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6

간혹 두 곡의 놀랄 만큼 유사한 전개를 들으면서 놀라곤 해.

딜루젼 레벨이라는 말은 Airen의 글을 훔친 헬레네 헤게만에게서 훔친 것이다. 그녀는 딜루젼 레벨이 아니라 리얼리티 레벨이라고 했지만. (그렇지만 앨리스에게는 현실 감각따위 없다.) 헬레네 헤게만. 그녀는 벌써 자기 작품으로 끝내주는 영화를 한 편 찍었다. 그녀는 천재 감독이고 천재 여배우고 천재 작가이다. SCENE 01. 정장과 드레스를 걸친 아이들이 부드러운 입술을 달싹이며 속삭인다.

– 내가 그를 희롱하는 건 그만이 나를 사랑한다고 했기 때문이야.

– 너는 네 살해자를 사랑해야 해. 타인의 살해자는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까.

– 사유파편들이 지니는 가치는 그 파편들이 근본구상에 견주어 측정될 수 없으면 없을수록 더 결정적이 된다.

– 네가 없으면 안 돼. 네가 없으면 현상의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없어. 네가 없으면 다른 곳도 없어. 네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어. 지금까지 있어왔던 모든 것을 제외하면.

두꺼운 벨벳 커튼이 조금 움직인다.

– 부활절에는 잉태하지 말고 천사같이 될지어다.

천사들은 자궁을 적출했으니까. 신의 눈동자라는 알에 들어 있을 때부터 그들은 천국처럼 하얀 이빨로 자기 자궁을 물어뜯었지.

dEluSiOn lEvel 1.0. 사실 어떤 사람은 표절에 아무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아무도 그가 표절했음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가 훔쳐온 것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조차 그의 글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적 함구증을 적시에 치료하지 못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고립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선택적 함구증의 유병률은 0.03퍼센트에서 1퍼센트이므로 천 명 중 세 명이나 열 명의 아이들은 몰아치는 소요 속에서 끔찍하게 팽창해가는 혼잣말들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녀의 유일한 세계인 노트북 앞에서 앨리스는 이렇게 썼다. 어떨 때는 속마음이 절망적으로 시끄러워서 슬펐어. 소음은, 대화는, 부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이름들은 그 자체로 슬픈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슬픈 것이었다.

DELUSION LEVEL 3.5.

전학생 A는 교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 여자아이를 보았다. A는 그녀가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일어나 출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외에 수상한 지점들.

1. 그녀가 등교할 때 아무도 그녀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2. 아무도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선생님마저도!

3. 쉬는 시간에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4. 급식을 혼자 먹었다.

5. 피구를 할 때 처음부터 금 밖에 있었다.

6. 짝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에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그려지지 않았다.

여자아이는 항상 무표정했고 조금 창백했다. A는 호기심을 느끼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쉬는 시간에 그녀에게 인사하자 여자아이는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 왜 다른 애들이랑 안 놀아?

– 선생님은 왜 너한테 아무것도 안 물어봐

– 왜 출석도 안 부르고

– 너 말할 수 있잖아

– 왜 말 안 해?

– 저기

– 너 유령이야?

A가 여자아이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비밀스럽게 물어보았다. 여자아이는 모르겠다고 작게 대답했다.

내가 보여요 내가 보여요 내가 보여요 내가 보여?

유령이 언제부터 유령이 되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으므로.

A는 섬뜩한 한기를 느꼈다. A는 곧 그녀의 존재를 거북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A는 곧 학급에 적응하였고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래서 친구들이 하는 방식대로 보고 듣고 말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하는 대로 그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A는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교했는데도 그랬다.

ACT. 2.

살인자는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살인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아주 흔해 빠진 것,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

이제 그만하자. 그만하자고 하는 걸 그만해 그리고 빌어먹을 행복 속에서 사는 거야. 그러나 행복은 불안하다. 행복은 슬프다. 행복은 불행하다. 행복은 영원한 결핍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읽히지도 않을 걸 왜 쓰는 거야?

