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쌍둥이 1

무언가 잘못됐어요. 선생님. 우리는 이러려던 게 아니었어요. 끔찍한 실수예요 다른 모든 실수가 그렇듯 돌이킬 수 없는.

어째서 미리 일러주지 않으셨어요? 우리 뇌 사진을 찍어가실 때 선생님은 전부 아셨을 거예요. 선생님은 우리 뇌 구조가 유사하지만 치명적으로 다르다고 말씀하셨죠.

그녀는 언제나 살고 싶어했고 난 언제나 죽고 싶어했죠.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만큼 난 죽음을 사랑했고 그녀가 삶에 대해 생각하는 만큼 난 죽음에 대해 생각했고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차가운 벌레들 사이를 꿈꾸듯 헤매며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면 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장미 사이에 얽힌 아름다운 거미줄 때문에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면 난 그것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다 아셨을 거예요. 우리도 보지 못한 뇌를 투명하게 해부하고 사진으로 훔쳐가고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어떤 미래가 들어 있는지 전부 읽어내셨겠죠. 그럼에도 선생님은 경고하지 않으셨어요.

그때 우리는 결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완전한 삶, 독립적인 삶, 자유로운 삶을 얻고 난 완전한 죽음, 독립적인 죽음, 자유로운 죽음을 얻는 것으로 우리 사이에 역겹게 이어진 태반을 갈기갈기 찢어내려 했던 거죠.

선생님은 수술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셨어요.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너무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떼어낼 수 없다고요. 기어코 찢어내는 순간 우린 죽을 수밖에 없다고요. 그건 우리가 원한 게 아니었어요. 난 오직 나만의 고유한 죽음을 원했고 그녀는 삶을 원했으니까. 우린 찢어짐을 동반하지 않는 다른 방법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자살은 불가능했어요. 선생님께 말씀드린 바 있듯 우리 몸은 때에 따라 우리 중 더 깊게 잠든 누군가에게 넘어가곤 했으니까. 꿈을 꾸는 사람이, 더 오래 꿈을 헤매는 사람이 몸을 쓸 수 있었죠.

잠에서 깨어난 나는 그녀가 멍한 눈으로 헤엄치듯 방을 건너 횡단보도로 뛰어드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내가 참회하듯 애처로운 얼굴로 물 밑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모습을 비명을 지르며 말릴 수밖에 없었죠. 더 늦게 깨어난 사람에게 사지의 통제권이 돌아갔어요. 꿈에 지쳐서 제대로 사지를 쓸 수도 없는 사람, 무의식에 완전히 잠식되어 몽유의 세계를 헤맬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대개 우리 중 누군가는 하루종일 깨어나지 않았죠. 몽유의 세계는 지독하게 끈질겨서 쉽게 헤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의 의식이 진정으로 몸을 사용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그런 상태로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었죠.

더 큰 문제는 몸의 통제권을 완전히 장악한 자의 결심, 행위와 직결되는 사고만이 행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녀는 나를 죽이는 동시에 그녀를 살릴 수 없었고 난 나를 죽이는 동시에 그녀를 살릴 수는 없었어요. 이해하시나요? 우리의 행위는 개별적일 수 없었다는 거예요. 온전한 죽음과 온전한 삶, 우리는 서로에게 예속되지 않은 채 각자의 자유를 성취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죽일 듯 미워했죠. 하지만 그녀는 날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난 그녀를 죽이고 싶어했으며, 동시에 난 나 외에 누구도 죽지 않기를 원했고 그녀는 그녀 외의 모두가 죽어버리기를 원했죠. 내가 삶을 저주한 것처럼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했으니. 할 수만 있다면 모두를 끝까지 살리고 싶었던 나와 달리 그녀는 모두를 죽여버리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 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내게 중요한 것은 죽는 것, 그녀의 도움도 그녀의 허락도 그녀의 방해도 없이 죽는 것이었고 그녀에게는 그 반대의 일이었죠. 같은 몸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달랐는지. 선생님도 확인하셨지만 우리의 뇌조차도, 우리에게 하나뿐인 개별적 장기조차도 치명적으로 다르죠.

