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21

그리고, 초록은 헐떡이며 속삭였다. 죽은 의사들을, 어쩌면 살아남은 의사들을. 우주는 점점 멀어지고 있어. 하나의 점과 하나의 점은 영원히 합류할 수 없는 방향으로 멀어지고 있어. 점들은 지워지지만 사라지지는 않아. 우주는 희미한 얼룩들로 더러워진 유리창과 같아. 아빠의 어머니는 아빠에게 그걸 알려주었어. 많은 꿈들은 서로를 잊고 많은 꿈들은 서로를 기억하며 많은 꿈들의 그림자는 거미줄처럼 어지러이 얽혀 있다고.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도 생은 끝나지 않는다고. 출구는 어디에도 없고 심지어는 골도 마찬가지야. 평생을 헤맨다고 해서 출구에 도착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미로는 영원하고 미로는 생을 초월하고 미로는 꿈마저도 초월하고 미로는 심장이 뽑혀나간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어.

우주선의 여자는 신음했어. 그녀의 가슴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어. 그리고 등에서, 입에서, 질에서, 배에서, 그녀는 피를 쏟아내고 있었어.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었어. 피를 쏟아내는 순간, 죽어가는 순간은 영원했고 여자는 잊혀지지 않는 꿈에 대해 생각했어. 어째서 하나의 꿈은 다른 꿈보다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 어째서 하나의 꿈은 다른 꿈보다 오래 남아 있는 것일까? 어째서 하나의 꿈은 다른 꿈보다 깨어나기 어려운 것일까? 어째서 하나의 빌어먹을 꿈은 하나가 아닌 것일까? 어째서 꿈들은 꿈들을 낳고 있는 것일까? 두 개의 거울 사이에서 무한하게 증폭되고 있는 장미들. 장미는 거울의 무한을 마주하면서도 두려움 없이 꿋꿋하게 죽어가고 있어. 장미들은 죽어가는 장미를 다정하게 마주보고 있어.

여자의 가슴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여자는 피를 기침하면서 웃었어. 여자는 하나의 꿈이 다른 꿈보다 오래 지속되는 이유를 알고 있었어. 여자는 하나의 꿈이 다른 꿈보다 먼저 찾아오는 이유를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모르겠어. 내가 꾼 여자가 무엇을 꿈꾸고 있었는지 나는 기억할 수 없어.

나는 가끔, 초록은 울먹이며 말했다. 너를 꿈꿔. 그리고 네가 종종 나를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담사는 여자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 보라고 말했다. 여자는 눈을 감고 우주로 날아오르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록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주선 안에서 나는 혼자 글을 쓰고 있었어요. 그림자는 내게 글쓰기는 위험하다고 경고했어요. 하지만 나는 쓰는 걸 그만둘 수 없었어요. 그건 하나의 연쇄적인 꿈이며 꿈에서 깨어나면 희미하고 불가해한 어휘조차 남지 않을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 글을 썼어요. 많은 장미들이 피고 졌어요. 많은 장미들이 죽고 태어났어요. 하나의 편지에 나는 하나의 생물 표본을 붙였어요. 아홀로틀 하나, 시 한 편, 장미 한 송이, 거울에 관한 짧은 환상소설 한 편, 식물의 젖은 눈동자 하나,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에 대한 소설 한 편. 수취인은 박제된 채 편지에 붙인 생물들이었어요. 수취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는 자리에 나는 생물을 하나씩 붙였어요. 복합체 생물의 경우에는 구분하기 어려웠어요. 어디까지를 하나의 생물로 구분해야 할 것인지 꿈 속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죠.

마지막에 나는 나 자신을 수취인란에 붙였어요. 나는 나의 목 뒤를 나이프로 썰어내어서 얼굴 가죽을 벗겨내었고 다른 부위의 가죽도 조심스럽게 벗겨냈어요. 안쪽의 붉은 근육과 지방질은 나이프로 전부 긁어내고 창자도 전부 빼내고 뼈만 남겨둔 뒤 솜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잘 말려놓은 가죽을 붙였어요.

