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사자의 물방울

그는 어릴 적부터 인간의 손에서 자랐다. 어째서 그의 어미는 털이 없으며 저와는 다른 발성기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째서 두 발로 걷고 이상한 천들을 몸에 걸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질을 얼굴에 바르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은 머리가 굵어지고 난 뒤였고 그전까지는 그저 모든 아이들이 그러듯 갑작스레 맞닥뜨린 중력과 습도, 열기에 필사적으로 적응해가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뿐이었다. 그는 엷은 피부를 짓누르고 뼈를 으무르려 하는 대기의 포악한 압력과 겨루어 싸웠다. 그러나 곧 지독한 습기와 열기를 몸에서 떼어내버릴 수 없으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악몽과 같은 거대한 세계를 부수어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베이지 않기 위해 몸을 둥글게 말고 속삭이듯 숨을 쉬는 일뿐이라는 사실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그를 돌보는 노란 빛깔의 살을 그는 어미라고 여기고 따랐다. 살은 모자란 어미였다. 살은 그를 제대로 안는 방법도 몰라 그의 뼈가 중력의 손아귀에 넘어가게끔 방치하였으며 끊임없이 날카롭게 자라나는 발톱을 갈무리하는 요령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살이 필요한 것은 뜨거운 열기에 머리가 윙윙거리며 아무런 생각도 고통도 없이 대기와 함께 끈적하게 녹아버리는 낮이 아니라 불가해할 정도로-사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춥고 건조한 밤이었는데 밤이 되면 갑작스레 찾아오는 선뜩한 냉기와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형상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살의 품에 머리를 들이밀 때면 살은 얼굴 근육을 늘어뜨리며 등을 한 번 쓰다듬고는 그를 비좁은 우리 속에 가두어버렸다. 우리 속에는 희끄무레한 잿빛이 얼룩덜룩하게 기워진 공-그 공이 그가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색깔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언젠가 그에게 일곱 색깔 무지개 공이라고 이야기한 뒤로 일곱 색깔이라는 말이 광인들의 망상이 아니라 그의 세계가 공유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이후로 그에게는 그 공이 유년과 배신에 대한 알레고리처럼 여겨졌다.-과 입을 대고 빨면 우유가 나오는 작은 젖-어릴 적 그는 아이를 낳은 암컷이 마음대로 젖가슴을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어미는 대체로 젖을 전부 분리해서 다니는 편이라고 그렇기에 괴상한 천 아래 가슴이 그토록 납작하고 단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과 한밤의 대기를 자유로이 유영하다 갈증에 시달려 물 속으로 달겨들어 익사해버린, 혹은 제 무덤자리를 스스로 찾아 아름답고 신비롭게 찰랑이는 생의 물질 위에, 저를 삶 건너편의 영토로 실어다줄 죽음의 강 위에 몸을 누이고 잠든 하루살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는 물그릇, 그리고 밤의 서늘한 공기가 몸 속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감각을, 세계가 제 부드러운 피부를 꿰뚫고 주름 사이로 스며드는 감각을 무참하게 느끼며 밤이 제 작은 몸을 포식하고 돌아가기만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있는 작은 사자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밤에는 네 다리로 뛰어다니고 다리 없이 기어다니는 불길한 그림자들이 사방에서 새어나오곤 했다. 몽롱한 가운데 눈꺼풀을 몇 번 깜빡거리고 어미가 떼어낸 젖을 물고 뜯으며 장난을 치면 금세 지나가는 낮과는 달리 밤은 끔찍이도 길었다. 어둠 속에서 어린 사자의 시야는 더 선명해졌으며 움직이는 형상들을 기민하게 포착하기 위해 낮 동안 휴식을 취하며 늘어져 있던 신경의 다발이 눈의 근육을 조였으며 비충해놓은 혈류를 눈과 코, 사지와 피부 곳곳으로 흘려보냈다. 어린 사자는 밤에 잠을 자는 온순한 온혈동물들이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예민하게 깨어 밤을 스쳐지나는 엷은 바람의 움직임과 창문 너머에서 찍찍거리는 소리, 작은 감옥 바깥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유혹하는 냄새와 소리, 움직임을 속속들이 느껴야 했다. 대개 방 안은 끔찍하게 조용했으며 닫혀 있는 유리창문 바깥에서 움직임과 소리, 냄새들이 흘러들곤 했다. 그곳은 어린 사자의 영역 밖이었다. 가늘고 빽빽한 쇠창살들로 가려진 우리 속에서 짐승은 그저 느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지독하게 고적한 방 안에서 움직이는 사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공을 물어뜯고 굴리며 놀아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는 공의 동작이 낯선 움직임이 아님을, 그저 그 자신의 운동의 반향물에 지나지 않음을 어리고 멍청한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한밤을 견뎌내면서 그는 점점 더 멍청해졌다. 흙과 바위, 짐승의 살갗과 뼈를 갈아내지 못한 발톱은 나날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어졌고 끝내 갈고리처럼 휘어져 그의 여린 발바닥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젖은 풀의 냄새와 따뜻한 혈류가 흐르는 탐스러운 냄새, 찍찍거리는 소음과 땅 위를 활보하는 작고 무수한 움직임들은 나날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린 눈의 막 너머로 맺혀드는 사물의 움직임이 없는 텅 빈 시야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낮동안 기회를 노리며 조심스럽게 잠들어 있던 잿빛 괴물들이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나날이 불결한 몸집을 점점 키워가고 있었다. 그의 어미는 한 번도 그 괴물들의 정체에 대해 알려준 적이 없었지만 사자는 본능적으로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소리를 이 괴물들의 흐릿하지만 압도적인 형상과 대응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잠들면 괴로우리만치 선명하게 깨어서 느끼는 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눈꺼풀을 내리면 그 괴물들의 몸, 소리도 냄새도 감촉도 없이 불가해한 몸집을 계속해서 부풀리며 어린 짐승의 작은 머리속에서 비등하는 투명한 살이 더 선연하게 보였기에 사자는 감히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밤마다 그를 압도하며 서성거리는 소음들의 정체, 끔찍이도 매혹적인 냄새의 낯을 확인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매일 밤 뱃속과 목구멍 안쪽을 미친 듯이 뒤집어대는 메스꺼운 욕망과 결투를 벌였으나 감각의 파동이 불러일으키는 현기증에 지쳐버린 그는 언제나 패배하는 쪽이었다. 어린 사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그의 어미가 떠나고, 작은 창살이 치열처럼 돋아난 상자 안에 갇히고 그를 혼곤한 잠 속으로 이끌던 불빛이 꺼져들고 나면 차오르는 불안을 울부짖었다. 아무도 그를 듣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냄새와 소음의 본질을 알려주지 않았으나 그는 작은 감옥 속에서 계속해서 흐느꼈다. 비참할 정도로 선명한 소음과 냄새의 파편들이 코와 귓속을 마구잡이로 찢어발기는 탓에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용한 긴장에 사로잡혀 있는 몸이 완전히 탈진해버릴 때까지.

