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2

Act. 5.

살인자가 가까운 교회에 들어간다. 기도한다. 성상이 불안하게 경련하다가 깨진다. 돌 밑에 잠들어 있던 천사가 흐느적거리며 살인자의 앞까지 기어 온다. 희고 깨끗한 깃털들이 남자의 얼굴을 간지럽힌다. 살인자의 눈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천사의 날개 끝이 피로 젖어든다. 붉게 변한 깃털이 남자의 얼굴 위에 붉은 선들을 덧그린다. 자살처럼,

용서할 수 없이 아름다운.

– 잠들고 싶어

– 잠들고 싶어

천사의 얼굴은 검게 얽어 있다. 천사가 긴 손톱으로 남자의 얼굴 가죽을 벗겨낸다. 벗겨낸 얼굴가죽 밑에서 남자가 잠시 웃는다. 거대한 상처덩어리처럼. 천사가 남자의 얼굴 가죽을 검게 얽은 자기 얼굴 위에 뒤집어쓴다. 천사가 살인자의 표정으로 웃는다. 교회 천장에 박쥐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던 천사들이 일순 바닥으로 떨어져내린다. 그것들이 바닥과 접촉하여 구토로 가득찬 머리통들이 박살나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해서 떨어져내릴 것이다. 영원히, 혹은 영원처럼.

– 삶은 실패한 농담, 침울한 코미디다.

목사가 제단 위에 누운 채 흐느끼고 있다. 잠든 척 하며. 잠든 척 하는 데 실패하며. 그러나 떨어지고 있는 그 누구도 가만히 누워 있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눈꺼풀로 시야를 틀어막은 채로 기도하나니, 그는 신도들의 죄를 훔쳤고 그들의 죄로 회개하였고 그들의 죄로 구원받았나니, 그에게 죄를 빼앗긴 신도들은 구원받지 못하였는데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훔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고 달처럼 그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눈꺼풀은 기도의 마지막 황홀을 잊기 전까지는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파리들의 탐욕스러운 무리가 천사의 날개와 살인자의 얼굴 위를 새까맣게 뒤덮는다.

– 토하고 싶어.

– 잠들고 싶어.

살인자가 고통스럽게 꺽꺽거리지만 그의 구멍에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구토와 피와 뇌수로 가득찬 머리통. 그는 질식해가고 있다. 천사는 그의 표정으로 웃는다. 그것이 누구의 미소인지 살인자는 알지 못한다. 그가 누구를 죽였는지 끝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데 자기가 누구를 죽였는지 알고 있는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익사자들이 물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살인자는 젖을 빨듯 혹은 펠라치오를 하듯 천사의 날개 끝단을 빨며 흐느꼈다.

어쩌면, 어쩌면 그가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리라는 불안감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아무도 그를 죽이지 않는 것처럼 그 역시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리라는. 그리하여 이곳에는 그 누구의 죄도 없고 그 누구의 구원도 없으며 그 누구의 죽음도 그 누구의 삶도 없으리라는. 천사는 피에 젖었고 천사들은 떨어지고 있으나 그것이 뭐 어떻단 말인가. 그것은 그의 죽음도 끝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죽음이고 그들의 끝이었다.

Act. 6.

여자는 여배우였다. 아니, 그녀가 여배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여배우가 아니었다. 여배우라고 생각했을 때는 좋았다. 일상적인 불안과 우울이 있었지만, 그런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아닌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매일 새벽 4시에 촬영장에 나갔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오는 스텝들을 맞으며 인사했다. 오직 인사하기 위해 그녀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간혹 다른 배우들이 급한 일로 오지 못하거나 얼굴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이 상해 있거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 그녀는 영사기의 유령 위에 조금이라도 더 생존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카메라들을 악착같이 따라다녔고 감독은 그녀를 조금 지긋지긋해 했다. 그래도 그녀는 얼마간 카메라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녀가 연기할 때 아무도 그녀의 연기를 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위대한 자랑거리였다. 가장 능란하고 원숙한 배우조차도 몇 번의 NG를 거쳤는데 그녀의 연기를 끊는 이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상대 배우의 실수로 연기를 끊은 적도 없었다. 그녀가 촬영할 때는 언제나 혼자였으니까. 정물들이 바람에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은 카메라에는 담기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사물들의 오류를 수십 수백 번 잡아채었으나 감독은 컷을 외치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도 그녀가 무엇을 연기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아무도 그녀가 거기에서 연기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심을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결코 하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무대에서 자살할 운명인 비극 배우 암쥐였다. 그녀는 그녀가 무엇을 연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카메라 앞에서는 알고 있었다.