그녀는 항상 내 피부가 지저분하다고 말했어요.

고개를 돌리고 자. 기분 나쁜 게 묻을 것 같으니까.

그녀는 내가 푸른색으로 보인다고 했죠. 내게는 그녀가 푸른색으로 보였어요. 하지만 난 그녀의 푸른색이 불쾌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성모의 푸른색, 유령의 푸른색, 죽음의 푸른색, 깊은 물의 푸른색.

그녀도 내게서 같은 푸른색을 보았던 걸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대개 낙관적인 그녀가 그렇게 치를 떨 일은 없었을 테니. 그녀는 죽음을, 특히 그녀 곁에 있는 죽음을 두려워했어요. 매해 기일이 될 때마다 그녀는 엄마의 유골함에 가서 흰 꽃을 바치고 싶어했죠. 난 별 관심이 없었어요.

엄마는 우리를 낳다가 죽었어요. 머리가 두 개인 괴물을 낳다가 국부가 찢어져서 과다출혈로 죽은 거죠. 의사는 우리를 보자마자 오랜 불면과 환각이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충동에 휩싸여 엄마의 배를 가르려던 메스로 우리 머리를 잘라버리려 했어요. 간호사가 막지 않았다면 그녀는 더 이상 엄마를 애도할 수 없었을 테고 난 엄마를 잊어버릴 수 없었을 테죠. 엄마의 죽음을 질시할 일도 없었을 테고.

그녀는 모든 게 나 때문이라고 했어요. 네가 달려 있어서, 끔찍하고 기이한 암덩어리가 불룩 튀어나와 있어서 엄마가 죽은 거라고.

난 말도 안된다고 대답했어요. 내가 암이라면 그녀의 암일 것이고, 그렇다면 엄마의 죽음도 네 기형 때문이며, 결과적으로는 너 때문인 거라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울었어요. 그러나 내 목을 조르거나 유령처럼 푸르다는 피부를 쥐어뜯을 수는 없었죠. 그날 우리는 둘 다 깨어 있었고 침대 위에 식물처럼 마비된 상태로 얼굴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 날이 있어요. 선생님. 간혹 우리 둘이 동시에 깨어나는 날이면 몸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임과 정지의 방향, 작용과 반작용의 방향으로 한없이 밀려 미동도 할 수 없죠. 난 목을 맬 올가미를 묶을 수 없고 그녀는 올가미를 찢을 수 없고 그녀는 바깥으로 나갈 수 없고 난 도망칠 수 없어요. 우리는 가만히 누워서 고개만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음 밤이 지나기만을 기다려요. 차라리 몸을 완전히 잃어버리기를.

그러나 정말 드물게도 다음 날에도 같은 순간 눈을 뜨고 깨어나면 침대는 변으로 더러워지고 파리들이 들끓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개를 돌려 구역질을 해대고 각자 삶과 죽음을 저주하면서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사흘 내내 같이 눈을 뜬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녀가 죽었을 때 난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죠. 그런 일은 이제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어릴 때 우린 훨씬 친했어요. 난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저 그런 어린아이였어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가령 삶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언젠가 형이상학적인 것들에 병적으로 매혹되기 전에, 그러니까 내가 죽음만을 보고 그녀가 삶만을 듣게 되기 전에 우리는 현상들에 대해서만 생각했어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안다고 굳게 믿는 것들에 대해서.

