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31

Act. 17.

앨리스는 못생긴 여자아이였다. 교복을 입고 가지런히 앉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하면서 출석을 부르며 한명씩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던 영어 교사도 앨리스의 얼굴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며 성실하게 생겼네, 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급식실에서 반찬을 나눠주던 여자들이 앨리스를 보면서 뭐라고 말을 건넸고 앨리스는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그 말을 듣고 앨리스 주변에 있던 여학생들이 키득거리면서 앨리스의 어깨를 감싸안고 위로했다. 괜찮아. 나중에 화장하고 성형하면 예뻐질 수 있어.

그녀들의 위로에 앨리스는 끔찍한 굴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앨리스는 예뻐지지 않았다. 여배우가 된 뒤에도, 여배우가 되었다고 믿은 뒤에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이제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오직 그녀의 망상과 그녀뿐이었다.

노인은 여전히 TV를 보고 있고 돼지들은 늑대를 기다리고 있으며, 생리는 두 달째 멎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녀는 치마 밑으로 하혈을 하면서 거실을 지나다녔고 그녀 자신의 흔적을 걸레로 드문드문 훔쳐내었다. 그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첫 번째 살해의 출혈과 생리혈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그녀는 혼자 산부인과로 향했다. 산부인과에는 배가 부르거나 날씬한, 남자와 아이와 함께 앉아 있거나 혼자인 여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앨리스는 두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의사는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며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피가 멎질 않아서요.

피?

생리요.

얼마나?

두 달 동안요.

앨리스는 두 다리를 넓게 벌리기 위해 설치된 괴상한 의자-기계에 누웠고 의사는 차갑고 단단한 봉을 그녀의 항문에 집어넣어-왜냐하면 그녀는 처녀였으니까-그녀의 자궁을 둘여다보았다. 앨리스 자신은 보지 못했지만.

의사는 자궁 내벽이 너무 두꺼워졌으므로 그것을 긁어내야만 한다고 했다.

앨리스는 끔찍한 오한을 느꼈다. 대체 뭘로 긁어낸단 말인가? 쇠막대기로? 군사용 나이프로? 날카로운 쇠 끌로?

그들은 그녀의 자궁을 벗겨낼 것이다. 늘러붙은 껌을 떼내듯이 자궁 벽을 벗겨내고 긁어낼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견뎌야만 할 것이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했으니까. 자궁 유착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약품을 분사할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때 앨리스는 절망적인 메슥거림을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모든 것은 수면 중에 이루어질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의사는 웃으면서 설명했다.

그녀가 잠든 동안, 그들은 그녀의 자궁을 파헤칠 것이다! 그녀가 한 번도 들어서본 적이 없는 영역에 그들은 그녀에게 알려지지 않은 도구를 집어넣고, 그녀가 본 적이 없는 자궁의 내벽을 끄집어낼 것이다. 아, 그녀는 그녀의 자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드의 희생자 소녀가 침대에 고정되어 발버둥치는 동안 리베르탕들은 소녀의 질 속 깊은 곳에, 그러니까 자궁 내부까지 아주 감미로운 치즈를 집어넣는다. 굶주린 쥐들이 소녀의 질 속으로 파고든다. 소녀의 질구를 파먹고 자궁 안쪽으로 들어가 소녀의 자궁을 찢어발겨 먹어치운다. 아! 그러나 앨리스는 안전할 것이다. 그녀의 자궁을 파먹는 것은, 검증되고 소독된, 인증받은 장치일 테니까. 그들이 그녀의 망상을 알 수 없듯, 그녀는 그녀의 현실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Act. 30

그들은 카페에서 만났다. 경민은 한민아의 학력과 출생지, 결혼관과 자녀 계획에 대해 물었다. 한민아도 경민에게 정확하게 같은 것을 물었다. 다른 것, 그녀가 정말 묻기를 원하는 것, 예컨대 그의 어린시절과 그의 죽음들과 그의 욕망과 그의 악몽에 대해 물으면 그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웠으니까.

