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 1

그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했을 때 난 그가 나를 위해 내려온 천사라고 생각했다. 난 어젯밤도 그젯밤도 셀 수 없는 오래전의 밤도 계속 기도했으니까. 그를 갖게 해 달라고.

그는 다정하고 상냥한 삐에로였다. 천사처럼 흰 분을 칠하고 붉은 미소를 달고 있는 그는 장미처럼 아름다웠다. 그를 보면 가슴 밑이 욱신거렸다. 난 그처럼 아름다운 것을 한 번도 가져본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갖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를 가지게 되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가만히 놓아둘 것이다. 가장 깨끗한 유리병에 잘려나간 장미를 담가놓는 여자들처럼 나는 그에게 생명 이상의 것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오직 내게만 다정하고 내게만 그 거대한 붉은 미소를 보여줄 것이다. 여자의 밀실 속에서 장미가 그러하듯.

그를 갖게 해 주세요. 하고 나는 천사에게 소원을 빌었다.

지난 달에는 신에게 기도했으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는 모든 아이들에게 다정했고 토마스나 조니 같이 활발하고 싱그러운 풀잎 같은 남자애들은 그의 황금빛 웃음 더 깊이 다가갔다. 난 그들 뒤에서 가만히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말을 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 가끔, 일찍 학교를 마치고 그의 차고 주위로 뛰어가면 그의 반가운 인사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분에 가려지지 않은 그의 붉은 고기 같은 맨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홀로 그의 부드러운 피부 위에 올려진 크림같이 아름다운 흰 분을 상상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의 앞에는 호숫가의 모기떼처럼 바글거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를 사랑했다. 그는 늘 찢어지게 웃고 있었고 눈부시게 희었고 우리가 사랑하는 크고 퉁퉁한 풍선들을 들고 있었으니까. 난 그를 보고 있으면 그를 독점하고 싶어서, 그를 소유하고 싶어서, 작고 귀중한 장난감 병정처럼 침대 밑에 장식해 놓고 싶어서, 숨겨 놓고 싶어서 숨이 막혔다. 나는 그를 가장 커다란 장수 풍뎅이보다 더, 황금으로 만든 권총보다 더, 죽음보다 더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그것은 비현실의 궤적을 따라 흘러가는 희박한 징후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난 가장 뒷 줄에서 그를 훔쳐볼 뿐이었고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수십 명이었으므로 내가 그를 기억하듯 그가 나를 기억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의 주위를 각다귀 떼처럼 둘러싼 아이들의 노랗거나 붉거나 갈빛이거나 검거나 파란 머리들을 보면 난 그것들을 전부 물풍선처럼 터뜨리고 싶었다. 그 애들이 들고 있는 큼직하고 탐스러운, 반질반질한 풍선과 함께.

그가 들고 있는 풍선은 항상 모자랐고 난 풍선을 받지 못했다. 그는 어떻게 풍선의 공기를 채웠을까? 풍선은 무엇으로 그렇게 옅고 투명한 매혹적인 살갗을 갖게 되었을까? 풍선 부는 기계로? 아니면 그의 호흡으로? 풍선 안에는 그의 숨이 들어 있을까? 그의 몸 속에 담겨 따뜻하고 축축한 호흡이 그 속에 있을까? 그건 아직도 따뜻할까?

이번 주에는 천사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의 끝에 있을 황홀한 보상물을 생각하면 고통스러웠다. 면도날로 허파를 찢어발기는 것처럼. 그러나 기도와 기대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그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를 갖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그만큼 아름답지 않은 것, 그만큼 간절하지 않은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천사가 간절함의 정동을 받아들여 그에 걸맞는 대상물을 내놓는 정교한 저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천사에게 내 다리를 발을 귀를 가져가도 좋다고 기도했다. 다만 손이나 눈을 가져가서는 안되는 것이, 나는 맨손으로 그의 희고 둥근 얼굴을 어루만져야 했으니까. 두 눈으로 그의 눈부시게 하얀, 피폭당한 물고기처럼 아득한 흰빛으로 작열하는 그의 불거진 얼굴을 보아야 했으니까.