나는 나를 편지지 봉투에 매장하였고 편지는 내게 도착했어요. 나는 나를 위해 묵념하였고 나를 위해 깔깔거리면서 웃었고 나를 위해 저주의 말을 소리쳤어요. 나는 나를 위해 죽었어요. 나를 즐기고 나를 모욕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하나의 황홀한 농담으로 만들기 위해.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어요.

꿈이 넘쳐흐르는 미친 혈관을 물어뜯으면 꿈은 어디로 사라지죠? 꿈이 저물고 나면 꿈의 그림자는 어떻게 되죠? 나는 꿈이 사라진 뒤 홀로 남은 꿈의 그림자를 꿈꿨어요. 사물을 잃은 채 강물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사물의 그림자를 보았어요. 그림자들이 쌓여 있는 쓰레기 폐기장을 보았어요. 내가 잃어버린 많은 꿈들의 그림자를 그곳에서 보았지만 그림자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들은 더 이상 나를 꿈꾸지 않았던 거예요. 유한한 꿈들과 무한한 그림자들, 유한한 거울들과 무한한 거울의 조각들. 유한한 거미와 무한한 거미줄. 유한한 슬픔과 무한한 심장.

선생님, 나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빈 화면을 봤어요. 일곱 시간 아니 열 시간 아니 오만삼십육 시간 분량의 긴 영화였어요.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다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숨쉬지 않았고 아무것도 소리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침묵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심장을 쏟아내지 않았고 아무것도 인형을 가지고 놀지 않았고 아무것도 인형을 벗기지 않았고 아무것도 인형을 강간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부복을 입은 돼지에게 입맞추지 않았고 아무것도 토성을 향해 질주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달을 테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서 괴로워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존재해서 괴롭지 않았고 아무것도 죽은 물고기들을 토해내지 않았고 아무것도 절개된 혈관에 열대어들을 쑤셔넣지 않았고 아무것도 차가운 태양을 떠올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새의 작은 심장을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로드킬당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로드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자수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뛰지 않았고 아무것도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감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삶이 존재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아무것도 꿈의 환영을 꿈꾸지 않았고 아무것도 삶이 꿈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속삭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연인을 끌어안지 않았고 아무것도 갓 태어난 어린 짐승을 품에 안지 않았고 아무것도 노래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궤적을 춤추지 않았고 아무것도 경련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행진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혁명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숙청당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웃지 않았고 아무것도 울지 않았고 아무것도 심장발작으로 죽지 않았고 아무것도 죽음의 병실에서 희고 축축한 타일 벽을 올려다보며 유령과 인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불가능을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불가능을 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불가능에 닿지 않았고 아무것도 달에 착륙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달에 배신당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음모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배신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미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건강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타자를 출산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살아서 꿈틀대는 역동적인 불길한 타자들을 산 채로 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죽은 아이를 낳지 않았고 아무것도 산 아이를 낳지 않았고 아무것도 죽어가는 아이를 낳지 않았고 아무것도 늙은 아이를 낳지 않았고 아무것도 어머니를 낳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버지를 낳지 않았고 아무것도 거울 속 목이 긴 여자를 닮아가는 메두사를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죽게 만드는 정치를 증오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명의 본성은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실종자를 기억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실종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부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부재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여동생을 죽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오빠를 고발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여동생의 목을 조르지 않았고 아무것도 천사가 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이가 실종되었다고 신고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아이를 납치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죽은 아이를 납치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살해범으로 의심받지 않았고 아무것도 살해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살해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지하실에 홀로 누워 천사들의 희미한 날갯짓을 바라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에게 거부당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의 심장을 먹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을 강간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신을 원망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천사의 고기를 먹지 않았고 아무것도 엑스터시를 느끼지 않았고 아무것도 초월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금지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날지 않았고 아무것도 추락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소나무의 핏가루를 활에 바르고 연주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피 흘리지 않았고 시신의 자궁에서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았고 시신의 자궁에서 피어난 나무로 만들어진 악기를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죄짓지 않았고 한 마리 쥐의 죄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모든 쥐의 죄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자연의 광기로 불어나는 시계들은 없었고 봉합되지 않은 타자들도 없었고 타자성도 없었고 우리도 없었고 현실은 처음부터 없었고 가상 역시 없었으며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아직 이해되지 않은 것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여자는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상담사는 유백색의 머그컵에 물을 따라 여자에게 건네 주었다. 여자가 물을 들이키는 동안 상담사는 영화의 제목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없었어요. 여자는 기침하며 속삭였다. 영화의 제목은 없었어요. 영화는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거짓조차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어요.