카메라들이 오지 않는 날에도 그녀는 갔다. 앨리스는 혹시 누군가 급하게 일정을 바꿔 올까 두려워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그곳에서 기다렸다. 그녀만 두고 다른 곳으로 촬영을 갈 것 같은 불안감에 감독을 스토킹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유령처럼 그의 뒤를 따랐고 감독은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모른 척했다. 그의 유리창 밖에서 그의 잠을 들여다보면서도 그녀는 촬영지에 카메라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새벽 4시에 다시 촬영지로 갔고 밤 10시까지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 오는 날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해서 갔다.

어째서 원하는 걸 그만둘 수 없는 걸까

그녀는 계속해서 갔고 몇 장면을 빌어먹을 수 있었다.

– 비명을 질러 보세요

– 웃어 봐

– 울어 봐 떨어 봐 사랑해 봐 절정해 봐 고통해 봐 죽어 봐 잃어 봐 부활해 봐 기도해 봐 미쳐 봐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그녀는 기꺼이 했다. 그녀는 배우였으니까! 그녀는 여배우였으니까. 그녀는 영원한 유령이 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그녀는 인형의 뱃가죽을 가위로 찢었고 가랑이 사이의 꽉 닫힌 곳을 찢어발겨서 음부를 만들어주었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어 하얗고 부들부들한 내장들을 꺼내었고 먼지처럼 흩날리는 심장까지 꺼내었고 고백의 언어로 흐느꼈다. 할 수 있잖아. 그녀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척척한 붉은 물감이 앨리스의 가늘고 긴 팔을 적셨다. 초콜릿 냄새가 진동했다.

– 벌려봐 닫아봐 조여봐 죽어봐 미쳐봐 죽어봐 살아봐

– 숨을 참고 얼마나 버텨야 모든 것이 끝날까

– 그러나 죽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간절히 원하기에 그녀는 너무 닳고 닳았으니까.

– 너는 너무 오만해. 아래를 보고 위안을 얻는 거지. 역겨워 오만해. 오만해. 위만 보지 말고 아래를 봐. 오만해. 오만해. 네가 게워낸 심장으로 더럽혀진 아래를 봐. 우주비행사가 천국에서 지상의 버러지들을 내려다보듯이. 밑을 봐. 밑을

– 밑에는 구멍밖에 없어. 다물리지 않는 구멍. 장액과 질액과 생리혈과 창자를 줄줄 쏟아내는 구멍. 영혼까지 쏟아내는 구멍.

카메라 앞에서 수음하면서 그녀는 동그란 렌즈들 하나하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오케이도 컷도 엔지도 없었다. 사정도 배설도 없었다. 그래도 약간의 오르가즘과 신음은 있었다. 앨리스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순교하고 무엇이든 박해하고 무엇이든 배신할 준비가. 그러나 무엇을? 무엇에 대해, 무엇을 잔인해진단 말인가? 가진 것이 없는 자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버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단 위에 잠든 어린 양

그것은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그러나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죽음을? 피를? 게걸스럽게 벌어져서 울부짖는 상처를? 부활을? 기적을?