어미가 곁에서 그의 무기력한 등과 이마를 어루만지며 땀에 젖어든 겨드랑이를 닦아주고 딱딱한 유리통 속에 분리해놓은 젖을 내밀 때 그토록 애통하게 울어댔더라면 그보다 먼저 이 지난한 밤들을 보내 보았을 어미나 다른 짐승들이 그를 도와주었을지도 모른다. 비좁은 동굴 속에서 꺼내어 찍찍거리는 울음소리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니는 창밖의 무한한 세계에 그를 내려놓고 형상의 몸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익숙한 소리들의 생경한 낯을, 그 찬란한 낯섦이 그에게로 달겨들며 머릿속에서 비등해가던 역겨운 유령들을 물리쳐 주었을지도 모른다. 암실에 드리운 한 줄기의 빛이 검은 스크린에서 일렁거리는 침묵의 얼룩을 한순간에 박멸하듯. 암실은 한순간에 빛의 감실로 변모하고 그를 괴롭혀온 잿빛의 세계는 한순간에 껍질을 벗고 눈부시게 하얀 빛깔로 춤을 추며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어미가 그의 연약한 배를 주물거리고 무어라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그를 끊임없이 다독거리는 동안 작고 불운한 짐승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밤의 끔찍한 유령들에 대한 증언을 어떠한 울음과 몸짓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어미의 따뜻하고 단단한 품과 부드러운 손길, 그의 눈꺼풀을 애무하며 짓누르는 포근한 빛무리가, 그의 내장과 피부를 끈적하게 녹이는 한낮의 열기가 그를 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밤처럼 애통하게 울부짖을 수 없었으며 안온한 낮에 어울리는 조심스러운 신음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무서우리만치 짧은 낮이 지나가면 순식간에 밤이 찾아든다는 것을, 밤은 낮과는 달리 혼몽한 정신으로 지새울 수 없다는 것을, 밤의 괴물들의 형상 없는 냄새를, 냄새 없는 투명한 살을 열병처럼 앓아내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제 그는 빛과 열기를 모두 거두고 그로부터 도망치는, 매일같이 도망치는 어미를 붙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버림받는 일에, 밤으로 내팽개쳐지는 일에 길들여졌다. 밤의 괴물들과 함께 그는 서서히 자라났다. 성장의 세월은 역겨우리만치 길게 느껴졌다. 털을 한껏 세우면 작은 상자의 천장에 닿게 되었을 무렵 그는 상자 속의 세계를, 형체 없는 밤을 영원으로 여기게 되기에 이르렀다.

절망과 실패에 길들여진 그에게 그것이 나타났던 일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 두개골을 뚫고 파열된 껍질의 바깥으로 새어나간 유령의 검은 눈을 들여다보게 되는 그 순간까지도.

