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18

스승의 날에 그녀는 선생님을 위해 편지를 썼다. 편지를 읽고 그는 당황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그는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그는 부드럽고 정확한 발음으로 그녀가 얼마나 무례하고 얼마나 못된 아이이고 그녀의 문장들이 얼마나 병신같고 얼마나 시시콜콜하고 얼마나 미쳤고 얼마나 구질구질한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그는 그녀가 울음을 터뜨릴까 봐 걱정하며 모두 그녀를 위한 말이라고 설명한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편지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녀는 그녀가 쓸 수 있었던 유일한 말을 그녀의 책상에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녀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편지에 이마를 비비며 흐느낀다.

그녀는 무엇을 말해도 좋을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모른다. 버티고 서 있다가 그녀는 가장 불온한 순간에 말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는다. 그녀는 무례해진다.

그들이 그녀를 울리고 싶을 때 우는 것은 굴욕적이다. 그들이 그녀를 울리려 하지 않을 때 우는 것은 굴욕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말을 하고 싶어서 미쳐버렸다는 걸 안다.

MAD MEN MAD WOMEN FUCKING THEMSELVES. FUCKFUCKFUCK FUCK YOURSELF FUCKING MYSELF

차가움에 음부를 문질러대면서 비로소 느끼기 시작하는 여자들. 아, 아, 아, 아, TV의 음소거된 신음들, 아, 아, 아, 아, 그들이 아무것도 아닌 말을 하고 싶어서 미쳐버렸다는 걸, 아, 아, 아, 아, 아, 발설하기, 점점 더 실어증에 가까워지기, 아, 아, 아, 기독교 출판사에 신을 강간하는 소설을 투고하기, 아, 절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고기로 돌아다니기 고기를 먹고 고기가 되고 고기를 먹이기, 아, 아, 다정한 사람에게 욕설을 지껄이기, 아, 아, 아, 회의 중에 자살해버리기, 아, 아, 끝이 다가오는 순간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 아, 배신하기, 아, 아, 그게 좆같다고 고백해버리기, 아, 아, 아, 당신의 언어가 당신의 논리가 당신의 분석이 좆 같다고 너무나 좆 같다고 보내버리기, 아, 개처럼 아스팔트에 음부를 가까이 대고 오줌을 누기, 아, 아, 개미들을 집어삼키면서 목구멍을 녹여버리기, 아, 아, 아, 산부인과에서 이상한 것들로 막혀버린 음부를 보여주기, 장미와 어린 새의 시신과 박제된 뱀과 조약돌과 만년필과 구겨진 포스터로 가득 찬 음부를, 아, 아, 배신하기, 아, 아, 아, 피아노 콩쿠르에서 연주를 하다가 폭소를 터뜨리기, 아, 콘서트 중간에 객석에서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기, 아, 아, 아, 마리아가 처녀가 되기 전에 창녀였음을 고백하기, 아, 아,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의 옆에 같은 벌을 받고 같은 고행을 치르고 같은 최후를 맞은 도둑들이 있음을 선언하기, 아, 밀레나가 카프카의 얼터에고임을 고백하기, 아, 아, 아이가 성기를 만지는 행동이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행동과 같다고 말하는 전문가 앞에서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행동이 아이가 성기를 만지는 행동과 같다고 말하기, 아, 아,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음탕했는지 말하기, 아, 아, 아, 내가 그짓을 얼마나 즐겼는지 유치원 선생님에게 말하기, 아, 아, 아, 인체해부전시장에서 울음을 터뜨리기, 아, 아, 수업중에 자위하기, 아, 아, 해부실의 쥐새끼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아, 아, 불치병 환자가 누워 있는 병실에서 자살하기, 아, 아, 아, 더러운 비둘기에게 최고급 유정란을 먹이로 주기, 아, 아, 시체안치소에서 일어나 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기, 아,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부모 이름으로 부르기, 아, 아, 내 목을 조르는 살인자를 보면서 웃어버리기, 아, 아, 아, 배신하고 무안하게 만들고 그래서 버림받고 전부 잃어버리기, 좆을 좆이라고 해서 좆이 되어버리기, 음치 선발 대회에서 끔찍할 정도로 애매하게 노래를 잘 부르기, 강간범을 임신시키기, 죽어야 할 때 죽지 않기, 죽지 않아야 할 때 죽기,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기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기, 최후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는 관중들 앞에서 아, 아, 아, 아, 아, 아,