그날도 그는 아이들에게 색색의 화려한 풍선들을 나누어 주고 있었으며 나는 그를 둘러싼 열의 가장 뒷자리에서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졌고 달걀처럼 타원형인, 그의 숨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황홀한 불확실성으로 반들거리는 풍선들이 젖어들었고 그의 삐에로 곱슬머리 역시 젖어들었고 그의 흰 분이 천천히 녹아내렸고 그 속의 살은 속이 뒤집힐 정도로, 가슴이 욱신거릴 정도로 붉었고 나는 우산도 없이 멍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고 남은 것은 우리 둘뿐이었다. 우리, 라는 언어는 기절할 듯 황홀했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벗지도 않고 그의 얼굴에서 선홍의 핏물처럼 녹아내리는 거대한 미소를 지울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을 그처럼 깊이, 오래 마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은 검푸른 빛이었다. 어쩌면 빗물이나 그의 눈에 반사된 대기의 색깔이 그랬는지도 몰랐다.

네 눈은 정말 푸르구나, 하고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빗소리에 섞여든 그의 목소리는 음험할 정도로 낮게 들렸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겨들어 이미 잃어버린 신기루를 상실된 별빛을 멍하니 바라보는 양치기 소년처럼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째서 그는 아이들을 따라 처마 밑으로, 슈퍼마켓의 유리문 안으로, 학교 강당으로 도망치지 않은 것일까? 어째서 그는 그토록 젖어 있을까? 마치 나와 같은 세계에 있는 것처럼. 마치 나와 같은 비를 맞고 같은 습도로 젖고 같은 울음으로 찢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는 풍선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어쩌면, 어쩌면 그는 분실물이 아닐지도 몰라, 난 아직 그를 잃어버리지 않았는지도 몰라, 하고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를 원하고 있는 나를 원하는 그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지도 몰라, 아직 모든 것이 깨져버리지 않았는지도 몰라,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아닌지도 몰라, 상자를 찢어내 그 속의 것을 끄집어내기 전까지 상자의 안은 빈 것이 아닐지도 몰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사랑은 그의 소유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일만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적이었으므로,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것이었으므로, 이미 썩어버린 발을 소생시키고 사람의 살코기를 빵으로 바꾸고 바다를 갈라놓는 기적을 천사가 선물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천사일지도 몰랐다. 병든 날개처럼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빗물에 군데군데 녹아내린 그의 맨얼굴은 내게만 가능한 신비롭고 관대한 기적일지도 몰랐다.

우리 친구가 될까? 그는 밤 11시에 학교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는 짙은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학교 운동장 앞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 사라진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의 시간이 돌아오기를, 그가 내 것이기를, 그를 원하는 나를 그가 원한다고 하기를, 그가 내 침대 밑에 얌전히 들어가 식물처럼 웃기를, 흰 반점으로 잎 한쪽이 튿어진 식물처럼 활짝 웃으면서 나를 올려다보기를 기다렸다.

난 그를 함부로 자랑하거나, 칠이 벗겨질 때까지 가지고 놀거나, 다른 남자애들처럼 벽에 대고 난폭하게 찧어대지 않을 것이다. 난 그를 풀잎 위에 내려앉은 황금빛 노래처럼 조심스럽게 다룰 것이다. 그에게 이름조차 붙이지 않을 것이다. 그를 부르지조차 않을 것이다. 난 얌전히 침대 밑에 누워 있는 그에게 입을 맞추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가끔 그의 부드러운 흰 분을 더듬고 과숙한 석류처럼 부풀어올라 당장 떨어져나갈 듯 벌름거리는 거대한 붉은 미소를 어루만지고 그를 내려다볼 것이다.