언제나와 같은 밤이었다. 사육사가 그를 작은 상자우리에 집어넣고 자물쇠를 걸어 잠그는 소리, 그에게 내일을 기약하는 인사말을 건넨 뒤 불을 끄고 문 밖으로 걸어나가는 소리, 점점 사그러지는 발소리와 점점 식어가는 몸, 어둠과 함께 길어지는 시간과 찍찍거리는 소리, 찍찍, 찍, 찍찍 하는 소리는 그날따라 무서우리만치 크게 들렸다. 찍찍, 찍, 찍찍, 사자는 몸을 웅크렸다 펼치며 우리 속을 빙빙 맴돌았다. 찍찍, 찍, 찍찍, 하는 소리는 그의 고막을 파내고 뇌의 빈 공간을 찾아 작은 발로 예민한 혈관들을 짓밟으며 뛰어다니는 것처럼 머리를 징징 울려대었다. 지독한 멀미는 실패와 무기력에 길들여진 뒤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었다. 어린 짐승은 작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내장을 비틀어대며 쥐어짜는 울렁거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찍찍, 찍, 찍하는 소음이 그의 허파를 물어뜯었고 그의 작은 성기를 터뜨릴 듯 움켜쥐었으며 혀 안쪽의 부드러운 살을 찢어발겨 뜨거운 피와 같은 침이 턱 아래에서 울컥 솟아나게 만들었으며 콧속의 예민한 혈관을 엉망으로 꼬아대며 그의 몸 곳곳에 숨겨져 있는 여린 틈들, 부드러운 점막을 가느다랗고 뾰족한 발톱으로 긁어대었다.

작고 반짝이는 눈이 그의 앞으로 뛰어들었을 때, 어린 맹수는 한 눈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지만 찍찍, 찍, 찍하는 울음소리의 반향이 그 작고 반짝거리는 눈 속에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사자는 미친 듯이 피어오르는 달콤한 악취를 통해 읽어내었다. 사자는 본능에 따라 허리를 구부리고 숨을 멈추었으며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수 있는 상태로 뒷다리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든 냄새를 향해 달겨들었을 때, 찍찍, 찍 하는 울음소리는 사자의 입 안에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풀어진 체액을 관능적으로 비벼대며 그의 내장을 따끈하게 적셔야 했고 그는 제 살 속을 애무하는 찍찍, 찍 하는 잔향을 더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아야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밤과 인식의 경계를 형성해온 쇠창살들이 그의 날카로운 발톱을 가로막았고 사자는 밤의 투명하고 부드러운 살이 아닌 끔찍하게 차가운 장애물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공포에 사로잡혀 생의 유언을 퍼뜨리기 위해 찍, 하는 소리와 함께 배설물을 몸 밖으로 게워내었던 쥐는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그와 맹수 사이를 가로막는 기적과도 같은 장애물을 멍한 눈으로 응시하다가 순식간에 탁자 아래, 맹수의 시야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인식과 감각의 영역 바깥으로 도망쳐버렸다.

그것으로 끝났더라면 산산조각난 두개골을 따라 흘러나오던 최후의 영상은 전혀 다른 장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악한 작은 짐승은 몸을 수축시켰던 공포로부터 벗어난 뒤 그에게 닥친 일을 차례차례 되새기며 저 비참한 맹수가 절대 제 자유로운 육체를 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연이 정해 놓은 사슬의 일방적인 쫓김으로부터 벗어나 그가 차지한 자유의 의미를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본질이 정해 놓은 이빨과 발톱, 몸집의 크기는 자유와 실존의 의미를 발견해낸 그에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월이 천천히 부식시켜놓은 삼각형의 지반이 하나의 날카로운 순간으로 벼려졌다는 사실을, 오로지 위를 향해 서 있던 사냥의 삼각형이 칼날을 아래로 내려뜨린 채 심판의 대상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속에 갇힌 비참한 짐승이 역삼각형 모양으로 세워진 무시무시한 칼날의 첫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타고난 살의 비참한 한계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뒤바꾸어놓을 창세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곧 이제까지 그의 조상들을 도륙하고 흡수하며 더 커다란 생의 영역으로 무참하게 흡수해온 과거의 영역을 향해 기어올랐다. 사자는 별처럼-물론 그는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었지만 언젠가 처음으로 별을 발견한 뒤 그에게 있어 밤하늘은 쥐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이 드글거리는 무시무시한 세계가 되었고 쥐들의 눈동자는 전부 희고 아스라한 곳에서 반짝거리는 별이 되었다- 빛나는 두 개의 광점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의 발은 철창살의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느다랬으나 지금, 하필이면 이 순간에 둔중하게 자라난 그의 발로는 도저히 창살들의 틈새를 꿰뚫고 나갈 수 없었다.

