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21

Delusion level 2.0.

언어 교재

나는/우리는/그녀는/그는/그들은

천국에/지옥에/미래에/죽음에/삶에/돼지 농장에/29번 채널에/옥상에/추락에/살인 현장에/질액과 체액이 엉겨붙은 침대 시트 위에/자궁에/목을 매단 자살자의 발이 점점 아래로 미끄러지고 있는 연극 무대에

갔다/가고 있다/간다/갈 것이다/갔을지도 모른다/갈지도 모른다/가게될 지도 모른다/갔어야만 한다/가야만 한다/가야 한다

.

She danced her dance.

She did her dance.

She will live her death.

She died her life.

She did her death.

She killed her killing.

She killed It.

She raped her rape.

She did her rape.

Her crime raped her.

She raped her crime.

Real is coming.

Real is escaping.

Nothing is coming.

Nothing raped her crime.

Nothing did it.

She raped nothing.

Nothing killed her killing.

Nothing killed her.

Nothing lived her.

앨리스는 검은 빛에 종이를 대고 그녀가 적은 것들을 비추어보고 있다. 그녀가 목소리를 잃기 전에 말하려 했던 것들. 말하고 싶은 것들. 말해야 하는 것들. 육식 동물의 이빨이 그녀 자신의 연약한 잇몸을 파고들고 있다. 그녀는 침과 섞인 붉은 피를 생리하듯 턱 밑으로 출혈하며 읽는다.

Delusion level 7.5.

List of something else

– 수조 벽으로 돌진하는 참치. 푸른색의 거대한 수조 벽면 속에서 헤엄치는, 자연 상태에서는 결코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는 어류들. 그곳에서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참치의 머리가 투명한 수조 벽에 부딪힌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분명히 어떤 충돌이 있었다. 피가 터지며 수조 한구석을 물들인다. 참치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수조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죽음을 향한 고속, 환각, 파멸의 탈주선.

– 아직 알려지지 않은 언어를 연기하는 아이. 아이는 새 부리 같은 붉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초조하지만 집요하게 말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아이의 입 속 검고 축축한 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아이의 진단명을 결정한다. 선택적 함구증.

– 책에는 대상도 주체도 없다.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들뢰즈 · 가타리)

– 눈-블랙홀-중력의 초점-검은 구멍

– 눈의 검은 구멍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붉은 머리통.

– 교사가 아이들에게 자폐의 언어와 제스처를 열정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은 미래에 그들이 하얀 벽을 마주보고 던질 난해하고 불가능한 질문들의 단편을 혀끝에서 음미하며 웅얼거린다.

– 죄를 욕망하기를 강요받은 남자아이가 도착적인 취미에 익숙한 다른 남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창백한 얼굴로 출구를 찾아 간절하게 눈을 굴리고 있다. 그가 결정하거나 결정했다고 믿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자아이는 그들의 내부, 혹은 외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아이는 그들을 구성하는 안쪽이나 바깥이 될 것이다.)

Act. 15.

지구는 같은 방향으로 공전하고 같은 방향으로 자전한다. 우리 은하는 같은 방향으로 공전하고 우리 우주는 같은 방향으로 공전하고 아주 천천히 같은 곳으로 돌아오고 있다.

옷장 속에서, 앨리스는 쓴다.

그녀는 어린 시절과 정확하게 같은 욕망과 같은 인간관계(의 부재), 같은 옷장과 같은 냄새, 같은 육체와 같은 결핍에서 맴돌고 있다고. 그녀의 육체와 언어 깊이 개입하고 그녀를 고장내는 망상들은 그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타인의 연애와 타인의 휴가와 타인의 죽음과 타인의 예술과 타인의 삶과 타인의 연극과 타인의 얼굴과 타인의 범죄와 타인의 미래와 타인의 추억과 타인의 판타지와 타인의 창녀와 타인의 포주와 타인의 질병과 타인의 대화들이 그녀의 하얀 얼굴을 적시며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것들은 노트북 화면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그녀의 피부 위를 적시지만 그녀는 그것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 그녀는 화면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녀는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렇지만, 하고 앨리스는 워드 프로세서의 하얀 창을 향해 자폐적으로 웅얼거린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전부 했어요.

Alt + Tab

멜로 드라마를 대표하는 희고 가련한 얼굴의 여배우가 대답한다.

나는 곧 목소리를 잃어버릴 거예요. 난 후두암에 걸렸으니까. 그러니까 그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야 해요.

앨리스는 말한다. 초콜릿 케이크를 전부 다 먹었어요. 종이에 쓰인 모든 문장들을 외웠어요. 아무도 때리지 않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손목을 끝까지 자르지 않았고 다이빙 금지 표시가 붙은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어요. 징그럽게 웃는 귀여운 아이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지도 않았고 범죄자를 지나치게 사랑하지도 않았어요.

