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2

몽상과 악몽의 꿈이 내게는 훨씬 직관적이며 즉물적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직관과 즉물은 환상이에요. 모든 것은 매개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꿈이나 환상과 같이 추상적인 이미지조차도 그렇죠. 여자는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난 응급실에서 살며 수혈을 하는 늙은 개에 대해 적었어요. 그건 내가 유년부터 반복해서 꾸던 집요한 악몽이었죠. 꿈 속에서 나는 붉고 축축한 피를 예고 없이 뽑히는 가엾은 개였고 동시에 그 개의 배에 날카로운 바늘을 꽂고 피를 흡혈해가는 응급실 의사의 젊고 무자비한 손이었어요. 피를 뽑아갈 때마다 개는 땅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면서 오줌을 흘렸는데도 난 아랑곳 않고 피를 뽑았으며 또 피를 뽑혔어요. 하지만 개의 삶이 언제나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매혈을 하는 대신 먹을 것과 안락하고 안전한, 늙은 삶을 보장받는다고 나는 썼어요. 검은 수컷 개들이 늙고 지친 암캐를 강간하기 위해 달겨들 때면 병원 주위를 산책하던 의사들이 발기한 개들을 발로 걷어차 쫓아 내주고는 했어요. 깨끗하고 순결한 다른 애완 개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암캐는 단 한 번도 섹스하지 않았고 당연히 임신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다행한 일이었어요. 만약 암캐가 자식들을 낳았다면 그 자식들도 피를 공급하는 공혈견이 되었을 거고 그 자식의 자식들 역시 대대로 피를 팔아넘겨 생을 이어가는 서글픈 공혈견들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암캐의 삶이 불행했던 건 아니에요, 하고 나는 썼어요. 암캐는 그녀를 갈취하는 손이었고 빼앗기는 피였으며 동시에 살아남아 그녀의 불온하고 음습한 몸 속을 떠도는 처량한 붉은 피이기도 했으니까.

반 애들은 전혀 다른 걸 썼어요. 그 애들은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혹은 가엾은 동물들을 살리는 수의사가 되겠다고, 혹은 나쁜 범죄자들을 잡아넣는 경찰이 되겠다고, 혹은 불행하고 더러운 노숙자들을 교화시키는 노숙인 보호시설의 원장이 되겠다고, 혹은 눈 먼 아이들을 돌보는 맹아원의 교사가 되겠다고 했죠. 개가 되겠다고, 그것도 늙어빠진 채 피를 팔아 연명하는 암캐가 되겠다고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건 우주인이나 여왕이 되겠다는 꿈보다도 더 불가능한 꿈이었어요.

손을 들고 발표하는 적극적인 아이들이 의사와 수녀, 목사와 엄마가 되겠다는 꿈을 발표하고 나자 선생님은 그녀의 출석부에서 무작위로 아이들의 이름을 택해 부르기 시작했죠. 쭈뼛거리며 일어난 아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난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요. 흰 병아리들이 잔뜩 나오는 영화를 찍을 거예요. 병아리들은 작고 부드럽고 귀여울 거예요. 관객들은 화면 바깥에서도 병아리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따뜻한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은 사랑에 부드럽게 달아오른 유동성의 눈동자로 사탕처럼 불거져나온 붉은 볼을 가진 여자아이에게 말했어요.

병아리는 희지 않단다. 하지만 영화 감독이 되겠다는 건 정말 멋진 꿈이야. 네 영화에 나도 출연시켜 주겠니?

여자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하지만 어떤 병아리는 희어요, 암탉이 희듯이, 하고 여자아이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고 선생님은 그 소리를 못 들었거나 혹은 못 들은 척했어요.

다른 아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고 선생님은 방금 발표를 마친 수줍은 여자아이의 영화에 출연하면 되겠다고 말했고 아이들은 어린 아이들 특유의 맥락 없는 왁자지껄한 웃음을 와아 하고 터뜨렸고 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를까봐 초조하게 기다렸죠. 만약 선생님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면 즉석에서 새로운 꿈을 지어내어야 했어요. 늙은 암캐가 되겠다는 꿈을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난 그게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그리고 선생님에게 설득할 자신이 없었어요. 선생님은 내가 그녀를 놀린다고 생각하고 화를 낼 테고 그러면 나는 내가 그녀를 모욕할 작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영원히 그녀에게 이해시킬 수 없을 테죠. 그러면 그녀는 그녀의 부드러운 분홍빛 첨예한 레이스를, 그녀의 몸 속에서 은밀하게 파동치는 주름들을 영원히 보여주지 않을 테죠.

