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장미 7

ACT. 12.

그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었다.

그가 사랑한 것이 거짓된 죽음임을, 그가 그녀를 모방하는 데 영원히 실패했음을.

로미오가 줄리엣의 몸을 끌어안는다. 그녀의 심장은 멎었고 숨은 새어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죽었다. 그녀 입술의 채도 낮은 보랏빛과 영원한 잠으로 감긴 눈. 그의 품에서 움직이지 않는.

그는 이전에 그녀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내장이 울렁거리며 엉망으로 엉겨붙는다. 미끄덩한 심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흉곽의 빈자리에 무엇인가가 피어난다. 촘촘한 뿌리를 박고 흡반으로 숙주의 피를 빼앗는 곰팡이류의 무언가. 메슥거리며 일그러지는 입술의 선을 그는 그녀의 단정한 선에 가져다댄다.

입술이 벌어진다. 그녀의 입안은 인간의 속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라 있다.

끔찍한 역겨움과 함께, 그는 이 순간의 그녀를 견딜 수 없이 사랑함을 깨닫는다.

태양을 잃어버린 호수처럼 희어지는 살을 그는 황홀하게 내려다본다. 그의 내장들이 혐오스러운 무척추동물처럼 꿈틀거리며 이동하는 것을, 그래서 그의 목구멍을 틀어막는 것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갈망한다. 그녀의 죽음을 원한다. 그는 그녀의 자리로 점차 기울어진다. 그는 그녀의 색과 그녀의 불감과 그녀의 단단함을 맨손으로 게걸스럽게 헤집는다. 그의 손톱에 팬 그녀의 가슴이 피로 화려하게 젖어든다. 그의 손을 적신 피와 같은 색이다. 그의 손의 온도와 같은 색이다. 그러나 액체는 질투가 날 정도로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간다. 그는 그녀의 차가움을 그녀의 창백함을 그녀의 죽음을 원한다. 원할수록 그는 비참해진다.

– 줄리엣. 나도 네가 있는 곳에 있고 싶어. 같이 가자고 약속했잖아. 너무 예뻐, 자기야. 나도 자기처럼 예뻐지고 싶어. 나 섰어. (흐느낀다.) 해도 되지? (줄리엣의 붉은 벨벳 드레스를 들어올린다. 창백하고 앙상한 그녀의 다리를 보고 황홀한 비명을 지른다. 그녀에게 삽입한다. 가련하게 몸을 떨며 사정한 뒤 몸을 일으키며) 이건 이상해. 자기야. 넌 죽었는데 말이야. 아이는 네가 아니라 내게 필요한 거잖아? 너를 닮은 아이 말이야. 내가 너를 닮게 만들어줄 아이 말이야. 그건 내 뱃속에서 자라야 하는데. 이런 건 이상한 짓이야. (구역질하며 절규한다. 구역질한다. 절규한다.)

절망으로 허우적거리며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가 늘 상비하는 독약병을 통째로 그의 입 속에 집어넣는다. 유리병을 치아 뼈로 으깬다. 날카로운 조각들이 그의 내부에서 으스러진다. 목구멍과 여린 입 안의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앞으로 허물어진 그가 그녀의 얼굴을 간절하게 어루만지며 그녀의 이마와 볼, 입과 콧등, 목, 쇄골 부분에 정신없이 입을 맞춘다. 갈증으로 죽어가는 짐승이 물에 키스하듯이.

로미오의 몸이 줄리엣의 위에서 축 늘어진다.

줄리엣이 눈을 뜬다. 그녀가 로미오를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로미오의 시체가 바닥에 고꾸라진다. 그녀는 (연인의 갈증 때문에) 헤집어지고 찢어진 상처들에서 천천히 피와 아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엉망으로 찢긴 입술로 미소 짓는다. 실패자의 시체를 바라보며 20분간 운다. (미소는 지우지 않은 채로. 그건 그녀의 첫사랑이 준 마지막 선물이니까.)

