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3

영화 개봉일까지 그녀는 기다려야 했다. 시사회 초대권을 받지도 못했고 시사회 티켓을 구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신년 그리고 또 신년을 멍하니 기다렸다. 촬영팀이 오지 않을 때도 그녀는 매일 같은 자리로 출근했다. 그녀는 새벽과 아침과 점심과 저녁과 밤 내내 기다렸다.

– 난 벌을 받아야 해

– 앨리스는 자기 입을 때리면서 흐느꼈다.

– 엄마 난 벌을 받아야 해

– 언니 난 벌을 받아야 해

– 아빠 난 벌을 받아야 해

– 용서해 줘. 앨리스는 누군가 그녀를 뒤흔들어 처벌하기를 그래서 이 미칠 듯한 침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그들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껏 울고 싶었다. 그녀는 마음껏 비명을 지르고 마음껏 용서를 빌고 싶었다. 질식할 것 같은 공백을 무엇으로라도 채우고 싶었다. 마음껏 어지르고 마음껏 미쳐버리고 싶었다.

– 네가 뭘 잘못했는데

–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 냉정하고 단단한 목소리. 앨리스는 눈꺼풀을 찢어질 듯 크게 벌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직 처벌은 주어지지 않았고 그녀에게는 마음껏 울 권리가 없었기 때문에 약간 흘러넘친 눈물을 그녀는 소맷자락으로 황급히 감추었다.

–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 내가 용서를 빌게 해 줘요 그래서 용서받게 해 줘요 그래서 더는 안 슬프게 해 줘요

– 그녀의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뿐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그녀는 믿었다. (혹은 믿으려 애썼다) 앨리스는 작은 입술을 때리고 식탁에 이마를 짓찧다가 가랑이를 넓게 벌린 양의 사타구니와 눈을 마주쳤다.

– 그녀는 흠칫 놀라며 일어섰다.

– 앨리스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냉장고 속에 안치되어 있던 하얀 케이크 박스에는 하얀 빵칼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꺼내었다. 그녀는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열어젖히며 식탁으로 달려갔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아무도 없었다. 식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그녀를 베었을 때 그녀의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그녀를 베었을 때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죽어버린 양의 시선만이 앨리스를 음울하게 목도할 뿐이었다.

스크린에는 모두가 있었다. 촬영장에서 마주쳤던 모두가, 심지어는 조명이나 음향 담당 스텝들과-그들의 이름과- 지나가던 행인들-그들의 초상-까지 있었지만 그녀는 없었다.

오직 그녀만 없었다

영화관에서 나온 뒤 그녀는 악몽을 꾼 사람처럼 멍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녀는 그 영화를 결제하여 다운로드 받았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고 보았다. 수십 번을 봤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수백 번을 봤지만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없었다. 어디에도 그녀가 없었다. 그들 모두가 있었는데 영화의 장소는 버젓이 열려 있었는데 그 안에 그녀가 없었다. 헐렁하게 열려 있는 거울에, 다른 모든 사물들과 사물들의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에 그녀만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감독의 집까지 찾아갔다.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려 했을 때 유리 문은 잠겨 있었다. 번호판의 어떤 수열을 눌러야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얼어붙었다.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폐가 빠듯하게 부풀어오른다 고통스럽게 새어나가는 숨결에 묻어 있는, 단어 없는 소리