선생님은 아이들 전부에게 발표를 시킬 작정인 것 같았어요.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얼토당토 않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도 선생님이 웃어보였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즉석에서 어설프게 생각해낸 꿈을 선생님이 냉혹하게 비난할리는 없을 테죠. 난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심장, 비대하게 차오르는 벅찬 심장을 갈무리하기 위해 헐떡거리면서, 얼굴에 화농성의 염증이 피어오르고 너덜너덜하게 터져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그 자리에서, 나의 비좁고 낡은 책상 위에서 밝혀질, 아직 나 자신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내 꿈을, 예언과도 같은 꿈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렸어요.

유달리 키가 작고 입술이 얇아서 곧 얼굴 밑으로 사라져버릴 것처럼 보이는 가무잡잡한 남자아이는 나중에 우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 애는 두툼한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우주인은 시력과 체력이 좋아야 하며 무엇보다 미국인이거나 러시아인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선생님은 그 애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마침내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불렀고 난 덜덜 떨리는 다리로 의자를 밀고 천천히, 끔찍하게 천천히 일어나서 네, 하고 속삭였어요. 선생님은 내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르고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어요. 난 결코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없는 노트를 펼치고 죽어가는 피 팔이 암캐가 아닌 다른 꿈에 대해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난 여자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지만 난 아랑곳 하지 않고 수치에 발긋하게 달아오른 머리의 벌어진 틈으로 말했어요.

난 살아 있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악몽을 꾸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육식어류의 가득 벌어진 입천장 한 구석에서 피어나는 불그죽죽한 종양처럼 더럽고 음험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면도칼처럼 지나치게 얇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언제라도 산산조각나 사방으로 튈 수 있는 팽창된 풍선 같은 여자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은 미친 듯이 웃어젖혔지만 선생님은 아주 희미한 미소만을 걸친 채 내게 말했어요.

넌 정말 늙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나.

어쩌면 잘못 들은 건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게걸스럽게 웃어대고 있었고 선생님은 끔찍하게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였으니까. 모든 언어는 내가 지어낸 것일지도 몰라요. 가끔 난 악몽과 현실을 혼동해요. 왜냐하면 악몽은 현실이며 현실은 악몽이기 때문이에요.

상담사의 흰 얼굴이 더러운 눈 먼 거울에 반사된 유령처럼 여자를 마주보았다. 상담사는 부드러운 숨결로 속삭였다. 내게는 꿈을, 악몽을 말해 주어도 괜찮아요. 이곳은 학교가 아니고 당신은 교실에서 홀로 떨고 있는 어린 아이가 아니니까.

복도는 거울처럼 반들거렸어요 난 눈 먼 아이처럼 벽을 짚고 더듬거리면서 앞으로 나갔어요. 선생님이 작문 숙제를 걷어들일 때 난 내 거짓말을 모두 들켜버리고 마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난 결국 선생님의 컴퓨터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작문 노트들 중에서 내 연하늘 빛깔 노트를 숙련된 도둑처럼 재빨리 빼 숨겼고 공혈견의 악몽이 적혀 있는 그 노트는 내 책상 속에 그대로 들어 있었죠. 그러니까 작문 과제에서 1등을 해서 상을 받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어요. 그건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었죠. 선생님은 우주인이 되겠다던 당돌한 아이 혹은 의사가 되겠다던 아이, 그게 아니면 엄마가 되어서 아이에게 젖을 주겠다던 아이에게 상을 주겠다고 했던 게 분명해요. 하지만 우연히도 선생님 앞에 있던 건 그 아이가 아니라 나였던 거죠.

복도를 지나갈 때 잿빛 비둘기 한 마리가 복도 창문에 부딪혔어요. 흔히 있는 일은 아니죠. 창문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얼룩이 남았고 난 이마에 둔통을 느꼈어요. 복도는 너무 적막했어요. 창문에 부딪혀 떨어진 새와 나 둘뿐인 것 같았어요. 나는 유령에게 교태를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타들어가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어요.

