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자살자의 물방울

당신은 4월 5일 오후 2시까지 호텔 람세스에 오라고 했다. 편지는 받자마자 찢어버렸다. 당신의 초대에 응한 것은 특별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자살자의 폐속에 뿌리를 박아넣은 나무의 생에 특별한 이유가 없듯. 내게는 차가 없었기에 호텔까지는 걸어서 갔다. 그곳까지 가는 길에는 두세 개의 숲이 있었고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기억나지 않는 숲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밤과 어둠과 습기, 끔찍할 정도로 추웠으나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 죽지 않았다.

펠은 추위에 덜덜 떨면서 흐느꼈다. 그는 이곳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속삭였다. 그가 미쳐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나 하나의 건강이 아니라 수십억 개의 건강이 있다면, 하나의 광기가 아니라 수십억 개의 광기가 있다면 그의 건강과 광기를 나의 건강과 광기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난 누군가의 죽음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당신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특히 당신을 기다리는 일이 끔찍하게 싫었는데 당신은 내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받는 족족 다 찢어버렸지만, 갈기갈기 찢겨진 글자들을 숲 속의 돼지새끼들에게 던져주었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내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보냈는지, 얼마나 많이 나를 농락했는지 알고 있다. 나는 당신을 따라서 세계 곳곳을 여행했으나 여행 중에 무엇을 보았는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부재뿐이니까. 당신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난 당신의 유령조차 볼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당신은 내가 뜯어낸 활엽수 이파리도 내 맨발을 쪼아대고 있는 비둘기도 돌틈에 집을 짓고 가련한 희생자들을 잡아채고 있는 거미줄도 아니었으니까. 난 여기서 아이를 낳을 거야, 내 땀을 닦아주고 아이의 탯줄을 끊어줘, 이곳에서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속삭이는 펠도, 그의 뱃속에 부재하는 아이도 당신이 아니었다.

당신은 숲 속의 나무등걸이 아닌 호텔 람세스에 오라고 편지를 보냈고 찢어버린 편지의 내용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난 펠을 버리고 숲 밖으로 나갔다. 미로와 같은 숲속을 헤매지 않도록 나무마다 하얀색 분필 자국을 표시해놓지도 않고, 바닥에 자갈들을 흩뿌려놓지도 않고 난 그저 앞으로, 내가 앞이라고 믿는 방향으로만 계속해서 나아갔다. 푸른 발에 개미들이 달겨들어 불어터진 살을 물어뜯을 때까지. 펠의 산통이 시작될 때까지. 나무의 축축한 수액 내음이 번져흐르고 그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처럼 아득하게 들려올 때까지. 하나의 몸을 쪼개고 몸을 탈출하는 두 개의 아우성. 나는 비명소리를 들었으나 그의 몸에 매달린 탯줄을 끊어줄 수 없었고 그가 분만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없었다. 내가 오랜 동행인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당신 때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숲에서도, 분만하는 노인의 앞에서도 목을 매고 죽은 산모의 곁에서도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호텔 람세스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호텔 람세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저 걸었다. 길을 물어볼만 한 여력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기다렸기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기에 나는 기적과도 같은 우연으로 두 번째 숲을 빠져나가 물과 같은 조명이 흘러넘치는 도로를 맨발로 걸어갔다. 끔찍하게 춥고 끔찍하게 배가 고팠다. 검은 창문들은 한 마디 말도 없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무수한 창문들 속속들이 사람이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무도 내게 물을 건네주지 않았다. 변장한 신을 실수로 내쫓아 벌을 받을까 두려워했던 그리스의 주민들이 여행자에게 건네었던 그런 물과 스프, 빵을 아무도. 나는 끔찍하게 배가 고팠으나, 그래서 돌아가고 싶었으나 나는 돌아갈 곳을 알지 못했다. 적어도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곳은 당신이 없고 당신의 찢어진 편지도 더는 없는 그런 텅 빈 방은 아니었다.

