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11

그 뒤 밀레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냈고 그녀는 결코 답장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뒤늦게야 내가 그녀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낸 적이 없음을, 나는 분명히 그녀에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썼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도달한 적도, 그녀를 향한 적조차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밀레나의 주소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소가 공란인, 혹은 주소가 잘못된 편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계십니까? 가령 K시 K번지 K-1이라는 주소로 찾아간 우편배달부는 그 주소에 상응하는 거주공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는 당황하지요. 그는 편지가 꿈에서 배송되었을 거라는, 혹은 꿈으로 향하는 것이라는 기묘한 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던 가건물이 사라진 것이라고, 혹은 이동식의 게르가 그 골목 초입에 있다가 자리를 옮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매일 같은 동네를 돌며 편지들을 배달하지만 그 자리에 가건물 같은 것이 있었던 적은 없습니다. 마침내 그는 가장 현실적인 결론, 편지 발송인이 주소를 잘못 썼으리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고 나면 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화가 난 배달부가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비둘기들의 밥으로 던져주는 걸까요? 그게 아니라면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걸까요? 혹은, 주소가 공란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주소가 적힌 편지들만을 따로 보관하는 비밀스러운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체국에서는 그런 장소는 없다고 확언했습니다. 나는 대기번호표를 발급받은 뒤 사흘을 기다려서 데스크 창구에 도달하였고 직원은 분명하고 정중한 목소리로 그런 곳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직원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어려 보였고 그리 오랜 세월을 우체국에서 근무한 것처럼 보낸 듯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오래도록 우체국에서 근무한 자들, 그래서 편지들의 비밀스러운 행방에 접근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장소에 접근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 만약 나를 상대하는 직원이 오래도록 우체국에서 근무해온 베테랑이었더라도 나는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숙련된 거짓과 위장으로 내게 그런 장소는 없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약간의, 은밀한 눈짓 같은 것이 오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나는 그에게 준비한 수표를 건네고 그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수표를 숨겨 넣고는 내게 다시 모종의 눈짓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미칠 듯한 현기증에 시달리며 창구 밖 의자에서, 오로지 불청객들을 빨리 쫓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딱딱하고 차갑게 만들어진 길고 더러운 철제 의자 위에서 밤이 오기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의 눈짓을 착각한 것은 아닌지 고민합니다. 가령 그의 안구건조증 혹은 틱 장애로 인한 발작적인 눈가의 경련을 은밀한 신호로 착각했다면? 하지만 그에게 명확한 대답을 구하러 창구로 달려갈 수는 없습니다. 창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대기표를 발급받고 사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서 혹은 선 채로 꿋꿋하고 집요하게 버티고 있는, 편지를 혹은 편지를 부치는 방법을 잃어버린 서한 작가들은 숨이 막힐 정도로 많습니다. 은근한 것을 명확한 것으로 확인하려는 성급한 시도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추상적으로 남아 있던 모호한 가능성들을 모두 말살시켜 버리기 마련입니다. 난 내가 착각했으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느끼지만 슬픔에 온전히 잠겨들어 절망할 수도 없습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눈짓이 은근한 암시 혹은 초대인지 아니면 병적이고 사소한 발작에 불과한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끔찍한 갈증을 느끼지만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정수기 앞에 서 있는 줄은 우체국 밖까지 이어질 정도로 길며 심지어 화장실 앞의 줄은 그보다도 더 깁니다. 나는 베테랑 직원이 퇴근하기 전에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모든 일을 제대로 마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을 마시는 데는 성공하지만 화장실은 가지 못한다는 경우는 최악입니다. 반복적이고 집요한 생리현상 때문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목마름과 치명적인 현기증, 미칠 듯한 불안감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우체국에는 시계가 없으므로, 또한 나는 손목시계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측량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의 창구는 가까이 있지만 그는 나를 흘깃 바라보지도 또 다른 눈짓을 보내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그가 나를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는 창구 안쪽으로 들어가고 그의 대리자가 순식간에 그의 자리를 메웁니다. 마침내 사복을 입고 나온 중년의 사내는 다른 사람처럼 초라해 보입니다.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비밀은 미스테리하다고, 그러므로 가장 비밀스럽지 않은 장소에 비밀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말없이 걷고 나는 그의 등을 따라서 걸어갑니다.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미칠 듯 불행한 상상들을 합니다. 그는 언제든 나를 쫓아버릴 수 있습니다. 그가 나를 초대한 적이 없다고 말하며 나를 발길질하거나 내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모든 불길한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검토합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더 이상 그를 미스테리와 연결시킬 수 없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가 진실을, 편지들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눈물을 흘립니다. 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고 그는 아무런 징후도 드러내지 않은 채, 희망도 절망도 없이 계속 걸어갑니다. 나는 지나치게 오래 기다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미 날은 다시 밝아오고 있으며 우리는 밤을 통과해 걸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는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최후의 그림자처럼 긴 길을 돌아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난 끔찍한 슬픔으로 그것을 깨닫습니다. 나는 꿈 속을 헤매듯 걸었습니다. 오 밀레나, 하고 나는 적었습니다.