머리가 아파.

하지만 내 이마를 쓸어넘겨주는 손은 없었죠. 나조차 더 이상 내 이마를 더듬지 않았어요. 문득 난 영원히 교무실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상을 받을 아이는 내가 아니었으니까. 교무실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던 건 처음부터 내가 아니었고, 모든 것은 그다지 치명적이지도 결정적이지도 않은 서글픈 우연에 불과하므로, 내가 할 일은 오직 교실로 돌아가 담임 선생님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뿐이라고, 아니, 내가 진실을 전하기도 전에 선생님은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저지른 불가해한 실수를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죠. 얼굴이 젖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대기로 증류되는 얼굴이 시큰거리며 아파 왔어요. 누군가 내 머리를 걸레 쥐어짜듯 쥐어짜는 것처럼. 우리는 같이 사과를 잘라 먹었어요. 사과는 끔찍하게 붉었어요. 식탁 위에서 말라 비틀어져가는 그래서 음험한 붉은빛이 더욱 강해진 사과를 들고 그 애가 내게 다가왔을 때 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사과 먹고 싶니? 하고 물었죠.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우린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어요. 그 애는 내가 사과를 깎아주기를 기다렸을 거예요. 난 내가 아닌 누군가 사과를 깎아주기를 기다렸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를 대신해 사과를 깎아줄 사람이 없음을, 그래서 집 안에 사과들이 누구에게도 먹히지 못한 채 덩그라니 남아 있음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그 애는 사과를 먹고 싶다고 했고 나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내가 사과를 깎을 수밖에 없었죠. 난 작은 흰 접시를 들고 소시지나 치즈를 자를 때만 사용하던 뭉툭한 과도를 얹어 그 애의 발 밑에 내려놓았어요. 난 우선 사과를 반으로 갈랐고 반으로 가른 사과를 보면서 먼저 사과의 껍질을 깎아냈어야 했음을 멍하니 알아차렸어요. 난 사과를 반으로, 반으로, 반으로, 그리고 반으로 쪼갰어요. 과육이 피처럼 흘러내렸고 끈적거리는 단물이 손가락의 부드러운 살점 속으로 스며들었고 난 과도 손잡이를 움켜쥐고 직각으로 칼을 내리꽂았어요. 사과는 치명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어요. 아무리 쪼개도 사과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내 손바닥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난 죽을 것처럼 눈 밑이 아파서 울었어요.

여자는 가만히 앉아서 상담사의 유령처럼 흰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자 상담사는 여자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담사는 철제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 안락한 노란 색채로 꾸며진 방의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싱크대에서 전기 포트에 수돗물을 넣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전기 포트 스위치의 붉은 빛깔이 여자의 눈 한쪽 구석을 메웠다.

사과는 사각거려요, 하고 여자는 참지 못하고 속삭였다. 사과를 먹으면 이빨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아요. 너덜너덜하게 비어져나온 신경다발에 잇몸을 밀어넣는 것 같아요.

상담사는 웃으며 그래요, 하고 말했다. 상담사의 미소는 얼굴 근육과 감정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지 못한 짐승의 웃음처럼 부드러웠다. 그녀의 검고 투명한 눈, 여자는 중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내 선생님을 닮았어요. 교실로 돌아갔을 때 선생님은 내게 어서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쳤어요. 마치, 여자는 울먹이며 속삭였다. 마치,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어요. 그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었어요. 난 선생님이 실수와 착각조차 잊어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난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자리에 앉았어요. 우리 사이에 은밀한 교환이 한 순간도 없었던 것처럼. 작문노트 더미는 선생님의 컴퓨터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어요. 선생님은 나와 이름이 같지만 성은 다른 여자아이를 불러 상을 주었어요. 아이는 교단 앞에 나와서 사과처럼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가쁘게 숨을 들이쉬며 선물 포장을 뜯었어요. 포장의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글씨로 점철된 상자가 있었고 아이는 점점 더 대담해지는 작은 손으로 상자를 열었어요.