아빠는 우리가 우리의 기형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방은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었죠. 발레 교실에나 있을 법한 커다란 거울이 사면의 벽을 전부 덮고 있었고, 네 면에서 각각 우리를 응시하거나 무시하는 여덟 개의 얼굴들이 거울의 거울상에 되비추어지면서 한없이 나아가는 그 기묘한 미로 속에서, 우리는 간혹 지독한 멀미를 느껴 구역질을 하곤 했는데, 그래도 아빠는 버텨야 한다고 했죠. 우리가 우리의 불구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지만 거울의 거울의 거울의 거울들 속에서 한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이는 우리들은 어쩌면 뒤로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고, 그렇게 우리는 나아가는 또한 물러나는 환상을 한없이 꿈꾸면서 지독한 울렁거림에 시달렸으니, 그때 우리는 거울들의 미소를 보았고 치명적인 흰빛이 우리의 얼굴을 갈라놓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느꼈는데도 거울은 한없이 구불구불하게 나아가며 물러나며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고, 아빠는 견뎌야 해, 얘들아. 인정할 수밖에 없단다, 하고, 나의 아니 그녀의 아니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끌어안았고, 우리는 치명적으로 흔들거리면서 거울은 영원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불현듯 너무도 갑작스럽게 멀미를 극복했고, 난 끝내 흔들거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우리의 머리가 여덟 개로 예순네 개로 사천아흔여섯 개로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제발 내보내 달라고 애원했으나, 아직은 안돼, 얘야. 멀미를 극복하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우리는 나아가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뒤로 물러서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흔들거리고 있었고,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으니, 구불구불한 미로로 나아가고 물러서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이미지들뿐이었고, 그녀는 나를 경멸스럽게 쳐다보며 유난 좀 작작 떨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난 멀미를 멈출 수 없었고 결국 두 눈을 감고 내 앞에 들이민 그녀의 거대하고 푸른 머리를 들여다보며 이제는 괜찮다고 선언할 수밖에 없었죠. 그녀는 더 이상 거울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어요. 더 많고 무참한 거울들이 있는 바깥에. 난 오로지 거울들이 두려웠기 때문에 나가고 싶었던 것이지 바깥을 갈망했던 건 아니었어요.

처음 밖으로 나갔을 때 우리는 푸른색 원피스를 입었죠. 그때 옷을 입었던 게, 손을 움직이고 발을 내디뎠던 게 나였는지 그녀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우린 간혹 발작적인 혼수상태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제정신이었어요. 잠도 그리 오래 자지 않았고 몽유병 증세도 없었죠. 적어도 우리가 서로를 감시한 바에 따르면 그랬어요. 삭제된 비밀들이 어떤 십자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대체로 우리는 괜찮았어요.

아빠 차 뒷자석에 앉아서 난 검은 우산을 목 위에 달고 걸어가는 기묘한 군중들을 지켜봤어요. 그녀는 병적으로 기뻐했어요. 꿈을 꾸듯 검은 눈과 당장이라도 홀연히 사라질 듯 짙은 푸른 안개에 뒤덮인 머리. 그녀는 불길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난 우리가 쌍둥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그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도 간혹 헷갈릴 정도로 닮았지만 바깥으로 나가던 날을 기점으로 해서 우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갔어요. 그녀는 이해할 수 없을 만치 외향적이었고 난 절망적으로 내향적이었죠. 학교에서 그녀가 그녀의 불구를 자랑삼아 친구들을 사귀고 인기를 얻는 사이에 난 내 불구 때문에 파멸해갔어요.

그녀는 마치 우리가 전혀 다른 병을 앓고 있다는 듯, 내게 있어서는 끔찍한 불구가 그녀에게는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 친구들에게 떠벌리고 다녔죠. 그녀의 친구들이 혐오와 흥분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고 잡아당기는 사이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낄낄거렸어요.

난 그녀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불가해하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증오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죠. 분명 우리는 같은 몸을 가지고 있고 같은 어깨에서 돋아났는데도 어떻게 그토록 다를 수 있었던 것인지. 그녀의 불구에 매혹을 느꼈던 그녀의 셀 수도 없이 많은 친구들은 어째서 나를 혐오하고 무시했던 것인지.

우리는 서로에게 무한히 다른 타자였어요. 우리는 언제나 맞붙어 있었는데도 섞여들지는 못했죠. 죽음에 대한 절망적인 갈망은 그녀에게 조금도 전이되지 않았고 삶에 대한 병적인 집착 역시 내게 옮아오지 않았어요.