들리지도 않는 걸 왜 말하는 거야?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버릇이니까. 영원히 교정되지 않는 버릇이라고. 들리지 않는 걸 계속해서 말하는 거. 말하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는 거. 그녀의 언어와 이미지에는 각인하는 힘이 없어서 토해내는 순간 순식간에 현상 속으로 사라지고는 했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말했다. 내장의 벌어진 구멍마다 개미 같은 말들이 가득했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은 그녀를 쫓지 않아서 그녀가 그것들을 쫓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들을 부를 소리가 그녀에게는 없어서 그녀는 빌어먹을 파열 속에서 누수되고 있어서 터져나오는 소리를 갖지 못해서 그녀는 부를 수 없었다. 끔찍한 허기 때문에 양쪽 발을 잘라 먹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쫓아갈 수도 없다.

앨리스는 간혹 행복하기를 멈추고 불행했는데 행복은 불행하지만 불행은 종종 황홀했기 때문에. 슬픔이 황홀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는 무엇을 지향하냐는 것이다. 생은 농담들이고 농담들은 역설들이므로, 본질은 재현 불가능하므로, 불행한 행복과 행복한 불행 사이에 놓인 극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길고 치렁치렁한 금색 가발을 쓴 남자아이가 TV 화면에서 명랑하게 중얼거린다.

– 글쓰기는 증상이다 삶은 증상이다 그로부터 증상을 적출하면 하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증상이 남는다. 증상 마이너스 증상 이코르 증상. 증상 마이너스 증상 이코르 제로 이코르 증상.

유리잔에 투명한 온수를 담아 마시면서 앨리스는 현관을 힐끔거렸다. 햇빛의 투명한 그림자가 그녀의 어두운 그림자를 더듬거렸다. 존재하지 않는 표정을 읽으려 애쓰는 눈 먼 아이처럼. 눈사람의 표정, 모래의 표정, 화장실 타일의 표정. 사람을 기다릴 때 그녀의 손발은 얼음처럼 차갑다. 그러나 얼어붙지는 않는다. 그녀가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계속 차갑다. 기다림을 자각할 때마다 그녀는 얼음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간다. 그러나 얼어붙지는 않는다. 그녀의 어는점은 순수한 물과는 다르므로.

증상 A-1. 사람의 긍정적 표정에는 둔감하지만 부정적 표정, 제스처, 말투는 끔찍하게 쉽게 알아차린다.

사례 a. 그녀와 있는 것이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대화자 b가 버스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는 c와 함께 눈맞춤을 나누면서 그녀로 인한 (그리 격심하지는 않은, 솔직히 별 볼일 없는) 권태를 그녀를 배제한 채 공유한다. 함께 우산을 쓰고 대화를 나누고 있던 c가 갑자기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점성이 강한 길고 집요한 침묵이 이어진다. c는 그녀를 불편해한다. 그래서 앞서 가고 있는 d의 우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녀 혼자 하나의 둥글고 완전한 우산 속에 남겨진다. c와 d가 가볍고 쉬우며 다정한 대화를 나눈다. 도저히 지워지지 않던 아스팔트 색 침묵이 그들에게는 없다.

사례 b. 그녀의 앞에서 급식을 먹던 k가 점차 불편해하는 것을 그녀는 눈치챈다. 불행히도 그녀는 k가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린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한다. 느끼하고 역겨운 침묵이 국물에 스며든다. 급식실에서 뒤늦게 k를 발견한 k의 친구가 k를 부른다. k는 화색을 띠며 일어선다. 다음에 봐. 그래. 다음에 봐. 오늘 재밌었어. 그래. 재밌었어. 친구 옆에서 재잘거리며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가는 k는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불편해지고 점점 말이 없어지고 점점 듣지 않는다. 그녀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의 점진적으로 편안해지는 얼굴, 그것만이 그녀가 읽어낼 수 있는 기쁨의 신호이다.

증상 B. 의미의 과도한 집적으로 인하여 소통이 거의 불가능함. 동어반복, 모순, 횡설수설이 빈번함. 의미들의 자폐성(은 화용언어 사용의 미숙함과 연관될 수 있다.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미숙한 언어사용자인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의미의 공백들을 촘촘하고 더럽게 배열한다. 그 속에 웅크리고 꿈틀거리는 점막의 움직임을 응시한다.

– 널 이해할 수 없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초점이 이지러진 멍한 눈. 동공과 홍채를 분리하는 선이 지우개로 문지른 것 같은 회색으로 변한. 네 언어를 네 표정을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넌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아 네 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네 존재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아닌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증상이다.

