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 2

우리는 함께 서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나는 가만히, 그 애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기만을 바라며, 그래서 내가 그 애의 이름을 불러야 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서 있었다.

당신이 어떤 밤에 속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오늘은 화요일이 아니었으므로. 수요일에 하루를 넘긴 밤에 모든 것이 어제와 같을 수 있을까? 달에 새겨진 빛의 날인이 우리의 머리 위에 있었다. 달이 얼마나 느린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는지 지구로 떨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달은 당장이라도 추락할 것처럼 육중했고 빛은 빛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관련된 사실들은 빛 속 어디에도 없었다.

숨을 참아야 할까? 그가 내 목에 손을 얹을 때면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듯이 숨을 참고 목 속에서 차오르는 천사의 날개들을 느껴야 할까? 그러면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 화요일이 아닌 밤에 나는 뭐지? 나는 무얼 살아 있는 거지? 그리고 너는, 화요일 밤이 아닌 너와 내가 만나도 괜찮은 걸까? 밤은 성스러운 검푸름으로 부패해가고 있었다. 빛으로 썩어가는 어둠의 살갗을 좇아 날파리들이 날아다녔다. 우리에게 가능한 사실들, 우리에게 속해 있는 사실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실들.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 단단한 사실들이 우리에게는 간절했다. 그러나 너와 나 역시 구멍 투성이었다 어둠은 입을 벌리고 거대한 틈으로 벌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촘촘한 구멍으로 짜여진 거미줄 같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네가 말을 더듬는 게 좋아. 네가 평생 말을 더듬어주면 좋겠어. 문장의 끝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어디로도 가지 않을 수 있게. 이곳에 있다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하지만 너는 지나치게 말을 더듬었고 네가 더듬거릴수록 나는 문장의 끝이 다가오는 것이 미치도록 무서웠고 그래서 나는 도망치고 말았다.

다음 화요일 밤에 라디오에서는 여자가 울 것이다. 흐느끼는 여자는 밤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무섭다고 말할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느다랗고 마치 작은 나뭇배처럼 흔들릴 것이고 여자는 밤 없이 살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를 것이고 나는 그녀의 밤을 대신 차지한 것에 괴로울 것이다. 그래고 기쁠 것이다. 그녀의 밤을 빼앗았다는 사실만이 내 유일한 위안이 될 것이다. 여자는 갑작스럽게 노래를 부를 것이다. 흐느낌에 가빠진 목소리, 떨리는 음성으로 라흐마니노프 로망스의 바이올린 선율을 되짚을 것이다. 목소리는 갑작스럽게 끊길 것이다.

그제야 나는 그러한 방송이, 그러한 들림이, 그러한 울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화요일 밤에, 나는 그의 차고로 갔다. 그는 얼굴 가득 흰 분을 바르고 어김없이 붉고 거대한, 만개한 꽃과 같은 탐욕스러운 미소를 매단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로 울기 시작할까 봐, 노래를 부를까 봐 두려웠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가 내 목을 감싸안았고 시동이 걸린 그의 차 안은 수증기로 부옇게 흐려졌다. 바깥이 겨울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었다. 내부를 느낄 수 없듯 바깥 역시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어째서 내 목을 조르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천사를 구토하고 싶은 것일까? 난 나도 그도 아닌 것을, 우리가 아닌 것을 낳고 싶었다. 하나의 울음이, 목소리가, 슬픔이 사실이기 위해서는 목격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애를 또 봤어요. 하고 내가 속삭였다. 교실 뒤편에서 그 애는 말을 더듬고 있었어요. 말을 더듬으면서 말을 더듬지 말라고 화를 내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키득거렸고 나도 함께 웃었죠. 하지만 그 애가 우스웠던 건 아니었어요. 그 애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아직 살아서 말을 더듬고 있는 것이 우스웠던 건 아니었어. 꺾인 장미에서 흐르는 미지근한 물이 잘린 더듬이에서 쏟겨나오는 투명한 피가 우스웠던 건 아니었어요. 아니, 아니에요.