여왕벌을 향해 날고 죽는 수벌들의 혼례비행에서 분출되는 마지막 삶의 사치, 꽃의 광채는 성적인 사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언제나 집요하고 절망적인 사치지요. 불임의 에로티즘은 가장 아름다운 사치입니다. 나는 거울 앞에서 쓰러지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남겨진 당신은 환희를 면밀하게 관찰하는 음울의 시선으로 쓰러진 당신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남자를 쫓아가지 못하고 미스테리의 절정에 도달하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잠도 없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삶은 불면하는 꿈과 같습니다. 밀레나, 당신에게 도달하지 못한 편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도 썼습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에서 발견되는 나들이 어떠한 심연으로 추락하고 있는지 그곳을 메우는 무한한 흙이 얼마나 짙은 색으로 젖어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일을 멈출 수는 없을 겁니다, 밀레나. 편지를 쓰는 일이 독백과 같다는 것을 나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 잠겨 있는 당신이 거울 바깥의 당신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울 안의 당신은 거울 밖의 당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환원될 수 없는, 분리된 두 쌍의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침묵으로 우는 악기의 네 현을 모두 끊어버리는 것은 가장 미미한 소음입니다. 당신이 첫 번째 입술을 여는 순간 나는 당신이 나를 죽음으로부터 건져냈음을, 오직 나를 다시 죽이기 위해서 나를 깊은 물 속에서 끄집어낸 것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은, 밀레나, 오랫동안 당신의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꿈 속에서 당신은 달콤한 흰 털을 가진 암쥐였습니다. 난 당신의 우아하고 오만한, 그 사랑스러운 찍찍거림을 열렬하게 감상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밀레나, 암쥐에게 나는 요제피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난 그녀가, 그러니까 당신이 시체처럼 창백한 뼈로 중력에 침잠하는 천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쥐들이 육중한 날개를 가지고 퇴락하는 천사들과 같다는 사실을. 꿈 속에서 나는 당신의 동족이었습니다. 당신은 황홀하게 속삭였고 우리는 당신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카프카는 탐정의 충혈된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해.

음악은 아직 견뎌낼 수 있는 두려움입니다. 당신이 노래한 것이 치닿는 먼 곳을, 당신의 찍찍거림이 수줍게 가리키는 곳을 우리는 응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움의 비밀스러운 초입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당신의 선명한 노래뿐이었습니다. 음악은, 음악의 아름다움은 숭고 이전의 두려움입니다.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광채의 효과입니다. 음악은 아직, 광학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음악의 효과가, 그 파장이 우리를 부드럽게 애무하는 것을 느낍니다. 음악이 되기에, 갈기갈기 찢기며 흘러나오는 끔찍한 침묵이 되기에 우리는 아직 멀리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봅니다. 우리는, 밀레나, 당신을 듣고 있었습니다. 두려움의 표피와 참을 수 없이 슬픈 읊조림, 한탄 같은 것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런 것, 의미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눈물이 무엇을 하는가, 눈물이 무엇을 녹이고 무엇을 해체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눈물은 더러운 얼굴 털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우리의 얼굴을, 쥐의 가면을 녹입니다. 쥐의 가면 아래 있는 것은 쥐의 가면입니다. 혹은 허공입니다. 혹은 쥐가 아닌 다른 짐승들의 가면들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유명하지만 더 유명해질 수는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한 마리 암쥐의 찍찍거림으로 노래하며, 쥐들의 찍찍거림은 곧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당신의 찍찍거림은 주류적인 언어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위대한 짐승으로 칭송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속해 있습니다. 우리의 무리 바깥에서 당신은 오직 희미하게 찍찍거리는 한 마리 작고 더러운 암쥐에 불과합니다.

오, 당신이 프랑스어나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로 찍찍거린다면 도시는 당신의 울음소리로 가득 찰 것입니다. 온 짐승들이 당신의 언어를 해석하며 당신을 향해 울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찍찍거리지요. 프랑스어나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도 아닌, 가장 비천한 시궁쥐의 소리로 찍찍거리지요. 우리는 찍찍거림이 얼마나 소수적인 언어인지 알고 있습니다. 난 당신에게 하다못해 프랑스어로 찍찍거리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다른 짐승들이, 우리보다 거대한 구멍, 따라서 우리에게보다 더 많은 힘들이 합류하는 움직이는 살성의 장소들이 당신을 다른 곳으로, 더 넓고 거대한 합류지로 데려갈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오직 쥐의 언어로, 그것도 시궁창 암쥐의 언어로만 찍찍거릴 뿐입니다. 암쥐의 언어는 당신의 고향이며 두 번째의 희미하고 아득한 고향으로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처음의 고향은 당신의 몸 가장 깊은 주름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모어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첫 번째의 언어이며 그 이상 무엇도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쥐들은 쥐의 언어이며 결코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가면을 바꾸어쓸 수는 있을 것입니다. 머리뼈에 엉겨붙은 진득한 피부 위에 다른 피부를 덮어쓸 수는 있을 것입니다. 질식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럼에도 피부 밑의 피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염산으로 녹여낸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절망적인 화상은 오히려 첫 번째 피부의 고통을 더 심화시킬 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쥐들의, 절멸해가는 언어로 찍찍거리며 우리는 당신의 찍찍거림이 쥐들의 운명을 초월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당신을 듣습니다. 당신은 그토록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나의 요제피네, 나의 밀레나. 그러나 당신은 나의 것도 우리의 것도 아닙니다. 당신에게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당신을 바라본다고 해서, 당신을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편지는 단 한 통도 당신에게 닿지 못하였고 당신은 내 편지를 찢어버릴 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아니, 내 언어는 당신의 아름다운 손에 찢길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것입니다. 요제피네, 당신의 노래를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도 사랑하지만 당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노래는 멸망의, 숙명의 노래입니다. 당신은 언젠가 우리를 두고 사라질 것이며 우리는 당신을 추적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날 것입니다.