상자 안에는 흰 스티로폼에 쌓인 도자기 인형이 있었어요. 그건 흰 비둘기의 인형이었어요. 비둘기의 눈은 유약으로 반짝거리는 검은빛이었고 난 불현듯 비명을 질렀어요. 난 비둘기가 죽는 걸 봤어요창문에 이마를 부딪혀서 쓰러지는 걸 봤어요비둘기는 죽었어 틀림없이 죽었어요!

아이는 놀라서 비둘기를 떨어뜨릴 것 같았어요. 헐거워진 손에서 가련한 도자기 인형이 떨어지려는 순간 선생님이 희고 부드러운, 뼈 같은 손을 뻗어 비둘기를 잡아들었어요. 선생님은 마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무시하며, 새처럼 자유롭게, 하고 말했어요. 붉은 입술이 과숙된 과일처럼 은근하게 벌어졌어요. 날아가렴.

난 다시 소리쳤어요.

비둘기가 창문에 부딪혀 쓰러졌어요 비둘기는 창문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어요 비둘기는 죽었어요!

선생님은 내게 학교가 끝나면 교실에 남으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모든 것이 끝이었죠. 그날은 여름방학식을 하는 날이었고 아이들은 저마다 원색의 머릿가죽처럼 부드러운 천으로 감싸인 백팩을 멨고 교실을 빠져나갔죠.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텅 빈 교실에는 나뿐이었어요. 선생님, 정말이에요. 아무도 없었어요. 나뿐이었어요. 나뿐이었어. 난 여름방학 내내 그 교실에 있었어요. 선생님은 나를 잊어버렸고 여름에 매혹된 아이들은 교실을 잊었고 오직 나만 그 교실에 남아 있었어요. 교실에서 난 첫 생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방학은 언제나 생리 중이었어. 끈적하고 싱싱한 점액질의 붉고 갈빛인 피가 교실을 온통 뒤덮었어요. 역겨운 피가 자궁의 벽과 같은 교실 창문에 눅눅하게 들러붙었고 나는 피투성이인 채로, 끔찍하게 얇은 피부에서 피를 쏟으면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어요.

아이는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젖어 있었다. 나도 교실에 갇힌 적이 있어요, 하고 아이는 자랑스럽게 속삭였다. 그건 우리의 비밀이에요. 그래. 여자는 젖은 얼굴을 아이의 이마에 갖다 대며 말했다. 그래. 상담사는 여자에게 안타깝지만 상담 시간이 끝났다고 말했다.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어쩌면 치료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당신은 정말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이렇게만 계속하면 곧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의 아름다운 선생님이 있는 그런 학교로 말이에요. 선생님은 돌아올 거예요, 그렇죠?

상담사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고 곧 상담실의 불투명한 유리문 바깥으로 거대한 머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는 문을 두드렸고 상담사는 들어오세요, 하며 일어나 문을 열어 주었다. 머리 가득 잿빛의 털로 뒤덮인 쥐 경찰이 허리를 숙여 상담사에게 인사를 하고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그는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앞발로 여자의 몸을 거칠게 더듬어 몸수색을 하고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어릴 때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어요, 하고 여자는 도발적으로 중얼거렸다.

쥐는 여자의 손목을 붙들고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때 도시에는 벌거벗은 쥐들이 많았죠. 그 가엾은 새끼 쥐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고양이에게 붙들려 희롱당했어요. 고양이는 쥐의 부드러운 볼을 툭툭 건드려 보고 마치 애무를 하듯 쥐의 유륜을 장난스레 물기도 했죠. 출혈도 상처도 없이 봉긋하게 부풀어오른 보랏빛 유륜을 고양이는 거칠고 붉은 혀로 핥아내렸어요. 그러면 쥐는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리곤 했죠. 하지만 간혹, 신경계에 장애가 있기 때문인지 끝까지 기절하지 못하는 쥐도 있었어요. 그런 쥐는 죽은 듯 침묵하고 바들바들 경련하다가 돌연 깨어나 미친 듯이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고는 했죠. 그러면 고양이는 신경질적으로 쥐의 숨통을 발로 짓누르며 보석처럼 커다랗고 아름다운 눈으로 발 밑에 깔린 쥐를 관찰했어요. 쥐는 맹수의 노랗거나 파란, 투명한 눈에 질식할 듯 함몰되었어요.