사실은 숨을 참을 수 없어요. 조금만 놔 줘요.

나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원한다면 물을 가져다 주겠다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이 좋았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날개를 삼킨 사람, 당신의 날개를 토하고 싶은 사람은 나니까. 그의 밑에서 붉고 거대한 천사의 고기와도 같은 살에 짓눌려 있으면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아 무서웠다. 그가 내 팔 한쪽을 물어뜯어 찢어버릴 것 같아서. 그러나 나는 이미 천사에게 맹세했으므로, 친구를 갖기 위해 팔이나 다리쯤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고 기도했으므로 반항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불구보다도 더 깊이 살고 싶었다.

내 목을 조르는 동안 당신은 너무도 갈급하게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의 벌어진 입, 당신은 내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사실이야.

그는 울고 있었다. 비명처럼 벌어진 거대한 입으로 울고 있었다. 그는 내 목에 감긴 손을 놓아 주지 않았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네 시체를 보고 싶어,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욕망하는 것이 괜찮다고 말했다. 너는 들어줄 거지? 너는 봐줄 거지? 너는 나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내 욕망은요? 나는 죽음을 바라지 않아요. 나는 살고 싶어요. 나는 죽음만큼이나 죽음보다 더 깊은 삶을 바라고 있어요.

그는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다. 제발, 소리 지르지 마. 넌 착한 아이야. 그렇지? 넌 나를 도와줄 거지?

하지만 그의 부탁 없이도 나는 소리 지를 수 없었다. 그는 천사들이 치밀어 오르는 내 목을 단단히 막고 있었고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끔찍한 내압으로 불거져가는 것을 느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벌레처럼 벌거벗고 있었고 당신은 마찬가지로 벌레처럼 헐벗은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어째서 두 개의 사실은, 두 개의 갈망과 두 개의 결핍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당신이 내가 바라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꿈 속에서 당신은 당신의 목을 졸랐어요. 내 목이 아니라 당신의 목을요. 당신은 나무에 매달렸고 나는 당신을 지켜봤죠. 당신은 내가 당신을 지켜보는 일 이외에는 그 무엇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난 그 간단한 일도 해낼 수 없었죠. 우리는 실패했고 당신은 사실조차 없이 죽었어요. 죽음의 순간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죠. 가장 불확실하고 언제나 변모하는 기억의 말캉한 피질에조차.

나는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숨이 찼고 나는 숨을 참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고 그를 바라보는 것밖에,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그의 미지근한 눈물을 느끼는 것밖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아직도 그를 믿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나는 당신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고, 당신에게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나는 살아있고 싶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내 죽음, 화요일 밤의 죽음, 밤들의 죽음, 영원과도 같은 죽음뿐이었다.

그가 발기하고 사정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죽어가는 것을, 빗물처럼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음 없이는 천사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천사들이 원하는 것은 죽음뿐이다. 나는 연한 속살을 찢어발기는 날카로운 기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천사를 믿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천사밖에는 믿을 수 없었다.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너무 많고 신에게 나는 사실조차 아니니까. 햇빛에 바스라지는 소음과 먼지들, 깊은 고요를 닮은 미세한 분말들이 내게 사실이 아닌 것처럼.

깊이 내려가고 싶었다. 단 한 조각의 사실도 남지 않을 정도로 깊이, 당신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깊이.

난 당신이 나의 죽음을 원하는 이유를 물을 수 없었다. 갈망에는 이유가 없으니까. 그걸 알려준 건 당신이니.까 당신은 이미 내게 답을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삶을 원하고 있었다. 당신이 죽음을 원하는 만큼이나 나는 삶을 원하고 있었다. 죽음을 경유하는 산산조각 나는 몸의 단 한 순간의 삶을 나는 미칠 듯이 갈망하고 있었다. 당신이 나와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당신의 삶을 바라듯 당신 역시 나의 삶을 바라고 있다고. 당신은 내가 본 중 가장 커다랗고 하얀 삐에로였고, 당신의 미소는 열대의 꽃처럼 거대하고 탐스러웠고, 당신은 기적처럼 내게 밤들을 건네주었다. 그러한 기적을 의심하면서 감사하면서 부정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었다. 기적 없이는 살아 있음 역시 불가능했기에.

