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을 지르는 아이들 1

교실에는 열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현진이었다. 그들의 성이 무엇인지 어째서 그들이 하나같이 현진인 것인지 소녀는 알 수 없었다. 교사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을 새까만 우주와도 같은 평면에 삐걱삐걱 그려넣으며 그것이 제 이름이라고 했으나 소녀는 읽을 수 없었다. 여자는 소녀의 이름을 물어보았으나 소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고개를 젓는 소녀에게 여자는 매서운 얼굴로 무례하다고 했다. 소녀는 무례함의 원인을 알 수는 없었지만, 정확하게 소녀의 어떠한 행동이나 표정이 “무례하다”는 말을 불러일으킨 촉매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오랜 버릇이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은.

소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여자는 곧 굳어버린 얼굴을 풀며 소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 하고 여자는 말했으나 소녀는 무엇을 그만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는 “무례하다”는 말을 다시 듣게 되리라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그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현진들은 소녀를 둘러싸고 키득거렸다. 무례하지 않은 그들에게 선생은 막대사탕을 주었다. 파랗거나 노랗거나 붉은 원색의 설탕액이 현진들의 혀와 입천장, 치아와 입술, 턱까지 흥건하게 고였다. 현진들에게서는 지독하게 단냄새가 났다. 소녀의 책상 위에서 바들바들 경련하던 손톱만한 개미 한 마리가 젖은 날개를 펴고 현진의 입술로 날라들었다. 열다섯의 현진들은 비명을 질렀다.

소녀는 현진의 입술에 묻은 황홀한 단물에 흥건히 젖은 개미의 날개를 잇새로 깨물었다. 개미의 신맛과 사탕의 단맛이 뒤섞여 역겨운 향이 났다. 한 명의 현진이 비명을 지르자 열다섯의 현진들이 잇다라 비명을 질렀다. 공명하는 비명들을 듣고 소녀는 죄악감을 느꼈다. 소녀의 입술에는 아직도 허리가 잘려나간 개미가 삶을 애걸하며 퍼덕거리고 있었다. 소녀는 개미를 떨어뜨려야 할지 마저 삼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개미의 척수에서는 형용할 수 없이 강렬한 신맛이 났다.

소녀는 눈물을 흘렸으나 현진들은 보지 못했다. 현진들은 여자의 다리 사이로 기어들며 훌쩍거렸다. 개미는 영원과도 같은 죽음을 살며 헐떡거렸다. 그러나 소녀는 개미의 호흡을 들을 수 없었다. 개미는 허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생물인양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있었다. 소녀는 개미가 허리 아랫부분을 부단히 이고 살아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허리 아래부분의 다리 네 개는 나무바닥 틈새 어딘가로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현진들처럼 울고 싶었다. 개미는 아직도 살아서 소녀의 입술을 간질이고 있었다. 소녀는 개미를 마저 삼켜야 할지 뱉어버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삼켜도 뱉어도 개미의 허리 윗부분은 계속해서 살아갈 것 같았다. 아니 죽어갈 것 같았다.

여자는 소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손바닥을 내밀며 이제 그만하라고 말했다.

소녀는 눈을 감고 입술을 벌렸다. 개미는 소녀의 바깥으로 기어갔으나 축축한 애액은 소녀의 입속에 머물렀다. 개미의 체액인지 사탕 녹은 물인지 알 수 없는 짭조름한 액체, 그것은 소녀의 침이었다. 소녀는 개미가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현진들은 쥐새끼처럼 타고난 소심함으로 경련하며 소녀에게 살금살금 다가들었다. 그 애들은 소녀의 입술을 더듬고 입을 맞추어 개미의 흔적을 맛보고자 했다.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현진들의 입술은 붉고 노랗고 파랬다. 축축한 턱이 더럽게 느껴졌다. 현진 몇 명은 소녀의 입에 작고 따뜻한, 역한 단맛이 진동하는 혀를 밀어넣었으나 다른 현진들은 선생의 지시에 따라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삼십 센티미터짜리 자를 꺼내고 나무책상을 미친 듯이 긁어내는 현진의 입에서 새파란 단물이 뚝뚝 떨어졌다. 송진을 흘려내는 소나무처럼, 피를 게워내는 고무나무처럼, 썩은 피를 빼내는 폐병 환자처럼 선생은 자애로운 얼굴로 현진들을 둘러보았다. 소녀는 나무바닥 틈새 아래 심연에서 헤엄치고 있는 개미에 대하여 생각했다. 두 갈래로 찢겨나간 개미를 현진들처럼 개미들이라고 불러야할지 알 수 없었다.