양쪽 눈이 두터운 눈꺼풀에 덮여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해보이는 긴 얼굴의 남배우가 외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 사랑해.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때도 사랑해요. 네 후두암을 짐승의 이빨로 물어뜯어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해.

여배우의 어리고 창백한 얼굴 클로즈업. 앨리스는 화면 속 벌어진 입술 틈으로 보이는 가지런하고 과장되게 새하얀 치아들을 들여다보면서 말한다. 자, 그렇게 하면 말할 수 있게 해 줄게. 너를 들어줄게. 너를 죽여줄게. 너를 살려줄게.

여배우의 턱뼈가 더 깊은 방향으로 느리게 벌어진다. 노트북의 스피커 구멍들에서 울먹이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나는 목소리를 잃어도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하지만 내 목소리에 대고 맹세할 수는 없어요. 나는 그걸 잃어버릴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목소리가 아닌 다른 것에 대고 맹세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결코 진실을 맹세할 수 없을 거예요. 내가 목소리를 잃기 전에 나를 죽여줘요. 내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맹세가 진실이 될 수 있도록.

남배우가 절규하며 소리친다. 자, 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그렇게 하면 말할 수 있게 해 줄게. 그렇게 하면 맹세할 수 있게 해 줄게. 그렇게 하면 들어줄게. 그렇게 하면 살려줄게. 그렇게 하면 죽여줄게.

여배우가 수줍게 웅얼거리고 남배우가 여배우의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여배우의 목과 어깨 사이가 깊게 패인다. 여배우의 목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덜렁거린다. 남배우가 상처 깊이 고개를 파묻고 구역질을 한다. 여배우는 애무를 받은 것처럼 간지러워하며 키득거린다. 남배우가 피투성이 얼굴을 들어올린다. 음절과 음절 사이를 식별할 수 없는 기이한 음성이 울려퍼진다. 불판에서 산 채로 타들어가는 어린 새가 부르는 노래, 혹은 망상 속의 추상적인 짐승이 필사적으로 전하려 하는 모종의 메시지와 같은. 여배우의 기울어진 머리통 클로즈업. 그녀의 기울어진 눈은 경악으로 벌어진다.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가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서 알려지지 않은 입술로 알려지지 않은 언어를 뱉는다. 그녀 목덜미의 상처가 뻐끔거린다.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리듬이 우울한 환희로 속삭인다. 남배우는 몽롱한 눈을 천천히 깜박거리며 여배우의 상처에 둥근 귓바퀴를 가져다댄다.

앨리스는 그들이 황홀에 들떠 중얼거리는 언어를 조금도 알아듣지 못한다. 아마 그들 역시 앨리스를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들 역시 그들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서로를, 배운 적 없는 언어를 알아듣는 것처럼 그로테스크하게 뻐끔거린다. 감미로운 착란을 만끽하며 점막을 마찰시키며 빠져나가고 삽입되는 언어, 혹은 신음을 교환하는 괴물들. 여배우는 영원히 뻐끔거리고 있다. 숨이 완전히 멎고(멎은 채하고) 감독이 컷을 외칠 때까지. 남배우는 피에 젖은 귓바퀴에서 찰박거리는 물기 어린 소리와 영원히 해명되지 않을 무언가를 듣는다.

어디로도 확장되지 않고 펼쳐지지 않을 언어들이 지극히 경제적인 방식으로 분출된다. 앨리스는 그녀가 무한히 생산하는 것들의 존재 방식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녀가 매일 토해내는 말들은 어디로 가는가? 그것들은 그녀의 비밀스러운 평면 위에, 끝없이 늘어나지만 어떤 물리적인 공간도 더 차지하지는 않는 이상한 여백 위에 누워 있다. 그녀의 말은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 수백 수천 번 폭발한 달은 같은 궤도 위를 유유히 달리고 있다. 우울한 거울에 비추어지는 투명한 착란들. 바다사자가 어린 굴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오늘 파티를 할 거란다. 나를 따라오지 않을래? 굴들이 대답한다. 그래요. 그래요. 그래요. 우리는 파티를 좋아해요.

그들은 바다사자의 저택으로 들어선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기다란 테이블. 테이블 위로는 황홀한 검은 빛으로 반짝이는 샹들리에. 굴들은 당돌하게도 하얀 테이블 위로 올라가 바다사자를 보챈다.

아저씨, 배가 고파요. 먹을 건 어디 있어요?

바다사자는 즐겁게 웃는다. 어디 있냐니. 너희가 바로 파티의 주인공이란다.

주인공이라고요?

그래. 너희가 바로 오늘 만찬이야. 나는 오늘 너희를 먹을 거란다. 너희를 전부 말이야.