나는 당신을 받아들였다. 당신을 원했고 당신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원했다. 하지만 문을 두드려. 불청객처럼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려. 도끼로 문에 구멍을 내고 그 속으로 발을 집어넣어. 그 누구도 초대하지 않은 곳을 억지로 찢어내고 들어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불가능한 것만을 바랐던 것이다. 내가 당신의 곁에서 수다를 떨 때, 당신이 내 몸 깊이 들어와 내 심장 박동을 느낄 때, 내가 당신의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 당신은 정확히 반대되는 것을, 미미한 인력조차도 없이 밀어내는 척력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게 고백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바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그 누구도 당신이 바라는 것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당신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일 수 없는 것을 바랐고 당신이 죽인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모든 것을 가진 그래서 가려져버린 거대하고 서글픈 구멍을, 메워졌기에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구멍을 가진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내게는 천 개의 응시가 있으나 단 한 개의 눈도 없다.

당신은 창백하게 질린 내 몸에 몸을 밀어넣고 사정한다. 당신은 울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눈물도 피도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내 안을 흐르던 것들은 모조리 멎어버렸다. 나는 잘린 채로 말라붙어가던 검은 장미를 떠올린다. 밤이 아닌 시간에 그 장미는 그리 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당신이 괄호 속에 숨겨 놓았을 그 많은 목소리를. 죽어줘 죽어줘 죽어줘. 나의 죽음을 바라던 그 갈급한 목소리들을.

내가 말을 할 때 당신은 언제나 침묵했지. 당신은 그다지 말하지 않았어.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때 사실 당신은 나를 듣지 않았던 거야. 당신은 다른 나를 생각했던 거야. 당신은 사실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초대했던 거야. 아직 내게 알려지지 않았던, 아직 내가 읽지 못했던 잔혹하고 희박한 미래를.

나는 죽고 싶지 않았어. 나는 오직 당신 때문에 살고 싶었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어. 왜냐하면 당신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원할 수 없는 것을 원해도 괜찮다고. 천사는 그 누구도 저주하지 않는다고. 신이 들어주지 못한 음울한 소원을 천사들은 장난스러운 아이들은 들어줄 수 있다고. 당신이 내게 손목을 잡았으니까. 당신의 손은 얼굴처럼 희지 않았고, 차라리 고기처럼 붉은 색이었고, 나는 당신의 손에 입술을 묻고 울고 있었어. 난 당신이 궁금하지도 않았어. 우리는 함께였고, 내게는 화요일의 밤뿐이었고, 화요일이 아니라면 나는 살아 있지도 않았어.

당신은 내게서 몸을 일으킨다. 당신은 톱으로 나를 정성껏 썰어낸다. 손목과 무릎과 목과 골반의 관절이 서서히 떨어져나간다. 빠진 머리카락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나는 한 번도 궁금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내가 분리되는 것을, 관절이 빠진 인형처럼 해체되는 것을 바라본다. 나는 사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모든 곳에 있고, 나는 다만 그곳에만 없다. 그곳에만. 다른 곳, 내가 상상하지 못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이름조차 모르는 도시, 푸르고 아름다운 곰팡이들이 작은 구를 따라 원형으로 두툼하게 뭉쳐진 구형의 구멍 투성이 도시에 나는 없다.

당신은 나를 차고 밑 지하에 숨긴다. 당신은 내 손가락 하나를 주머니에 담는다. 피는 그다지 흐르지 않는다. 그다지 출혈하지 않는 나는 마치 울음이 메마른 비정한 사물처럼 보인다.

나는 당신의 곁에 남아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당신이 살아 있는 것을, 당신이 숨을 쉬는 것을, 당신이 흐느끼는 것을 바라본다.

당신은 나를 마주본다.