개미-개미들은 파란 설탕물을 나누어마시며 새파랗게 부풀어올랐다. 그들은 스스로 사탕을 마시고 사탕이 되었다. 소녀는 그것을 언제든지 작고 도톰한 손가락으로 끄집어내어 입술 사이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었다.

선생은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앞으로 평생과도 같은 일 년 동안 함께 공부할 친구들이므로 서로의 이름을 알고 서로의 취미를 알고 서로의 가족관계를 알고 서로의 주거 현황을 알고 서로의 주소지를 알고 서로의 병력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왼쪽 가장 앞 열에 앉아 있던 현진부터 차례로 일어나 제 이름을 소개하고 취미와 가족관계와 주거현황과 주소지와 병력을 소개하였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현진입니다. 저는 곤충채집을 좋아하고요 우리가족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고조할머니 외사촌 친사촌 삼촌 두 명에 30000g 나가는 이모가 있고요 한강 자이 아파트에 살고 방을 따로 쓰고요 ADHD 행동장애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현진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고 우리가족은 엄마 엄마 그리고 엄마가 있고요 한강 LH 아파트에 살고 아무도 방을 쓰지 않고 병력은 없습니다-현진아 더 자세히 얘기해보렴 세상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건강한 사람은 모두 병이 있단다 무슨 병이라도 좋아 좋아하는 병명을 말해보렴-현진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다 못한 세 번째 현진이 벌떡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현진이고요 나비 날개를 좋아하고 우리가족은 모시나비 태양나비 은하나비 회양나비 집나비 달나비 모래나비 수국나비고요 1학년 3반에서 살고 과잉행동장애입니다

현진들은 입가에서 푸르고 붉고 노란 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소녀는 옆자리 현진의 오른쪽 귓불 아래 달랑거리는 살구빛의 사마귀를 어루만지고 싶은 욕망, 손으로 쥐어 꼬집고 잇새로 깨물고 터뜨리고 싶은 욕망에 그의 소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소녀는 비참하게 경련하며 현진의 귓불에서 춤을 추듯 살랑거리는 사마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소녀의 귀에는 달려있지 않은 살, 잉여의 장신구처럼 보이는 살, 아무런 효용도 없는 살, 생의 보존과는 무관해보이는 살, 너무도 당당하게 노출되어 있는 살, 하염없이 달랑거리는 살, 소녀는 옆자리의 현진에게 그 살의 정체를 물어보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거의 흐느낄 듯 경련하였다.

그 살을 만져도 되느냐고 가져도 되느냐고 쥐어서 터뜨려도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소녀가 그렇게 묻는다면 현진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여야 하리라. 왜냐하면 소녀가 그것을 원하므로. 소녀는 현진이 거절하리라는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언제쯤 그에게 물어도 좋을지 언제쯤 그의 소개가 끝나고 그에게 물을 수 있을지만 하염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소녀의 용기, 소녀가 손을 뻗느냐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말캉하고 출렁이는 신비로운 살성은 눈앞에 있었다. 손이 닿는 거리에, 언제라도 쥘 수 있는 거리에. 소녀가 세계를 움켜쥐는 것을 아무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자신조차도.