그녀는 그녀의 죽음과 함께 강간당한 붉은 드레스를 벗은 뒤 로미오의 옷까지 벗긴다. 토사물과 침이 희게 말라붙어 있는 그의 턱을 붉은 드레스 천으로 부드럽게 닦아내려 한다. 말라서 잘 닦이지 않자 천 위에 침을 뱉어 적신 뒤 다시 닦는다. 그녀는 보석세공사의 섬세함으로 죽은 연인의 얼굴을 눈처럼, 혹은 죽음처럼 순결한 것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바닥에 늘어져 있는 그의 손등으로, 그 가죽으로 정액이 말라붙어 있는 그녀의 아래도 닦아낸다. 잘 닦이지 않자 그의 손가락과 손등을 그녀 자신의 입 속에 넣고 정성스럽게 핥아 적신 뒤 그것으로 다시 그녀의 성기와 허벅지를 닦아낸다.

ACT. 1.

이렇게 살아 있을 수도 있는 거다. 질투와 결핍이 나날이 황홀해지는 것을 앨리스는 느낀다. 적어도 그것은 그녀에게 속해 있으니까. 불가능은 그녀의 것이다. 내가 쓰는 것, 내가 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그것들이 여기를 갖지 못했더라도. 그것들이 불가능하더라도.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것들이 비밀스럽고 혐오스러운 짝사랑이라도.

미친 것을 다듬고 다듬고 다듬고 다듬는다. 구멍 투성이의 이파리가 선명한 혈관들이 그로테스크하게 돋아난 두툼한 혀를 내민다. 그녀의 어긋남은 사자의 언어와 같은 광기이다. 그녀는 인간들에게 있어 격렬한 끔찍함도 날카로운 매혹도 주지 못하는 더러운 야생동물이다. 로드킬 직전의.

이렇게도 살아 있을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변태적인 갈망도 점차 무뎌지겠지. 결핍의 절박함이 허공의 온도에 동화되어 미지근해지면 해갈되지 않는 뜨거움 때문에 우는 일도 점점 줄어들겠지. Aye, Delusion level 9.7. 언제쯤 예술활동증명을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촬영을 했다는 것을, 그녀가 직접 쓴 암쥐의 대본들을 매일 카메라 앞에서 읽었다는 것을, 그녀가 여배우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녀의 얼굴만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캡처하여 원본 영상과 함께 제출하면 될 것이다.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 그녀의 존재 체취 그림자의 흔적 일부라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 있으면 그녀는 있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녀는 존재하는 것이다.

있다면, 그래. 눈썹뼈나 입술산이나 턱끝이나 목주름의 단편이라도, 그 깨진 조각이라도 있다면. 그녀는 그것들을 절실하게 찾으며 영화를 돌려본다. 그런데 그녀는 알고 있다. 그녀가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곳에 그녀의 얼굴이 없으리라는 것을. 그녀의 판단은 대체로 정확한데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 자신의 부재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영화를 수백 번 돌려보았으므로 그곳에 그녀의 단편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그것 역시 알고 있다. 실명하고 난 뒤에도 그녀는 불가능의 검은 시야로 계속해서 그것을 돌려볼 것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Aye, 결국에는 도로에서 울부짖는 미친 여자만 계속될 것이다. 로드킬 당하기 직전의 짐승이. 이해받지 못한. 이해할 수 없음의 모멸적인 불쾌함만이.

아이가 머릿속에서 중얼거린 무수한 말들을 아무도 듣지 못했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는 말이었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Aye. 희망 없음. 절망 없음. 끔찍함 없음. 죽음 없음. 증언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음. 죽은 사람들 없음. 죽은 짐승들 없음. 로드킬도 없음.

이곳은 천국이다!

이곳은 천국이다. 앨리스는 작게 경악한다. 죽음도 질병도 저주도 질투도 광기도 순결도 고통도 없으므로, 이곳은 천국이다. 빌어먹을 투명한 구멍, 그녀는 천국이다. 그녀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모든 정동들 울음들 혼잣말들 자폐적인 생각들 비등하는 외침들 모두 하얗게 표백되어, 이곳에는 없다.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어디에도 없다.

천국이다. Aye, 그녀의 구멍들 하나하나마다 천국이다. 천국 아님을 게걸스럽게 갈망하는 천국들이 무력하게 벌어졌다가 닫히기를 반복한다. Delusion level ZERO. 그녀가 사자(혹은 물고기)의 말을 그만두기까지 얼마나 더?