그녀의 입 안과 창자를 부드럽게 적시는 점액. 앨리스는 약간 흘러넘치는 땀방울을 느꼈다. 그녀는 카메라들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카메라들도 그랬는가?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간혹 악몽처럼 행복한 사람들.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주위는 암흑처럼 조용하였고 행복처럼 둔감하였다. 앨리스는 죄를 짓듯 결백하게 연기하였다. 암묵적인 승낙에 따라 카메라들 속 비어 있는 자리로 비집고 들어가 미치거나 죽이거나 죽거나 조이거나 벌리거나 흘리거나 웃거나 울부짖으면 그렇게 연기하면 그것이 촬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수백 번 수천 번 촬영하였다고 믿었다. 살아 있는 검은 물 속에서 일렁거리는 수초처럼. 수초의 구멍들을 고통스럽게 비집고 들어가는 검은 액처럼 그녀는 시선들이 그녀의 구멍들 속으로 스며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믿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죽을 거라고 믿지 않고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결국 인간은 죽음이나 희망에 대한 믿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광신적으로 신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부재 속에서 시선들의 넘침을 믿었고 믿는 동안 계속해서 기다렸다. 감독이 그녀의 혀 속에 침을 뱉고 삼키라고 했다면 그녀는 기꺼이 삼켰을 것이다-예수의 침을 삼키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은총 받은 말을 내뱉었으리라. 그녀의 목소리는 곳곳의 스크린과 디스플레이에서 울려퍼졌으리라. 그녀의 구멍들이 행복하게 벌어지는 모습이 온갖 구멍들에서 보였으리라. 불안한 희망의 증폭으로 인한 피학적인 환희 속에서 그녀는 기꺼이 연기하였다. 날카로운 나뭇잎으로 손등에 상처를 내면서도-보석 세공사의 집요함을 가지고-그녀는 지치지 않았다. 그녀는 했다. 무엇이든 했다. 계속해서 했다. 카메라들 앞에서 그녀는 거대하게 비어 있는 공백을, 그리하여 그녀를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매혹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들은 시선들에 대한 예고였다. 그것들은 살아 있음에 대한, 살아 있음을 자랑스럽게 초과하는 존재에 대한 예고였다.

Act. 7.

음울한 희망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살아가는, 계속해서 살아가는. 앨리스는 카메라를 보며 뛰었다. 카메라가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끔찍한 황홀 속에서 달렸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선망해오던 남자가 그녀의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애틋함 때문에 그녀는 그를 끌어안고 싶었다. 그녀가 얼마나 오래 그를 바라봤는지 그가 그녀와 함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작은 손길이나 눈짓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기뻤는지 속삭이고 싶었다. 그러나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날카로운 날숨이 후두를 찢어놓고 그녀의 눈을 멀게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남자와는 같은 교실에 있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는 척하며 그를 훔쳐보고는 했다. 간혹 눈이 마주칠 때의 열감은 설렘보다는 수치였다. 그녀는 펜이나 지우개 같은 작은 문구류를 훔치듯 남자의 존재를 훔치고 있었다. 그녀는 빌어먹는 도둑이었고 그는 선량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녀의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응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달리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그녀를 향해. 그녀는 두려웠고 그만큼 흥분했다. 별을 삼키는 것처럼. 마침내 그가 그녀를 따라잡았고 그가 허옇게 드러난 그녀의 맨얼굴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애틋한 슬픔으로 젖은 눈을 그에게 바치고 있었다. 제단 위에서 영그는 양의 두 눈. 그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녀는 아직 그가 그녀의 입술을 언어의 자취가 묻은 입술로 부드럽게 누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가 그녀의 불룩한 눈동자를 시선으로 으깨었다. 그녀는 이제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상한 절망에 사로잡혀 새벽의 나무처럼 비명을 질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게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 그녀는 맹세했다. 그녀는 기도했다. 이제 훔쳐보지 않을게. 이제 훔치지 않을게. 그녀의 얼굴 가까이 내려앉은 그의 입에서 날고기의 역한 악취가 났다. 그의 날숨은 회처럼 축축하고 비렸다. 그래도 그는 그녀의 가까이 있었다. 사형수의 목 깊이 빌어먹게 깊이 쑤셔박히는 칼날처럼 그는 그녀 가까이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앨리스는 그가 꺼지기를 바랐다. 그가 죽어버리기를 그래서 더 이상 그녀를 굴욕적인 공포 속에 내버려두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조금 원했다. 조금, 그러나 떨쳐버릴 수는 없을 만큼. 그녀는 그가 유령이 되기를 그래서 허공처럼 부드럽고 다정한 육체로 그녀를 상냥하게 안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육회처럼 살아 있었고 땀에 젖어 비린내가 났다.