당신은 내가 유령처럼 희고 이전보다 조금 더 작아졌다고 말한다. 당신은 웃는다. 당신은 내 악몽을 꾼다고 말한다. 낮에도, 밤에도, 저녁에도, 특히 화요일 밤이 되면 어김없이 내가 당신에게 틈입한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살아 있으면서도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죽음을 초과한 삶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언젠가 나는 천사가 되고 싶었다. 당신은 나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천사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어떠한 계기나 매개도 없이. 악몽은 자유로운 비명과도 같은 장소니까.

나는 당신에게 죽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당신을 원했다고, 살아 있는 당신을, 그리고 살아 있는 나를, 살아서 출혈하는 붉은 심장을. 그것은 미칠 듯이 살아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또 천사를 토해내고 싶다

나는 구역질을 해댄다. 혀에 들러붙은 얇고 축축한 깃털들이 내 것인지 당신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당신은 내 손가락을 은밀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도 당신은 나에 대해 방금 꾼 악몽에 대해 생각한다. 당신은 어쩌면 모든 것이 악몽에 불과한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정말로 이루는 사람은, 욕망과 접합된 사실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그의 아내는 소년처럼 키가 작으며 마르고 짧은 머리를 한 동양인이다. 그녀의 눈은 검다. 당신의 검푸른 눈보다도 더 검다.

그녀는 당신이 젖어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젖어 있다. 당신의 뒷목과 등 뒤로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미지근한 땀을, 악몽의 흔적과도 같은 얼룩을 나는 분명히 볼 수 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죽은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죽을 수 없이 죽어 있었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살기를 원했다.

당신의 아이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는다.

어쩌면 악몽을 꾼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방랑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이해하고 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표류가 영원처럼 계속되리라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 공기중에 흩어져버린 작은 물방울, 이제는 형체도 빛도 없이 사그라든 작고 미미한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떨어져버린 머리카락이라는 것을 안다. 머리카락은 더 이상 머리카락이 아닌 채로 공기중을 부유한다. 하수구 위를, 쥐들의 작고 연약한 검붉은 위 속을 살아간다. 당신의 눈 속에 남기고 온 침잠하는 내 삶은 당신의 속에서 부유한다. 당신이 악몽을 꾸는 한 나는 이곳에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나를 잊지 않기를, 아니 영원히 잊어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존재를 그만두고 싶다. 그러나 살고 싶다. 존재도 기억도 없이 살아있고 싶다. 달보다도 가볍고 비밀스럽게.

왜냐하면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당신은 내가 가진 첫 번째 친구고 내가 만난 첫 번째 기적이고 당신은 내가 먹은 첫 번째 천사고 당신은 내가 가진 유일한 사실이었으니까.

나는 눈을 잃은 응시다. 중추적인 형태를 잃은 부유하는 시선이다.

당신은 내게 조용히 하라고 속삭인다. 소리치지 마. 당신이 나를 들어주었듯이 당신을 들으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거짓이다. 당신은 나를 듣지 않았다.

자동차 라디오의 여자는 내일 태양이 없을 것이라고 나지막한 연극조로 말한다. 내일은 해가 뜨지 않을 것입니다. 가려진 해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빛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산을 쓰라고 여자는 말한다. 양산 대신 우산을 쓰라고. 비는 내릴 것이라고. 해가 없어도 비는 내릴 것이라고.

그 애는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는다. 당신은 그 애와 여자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당신은 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들보다, 삶보다 더 많은, 더 지나친, 언제나 초과하는 죽음만을 바라니까.

내가 천사가 되면, 나를 천사로 만들어준 당신을 지켜 주어야 할까? 당신이 내 아이인 것처럼, 내가 토해낸 새들인 것처럼 다정하게 어루만져 주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당신이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단 한 순간의, 부패하는, 그로테스크한 충돌의 잔해를 넘겨 당신의 눈보다도 더 검푸른 빛으로 피어나는 삶의 웅덩이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원하는 것은 삶보다도 더 짧은 일순의 죽음뿐이다. 플래시가 터지면 섬광은 성스러운 푸른 젖음을 비춘다. 나는 당신이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소년 시절에 그 누구에게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하면, 그는 당신에게 입을 맞추고 당신의 삶을, 당신의 호흡을, 당신의 심장을, 고동치는 출혈을 바랐겠지. 꽃이 영원히 살아서 붉기를 원하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그러나 삶이 아닌 죽음을, 부패와 출혈의 이전 단 한 순간 출현하는 기적과도 같은 멎음을 갈망하는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당신의 갈망을 털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의 결핍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훼손을 전제로 한 결핍의 절멸을 전제로 한 당신의 파괴적인 결핍. 당신은 나를 악몽처럼 두려워하지만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고, 절개된 내 분노는 대상을 잃은 채 미래를 떠돌고 있다.