그는 창살에 코를 박고 그의 몸집과는 무관하게 정해져 있는 창살의 비좁은 틈새를 벌려내려 안간힘을 쓰며 발톱으로 창살을 긁어내었지만 그의 세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쌍의 별은 그의 비참한 꼴에 용기를 얻은 듯 점점 그의 가까이 다가왔다. 찍찍, 찍, 하는 소리, 더는 그 작은 몸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한밤의 짐승에게, 사육당한 죄수에게 뽐내는 소리, 그를 조소하고 깔보는 소리, 그의 예민한 점막들을 미친 듯이 할퀴고 찢어발기는 소리,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자는 그의 눈앞에서 떠돌아다니는 희망의 연약한 몸을 으스러뜨리고 그 속에 들어차있던 진실을 음미하며 섞여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두 개의 심박이 불협하며 어둠 속에서 엉켜들었다. 두 쌍의 눈이 서로를 마주보며 제 안을 서성거리는 빛을 연약한 막에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쥐는 사자에게로 점점 가까이 다가갔으나 사자는 이미 그의 한계선에 턱과 가슴, 다리를 붙이고 있었기에 거리는 한쪽의 일방적인 움직임만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사자의 입 속에서 흘러넘치는 침과 허공만을 꿰뚫으며 허우적거리는 턱, 원하는 살을 부여잡지 못하고 히스테릭하게 발작하는 발길질을 쥐는 오만한 경이에 가득찬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쥐는 사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나 사자는 쥐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쥐는 사자를 갈망하지 않았으나 사자는 쥐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놓인 무참한 경계는 사자에게만 가혹한 창살의 형태로 현현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 순간이 예정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쥐는 가슴 속에서 박동하는 환희를 만끽하며 생각하였다. 검은 물에 무력한 몸을 던지고 미래를 위해, 죽음을 위해 맹렬하게 뛰어들던 조상들이 제물로 바친 작은 몸들이. 중력과 질긴 피부 속에서 짓눌려 움츠러들었던 세월로부터 벗어나 비가시의 영역에서 무한하게 늘어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기도들이 여직 지상에 남겨진 쥐들의 몸에 엉망진창으로 감겨진 부당한 운명의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풀어내어 마침내 이곳까지, 생의 역설에 몸부림치는 학살자의 코앞까지 이끌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사자는 제 코앞까지 다가서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이제는 반짝거리기보다는 무시무시하게 검게만 보이는 두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두 눈을 마주보았다. 탈진한 다리들이 무너져내리고 벅찬 호흡이 구토의 형태로 목구멍에서 역류할 때까지도 새까만 눈동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막처럼 메마르고 호수처럼 축축한 두 개의 신비로운 구멍. 그는 역겨우리만치 달콤한 냄새와 찍찍, 찍 거리면서 자지러질 듯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를 선연하게 느낄 수 있었으나 도저히 닿을 수가 없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사막과 그가 알지 못하는 호수를 두 개의 작고 영원한 광점에 담고서 출렁거리는 시선. 사자는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흥분에 졸아들었던 검은 틈은 점점 넓게 퍼지면서 동그랗게 늘어났다.

쥐는 더 이상 사자를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쥐는 비참한 운명을 선고받은 우스꽝스러운 죄수를 관람하는 구경꾼이었으며 동굴 바깥의 빛을 활보하는 선구자였다. 뜨거운 숨결과 냄새, 저와는 다른 피부 속에 갇혀 있는 무한한 단절, 건너갈 수 없는 깊은 심연은 이후 사자가 견뎌야 할 세계를 암시하고 있었다. 또다시 무참하게 밀려드는 멀미와 어둑한 하늘 한가운데서 그를 냉정하게 노려보는 두 개의 구멍.

다음날 발소리와 함께 샛노란 살이 돌아왔을 때, 사자는 처음으로 그가 자신의 어미가 아님을, 그와 자신은 돌이킬 수 없는 먼 극간을 살고 있는 이질적인 존재임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자는 더 이상 가짜 어미의 단단한 가슴을 누르며 그 품에 안겨들지도 않았고 가짜 젖의 기만적인 온기에 취해들지도 않았다. 사자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털을 세웠으며 저를 희롱하고 속여온 낯선 짐승을 노려보면서 이빨을 드러내었다. 살이 여느때처럼 턱 아래 연한 살을 어루만지며 저를 달래려 하자 사자는 그를 배신한 역겨운 손을 물어뜯었다. 밤사이 그를 좌절하게 만들었던 허공의 맹맹한 맛과는 다른 고기의 짭조름한 맛이, 뿌듯하게 차오르는 열기와 매혹적인 더운 피와 함께 밀려들었다. 살은 조심스럽게만 열리던 틈을 활짝 열고는 찍, 찍거리는 비명을 내지르며 그를 밀쳐내었다. 그 짙고 달콤한 살의 향미가 가짜 어미와의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 사자는 유년과는 다른 공간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미의 자궁으로부터 내쫓긴 아이가 자궁 속에서의 기억을 잊듯 사자 역시 유년의 네모나고 비참한 창살 속에서의 기억을 서서히 잊어갔으나 두 개의 검은 눈동자는 밤마다 머리위에서 득시글하게 피어오르면서 그를 괴롭혀댔다. 유년의 거짓 어미를 대신한 새로운 짐승은 언젠가 그를 아기처럼 쓰다듬으며 귀여워했던 노란 살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사자가 덜컹거리는 트럭 속에서 눈가리개를 풀고 우리 바깥에 펼쳐진 너른 지평에 흥분하여 몸을 달싹거릴 때부터 그는 사자의 입에 차고 단단한 입마개를 씌우고 길게 흔들거리는 꼬리와 같은 것으로 수축한 등 근육을 마구잡이로 내려쳤다. 괴상한 꼬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날카로운 발톱처럼 사자의 살을 찢어발겼고 벌어진 상처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사자가 규율을 잊고 뛰어다닐 때마다, 그가 가져다주는 차고 역겨운 고깃덩이를 제대로 삼키지 못해 너무 천천히 먹거나 또 너무 빨리 먹을 때마다, 뜨거운 불이 피어오르는 원형이 괴상한 구멍을 피해 달아나거나 갈기를 세워 몸을 부풀릴 때마다 예의 그 매서운 발톱이 사자의 얼굴과 등, 배와 옆구리를 난도질했다. 사자는 애교와 투정을 대신하는 복종과 굴복의 언어를 새로 익혀야 했다.