교실에서 그녀가 훔쳤던 그의 존재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것은 역겹게 젖어 있지도 않았고 미래처럼 슬펐다. 그녀는 배신감을 느꼈으나 사실 아무도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배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그녀에게 속해 있지 않았으니까!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고막의 나비 모양 테두리도 그것이 찢어지는 순간에도 소리들이 그녀의 구멍을 헤집어놓고 훔쳐낸 영상들이 그녀의 망막을 후벼파는 동안에도 그것들은 그녀에게 속해 있지 않았으니까. 그녀와 접해 있는 것들은 사실 그녀의 이름조차 몰랐으니까! 도축장에 내걸린 송아지의 시신들이 누구에게 배신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들이 무엇을 배신할 수 있었겠는가. 앨리스는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는 그의 손목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여자의 눈이 벌겋게 튀어나왔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감독은 컷을 외치지 않았다. 그보다 꿈의 장면은 그녀가 상대배우를 가졌던 유일한 컷이었다.

– 크리스마스에 산타는 붉고 커다란 자루를 머리맡에 놓고 갔다.

– 부모님이 깨어나기 전에 아이는 자루를 끌어안았다. 자루가 색색거리며 들숨 날숨을 쉬고 있었다. 체온이 느껴졌다. 아이가 눈물을 흘렸다.

– 여자는 상대를 타자를 세계를 원했다. 그녀 자신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그녀로부터 새어나오는 말들이 그녀의 턱과 가슴을 부식시키는 동안 새로운 말, 더 새로운 말, 새로운 말을 여자는 원했다.

– 현존하는 신 언제나 현존하는 신 그녀가 악몽을 사는 동안에도 그가 그녀의 입 속에 침을 뱉는 동안에도 현존하는 신

– 그녀가 여기 있듯 여기 있을

–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 그 유명한 해부대 위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 용서할 수 없이 아름다운. 악착같이 아름다운.

– 어째서 말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을까?

– 아가. 네가 태어나기 전에도 세계는 지금과 같았단다.

– 검은색의 아주 평범한 승용차가 어린 개의 몸을 으스러뜨리며 지나간다.

– 그가 지껄이는 것을 멈추었을 때 신은 벙어리의 입 속에 신성한 침을 쑤셔넣어 그가 다시 말하게 하셨나니. 그는 결코 말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 모두가 영원을 살아야 한다. 피에 젖은 깃털에 파리들이 들러붙는다. 천국처럼 순결한 구더기들이 태어난다.

– 선홍빛의 유해한 숨결이 얼굴을 적신다. 그녀의 첫사랑이 앨리스의 목을 조르는 동안 여자는 떨어지고 있었다. 기적처럼 현존하는 아래로. 신처럼 현존하는 아래로. 언제나 거기에 있는 아래로. 육중하게 부풀어오르는 백조의 부패한 시체.

– 무(無), 지글거리며 끓어넘치는 무(nothing),

– 엄마 배고파 목말라 배고파 아파 아파 이제는 그만 아프고 싶어

– 아픈 만큼 크는 거야 아가 커터칼 좀 가져와. 너를 낳을 때도 나는 아팠어 나는 계속 아팠어 나는 계속 크고 있어.

여자가 커터칼로 배꼽을 후벼판다. 이제 독립할 때가 되었다고 여자는 말한다. 선홍빛의 신선함을 간직한 피가 커터칼의 은빛 날을 적신다. 그녀는 아직 신선하다. 신선한 고기이다. 평균 37도씨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부패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녀는 아직 신선한 고기이다.