하지만, 하고 굴들은 서글프게 말한다. 우리는 맛이 없어요. 아저씨는 실망할 거예요.

얘들아, 너희는 너희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르고 있어.

아기 굴들은 깜짝 놀라서 묻는다. 우리가 맛있다고요?

바다사자는 굴들을 끌어안고 열렬히 입맞춘다. 그래. 사랑스러운 아이들아.

굴들이 부드럽게 흘러넘친다. 굴들은 속삭인다. 아, 우린 어디로 가는 건가요?

바다사자가 말한다. 너희는 깊은 곳으로 갈 거란다. 너희는 내 가장 깊은 곳을 만지게 될 거란다. 너희는 맛있어. 정말 맛있어. 너희처럼 맛있는 걸, 바다사자가 다정하게 웃는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단다.

굴들이 바다사자의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찢겨서 투명한 피를 흘리는 굴의 몸이 굴의 살이 굴의 내장이 바다사자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깊이, 더 깊이, 굴들이 들어간다.

그것은 굴들이 경험한 최초의 폭력, 최초의 입맞춤, 최초의 파티였다.

Delusion level 10.0.

어느 날 신은 살해자 대신 희생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의 사랑스러운 유다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겼다. 유다는 그를 배신했고, 신은 그를 배신했고(신이시여 어째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는 십자가에 매달린 벌거벗은 고기가 되었다. 그는 순종적인 박해자들을 이용해 피부를 벗고 괴물이 되었다. 그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심지어는 신과도 다른 것이 되었다. 그는 느리고 강렬한 죽음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면서 차가움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벗겨진 살에 축축한 공기가 와닿았다. 귀 먹은 함성과 울음소리, 외침들이 와닿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능지처참당한 남자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능지처참당하는 남자다. 남자는 그를 집요하게 촬영하고 있는 서양인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며 그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그가 신인지 능지처참당하는 죄수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의 내력들, 추억들, 그가 간직했던 미래들, 그가 끝까지 끊을 수 없었던 악질적인 희망들. 남자는 그의 죄를, 슬픔을, 그가 기대했던 천국을 기억할 수 없었다. 강렬한 차가움에 대한 욕망이 그를 엄습했다. 그는 미친 듯이 뜨거웠다. 그는 차가워지고 싶었다. 그는 미친 듯이 차가웠다. 그는 더 차가워지고 싶었다. 그의 핏속을 떠도는 치사량의 아편이 그를 얼려놓고 있었다. 얼어붙은 피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의 혈관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는 그가 유다인지 신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그가 배신자인지 배신당한 사람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의 살해자들은 다정하고 신중한 손길로 그의 피부를 저며내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향해 연약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들은 그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그에게 인사하는 과일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되돌려주듯이, 그들의 섬세한 작업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턱을 더 벌려 뭔가를 말했다. 언젠가부터 관중들은 울음과 함성을 그쳤다. 이제 그들은 하얗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아, 그는 감사하다고 말해야 했다. 죽여주셔서, 이렇게 고생해서 죽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세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는 백치처럼 입을 벌린 채 황홀하게 아 아 아 더듬거렸다. 왼쪽 팔꿈치 안쪽의 살이 벌어졌다. 등이 깊게 패였고 가슴 아래 긴 상처가 벌어졌다. 무릎과 허벅지는 도살당한 돼지처럼 덜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뻐끔거리고 닫히고 다시 벌어지기를 반복하는 항문 입 보지 구멍들 그 모든 입들로 그는 더듬거렸다. 그는 말해야 했다. 감사하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고생하신다고 안녕히 계시라고 그리고 다시 뵙겠다고. 그는 벌어진 상처와 피부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것을 그는 볼 수 없었지만 그를 보고 있는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아,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그는 눈을 감고 깊은 차가움으로 가라앉고 싶었다. 그는 더 깊이 더 아픈 차가움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는 빌어먹게 깊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눈꺼풀은 잘려나갔고 그는 더 이상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는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른한 고통에 매달린 채로 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신은 매달린 채로 그가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살해당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살해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병아리는 울고 있었다. 그것은 끔찍하게 오래 울고 있었다. 목이 길어지고 깃털 색이 짙어지며 점차 부풀어오르는 날개를 가지게 된, 전혀 다른 눈빛을 가지게 된 병아리. 그것은 무엇인가 전혀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소리로 변할 준비가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는 예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언제라도 다른 소리, 그가 견딜 수 없는 소리로 울게 될 것을. 그것의 집요한 울음소리는 그 전조와도 같았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것이 오게 될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울고 있었다. 전혀 다른 것이 되어가는 울음으로 울고 있었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흐느꼈다. 그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는 그저 귀엽고 부드러운 병아리를 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병아리는 더 이상 이전의 병아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것.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것의 목은 괴물처럼 길어졌고 작은 머리는 견딜 수 없이 징그러운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날개는 끔찍한 색으로 젖어 부풀어올랐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것은 병아리도 닭도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울고 있었다. 그가 견딜 수 없을 소리를 예고하며, 그것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그의 몸에서 떨어져나가 바닥을 붉게 적시는 살점들을, 화려한 붉은 피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분해되고 있었다. 그는 살해당하고 있었다. 그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의 구멍들은 보는 것을 멈추게 될까. 언제부터 그의 구멍들은 흘리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을 멈추게 될까. 그는 살해자들의 강인하고 붉은 손이 움직이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그는.