나는 희멀건 살덩이와 같은 허공의 절망적인 적막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는 형벌과도 같은 감금생활의 이유조차 찾지 못했다. 당신이 편지를 보내었을 때 나는 인사도 없이 맨발로 방을 나섰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적어도 당신을 찾아 함께 데려오기 전까지는, 홀로뿐인 세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펠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존재할 수 없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검게 닫힌 눈들은 눈깜짝할 새에 흘러가고 흘러왔다. 마치 급류 속에 들어앉은 돌이 된 기분이었다. 난 여기서 아이를 낳을 거야, 나는 펠에게 말해주었어야 했다. 폐경을 한 노인은, 자궁을 드러낸 노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가 무엇을 낳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낳을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뿐이었고 나는 그가 그를 어떻게 낳았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당신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받아주었어야 했다. 그가 참지 못하고 질질 흘려버린 그를 고스란히 담고 탯줄을 자른 뒤 이마에 흥건히 고인 땀을 닦아주었어야 했다. 내 곁에서 나를 찾은 것은 당신이 아니라 실패한 산모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당신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을 특별히 사랑해서도 미워해서도, 당신이 나의 유년을 함께해서도 아니었고, 당신이 잃어버린 내 유년을 갈취해갔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기다리는 자는 언제나 나처럼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찢어진 글자들을 찾아 헤매기 마련이니까.

나는 호텔 람세스로 가야 했다.

두 개의 숲을 건넌 뒤에는 더 이상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했지만 검은 유리의 급류는 눈을 마주칠 새도 없이 흘러가고 흘러들고 있었으며 내겐 모세처럼 물을 갈라놓을 수 있는 기적이 없었으니 난 아무런 기약도 없이 그저 앞으로, 내가 앞이라고 믿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곧 달보다도 큼직하고 달보다도 반짝이는 R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뒷글자는 읽지 않아도 그곳이 호텔 람세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가 호텔 람세스에 도착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신이 호텔 람세스에서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R 뒤의 글자들은 모두 떨어져나가 보이지 않았으나 상관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호텔 람세스가 분명했으니까. 그 뒤의 글자가 불필요하다는 사실, 내가 호텔 람세스를 곧장 알아보리라는 사실을 떨어져나간 글자들도 당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자동 유리문 속에 얌전히 들어가 실내로 진입했다. 프론트 앞에는 여름 낙엽처럼 마르고 육중한 백발의 노인들이 객석과도 같은 출입구를 향해 일렬로 앉아있었다. 나는 당신이 편지, 혹은 음성의 언어를 맡겨두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프론트의 직원을 향해 걸어갔으나 그는 끔찍하게 바빠 보였다. 그는 한 번에 네 개의 수화기를 어깨와 양손으로 힘겹게 들어올리며 네 개의 서로 다른 요구에 응답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절망적인 표정, 네, 아니요, 아니 아니에요, 아니 네, 네, 아니요, 흐느끼기 시작하는 그를 정말이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막 다섯 번째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다섯 번째 수화기를 바들바들 떨리는 새끼손가락으로 간신히 들어올린 그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이 나를 찾았냐고. 나를 찾는 당신이 왔냐고. 프론트의 직원은 도미노처럼 쌓여 있는 수화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니요, 네, 네, 아니 아니에요, 네 하는 그의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고개를 저어 대답할리는 없으므로, 만약 그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아니요, 네, 네, 아니 아니에요, 네 하는 말 너머의 제스처는 나를 향한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젓는 행동이 수화기 너머의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면, 만약 내 뒤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는 여인을 향한 몸짓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 확실했다.

