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의 물방울

어쩌면 너희는 다만 얼굴에 남아 있는 흉측한 얼룩을, 출생의 순간 너희의 얼굴에 깊이 배어들었던 붉은 피의 흔적을 지워내기 위해 얼굴을 견디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얼룩을, 그리고 얼굴을.

사내는 식물의 벗겨놓은 피부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종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죽어있었으나 그는 죽은 피부에 죽어가는 문자를 써넣는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음표들은 나날이 균처럼 번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표들이 지시하는 음정은 모두 같았다. 모두 하나의 음색,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E flat들. 사내는 그 소란한 목소리들이 죽음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나와 홀로 죽어가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장송곡이라고 생각했다. 사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사내만큼 외로운 사람은 없었다. 사내를 사랑하는 사람 중 사내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이제 불안조차 없는 고독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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