이곳에 없는 그 모든 것을 어째서 그녀는 이토록 끔찍하게 느끼는 것일까. 마치 그녀라는 인간이 실재하는 것처럼! 마치 그녀의 언어가 실재하는 것처럼! 마치 그녀의 연기가 그녀의 갈망이 그녀의 글이 그녀의 영화가 실재하는 것처럼! 씨발 그런데 그건 없는 거야.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씨발 그건 없는 거라고. 그러나 그녀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그녀를 이해하지 않는데 어째서 그녀는 모두를 이해하고 마는 걸까. 좆까. 굴욕을 느끼느니 백치가 되는 게 낫지. 그러나 이해해버린 걸, 그것도 게걸스럽게 흡입한 것을 뱉어낼 수는 없다.)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든 것의 부재가 그녀를 썰어낸다. 정육점의 고기 써는 기계 속에서 그녀의 살과 뼈가 어린 짐승의 절망적인 비명을 닮은 소음과 함께 썰린다. 삶은 어찌할 수 없이 애걸하는 것과 그것의 확고부동한 불가능 사이의 간극이다. 완벽한 불가능에 도달하기까지의 빌어먹을 고문이다. 희망의 포자들조차 없는데도 어째서 그녀는 계속해서 희망하는가. 미친 여자야. 희망의 미세한 신호들조차 네 것이 아닌데도.

Act. 13.

앨리스에게는 아직 망가지지 않은 믹서기가 하나 있다. 그녀가 그 속에 하얀 털이 복슬거리는 어린 토끼를 통째로 집어넣는다.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온 긴 귀를 억지로 쑤셔넣는다. 믹서기 버튼을 누른다. 위잉거리는 고통스러운 소리.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긴다. 여자는 믹서기를 멈추고 곤죽이 된 붉은 것 위에 찢어낸 종이 조각들을 눈이나 모래를 뿌리듯이 집어넣는다. 나풀거리며 천천히 내려앉는 조각들, 클로즈업. 그녀가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한다. 그녀의 눈과 입술, 차례대로 클로즈업.

– 이건 내 대사예요.

– 봐요. 확대해줘요.

카메라가 움직인다. 검고 흰 점들이 지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미친 듯이 튀어오른다.

– 전부 찢었어요. 전부 버렸어요. 전부 갈았어요.

앨리스가 핏방울에 젖어든 양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 죽여줘요. 제발 죽여줘요.

– 인간과 대화할 수 없다면 왜 인간의 언어를 배운 걸까

인간

a. 물고기(혹은 사자)가 인간을 말하기까지 그 불가능한 시간 동안 물고기가 어찌할 수 없이 바란 것,

b. 물고기(혹은 사자)를 평생 고통스럽게 저미면서 살게 만든 것,

c. 그래서 보답받지 못할 희망의 고문을 견디게 만든 것.

물고기가 애틋한 설렘으로 말을 시작했을 때,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 인간을(그러나 인간이 아닌 것을) 말해야 했다. 말해야 한다. 말해야 할 것이다. Goodbye, goodbye, every no one.

찍히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영상 속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에게, 영상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그녀에게 매료되지도 않을 것이다.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은 결코

이해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읽힐 수도 들릴 수도 대답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기껏 구걸해낸 대답은 떨떠름한 거부의 표정 정도)

이 세상에 그녀와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혹여 그녀와 같은 것이 있더라도 만날 수는 없을 테니까.

Solution a. 클론(들)을 만들어서 그녀를 읽도록 한다.

b. 라이브카메라로 직접 그녀 자신을 촬영한다. 라이브 자살쇼를 한다.

– 폐기. 아마 발견되지 않을 것이므로.

c. 라이브카메라로 구독자를 가진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d. 직접 살인이나 방화를 한다. 교도소에서 에세이를 출판하고 출소해서 그녀의 살인이나 방화를 다루는 영화에 직접 출연한다.

– 그러나 타자의 신체와 구조물을 훼손하는 것은 그녀에게 불가능하다. 그녀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아무도 찌를 수 없음을. 누구의 깊은 곳도 헤집어놓을 수 없음을. (심지어는 그녀 자신의 내부조차도)

결론. 그녀는 오지도 않을 살인자와 그가 그녀에게 선물할(하지 않을) 그녀의 영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삼십 년 동안 다시 일어서 걷고 말하기를 기대했지만 삼십 년 동안 휠체어 위의 마비된 침묵에 갇혀 죽어가야 했던 남자처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영화는 무한하게 반복재생되고 있다. 노트북이 폭발할 때까지 그럴 것이다. 여자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응시한다.