노인은 어느새 고개를 돌려 앨리스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다. 앨리스는 그녀가 그 모든 미친 말들을 직접 소리내에 뱉었는지 아니면 머릿속에서만 노래 불렀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여자는 그녀들이 모두 미쳐버렸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말한다. 말이 되지 않는, 의미도 결론도 없는 말들. 미치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미친 사람들은 그녀들이 아무것도 아닌 말을 하고 싶어서 미쳐버렸다는 걸 안다.

앨리스는 <앤젤 스테이크>의 여배우를-그녀와 무척 닮았지만 그녀는 아닌- 바라본다. 그녀는 미쳤고 오만하며 아름답다. 그녀는 마조히스트다. 그녀는 그녀를 위해 그녀를 학대할 어른들과 그녀를 강간하고 살해할 남자들을 찾아다닌다. (환상 속에서 혹은 현실에서)

노인은 하얗게 벌어진 얼굴을 들이대며 앨리스에게 혼잣말을 자랑스럽고 뻔뻔하게 건넨다. 혼잣말. 불결하고 끔찍한 말. 발설되어서는 안 되는 말. 그것은 그녀의 범죄고 그녀의 소유다. 축축한 악취, 미지근한 음식쓰레기 냄새가 앨리스의 얼굴을 적신다. 앨리스는 그녀의 범죄를 받아들인다. 그녀들은 범죄를 공유한다. 앨리스는 노인의 공모자가 된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노인에게는 수치가 없으며 앨리스에게는 수치가 있다. 그녀에게는 아직 미련이, 갈망이, 부끄러움이 남아 있다. 그녀는 노인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노인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같은 범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루된다. 노인의 당당한 비굴이 앨리스에게는 없다. 앨리스의 비굴한 오만이 노인에게는 없다. 그래서 노인의 남편은 노인을 가장 모자라고 하잘 것 없는 존재로서 받아들였다. 노인이 집으로 돌아간다면, 남편은 그녀를 냉대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앨리스를 그들의 내밀한 곳에 초대하지 않는다. 감독은 앨리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촬영지에 있었음에도, 카메라는 앨리스를 향해 눈을 열지 않았다. 앨리스는 늙고 냄새 나는, 부끄러움 없이 혼잣말하는 노인보다도 못한 존재다. 앨리스는 배신감을 느낀다. 그래도 앨리스는 노인을 필요로 한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노인. 앨리스를 버릴 수 없는 노인. 어떤 죄 이후에도 그녀의 옆에 남을 수밖에 없을 노인. 혼잣말을 꺽꺽거리는 노인. 불치의 노인. 더러운 노인. 환대받지 못할 노인.(오, 그러나 노인은 언제라도 앨리스를 버리고 도망칠 수 있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노인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결국 실패하고 말더라도.)

생리대가 치덕치덕 놓인 바닥을 밟고 지나간다. 앨리스의 맨발에 시뻘건 피가 엉겨붙는다. 그녀는 자기 자신의 정신병에 더욱 골몰한다. 그녀는 불치다. 무엇보다도 치료되고 싶은 욕망이 없으므로. 그녀에게는 모두 꿈이다. 욕망에 대한 꿈, 존재에 대한 꿈, 상태에 대한 꿈, 사건에 대한 꿈. 초등학생 때 문구점에서 샀던 녹슨 커터칼로 리스트컷을 하고 잠들기. 꿈 속에서 그녀 자신과 유사한 것들을 찾아 헤매다 거절당하고 깨어나기.

정신과 의사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환상일지도 모를 노인에게 털어놓기.