미래에는 밤을 물어뜯는 개들과 무거운 시신을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단 지나치게 많은 나무들과 오염된 도시들과 길들이 있다. 장미는 모두 얼어 죽었고 아무도 죽은 장미들을 추모해주지 않았다. 그처럼 나 역시 나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 당신이 슬퍼하지 않는 나의 죽음이 내게는 의미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삶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삶이다.

나는 오직 본다. 나는 오직 듣는다. 죽음의 세 여신들의 자매인 슬픔의 세 여신들처럼.

어째서 어떠한 사실들은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 어째서 어떠한 욕망들은 함께일 수 없는 것일까. 당신이 훼손하고 찢어발긴 삶이 어디로 흩어졌는지, 더 이상 내게 속해 있지 않는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생명은 당신의 지하실에도, 차고에도, 시트에 묻은 얼룩에도, 당신의 얼굴을 적신 눈물자국에도 없다.

생명은 오직 악몽 속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오래도록 같은 악몽을 꿀 것이다. 당신은 내 악몽을 헤맬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나와 함께 머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떠나갈 것이고 맹렬한 열망으로 깊어진 당신의 삶을 살 것이다. 당신은 간혹 나를 기억할 것이고,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내가 죽던 순간을, 내 호흡이 멎어들고 투명한 피가 멎어들던 유리병의 최후와도 같던 순간을 상기할 것이지만 결국 나를 떠나갈 것이다. 나는 당신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내게는 더 이상 삶의 갈망이 없으니까. 나는 삶을 떠났고, 더 이상 삶에 속해 있지 않고, 과거와 현재는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니까. 나는 오직 미래에 속한 채로, 미래에 부유하는 채로 미래를 떠돌고 있다. 나는 아직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 당신을 보지만, 미래에서 과거를 회고하듯이 그러한 방식으로 미미한 미래로 밀려간 당신을 굽어본다.

나는 당신의 메시아가 아니다. 당신이 나의 천사가 아니었듯이. 당신이 나를 삶으로 구원하지 못했듯이. 나는 당신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격리된 잔해 속에서 불화하며 존속한다. 투명하게 일렁거리는 춤들이 나를 에워싼다. 촛불들 속에 둘러싸여 생일 케이크의 끔찍하게 불어나는 화염을 꺼뜨리는 노인처럼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을 원했다. 나는 당신의 옆에서 살아 있었고, 살아 있었기 때문에 더 살아 있고 싶었다. 당장 죽어서라도 더 깊이 더 끔찍하게 살아 있고 싶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당신은 장난스러운 어린 아이처럼, 제 치졸하고 간절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자폐적인 소년처럼 내 촛불을 전부 꺼 버렸다. 당신은 깊이 숨을 내쉬었고, 다시 내게 담겨 있던 숨을 들이켰다.

그것이 내 숨이라고 그것이 내 것이었다고 호소할 수는 없었다. 그 숨 역시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게서 훔쳐낸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나는 살고 싶었다. 숨이 멎을 정도로, 메슥거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당신의 아이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당신의 여자는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인다. 당신은 상냥하게 웃으며 설거지를 한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다. 당신은 삶에게 다정하다.

당신은 미래에서 너울거리는 나방처럼 넓게 부풀어오른 내 엷은 인상을 본다. 당신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정말 미안하지 않으니까.