잠들기 전에 그녀는 습관적으로 중얼거리고는 했어요. 넌 곧 죽을 거야, 하고요. 그렇지만 난 죽지 않을 거야. 난 결혼을 열 번 하고 머리가 하나뿐인 아이들을 여럿 낳고 아이 수만큼 많은 보모들을 들이고 살 거야. 네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 그 애들은 널 기억하지 못할 거야. 친구들은 간혹 너에 대해 물을 테지만 그건 내 과거에 대해 묻는 것이지 정말 너에 대해 묻는 건 아닐 거야. 그 애들은 내 친구였고 그 애들이 궁금해하는 건 내 변화이지 너는 아니니까. 그래도 널 엄마 유골함 옆에 놓아 줄게. 네 유골함은 훨씬 작겠지만 그래도 엄마와 정확히 같은 유골함에 넣어 줄 거야. 엄마에게 인사를 할 때 네게도 흰 꽃을 갖다 줄게. 악몽을 애도하듯이 너를 위해 울어줄 거고 잃어버린 유년을 슬퍼하듯이 너를 슬퍼할 거야.

난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해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그건 그녀가 꿈꾸던 미래였어요. 이미 상실되어 버린. 그녀는 나로부터, 죽음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했어요. 엄마의 자궁에서 내가 그녀에게 흡수되지 않았던 건 이상한 일이죠. 우리에게 삶에 대한 그토록 강렬한 욕망과 죽음에 대한 갈망이 외따로 잠재되어 있었다면 내가 그녀에게 매달려 녹아가는 형태로 세상에 나와도 좋았을 거예요. 배니싱 차일드의 절제는 샴쌍둥이의 경우보다 간단하니까 그녀는 이미 죽어버린 내 흔적을 떼어내고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었겠죠.

그러나 난 완전히 독립적인 푸른 얼굴을 달고 태어났고 어느 한 쪽을 죽이지 않고 한쪽을 완벽하게 절제해낼 수 있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어요. 우리는 심장과 간, 소장과 대장, 위를 모두 공유했으며 심지어는 사지까지도 무척이나 불규칙적이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번갈아 사용하곤 했으니까.

엄마가 살아 있었다면 그녀를 무척 사랑했을 거예요. 그녀는 엄마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어요. 우리의 대화는 대개 그녀의 일방적인 수다와 내 편파적인 경청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에 대해, 존재하지도 않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엄마와의 포옹, 엄마와의 입맞춤, 엄마와의 여행과 엄마와의 식사와 엄마와의 장난에 대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대해 꿈꾸는 시선으로 이야기할 때면 난 반박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죠. 그녀를 엄마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악용하고 왜곡하면서. 난 간혹 그녀를 엄마라고 생각하고는 했어요. 이미 가루가 되어 의식도 고통도 없는 유골보다는 그녀 쪽이 엄마와 더 닮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는 내가 그녀를 그토록 철저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악용했다고는 짐작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항상 날 가여워했으니까. 내가 그녀보다 여리고 음침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는 내가 약하기 때문에, 우리의 불구를 긍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무력하기 때문에 죽음을 원한다고 믿었어요. 내가 삶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죽음으로 도피하려 한다고요. 하지만 내 쪽에서는 오히려 그녀가 연약하게 느껴졌고 그녀가 죽음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어 삶으로 도피한다고 여겨졌으니, 난 내 방식으로 힘없는 그녀를 철저히 물화하고 이용하고 왜곡했죠.