쥐 경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뛰듯이 걸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고양이에게 잡힌 쥐는 가장 운이 좋은 경우예요. 갈기갈기 찢겨나간 심장이 얼마나 붉은지, 얼마나 신선하고 매혹적인 비린내를 쏟아내는지 알아요?

쥐 경찰은 경찰차 앞까지 도달한 뒤 어린 여자의 도발적인 검은 눈을 짐승의 불투명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입 조심해.

여자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외쳤다.

쥐새끼들은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려야 해. 가장 끔찍한 독약을 먹이고 내장이 녹아버리는 꼴을 봐야 한다고. 파랗고 작은 알갱이를 너희는 조심성도 없이 삼켜버리지. 그러고는 백합처럼 향기로운 흰 거품을 입에 물고는 눈구멍과 귓구멍 똥구멍 입구멍으로 타르처럼 검게 녹아내린 내장을 게워내는 거야.

비좁은 백미러로 비추어지는 조각난 두 눈의 파편, 마치 밤하늘에서 오려낸 듯 한, 여자는 눈을 치켜뜨며 중얼거렸다.

제발, 나를 감옥에 데려다 줘요. 내가 어린 쥐새끼들을 전부 잡아 찢어버리기 전에.

쥐 경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길고 단단한 수염들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였다. 배가 뒤집힌 지네의 무수한 다리들처럼. 여자는 사과하지 않았으며 쥐는 여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상담사는 창녀예요. 여자는 음험하게 속삭였다.

그년은 날 볼 때마다 붉은 입술을 젖은 과일처럼 움찔거려요. 아마 다른 환자들에게도 똑같이 굴겠죠. 개 같은 년.

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년은 내 엄마 같아. 기억나지 않는 내 엄마, 자기 음부에 문구용 가위를 꽂아 찢어버린 엄마. 음부는 이빨도 혀도 없이 빙긋 웃고 있을 테죠.

쥐는 뜬금없이 말했다. 상담사 선생님이 네 마음에 들어 다행이구나.

네. 여자는 혀가 잘린 짐승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도 날 데려다 줘요. 같은 시간에.

차 안에서의 시간은 영원처럼 길었다. 여자는 초조한 거북함을 느꼈으나 쥐 경찰은 침묵에 능숙한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쥐들도 생리를 하느냐 쥐들은 젖을 몇 개 가지고 있느냐 쥐들도 약을 하느냐 쥐들도 수학을 아느냐 쥐들은 에이즈 매개체냐 쥐들도 항문섹스를 좋아하느냐고, 칼날과 오염된 훼손 이외에는 아무런 문장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계속해서 지껄였고 쥐 경찰은 드문드문 나지막하며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래, 그래, 너희들이 그러는 만큼 그리고 그러지 않는 만큼 우리도 그렇지, 그래, 그래, 그래. 침묵, 그리고 쥐는 라디오헤드를 틀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낄낄거렸다.

쥐도 라디오헤드를 듣는군요! 난 쥐들은 모두 요제피네만 듣는 줄 알았어요.

쥐는 일그러진 슬픈 눈으로 속삭였다. 넌 정말 가엾고 불쌍한 아이야.

아니, 난 가엾지도 불쌍하지도 않아요. 가엾고 불쌍한 건 당신이죠. 왜냐하면 언어는 오직 언어에 속해 있을 뿐이니까.

쥐는 고개를 저었다. 언어는 때로 언어를 초과하지 언제나 말한 것보다 더 많은 말들이 말해지듯이.

Your face in the glass in the glass, It was just a laugh just a laugh. 여자는 부드럽게 노래를 따라불렀다. 껍질이 터진 달팽이, 점액질의 격렬한 분출, 생리 중인 악마들, 횡격막이 찢어진 채 구토하는 몽상들, It was just a laugh just a laugh.

정말 감옥에 가고 싶니? 쥐는 조용히 물었다. 아니면 다른 곳에?

여자는 달처럼 동그란 눈동자로 조각난 이차원의 검은 눈들을 마주 보았다.

다른 곳에, 영원히 다른 곳, 달보다도 다른 곳, 이름조차 모르는 곳에. 백미러가 비추지 못한 곳에서 쥐가 미소짓는 것을 여자는 느낄 수 있었다.