– 아파 엄마 너무 아파 그런데 아픈 게 뭔지 모르겠어

– 배고픈 게 뭔지 모르겠어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사실처럼 아름다운 움직임이 계속된다. 계속된다.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앨리스는 카메라 앞에서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이들을 모두 드러내며 웃었다. 배우였던 것을 배우였던 것을 믿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후회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배우 이외에 그 무엇도 될 수 없었으니까. 배우가 아니라면 그녀는 그 무엇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이토록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앨리스는 인터넷 검색창에 강박적으로 앨리스앨리스앨리스앨리스를 검색하며 생각했다. 루이스 캐럴의 딸도 드라마도 가수도 애니메이션도 아닌 앨리스앨리스앨리스그녀가 살아 있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녀 외에는 아무도. 그러나 그 은밀함에 대한 포상은 없었다. 은밀함은 상찬할만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삶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주목받을 수 있는 것이,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듯. 희생자들은 언제나 이름 없이 죽는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살인자들의 이름이 수억 개의 디스플레이들에 인쇄되는 동안 희생자들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자들이 게걸스러운 꽃들이 되는 동안 희생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앨리스임을 어떻게 알릴 수 있는가 그녀는 계속해서계속해서 앨리스앨리스앨리스하고 중얼거렸다 앨리스앨리스앨리스를 검색했다. Ctrl C와 Ctrl V를 누르지 않고 계속해서 썼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앨리스앨리스앨리스앨리스앨리스하고 썼다. 그녀가 쓴 것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그녀가 절박하게 적어낸 이름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가? 그녀가 수천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넣은 이름들은 모두 어디로? 시간은 언제나 영원하고 실은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목할 만한 반영들, 환상들, 죽음들. 그것들이 요구하는 이름들, 존재들. 그녀도 가질 수 있다. 그녀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한 송이의 장미, 아름다운, 음부를 가진, 살아 있는 한 송이 장미를 그녀도 물론 소유할 수 있다. 그녀도 그것을 찢어버릴 수 있다. 그녀도 그것을 삼킬 수 있다. 그녀도 그것에 침을 뱉을 수 있다. 그녀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할 때도 그녀도 그것을 원할 수 있다. 그녀가 갖지 못하는 것들, 붉은 살점과 낭만적인 비극과 아름다운 죽음을 그녀도 원할 수 있다.

– 원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어.

– 나를 한없이 바라보는 개의 검은 눈 같은 맹목을 장미의 벌어진 입 속에서 태어나고 있는 말들을

충분한 잔인함과 폭력이 그녀에게 속해 있었다면 그녀는 기꺼이 찢고 기꺼이 마시고 기꺼이 삼켰을 것이다. 심장들이 열리는 식사자리에서 그녀는 기꺼이 입술을 적셨을 것이다. 은접시 위에 순종적으로 누워 있는 어린 양의 고기도 기꺼이 일어나 갈기갈기 찢긴 음부를 어디고 처박았을 것이다. 식탁 위의 어린 양, 그녀는 소유하고 즐기고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녀는 고통하며 환희하고 웃었을 것이다. 그녀의 힘줄이 끓는 우유 속에서 훼손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기꺼이 기어서 식탁의 흰 베일을 붉게 적셨으리라. 그녀의 혀가 잘려나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기꺼이 어린 사제의 입속에 서글픈 환희를 쑤셔넣었으리라. 그녀의 성대가 도려내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기쁨에 찬 비명을 외쳤으리라. 그녀의 이빨이 뽑혀나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수천 마리의 살아 있는 양들을 뜯어먹었으리라. 그녀가 부드러운 털과 피부를 벌거벗은 채 무력하게 누워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원하는 것들을 원하지만 닿지 못할 것들을 원하지만 삼키지도 물어뜯지도 훼손하지도 못할 것들을 그녀의 선천적인 결핍, 잔혹성의 결핍으로 인하여 살해하지 못한 것들을 중얼거렸으리라. 그녀의 핏물이 냄비 속에서 모두 빠져버리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줄줄 새어나오는 그녀의 혈흔으로 비명을 썼으리라. 모든 것을 그녀가 갖지 못한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는 모든 것을 썼으리라. 그만큼 그녀는 원하고 있으니까. 사제들의 희고 단단한 이가 그녀의 살점을 짓이기는 신성한 식탁에서.

Series Navigation<< 양과 장미양과 장미 3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