– 아

– 아 아

– 아 아

열어줘요, 라고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열어줘. 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줘, 라고. 열어줘 열어줘 열어줘 열어줘. 유리문은 투명한데 소년이 까치발을 하고 번호판을 누르고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소년을 위해 문이 열려 있는 동안에도 그녀는 들어가지 못했다. 소년이 그녀를 힐끔거렸다. 의심과 조롱, 약간의 우월감에 젖은 야릇한 미소가 그녀를 일순 바라보았다가 사라졌다. 열어줘 열어줘 열어줘 내가 안에 들어가게 해줘 내 안이 짓물러 터지기 전에 내 안을 다른 안과 마찰시키게 해줘 껍질이 까지고 말간 진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소년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채로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요리를 앞에 둔 여자아이를 말없이 응시하는 가족들. 그녀가 삼킬 때까지 전부 다 달갑게 삼킬 때까지 지켜보고 있는. 그녀에게는 언니나 남동생이 없었으므로 그녀가 모두 먹어야 했다.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는 붉은 물이 흘러나오는 스테이크를 썰었다. 떨리는 손으로, 고기의 힘줄을 곤혹스럽게 끊어내며. 그녀가 마침내 한 조각의 고기를 입속으로 쑤셔넣었을 때 그녀를 말없이 목도하고 있는 시선들. 그녀는 다 먹어야 했다. 그녀는 전부 다 기쁘게 먹어야 했다. 그것은 그녀를 위한 고기였으므로 그것은 그녀를 위한 시체 그녀를 위한 죽음 그녀를 위한 삶이었으므로. 그녀는 전부 다 삼켰다.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 내부를 묵직하고 아프게 짓누르고 있는 시체의 조각들. 여자아이는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작은 입술로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맛있어. 정말 맛있어요.

– 맛있어요! 어린 양의 고기처럼 맛있어요

소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숫자 패드를 눌렀다. #101203 연결음 수화기를 통해 새어나오는 숨소리 거칠게 이지러지는

소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문이 열릴 때까지 그녀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문이 열릴 때 마침내 고기가 그녀의 목구멍을 기쁘게 열어젖힐 때 소년은 사라질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환희와 승리의 순간은 없을 것이다. 희망은 악몽 혹은 악몽의 패러디일 뿐인데 왜냐하면 그녀는 희망에 배신당할 만한 어떠한 장미들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신은 순결만큼이나 오랜 거짓이다. 희망은 모든 간질병자들의 환희다. 여자의 예상과는 달리 소년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그러므로 이것은 꿈이다- 유리문이 유령처럼 미끄럽게 열렸고 소년은 여자의 한쪽 손을 잡아 끌었다

– 엄마

– 기다렸어요.

소년이 여자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 람세스 호텔에서도 기다리고 있었죠.

약간 키득거리며

–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았어요. 마침내 왔을 때는 뭘 눌러야할지 알 수 없었어요.

여자가 고개를 저었다. 람세스 호텔은 없었어. 람세스 호텔은 상영되지 않았어. 람세스 호텔은 전시되지 않았어. 전시되지 않은 존재는 지각되지 않은 혹은 호명되지 않은 존재만큼이나 없어

– 없어

소년이 여자의 입모양을 조심스럽게 따라했다.

– 없어

– 람세스 호텔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데 엄마가 내 옆에 있었어요. 엄마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들은 엘리베이터 내부에 있었다. 소년의 자그마한 손가락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었고 엘리베이터가 출발하였고 소년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여자는 백일몽으로부터 깨어나 천천히 두 눈을 깜빡였다. 전시되지 않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녀, 하물며 소문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그녀는, 하물며 유령도 아닌 그녀는 무엇인가. 그녀가 연기했던 암쥐의 시간들은 어디로 사라졌나.

Act. 9.

검은 숲을 뒤덮은 그림자들의 푸른 종. 늑대가 소녀의 양쪽 귀를 잡고 그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 배고파

소녀가 늑대의 황금색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굴곡에 이지러진 괴이한 그림자가 소녀의 망막에 되비쳤다. 그녀도 배가 고팠다. 늑대가 소녀의 귓바퀴를 씹으며 말했다.

– 배고파

날카로운 이빨에 소녀의 부드러운 귀가 뜯겨나갔다. 소녀는 배가 고팠다. 늑대가 소녀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 배고프니?

– 배고파

늑대가 소녀의 한쪽 다리를 길고 피투성이인 주둥이로 잡아뜯었다. 그가 잘린 종아리에서 살점을 뜯어내 소녀의 입가로 가져갔다.

– 먹을래?

늑대는 다정하고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소녀의 골반에서 다른쪽 다리를 뜯어내는 동안 소녀는 그가 건네준 소녀의 살점을 입술에 붙였다. 입맞춤을 하듯. 소녀는 그것을 물어 입 속에 집어넣었고 조심스럽게 혀로 굴려보았다.