간혹 내가 그녀를 엄마, 하고 부를 때면 그녀는 내가 그녀처럼 엄마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해 눈물을 흘렸지만 난 이미 죽은 엄마를 그리워해본 적은 없어요. 선생님, 그녀는 엄마가 흰 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흰 꽃을 좋아한 건 그녀였죠. 엄마가 흰 꽃을 좋아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어요. 엄마는 이미 죽어버렸고 아빠는 엄마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아빠는 엄마가 너희를 낳다가 죽었다는, 백치 같은 의사가 너희 목을 베어내려 달려들었다는, 간호사가 그를 말리지 않았다면 너희는 엄마와 함께 화장되었을 거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았어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건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를 경험해본 적이 없을 그녀였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엄마를 통과했고, 사라진 엄마는 결국 우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죽어버렸고, 아마 엄마는 우리에게 두 개나 되는 머리가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을만한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죽어버렸을 것이니, 천국에서 엄마가 그녀를 만난다고 해도 머리만 둥둥 떠 있는 그녀를 엄마는 알아보지 못할 테죠.

내게는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녀, 내 엄마이지 않은 그녀는 필요 없었어요. 그녀가 잠들 때 그녀는 내 엄마가 아니었지만 난 엄마에게 칭얼거리듯이 그녀에게 칭얼거렸죠.

어린 시절에 난 당신이 날 죽이는 걸 봤어요, 엄마, 하고 난 눈을 뜨고 잠든 그녀에게 속삭였어요. 당신은 다리를 벌리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죠. 당신은 이미 죽어 있었는데 죽었으면서도 우리를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우리를 끌어안던 여자는 누구죠? 허공에는 붉은 나비들이 펄럭거리면서 흩날리고 난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채로 붉은 허공이 날 뒤덮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폭발하는 밤의 경계들, 가라앉는 시간, 음탕한 저주와 희극적인 울음소리, 난 당신이 태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당신은 죽은 적도 없었고 태어난 적도 없었던 거죠.

우리는 당신을 가만히 듣고 싶었지만 당신은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모든 방향으로 쏟아져나가는 수천 갈래의 모서리들. 난 참지 못하고 거울을 깼고,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도 보지 못하고 우리가 수천 조각으로 수만 조각으로 쪼개지며 전율하는 것을 보았고, 그때 그 애의 얼굴은 끔찍할 정도로 붉었는데, 난 언제나 푸르기만 했던 그 애가 그렇게 붉어질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엄마, 난 당신이 우리들을 두고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생각해요. 즉흥적인 발상으로 당신이 혼곤한 망상에 빠진 의사 앞에서 의사의 허리를 잡고 뒷걸음치던 간호사 앞에서 내 목을 졸랐다면 그들은 당신의 애처로운 비밀을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았을 거예요. 밤조차 눈을 감고 당신을 용서해 주었겠죠. 허공을 떠돌던 미세한 유리조각들이 목격자들의 눈 속에 들어가 눈을 멀게 만들었을 것이고 난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묵묵하게 당신의 손을, 최초의 포옹을, 최초의 마주침, 최초의 눈맞춤을 받아들였을 거예요. 난 그녀만큼이나 당신을 사랑하니까. 난 당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당신을 사랑했을 테니까. 어린아이가 맹목적으로 밤을 악몽을 어둠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당신을 사랑했을 테니까. 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어린아이였고 다른 모든 어린아이가 그랬다면 나 역시.

하지만 당신은 나와 눈을 맞추기 전에, 내 머리와 그녀의 머리를 동시에 일별하기도 전에, 당신이 해야 했던 일을 떠올리기도 전에 죽어버렸고, 가끔 난 당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는 생각을 해요. 아빠가 들려주기도 전에, 의사의 기행과 간호사의 만류에 대해 듣기도 전에 당신이 가위처럼 다리를 벌리고 찢겨 죽어가는 모습을, 엷은 막이 차오른 눈이 잔혹하게 흰 전등을 응시하며 깜빡거리는 모습을, 당신의 가슴이 빛에 녹아내린 거미줄처럼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천 개의 유리조각이 우리의 울음을 깨뜨리며 내밀한 내부에 달라붙는 모습을 보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은밀히 퍼져가는 무자비한 분열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내 독단적인 망상은 끝을 모르고 노골적인 붉은 빛으로 물들어가고, 영원히 누그러지지 않는 공포와 영원히 완화될 수 없는 혼동. 우리의 곁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고, 당신은 버려진 사막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는데, 그 애들은 머리가 하나씩 달려 있었고, 그러니 언젠가 우리를 마주친다 해도 당신은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빙하와 사막의 후손들, 유기된 미래의 아이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늙어버렸고, 당신은 한때 우리가 생이라 믿었던 증상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끼며 흐느꼈고, 눈 멀고 귀 먹은 나는 사실 당신이 폭력적으로 찢겨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끔찍한 비명조차도 듣지 못했는데, 그런데도 난 당신을, 오직 당신의 죽음만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를 낳기 전에 당신은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그게 아니라면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역겨운 질병에 감염되었거나. 당신은 간혹 우울해했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죠. 우울과 절망이 병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뒤늦게 깨어난 그녀는 최초의 비명을 질렀어요. 깨진 벽을 보고 산산조각 난 채 물처럼 흘러내리는 축축한 거울을 보고, 수천 수만 개의 괴물들을 보고, 새빨갛게 오염된 머리들을 보고. 난 더 늦게까지 잠들어 있던 그녀가 거울을 깼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죠. 그녀는 밤까지 내내 울었어요.