대화하는 동안 경민은 한민아의 얼굴을 집요하게 훑어 보았다. 눈을 처다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 생김새를 조목조목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한민아는 당장이라도 그의 눈알을 잡아 뜯어서 그가 보는 그녀가 대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그도 원하고 있을까?

그가 보는 것을 그녀가 보기 원하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보지 못하는 그녀를 그가 너무도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녀가 끔찍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토록 노골적으로, 그토록 침착하게 그녀를 훑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대답하는 동안 그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따라 미소를 지어보려 했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입꼬리가 떨려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미소는 자연스럽고 끈질겼다. 그녀는 그를 따라 웃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웃지 않는 그녀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검은 시선의 행방을 통해서. 웃어야 해. 웃어야 해. 그녀는 생각했다.

한민아는 터질 것 같은 울음으로 미소지었다. 경민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는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했고 그들은 몇 번 더 만났고 결혼했다. 민아는 그를 떠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연기하는 미소를 그가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러나 그녀는 경련과 불행 없이 웃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돌이킬 수 없이 찢어져 있다는 걸, 그래서 부드럽게 웃기 위해서 부드러움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걸, 부드러움을 연기할 때마다 그녀가 더 찢어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녀가 웃음을 연기할 수 없게 되어버리면 그녀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웃을 수 없음을 들키게 되어버리면.

Act. 37.

앨리스는 연기에 서툴렀다. 아이들은 그녀에게 은밀하게 말하고 있었다. 너 연기 잘 못해.

연기를 못하므로 그녀는 모든 배역에서 퇴출당했다. 그녀는 이제 그녀 자신밖에는 연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배우여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직접 쓰고 상상하고 만들어낸 그녀 자신들을 연기했다. <앤젤 스테이크>의 여배우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의 상대역 같은 건 없었다. 혹은,

그녀의 모든 상대역은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가 아닌 그녀들. 그녀의 연인과 그녀의 부모와 그녀의 친구와 그녀의 쥐새끼들과 그녀의 고용주와 그녀의 하인과 그녀의 적과 그녀의 상담사와 그녀의 살해자와 그녀의 피해자와 그녀의 아이와 그녀의 판사와 그녀의 집행관과 그녀의 돼지들과 그녀의 늑대 역시.

Act. 25.

돼지들, 김현경에게 인사한다. 김현경도 마주 인사한다. 그들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김현경의 엄마는 우리 귀여운 돼지, 하고 김현경의 어깨를 끌어안으면서 김현경과 돼지 사이의 치명적이고 거북스러운 유사성을 중화시키려 들지만 김현경은 엄마가 느끼는 어색함을 고스란히 알아차린다. 김현경이 특별히 뚱뚱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창시절에 그녀는 지나치게 마른 아이였다. 비쩍 마르고 안경을 쓴, 그래서 누구의 성적 대상도 되지 못하는 여자아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여자아이. 사물함이나 남는 책상 같은 사물과도 같이 교실에 정물처럼 앉아 있는 여자아이. 굳이 여자일 필요도 없는 아이. 아무도 그녀를 짝사랑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그녀의 얼굴이나 뒷모습을 집요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녀는 돼지를 닮았을지도 모른다. 늑대를, 불가능을 기다리는 자들의 하염없는 슬픔이 그녀가 사물들의 서글프고 투명한 그림자들을 한껏 흡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투명함이 그녀 안에서 몇 번이고 겹쳐져서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현경은 그들에게 인사하고 싶었다. 그들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안녕. 잘 지냈어? 내 이름을 불러줘. 내게 너희의 별명을 붙여줘. 나만의 별명을, 사랑스러운, 애정이 담긴 별명을 너희가 직접 붙여줘. 집에 같이 갈래? 나랑 같이 있어서 재밌다고 말해줘. 웃어줘. 즐거워 해줘. 반짝이는 물기 어린 눈으로 내게 말해줘.

침묵 속에서 매 순간 끓어넘치는 언어가, 목소리들이 그녀를 질식시킨다. 그녀는 괴상하게 켁켁거리고 아이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곧 무시하고 그들만의 다정한 수다에 몰두한다.

Delusion level 9.9.