하멜른의 강은 검고 깊을 것입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우리의 지하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강의 일렁이는 수면 밑이 강과 닮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피리를 부는 사내는 강으로 뛰어드는 검고 서글픈 눈들을 볼 것입니다. 얼굴을 파고드는 진득한 어둠이 우리를 동색으로 물들일 것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암쥐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실종된 천사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계십니까? 밀레나, 돌아온 실종자들이 사라진 실종자들과 같은 이들일 수 없음을 알고 계십니까? 왜냐하면 실종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다시 발견해낸 미래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봅니다. 그 애들은 잃어버린 이름들을 영원히 기억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이미 실종 당시의 그 아이들이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돌아온 메시아들은 같은 이들입니까? 우리가 기다리던 그 후손들이 맞습니까? 그들이 서글프고 수줍은 목소리로 찍찍거릴 때야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고향에서 출발했음을 압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벙어리이며 우리는 귀 먹었습니다. 찍찍거린 것은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구원을 받아들입니다. 창녀의 연기를 하는 중년 남자의 수줍은 응낙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신은, 그가 누구의 영혼을 구원하는지 모릅니다. 실종자는 그들을 잃어버린 자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들의 부모? 연인? 신? 혹은 그들의 추억이나 미래? 육중한 흰 날개를 가진 천사들은 그들의 조상들을 새들의 눈으로, 신적인 불투명함으로 응시합니다. 우리는 천사들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음을 이미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렇게 영원을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숭고한 행위입니다. 아무도 우리의 기다림을 멈추어주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죽음의 가장 깊은 늪 속에서도 우리는 기다립니다. 우리는 죽음에 영구적으로 접근하는 무한한 궤적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를 관통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죽음을 관통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척력으로 떨어진 미세한 틈을 메우지 못합니다. 그 틈 속으로 당신의 노래가 스며듭니다. 시체처럼 늘어진 해변의 울음들이 스며듭니다. 낯선 대기에 눈이 먼 메시아들을 우리는 닭장 속에 가둡니다. 천사들은 암탉처럼 뒤뚱거리며 철망 내부를 돌아다닙니다. 그들이 낳은 거대한 달걀들을 우리는 석쇠에 구워 요리해 먹습니다. 혹은 날달걀 그대로 먹기도 합니다. 공룡의 알처럼 거대한 난자는 부드럽고 비립니다. 우리는 피의 은밀한 향기를 느낍니다.

밀레나, 당신이 편지를 받는다면! 그래서 당신이 내게 답장을 한다면. 하지만 그런 기적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소수적인 울음을 울어젖히는 쥐들의 비극을 아는 것은 쥐들뿐입니다. 나는 마치 쥐가 아닌 듯이 글을 쓰지만 결국 나의 언어 역시 쥐들의 언어라는 것을, 결코 새어나갈 수 없는 서글픈 비밀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새의 언어로 찍찍거릴 수는 없습니다. 밀레나, 왜냐하면 나는 쥐들의 시궁창에서 쥐들의 언어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머니는 찍찍거리는 울음을 가르쳐주었고 언어의 달콤하고 역겨운 살 속에서 나는 나를 키워냈기 때문입니다. 신은 외국입니다. 밀레나, 도래한 후손들은, 신들의 사자인 천사들은 사실 신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스스로 혀를 자르고 벙어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비밀은 신조차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밀봉된 비밀이 빗물에 젖어드는 것을 봅니다. 원치 않았던 숱한 비밀들이 영원히 녹아내리는 것을 봅니다. 쥐들은 부풀어오른 거대한 비밀을, 불거진 혈관과 반점과 궤양들에 가득 채운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우리는 비밀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위장은 찢겨졌고 불거져나온 눈알은 터져버렸습니다. 우리는 눈 먼 채로 아득한 심연을 헤엄칩니다. 현명한 쥐들은 허우적거리지 않고 물 속에서도 우리를 점령하는 서글픈 중력에 순응합니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깊은 곳에는 다른 세계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합니다. 물의 도시 아틀란티스에서 약속된 영웅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그들은 우리의 비밀을 널리 퍼뜨려주리라는,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비밀에 질식해가는 육중한 천사들일 필요가 없으리라는, 가벼워진 하얀 날개로 물 위 높은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중력들은 서로를 비밀스럽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궤적들은 떨어져나간 유성들의, 이미 사라진 응시들입니다.

빌어먹을 비밀들, 오, 밀레나, 우리는 비밀을 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비밀은 우리의 숙명이었고 우리는 비밀로 검게 타들어간 끔찍한 혈관들을 물어 뜯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검은 잉크가 우리의 찢겨진 혈관에서 분출되어 솟아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밤은 너무 깊었고 우리의 빛은 밤을 밝히기에는 너무나 미미하였습니다. 그래서 밤에 분수처럼 쏟아지는 검은 피를 볼 수 있었던 건 우리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출혈하는 것을, 우리의 출혈이 비밀의 검음으로 빛나는 것을 우리가 아닌 그 누구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검음은 음계처럼 전혀 다른 질적인 파동으로 빛납니다. 서로 다른 양태와 질량을 가진 무수한 갈증들이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납니다. 다만 그것은 모두 검은 빛입니다. 검음에 익숙한, 그리고 검음을 품고 있었던 쥐들의 둥근 눈이 아니면 결코 식별할 수 없는. 하지만 우리는 식별이 소유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검은 피와 서로 다른 출혈들을 소유했다는 망상조차 소유하지 못한 채, 텅 빈, 끝없이 불타는 검은 갈증 속에서 허덕입니다. 우리의 피부는 절망적으로 얇습니다. 갈증으로 말라붙은 피부는 얇은 껍데기와 같습니다. 껍데기 속에서는 검은 심장이 자랍니다. 병든 노래로 팽창하는 검은 심장으로 껍데기는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머리뼈 속에서 출혈하는 검은 심장을 보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붉음을 느낍니다. 밀레나, 쥐들에게 붉음이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붉음을 봅니다. 검은 심장은 절망적으로 붉습니다. 우리는 미쳐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눈이, 우리의 심장이, 그리고 우리의 밤이 모두 미쳐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수백 개의 색상들을 식별할 수 있는 인간인 것처럼 그렇게 붉음을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붉음은 인간의 붉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눈 먼 신의 붉음을 봅니다. 눈 먼 신의 눈꺼풀 아래에서 피어나는 붉은 꽃을 봅니다. 우리는 심장처럼 고동치는 뇌, 혹은 뇌처럼 두개골로 밀려나온 심장의 붉음을 응시합니다. 심장 역시 우리를 응시합니다. 심장은 우리의 붉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실제로 붉음은 없습니다. 붉음은 현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것들은 전부 그림자, 가장 끔찍하고 축축하며 짙은, 역겨운 고기 냄새를 풍기는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살로 만들어진 그림자, 피를 흘리는, 썩어가는 강렬한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마저도 잠식하는 산성의 유독한 피를 쏟아내는 그림자를. 오, 밀레나, 내가 본 오래된 피를 어디에도 발설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만, 그 글을 어디에도 출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글은 모두 불로 돌아갈 것입니다. 재가 되어버린 글자들을 누구도 해석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소유한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밀레나, 불이 된 언어, 타들어간 먼지들의 언어 말입니다. 공중을 떠도는, 미미하고 서글픈 먼지들. 숙련된 청소부가 아니면 알아차릴 수도 없는 그런 소음의 먼지들 말입니다. 당신이 군중들 앞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나는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언젠가 나는 당신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울의 내부에서 희미하고 우아한 미소를 짓는 당신이 아니라, 암쥐의 더러운 피부가죽을 걸치고 있는, 유일한 피부인 쥐의 가면을 뜯어낼 수 없어 쥐의 내부에서 쥐의 울음으로 유배되어 있는 당신을 말입니다. 우리가 쥐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쥐의 언어로 찍찍거리므로 쥐입니다. 밀레나, 당신은 우리의 아름답고 유명한 가수이지만 그래도 당신은 쥐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쥐입니다. 나는 당신을 듣고 있고, 심지어 당신의 가사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쥐의 모어에서 태어난 쥐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다른 것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쥐의 언어가, 텅 빈 껍데기와 같은, 하지만 투명하고 비밀스러운 맥박으로 미친 듯이 출혈하고 있는 심장을 담고 있는 쥐의 가죽과도 같은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노래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컨대 당신은 희망이나 낙관, 미래와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쥐의 찍찍거림을 들었고 당신은 쥐의 찍찍거림으로 노래했습니다.

