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30

Delusion level 10.0.

아이가 골목을 걸어간다. 늙은 남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공중화장실로 끌고 간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려다가 실수로 혀를 깨물어버린다. 남자가 아이의 몸 속에 성기를 집어넣는 동안 아이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지만, 아이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늙은 남자가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때문에 아이의 비명은 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비명을 지르고, 남자가 비명을 지른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고, 아이가 비명을 지른다. 아이는 이제 무엇을 지르고 있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사정하고 난 뒤 남자는 아이의 비명에 입맞추며 아이의 입 속에 역겹고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아이는 절망적인 고통으로 기절한다. 공중화장실의 더러운 변기 칸에 아이를 남겨둔 채로, 늙은 남자는 계속 비명을 지르면서 나간다. 그는 자신의 비명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도 늙은 남자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는 걸.

구멍 투성이 얼굴에서 녹은 꽃잎이 줄줄 흘러내린다. 천사는 예수의 두개골을 뒤집어쓴 채 춤을 추고 있다. 질식해서 죽어버릴 때까지.

여기가 어딘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소녀 : 여긴 네가 아닌 모든 곳이야.

돼지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이 서로 뒤엉켜 좆을 비비고 보지를 비비고 혀를 비비고 점막을 비비며 흐느낀다.

앨리스, 그들이 부른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 그녀는 그녀의 삶을 기꺼이 끔찍한 실패로 만든다. 그것만이 그녀가 연출할 수 있는 방식이니까.

그것만이 그녀가 원하는 방식이니까.

앨리스, 그녀는 아주 끈질기게 살아 있다. 그녀의 망상에 몸을 팔면서.

창녀. 히키코모리. 미친년.

열에 맞추어 서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그란 머리의 초등학생들 앞에서 그녀는 말한다. 여러분이 어떻게 죽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지 않는지 말해 보세요. 삶을 가장 끔찍한 실패로 연출하세요. 남미의 위험한 골목들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히치하이킹하다가 강간 살해 당한 예술가처럼. 호수 너머의 사진을 찍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갔다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진가처럼. 그래요. 잘 끄덕거리는군요.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에게 화를 낼 때도 그렇게 끄덕거리는 거예요. 머리가 떨어져나갈 때까지. 목이 부러져버릴 때까지. 그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버릴 때까지.

그녀를 초빙한 담당 교사의 불편한 표정. 그녀가 무엇을 배신했는지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는 담당 교사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말하는 걸 그만둘 수가 없다. 어느날 창녀는 배에 칼이 꽂힌 채 헐떡이며 이렇게 말해요. 나는 그걸 원했어. 나는 강간당하길 원했고 나는 혼나길 원했고 나는 살해당하길 원했어. 그래서 너한테 그 역할을 준 거야. 착한 아이구나. 나를 죽여주다니!

손이 시뻘겋게 젖어 있는 살인자는 기겁을 하면서 골목 너머로 사라지고 이제 그 자리에는 창녀와 그녀의 삶, 혹은 죽음밖에는 남아 있지 않아요.

혹은, 처음부터 그녀밖에는.

Act. 25

엄마 : 더는 못 견디겠어. 못 견디겠다고.

김현경 :

엄마 : 참을 만큼 참았어. 근데도 넌 집에서 TV만 보고 있지.

김현경 :

엄마 : 어제 아랫집 아저씨가 너를 욕하더라. 욕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널 강간하겠다고 했어. 그걸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내가 내려가니까 그 사람은 집에 들어가버렸고, 처음부터 집 안에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얌전하게 굴었고,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소리지르고 있지 않은 현관문 앞에서 내가 뭘 위해 내려왔는지 계속 생각해야했어.

김현경은 엄마가 미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절한 양의 리튬을 매일 복용하지 않으면 그녀는 더 미칠 것이다. 김현경이 미친 것처럼. 그건 가족력이라고 29번 채널의 의사가 말했다.

그녀는 언제부터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를 연기하는 데 실패해버린 것일까. 김현경은 언젠가 엄마가 좋은 사람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얼마만큼의 리튬이 그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29번 채널의 의사는 검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왜냐고 물어보니 수술 때 피가 너무 많이 튀어서 하얀 가운은 버렸다고 말했다.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다고.

김현경도 알고 있었다. 그녀도 아래층에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저씨가 아니라 할머니였다. 넌 미친년이야. 너는 쓸모 없는 년이야. 넌 돼지들을 잡아먹고 말 거야. 하지만 돼지들은 너를 잡아먹지 않겠지. 넌 약물에 절여져서 끔찍하게 맛이 없고 위험하니까!