앨리스는 프린트된 증상을 들고 햇볕 아래 비추어본다. 거무튀튀한 햇살이 증상의 언어들 사이사이로 스며든다. 그녀는 글자들에 투명하고 무용한 빛이 얼룩지는 것을 무감각한 황홀로 바라본다. 그녀는 드디어 장르를 정했다. 이것은 빌어먹을 에세이다. 그런데 에세이는 시가 아니던가? 그런데 에세이는 소설이 아니던가? 에세이는 희곡이 아니던가? 에세이는 노래가 아니던가

손톱과 손톱 밑 살이 벌어진다. 살과 살 사이가 벌어진다. 입술과 입술이 벌어지고 눈알과 눈 안쪽 살이 벌어진다. 벌어진 곳 틈틈으로 피가 질질 새어나온다.

그녀의 무관심한 고문자는 떠나갔지만 그녀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를 끔찍이도 원했으니까. 여배우의 언어 주변을 그녀는 한밤의 나방처럼 맴돌았다. 속이 비어 있는 카메라의 유리 안구 주위를. 그녀는 기꺼이 광학적 기계장치의 가장 깊은 곳에 매장될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그곳에 그녀의 자리는 없었다. 죽고 난 이후에도 묻힐 자리를 찾지 못할지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허공의 검은 침실들 이외에는.

Delusion level Zero. 1000번을 새로고침해도 변하지 않는 메일함. 혹은 쌓여만 가는 거절의 메일들. 그녀에게 도착하는 메일들의 주소는 대개 no-reply로 시작하거나 끝난다

TV, 드레스를 입은 남자아이를 턱시도를 입은 여자아이가 끌어안는다. 서로를 끌어안은 둘은 우스꽝스러운 혼합물처럼 보인다. 얼굴이 유달리 발그레한 남자아이의 입술 위에서는 투명하게 보였던 새빨간 립스틱 자국이 여자아이의 창백한 입가에 유달리 진하고 집요하게 들러붙는다. 여자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남자아이의 눈꺼풀 속에 부드럽게 삽입한다. 남자아이가 신음을 흘린다. 여자아이의 손가락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깊이, 더 깊이.

– 아파?

– 응.

– 내가 미워?

– 그래.

– 얼마나?

– 네가 너무 미워. 그래서 널 떠날 수가 없어.

앨리스, TV의 남자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깔깔거리고 웃는다. 곧 미소는 순식간에 씻긴다. 웃음의 잔영을 구태여 오래 곱씹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는 혼자니까. 아니 그녀에게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던가 없었던가 구분할 수가 없다. 꿈과 이야기 속에 한 마리의 강아지가 몇 번 있었지만 현실에서도 그랬던가? TV 속에는 유언으로 안녕 잘있어 사랑했어라고 말하는 수컷 앵무새도 있었지만 그는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

TV와 노트북은 그녀에게 속해 있었지만 그 위에 비추어지는 이미지들은 아니었다. 가장 비극적인 이미지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 가장 참혹한 이미지 가장 정다운 이미지 가장 평범한 이미지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세계가 끝나도 이미지들은 계속되겠지. 앨리스는 생각한다. 간간이 몇 개의 어구들이 혼잣말로 새어 나온다.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세상은 종언하지 않으니까.

하늘에서 열대 조류의 깃털처럼 화려한 색채의 풍선들에 매달린 우주비행사들이 천천히 하강한다. 소년이 경악하며 하늘을 가리킨다. 그러나 소녀는 하늘로부터, 그 지고한 허공, 부재, 구멍으로부터 그것 자신의 텅 빔 이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성당에서 종이 울리고 성당 문으로 절망한 하객들이 쏟아져나온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신랑과 신부를 기다렸지만 신랑과 신부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그래서 그토록 격심한 혼란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소녀가 슬픔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하객들이 소년의 드레스와 소녀의 턱시도를 발견하고 절망적으로 울부짖는다. 하객들이 두 아이에게 굶주린 늑대 무리처럼 달려간다. 희망으로 오염된 끈적한 절망을 운반하며. 그들이 두 아이를 끌어안는다. 부서질 때까지 너무 깊이, 끔찍하게 깊이, 사랑처럼 깊이 끌어안는다. 그들이 아이들을 열고 찢고 삽입한다. 키스하고 강간한다. 열렬한 포옹과 애원 속에서 두 아이가 비명을 지른다. 소년의 시선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우주비행사들을 따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린다.