상담사는 여자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찍히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야. 읽히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야.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야. 네가 잠을 자는 동안, 그래서 옷장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동안, 옷장은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어.

그걸, 여자는 울며 속삭였다. 어떻게 알 수 있는데요?

상담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도 알 수 없어.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도 있어.

증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여자는 물었다.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영원히 비밀로 남을 방식으로.

그건, 여자는 흐느꼈다. 너무 쓸쓸해요. 악몽 같은 영화였어요. 난 우유 속에 빠진 파리 같은 작은 점이라도 발견하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어요. 미세한 노이즈조차 없었어요. 29번 채널 말이에요, 여자는 상담사의 가느다란 팔목을 붙잡으며 애원하듯 속삭였다. 아직 안 보셨죠?

그래, 상담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 TV에서는 그 채널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여자는 29번 채널이 기본채널임을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추궁하지 않았다.

돼지들은 아직 늑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

네. 돼지들은 늑대를 기다리고 있고 늑대는 아마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늑대는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린 게 분명해요. 하지만 돼지들이 늑대를 기다리는 동안 29번 채널의 방송은 끝나지 않아요. 늑대를 기다리는 동안 돼지들은 존재하고 나는 늑대를 기다리는 돼지들을 볼 수 있어요. 설령 늑대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늑대를 기다리는 돼지들은 존재해요. 돼지들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기다림은 존재해요.

그래. 상담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좋은 일이야.

아니에요!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상담사의 팔을 움켜쥐었다. 상담사는 신음을 흘렸고 여자는 소리를 질러댔다.

돼지들은 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29번 채널을 보고 있지 않는 동안에도 선생님이 돼지들을 보지 않는 동안에도 돼지들은 기다리고 있어요. 그건 좋은 일이 아니에요. 빌어먹을 일이에요. 돼지들은 죽을 때까지 죽음을 기다리지만 죽음은 돼지들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어요. 돼지들이 처음부터 죽음을 원했던 건 아니에요. 늑대가 돼지들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돼지들의 집 앞에 나타났다면 돼지들은 죽으려 하지 않았을 거예요. 늑대를 기다리지도 않았을 거고요. 돼지들은 살기 위해 도망쳤을 거예요. 돼지들은 기꺼이 살고 기꺼이 뛰고 기꺼이 숨 쉬었을 거예요. 늑대에게서 도망쳐서 돼지들은 오래오래 살았을 거예요. 설령 늑대에게 잡혀먹혀서라도 돼지들은 살았을 거예요. 살이 찢겨나가고 해체되어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늑대는 오지 않았고 돼지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돼지들은 마침내 삶이 아닌 늑대를 원하게 되었어요. 늑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죽음의 털복숭이 얼굴을 마주할 수만 있다면 돼지들은 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돼지들은 차라리 죽음을 바라고 있어요. 그게 좋은 일인가요? 아니에요 선생님. 빌어먹을 일이에요. 아무도 그들을 보고 있지 않은 동안에도 그들은 기다리고 있어요. 돼지들의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옷장 속의 수술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데 그동안에도 돼지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찍히지도 증명되지도 않을 기다림을 그 미련하고 빌어먹을 끔찍한 기다림을 계속 살고 있을 거예요.

돼지들의 기다림은 물방울 같은 TV 화면들에 증폭되고 복제되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늘어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사라져요. 그럼에도 돼지들은 기다림을 멈출 수 없어요. TV 채널이 넘어간 뒤에도 프로그램이 바뀐 뒤에도 돼지들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화면의 내부가 기다림이나 돼지들과는 무관한 다른 영상으로 채워진 뒤에도 돼지들은 기다리고 있어요.

상담사는 여자에게 붙잡히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여자의 손등을 부드럽게 쓸며 속삭였다. 모두가 불가능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단다. 마치 불가능만이 유일한 사실이라는 듯이.