그러나 소녀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소녀 옆자리의 현진이 소개를 마쳤을 때 선생과 현진들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내력과 현존에 대하여 상세하고 부조리한 정보를 줄줄이 늘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선생과 현진들은 소녀를 흘겨보았다. 소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선생과 현진들이 소녀를 노려보며 침묵하였을 때, 소녀는 역치를 넘어선 침묵의 밀도가 신호라도 되는 양 일어서서 말을 꺼내려 하였으나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선생은 소녀를 시험하듯 그녀에게 다가가 침묵하였으나 현진들은 여전히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이미 죽은 나무의 시신을 훼손하던 투명한 자도 손에서 내려놓고 책상 안쪽을 파헤치던 커터칼도 내려놓고 희멀건 막대에 이빨자국만이 가득한 사탕의 유골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소녀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어디에서도 오지 않았고 어디에도 없으므로 그들의 요구는 부당한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선생이 그녀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소녀의 이마를 뒤로 밀어젖히며 무례하다고 말할 것 같았다.

소녀는 천천히 눈을 껌뻑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열한 번째 현진이 일어섰고 현진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얼음사막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현진들은 비명을 지르며 현진을 매혹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도 얼음사막에 가본 적이 없었으며 얼음사막이 얼음으로 이루어졌는지 황금빛 모래로 뒤덮여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현진은 얼음사막에는 얼음도 황금빛 모래도 없다고 말했다. 그곳에는 얼음처럼 차갑고 모래처럼 산산조각난 거울파편들로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얼음사막은 백 층이 넘는 유리 빌딩들로 빽빽이 둘러싸여 있었다고 멀리서 보면 마치 빛의 기둥을 세워 만든 천국의 숲처럼 찬란하게 보이던 자리였다고 그러나 신을 모방하여 신을 넘어서는 자리는 불경한 것이므로 오래도록 지속될 수 없었다고 느닷없는 태풍과 해일이 밀어닥쳤을 때, 유리들이 하혈하듯 순식간에 깨져 주르륵 흘러내렸을 때 유리 속에 가만히 담겨 있던 얼음사막의 주민들은 유리와 함께 바스라진 검은 하늘을 보고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현진의 엄마는 태풍에 휩쓸려 무너져내리는 유리건물 육십삼 층에서 현진을 낳았다고 했다. 빛은 천사의 날개분진처럼 휘날렸고 냉혹한 바람과 유리먼지는 현진의 연약한 피부 곳곳에 스며들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얼음 여왕의 하수인 악마들이 장난으로 떨어뜨린 거울가루와도 같은 빛의 표피가 아이의 눈꺼풀 속으로 밀려들었고 현진은 그날부터 눈이 멀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얼음 사막의 전설과 현황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은, 시각적인 묘사로 이루어진 모든 세계는 현진을 아가라고 부르는 자신을 엄마라고 지칭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일러준 바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건물의 뼈대는 아직도 죽은 나무처럼 음울하게 남아 있지만 유리들은 모두 깨져 해변의 모래처럼 바닥을 무수히 반짝이는 빛의 가루로 뒤덮었다고 했다.

언젠가 너희 마을에 초대해 주겠니, 하고 선생은 몽롱한 목소리로 속삭였고 현진은 소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개나 소의 눈처럼 한없이 검고 축축했다. 소녀는 가없는 응시가 입술 안쪽으로 쏟아져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소녀는 눈 먼 현진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이후로도 종종 잊고 그에게 손짓을 하고는 했는데 눈 먼 현진은 눈이 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민하게 반응했다. 손동작이나 얼굴표정에는 반드시 그에 동반하는 청각적인 신호가 따른다는 것이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엉망으로 구겨접으며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는 현진의 손아귀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종이날에 베인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피는 무참할 정도로 흥건했다. 붉은 물이 피가 아니라 수성 잉크라는 사실은 한참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돌연히 종이 울렸을 때, 선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교단으로 달려갔고 지루함을 초극하기 위해 사소한 연극적 해프닝을 준비했던 현진은 슬그머니 손을 책상 아래로 밀어넣고 울음을 그쳤다.

