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의 물방울

맨손은 비에 젖어 있었다. 거뭇한 등을 움칠거리면서 기어가던 벌레가 네게 다리를 들여 보였다. 너는 시체를 자주 보게 되었다. 유령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죽음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너에게 보이는 시체들은 온전히 죽은 것도 죽지 않은 것도 아닌, 죽음이 증류되어 떠나간 뒤 여남은 삶인 것이다. 그녀가 지시하는 곳에 매달린, 널브러진, 조각난, 불탄 모든 시신들은 죽음이 떠나간 순수한 삶이었다. 언젠가부터 너는 더 이상 시체들을 보고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너는 죽음을 질시하듯 삶뿐인 몸뚱이를 질투하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일상을 믿을 수 있을까?

다시, 네 앞에는 삶이 있었다. 거무스름한 성기까지 훤히 내놓은 사내의 시신이었다. 그는 검은색 비닐봉지에 머리만을 숨긴 채 온몸을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쭉 펼친 팔과 다리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지만 꽤 오랜 시간 마음을 잃은 채 방치되었는지 사후경직이 진행되어 딱딱하게 느껴졌다. 사내의 배를 쓰다듬어 보았다. 하얀 구더기들이 애교를 피우듯 살풋 고개를 돌리며 네 손길을 피해 갔다. 흘러가는 물결처럼 반짝거리는 비닐봉지, 바람의 존재를 증명하며 춤을 추던 영화 속의 비닐봉지가 떠올랐다. 비닐봉지는 사내의 굵은 목에 매듭져 있었다. 구태여 그걸 풀어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 만한 용기는 나지 않았다. 창 밖에서는 또 소년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날개를 한 쪽만 매단 소년이었다. 너는 사람들의 파티에 초대받기 위해 매일같이 돋아나는 날개를 뽑아내던 사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가 구겨 버린 초대장을 너는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여기는 너무 더럽고 어두워.

너는 칭얼거리듯이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죽고 산다. 너는 매일 살아간다. 죽은 자들은 죽은 채로 살아간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지금, 현은 병원의 옥상에서 떨어져내린 소년을 쫓아 손을 뻗고 있을 것이다. 지금, 현은 너와 같은 자리에 함께 있어 주지 않을 것이다. 아픔은 언제나 혼자만의 것이다. 그런 사실이 소용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살을 가른다. 이름을 가졌던 흔적들에 의미라는 것이 있을까. 이름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는 명언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여자는 네 옆에 있다. 그녀는 함부로 더럽혀도 좋은 역겨운 잔등에 주저 앉아 노래를 부른다. 그것은 너희의 노래다. 너는 그녀의 부드러운 원피스를 벗겨내고 그녀와 옷을 바꾸어 입는다. 그녀는 푸르스름한 나체로 너를 바라본다. 미끈한 곡선은 물질을 벗어난 것처럼 색정적이다.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너는 구태여 말하지 않는다. 너희는 잘못되었고 결국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못할 것이므로. 그러나 그녀는 너를 저주하듯 속삭였다. 당신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여자의 메일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 수많은 시체들을 보았지만 한 번도 그것들을 끌어안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얼굴은 늘 눌러붙거나 무언가에 가려져 있었다. 물풍선을 얼굴 대신 매단 네온소타팝시티의 아바타들처럼. 그녀는 그들의 시신이 모두 너와 같은 세계를 공유했던 주민들이라고 말했다. 네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그녀에게는 의협심도 정의감도 없지만, 당신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거예요. 당신은 그들의 얼굴조차 확인하려 들지 않았잖아요. 그들의 시신을 방 안으로 가져가 본 적도 없잖아요. 하물며 손을 맞잡은 적도 없죠. 당신이 그들을 사랑했다면, 그만큼 미워했다면 집안에 있는 모든 틈새를 억지로 벌려서 그 속에 다리를 가슴을 머리를 팔을 모두 밀어넣었을 거예요. 당신의 자리를 나누어 주었을 거예요.

알아. 난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던 거야. 누군가를 선택할 만큼.

당신은 아무한테도 선택받을 수 없을 거예요.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고, 누구도 당신을 경멸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뱃속에 뭉툭한 칼을 부드럽게 밀어넣어 줄 사람은, 제 손을 다 베여가면서 당신을 해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당신은 아무에게도 살해당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살해하는 사람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

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끈적하고 검은 피가 말라붙은 사내의 얼굴을 마주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정도로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여자는 너를 비난하듯 매서운 눈으로 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은 건 너뿐만이 아니었지만, 네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녀의 비난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니, 너는 이미 오랫동안 그녀의 비난을 무시해오지 않았던가. 한 번쯤은 그녀와 같은 행동을 해도 좋을 것이다. 너라고 믿어왔던 너의 살을 입고 살더라도 그녀는 너를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너는 그녀의 증오를 흉내내기로 했다.

사내를 집안에 들여놓는 일은 간단했다. 현관문 앞에 널브러진 사내를 문 안까지 끌고가는 작업은 일 분도 걸리지 않았다. 문턱에 걸린 발 뒤꿈치에서 검은 피가 묻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현관복도를 지나다니는 누군가가 오물을 치우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저분한 복도는 매일, 혹은 매주, 혹은 매달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흔적도 얼룩도 없이.

어느덧 옷장 속으로 돌아가 있던 그녀가 너와 사내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입술은 보이지 않았지만 흐느끼는 것 같은 가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너는 그녀가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아무도 보지 않는 당신을 보는 건 그저 당신이 보이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당신도 마찬가지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나를 보는 건. 당신만이 나를 볼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나만이 너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지. 죽음에 대한 갈망은 죽어가는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지? 삶에 대한 욕망이 살아가는 것으로 충족될 수 없듯. 넌 죽은 채로 계속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거야. 우린 죽음도 삶도 차지할 수 없으니까.

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의 죽음과 타인의 삶을 방관하는 일뿐이에요. 타인의 사랑을 방관하듯.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었더라면 너는 죽지 않았을까?

내가 죽지 않았다면 당신은 나를 볼 수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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