난 당신의 피폭된 흰 몸에서만, 오염된 흙에서만 자라날 수 있는 식물이었고 그녀는 당신을 꿈꾸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연약한 환상이었어요, 하고 잠든 그녀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어요.

그러나 살아 있는 건, 살아서 삶을 꿈꾸는 건 언제나 그녀였고 난 당신이 내가 아닌 그녀를 선택했으리라고 생각해요, 하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눈물 흘리지 않았죠.

어느 날 자는 척 내 말을 듣던 그녀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순간 돌연 눈을 뜨더니 끔찍하게 일그러진 눈으로 날 거의 외면하듯 집요하게 관찰하면서 넌 미쳤어, 하고 말하더군요.

그녀는 내가 미쳤다고 했어요.

난 그녀에게 그럼 넌 나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널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미치지 않고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는 없는 거라고.

그때 난 처음으로 그녀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난 오직 나를 위해 죽고 그녀는 오직 그녀를 위해 살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었죠. 그녀의 독립적인 삶을 바라면서도 난 그녀에게 독립적인 죽음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 했어요. 선생님, 당신이 우리를 떼어낼 수 없다고, 우리에게 결별은, 잠을 경유하지 않은 이별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던 날 우리는 아직 발명되지 않은 죄를.

아니에요, 선생님. 당신도 이미 알고 있었죠.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은 없어요. 우리는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오염되어 있었고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고 있는지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엉켜 있었지만, 사실 모든 생명과 모든 살아감은 근본적인 오염이고 기생인 거죠. 어떤 삶도 어떤 죽음도 정당할 수 없고 어떠한 생도 교정될 수 없는 거예요.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들은 각자 하나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누군가는 한 몸에 기생하는 무수한 머리들을 보고 그 우글거리는 끔찍한 머리들을 견디지 못해서 찢어내고 뜯어내고 뭉개버리고 마는 거죠.

당신은 우리의 뇌 속을 치명적인 절망과 차이, 완수할 수 없는 의미와 전율하는 질병의 푸른 얼굴을 보고 나서도 우리를 말리지 않았죠. 말릴 수 없었던 거예요, 그렇죠? 난 그녀로부터 홀연히 사라질 수 없었고 그녀는 몰락과 소멸, 와해를 겪지 않고 깨끗해질 수 없었어요.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흐느낄 때 난 그녀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잘못되었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그녀가 붉게 물들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를 때도, 자기를 상실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들의 얼굴처럼 처참하게 일그러질 때도 그건 그녀가 감당해야 할 자기상실의 다소 폭력적이지만 불가피한 과정일 뿐이라고 여겼죠.

반면 죽음은 견고하고 부드러웠으며 심오한 미혹처럼 매끄러웠어요. 난 죽어가는 내가 아니라 그녀가, 고통을 겪고 삶을 쟁취하는 그녀가 아니라 내가 황홀을 경험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언제나 희망하던 이는 그녀였고 절망하던 이는 나였으니, 한 번쯤은 처참한 연쇄의 끝 희박한 소실점에서는 모든 것이 뒤집힌다 해도 이상할 건 없다고 느꼈죠.