끔찍해. 끔찍해. 끔찍해. 끔찍하게 지루하고 끔찍하게 행복하고 끔찍하게도, 이제는 별로 죽고 싶지도 않아. 할머니.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 나는 따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초인종을 누르고 내 얼굴을 보더니 가버렸지. 어렸을 때 나는 엄마의 개와 엄마의 남편과 엄마의 동생과 엄마의 부모와 엄마의 추억과 엄마의 미래와 엄마의 커리어와 엄마의 딸과 엄마의 식사와 엄마의 샤워와 엄마의 침대와 엄마의 집과 엄마의 방과 엄마의 세계와 엄마의 죽음과 함께 살았어. ​엄마의 인간관계와 엄마의 가족과 엄마의 학창시절과 엄마의 양로원과 엄마의 정신병과 엄마의 정신병원과 엄마의 유전병과 함께. 할머니, 당신이 내 엄마인지도 모르겠어. 내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나는 모르니까. 어느 날 엄마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나는 여기 남았지. 혹은 내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고 엄마는 거기에 남았는지도 몰라. 아마 전자가 맞을 거야. 나는 다른 곳으로 간 적이 없으니까. 연기를 하면 다른 곳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어. 다른 곳이 돼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옥상에서 추락하는 사람은 추락하는 동안 무슨 꿈을 꿀까? 적어도 마지막 죽음만큼은 가장 높은 곳에서 느끼고 싶다고 앨리스는 생각한다. 그 꿈이 충분히 길어질 수 있도록. 삶은 죽음까지의 유예기간이다. 삶은 길고 지긋지긋한 유언이다. 앨리스는 바란다. 그녀가 누군가에게서 박탈했을 것을 누군가 그녀로부터 박탈하러 찾아오기를.

처음으로 자살을 원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을 그녀는 상상한다. 그녀가 죽고 나서 발견되기까지 걸릴 시간과 그녀가 죽기까지의 시간을 앨리스는 비교해본다. 발에 묻은 피가 차갑게 굳어간다. 처음으로 피를 흘린 때는 언제였지? 마지막으로 출혈할 때는 언제일까. 앨리스는 노인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노인을 죽일 만큼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노인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녀는 결코 노인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조차도 질투하니까. (앨리스는 종종 질투하는 것마저도 잊어버린다. 그녀는 강렬한 정동을 하나의 대상에 투자하는 것을 망설인다. 그녀는 질투 당하는 일조차도 질투한다. 그래서 그다지 질투하지 않고 전혀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를 배신한 감독조차도.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모든 죽음들도.) 그녀가반말할수없는사람들그녀에게반말하지않는사람들그녀가사랑할수없는사람들그녀를사랑하지않는사람들그녀는자기자신을사랑할수없는것과마찬가지로다른사람을사랑하지않는다그녀는자기자신을미워할수없는것과마찬가지로다른사람을미워하지않는다. 그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다른 사람과 언성을 높여 싸워본 적이 없다. 맞아본 적도, 때려본 적도 없고, 섹스해 본 적도 없다. 죽여본 적도 없고 환상이 아니라면 죽어본 적도.

앨리스가 현관문을 연다. 택배원 남자가 그녀에게 커다란 택배 박스를 건넨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복도 너머로 사라진다. 그녀는 손목의 열린 상처로 젖은 커터칼로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절단한다. 상자 속은 사용한 생리대들로 가득 차 있다. 천장을 향해 피투성이 흡착면을 벌려 보여주고 있는 생리대들. 앨리스는 진득한 피투성이의 손에서 풍기는 진한 쇠비린내를 맡는다.

노인은 꾸벅거리며 졸고 있다.

Act. 24.

아무도 읽지 않는 글 같은 것을 왜 쓸까. 아무도 살릴 수 없는 숨 같은 것을 왜 내뱉고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손톱 같은 것은 왜 자라고 아무도 관통할 수 없는 성기는 왜 발기하고 아무것도 집어삼킬 수 없는 점막은 왜 젖고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 같은 것을 왜 만들까 아무도 보지 않는 연극 같은 것을 왜.