하늘이 너무 검고 축축했기 때문에 지금이 밤인지 밤이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고, 오직 그를 떠올리면서, 그에 대해 생각하면서 기다렸고,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친구가 되겠다는 그의 말이 농담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그는 잊었을 거라고, 아니, 우리는 처음부터 약속한 적이 없다고, 모든 대화는 상상 속에서, 천사의 장막이 드리운 아름다운 악몽 속에서 이루어졌고, 따라서 약속은 천사와 나 사이의 것이며 그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그는 약속한 적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귀신처럼 불쑥 나타난 그의 흰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날 학교 담장 앞에 비의 그늘 속에 가리어진 비밀스러운 자리에 앉아 우리는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내뱉었고 그는 가만히, 그리고 신중하게 내 말을 들어 주었다.

곤충이 동물이라는 걸 알아요? 난 몰랐어요. 난 벌레들을 정말 많이 죽였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는 수백 마리의 작고 연약한 동물들을 죽였던 거예요. 제니가 잠자리 날개를 뜯었을 때, 그리고 그게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면서 넘어지는 걸 보았을 때 난 그 애와 함께 웃었어요. 조금도 웃기지 않았지만 그 애가 웃고 있었으니까 웃었어요. 그렇게 따라 웃거나 울지 않으면 난 언제나 터무니없이 웃어버리니까 난 그 애를 따라서 웃었어요. 잠자리가 죽어가서 웃었던 게 아니에요. 잠자리가 가여워서 웃었던 것도 아니에요. 그저 그 애가 웃으니까 같이 웃었어요. 난 벌레를 많이 죽였어요. 정말 많이 죽였어요. 미래를 틈입하듯 창문 속으로 들어와 교실 위를 활주하는 꿀벌 책상 위로 기어오르는 개미들, 바스라진 사탕 가루들을 짊어지고 있는 그 작은 곤충들, 교실 나무 바닥 틈새의 희고 부드러운 비단 같은 거미줄, 그곳에서 사로잡혀 죽어가는 가련한 날벌레들을 난 전부 죽였어요.

나는 울고 있었고 그는 불투명한 밤의 막처럼 검고 푸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넌 그 벌레들을 죽이고 싷어 했지. 네가 그것을 바랐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럼 곤충들은요? 난 곤충이 동물이라고, 피가 흐르는 심장을 가진, 터질 것처럼 기뻐하고 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것들은 아팠을까요? 날개가 찢기고 피부가 내장이 터지고 으스러지고 짓무르면서 아팠을까요?

그의 아름다운 눈.

하지만 넌 그것들이 죽기를 바랐잖아. 너는 네가 바라는 것을 했잖아. 너도 네가 바라는 것을 해도 괜찮아, 하고 그는 속삭였다.

그는 천사였으므로, 천사가 들어준 기도였으므로, 나는 그의 승인을 신적인 수긍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나를 용서한 것이다. 천사는 나를 용서한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신은 모든 것을 사랑하지 못했던 나를 용서한 것이다.

우리는 매주 화요일 밤 11시에 만났다. 처음 몇 주간은 학교 담장에서 만났으나 한 달이 지나고 나자 그는 그의 차고에 나를 은밀하게 초대했다. 그는 우리의 만남이 너무 소중해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그토록 취약하고 아름다운 비밀이므로 절대로 그의 집 초인종을 눌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의 차고 열쇠를 주었고 나는 정확히 11시에 그의 차고 문을 열고 검은 벤틀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천사를 만날 수 있었다.

천사는 내게 다정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희고 젖은 날개를 내게 전부 주었다. 나는 그의 날개들을 삼켰으며 간혹 그의 가슴에 대고 구토를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더 많은 날개를 수북하고 날카롭고 차갑고 유리처럼 아름다운 날개들을 주었다. 나는 날개들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은 날개를 원했으며 그는 더 많은 날개들을 주었다.