그뿐입니다.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을 쪼아대는 독수리의 부리는 불과 같은 비밀로 붉게 번득입니다. 독수리는 더 이상 불타지 않는 심장을 맛볼 수 없습니다. 형벌을 받는 것은 사실 독수리입니다. 태양의 독수리는 벌거벗은 남자의 심장 속에 영원히 감금됩니다. 독수리의 심장은 미칠 듯이 달아오르지만 결코 불타지는 않습니다. 독수리는 불가능한 불꽃만을 계속해서 삼켜내는 것입니다. 독수리의 심장은 검게 변해버립니다. 거울의 적나라한 폭로를 눈 앞에 둔 유령처럼, 독수리의 심장은 검게 문드러집니다. 당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밀레나,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찢겨진 심장 속에 감금되어버린 독수리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수줍고 오만한 찍찍거림으로 만개하였고 우리는 당신을, 태양을 응시하면서 눈 멀었습니다. 우리의 눈은 흰빛에 검게 타들어갔고 당신이 쏟아지는 붉은 심장을, 불가능한 색채를 바라보던 우리의 심장은 검게 문드러졌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프로메테우스의 황홀한 불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의 젖가슴에 부리를 박고 갈증으로 신음하는 우리의 작은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말도 비명도 없이. 그는 비너스의 신성함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붉은 심장에 감금당한 우리를, 그가 제우스의 절벽에서 도망친 후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우리를. 그가 흘린 심장의 불완전한 흔적을 절망적으로 핥으며. 우리의 부리는 닳아서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죽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동시에, 죽음에서 피어오르는 역겨운 생명의 메아리를 느낍니다. 불사조의 흰 시체 위에서 거대한 난자는 깨어지고 있습니다. 난자의 덩어리는 물컹하고 축축합니다. 그곳은 투명한 점액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모든 몸부림이, 부리의 깨어짐과 심장의 조각남이 무해한 발작에 불과했다는 선고를, 신은 창녀의 야릇한 입술로 속삭입니다. 신은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불을 가지고 도망쳤다고,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심장을 쪼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부러진 부리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느낍니다. 그것은 가장 잔혹한 고문이었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 고문은 끝나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말은 거짓, 혹은 서글픈 위장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피투성이 그림자가 남은 절벽을 계속해서 쪼아댑니다. 깨진 부리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나가고 우리는 도래하는 공백에 대한 기다림 이외에는 그 무엇도 없이, 어린아이처럼 울먹입니다.

우리는 고갈되었음에도 무한한 반복을 멈출 수 없습니다. 역사에, 그리고 삶에 결정적인 순간은 없다는 것을, 위대함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이 찢겨 피 흘리는 그 황홀한 붉은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합니다. 마치 그것이 유일한 위대함인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순간인 것처럼 우리는 몇 번이고 그것을 되씹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씹는 것은 잘려나간 부리의 파편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씁쓸한 피일 뿐입니다.

힌두교도들은 탄트라 예배를 위해 아름다운 손을 가진 여자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수도승들은 자신의 파트너가 될 여자들을 직접 선택합니다. 손이 아름다운 여자, 얼굴이 유달리 검은 여자와 진한 땀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가부좌를 한 그들의 옆에 앉습니다. 그녀들은 수도승들의 축축한 성기를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집니다. 발기된 성기를 식물처럼 감싸쥔 손들은 피아노를 연주하듯 움직이고 수도승들은 울음을 터뜨릴 듯이 얼굴을 찡그립니다. 절정의 순간, 수도승들은 결코 사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유일한 규칙입니다. 사정을, 분출을 참으며 눈을 감은 수도승들은 순식간에 피어오르는 검고 축축한 꽃을 봅니다. 꽃의 내부에는 벌거벗은 천사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천사는 끔찍하게 붉습니다. 천사는 수도승들의 감긴 눈꺼풀을 향해 얼굴을 들고 웃어보입니다. 수도승들은 악마적인 신의 미소를 봅니다. 점액질의 미소를, 내장의 미소를 봅니다. 그들이 신과 교접하는 동안 눈꺼풀 바깥의 여자들은 손을 닦습니다. 피부가 벗겨져나갈 정도로 벅벅 닦아냅니다.