나는 아직까지 가로로 줄을 서고 하염없이 돌아가는 유리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노인들 옆에 쪼그려 앉았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백발이 아니라 잿빛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섞인 잿빛이 아니라 모든 머리칼이 전부 잿빛인 그런 잿빛 머리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은 아이처럼 새까맣고 파르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며 그들이 버려진 극단의 연극배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예전에 그들에 대해서, 호텔 로비에 쪼그리고 앉아 오지 않을 연출가를 기다리며 리어왕을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들의 무릎 위에 올려진 커다란 자명종을 알아보았다. 멈추어버린 시계 세계를 부수듯이 이 미칠듯한 허공을 부수듯이 째깍대며 돌아가는 시계 노인들의 무릎 위에 올려진 시계들은 전부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나는 한시 하나는 열한 시 하나는 두 시 오 분 하나는 열 시 오 분 전. 나는 그제야 그들이 거울 속에 비추어진 노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똑같이 완벽한 잿빛의 머리칼. 정확히 같은 각도로 구부러진 등과 쩝쩝대는 입술. 하나는 두 시 오 분 하나는 열 시 오 분 전 멈춘 시계 돌아가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귀하는 시계.

나는 푸른 입술을 움찔거리는 소녀를, 그녀의 새까만 눈을, 흠뻑 젖은 귀를, 흙에 붉게 젖은 맨발을 발견했다.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았고 그녀들은 나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들은 당신이 아니었고 나는 당신이 아니었으니 난 노인들의 옆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노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새까맣고 파르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노인들은 연출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들은 노인들을 똑같은 시선으로, 똑같이 검은 눈으로 마주보았다. 우리들은 서로의 곁에 앉아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구부러지는 초침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노인은 연출가를 기다리는 동안 벌써 서른다섯 번의 연극을 끝냈다고 느닷없이 중얼거렸다. 그녀들은 노인들의 마른 입, 부정확한 발음, 썩은 이빨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이곳에서 서른여섯 번째, 서른아홉 번째, 마흔 번째 연극을 보게 되리라. 시계는 여덟 시와 네 시, 여섯 시 십 분 전과 여섯 시 십 분 후를 가리키게 될 것이다. 그녀들은 한결같은 박자 한결같은 각도와 한결같은 세기로 박수를 치게 되리라. 하지만 나는 서른여섯 번째 연극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도착을 재촉하기 위해 편지를 쓰려고 했으나 내 텅 빈 주머니에는 펜이 없었고 메모장이 없었고 편지를 전달할 우체부가 없었고 우체부에게 전할 팁이 없었고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정보들, 당신의 소재와 당신의 이름이 없었으므로 나는 결국 편지를 부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노인에게 혹시 펜이, 메모지가 없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흙탕물이 흥건하게 고인 내 더러운 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다시 프론트 앞에 줄을 섰다. 이제 직원은 여섯 개 일곱 개 열두 개의 수화기에 대고 네, 네, 아니요, 아니 아니에요, 네, 아니요, 하고 대답을 하고 있었으며 참새처럼 작고 통통한 여인들은 그에게서 호텔키와 편지를 받아들고 있었다. 호텔 람세스에서 당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편지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들의 손에서 아이의 살갗처럼 보드라운 편지를 빼앗아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그것은 내 편지가 아니었고 그녀들의 당신은 당신이 아닐 것이 분명했으니 나는 얌전히 줄을 서고 기다렸다. 내 뒤에는 아무도 줄을 서지 않았다. 노인의 옆 진흙범벅이 된 더러운 자리에 앉아서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려도 됐을 것이다. 열두 개의 수화기가 스무 개로 불어나고 여섯 명의 여자들이 한 명의 여자로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그대로 서서 영원히 줄어들지 않을 줄을 살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당신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고 모든 기다림은 헛되었기에. 나는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펠의 벌어진 허벅다리 사이를 들여다보며 그의 내부에서 그가 쏟겨나오는 것을 받아주어야 했다. 나는 그의 숲에 머물러야 했다. 산새들은 삐걱거리는 소리로 비명하고 비 없이도 흠뻑 젖어든 숲은 절망적으로 추웠고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걸어갔다. 나무들은 잉태한 적도 없는 아이를 날려보냈으며 바람은 나무에 부딪혀 산산조각나 떨어졌다. 나무들의 자손은 흙 바로 아래 뿌리 위에 떨어져내렸고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피어오르는 새싹을 어미와 아비는 증오하였으며 식물은 늘 그렇듯 서로를 증오하며 서로로부터 떨어진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생에 대한 그들의 한결같은 집착이 경이로웠고 펠은 아이를 낳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폐경한 노인 자궁을 적출해낸 노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줄 수 없었다.