어떻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날개로 만들어진 흰 과육 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는 그를. 복숭아를 꾹 눌러쥘 때 흘러내리는 축축하고 끈적한 진액조차도 나는 전부 핥아 먹었다.

우리는 시트에 함께 누워 차고의 낮고 더러운 천장 위의 세계를 수억 마리의 천사들이 미래에서 흐느끼고 있는 밤을 상상했다.

우리 반에 저능아가 있어요. 그 애는 항상 말을 더듬거려요. 너무 지나치게 더듬거려서 아무도 그 애가 문장을 끝맺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지겨우니까. 아이들은 언제나 들끓어오르는 열기와 같은 지루함을 갈무리할 수 없어서 황급히 속사포처럼 말을 군데군데 끊어먹고 삼키면서 문장의 끝까지 질주하고 뱉어놓은 문장을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아 도망가버리고는 하니까.

하지만 난 지루해서 그 애가 더듬거리는 문장을 끝까지 들을 수 없는 게 아니에요. 난 무서워요. 그 애가 문장 끝까지 다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왜냐하면 우리 누구도 그 애가 문장을 마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애가 마침표를 찍고 입을 영원히 다무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 애가 내 옆에 와서 더듬거리기 시작할까봐, 그래서 내가 그 애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기도 전에 도망가기도 전에 문장의 마침표를 찍어버릴까봐 너무 두려워요. 악몽 속에서도 언제든 그 애가 내 등 뒤에서 저주 같은 음울한 중얼거림을 계속하고 치달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언제나 뒤를 돌아보면서 깨어나죠.

그러나 뒤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의 붉은 미소, 흐느낌처럼 찢어진 입, 울리지 않는 초인종, 11시, 그 애가 내게 말을 걸었어요. 악몽이 아니에요. 정말로 말을 걸었어요.

난 그 애가 말을 하는 걸 도저히 멈출 수 없어요. 그 애는 내게 고백할 게 있다고 말했어요. 난 거미줄에 사로잡힌 희생양처럼, 새벽이 돌아오기를 그래서 잔학한 포식자가 마비된 몸을 물어뜯기를 무력하게 기다리는 날파리처럼 그 애가 더듬거리는 것을 멍하니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네, 게, 고, 백, 할, 게, 있, 어,

들어줄 수 없다고, 할 일이 있다고 말할 수조차 없었어요. 그 애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나는 그 애가 더듬거리는 것을, 영원처럼 소실되어가는 행간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어요. (화요일 밤이 아니라 다른 날 밤에는 누구를 만나나요? 누구의 침대 밑에서 날개를 부러뜨리나요? 밤 11시가 아니라 다른 시간에는? 머리카락들이 있어요. 노란색 붉은색 갈색 검은색 파란색의 머리카락들이 어째서 밤은 이토록 많은 건가요? 내가 세지 못하는 동안에도, 내가 당신을 만나지 못하는 동안에도 어째서 밤들은 있는 건가요?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날파리에게도 우리와 같은 밤이 있는 걸까요? 내일 밤에는 누구를 만나요? 모레는? 글피는? 그 다음 날은? 주말은?

그 애가 당신을 만났다고 할까봐 두려워요. 내가 모르는 밤들이 두려워요.

어째서 초인종을 누르면 안 돼요? 초인종 밑에 숨겨져 있는 구불구불한 회로들이 미로처럼 휘어져 있는 선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작용들이 힘들이 흐름들이 끔찍하게 두려워요. 초인종 밑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나요? 현관문 안쪽에는 누가 있나요? 가끔 아이 목소리가 들려요. 여자의 목소리도. 그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나요? 그들은 당신을 뭐라고 부르나요? 그들은 화요일 밤을 알고 있나요? 그들도 화요일 밤을 가지고 있나요? 당신도? 당신도 화요일 밤을 가지고 있나요? 그리고 다른 밤들도?

난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게 두려워요. 내게 알려지지 않은 혈관들이 초인종 밑의 회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내가 모르는 미로들이 당신의 내부에 살아 있다는 게 가끔은 미치도록 두려워요. 그리고 그 애가)동물을 죽였다고 할까봐 두려워요.