너나 나나 그리 다를 건 없어. 넌 여자고 난 쥐니까 우리는 아무리 연기를 해도 아무리 깊은 망상을 연출해도 살인자가 될 수 없는 거야. 네가 단단한 척추를 가진 성인 남자였다면 판사는 너를 가장 단단하고 견고하며 영원과도 같은 감옥에 보냈겠지. 어쩌면 눈부시게 하얀 빛으로 너를 정말 다른 곳으로, 산 자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보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여자는 맥락 없이 중얼거렸다. 초점이 맞지 않는 그녀의 눈은 쥐보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유령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 쥐는 나지막이 물었다. 그는 여자의 말에 흥미가 생긴 것처럼 보였다.

그래요. 우리는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요. 그 애는 마치 몸을 갖고 살아 있는 것처럼 신진대사도 했어요. 끔찍하게 짓뭉개진 사과를 맨손으로 집어 먹었고 내 옆에 얌전히 앉아 학을 접기도 했죠. 우린 같이 비디오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재판을 해서 학급의 살인자를 찾아 즉결심판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범인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어서 얼마나 많은 증거들을 정합적으로 사용했는지에 따라 스토리가 바뀌고는 했죠.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한 번 지목한 범인을 반드시 살인자로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 게임에 능숙해졌어요. 인격을 가지지 못한 다른 캐릭터들은 종이 인형처럼 우리의 선택과 논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동할 뿐이었죠. 의견 제시와 반론, 그리고 증거의 제출과 범인의 지목, 마침내는 판결까지 전부 우리가 진행했어요. 마치 고대 영주의 즉결심판처럼. 우리의 대리자 역할을 하던 캐릭터를 직접 살해하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살을 하고 특정적인 증거만을 남겨 범인을 교사로 몰아간 이후부터 우리는 그 게임에 완전히 흥미를 잃었어요. 신이 되는 것은 아무런 재미도 없어요. 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을 사랑하는 일은 죽은 여자의 어린 시절을 훔쳐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에요.

뭐라고?

신이 되는 건 아무런 재미도 없다고요. 아니, 그 다음 말 말이다. 죽은 여자의, 뭐?

죽은 여자의 어린 시절을 훔쳐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 애가 말해준 거예요. 죽은 그 애가요. 그 애는 내 앨범에서 죽거나 사라진 내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빼내더니 그게 자기 엄마라고 주장했어요. 그건 내 엄마가 아니라 그 애의 엄마라고요. 그 애는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 난 다른 사람의 부모를 빼앗는 것은 살인보다도 더 악질적인 범죄라고 그 애에게 말해 주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 애를 죽였다고 해도 그 애에게 내 엄마를 함부로 빼앗을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요. 하지만 그 애는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농담도 장난도 아니라고. 그건 내 엄마가 아니라 그 애의 엄마라고. 입 속으로 말려들어간 하얀 입술은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였고 그 애의 투명한 눈에서는 민달팽이처럼 축축한 점액질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나중에는 그게 자기 엄마도 아니고 자기라고, 바로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이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하더라니까요. 난 더 이상 당해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그 사진을 그 애에게 줘 버렸어요. 그 말을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정말 그 사진 속 어린 여자의 둥글고 다정한 얼굴이 그 애와 닮아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사진 속 여자는 내 엄마가 아니라 그 애의 엄마인 것처럼, 그리고 어쩌면 정말 그 애 자신인 것처럼 보였다는 거예요. 믿어지나요?

쥐는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래. 사람 여자는, 그것도 어린 사람 여자는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닮았으니까.

아니에요.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닮은 건 쥐들이죠. 자기 어미와 눈곱 하나만큼의 차이도 없이 식별할 수 있는 미세한 표식조차 없이 끔찍하게 닮은 건 쥐들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다르게 생겼어요.

아니야. 쥐 남자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다른 건 쥐들이지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은 닮았고 쥐들은 달라.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어서 나를 안아줘요. 내 실존을 더듬고 물어뜯어줘요. 기억을 잃고 지상을 헤매는 유령처럼. 눈이 멀어서 달로 돌아갈 수 없었던 죽은 나방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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