줄거리가 기억나지 않는 영화를 보며 A는 지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지호가 A의 손을 원했고 A는 손을 내어주었다. A는 스크린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살인자와 희생자의 얼굴이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A는 살인자와 희생자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쌍둥이처럼, 핏방울처럼 닮았다. 같은 배우가 두 개 역을 동시에 맡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이 너무 닮아서 살인자는 마치 자기 자신을 살해하는 것처럼 보였고, 희생자는 자기 자신에게 살해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착적인 나르시시스트의 자살처럼. A는 살인자와 희생자의 얼굴이 겹쳐질 때마다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런 순간에 웃는 것은 오직 A뿐이었다. A는 오직 그녀만 웃고 있다는 사실에 끔찍한 한기를 느꼈다. 지호는 그녀가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있기에, 그 수줍음 때문에 웃었다고 생각했는지 공모자의 은밀한 웃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으나 웃기지는 않았다. A는 비둘기와 키스하듯 지호와 입맞췄다. 콜라에 젖은 미지근한 혀가 그녀의 입 속 점막을 건드렸다. 살인자가 자기 자신의 시체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그의 짭조름한 단맛을 느꼈다. 검은 거울에 비추어진 살인자-희생자가 희생자-살인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입으로 가쁘게 호흡했는데, 마치 자기 자살의 완벽한 연출을 위해서 자살 장면을 일일이 지휘하고 조정하는 유령처럼 보였다. 눈을 감고 잠들어 그럼 꿈에서 깰 수 있을 거야.

잘자.

노래 가사가 거울에 반사되는 모습을 옅은 갈색의 눈동자로 머금으면서 A는 턱 밑으로 흘러내리는 타인의 체액을 핥아 삼켰다.

Act. 26.

독방과 독방을 연결하는 비밀스러운 통로들. 한 마리의 쥐가 그곳에서 태어난다. 쥐는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 것이다. 쥐는 죽을 때까지 살 것이다.

D는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한)다. 가창 수업을 할 때, 그녀는 노래를 시작할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선생님에게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D에게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며 무엇도 반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대신 D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D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D의 행동이 매우 모범적이며 진취적이라고 상찬하기까지 했다. 여러분, 무엇이든 시작하면 제대로 해내야 하는 겁니다. 아이들은 D를 위해 박수를 쳤고 D는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잘 해냈다. 그녀는 행복하게 노래를 끝마쳤고 칠십 년이 지난 뒤에도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었다.

쥐는 통로에 죽은 사람의 손목뼈처럼 하얗고 길쭉한 이빨을 가져다댄다.

D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녀는 동네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불렀으며 TV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녀만큼 노래를 잘하지는 않았다. 그녀만큼 노래를 오래 부르고 노래를 오래 사랑하고 노래를 오래 즐길 수 있는 사람들도 달리 없었다. 그녀는 카나리아처럼 노래했고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녀를 위해 박수를 쳐 주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들으려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그녀가 살아있음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들이 약속장소로 모이지 않을 때, 출근한 부모가 돌아오지 않는 거실이 끔찍하게 섬뜩한 속도로 넓어져갈 때,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길거리를 우연히 지나가던 누군가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그녀를 반짝이고 대단한 곳, 다른 곳, 누구나 그녀를 기다리는 곳, 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그녀는 언제나 창문을 열어놓고 큰 소리로 노래했다. 그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곳이 그녀를 데리러 열린 창문 안쪽으로 몸을 밀어넣고 들어오는 상상을 했다. D의 부모는 창문을 열어놓는 것이 위험한 행동이라며 D를 혼냈다. 특히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창문을 열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그들은 클라이맥스를 노래하듯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D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결코 창문을 닫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도 창문이 열려 있었고 그녀는 여느 때처럼 노래했고 더 큰 소리로 더 아름답게, 잘 예비된 기적처럼 나타날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했고, 그녀가 욕실로 들어갔을 때도 그녀는 노래하고 있었다. 샤워부스의 열린 창문 아래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하려 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래도록 그를 기다려 왔는지. 난 당신이 올 걸 알았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신을 위해 창문을 열어 놓았어요, 하고. 그러나 D가 종달새처럼 재잘거리기 위해 입을 열며 그를 올려다본 순간, 그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남자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평생 그를 기다려왔으니까. 기적을 두려워하는 신도는, 왕자를 두려워하는 공주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남자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D는 검은 복면 사이로 드러난 그의 불투명한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마치 눈 먼 거울처럼. 마치 눈 먼 거울처럼, 그녀는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무엇을 반겨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남자가 그녀에게 오디션이나 무대, 가수로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그녀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기억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녀가 기다려온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서웠고, 죽을 만큼 무서웠고, 그를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는지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뻑뻑하게 수축된 성대는 어떤 노래도, 떨림도, 소리도 뱉어내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한 번도 노래를 불러본 적 없는 것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집요하고 의미심장한 침묵. 남자는 그곳에 서 있다. D는 어떤 죽음을 직감한다. 고양이 앞의 쥐새끼처럼 굳은 채로 D는 끔찍하게 많은 생각들을 본다.