학교 뒤 숨겨진 공원에서 우리가 함께 기르던 토끼들이 죽었어요. 선생님은 지나가던 고양이가 물어 죽인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 알고 있어요. 토끼에게는 물린 자국이 없었어요. 토끼는 거품을 물고 죽어 있었어요. 그리고 다음 토끼, 그 다음 토끼, 그 다음 토끼가 죽었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토끼들을 빼앗겼어요. 토끼들은 우리의 소유였는데, 토끼들이 손바닥만큼 작을 때부터 우리는 토끼들에게 풀을 사료를 물을 먹이고 그 촉촉한 검은 눈에 우리를 들이붓고 부드럽고 연약한 흰빛의 귀를 쓰다듬었는데, 어쩌면 정말 그 애가.

하지만 그 애가 문장을 끝맺기 전에 수업 종이 울렸고 선생님은 그 애를 그 애에게 속해 있는 멀리 떨어진 자리로 쫓아냈어요. 그 애는 맨 뒷줄에 앉았고 나는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으니까, 내게 헐떡이며 더듬거리는 그 끔찍하게 느리고 다급한 소리로 문장의 끝을 강요할 수는 없었죠.

하지만 내일은? 내일은 어떨까요? 내일도 그 애가 내게 다가와 끝맺지 못한 문장을 이어나갈까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그 애는 영원히 문장을 끝맺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다음부터 어제의 다음부터 문장을 시작한다면 언젠가 그 애는 반드시 마침표에 도달하고 말 거예요.

그는 내 목 위에 손을 올린 채로 조용히 하라고 속삭였다.

(왜요? 위에는 뭐가 있나요? 위에는 일요일의 밤이 월요일과 수요일과 목요일과 금요일과 토요일의 밤이 숨겨져 있나요?

비명을 지르고 싶어요.

당신은 내가 원하는 걸 해도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괜찮다고 했잖아요. 비명을 지르고 싶어요. 당신의 날개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날개뼈가 부러질 때마다, 날개가 찢겨져 나갈 때마다, 내 입이 두툼하고 거대한 질식하는 흰빛으로 차오를 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하고 싶어요. 나는 토끼를 토해내고 싶어요. 거품을 물고 질식해 죽어 있는 토끼들을.

하지만 난 천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약속했어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당신에게 이름을 붙이지도, 당신을 부르지도, 당신의 다른 밤들을 침범하지도 않고 오직 화요일 밤의 기적만을 소유하겠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신을 다만 갖고만 있겠다고. 당신의 분칠한 흰 얼굴을 매만지고, 당신의 검푸른, 그 밤의 비를 담고 있는 젖은 눈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당신을 벽에 대고 깨부수지도 않고, 당신을 바닥에 내동댕이쳐 어지르지도 않고, 무례하고 광폭한 어린 소년들에게 자랑하지도 않고, 그렇게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당신을 갖겠다고. 왜냐하면 소유는 은밀하고 적막한 것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외로워요. 당신을 갖고 있는 것이 내가 모르는 밤들을 상상하는 것이. 당신은 너무도 아름답고 거대한, 완벽한 붉은 미소를 가지고 있고, 당신은 상냥하고 검푸른 차가운 밤의 빗물로 젖어 있고, 당신은 화요일 밤이 없이도 살아 있을 테고, 화요일 밤에만 살아 있는 것은 나뿐일 것이고, 화요일 밤을 벗어나면 나는 당신의 얼굴을 떠올릴 수조차 없어요.