하지만, 여자는 흐느꼈다. 모두가 돼지인 건 아니에요. 모두가 29번 채널의 돼지들인 건 아니에요. 모두가 돼지들처럼 기다리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차가움을 느끼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택시 유리창에서 반사되는 한 줄기 햇빛을 보면서 고양이의 젖가슴을 보면서 수탉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깨진 달걀의 포근하고 축축한 노란빛을 보면서 죽음을 갈망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현실이 초현실임을 알고 경악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암탉을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암탉인 건 아니에요. 모두가 깨진 달걀인 건 아니에요. 모두가 지나치게 커다란, 젖은 난자인 건 아니에요. 모두가 희귀한 꽃인 건 아니에요. 모두가 희귀한 색깔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유명한 꽃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창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창녀를 증오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창녀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창녀를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창녀를 낳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상담사는 여자의 손을 붙잡으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다섯 명의 의사들이 죽었다고. 그들은 독살당했으며 범인은 환자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들은 죽지 않았고 의사들을 죽인 건 그녀가 아니라고.

그건, 상담사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네가 판단할 일은 아니란다. 네 말은 모순되는 것 같아. 넌 나를 죽이고 싶니?

여자는 잘 모르겠다고 속삭였다. 난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왜냐하면 늑대는 영원히 오지 않을 테니까.

숲 속에서 물고기를 찾고 있는 여자아이들. 사막을 떠도는 작은 고래. 병원의 복도는 어둡고 길었다. 여자는 병실 문턱을 넘어 들어섰다. 침대 위에는 암도마뱀이 앉아 있었다. 도마뱀은 작은 머리를 들썩이며 웃었다. 여자는 암도마뱀의 침대맡에 걸터 앉았다. 암도마뱀은 여자를 반가이 맞아들였다.

넌 여배우지?

여자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널 TV에서 봤어. 29번 채널에서…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29번 채널의 프로그램에는 나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상하네. 난 29번 채널에서 널 봤어. 너는 늑대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29번 채널을 본 적 있어?

여자는 대답했다. 응, 난 자주 29번 채널을 봐.

암도마뱀은 희미하게 웃으며 자기도 여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난 꿈을 연기하고 싶었어. 나비나 물고기, 바람이나 달을.

여자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런 것들?

응, 나비나 물고기, 바람이나 달 같은 것들.

암도마뱀은 줄이 없는 현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고 수줍게 말했다. 인간이 바다 위에 심을 수 있는 꽃은 없다는 걸 난 내 머리보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를 보고 말하고 싶었어. 감독은 내가 아니어도 카메라 앞에서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몽유병자들은 넘쳐 흐른다고 말했지.

연기를 해 봐, 여자는 불현듯 말했다.

지금 여기서?

그래. 여기서.

암도마뱀은 비척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서글프게 중얼거렸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어. 아무도 너 같은 암캐를 TV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아! 아무도 너같은 암캐를 꿈꾸지 않아!

난 암캐가 아니라고 했어. 나는 도마뱀이고 포유류도 개도 아니라고.

감독은 웃으면서, 암도마뱀은 발작하듯 낄낄거렸다. 이렇게 말했어. 너 같은 년을 우리는 암캐라고 불러, 너 같이 오만한 창녀들을.

그는 나보고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어. 내가 모욕을 곱씹고 곱씹고 곱씹어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스스로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어. 다른 스텝들과 배우들은 물고기처럼 침묵하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 하지만 놀랍게도, 암도마뱀은 속삭였다. 난 그다지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어. 난 꿈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어. 새처럼 날아다니는 파란 물고기를, 한쪽 면만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구체를.

감독은 알겠다고 말했어. 그는 내 앞에 커다란 카메라를 들이밀었고 내게 연기를 해 보라고 말했어.

나는 울면서 내가 아는 가장 긴 대사를 읊었어.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기계장치 속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전선을 끊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전선을 끊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 다른 하나의 전선들을 천천히 끊습니다.