똑같은 눈초리로 똑같은 시계, 그러나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시간을 지시하는 시계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노인은 이제 곧 연극이 시작될 것이라고 소곤댔다. 관객들은 휴대폰을 꺼주시길 바랍니다. 잡담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앞좌석을 발로 차거나 박수를 치거나 지나치게 환호해서는 안 됩니다. 관람예절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고문은 우스꽝스러운 사족이었다. 유원지의 회전목마처럼 하염없이 돌아가는 유리문 속 부재자들에게는 휴대폰이 없었고 그들에게는 발이 없었고 박수를 칠 손이 없었고 환호를 할 입도 없었으므로.

어느덧 프론트 앞에 줄을 서 있던 참새 같은 여자들은 작고 깜찍한 부리에 태아의 입술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편지지와 호텔키를 받아들고 종종거리며 날아갔다. 나는 일곱 개의 수화기에 네 네 아니요 아니 아니에요 네 아니요 흐느끼고 있는 직원에게 당신이 왔는지, 당신이 무슨 말을 맡겨놓았는지, 당신을 아는지 물어봤다. 그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릴 기세로 눈썹을 잔뜩 내리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괴롭힐 수 없었고 연극배우의 옆자리에 붉은 피와 같은 흙탕물이 흐르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노인들은 움푹 들어간 입술을 왈왈거리며 대사를 읊고 있었다. 틀니 없이 푹 꺼진 음문과도 같은 입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당신이 곁에 있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Who is it that can tell me who I am? 배우가 왈왈거리는 울음소리를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짜 금박을 입은 싸구려 천사들은 횃대를 들고 네 다리 사이로 번져들기 시작했다.

숲은 끔찍하게 추웠고 펠은 아이를 낳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숲 속에서는 짙고 축축한 냄새가 번져갔다. 아기의 비명소리. 나는 그 미친 노인을 붙들고 폐경한 여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자궁을 적출한 노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일러 주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는 저를 그렇게 하염없이 쏟아버리지 않았을 텐데. 하나의 몸을 쪼개고 태어나는 불결한 신체의 악몽과도 같은 비명소리는 없었을 텐데. 나는 그의 곁에서 고무나무의 수액과도 같이 흥건히 고인 땀을 닦아줘야 했다.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는 그의 텅 빈 몸을 끌어안아 주어야 했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 숲으로 들어간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노인의 시계는 여덟 시를, 네 시를 가리켰고, 열 시를, 두 시를 가리켰고 프론트 직원은 수화기 위에 엎어져 기절하듯 잠들었다. 숲 속의 자살자들은 부패하고 있었고 하얗고 순결한 천사들이 그들의 몸 위에서 미친 듯이 꾸물거리며 태어나고 있었다. 자궁도 생리도 배란일도 없이 그렇게 태어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사과해야 했다. 자궁이 없어도, 폐경을 했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 했다. 숲으로 돌아가면, 당신을 데리고 당신과 함께 숲으로 돌아가면 그의 젖은 이마를 훔쳐주고 그의 피를 닦아주고 흘러넘친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줄 것이다. 리어왕은 움푹 들어간 동굴과도 같은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침을 흘리면서 허리를 굽히는 노인들. 똑같은 잿빛 머리칼과 똑같이 앙상한 가슴팍과 똑같이 흥건한 눈물. 거울 속과 거울 바깥의 소녀들은 똑같은 박자와 똑같은 속도 똑같은 손들로 박수를 치기 시작하였으나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호텔의 밤은 치명적으로 고요했다.