기억나는 것은 흰빛,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그 격렬한 흰빛, 달의 맨살과도 같은 흰빛과 붉은 미소, 그리고 검푸른 눈밖에는 없는데, 그러한 빛깔은 내게만 비추어지는 환상과도 같은 것이죠. 모두가 다른 색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화요일 밤이 아니면 당신의 눈은 그토록 젖은 검푸른 빛도 아닐 것이고, 당신의 얼굴은 드문드문 고기의 붉은 빛 균열이 가 있는 격렬한 흰빛, 벗겨져나간 칠 때문에 더 견고하고 광폭한 흰빛이 아닐 것이고, 당신은 어쩌면 웃고 있지 않을 수도 있죠. 당신의 입술은 여느 중년의 남자들처럼 초라하게 벗겨진, 음탕한 검붉은 빛일지도 몰라요.)

그는 내 목을 어루만졌다. 나는 토끼들을 토해내고 싶었다. 흰 털이 복슬복슬한 젖은 털들을. 그것 역시 그의 날개일까?

나는 천사들을 낳고 있었다.

숨이 막혔고 구역질이 치밀었다. 가슴이 욱신거리고 미칠 듯이 서글펐다. 그는 나를 끌어안았고, 삐에로의 검고 푸른 밤이 나를 집어삼켰고, 나는 그가 나를 쥐어 터뜨리는 것을, 껍질이 벗겨진 흰 복숭아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천사의 날개 속에 감싸여 질식하고 싶었다. 숨을 멈추고 천사의 내부를 밤을 떠도는 날벌레들의 영령을 탐사하고 싶었다. 오직 하나의 밤만을 정신착란과도 같이 길게 늘여진 비정상적인 화요일 밤만을 표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었다고 속삭였고, 다음 주에 보자고 웃었고, 에어컨 바람이 황량하고 무심하게 새어나오는 자동차 시트는 발작적으로 웅웅거리고 있었고, 그는 내 뒷목 깊이 흘러내린 땀을 훔쳐 주었고, 그의 손은 얼굴과는 달리 붉었고, 그는 돼지처럼 벌거벗었고, 나는 구더기처럼 희게 벌거벗었고, 그는 내 몸이 희다고 했고, 나는 그가 흰 것을 좋아하느냐고 물을 수 없었고, 기적처럼 밤을 늘여 줄 수는 없느냐고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도록 모든 것이 현실이도록 이 악몽을 무한한 곡선으로 휘감아줄 수 없느냐고 물을 수 없었고, 다음 화요일의 밤까지 나는 그 애의 더듬거리는 목소리를, 네, 게, 고, 백, 할, 게, 있, 어, 끝나가는 어절들을, 마침내는 문장의 마지막 마침표를 들었다는 불쾌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그 애는 방정식을 그래프를 쳐다보는 중에도 계속해서 내 귓속에 입술을 붙이고 더듬거렸고, 그러나 그 애는 맨 뒷줄에 나는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고, 그러니 그 애는 멀리 떨어져 앉은 채로 동시에 내게 속삭일 수는 없는 것이었고, 나는 미쳐가고 있었고, 다섯 번째 토끼가 죽었을 때, 손가락 자국을 목에 매단 채로 뒤집어져 죽어 있는 토끼를 보았을 때, 나는 그 하얀 털뭉치가, 끔찍하게 차갑고 단단한 살이 전부 내가 낳은 것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내가 천사들을 낳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가 임신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비밀스럽게 출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숨이 막혔고, 메슥거렸고, 계속해서 토했고, 가느다란 목구멍으로 천사들을 토해내었고, 내가 토해낸 것들은 살아 있었고, 그래서 내가 끝맺지 못한 호흡들을 갈급하게 헐떡이고 있었고, 그 애는 내게 부러진 장미를 건네 주었고, 그제서야 나는 그 애가 죽인 것이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라는 것을, 가련하게 젖어 있는, 도망칠 수 없는, 그러나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지나치게 아름답게, 음험하게 살아 있는 그 거추장스러운 붉음을 무자비하게 꺾어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난 그 애가 두려웠고, 장미를 사랑하는 그 애가 건네는 장미를 받아든 내가 더 두려웠고, 손 밑으로는 축축하고 미지근한 장미의 수액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나는 장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살아서 호흡하고 붉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죽을 듯이 두려웠고,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었고, 아니, 그러나 나는 살아 있고 싶었고, 왜냐하면 내게는 화요일 밤이 있으니까.