난 오랫동안 그녀들의 손들을 상상합니다. 종교적인 절정을 연주해내던 연주자의 손들을. 난 그 손들에서 벗겨져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합니다. 그리고 벗겨지지 못한 채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도승들이 신을 보는 동안 그녀들이 본 것은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녀들은 신이 미래를 잊어버린 어린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녀들은 수도승들이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밀레나, 그녀들은 모두 눈 먼 여자들입니다! 눈 먼 여자들은 눈 멀지 않은 남자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지요. 눈 감은 수도승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눈 먼 여자들은 봅니다. 눈 먼 여자들은 사정도 절정도 없이 신의 내밀한 웃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신은 그녀들에게 내장의 은밀한 주름들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신은 비열하므로, 눈 먼 그녀들의 환상이 단단히 밀봉된 봉투처럼 새어나갈 리 없는 비밀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밀레나, 당신이 나의 검은 피부로 만들어진 편지 봉투를 열어젖히는 날, 나는 모든 사유를, 실패한 언어를 불태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쥐의 언어는 처음부터 실패였기 때문입니다, 밀레나. 우리는 실패한 언어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밀레나. 하지만 우리는 오래도록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불타는 언어로 만들어진 끔찍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레나. 프로메테우스의 갈증보다 더 절망적인 독수리의 갈증, 처형자의 갈증이 우리의 내부에서 박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레나. 신의 병든 자궁 안에서 우리는 함께 자라난 쌍둥이 괴물들입니다. 신의 산도에서 밀려나왔을 때 우리는 이미 신과는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피륙을 가지고 있었고 신은 영원히 그의 언어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신은 끔찍한 침묵으로 우리를 응시했고 우리를 하수구 가장 깊은 곳에 처박았습니다. 신은 너무 많은 자식들을 낳았고 그의 자궁에서 들끓던 그 많은 괴물 아이들을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고 언어도 가르쳐주지 않고 우리를 버렸습니다. 하지만 밀레나, 당신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제피네, 당신은 우리의 이름입니다. 모든 버려진 달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요제피네, 그것은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당신이 편지를 받는다면, 오, 그래서 당신이 당신의 이름을 발견한다면, 더러워진 종이에 침잠되어 있는 우리의 언어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꿈을 꾸게 될까요? 요제피네의 꿈에서, 다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편지는 어디로도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의 편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편지들은 당신의 품이 아닌 그 어디로든 사라졌다는 것을. 편지들은 당신이 아닌 모든 곳에 도달하였습니다. 우체국의 중년 직원이 하염없이 밤을 걸으며 내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그가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은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편지가 이미 도착하였으며 당신은 영원히 편지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우체국의 중년 직원과 함께 밤을 헤맨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가정이고 상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가능한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편지들이 매장되어 있는 무덤을 찾아간 적이 없으며 그러한 무덤에 대한 비밀스럽고 불가해한 암시를 나눈 적도 없습니다. 요제피네, 당신의 노래가 사실이 아니듯 그러한 가정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노래가 사실인 것만큼 그 비밀스러운 여행은 사실일 것입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당신의 밤을 마주합니다. 적어도 우리가 같은 밤을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간혹 울겠지요. 당신은 간혹 찍찍거릴 것이고 잃어버린 어린시절에 대해 생각할 것입니다. 어린시절은 미래의 반복이라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문장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진실은 찰나에, 불가해한 미스테리로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밤의 창문 너머로 스쳐가는 기호들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해석합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밤이 내가 보낸 편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밤은 나와 무관한 것처럼 쓰여집니다. 나 없이도 밤은 그의 무한한 언어로 어둠을 흡혈하며 동시에 무수한 구멍으로 출혈할 것입니다. 나 없이도 당신은 밤을 살고 밤을 보며, 밤을 읽어낼 것입니다. 당신의 밤이 감상적이기를,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감상적이거나 행복한 밤을 원하지 않습니다. 밀레나, 나는 내가 아닌 모든 이들의 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간혹, 당신 역시 나처럼 절망적인 밤의 유령들을 마주치기를 바랍니다.

유령들은 신기루처럼 희멀겋고 축축합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령들은 너무 많은 비밀스러운 언어로 출렁이지만 그 언어는 발설되지 못한 채 그들을 끊임없는 밤의 환영으로 헤매게 합니다. 새벽에도, 그리고 낮에도, 물론 그들은 존재합니다, 밀레나. 다만 낮의 광폭한 흰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미쳐버린 수탉이 밤을 우는 순간, 그들은 고통으로 움츠리며 신음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밤이 끝나지 않았음을 봅니다. 그리고 아직 미치지 않은 수탉이 새벽을 울면,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함께 흐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침의 빛에 짓물러 졸도한 밤과 함께 그들은 지상의 그림자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미쳐버린 여자들과 미쳐버린 짐승들, 그리고 유령들뿐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유령들뿐입니다. 혹은 유령과 같은 자들뿐입니다. 유령들은 더 이상 낮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낮을 살아내야 합니다. 수탉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벽의 비정하고 집요한 회귀를 알리고 난 뒤에도 수탉들은 계속 살아갑니다. 뼈의 치밀한 성분들을 모두 배출해낸 뒤에도, 끔찍하게 거대한 알을 낳은 뒤에도, 암탉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골다골증으로 구멍이 뚫린 가련한 뼛조각으로, 당장 무너져내릴 듯 위태로운 다리로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저 유명한 미지의 거대한 분화구에서 붉은 태양은 심해에 떠오른 또 다른 태양을 마주봅니다. 그것은 실종된 천사들의 미쳐버린, 거대한 심장입니다. 근육과 피와 살로 만들어진 태양에 붉은 눈을 가진 파리들이 달겨듭니다. 그들은 산성의 햇빛에 녹아 문드러지면서도 계속해서 지하의 태양을 향해 뛰어듭니다. 태양에서 태어난 어린 구더기들은 출생과 동시에 끔찍한 불에 타들어가 죽어버립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태어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카프카의 검은 눈은 마지막 새벽을 응시하는 암쥐의 눈처럼 창백해. 탐정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르고 이상한 눈을 가진 남자의 외국어를 끝까지 들어. 탐정은 그가 잃어버린 여동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