암도마뱀은 앞발을 뻗으며 침착하게 속삭였다. 그녀의 거칠고 주름진 피부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 기계장치는 추락하지 않았습니다. 조종사는 미쳐버렸습니다. 그는 신의 죄를 대신 회개하며 웁니다.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의 내부에 파란 꽃을 심어놓은 죄, 하늘을 향해 다가가는 새들의 날개를 잘라내버린 죄, 프로메테우스의 심장을 탐한 죄, 심장을 붉고 검게 만든 죄, 심장들, 심장들, 더 많은 심장들을 원한 죄. 조종사는 우리가 영원히 추락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계장치의 운행은 전선들이나 전류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선들은 외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암도마뱀은 소리쳤다. 우주선은 무한동력장치라는 것입니다! 마치 영혼처럼, 죽음처럼, 신처럼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소가 점점 희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두려움에 미쳐버린 어린 사자는 그에게 젖을 주고 길러준 암양의 목덜미를 물어뜯었습니다. 사자는 피를 들이마쉬었습니다. 암양의 몸에는 끔찍하게 붉고 축축한 산소가 들어 있었습니다. 산소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나는 영원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북극해의 유빙에 떠내려간 러시아의 반려견 같다고 죽어가는 시궁쥐가 말했습니다. 시궁쥐는 마치 실종된 사모예드가 그녀 생의 유일한 사건이라는 듯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암캐는 함께 사는 남자를 사랑했어. 암캐가 거실 바닥이나 방문 앞에 오줌을 누면 그는 암캐를 걷어찼지만 그래도 암캐는 남자를 사랑했어. 암캐가 사랑하는 것, 달콤한 비스킷과 고깃조각, 시원한 물과 자유는 모두 남자의 손바닥에서 나왔고 암캐가 싫어하는 것,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은 남자의 손등에서 나왔어. 남자는 암캐를 안젤라라고 불렀어. 안젤라라는 부름은 눈물이 날만큼 슬프고 다정하다고 암캐는 생각했어. 하지만 암캐라는 이름은 아프고 외롭다고 암캐는 생각했어.

다른 무엇보다도 암캐는 암캐였어. 남자가 암캐를 안젤라라고 부를 때도 암캐라고 부를 때도 암캐는 암캐라는 말을 잊을 수 없었어. 남자가 손바닥을 보일 때 손등을 떠올리는 것처럼. 하지만 암캐는 남자를 사랑했어. 그는 크고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으니까. 그의 손바닥은 뼈보다 부드러웠고 그의 냄새는 비리면서도 달콤했어. 암캐가 남자와 입을 맞출 때면 남자는 웃었어.

남자는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집을 비웠고 그 시간은 암캐가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었어. 암캐는 홀로를 견디기 어려워했어. 남자가 없는 동안 암캐는 주로 잠을 잤고 깨어 있을 때면 남자가 남기고 간 희미한 그림자와 함께 대화했어. 그림자는 암캐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암캐는 꿈결 같은 목소리로 자기도 그렇다고 대답했어.

암캐는 남자의 여자친구들도 사랑했어. 남자는 주말이면 친구들이나 여자 애인을 데려오곤 했는데 남자 친구들에게서는 고약한 악취가 났지만 여자 애인들에게서는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독특한 향기가 났어. 그녀들에게서는 말리고 조각낸 뒤 응축시켜둔 꽃잎의 향이 났어. 그녀들은 진짜 꽃보다도 더 짙은 꽃냄새를 풍겼어. 암캐는 그녀들을 향해 검고 다정한 눈을 내밀었고 여자들은 향기처럼 아름답게 웃으며 암캐를 쓰다듬었어.

여자들이 떠날 때면 암캐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지만 여자와 남자가 모두 떠나갈 때만큼 외롭지는 않았어. 그럴 때 암캐는 어둠 속을 부유하는 납작한 그림자들과 오래도록 이야기했어.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는 그림자들과. 그리고 다시 밝음과 어둠이 몇 차례 흘러갔어. 암캐는 낮을 잘라내어 물어 뜯어버리고 싶었어. 아주 어릴 때부터 암캐는 홀로를 무서워 했어. 그런데도 혼자 있는 시간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어. 그림자들의 시간은 나날이 길어졌고 암캐는 간혹 알 수 없는 언어로 수군거리는 그림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어.

그림자들은 암캐에게 비겁하다고 속삭였어. 암캐는 단 하나의 완전한 날조차 성취하지 못했다고 말했어. 숲에서 물고기를 찾는 꼴이야, 모래로 만들어진 책을 읽는 꼴이지. 그림자들은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킬킬거렸어.