용서받을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아름다워지는 여자애들이 있다. 그녀들을 두려워하거나 역겨워하거나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있다. 혹은, 무기력해서 사랑하는 쪽과 경멸받는 쪽, 그 어느 쪽도 되지 못하는 여자애가 있다.

김현경은 그런 애였다.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녀 자신의 러브 스토리를 만들 만큼 허구의 남자아이를 사랑할 힘도, 독하게, 혹은 독처럼 아름다워질 힘도 없었다.

소녀 돼지가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한다. 네가 사랑받지 못하는 건 네 머리가 기름지기 때문이야. 감아도 감아도 감미로운 기름 냄새가 가시질 않기 때문이야.

소년 돼지가 그녀의 머리를 토닥이며 말한다. 네 머리가 기름진 건 네가 너무 많은 돼지들을 잡아먹었기 때문이야.

남자 돼지가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무 많은 우리를!

오, 그러나 김현경은 그들을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꿈을 꾸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돼지들의 29번 채널은 그녀의 현실보다 더욱 현실이었다. 그건 그녀가 가진 유일한 현실이었다.

사랑받기 위해, 김현경이 아무것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고 그들이 키득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충분히 사교적이지도, 예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교적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지껄여보기도 했고 상대의 이야기에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 자신도 발견하지 못한 서툰 점들을 발견했고, 그녀를 곧장 해고했다.

남은 건 예뻐지는 일밖에 없었다. 김현경은 도수 높은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교사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연한(그래서 더 어려운) 화장을 한 뒤 등교했다. 치마도 수선해서 줄였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가 사랑에 빠질 만큼, 혹은 누군가의 인사를 먼저 받을 만큼 충분히 예쁘지 않았다. 그녀보다 훨씬 능숙한 예쁜 여자아이들이 반에는 넘칠 정도로 많았다. 예쁜 여자아이 역할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해고되었고 두 번 다시 새빨개진 눈알에 렌즈를 우겨 끼워넣고 건조한 눈알에 늘러붙은 렌즈를 손톱으로 잡아 뜯을 필요가 없었다.

Act. 37.

현대 의학에 다리를 벌리고 자궁을 파내면서, 앨리스는 돼지들의 꿈을 꾸었다. 바다로 뛰어내려 자살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하나뿐인 태양을 바라보는 돼지들의 둥근 등. 앞으로 구부러진 두툼한 목과 끝나지 않는 기다림.

Act. 30.

경민은 그가 어떻냐고 물었고 한민아는 좋다고 했다.

사실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그녀는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긍정의 오랜 습성대로 그가 좋다고 답한 것이다.

그 이후로 경민은 날마다 민아에게 연락했고 답장이 늦어지면 그녀를 재촉했다. 재촉할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답장을 곧장 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한민아는 교사의 말을 잘 듣는 여자아이처럼 그의 말에 따랐다. 그는 그녀의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그가 지도하는 대로 그를 만났고 그의 문자에 답했으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도 황급히 좋아한다고 말했고 말 잘 듣는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어딘가 끔찍이 가려웠으나 한민아는 그것이 어디인지 알지 못했다. 경민은 그게 사랑이라고 했다. 그러나 민아는 거북스럽고 역겨우며 신경질을 유발하는 그 가려움증이 사랑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영혼을 절개해서 피와 고름이 섞인 진물을 따라내고 싶을 뿐이었다.

Act. 37.

앨리스, 연단에 서 있다. 그녀를 올려다보는 학생들의 유령처럼 검은 눈들.

고등학교 때 저는 정말 착한 아이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실제로 착했다는 말이 아니라 착한 아이를 연기하는 방법밖에는 몰랐다는 말입니다. 저는 선생님들이나 애들이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게 사랑받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사람의 말을 듣는 방법을 몰랐어요. 나한테 말을 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방법도 몰랐고요.