Act. 10.

제발, 제발 여기에 있게 해 줘. 정민은 은수의 어깨에 뺨을 비비며 흐느꼈다.

무례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복종.

무엇이 일어나고 있지?

아무것도.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아. 은수는 생각했다. 정민은 평범한 남자였다. 그녀가 그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그의 비굴함과 그녀의 오만함과 그의 순종과 그녀의 냉정함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가면 그들은 다시 평범해질 것이다. 그가 더 있고 싶다고 하면 그녀는 묵묵히 침구를 정리하고 그가 나가고 싶다고 하면 그녀는 다음에 보자고 인사할 것이다. 그는 지나치게 있지 않을 것이고 그녀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우울증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모호한 능력을. 그녀의 목을 관통하고 자라난 거대한 가지가 날개처럼 펄럭이며 그녀를 다른 곳으로, 그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는 것을.

그는 그녀를 선망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그의 불가능한 잉태 (망상) 속에 붙들어둠으로써 그녀가 이질적인 것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를 쓰고 무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얼룩덜룩하게 피워버려서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공간들과 더 많은 가능성들을 차지하게 되는 것을. 그는 그녀가 배우나 시인이나 유튜버나 의사가 되어서 그를 떠나버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이 자살할 수 있었다. 그는 기꺼이 추락하고 기꺼이 망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더 밝고 기쁜 곳으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녀를 우울한 행복 속에 붙들어둘 수만 있다면!

왜냐하면 그는 결코 그곳으로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안에 견고하게 자리한 불가능을 확고히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는 그녀가 유명해지고 성공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그는 그녀를 임신하고 늙고 초라한, 아주 평범한 여자로 남겨두고 싶었다. 그는 그녀가 돌이킬 수 없이 (그러나 결코 비극적일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게) 훼손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이 검고 주름져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그녀가 슬프고 어눌하고 무기력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미친 여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미친 여자는 간혹 지나치게 매혹적이니까. 그 매혹이 그녀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는 하니까. 광장, 천국, 혹은 무수한 시선들.) 그는 그녀가 행복을 맹신하는 어리석음 속에 잠기기를 바랐다. 그는 그녀를 질투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결코 그녀를 증오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그녀인 지금의 그녀를. 아직 평범한 여자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녀를. 그는 무능력하고 갈 곳 없는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다. 그녀를 평생 사랑하기 위해 그는 무엇이든 바칠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소스라쳤다. 그는 그녀가 쓰는 일기들을 필사적으로 찾아내 그녀의 앞에서 필사적으로 비웃었고 그녀의 핸드폰을 강박적으로 뒤졌으며 그녀가 아크릴 물감 세트를 사 그림을 그리려 할 때는 절망적인 초조함 속에서 그녀의 손끝을 집요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성형 수술을 고민할 때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다룬 사진과 영상 자료들을 매일 그녀에게 전송해 보여주었으며 그녀가 무언가를 읽으려 할 때는 그녀의 옆에서 예능 프로를 최대 음량으로 틀어놓고 그녀가 책을 덮을 때까지 버텼다. 그녀가 지극히 평범한 글을 쓰고 지극히 평범한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그는 안심할 수 없었다. 평범함은 성공의 전형적인 조건이기도 했으므로. 사실 그녀는 너무나 평범했지만 정민은 도저히 안심할 수 없었다. 사실 그녀의 피부에 다른 것, 물감이나 흑연, 잉크, 혹은 다른 이의 체액이 묻는 것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매혹당한 다른 이가 그녀의 손을 잡고 검고 신비로운 눈밭으로 떠나버릴 것이 끔찍하게 두려웠다. 그는 누군가 그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누군가 그에게 매혹당하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주기를 바라는 만큼, 다른 곳이 그에게 열리기를 바라는 만큼, 그녀가 사랑받지 못하기를, 아무도 그녀에게 매혹당하지 않고 그녀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지 않고 아무런 가능성도 그녀에게 열리지 않기를, 그녀가 영원히 그의 곁에서 혼자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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