Act. 1.

현실은 비현실이다. 현실은 망상이다. 현실은 꿈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벗어난 모든 집요한 환상이 현실에 있다. 그러므로 현실에 기대하는 모든 일상은 망상이다.

예컨대, 하나의 장소 외에 다른 장소가 있다는 생각은 현실이다.

예컨대, 그녀에게 다른 곳이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예컨대, 연인과 식사를 하고 입을 맞추고 섹스를 하는 것은 망상이다. 예컨대, 사형집행인이 그녀를 보고 비웃으며 돌아가는 것은 현실이다.

예컨대, 그녀가 미친 것은 현실이다.

예컨대, <앤젤 스테이크>가 상을 탄 것은 현실이다.

예컨대, <앤젤 스테이크>에 그녀가 출현한 것은 망상이다.

예컨대, 그녀가 하루도 빠짐없이 <앤젤 스테이크>를 촬영한 것은 현실이다.

예컨대, 가장 끔찍한 일은 현실이다.

예컨대, 가장 정상적인 일은 망상이다.

예컨대, 모두를 위한 천국은 망상이다. 천국에는 회개한 살인자와 강간범, 사형집행인과 포주들이 있지만 강아지는 없다. 앨리스는 강아지와 함께 천주교 순교성지를 산책하다가 쫓겨났다. 경비원은 그녀에게 개는 성지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고 그녀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처형장 밖으로 나갔다. 강아지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강아지는 성지에 들어갈 수 없다. 왜냐하면 순교는 강아지를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들)는 개를 위해 순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아지는 그(들)의 순교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아지는 원죄도 영원한 죄악감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가슴에 끌어안겨 있던 강아지가 환상의 가장자리로 떨어진 뒤에도 그녀는 허공을 끌어안은 자세로 계속해서 걸었다. 경비원은 대체 뭘 쫓아낸 걸까? 그녀에게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강아지가 없는데. 그녀에게는 개가 없는데. 그녀는 사랑하지도 않고 그러므로 사랑받지도 않고 그러므로 빌어먹게 오래 살 텐데. 죄도 없이, 자비도 용서도 사랑도 없이, 그녀와 유사하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은 배우들의 얼굴을 낱낱이 뜯어보고 절망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 자신의 미래와 자신의 후손과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순결과 자신의 신과 자신의 영원과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파멸과 자신의 비극과 자신의 희망과 자신의 절망을 위해 순교할 사람들. 그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도 순교하리라! 그녀의 죽음을 위해서. 오직 모든 희망을 망쳐버리기 위해서. 오직 비극적인 농담을 위해서. 오직 제로를 향해서. 추락하는 동안 그녀는 고막을 짓이기는 날카로운 바람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오르가즘을 느끼는 짐승의 신음처럼 음탕하고 황홀한 노래를.

어쩌면, 후속작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후속작의 여주인공인지도 모른다. 감독은 그녀에게 기분 좋은 경악을 선물하기 위해 그녀를 들여보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사회에 초대받지 못한 것도, 그녀의 비밀스러운 미래-얼굴이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그녀는 길고 역겨운 악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꿈에서 깨면 그녀는 영화관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녀의 현실-얼굴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명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에게 해명하면서 그녀는 울었다.

어떤 작품은 작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부패해간다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썩어서 달콤한 악취를 풍기면서도, 그녀의 망상은 그녀에게 절망적으로 냉담했다.

遺言

I’m dying because I’m too happy

Love being dead as much as being alive

Love dying as much as living

Singing singing singing with silence

I’m going to heaven to fuck god.

난 너무 행복해서 죽는 거야

죽어서 좋아. 살아 있는 것 만큼.

노래하고 노래하고 노래하고 있어 침묵으로.

난 신을 강간하러 천국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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