소년의 눈물로부터 Fade out. 우주비행사들이 그들을 향해 벌레처럼 작은 손을 흔든다.

거의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해하지도 않는다는 것. 그리고 거의 듣지 않는다는 것. 그녀는 사람들이 그녀를 듣지 않는 순간을 순식간에 알아차리지만 그 이후에도 고통스럽고 무용한 발화를 멈출 수 없다. 한 번 내장을 토해내기 시작하면 구토하는 것을 중간에 그만둘 수 없듯.

차도에서 여자가 비명을 지른다. 그녀는 반쯤 허물어진 상태에서 가드레일을 미친 듯이 긁어내린다. 무엇이든 붙잡을 것이 필요하다는 듯. 무엇이든 훼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무엇에라도 훼손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그녀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 그녀는 그것의 형태와 습관, 말투와 허공을 바라보는 눈의 색채까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를 언어를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그것을 부를 언어가 그녀의 목구멍 점막을 난도질하며 토해지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한다.

멸종한 짐승의 언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닌가?

해독될 수 없는 문자는 낙서에 불과한가?

그녀는 절박하다. 끔찍하게 절박하다. 몇 개의 틈을 건너뛴 뒤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의 어둠을 멍하니 올려다보면서 그녀는 도를 넘은 절박함이 광증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절박함은 광증이다. 사람들은 미친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미친 것을 피한다. 그저 약간의 불쾌함만을 느낄 뿐, 아무도 그녀의 절박함에 젖지 않는다. 아무도 그녀의 절박함을 돕지 않는다. 지나친 절박함은 미친 것이니까. 적절한 울음을 넘어서는 절규, 적절한 슬픔을 넘어서는 절망은 미친 것이니까. 도로 한가운데에서 가드레일을 긁어대는 여자를 아무도 돕지 않는다. 그녀는 8차선 도로에 뛰어든 야생짐승이고 귀찮고 위험하고 걸리적거리는 것, 방해물이고 치워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녀를 도로로부터 끌어내는 사람의 얼굴을 그녀가 똑바로 올려다보며 수줍어하면, 그에게 감사하다고 속삭이면 그는 절망적으로 놀랄 것이다.

절박함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찾아 헤매던 것을 그녀는 영원히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까. 왜냐하면 그건 그녀의 것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왜냐하면 그녀는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찾는 것은 없는 것이다.

절박함, 절박함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럼에도 절박함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미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더 짐승이 되는 것이다. 그녀가 찾던 것은

1. 죽음

2. 시선

3. 모순과 동어반복인 그녀 자신에 대한 찬사

4. 존재

5. 이름

6. 살

7. 혼란스럽지 않은 꿈

8. 애정

9. 키스

10. 대답

11. 살해자

12. 목소리

13. 그녀만을 위한 살인자(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순결한 처녀인)

14. 가 그녀를 강간하고 목 졸라 죽여주리라는

15. 꺼지지 않는 절망적인 희망

16. 포옹

17. 언어

의 달콤쌉싸름한 혼합물이다. 미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그녀의 것은 아닌 무엇이다.

세계는 그녀의 언어와 절망에 무관심하다. 그녀의 절박함과 광기에 무관심하다.

그런데도 그녀가 얼마나 세계를,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세계를 사랑했는지! 그녀가 얼마나 휴머니스트였는지! 그녀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녀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녀는 사람을 원했다. 그녀는 사람을 원한다. 계속해서 원할 것이다. 나무와 개와 구름과 새가 사람처럼 사랑하고 사람처럼 상처받고 사람처럼 고통스럽고 사람처럼 비명지르기를 바란다! 어미젖 속에서 산 채로 끓고 있는 어린 염소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절망스럽기를 바란다! 인간의 두개골을 관통하며 뇌수에 젖은 총알의 파편이 오르가즘을 느끼기를 바란다! 아, 세계는 범죄처럼 황홀한 농담이고 그녀는 그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녀가 사물들의 그림자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얼마나 그것들이 인간답기를 바랐던지 그것들이 죽고 싶어 하기를 그것들이 희망하기를 색종이의 하잘 것 없(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그 중성적인)는 귀퉁이가 결합을 욕망하고 있기를 얼마나 은밀하게 바랐던지! 그녀의 글은 불가능한 바람이고 불가능한 기다림이고 불가능한 애원이다. 모든 것이 사람답기를, 모든 것이 사람처럼 끔찍하고 사람처럼 아름답기를 입술이 언어로 부르터 피를 흘릴 때까지 기도하는. 그녀는 사람이 아닌 것들에서 사람을 찾았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애정결핍으로부터 비롯된 거겠지. 그녀는 사람을 갖지 못했으니까 그런데도 사람을 사랑하니까 사람이 아닌 모든 것에 잔혹하게도 인간성을 바란 거겠지.