나는 프론트 뒤편의 공간으로 다가갔다. 피로에 지쳐 곯아떨어진 직원은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의 편지도 없이, 호텔키도 없이 엘리베이터 상승 버튼을 눌렀다. 연극을 마친 유령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울 앞에는 흙처럼 검게 변한 생리혈이 흥건했다. 엘리베이터 문 속에는 또 다른 그녀들, 쥐처럼 검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마주보는 그녀들, 내가 마주보는 그녀들이 있었다. 나는 당신이 어디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 호텔 람세스로 오라고 했을 뿐,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라는 말도, 일 층에서 기다리라는 말도, 삼 층에서 기다리라는 말도, 십팔 층에서 기다리라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는 일 층으로 가야 했고, 이 층으로 가야 했고, 삼 층으로, 사 층으로, 오 층으로, 십팔 층으로, 이십오 층으로 가야했다. 나는 일 층을 눌렀고 이 층을 눌렀고 삼 층을 눌렀고 사 층을 오 층을 십팔 층을 이십오 층을 눌렀다. 거울 속의 소녀도 일 층으로 가야 했고 이 층으로 가야 했고 삼 층으로 사 층으로 오 층으로 십팔 층으로 이십오 층으로 가야했으므로 일 층을 눌렀고 이 층을 눌렀고 삼 층을 눌렀고 사 층을 오 층을 십팔 층을 이십오 층을 눌렀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숲을 빠져나왔듯, R밖에 남지 않은 람세스 호텔에 도착하였듯,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층에 도달하기를 기도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엘리베이터 문을 바깥에서 잡고 있으리라는 생각, 정확히 말하자면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버튼을 꾹 누르고 나를 붙들어두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바깥으로 나가 텅 빈 로비를 둘러보았으나 여섯 개의 수화기 위에 엎드린 직원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연극을 커튼콜을 마친 연극배우의 유령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거울 속에는 열 시를 가리키는 시계도, 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도, 열두 시 십 분 전을 가리키는 시계도, 열두 시 십 분 후를 가리키는 시계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붙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일 층 이 층 삼 층 오 층 십팔 층 이십오 층을 전부 다시 눌렀다. 왜냐하면 당신은 어디에서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 테니까. 거울 속의 소녀는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나는 웃고 있었고 나는 아이처럼 비명을 지르며 흐느끼고 있었고 거울 속의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흐느끼고 있었다. 당신은 거울 속에도 거울 바깥에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당신을 기다리는 일은 너무도 힘들고 비참했고 나는 끔찍하게 춥고 뜨거웠다. 허벅지 사이에서는 매캐한 연기와도 같은 붉은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나는 나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흘려보낸 나는 거울 속과 거울 바깥에서 나를 멀거니 올려다보며 울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멀거니 내려다보며 울고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기다림을 재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해묵은 재현과 해묵은 기다림. 내용도 없는 기다림. 케케묵은 기다림. 지긋지긋하고 사치스러운 기다림. 나는 기다림을 그만두고 펠의 곁에서 다리를 벌리고 붉고 끈적거리는 아이를 낳아야 했다. 고체도 기체도 아닌 액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나를 낳아야 했다. 거울 속의 소녀는 부끄러움도 없이 출혈하고 있었고 그녀의 눈에서 입술에서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아이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일 층 이 층 삼 층 오 층 십층 십팔 층 이십오 층 버튼을 눌렀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가지 않았다. 문조차 닫히지 않은 엘리베이터 앞에는 여섯 개의 엎어진 수화기들이 있었다. 이제보니 프론트의 직원은 잠이 든 것도 아니고 기절한 것도 아니고 기절하듯이 잠든 것도 아니고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동공은 우물처럼 검게 열려 있었으니까. 