그녀에게 붙어 있던 그녀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던 그러나 끝내 배신하던 다리의 길고 유연한 근육을 그가 질겅이며 씹고 있었다 그것이 엉망으로 찢기었다 그것이 엉망으로 흘러내렸다 그것이 엉망으로 엉망으로 더 이상 어떤 약속도 할 수 없이 쏟기고 있었다

입 속의 살점에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마치 혀처럼. 그녀의 침처럼. 아무런 맛도. 아무런 맛도.

– 맛있지

늑대가 물었고 소녀는 고개를 움츠리며 경련하였다. 소녀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직 훼손되지 않은 입술과 혀가 학습된 동작으로 움직였다.

-고맙습니다

사냥꾼이 푸른 꽃들의 덤불 바깥에서, 사물과 인간의 은밀한 뒤얽힘 바깥에서 그녀의 흔적을 찾아, 그녀의 부재가 남긴 상흔을 찾아 들어오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에게 존재가 있었던가? 존재가 그녀에게 속하지 않다면 부재의 흔적은 남지 않을 것이다.

사냥꾼은 사물과 풍경의 그림자인 그녀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소녀의 고기를 소화시키느라 늑대의 눈가가 축축해졌다. 소녀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때 그가 소녀의 손목을 부드럽게 뜯어내었다. 소녀는 손이 잘려나간 오른팔을 든 채로 멈추었다. 소녀의 볼에 부드러운 것, 그러나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이 닿았다. 늑대가 소녀의 오른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 고맙습니다.

에덴의 얼음 숲을 기어다니는 순결한 그림자들. 순수가 영원한 부재가 아니라면 순수의 흔적이 어떻게 가능한가? 소녀는 더 이상 무엇을 잃을 수 있을지 셀 수 없었다.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아무것도 갖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잃은 것인가? 그녀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는데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빼앗아가고 있었다. 소녀는 배고팠으나 배고프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소녀는 아팠으나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소녀는 울부짖고 싶었으나 눈물을 흘리고 입을 벌리는 것이 두려웠다. 그가 그녀의 눈과 혀마저 빼앗아갈까봐 두려웠다. 그에게 빼앗긴 것들을 영원히 돌려받을 수 없음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훼손되었고,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고 그녀가 무의식중에 잉태하고 있던 영원성의 불가능한 꿈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깨져버렸다. 늑대는 상처에 구애하는 가시처럼 그녀에게 살갑게 굴었다. 그가 소녀의 잘린 오른손으로 소녀의 얼굴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소리 없는 눈물을 훔쳐내었다. 가시로 뒤엉킨 상처로부터 분해된 붉은 도형들이 새어나왔다. 소녀는 그것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가시로 뒤엉킨 상처에서 착취당한 그림자들이 흘러넘쳤다. 어떤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가 되기를 염원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으니까. 소녀는 오직 그만이, 그녀를 해치고 있는 더럽고 잔인한 짐승만이 그녀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부적절하고 끔찍한 방식으로.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는 그녀의 앞에 있었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미워하는 동안, 그가 그녀를 살해하는 동안, 그녀의 깊은 곳을 찢어발기는 동안, 그는 그녀의 내부에 닿고 있었으니까. 가장 깊은 뼈를 어루만지는 장미의 가시들. 눈물을 출혈하고 있는 오른쪽 눈을 그가 깨물었다.

– 앨리스, 무섭지 않아?

– 괜찮아. 그는 내 노예니까. 나를 때리라고 내가 그에게 시켰으니까. 그는 나 없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없으니까.

– 넌 아프고 싶지 않잖아.

– 아픈 건 싫어. 그가 내 주인이 되는 건 더 싫어. 그렇지만 사라지는 것, 그가 나를 두고 가 버리는 것, 그래서 내가 그의 주인도 노예도 될 수 없는 건 더 싫어. 그건 끔찍해. 끔찍해.

– 왜 그를 사랑하는 거야?