그러나 사람들조차도 그녀가 바라는 것처럼 사람답지는 않다. 그것은 철 지난, 이미 폐기된, 터무니없이 허구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사라 케인이 말했던가, (혹은 그녀도 어디에서 빌려온 말이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게 만든 세상이여 엿이나 먹어라.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게 만든 건 세상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았는데 사랑에 빠져버린 것을. 아무도 그녀에게 원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끔찍하게 원해버린 것을.)

그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영원히 쫓아다닐 수밖에. 쭈뼛거리면서, 굴욕적인 애정으로.

사람들의 가죽을 벗기고 싶어. 그녀는 생각한다. 깨끗한 침대보를 씌워 놓은 제단 위에 죽은 양처럼 얌전히 누워 있는 사람의 잠옷을 벗기고 그의 불룩하고 연약한 배를 케이크용 흰 칼로 썰어서 그 속에 있는 무기질적인 장기들을 확인하고 싶어. 젖어서 꿀럭거리는 검붉은 장기조차도, 얇은 단편들로 썰린 두뇌조차도 서글플 정도로 낭만적으로 느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거겠지.

그녀는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치료될 수 없는 것이다.

시신과 죽음과 무기물 같은 신체의 깊은 곳까지도, 심지어는 그 차가움까지도 끔찍하게 사랑하니까.

도로 한가운데에서, 출구도 없는 그 비좁은 평행선의 간격을 미쳐서 헤집고 다니면서, 조금씩 속도를 줄이다가 그녀를 피해 지나가는 어둠 속 차량들의 (약간! 그대로 집에 도착해서 평범하게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불쾌한 표정을 읽으면서 앨리스는 그녀의 시간이 모두 그토록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방랑에 불과하였음을, 불과함을, 불과할 것임을 느꼈다. 그녀는 그녀가 이해받고 있는지,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 약하게 빛나는 흐릿한 얼굴들이 정말 그녀를 듣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마침내 그녀가 사람의 언어로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비트겐슈타인이 말한다. 사자가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고 해도 인간은 사자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언어가 아닐 것이다. 그래, 그녀는 자기모순에 불과하다니까? 사실 인간은 어디에도 없으므로 어떤 인간도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어떤 인간들은 어떤 인간들의 언어를, 심지어는 그녀가 아닌 모든 인간들의 언어를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그들은 그녀가 아닌 이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대답을 하는가? 어째서 그녀가 아닌 이들의 인간을 알아들어서 그녀를 그토록 비참하게 만드는가?), 그녀가 어떻게 절규해도 혹은 침묵해도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웃음 섞인 목소리로 농담을 던져 보아도 그들은 끝내 그녀를 알아듣지 못할 것임을, (그녀와) 인간 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함을 완전히 깨닫기까지의 시간이 그녀의 삶인 것인지도 모른다. 이드 에스트, 그녀가 들리기까지 기다리며 들리려고 절규하다가 들리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행위로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이 그녀의 시간이다. 쿼드 에라트 데몬스트란둠.

누군가 그녀를 듣지 않는 대신, 그녀를 두고 가버리는 대신, 그녀를 도로 밖으로 치워버리는 대신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물어보기라도 하면 그녀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끝없는 순수로부터(순수는 죄의 부재가 아니라 죄의식의 부재니까.) 그렇지만

듣지 않아 들리지 않아

내가 정말 인간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거야?

결국 구원은 없을 것이다. 세계는 구원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구원을 베풀지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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