암도마뱀은 주문을 외우듯 주둥이를 달싹이며 양 앞발을 허우적거렸다.

물 위에 꽃을 심으려는 꼴이야. 공중견과 음악견을 찾아 나서던 용기 있는 개들의 역사는 어디로 갔지? 개들의 학문은? 개들의 음악은? 개들의 문학은? 암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말했어.

그건 네가 어리석기 때문이란다, 아가. 그림자는 속삭였어.

그건 네가 비겁하기 때문이란다, 아가. 그림자는 웃었어.

그건 네가 우리를 버렸기 때문이란다, 아가. 그림자는 소리쳤어.

암캐는 그림자들을 진정시킬 수 없었어. 그림자들은 암캐가 무어라고 말하든, 호소하고 애원하든, 울든, 계속해서 지껄여댔고 암캐는 그들의 불가해하고 진력나는 이야기에 소진되는 수밖에 없었어.

그림자는 말했어. 아가야, 네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기뻐했단다. 네가 우리의 일족이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네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슬퍼했단다. 네가 불가능한 꿈을 꿀 것이기 때문이었지. 하지만 우리는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었어. 너는, 얘야, 물 위에 꽃을 심으려 하는 꿈조차 없구나. 숲에서 물고기를 찾으려 하지도 않고 모래로 만들어진 책을 읽으려 하지도 않아. 너는 가장 멍청하고 실패한 개보다도 더 못난 아이야. 너는 자살도 하지 않고 아주 오래 살 것 같구나. 너는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까지 해. 그게 말이 되니? 대체 어떤 개가 행복할 수 있니? 어떤 쥐가 행복할 수 있니?

암캐는 행복하면 안 되냐고 물었어.

그림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다고, 개나 쥐는 결코 행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어.

왜요? 암캐는 지쳤지만 여전히 맑고 동그란 눈으로 허공을 향하며 물었어.

그건, 그림자는 속삭였어. 개와 쥐가 무수한 개들과 무수한 쥐들의 불행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의 뼈는 역사의 무게로 으스러졌고 심장은 절망적으로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지, 얘야. 우리의 피 속에는 끈적하고 우울한 독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너는, 그림자는 냉담하게 말했어. 그렇지 않나 보구나. 너는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구나.

암캐는 아니라고 말했어. 남자가 집 안에 없을 때, 그녀를 찾아왔던 냄새들이 그녀를 떠나갈 때 암캐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말했어. 그리고 남자의 손등을 떠올릴 때, 남자의 손등과 발이 암캐의 배와 얼굴을 때릴 때, 암캐는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이며 속삭였어.

암도마뱀은 지쳤는지 병실 바닥에 주저앉으며 연기를 이어갔다.

감독과 배우들과 스텝들은 물고기처럼 침묵하며 나를 듣고 있었어. 나는 목이 말랐지만 계속 연기를 해야 했어. 쉬었다가 하면 안 되느냐고 물을 수도 없었어.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기침을 하면서도 연기를 이어나갔어. 목과 머리가 아파서 눈물이 흘렀지만 극의 전개에 있어 눈물은 그리 나쁘지 않은 효과였기 때문에 굳이 닦거나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어.

늙은 쥐는 검은 눈을 쉴새없이 깜빡거리며 이렇게 말했어. 그림자들은 암캐를 쉴새없이 질책했다고. 그림자들은 암캐를 비난하고 저주하고 그리고 마침내는 용서했다고. 하지만 암캐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그림자는 주인을 그리고 여자들을 물어 죽이라고 종용했어.

암캐는 깜짝 놀라서 물었어. 대체 왜요? 그

림자는 그게 개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어. 아가, 네가 연구나 예술을 할 게 아니라면 혁명을 해야 하지 않겠니. 너는 혁명을 하고, 그리고 구원받는 거야.

누구에게요? 암캐는 놀라서 눈물을 흘리며 물었어.

우리에게, 개들에게, 그리고 너에게.

난, 암캐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어. 이미 나를 용서했어요.

그건 거짓말이야. 그림자들은 음흉하게 웃으며 소리쳤어. 넌 너를 용서할 수 없어. 너는 네 죄조차도 모르잖아.

그래요. 암캐는 울었어. 난 죄가 없어요.