그는 일곱 번의 밤이 지나면 한없이 펼쳐진, 그러나 목을 옥죄어 어둠의 한구석에 묶어놓은 목줄과 언제고 그를 덮쳐올 고통스러운 발톱 탓에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혀 있는 야외를 벗어나 천막으로 둘러져 있는 둥근 형태의 영역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곳에서 사자는 역겨울 정도로 괴상한 발톱, 검고 길쭉한칼날을 가진 짐승에게 복종과 순종의 몸짓들을 선보여야 했다. 원형의 무대에서 그는 불구덩이를 뛰어넘고 앞발을 들어올려 그 짐승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따라하며 춤을 추고 그를 향해 날아오는 고무공에 머리를 들이받고 공을 튕겨내는 이상한 짓거리를 해내야만 했다. 사자는 허공에 도사리고 있는 수천 갈래의 손톱들을 피해 몸을 비비 꼬고 헐떡거리며 도망다녔다.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질 무렵이 되고 나면 두 발 짐승은 한 줄기 검고 위협적인 손톱을 부드러운 꼬리처럼 내려뜨린 채 허리를 굽혔고 사자는 엎드린 채 예민한 고막을 터뜨릴 듯 두들겨대는 소음에 괴로워해야 했다. 검은 손톱과 검은 눈동자들이 그를 옥죄어오며 뒤흔드는 고질적인 현기증에 차차 적응하고 나자 그는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고 기울어진 지평에 몸을 누인 채 사지를, 근육을, 내장을, 감각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후각과 청각이 조금씩 무뎌지고 나서야 사자는 일곱 번의 밤을 주기로 바뀌는 둥근 영역의 바깥에서 그를 빙 둘러싸고 그의 움직임에 소곤거리며 환호하고 손을 부딪혀대는 거대한 소음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한때 사자를 길렀던 가짜 어미나 지금 그를 훈육하고 복종시키는 짐승과 똑같이 생긴 동물들이었다. 사자의 눈에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잘려나간 상반의 단편들만 보였으나 그 아래에 그들이 갈무리하여 숨겨 놓은 하반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쥐들의 눈동자의 뒤편에 찍찍거리는 소음들이 도사리고 있듯이 그들의 나머지 살과 비명도 보이지 않을 뿐 그 자리에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자가 순진한 것은 아니었다. 눈부시게 하얀 살갗을 드러낸 발들과 어둠 속에 은밀하게 가려진 발들이 동시에 부딪히며 내는 무참한 소음은 사자에게 닿지 않았다. 사자는 그를 쏘아보고 그의 호흡과 그의 울음과 그의 발질과 그의 와해를 끈질기게 바라보면서도 그의 힘으로는 닿을 수 없었던 심연을, 찍찍거리는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수십 쌍의 발들이 떠나간 뒤에 사자는 식어빠진 고기를 물고 녹이 슨 입마개 사이에 길고 축축한 혀를 내뺀 채로 그를 굽어다보는 수천 쌍의 눈들이 둥둥 떠다니는 투명한 우리로 돌아가야 했다. 한낮은 언제나 순식간에 스쳐지나갔기에 하나의 순간으로 명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낮은 수면과 꿈의 시간이었고 기억 속의 소음과 현재의 소음이, 찍찍거리는 쥐의 발작적인 웃음소리와 벌거벗은 발들을 구르며 부딪히는 짐승들의 자폐적인 비명이 섞여드는 시간이었다. 짐승의 조악한 머리로는 인간이 그러하듯 누추한 경험의 세계를 떠나 견고하고 찬란한 이데아의 세계를 발명해내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놀랄 정도로 조잡한 지상에 상처받은 뒤 건설해낸 플라톤의 세상, 영원한 빛의 도시에 날카롭고 더러운 이빨을 가진 육식 짐승은 초대받지 못하였다. 그는 잠 속에서도 부조리한 현실의 소음들을, 완벽한 화성도 영겁의 침묵도 아닌 쥐들의 찍찍거림을, 시간의 벽이 허물어진 꿈의 공간 속을 마구잡이로 쏘다니며 그를 조롱하는 유령들의 박수소리를 감내해야만 했다. 두 발 짐승들은 그를 개라고 불렀다. 그는 개라는 부름에 두 발 짐승에게로 유순하게 달려가 헐벗은 하얀 발 아래에 머리를 들이밀고 납작 엎드린 채 복종하였다. 그러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 속에서 개, 개, 개야, 개 하는 소리가 새벽의 물안개처럼 몸을 부풀리며 퍼져나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자에게 닥쳐온 불운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현상의, 세계의 의미를 번역해낼 만한 언어조차 없이 이데아라는 도피처조차 없이 무력한 몸을 물어뜯고 희롱하는 감각들의 이빨을 감내해야 했다. 감각을 무너뜨리고 흐릿하게 만드는 방법은 금식을 하는 일뿐이었다. 두 발 짐승이 하루 두 차례 가져다주는 고깃덩이를 검은 파리들이 들끓고 역겨운 부패의 냄새가 흘러넘칠 때까지 방치해 놓으면 뱃속에서 요동치던 굶주림도 사그라들고 턱 밑으로 질질거리며 흘러넘치던 침도 멎어갔고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감각은 선연함을 잃었다. 바짝 말라붙은 몸은 더 이상 애끓는 감각들을 소스라치게 앓으며 내장 깊은 곳으로 실어나르지 않았고 무용한 경련을 멈춘 채 먼지처럼 차갑게 굳어갔다.