선생은 일교시가 끝났으니 아쉽지만 자기소개는 그만두고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교시에는 반드시 일교시와는 다른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일교시의 행위가 이교시로 연장되면 일교시와 이교시 사이의 구분은 불명확해지고 그렇다면 이교시와 삼교시 사이의 구분 역시 유야무야되기 마련이므로 일교시의 일은 이교시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선생은 갑작스레 비밀스러운 어투로 속삭였다.

현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두를 따라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쏟겨내린 개미, 액체로, 전혀 다른 속성으로 돌변한 개미는 소녀의 뱃속에서 빗속의 검은 개처럼 허우적대며 전진하고 있었다. 제 발바닥을 핥짝거리는 혀도 발바닥도 앞이라는 개념도 없이 하염없이 비틀거리며 전진하는 개미, 혹은 개미들의 아우성을 소녀는 듣지 못하였다.

붉은 수성 잉크가 현진의 손바닥 아래 무릎을 적시고 바짓단을 적시고 의자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붉은 수성 잉크가 아니라 피인지도 모른다고 소녀는 조심스럽게 추측하였다. 수성 잉크도 피도 모두 붉은색일 수 있으며 붉은색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어느 쪽의 추측이든 타당하였고 또한 타당하지 않기도 했다.

이교시에는 친구를 소개하겠어요, 하고 여자는 연극적인 울림을 가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짝에 대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사탕을 주겠어요.

현진들은 그들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현진의 짝이 되기 위해 웅성거리며 발정기의 수탉들처럼 눈먼 현진 곁에 몰려들었다.

눈먼 현진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주위로 몰려드는 모든 현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들의 특색과 그들의 내력을 기억하고 있는지 소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소녀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으며 선택받지 못한 현진들도 모두 소녀와 마찬가지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이른 좌절에 몰두하고 있었다.

선생은 손뼉을 치며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방금 앉았던 자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진들은 비참할 정도로 작은 머리를 비틀거리며 교실 곳곳을 헤매었다. 보다못한 선생은 현진들의 옆구리를 양손으로 잡아올렸으나 선생 자신도 현진들의 제자리가 어디인지 헷갈리는 듯 공중에 현진 한 명을 띄운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동안 현진들은 미친 듯이 꼬꼬거리며 주변을 서성였다. 선생은 현진들을 차례로 의자에 앉혔으나 소녀는 그들이 안착한 제자리가 앞서 앉았던 자리와 동일한 자리라는 의미의 제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소녀의 옆자리에 앉은 현진은 좀 전에 다리를 책상 밑면에 부딪힐 때까지 덜덜 떨어대던 현진과는 다른 현진이었다. 이 현진의 귀에는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처럼 생긴 사마귀도 없이 둥글고 매끈하였으며 대신 코 아래쪽에 하루살이 성충만 한 점이 하나 박혀 있었다. 그는 다리를 떠는 대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오른손 검지 손톱은 무참할 정도로 여리고 새빨간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다. 푸른 침이 엉겨붙은 손톱은 보석처럼 반짝였으나 앞선 현진의 출렁거리던 사마귀처럼 매혹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소녀는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현진의 사마귀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소녀는 현진을 움켜쥐고 떨쳐내고 싶은 충동에 흐느꼈다.

새로운 현진은 화들짝 놀라며 손톱을 깨물면서 불안에 흔들리는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현진의 사라짐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음을, 현진의 부재가 그녀에게 기묘한 감정을 싹틔웠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소녀가 만지지 못했던 그 작은 살이 이 교실 어딘가에 분명히 실재한다는 것이었다. 교실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교실문을 열지 않고서는 어디로도 사라질 수 없었으므로.

소녀는 완전히 부재하는 현진을 새로이 창조해내는 상상도, 현존하는 현진을 관찰하는 모방적인 재현도 시도할 수 없었다. 어딘가에 앉아 있는 현진의 불명료한 테두리에 마구잡이로 덧붙여진 사마귀의 살구색 덩어리가 불안하게 일렁거렸다. 당장이라도 깨어질 듯,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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