쥐는 야릇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아이는 쥐의 눈빛이 점점 증폭해가는 것을 느끼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쥐의 눈은 하나도 한 쌍도 아니었다. 두 쌍, 혹은 세 쌍, 혹은 스무 쌍의 검은 빛들이 남자아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두려움을 닮은 초조한 슬픔을 느꼈다.

그가 실종된 여동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탐정은 생각해. 쥐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의 실종된 여동생이 뉴욕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고. 여동생은 아메리카로 가는 배를 탔지만 그 이후로 영영 소식이 끊겨 버렸다고. 여동생은 임신한 채 배에 올랐고 그녀의 가방에는 기묘하게도 단 하나의 지도밖에는 없었다고. 그 지도는 너무나 오래 전의 것이어서 지도의 지명에 대응되는 세계를 찾아 나서는 일은 무모한 일처럼 보였다고. 카프카에게서 듣지는 못했지만 탐정은 여동생을 임신시킨 이가 카프카일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으면 여동생이 그토록 급박하게,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먼 대륙으로 쫓겨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탐정은 안타깝지만 여동생을 찾을 방법은 없다고 말해. 처음에 그는 해일처럼 홀가분한 영어로 말하고 그 뒤에는 당신의 부탁을 들어 줄 수는 없다고, 영-독 사전을 뒤져 찾아낸 몇 개의 독일어 단어로 더듬더듬 말해. 탐정의 독일어 발음은 형편없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행간은 끔찍하게 길지만 카프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사무소의 문을 닫고 나가기 전에 카프카는 주저하듯이 이렇게 말해.

난 가끔 편지들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을 봅니다. 편지들에 쓰인 언어는 불처럼 뜨겁습니다. 불에 달군 쇠막대기처럼 끔찍한 언어들이 점점 내 피부 가까이 다가듭니다. 마침내 언어는 내 볼과 턱, 어깨 밑과 사타구니에 내려앉고 나는 내 새로운 피부를 열어젖히는 연약한 분홍빛의 화상을 봅니다. 화상은 순식간에 차오릅니다.그것은 오직 불타는 언어로 만들어진 피부입니다. 하지만 난 내가 쓴 것을 결코 읽을 수 없습니다.

카프카는 무척 슬프게 덧붙여. 나는 두 번 다시 내 편지를 되찾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방랑의 길로 접어들지. 탐정은 그가 본 이가 카프카라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하고 거리 어딘가에서 총을 세 발 맞아 죽을 거야. 그의 양어깨와 목덜미를 관통한 총알의 흔적을 아무도 찾을 수 없을 거야.

남자아이는 왜 그런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는 거냐고 물었다. 쥐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린시절은 미래의 반복이기 때문이야.

다음 날, 남자아이는 여자에게 엄마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여자는 알겠다고 말했고 깨진 세면대로 다가가 얼굴을 씻었다. 화장실은 구역질이 날 만큼 더러웠다. 오물이 새어나오거나 불결한 생물들이 득실거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가 짙게 배어 있었던 것이다. 욕실의 카페트는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여자는 맨발을 적시는 소름 끼치는 물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세수를 했다. 거울은 먼 눈처럼 흐릿했다. 그곳에 비치는 희미한 얼룩은 유령의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참을 수 없는 서글픔을 느꼈다. 거울 속 얼굴은 목련처럼 웃고 있었다. 헐겁게 벌어진 검은 속에서 흘러나오는 물기가 여자의 발등에 떨어졌다.

여자가 욕실에서 나오자 남자아이가 들어갔다. 문이 닫혔고 여자는 깨진 욕조에 머리를 기대고 쓰러져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찢긴 뒷머리에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붉은 꽃이 피어나고 있고 남자아이의 눈은 불투명하고 희끄무레한 막으로 덮여 있다. 그 애의 맨발은 수증기에 오래 부풀어 익사자의 것처럼 보인다. 붉고 두툼한 입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고발하듯 움찔거리고 거울 속에 비추어진 희미한 죽음이 남자아이를 응시한다. 남자아이는 그를 데리고 뒤뚱뒤뚱 기어가는 낯익은 천사를 본다. 공기를 떠도는 희미한 암시들이 가면처럼 하얀 얼굴 위에 내려앉는다.

남자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자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애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욕실로 들어간 남자아이와 욕실에서 나온 남자아이가 다른 사람이라는 불가해한 의심에 집요하게 시달렸다. 분명 그들의 얼굴은 모두 소녀처럼 희고 부드러웠으며 입술은 젖은 버찌처럼 붉었지만, 심지어는 그 애들이 입은 옷마저도 같았지만 여자는 욕실에서 나온 남자아이의 얼굴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금이 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물론 벌어짐, 틈, 금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집을 나섰다. 바깥에서 다시 본 집의 외관은 처음에 보았을 때처럼 그리 허름해보이지 않았다. 집은 판잣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엿한 주택처럼 보였다. 지붕은 푸르스름한 벽돌로 뒤덮여 있었다. 여자는 남자아이에게 무언가를 물으려 입을 열었지만 결국 그만두었다. 끔찍하게 습한 한낮이었다. 여자는 뒷목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왔어야 했다고 여자는 생각했으나 그 욕실에서 벌거벗고 싶지는 않았다. 불온하고 역겨운 암시로 가득 차 있는 공기 속의 나신은 불행한 미래를 뒤덮어 쓰게 될 것 같았다.