그는 눈을 벌리고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녀들은 아직도 닫히지 않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썩어버린 무화과처럼 떨어진 그의 푸른 머리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더 이상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감금당한 앵무새처럼 자폐적인 소리로 삑삑거리는 수화기를 그는 하나도 들지 못했다. 나는 그 대신 대리석처럼 새하얗고 매끄러운 수화기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수화기를 들어올렸는데 그 속에서는 네, 네, 아니요, 아니 아니에요, 네,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나, 둘, 셋, 다섯, 여섯 개의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거울 속에서 수천 개로 번져가는 수화기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네, 네, 아니요, 아니 아니에요, 네, 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과숙된 무화과처럼 탐스러운 작은 머리는 방만하게 열려 있었고 과로에 지친 그는 열병처럼 새파란 혈류로 젖어 있었다. 나는 그의 동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는 눈을 감았고 입을 다물었고 고개를 가로젓지도 않고 수화기를 들지도 않고 숲 속의 공주처럼 잠이 들었다. 그는 더 이상 당신의 부재를 암시할 수 없었고 당신의 도착을 전할 수도 없었고 내 기다림을 당신에게 알려줄 수도 없었다. 그러니 나는 직접 당신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열려 있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어가 일 층부터 이십오 층까지의 버튼을 피아노를 연주하듯 부드럽고 유려한 손길로 눌렀다. 소녀들은 깔깔거리면서 훌쩍거리면서 들리지 않는 연주소리를 애도했다. 검고 단단한 가지에 목을 맨 자살자들의 폐경한 몸에서 사과처럼 탐스럽고 새빨간 아이가 흘러내렸다. 거울은 소녀들의 정체를 누설하며 씨근덕거렸다. 거울은 잠의 심연에서 파열하며 솟아올랐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이 내게 보낸 편지를 기억할 수 없었다. 호텔은 더 이상 R의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펠은 아직도 울부짖으며 자신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것. 아이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잉태되지도 않았으며 찢어지고 있는 것. 망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발생하지 않을 기억이라는 것. 나무들은 제 이파리를 뜯어내고 있었고 절단당한 가지들은 여름비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펠은 내게 아이를 받아달라고 속삭였고 연극배우는 분수처럼 미세하고 아름다운 조각들로 파열하고 있었으며, 집요하게 귀환하는 허공,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나는 다시 닫히지 않은 당신의 공백 속으로 뛰어들어가 일부터 이십오까지의 숫자를 눌렀다. 맥동하는 자궁이 찢겨나간 배는 염증이 차올라서 썩어버릴지도 몰랐다. 제 몸을 보존하기 위해 썩어버린 열매와 자궁을,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을 우리는 비정하다고 부르지 않듯이 아무도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쓰다듬어주어야 했고 다리를 벌리고 더러운 흙 위에 엎어진 그를 돌보아야 했다. 치명적인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고 속에서부터 찢겨지는 거울들. 노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었고 나는 내용도 얼굴도 없는 시간을 질질 끌고 숲을 건너갔다. 당신은 일 층 이 층 삼 층 오 층 십오 층 십팔 층 이십이 층 이십오 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당신은 어디에서도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나뭇가지들은 부러지지 않았고 사람이 매달린 가지도 탐스러운 과일들이 매달린 가지도 낙엽들이 매달린 가지도 새싹들이 매달린 가지도 전부 부러지지 않았고 제 몸집만큼 커다란 호텔키를 짤랑거리며 머리를 바르르 경련하는 여자들, 참새처럼 작고 포동포동한 여자들은 신경질적으로 여드름을 터뜨리는 소년처럼 고막을 터뜨렸다. 거울 속의 소녀들도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귓속에 파묻고 고막을 터뜨렸다. 샛노란 고름과도 같은 해묵은 소음, 아니, 치명적인 유백색의 침묵이 묻어났다.

우리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연극배우는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다. the weight of this sad time we must obey,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들은 나뭇잎처럼 새파란 이들을 전부 드러내며 웃었고 쪼개지는 신체들은 소진되어가는 빛으로 번져흐르며 웃었으나 당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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