는 황홀한 죄악감에 온몸을 물어뜯기며 소년의 가냘픈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소년과 소녀는 그들이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다는 것을, 서로의 안에 있는 개가 서로의 육체를 독처럼 검붉게 물들여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복구불가능한 변질을 너희가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수머리 군인은 붉은 나무 둥치 뒤에 숨어 두 짐승들의 내밀한 포식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는 소녀가 어둠 속에서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그의 그림자를 흘긋흘긋 돌아본다고, 은밀한 유혹의 신음으로 그를 매혹한다고 생각했다. 소녀가 소년의 애무를 받아들이며, 소년의 가녀린 목덜미와 가슴팍을 핥고 깨물며 털어놓는 유령과 절망, 푸른 밤과 먼지투성이 악몽에 대한 이야기를 군인은 오로지 천박하고 관능적인 매혹의 어휘로만 받아들였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어미로 오해하여 그의 부드러운 살 속에 집을 짓듯, 모기가 사람을 오해하여 자애로운 살갗 속에 흐르는 피를 훔쳐내듯, 사람이 신을 오해하여 그의 자비로운 손과 발에 못을 박아넣어 박제로 만들 듯, 사내는 소녀의 절망적인 언어를 오해하였고 그에게만 눈짓하는 소녀의 검붉은 미소를 받아들였다. 어느샌가 군인은 그가 소년을 뒤쫓아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가 쫓아온 것은 소년이 아니라 소녀의 망령이었다. 그녀의 내밀한 어둠이었으며 그녀의 반짝이는 거울상이었다. 물 속으로 빠져든 나르시스처럼 두 개의 상이, 원상과 푸른 그림자상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합일하는 장면, 아름다움이 어둠과 빛을 함께 겹치며 찬란하며 형체없는 공간을, 세상 어디에도 위치하지 않지만 그들의 부드러운 물기 속에서 실재하는 교차점을 만들어내는 모양을, 교차점이 짐승의 아가리처럼 벌어지며 검붉은 속을 드러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소녀는 꿈 속에 빠져 살았고 꿈에 매혹되어 있었지만 푸른 유령과의 유희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소녀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 그녀의 운명으로부터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는 것, 그녀가 ‘완벽’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그녀 삶의 요소는 오로지 결핍뿐이므로. 소녀의 세계가, 소녀를 둘러싼 음악과 우주가 완벽하지 않듯 그녀의 꿈 역시 지독한 불구라는 사실이 언젠가는 밝혀지고 말 것이다. 순정률이 될 수 없는 평균률이 우주의 완벽성을 상징하는 음악이 태초부터 지닌 불치의 불구를 보여주듯, 심지어는 우주 자체마저 신적인 원형의 궤도들로부터 쫓겨나 천문학의 발견에 따라 나날이 미세하고 징그러운 오차들로 추악한 타원형을 그린다는 것이 밝혀졌듯, 소녀가 믿고 사랑해왔던 황홀한 꿈 역시 언젠가는 흉측한 불구의 상처를 드러내고야 말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달콤한 입맞춤에, 짭조름한 생살의 맛과 푸르스름한 미소에 몸을 내맡기며 꿈꾸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영원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뻔히 알면서도, 헛된 기대가 그녀의 여린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녀를 돌이킬 수 없는 절망으로 내몰 것임을 알면서도, 그녀는 또 꿈을 꾸고 마는 것이다. 음악가들이 불완전한 음계로 천상의 하모니를 짚어 나가듯, 불완전한 천체들이 완벽한 원을 상상하며 우주를 방랑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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