그들은 오래도록 걸었다. 남자아이는 처음 그녀를 끌고 집으로 찾아왔을 때와는 달리 길을 헤매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아이는 골목의 갈래마다 주저하였으며 갈래길의 왼쪽에서 홀수 단위의 길만 선택해서 건너는 알기 쉬운 규칙으로 길을 통과했다. 남자아이가 택한 규칙이 명백하게 노출되는 만큼 여자는 그것이 틀렸음을, 그들이 길을 헤매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결국 남자아이는 길목에 쭈그려 앉아 동전을 세는 눈 먼 노인에게 다가가 길을 물었다. 노인은 불투명한 막에 감싸인 눈으로 마치 남자아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노인의 입은 검고 더러웠다. 대기는 알 수 없는 암시로 축축하게 젖어들었고 노인은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길을 잃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단다. 그건 어린아이들의 망상에 불과해.

하지만, 남자아이는 길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길은 여러 개예요 할머니. 지금 이곳만 해도 세 개의 길이 갈라져 있는걸요.

그렇게 가리켜봤자 나는 볼 수 없단다. 하지만 길은 언제나 하나야. 그건 분명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길은 어디에도 없단다. 길이라는 건 허구에 불과해.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란다.

그럼, 남자아이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디로 가면 되는지라도 알려 주세요.

걸어가면 된단다, 얘야. 노인은 백치를 상대하듯 과도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네가 가려는 곳으로 걸어가면 돼.

우리가 어디로 가려는지는 아나요?

여자가 묻자 노인은 여자의 얼굴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리며 야릇하게 웃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얘야.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거나 가지 않는 일뿐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도달하거나 도달하지 않게 되겠지. 속도나 시간 같은 것은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란다. 도달하거나, 도달하지 않거나. 너희가 도달했다면 도달하게 될 것이고 도달하지 못했다면 도달하지 못하겠지. 목적지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단다. 그래, 그렇지만, 노인은 허공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그들은 오랜 대화와 더위에 지쳐 노인의 앞에 허물어지듯 앉았다. 너희가 빨리 도착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단다.

노인의 앞에는 붉은 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책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여자는 낡은 책이 순식간에 바스라져 먼지가 될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책을 펼쳐 보았다. 책은 놀랍게도 점자가 아니라 매끄럽고 빽빽한 글자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자가 읽을 수 없는 언어였다. 노인은 여자가 책을 몰래 뒤지는 것을 안다는 듯 조심히 만져 보라고 말했다. 여자는 노인이 눈 멀었다는 것은 그녀 자신의 순간적인 오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것조차도 착각일지 몰랐다.

여자는 무례하게도 언제부터 눈이 안 보였느냐고 노인에게 물었고 노인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다만 몇 년일 뿐은 아니야. 그 몇 년은 내가 지내본 중 가장 긴 시간이었지. 시간은 갈수록 끈적하게 늘어지고 있어. 지독한 점성이 내 코와 입을 틀어막고 나를 사로잡는단다, 얘야.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날수록 시간과 공간은 아득하게 넓어지는 거야.

남자아이는 여자가 펼친 책의 속살을 수놓은 불가해한 언어를 홀린 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건, 남자아이는 물었다. 무슨 책인가요?

노인은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고 남자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 정신을 차린 듯 그래요, 하고 대답했다.

그건 붉은 혹성의 책들이란다, 얘들아. 노인은 서글프게 말했다. 모두 내가 쓴 것들이지.

여자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럼 이건 붉은 혹성의 언어인가요?

그래.

하지만 당신은 우리의 언어로 말하고 있어요.

그래. 모두 맞아. 너희가 나를 신고한다면 난 언제든 우주 밖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붉은 하늘로 쫓겨날 거다. 난 오래도록 이곳의 언어를 익혔지만 이곳의 언어로 글을 쓸 수는 없었어. 게다가 이곳에 쌓아둔 책들은 전부 아주 오래 전에 쓴 글들이란다.

여자는 책 속의 글자들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더니 그걸 손으로 썼냐고 물었다.

그래. 노인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기를 쓰듯, 혹은 편지를 쓰듯 나는 손으로 글을 썼단다. 글을 쓸 때는 항상 손이 더러웠지. 손날과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검은 잉크가 묻어 있었단다. 노인은 허공을 향해 끔찍하게 앙상한 두 팔을 뻗어 손가락을 펼쳐보이며 말했다. 이제는 잉크의 흔적이 없을 거다.

햇볕에 오랜 세월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그을은 주름진 손들에, 노인의 말처럼 잉크의 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 여자는 책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는 원피스의 주머니 깊은 곳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며 남은 잔돈을 빼내었다. 노인의 손에 동전들을 쏟아내려 하자 노인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뒤로 숨기고는 하나만, 단 하나의 동전만 내거라 하고 소리쳤다. 책을 많이 사 갈거니?

아니요, 여자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우린 교도소까지 가야 해요. 이렇게 두꺼운 책들을 많이 가져갈 수는 없어요. 한 권이면 돼요.

그럼, 노인은 말했다. 동전을 하나만 주렴. 하나만, 그 이상은 안 된단다. 노인은 손바닥 안에 들어 있는 동전들을 은밀하게 문지르며 흐느끼듯 말했다. 하나만, 단 하나만.

여자는 노인의 손바닥에 동전 하나를 얹어 주고는 슬프게 물었다. 당신의 책을 사간 이들은 당신의 언어를 알고 있었나요?