당신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죽음을 통과해 더 이상 죽어 있지 않은 나를, 당신과 같은 시간에 속해 있지 않은 나를, 시간과 공간의 틀 없이도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나를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은 솔직하다. 악몽에게 악몽은 솔직한 법이니까.

당신은 내가 홀로였기 때문에 내가 외로웠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화요일 밤을 어리석게도 너무 깊이 원했기 때문에 나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내가 아닌 누구라도 너를 택했을 거야. 너는 너무 굶주려 있었고, 너는 너무 어리석고 연약했고, 너는 누구라도 따라갔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아니었어도 너는 언젠가 죽었을 거야.

그러나 당신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나는 당신을 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죽음들은 다르다. 죽음은 하나의 죽음으로 수렴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전혀 다른 미래를, 전혀 다른 죽음을 가졌을 것이다. 장례의 베일을 쓰고 날아가는 벌레들의 희미한 안개를 닮은 몸부림. 나는 당신이 욕망하지 않는 척하기를 바랐다. 당신이 나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 척하기를. 당신이 나를 놓아주기를. 그래서 다시 천사에게 기도할 수 있기를. 내가 토해낸, 내가 잉태하고 내가 낳은 천사들에게.

천사들은 나를 용서했을 것이다. 나는 살아 있었고, 당신의 아이가 당신을 용서할 것이듯 그렇게 삶은 당신을 용서할 텐데, 왜냐하면 당신은 살아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으므로 그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당신은 나의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 당신은 죽음들 속에서 살아 있기를 원한다. 과일과 꽃처럼 매혹적으로 피어난 죽음들에 둘러싸여 황홀하기를 원한다.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 역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해도 괜찮다고 했던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숨이 막혔고 숨을 참을 수조차 없이 숨이 막혔고 당신의 두툼하고 붉은 고깃덩이 같은 손은 내 목을 감싸고 있었고 당신은 괜찮다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속삭였고 그런 말은 전혀 필요 없었던 것이, 왜냐하면 나는 너무 숨이 막혔으니까. 그래서 소리를 지를 수 없었으니까. 사실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비명을 미친 듯이 지르고 싶었는데, 그래서 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당신을 원망할 수조차 없었고 삶을 원하느라, 삶을 갈망하느라 당신을 죽음을 뿌리칠 수조차 없었고 단지 갈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이 가빠서 죽을 것 같았고 폐가 갈기갈기 찢기고 목이 면도날에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고 당신의 눈은 밤처럼 거대하고 검푸르게 젖어 있었고 당신은 나를 연민하지 않았고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삶을 원하는 나를 망가뜨리기만을 원하는 당신을 나는 연민할 수 없었고 이해할 수 없었고 어째서 하나의 욕망은 다른 욕망의 치명적인 파쇄와 결부되어 있는 것일까. 어째서 파티에는 모두가 초대받지 못하는 것일까 생일 촛불들 앞에서 두렵고 비참해서 도망치고 싶은 생일의 주인공은 어째서 문을 박차고 검은 숲 속으로 뛰어갈 수 없는 것일까.

나는 당신이 목을 매는 꿈을 꿨다고 속삭였고 당신은 듣고 있지 않았고 나는 말을 더듬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속삭였고 당신은 듣고 있지 않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이 무섭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은 내가 가진 유일한 사실이고 현실이고 매혹이라고 당신과 함께 벌레처럼 벌거벗고 있으면 온몸이 간질거리고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고 당신은 듣지 않았고 당신이 내 목을 조르는 동안 나는 기꺼이 당신을 위해 죽은 척 해줄 수도 있었는데 숨을 참는 연기를 죽어버린 소년의 연기를 할 수 있었는데 당신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오직 죽음, 진짜 죽음, 내가 원하는 사실과 공존할 수 없는, 불화하는, 탄식과도 같이 벌거벗은 죽음뿐이었고 나는 당신을 밀어낼 수 없었고 사실은 살고 싶었는데,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도망가고 그리고 다시 당신을 찾아오고 싶었는데, 나를 듣지 않는 당신의 옆에 있고 싶었는데 당신과 함께 발가벗고 싶었는데,

당신은 나를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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