또다시 찾아온 일곱 번째 밤에 사자가 둥근 무대 위로 올라섰을 때 그는 마약과도 같은 금식의 마비 상태에 취해 있는 상태였다. 얼굴을 베어내는 검은 손톱의 고통도 예민한 귀를 찢어발기는 박수소리도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때, 그의 눈 앞에 한 마리 작은 짐승이 뛰쳐들었다. 언젠가 그를 조롱했던 찍, 찍거리는 짐승처럼 뜨겁고 달콤한 냄새가 그가 애써 닫아걸었던 외감의 문을 무참히 깨뜨리며 순식간에 열린 피부의 틈으로 밀려들어왔다. 사자는 그의 눈앞에 또다시 출현한 두 쌍의 작은 눈이, 투명하게 반짝거리는 빛무리가 객석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소녀의 고양이라는 사실도, 벌써 수십 차례나 이 우스꽝스러운 개의 서커스 공연을 비웃고 즐기기 위해 이곳에 드나든 소녀의 냄새를 잔뜩 묻히고 있다는 사실도, 고양이의 냄새는 그 가여운 생물을 둘러싼 안온한 집과 인간들의 냄새와 뒤섞인 이질적인 살의 혼합물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로,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해 본 적 없는 무참히도 날카로운 이빨과 잔혹한 발톱을 숨기고 있는 거대한 개의 눈앞에 겁도 없이 뛰어든 자그마한 애완동물이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상태로 그를 잠식해오는 잔인한 감각의 파동에 몸을 맡기었다.

그는 한때 실패했던 동작을 반복했다. 숨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며 미친듯한 경련을 멈춘 채 오랜 사냥의 형질이 지시하는 태 속에 자리를 잡았다. 잔뜩 긴장해 있던 뒷다리가 뛰어올랐을 때, 찍, 찍거리는 비명은 그를 기만하는 대신 그의 입 속에서 무참하게 찢겨나갔다. 그는 작고 부드러운 턱을 물어뜯었고 가지런한 털로 뒤덮인 발을 찢어내었다. 반으로 찢겨나간 고양이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고통에 놀라 의지의 명령에 아직 복속하는 남은 다리를 미친 듯이 휘저으며 미지의, 그러나 끔찍이도 선명한 현상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소녀의 포근한 품 속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쳤다.

무대에 남은 자들은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냥꾼도 사냥감도. 죽지 않은 자도 죽어가는 자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무대 밖에서 무대를 하염없이 건너다보기만 하는 외부자들뿐이었다. 조련사 역시 더 이상 둥근 원형으로 고립된 무대에 속해 있지 않았다. 맹수의 이빨을 드러낸 사자의 위험성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조련사는 개의 명찰을 부러뜨린 짐승을 두고 도망간지 오래였다, 야생성을 되찾은 학살자 앞에서 가죽채찍 따위는 무력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언어와 사물 사이의 자의적인 규칙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언어의 발명 이전의 세계로, 혹은 언어 이후의 세계로 뛰쳐나간 살육의 현장은 더 이상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고 몇몇 관객들은 휴대폰을 들어 그 잔혹한 쇼를 촬영했다. 무대 뒤편으로 달려나간 조련사는 경찰을 불렀고 그의 야생성을 끝장내기 위한 합법적인 폭력성이 사자를 향해 다가들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가여운 고양이는 반만 남은 몸을 미친 듯이 움찔거리며 가련한 몸짓에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신을 구해주지는 못하는 무력한 외침의 파도를 애처롭게 올려다보았다. 사자는 달콤한 살의 감각에, 더는 그를 희롱하고 애태우지 않고 그의 입 속으로 착실하게 들어와 으무러지는, 살아서 흘러넘치는 따뜻한 피에 도취되어 고양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부드럽게 핥아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거대한 물방울처럼 매혹적인 눈에서는 짭조름한 생명의 맛이 났다. 고양이는 스스로의 불운을 위해 흘려낸 눈물까지도 사자의 성적인 흥분을 위한 제물로 바쳐야 했다. 사자는 한참동안 그 사랑스러운 형상을, 손에 잡히는 비명을, 그의 갈증을 위로하고 애끓는 속을 뜨겁게 적시며 충만한 만족을 불러일으키는 연인을 애무하였다.

그 잔혹한 광경을, 위반적인 광경이 불러일으키는 미칠듯한 멀미를 견디지 못한 관객들은 객석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구도 관람을 제도로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고대의 제사와는 달리 언제든 눈을 돌리고 극장-이 경우에는 서커스 무대-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스펙타클의 특징이므로. 그 끔찍한 무대는 그들의 자리가 아니었고 그들은 배우도 아니었으므로 누구도 그들에게 관람의 의무를 강제할 수 없으므로. 예기치 못하게 닥친, 우연이 준비해 놓은 피비린내와 살해극, 역겨운 광경이 연극적 환영의 형태가 아닌 돌발적인 물질성을 갖고 그들을 침범하는 이 순간에 원치 않는 자들은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으므로. 실제로 그들을 주인공으로 덮쳐오는 재난의 끔찍함과는 다르게 언제든지 피해갈 수 있는 것이, 따라서 결국 그들의 일도 그들의 재난도 아닌 것이 스펙타클의 본질이므로.