김현경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층 계단을 내려갔다. 하얀 시멘트 벽면을 손톱으로 벅벅 긁으면서. 그녀가 아랫집 현관문 앞에 왔을 때, 그때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아주 젊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학교는 잘 다니고 있냐고 물었다.

아무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다고.

김현경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황급히 도망쳤다.

김현경은 다시 29번 채널 앞에 앉아 있다. 돼지들이 그녀를 향해 인사한다. 안녕.

날 기다렸어? 김현경이 묻는다.

돼지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기다리고 있다.

한 잔의 커피, 단 한 잔의 커피면 자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김현경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는 마시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돼지들은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어린 아이의 머리통들. 산타는 웃으면서 착한 아이들이 많다고 소리친다. 산타가 미친 여자의 웃음으로 낄낄거린다. 한 잔의 커피, 단 한 잔의 커피면. 누군가 그녀를 위로한다면 그녀는 당장 죽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김현경은 기다린다. 돼지들이 늑대를 기다리는 것처럼. 29번 채널을 켜둔 채로.

그녀가 살아가는 시간 동안, 29번 채널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얼마만큼의 전기가 소비되는지 김현경은 평생 알 일이 없을 것이다. 그녀가 만들지도 못할 전기가 방사된다. 그녀가 되찾을 수도 없는 전기, 그녀가 읽어낼 수 없는 전기적 신호가. 김현경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다. 돼지들과 함께.

잠은 기다림을 대체할 수 없다. 죽음이든 삶이든, 잠은 완전히 빨아내지 못하므로. 그녀는 29번 채널과 함께 잔여물을 산다. 깨어서 꾸는 꿈 속에서 돼지들과 그녀는 목안을 가득 메운 언어의 폐기물들을 입맞춤으로 서로 교환한다. 삼키고, 피폭되고, 병든다.

그녀는 돼지들의 꿈을 꾼다. 돼지들이 그녀의 꿈을 꾸는지는 알지 못하는 채로.

제발 내 안에서 나가.

거긴 아무도 없어. 알잖아.

소년 돼지가 김현경의 머릿속에 앞발을 넣고 휘휘 저어 보인다.

김현경은 비명을 지르다가 웃기를 반복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고 엄마가 말했어. 아빠도 말했지. 하지만 뭘 기다려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어.

그건, 소녀 돼지가 수줍게 말한다. 그들도 모르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어른 돼지가 갑작스럽게 소리친다.

그래, 우리는 알고 있어. 돼지들이 합창하듯 말한다.

김현경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들의 빌어먹을 기다림이 그녀를 초월하는 것을 지켜본다. 무력하게.

알고 있다. 범죄를 저지르기에, 서로를 먹어치우고 잔혹해지기에 그들은 너무 미쳤거나 너무 신경증적이다. 김현경은 돼지들의 땀에 젖어 미끈한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돼지들은 흐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더 이상 흘릴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아니, 아니야. 그들이 그를 위해 뭘 준비하고 있는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심장과)

김현경은 29번 채널을, 돼지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 자신의 삶을 기꺼이 실패로 만들었다.

Act. 24.

A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A의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던 남자가 A의 어깨를 밀어버린다. A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넘어진다. 남자는 그녀가 계단에 종아리와 엉덩이를 부딪히고 쓸려가며 지면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천천히, 신중하게 계단을 내려온다.

남자가 추락한 그녀에게 다가온다. A는 넘어져 있고 치마는 말려 올라가 있으며 그녀의 몸 곳곳에 그녀가 볼 수도 아직 느낄 수도 없는 상처들이 깨진 유리의 거미줄 같은 금처럼 퍼져 있다.

남자는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A는 신을 올려다보는 망자처럼 그의 이마와 입가 주름, 얼굴 곳곳의 검고 붉은 반점들을 바라본다.

A가 남자의 얼굴을 완전히 알아보기도 전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기도 전에 남자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비명,

비명,

비명,

끔찍한 비명.

A는 그녀의 머리를 얼음송곳으로 깨부수는 끔찍한 격통을 느낀다. A도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벌리지만 그녀는 도저히 그녀의 비명을 들을 수가 없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 아니면 아무런 소리도 나오고 있지 않은지도 알 수 없다. 남자가 너무나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므로.

A는 남자의 축축한 눈이 마치 살인자의 눈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A는 생각한다. 남자의 눈은 희생자의 눈 같다고.

