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의 물방울

우리는 근거 없는 하나의 선언이다. 서로의 모순을 정리할 수 없는 조각난 음성들이다. 아무도 우리의 비명에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어질 수 없는 망가진 조각들이므로. 제 자리에서 발광하며 누군가 별자리를 상상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서글픈 환각에 불과하므로. 우리는 현실이며 동시에 허구이다. 우리는 살을 가진 허상이고 들리지 않는 울음을 우는 유령이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피를 마시며 자란다. 미로처럼 얽혀들어가는 혈류들이 어디로 자라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 글은 끝나지 않는 서장이다. 때로는 타자를 연민하고 때로는 타자를 겁탈하며 때로는 서글픈체하고 때로는 아픈체 하지만 결국에는 한결같은 절망 속에서 내지르는 비명-울음-살이다. 제 유령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비명들은 결코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소리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다성부의 음악은 멈추지 않고 제 흉악하고 가여운 벌건 살을 누설하며 흘러간다. 서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결말도 끝도 없으며 다만 끝을 애걸하는 목소리들만이 가득할 것이다. 현상이 되지 못한 울음들에 아무도 함께 울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들은 계속해서 울어댈 것이다. 그리고 텍스트 속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목소리들은, 차마 나라고 지칭할 수 없는 조각난 음성의 파편들은 우리가 모르는 피를 마시며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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