– 그가 증오스럽기 때문이야, 앨리스. 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증오스럽고 또 사랑스럽기 때문이야. 오직 그가 증오스럽기 때문에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야.

– 넌 빌어먹을 어리광쟁이야. 그가 너를 쓰다듬을 때 그가 네게 입맞출 때 그가 네 시선에 호응할 때 그 다정함은 너를 복속시키고 파멸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 그는 네가 증오-사랑으로 망가지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네 죽음은 그에게 그리 간절한 것이 아니야.

– 알고 있어. 그는 나를 죽이기 위해 내게 다정한 거야. 나를 학대하기 위해 나를 안는 거야. 하지만 상냥함으로 인해 내가 파멸한 뒤에도 그는 상냥함을 멈추지 않을 거야.

– 그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남자아이에 불과해.

– 그래도 그는 나를 불러. 나를 알아. 나를 보고 나를 만져. 나를 때리고 나를 안아. 폭력 외에 내가 어디에 속할 수 있겠어

– 사실 넌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

– 사랑하지 않아

– 그를 그다지 미워하지 않으니까

– 미워하지 않으니까

배고파. 늑대가 발긋하게 상기된 습한 눈동자로 속삭였다. 소녀는 슬펐다. 숲의 그림자들이 은밀하게 웅성거리며 젖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비계처럼 부드러운 체온으로 늑대가 소녀의 목덜미를 핥았다. 아팠지만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늑대가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 무엇이라도 심지어는 절망과 불행이라도 그녀를 두고 멀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것들이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것들의 체온을 그것들의 다정함을 그것들의 마찰을 그것들의 삽입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늑대의 존재는 아름다웠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움은 무엇을 예고하는가

오랫동안 배가 고팠다고 늑대는 말했다. 아주 오랫동안 배가 고팠다고. 길게 벗겨진 목들을 부드럽고 즙이 많은 얼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사냥꾼이 도착할 때까지

– 난 그를 기다리고 있어. 배가 고파. 그래도 네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넌 부드럽고 따뜻한 친구야. 뱃속이 조금 따뜻해진 것 같아. 네 덕분이야. 고마워. 그런데 아직도 배가 고파. 조금 더 먹어도 되지?

– 고마워. 너도 좀 먹어.

소녀는 늑대의 길고 질긴 혀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아먹었다. 늑대의 살이 소녀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고 그녀 자신의 살이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끔찍한 슬픔을 느꼈다. 물어뜯긴 십자가로부터 흘러넘치는 우윳빛 피. 늑대는 소녀의 가슴에 주둥이를 박고 넘쳐 흐르는 붉은 우유를 삼켜대었다. 미친 듯이 펄떡거리는 심장이 소녀의 갈비뼈 사이로 살짝 드러났다. 영원히 찢어지고 있는 근막. 상처가 열렸고 열렸고 열렸다 돌이킬 수 없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열렸다. 소녀는 훼손된 눈꺼풀과 아직 훼손되지 않은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거렸다. 늑대가 그녀의 남은 가슴 깊숙이 이빨을 박아넣었을 때 그녀는 헐떡이면서 잘린 다리 옆에 손가락을 밀어넣고 수음했다. 늑대는 아이처럼 흐느끼고 있었다.

– 왜

늑대가 붉게 젖은 아가리를 달싹거리며 흐느꼈다

– 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소녀가 잘린 팔로 그를 끌어안으며 미안하다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녀가 그를 붙잡기 위해 사과하는 동안 늑대는 소녀의 찢어진 가슴으로부터 흘러넘치는 피를 삼키고 있었다. 소녀는 생각했다. 사냥꾼이 오기 전엔 도망갈 수 없을 거야. 나를 다 먹기 전에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물론, 늑대는 사냥꾼이 오기 전에도, 그녀를 다 먹기 전에도 떠나갈 수 있었다. 소녀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슬펐다. 슬펐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슬펐다. 그러나 계속해서 견딜 수밖에 없었다. 부드러운 가시들에 관통당한 선인장 같은 혀가 소녀의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소녀는 고통스러운 간지러움에 키득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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