반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관객들은 살해당하고 생살이 드러나 찢겨나가는 배우도, 무참하게 도륙하고 입술에 피를 묻히는 배우도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남은 자들은 언제든지 남지 않은 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아 있는 관객들은 죽어가는 고양이를 희롱하며 장난을 치는 사자를 혐오에 질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냥과 육식의 경건한 제의를 혼란시키는 광경을, 먹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가 아닌 유희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살육을, 살해에 대한 속죄로서의 육식이 아닌 관능으로서의 죽음과 흡혈을, 마치 사람처럼 고양이를 가지고 노는 장난을, 악마의 여흥과 같은 끔찍한 광경을, 그들이 믿어왔던 자연의 보편적인 질서를 순식간에 특수한 믿음의 하나로 환원시키는 순간을, 자연을 어지럽히는 자연의 깨진 대칭을 미칠듯한 멀미에 시달리며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홀린 듯 지켜보았다.

그 광경은 미친 듯이 불길하였으나 위협적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무대 위에서의 일들은, 설령 예기치 못한 재앙이라고 해도 객석 바깥, 무대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아무리 날 것의 시신이고 날 것의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무언가에 대한 메타포일 수밖에 없으므로. 무대 위의 진실은 무대 밖 진실에 대한 은유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들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가 지닌 물질성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무엇을 전조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며 그 학살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었다.

무참히 희롱하던 고양이를 두고 떠났다면 사자는 제 먼 조상들의 지위를 되찾았을지도 모른다. 한때 두 발 짐승들에게 동물은 신이었다. 죽이고 범하고 파괴하고 강탈하는 신. 두 발 짐승들이 모시는 신은 선한 신이 아니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금기들, 인간을 인간의 영역 안에 가두고 두 발로 걷도록 강제하는 금제들로부터 자유로운 폭력, 신은 그러한 경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다. 금기를 위반하는 자가 아닌, 금기 없이 존재하는 자. 어떠한 거리낌도 거북함도 쾌감도 느끼지 않고 부모를 살해하며 자식을 겁간하고 형제의 아내를 강탈하고 도축하며 살해하는 자. 그런자의 행위는 때로 무척이나 불가해하게 보인다. 먹기 위해서도 아닌데 사냥감들의 날개를 찢어내고 그것이 경련하며 기어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저보다 작은 이종의 질에 성기를 파묻어 강간하고-그 가여운 희생자는 포식자의 아이를 잉태하지 못할 텐데도- 애써 낳은 아이를 물어 죽이곤 한다. 마치 홍수나 가뭄, 번개, 혹은 지진처럼 그러한 불가해성은 비(非)-두 발 짐승들을 신성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두 발 짐승들이 제사 때 동물의 고기를 신께 바쳤던 것도 그 때문이다. 고대의 제사에서는 두 발 짐승의 고기를 도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두 발 짐승은 언제나 금기와 그에 대한 지나친 의식에 사로잡힌 감옥 안의 존재나 마찬가지였기에, 또 그 금기로 인해 그들 자신이 속한 종의 행동은 대개 예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 들어왔기에 두 발 짐승들에게 두 발 짐승들은 신이 아니었다.