그러나 죽어가던 것은 그녀였고 살아남은 것은 나였던 거예요. 끔찍하게도, 우리는 치명적인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고 난 죽어가는 그녀를 겪고 있었어요.

그녀가 죽어버린 뒤에도 난 여전히 살아남아서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삶을 견디고 있었어요. 그녀는 내 죽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죽음을 목격했고, 난 당혹스럽게도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며, 유령처럼 푸르게 번져가는 얼룩을 확인하면서 짙은 푸른빛의 의미를 알아차렸죠. 그녀의 푸른색과 내 푸른색의 중첩된 암시를.

당신은 이미 죽은 그녀의 머리에 치료약을 주사했지만 난 그녀가 살아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난 내 삶보다도 그녀의 죽음을 선연하게 느꼈고 이토록 황홀하게 경험해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아마 내 죽음조차도 그녀의 죽음만큼 강렬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를 끊임없이 찢어발기던 영원한 다중성과 무한한 영원과 조화될 수도 중화될 수도 없었던 창발적인 전염의 존재로부터 살아남은 것은 그녀가 아닌 나였어요.

내가 얼마나 더 살아남을 수 있을지 선생님은 가장 유능한 점성술사보다도 더 정확하게 알고 있겠죠. 선생님은 우리의 머릿속을 투명하게 일그러진 뇌에 새겨진 짙은 운명의 무늬를 모두 보았으니.

치명적인 흰 밤은 계속되었고 더 이상 낮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난 기뻐서 울었고, 그녀는 슬퍼했지만 울지는 않았죠.

아무도 웃지 않았어요.

선생님 우린 오래 전부터 웃지 않았으니까.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는 서로의 검은 눈을, 푸른 얼굴을 마주보았어요. 울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같은 꿈을 꾸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녀가 죽었을 때, 그녀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난 그 꿈을, 계속되던 흰 밤을 견디지 못하고 웃듯이 울던 악몽을 기억했어요. 하지만 밤은 변함없이 검었고 낮은 계속해서 끈질기게, 악착같이 떠올랐죠.

나는 죽어가고 있었고 그녀는 죽어 있었어요.

하지만 아빠는 죽은 건 그녀가 아니라 나고, 살아남은 건 그녀라고 말했어요. 모든 건 뜻대로 된 거라고.

의사는 여자를, 부서질 듯 가느다란 여자를 끌어안으며 흐느꼈다. 깨진 건 거울일 뿐 당신이 아니라고 흐느끼는 소리.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유년은 거울 속에 있었고 사람은 유년 이후를 살아갈 수 없으므로. 끝나지 않는 거울들, 거울을 깬 건 그녀였다. 아니, 그저 날씨 때문이었다. 검게 열린 천장에서 비와 바람이 물밀듯 들어왔고 우리는 놀라 우물처럼 눈을 벌렸다.

그러나 그녀는 죽어 있었다.

여자는 의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깨진 것은 거울이고 또한 그녀들이었다.

아니에요. 거울은 아무것도 훔치지 못해요, 하고 의사가 나지막이 속삭이고 여자는 우물처럼 크게 뜨인 눈, 백합처럼 희고 가지런한 손가락, 모래사장처럼 부드러운 입술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녀는 죽었고 죽어서 그녀의 곁에 있고,

아니에요, 하고 의사가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녀는 당신이 아주 어릴 적에 도려냈죠. 그녀는 처음부터 죽어 있었고 당신은 처음부터 살아 있었어요. 죽음에서 출발한 건 그녀이고 삶에서 출발한 건 당신이었어요. 탯줄을 자르던 순간 난 당신과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내게 올 때까지도 당신은 썩어가는 붉은 탯줄을 길게 늘어뜨린 채로 흐느끼고 있었죠.

Series Navigation<< 부활자샴쌍둥이 2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