그때 나는 그 애처럼 더듬거리면서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임신 했다고. 벌써 악몽처럼 무수히 많은 천사들을, 셀 수 없이 흩어진 수백 개의 가느다란 흰 빛들을 낳았다고. 그 백색은 가시처럼 날카로웠다고. 그래서 더는 낳고 싶지 않다고. 가끔 나는 피를 토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당신은 나를 끌어안고 내 맨 어깨를 벌거벗은 붉은 손으로 쓰다듬어주면서 괜찮다고,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곤충들을 동물들을 식물들을 죽였을 때처럼 네가 바라는 것을 해도 괜찮다고 하겠지. 하지만 정말 나는 그것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천사를 원하고 있었을까?

그의 품에서 갈기갈기 찢겨지면서, 지붕 위에서 떨어진 유리공처럼 산산조각 나면서, 내가 끔찍하게 질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사실 나는 조금도 찢기지 않았고, 산산조각 나지도 않았고, 멀쩡히 살아 있음을, 고무처럼 제 자리에 질기게 늘어난 단단한 연약함을 느끼면서, 화요일 밤이길, 오직 그것뿐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그는 천사들의 수만큼 더 많은 천사들을, 천사들의 밤을, 어쩌면 영원히 이어지는 연속적인 축축한 어둠을 선물할지도 몰랐다.

그의 얼굴은 불가해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들었다. 그에게는 많은 구멍들이 있었다. 흰 분 사이로 불거져나온 붉은 피부는 모두 구멍이었다. 그 구멍들은 대기중에도 차 안의 습한 밀실에서도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날개도, 그의 흰 뼈도, 그의 웃음도 구멍 투성이었다.

너무 많은 구멍들이 있었다.

질긴 살로 만들어진 기름 거품의 내부처럼 모든 것은 구멍들이었다.

밤의 장미는 시든 것처럼 검어 보였다. 난 그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수요일 밤이었다. 황금빛 전등 불빛이 창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금지되어 있는 화요일 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초인종을 누르고 장미를 건네면 그는 어떤 얼굴을 할까? 그는 여전히 구멍투성이일까?

나는 미친 듯이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밤을 파열하는 선명한 소리가, 돌이킬 수 없는 결행의 진동이 내 손을 빠져갔다. 모닥불을 튀기는 것처럼 타닥거리는 발소리가 들렸고 곧 문이 열렸다.

그 애가, 내게 장미를 건네주었던 아직 끝내지 못한 게걸스러운 언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애는 수줍게 속삭였다.

예,전,부,터,너,를,보,고,있,었,는,데,너,는,언,제,나,앞,을,보,고,있,었,어,네,뒷,머,리,는,유,달,리,둥,글,고,검,었,어,해,그,림,자,에,삼,켜,진,월,식,의,달,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 있었다 장미는 검었지만 아직 축축했다. 바람에 비닐 봉지를 날려 보내듯, 마치 다른 것의 인력에 휩쓸린 것처럼 쓰레기를 잃어버리듯 그렇게 장미를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잘려나간 줄기 끝은 날카로웠고 네 손바닥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장미를 떨쳐내지 않고, 장미를 버린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 채로 장미를 놓아버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 애의 얼굴 역시 구멍 투성이었다. 끝이 헐거운 틈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 구멍 투성이었다. 스펀지처럼 갈라도 잘라 내어도 무수히 구멍 투성이인 단면들, 구멍을 깨뜨릴 수는 없었다. 부유하는 물거품을 찢어발기듯 그렇게 구멍을 찢어 없앨 수는 없었다. 구멍 투성이인 얼굴은 구멍 투성이의 언어는 황홀하고 불가능한 밤은 당신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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