솔직히 말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저는 적어도 글을 쓸 수는 있었어요. 학교 밖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면서 저는 고개를 끄덕일 필요가 없는 생각들의 장소를, 토성이 돌고 있어서 슬프다든가, 감사하는 게 너무 역겹다든가 하는 느낌들의 장소를 만들어줄 수 있었어요. 그건 아주 현실적이고 동시에 비현실적인 장소였죠. 글쓰기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멈추지는 못했지만 글쓰기의 장소는 실재한다는 의미에서 현실적이었어요.

남들이 숨을 쉬고 살아야만 한다고 할 때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쉬고 글쓰기의 장소에서는 숨을 멈췄어요. 아무도 대신 써주지 않는 제 역할을 쓰는 글쓰기가 제 구원이고 제 신이었습니다. 제 구원이고 제 신입니다. 저는 여덟 개의 거울들에 되비친 장미들처럼 무한한 대본들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거울들과 거울들의 이미지들과 함께 혼자 그걸 연기하죠. 그건 가슴이 찢어질 만큼 슬프고 심장을 토해낼 만큼 살아 있는 일입니다. 정신과 의사는 제게 그게 과도한 삶이라고, 그러니까 삶을 끌어내리고 은밀한 절정의 순간을 없애야만 한다고, 글쓰기와 연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고 했죠. 하지만 씨발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요.

앨리스가 발표를 끝내자 그때까지 끔찍하게 조용하던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뭐라는 거야?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비웃음.

알잖아, 앨리스.

아이들은 너를 원하지 않아. 병을 원하는 건 아주 소수의 병일 뿐이야.

비웃음. 비웃음. 비웃음. 네가 원한 게 그런 거 아니었나? 황홀한 조롱. 근데 내가 왜 마조히스트여야 돼? 나도 사람을 깨고 싶었어 더 많이 상처주고 죽이고 싶었어. 나도 똑똑해지고 싶었어. 나도 살로 만든 가면들을 마음대로 바꿔 끼고 싶었어. 잡아 뜯으면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마음대로.

의도된 몰이해로 아이들은 키득거리며 행복해하고 있다. 자, 적어도 그녀는 행복의 연료다.

TV에 반사된 노파의 얼굴이 웅얼거린다.

너는 그들의 건강함이 주는 모욕을 이용하는 것뿐이야. 네가 꺼낸 치부를 그들이 잘근잘근 씹고 물어뜯고 피투성이 입술로 네게 입맞추길 바라면서.

그녀는 너무 솔직했고 그건 실패였다. 지나친 솔직함은 발표중에 울어버리거나 웃어버리는 일과 같았다. 지나친 솔직함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그건 경범죄다. 앨리스는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솔직함은, 실패는 내가 가진 유일한 가면이니까.

나는 칭찬받고 환호받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다. 열렬한 악의를 모으는 종류의 인간도 아니고. 그저 미지근한 불쾌함. 그것뿐이다.

뭐 마지막으로 해줄 말 없나요? 교실 뒤에서 그녀의 강의를 침묵으로 지켜보던 국어 교사가 묻는다.

너희들의 실패의 감각을 소중히 여기렴. 앨리스의 가면이 반으로 뚝 떨어져나오면서 속삭인다.

선생님은 성공한 사람 아니에요? 유명한 영화에 나왔잖아요.

둥글고 투명한 안경을 쓴 여자애가 묻는다.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야. 너흰 다른 사람을 착각한 거란다. 난 유령이고 실패자야. 그래도 실패를 계속 쓰면서 실패를 연기하면서 살아 있어.

침묵. 집요하고 끈질긴.

강의용 ppt가 떠오르던 커다란 스크린에 그녀가 아닌 여배우가 등장한다. <엔젤 스테이크>다. 그건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그녀를 닮았지만 그녀가 아니다. 그들도 곧 알아차릴 것이다. 앤젤 스테이크의 씬 하나, 그녀는 몸을 잃는다.

앤젤 스테이크의 씬 하나, 그녀는 몸을 잃는다.

날씬해지려고 굶주리다가 자기 살을 뜯어 먹는 여자처럼, 그녀는 몸을 잃어가고 있다.

청소년 여자가 여자아이를 끌어안으며 아이의 귓가에 뭐라고 속삭인다.

그녀는 몸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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