신성한 제사에서는 신성한 동물을, 신성을 가지고 있는 자를 바쳐야 한다. 그들은 신을 위하여 신의 고기를 제물로 올렸다. 피를 뚝뚝 흘리는 벌건 고기가 무참히도 아름다운 불과 함께 매혹적인 냄새를 흘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제단의 모습은 신성모독적이었다. 그 앞에서 두 발 짐승들은 때로 화려한 야회복을 갖춰 입고 축제적인 전쟁을 벌였다. 만찬과 포도주가 즐비한 가운데 그들은 신을 살해한 기쁨을, 그리하여 신을 배불린 기쁨을 만끽하며 원형으로 맴돌며 춤을 추었다. 아름다운 무기와 복장을 날카로운 햇볕 아래 과시적으로 드러내면서 살인의 금제를 위반하는 관능에 도취되었다. 금기를 범하면서 그들은 금기에 사로잡힌 인간으로서의 메스꺼움과 황홀감을 탐닉했던 것이다. 이러한 축제적인 전쟁과 신성모독적인 제의의 풍경은 아주 오래 전, 두 발 짐승이 인간을 발명하고 인간을 숭배하게 되기 전의 일이다. 두 발 짐승이 사유하는 인간을 발명하고 난 뒤 그들은 사유 없이 몸만을 지상에 질질 끌며 기어다니는 비(非)-두 발 짐승들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사유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따라서 위반에 대한 메스꺼움도 느끼지 않는 그들은 무수한 연장체들 중 하나일 뿐 어떠한 특별한 지위도 가질 수 없었다. 비(非)-두 발 짐승을 구분하기 위해 두 발 짐승들은 비(非)-두 발 짐승들을 짐승으로 불렀고, 새로운 지위를 선사받은 새로운 두 발 짐승들에게는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간이 사유가 아닌 정념을, 명확함이 아닌 모호함을 자기정의에 끌어들이기 시작한 뒤에도, 불안과 정동, 불완전성과 기형성, 고독을 사랑하게 된 뒤에도 짐승에 대한 혐오는 계속 이어졌다. 짐승은 에토스의 존재도 파토스의 존재도 아니었고 온전히 불완전하거나 기형적일 수도, 고독할 수도 없었으므로. 그들은 진실로 아플 수도 절망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들의 절망은 인간의 절망이 투영된 반사물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고통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물을 가축화하고 동물과 자신을 구분하는 인간들, 동물을 신이 아닌 개라고 부르기 시작한 인간들에게 피가 흘러넘치는 무대의 현장은 고대의 신성한 제의가 아니라 스펙타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가 그냥 떠났더라면, 고문하며 동시에 애무하던 고양이를 남겨둔 채 무대에서 유유히 내려와 사라졌더라면 이 학살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스스로도 제 행동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그의 도주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이며 인간은 의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므로. 오로지 유희만을 위해 잔혹하게 도륙한 시신을 두고 떠나가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인간은 그들이 잊고 지냈던 고대의 신성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무대에서의 학살을 추악한 해프닝이 아닌 신성한 계시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도록 금식했던 사자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짭조름하고 비릿한 생의 물질을 물어뜯었다. 그는 고양이의 작고 하얀 뼈가 드러날 때까지 벗겨진 살을 쩝쩝거리며 씹어삼켰다. 관객들은 지독한 메스꺼움이 갑작스레 가라앉고 뒤틀렸던 무대가 점차 대칭을 되찾는 것을 느꼈다. 짐승의 살해는 육식을 위한 것이다. 짐승은 육식하기 위하여 살해한다. 이 간단한 원리는 구태여 다른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자명한 것이었다. 그들은 본능에 사로잡혀 죽이고 먹는 사자의 저열한 행동을 다소 오만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들에게는 짐승을 살육하여 먹는 사자의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충동에 따라 무대 위에서 변을 지리거나 발기한 성기를 바닥에 비비며 자위를 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인간이라면 갈무리할 충동, 그러나 짐승은 반항할 수 없는 충동. 이로써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었던 학살은, 사자의 신성성을 담지할 수도 있었을 학살은 그의 권능이 아닌 저열함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변질되었다. 어떠한 존재자든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살 수는 없으므로, 저열한 짐승은 모호할 수 없는 법이므로 이곳에서의 사자는 아직 야생성을 버리지 못해 불쾌한-동시에 다소 흥미로운- 광경을 이끌어낸 짐승일 뿐이었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배와 앙증맞은 턱을 빼앗긴 소녀는 자지러질 듯 울어댔지만 소녀의 부모는 눈물과 콧물, 침에 젖어 축축한 소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짐승은 다 그런 법이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란다, 아무도 비난할 수 없어. 하고 이야기했다. 짐승은 어쩔 수 없어, 하는 말에는 인간의 금기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신적인 존재에 대한 매혹이나 경외가 아닌 본능에 얽매인, 금기의 반대항에 결박된 짐승의 자연적인 충동에 대한 경멸과 무시가 함축되어 있었다. 고양이가 하얀 백골만 남기고 이전보다 덜 역겨운 모습으로, 정갈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으로 변형되었을 무렵 경찰들이 들이닥쳤고 허기와 욕구에 단단히 묶인 꼭두각시와 같은 짐승에게 마취총을 발사하였으며 경찰들을 따라 허겁지겁 서커스 천막으로 들어온 조련사는 무대 위로 올라가 관객들에게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하지만 이 무렵 관객들은 공포보다는 흥분에 휩싸여 대단한 장면을 보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도심에서, 이렇게 황폐화된 빌어먹을 폐허 속에서 짐승이 짐승답게 구는 꼴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지. 그들은 심지어 운이 좋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본 것은 진짜 자연이었으며 자연만큼 도시인들을 자극하는 볼거리는 없었기에. 고층빌딩 옥상에 만들어진 인공정원이나 새장 속에 가두어둔 카나리아, 낮고 침울한 스모그 아래에서 형벌과도 같이 무거운 하늘을 지고 뒤뚱거리는 비둘기가 아닌 진짜 자연, 누군가 던져준 먹이가 아닌 진짜 살아 있는 생물을 물어뜯고 직접 도축하여 먹어대는 자연을 그들은 이제 불길함도 역겨움도 아닌 순수한 흥분에 휩싸여 되새기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피칠갑이 된 무대를 내려다보는-세상에, 이놈 똥까지 지렸군- 조련사와 황망한 시선으로 무대의 한쪽 구석만을 응시하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저 가엽고 열등한 짐승은 본능에 따라 사냥한 것뿐이니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사자를 증오와 혐오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는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등을 쓰다듬고 있었던 소녀뿐인 듯했다. 하지만 당장은 사자를 갈가리 찢어발겨 고양이의 복수를 할 것처럼 매섭게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의 젖은 얼굴도 마를 것이고 머지않아 소녀는 새 고양이를-이번에는 위험한 곳으로 돌진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교육시킬, 그리고 다시는 서커스에 끌고 오지 않을- 다시 사랑스럽게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었다. 본능에 붙들려 육체가 지시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지성 없는 짐승은 자연의 죄를 사면받을 것이고 다시는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장은 사자의 금식을 철저하게 방지할 것이며-그 역겨운 입에 고기를 억지로 쑤셔넣어서라도- 한동안 사자는 입마개를 한 상태로 무대에 올라야 할 테지만 그 모든 사건들에 특별한 의미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그의 머릿속에서 찍, 찍찍, 찍 거리는 울음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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