화면 속 남자가 인공호흡을 한다. 세 구의 익사체(익사체들의 얼굴은 앨리스에게 절망적으로 낯익다. 그녀는 익사체들을 질투한다)가 그의 앞에 있다. 그가 익사체들의 입에 숨을 불어넣는다. 멎은 심장을 몇 번이고 짓누르며 되살리려 한다. 내밀한, 절박한,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숨.

숨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진다. 그것은 점차 격렬해지지만 번져 흐르지는 않는다.

Act. a.

그들 중 누구도 서로에게 프로포즈하지 않았지만 은수와 정민은 결혼했다. 은수는 그럭저럭 귀염성 있는 여자였고 정민은 온순한 남자였다. 결혼 후 3년 째 크리스마스에 은수가 집 근처 공원에서 울고 있던 어린아이를 데려왔고 그들은 그대로 아이를 길렀다.

아이는 강아지처럼 사랑스러웠다. 지나치게 울기는 했지만 울 때는 소리 없이 울었다. 정민은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저녁 7시에 퇴근했는데 그때까지 은수는 소파에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아이를 관찰했다. 그 시간은 언제나 둘뿐이었다.

아이는 유달리 둥근 검은 눈으로 은수를 빤히 관찰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 집에 가고 싶어?

– 이제 여기가 네 집이야.

은수는 집이라고 발음해본 뒤 혼자 엷게 웃었다. 아이를 처음 데려온 날은 그녀와 남편도 아이의 부모를 찾으려 부산했지만 실종 전단지가 빗물에 녹아내리는 동안 그들도 아이와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은수가 아이를 지켜보지 않을 때 아이는 종종 놀랄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했다. 은수는 아이의 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기실 아이를 전혀 훈육하지 않았다. 아이가 옷에다 그대로 변을 보는 것도 그대로 내버려둘 정도로. 그러나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만은 강박적으로 통제했다. 아이의 노래를 좋아하면서도 그랬다.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끔찍하게 아름다운 재능이었고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은수와 함께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의 공허를 견딜 필요가 없게 될 것이었다.

아이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은수는 아이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몇 번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은수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순간순간 불시에 노래를 시작하고 끝냈다. 은수는 그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그녀는 TV와 유튜브 동영상들을 통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노래가 알려진다면 아이는 순식간에 천국처럼 아늑한 이 지옥을 나갈 것이고 그녀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의 숨 막히는 적막을 홀로 견뎌야 할 것이다.

검은 눈이 은수의 눈치를 보듯 데룩거렸다. 아이가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 노래하지 마, 아가, 노래하지 마.

아이는 천사처럼 노래했다.

– 하지 마, 씨발.

은수는 혀가 뽑힌 닭의 아득한 고통으로 신음했다. 너무도 가냘프고 깊은 질투가 그녀의 목구멍에서 암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제발 하지 마.

날카로운 비명들이 훑고 간 허공의 상처 위에서 그들은 끔찍이도 긴 시간 동안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대치를 견디지 못하고 먼저 허물어진 것은 은수였다. 그녀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쭈뼛거리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젖은 눈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 미안해.

(사이)

– 미안해.

(사이)

– 미안해.

아이는 한참 동안 은수를 올려다보다가 가느다란 팔을 뻗어 은수의 긴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은수는 온기와 함께 그녀의 뺨을 적시는 아이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언제고 매끄러운 흥얼거림으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아 두려웠다. 고통스러운 공포가 은수의 가슴을 죄어왔다.

아이들은 복수하지 않는다. 안티고네가 오이디푸스에게, 눈 먼 오이디푸스가 사막의 모래에게 복수하지 않는 것처럼. 아이는 복수하지 않을 것이었다. 은수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생각했다. 그녀가 빼앗는 쪽이 아니라 빼앗기는 쪽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는 기꺼이 빼앗겼으리라! 가질 수만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빼앗기리라. 그러나 빼앗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빼앗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으며) 질투는 경악스럽기까지 한 상실감으로 그녀를 질식시킬 뿐이었다. 그것이 그녀를 게워내었고 죽을 것처럼 만들었다. 더 이상 게워낼 것이 없는데도 그랬다.

홀로 남지 않기 위해서, 자폐적인 적막을 다른 물질로 채우기 위해서 은수는 필사적으로 아이의 목을 틀어쥐어야 했다. 추잡스럽고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스스로가 그토록 비열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 모멸을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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