노인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붉은 혹성의 생존자는 그녀 하나뿐이었으며 그녀 외에는 그 누구도 그녀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고. 그래도, 노인은 말했다. 책을 사간 사람들에게는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단다. 그들은 길의 비밀을 구매했고 나는 그들에게 내 언어를, 영원히 해독될 수 없는 끔찍한 언어를 얹어 주었지. 그것 외에 내가 뭘 더 바랄 수 있겠어?

당신은, 여자는 생각했다. 당신의 숲을 불태운 자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잊혀진 언어로 글을 쓰는 대신 미친 여자처럼 시를 중얼거릴 수도 있었을 거예요. 수천 명의 독자들을 상상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당신의 골목으로 흘러들어온 무방비한 여행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당신의 언어를 읽도록 강제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다른 언어로 짜여진 뱃가죽을 뚫고 그 낯선 창자에 당신의 글을 쑤셔넣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일 외에 당신이 또 무얼 할 수 있었겠어요? 창녀나 살인자나 노인이나 부랑자나 미친년, 불법체류자 외에 당신이 무엇일 수 있겠어요? 당신이 무엇이 될 수 있겠어요? 설령 당신이 스스로를 시인, 혹은 작가라고 믿는다 해도.

남자아이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그 애는 낡은 책들을 조심스레 피해 노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더러운 몸을 끌어안았다. 남자아이는 노인의 앙상한 어깨에 이마와 눈가를 문지르며 눈물을 닦았다.

당신은 내 엄마를 닮았어요, 하고 남자아이는 말했다.

나를 연민하는 건, 노인은 속삭였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남자아이는 노인의 어깨에 묻은 얼굴을 떼어내지 않았다. 노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장 첫 번째로 도달한 길을 따라서 가라고 말했다. 결코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단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너희는 등돌리고 있던 것들과 눈을 마주치게 될 거야. 너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응시하고 있는 짐승들의, 깨진 검은 눈동자. 너희는 너희가 가장 참담한 짐승이라는 사실을, 너희의 언어는 짐승들의 잠의 주기보다도 짧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잊고 걸어야 한단다.

당신은 벌써, 여자는 웃으며 말했다. 말한걸요.

노인은 여자를 따라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은 말 할 수 있는 것뿐이지. 말 없이 말해진 것을 너희들이 들은 것 같지는 않구나.

그들은 노인의 작고 앙상한 몸을 넘어 그녀 뒤쪽의 골목으로 향했고 머지않아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여자는 노인의 책을 챙겨 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노인은 어째서 그들에게 책을 가져가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여자는 돌아가는 길에 노인에게 들러 책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남자아이는 여자의 손을 잡고 터널에 앞서 들어서며 절대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충고하려 했으나 그만두었다. 터널에서 길을 잃는다고 해도, 남자아이와 헤어지게 된다고 해도 그녀에게 큰 상관은 없었다. 그녀는 아직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 정교한 거미줄들이 그녀를 옭아매고 그녀를 추적하며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결국, 그것들이 그녀를 끌어당기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었다.

남자아이는 터널 속에서 말 없이 걸었다. 터널은 햇빛이 들지 않아 바깥보다 훨씬 시원했다. 그들의 그림자는 터널 내부로 길게 퍼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 그들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녀의 곁에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하나의 불가해한 결절점이었다. 여자는 그녀를 스쳐가고 그녀에게 고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는 참을 수 없는 역겨움에 몸을 움츠리며 남자아이의 가느다란, 소녀 같은 뒷모습을 향해 속삭였다. 그녀는 강간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그녀는 살해당한 적이 있으며 또한 그녀가 아닌 누군가를 죽인 적이 있다고.

남자아이는 말 없이 걸었다. 여자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태연하게. 그러나 여자는 남자아이의 가느다란 등이 그녀를 듣고 있음을, 어둠에 얼룩진 흰 천으로 둘러싸인 앙상한 등이 그녀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음을 알았다.

꿈 속에서 난 나를 죽이려 해. 견고한 매듭을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나는 목을 매달고 내 눈꺼풀 위에 천천히 내려앉는 파리를 봐. 파리의 등은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금속성의 아름다운 녹색이야. 파리의 눈은 벌어진 젖은 석류처럼 붉고 나는 마비되어버린 몸으로 내 위를 기어가는 파리의 가느다랗고 여린 다리들을 둔탁하게 느껴. 난 내 눈꺼풀에 내려앉기까지 파리가 헤매었을 영원을 생각해. 내 눈꺼풀 위에서 떠도는 영원을 생각해. 영원은 달콤하게 녹아든 보석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는 살고 싶다고 느껴. 내게 도래할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삶을 가지고 싶다고. 파리의 삶, 파리의 영원, 파리의 심장을 가지고 싶다고. 나는 파리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 내 위에 내려앉아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그 가녀린 다리를 찢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해. 나는 파리를 경유하는 부드러운 시간을 입 속에 넣고 짓씹고 싶다고 생각해. 나는 일어나고 싶어. 일어나서 단단한 손가락뼈를 움직여서 파리를 움켜쥐고 싶어. 내 손 아래에서 찢겨질 듯 맥동하는 작은 심장과 날개를 느끼고 싶어. 나는 파리를 죽이고 싶어. 나의 죽음보다도 파리의 죽음을 더 바라는 순간,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음을 깨달아. 그리고 나는 눈을 뜨고 다음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 어둠 속에서, 파리는 공중에 매달린 채 절망적으로 정지된 붉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어. 파리는 날고 있지 않아. 파리는 거미줄에 매달린 새끼거미처럼 공중에 완벽하게 정지해 있어. 그것은 나의 꿈을 침범하여 염탐한 것처럼, 그래서 내가 누구의 죽음을 바라고 있는지 아는 것처럼 음험한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어. 나는 차마 그 파리를 죽이지 못해. 마비된 다리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불을 켜고 나면 파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아. 그건 내 눈꺼풀 속에서 자라나는 기묘한 얼룩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Series Navigation<< 엔젤 스테이크 10엔젤 스테이크 12 >>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