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의 물방울

오래도록 서커스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폭죽 소리에 귀가 멀고 말았어요. 어머니는 의자보다도 키가 작은 난쟁이었다고 해요. 하루는 그녀가 아버지의 공연을 도와 무대에 섰어요. 붉은 술을 주렁주렁 매단 그녀는 탐스럽고 아름다웠다고 하지요. 사람이 아닌 짐승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나봐요. 무대 한가운데에서 저가 지나가야 할 비좁은 불구덩이를 묵묵하게 지켜보던 사자가 갑자기 몸을 돌려 그녀에게 향한 거예요. 오랫동안 동물원에서 공수해온 죽은 고기만을 먹고 피에로들에게 아양을 떨며 살아왔던 사자에게도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잊어버리고 있었지요. 사자는 한입에 그녀의 머리를 삼켰어요. 꽃처럼 떨어져나간 그녀의 작고 향기로운 머리를 그 이후로 아무도 어루만질 수 없었죠. 그 사달이 일어나는 동안 아버지는 무대 앞쪽에서 관객들의 커다란 입 속에서 흘러나오는 환호성을 기분좋게 만끽하고 있었어요. 그날, 관객들은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난생 처음으로 타인의 열띤 대답 앞에 서 있었던 아버지는 마침내 당신들을 설득하고 말았다는 기쁨으로 울부짖었어요. 그는 농익은 꽃잎처럼 벌어진 입술들에서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를 들었어요.

나는 사자의 뱃속에서 태어났어요. 사자의 속살을 조금씩 조금씩, 사자가 남의 살을 빌어먹는 속도보다 조금씩 빠르게 뜯어먹으면서 바깥으로 나왔어요. 내가 그의 배를 찢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내게 텅빈 뱃가죽을 부끄러이 펼쳐보인 그 사자가 내 어미라고 생각했죠. 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죠. 죽음의 냄새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그의 얼굴을 열성적으로 애무하는 파리를 피해 그의 젖은 눈가를 매만졌어요.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의 침묵을 들었어요. 문득 나는 그가 내 어미가 아니라 원수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내게 배가 뚫린 짐승, 내가 그의 안에서 몸부림치고 삶의 이전을 이루는 살을, 그의 삶을 조금씩 삼키며 나올 때까지 짖지도 울지도 않고 조용히, 삶의 이전을, 그의 삶을 버티고 주저앉아 있던 내 땅을, 무덤을, 죽음을 미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무도 나를 낳지 않았어요. 내가 그의 삶을 파먹고 제 발로 죽음의 바깥으로 나온 거지요. 아마 내 어머니도 나를 낳지는 않았을 거예요. 난 가지런이 빗어넘긴 머리칼과 기다란 속눈썹 아래 붉게 화장한 입술, 그 모든 얼굴을, 삶을 향해 열린 감관을 모두 잃어버린 어미의, 가장 화려한 미소가 사과처럼 따인 어미의 몸 아래에서 배설물과 함께 흘러나왔을 거예요. 유리처럼 말간 죽음이 버리고 떠난 몸, 변해버린 몸, 죽음의 배설물이었어요, 나는. 붉고 어여쁜 꽃이 사라진 줄기였어요. 오물이 묻어 거무튀튀한 오물이었어요. 그래도 나는 그녀의 다른 오물처럼 무력하게 몸을 풀지 않았어요. 발톱도 없는 발가락으로 죽음의 창자를 두들기고 이도 없는 아가리로 죽음의 껍질을 으깨 먹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사자가 저의 죄를 감내하고 숨죽이는 오랜 세월동안. 사람이 짐승을 도축하고 사육하고 사랑하고 겁간하고 젖을 짜고 새끼를 놓고 질겅이고 버리고 사랑하고 겁간시키고 젖을 짜고 새끼를 먹고 새끼를 먹이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사자는 저의 죄를 먹이며 먹히며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난 그의 죄를 기생충처럼 파먹고 바깥으로 나왔어요. 그는 내게 속삭여야 할 모든 비난과 후회,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하는 모든 어휘와 울음들을 잊어버렸고 잃어버렸어요. 내가 그의 속을 조금씩 조금씩 파먹는 동안 그는 모두 잊어버렸어요. 그는 나를 놓던 어미보다 나를 배설하던 어미보다 더 아팠을 거예요. 더 간절히 나를 기다렸을 거예요. 어쩌면, 그녀보다 더 나를 사랑했을 거예요.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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