지금 그녀의 눈이 어떤지 A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비명이 어떤지 들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A는 완전히 소진되어버린 상태로, 제발 남자가 비명을 멈추고 떠나가기만을 기도한다.

남자가 희생자의 눈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가 비명을 지르고 있기 때문에, 비명, 비명 끔찍한 비명 때문에, 그리고 A의 비명은 들리지 않기 때문에, A는 마치 그녀가 남자를 계단에서 밀어 죽여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해소할 길 없는, 가장 악랄한 죄책감을 느낀다.

Act. 37.

앨리스의 모니터 화면 :

초콜릿을 녹여 만든 생리혈이 흘러내린다. 붉은 개미떼가 소녀의 발목을 타고 올라간다. 소녀의 종아리와 허벅지를 뒤덮는다.

앨리스가 비명을 지른다. 희었던 소녀의 다리가 검고 붉은 개미떼로 뒤덮여 있다. 그것은 이제 검다.

이제 붉다.

Delusion level 5.0.

의사 : 어떻게 오셨나요?

환자 : 네?

의사 : 어떻게 오셨나고요.

환자 : 버스 타고 왔어요.

의사 : 아니요. (낮은 소리로 웃으며)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고요.

환자 : 아프지 않은데요.

의사 : 네?

환자 : 아프지 않아요.

의사 : 아프지 않다뇨.

환자 : 아프지 않다고요.

의사 : 네, 어디가 아프다고요? (환자를 노려보며) 제대로 좀 해. 넌 모든 걸 망쳐놓고 있어.

환자 : 아프지 않은데요. (눈물을 흘리며) 아프지 않다고요, 선생님!

의사 : 그래, 그래, 잘 하고 있어. 당신은 마음이 아프군요.

환자 : 아프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요.

의사 : 아뇨. 당신은 아파요. 그리고 나를 위해 아파야 해요. 나를 위해 아파 줄 수 없나요?

환자 : 잘 모르겠어요.

의사 : 나를 위해 아파해 줘요. 내가 있어야 당신이 있고 당신이 있는 거예요. 우린 공모자라고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처럼, 사형수와 집행관의 관계, 교사와 학생의 관계처럼. 알겠나요?

환자 : 선생님. 난 아프지 않아요. 그럼 난 선생님을 아프게 하는 건가요?

의사 : 그래요. 어서 제대로 하라고.

환자 : 아프지 않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눈치를 보며) 아픈 것 같아요. 아, 선생님 제발 저한테 이 역할을 맡기지 말아 주세요. 모든 걸 망칠까봐 겁나요. 내 삶을 끔찍한 실패로 만드는 거, 그건 괜찮아요. 기꺼이 할 수 있어요. 늘 해오던 일이니까. 그런데 선생님 삶까지 실패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발요. 전 이제 나갈래요.

의사 : 당신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어요. 제발 날 아프게 하지 말아요. (흐느끼며) 아, 아, 아, 아, 제발 그만 해요.

환자 :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의사 : 그래,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당신은 나를 죽이고 있어요. 나를 말살시키고 있다고.

환자 : 내가 뭘 해야 하죠?

의사 : (끔찍하게 다정한 목소리로) 그래, 착하지, 응, 그래, 그래. 아프다고 해요. 그럼 내가 고쳐줄 테니.

환자 : 아프지 않은데요.

의사 : 아프다고 하라고. 제발. 그게 네 대사야.

환자 : 아파요.

의사 : 옳지.

환자 : 정확히 말하면 아팠어요. 누가 내 침대에 고깃덩이를 집어넣었거든요. 아니면 벽지 안일지도 몰라요. 화장실 배수구던가. 아무튼 고기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파리들이 집안을 새까맣게 뒤덮었는데 아무도 그걸 몰라요. 엄마도 아빠도 택배원도, 정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뭐 이상한 거 없어요? 하고 물어봤을 때 그들은 실실거리며 웃거나 날씨가 참 좋다고만 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아팠던 것 같아요. 가슴에 구멍을 파는 것처럼.

의사 : 그래요. 오, 그래. 좋아요.

환자 : 산부인과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높이 쳐들고 밑에서 피를 줄줄 흘릴 때도 그랬어요. 엉덩이와 허벅지, 발목까지 전부 피로 젖어들었고 다리 밑으로 길게 내려뜨려진 핏자국에 여름 파리들이 달라붙었는데 아무도 그것들을 대신 쫓아주지 않았어요.

의사 : 그때 아팠나요?

환자 : 아팠던 것 같아요. 이제는 아프지 않지만요.

의사 : 지금도 아프다고요?

환자 : 아파야 하나요?

의사 : 제대로 해.

환자 : 지금도 아파요.

의사 : 그래요. (애원하며) 제발 제대로 좀 해 줘요. 난 아파서 죽어버릴 것 같아요. 당신이 나를 망쳐놓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내 심장을 갈라서 보여주면 좀 나을까.

Act. 25.

김현경은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돼지들로부터, 29번 채널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여기로부터. 그녀는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세계, 즉 다른 곳을 원한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그녀는 휴대폰에 친구 혹은 애인을 사귈 수 있는 어플들을 수십 개 깐다. 어플마다 요구하는 양식대로 그녀는 귀여운, 애교 있는, 차분한, 착한, 사랑스러운 여자가 된다. 어플들은 그녀의 사진을 요구한다.

그녀는 한 번도 그녀 자신의 사진을 찍은 적이 없는데도. 사진에 얼굴이 나오지 않으면 가입할 수 없다고 어플은 설명한다. 그녀는 창문 블라인드를 올리고 햇빛이 들어오게 한 뒤, 정면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올린다. 그러자 그녀가 처음 보는 남자들의 사진이 열 장 나타난다. 그녀는 그들에 대해 동그라미, 세모, 혹은 엑스 표시를 해야 한다.

그들의 무엇에 대해?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그들의 이미지를 승인하거나 유예하거나 반려해야 하는 것일까? 그녀가 그들을 채점하고, 그들의 존재가 맞거나 틀리다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마치 그녀가 신인 것처럼?

그들은 그녀의 채점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녀는 남자들의 프로필에 전부 동그라미를 누른다.

그들은 그녀의 채점 결과를 확인하고 그녀에게 엑스를 보낸다. X, X, X, X, X, X, X, X, X, X.

그들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채점한다. 그들은 그녀의 신이 아닌데도!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미지가, 그녀의 프로필이, 그녀의 존재가 틀렸다고. 김현경은 그녀에게 다른 곳으로 갈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외모도 경쟁력인 시대에 못생긴 여자로 사는 것. 못생긴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고집스럽게 못생긴 몸에서 사는 것. 여기를 떠나지 않는 것.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은 채, 다른곳을 원하고 있다.

그녀는 불가능을 원한다.

Act. 30.

먼저 문자를 한 건 경민이었다. 한민아는 그가 보낸 메시지들에 허겁지겁 답을 했다. 그가 대화 중간에 귀엽고 애교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으므로 말 끝마다 이응 받침과 하트를 넣어가면서. 그는 달가워하며 한민아에게 이상형이 뭐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신 다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정한 사람? 경민이 문자로 키득거렸다.

한민아는 달리 할 말이 없었으므로 그렇다고 했다. 그때부터 경민은 다정한 남자를, 민아는 애교 있는 귀여운 여자를 연기했다.

한민아는 빨리 이 대화가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그가 묻는 수많은 질문들, 그녀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소하고 복잡한 질문들에 대답했다. 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일말의 궁금함도 없이. 다만 이 대화의 룰에 따르기 위해서) 오빠는? 오빠는? 오빠는? 오빠는?

그는 간혹 대답했고 집요하게 물었다. 한민아는 이모티콘들을 재빨리 찾아 상황에 맞춰 귀엽게 보내느라 끔찍하게 긴장한 상태에서 그의 잘문에 답했다. 말 끝에 히읗을 연달아 보내면서도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고 빨리 이 대화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대화를 끝낼 수 있는 건 그녀가 아니었으므로, 그녀는 그가 이 대화의 끝을 선언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운동을 하러 가야 한다고, 내일 다시 연락하자고 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절망적인 공허함을 느꼈다.

이제 그녀는 귀여워질 필요가 없었다! 내일 그가 다시 문자를 보내기 전까지, 이 스피드 게임이 다시 시작되기 전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그녀를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녀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한민아는 어째서 그는 그녀를 지적할 수 있지만, 가령 충분히 귀엽지 않다고 왜 갑자기 귀엽지 않아졌느냐고 추궁할 수 있지만, 그녀는 그를 지적할 수 없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만남의 시작과 끝이 왜 그에게 달렸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그런 것이었다. 하늘이 파랗거나 붉거나 보라색인 것처럼. 달이 둥글었다가 점점 어둠에 파먹히는 것처럼. 왜 이제 이모티콘을 안 써? 언젠가 그가 물었고 그녀는 다섯 개의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 어째서 다정한 연기를 하지 않냐고, 어째서 다정하지 않게 되었냐고 추궁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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