그림자들은 죄를 알지 못한다고 죄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어. 알지 못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너 역시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어.

꿈은 어떻죠? 모래의 책은? 숲의 푸른 물고기들은?

암도마뱀은 갑작스럽게 여자를 향해 이마를 가져다대며 중얼거렸다. 이건 연기가 아니었어. 하지만 감독이나 배우들이나 스텝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건 좋은 징조였지. 난 연기의 중간에 내가 참지 못하고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를 이어나갔어.

쥐는 암캐에 대한 긴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 완전히 닳아버린, 매끈매끈한 이야기를 이어나갔어. 우주를 부유하는 기계장치 속의 짐승들은 미래가 누설되어버린 진부한 예언을 아무런 호응도 거부도 없이 듣고 있었지.

네 조상들은, 그림자들은 말했어. 너보다 어릴 때부터 미지를 꿈꾸었어. 그들은 음악견이나 공중견에 대해 생각했고 음악견과 공중견이 그들 주위를 맴돌며 알려지지 않은 춤을 추는 것을 꿈꾸기까지 했지. 그들은 냄새에 현혹되지 않았어. 냄새는 그때도 지금과 다름없이 강렬한 감각이었지만 그들은 냄새보다는 음악이나 이미지에 집중하려 애썼어. 왜냐하면, 아가, 냄새는 꿈꿀 수 없기 때문이야. 냄새는 꿈이 아니기 때문이야. 냄새는 우리를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는 오직 배신당하고 상실하기 위해 꿈 꾸었어.

암캐는 물었어. 어째서 배신당해야 하죠? 어째서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꿈꿔야 하죠?

그림자들은 한숨을 내쉬었어. 너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너는 정말 개가 아닌 것 같아.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지. 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절멸하였고 너는 개가 아닌, 그러나 개와 닮은 어떤 짐승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얘야 너는 우리 말을 알아듣고 있구나.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아듣고 있어. 그러니 언젠가 너는 우리의 미래를 가지게 될 거야.

암캐에게는 그 말이 끔찍한 저주처럼 들렸어. 암캐는 울면서 살려달라고 외쳤고 그림자들은 깔깔거리며 폭소했어. 아무도 너를 죽이지 않아! 이 가엾은 아가야, 불쌍한 여자야, 아무도 너를 대신 죽여주지 않아. 안젤라, 하얀 천사야. 짐승들은, 천사들은 결코 죽지 않아. 천사들은 천사들의 고기를 먹고 살아간단다.

암캐는 이해할 수 없다고 중얼거렸다. 어째서 행복해서는 안 되죠? 어째서 죽을 수 없다는 거죠?

그림자들은 웃으면서 공중을 맴돌았다. 너는 네가 본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구나. 너는 공중견의 불가능한 생태를 잊었구나. 너는 불가능한 연구들과 불가능한 음악과 불가능한 시를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우주선의 짐승들은 지쳐가고 있었어. 노인은 쥐의 말을 끊으며 이렇게 중얼거렸어. 우주를 떠도는 기계는 완벽한 기계야. 사람들은 오래도록 무한 동력의 장치를 찾아왔지. 그게 불가능한 꿈이라고 믿었어. 자네가 말하는 개들의 그림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마침내 완성한 거야. 그 누구도 내게 투자하려 하지 않았지. 우주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고 우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구식의 것, 철 지난 유물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말했어. 우주는 상징에 불과해요! 노인은 낄낄거리며 웃었어. 하지만 모든 것은 상징에 불과해! 상징에 불과한 것들은 꿈의 길고 단단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 그림자는 살아 있어. 그렇지 않나?

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어.

노인은 고래고래 소리쳤어. 상징은 나름의 현실이야. 진실에 가까운 현실. 진실에 무한히 접근해가는 현실. 난 다시 우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어. 우주에 모든 것이, 모든 불가능과 잠재태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우주를 정복했다고 말했지. 우리가 대체 뭘 정복했다는 건가? 시간? 땅? 대기? 죽음? 공간? 그건 착각에 불과해. 우린 우주에 많은 것,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두고 왔어.

우주로 돌아가야 해. 나는 매일 그렇게 되뇌었어. 우주로 가야 해. 사실 우리는 한 번도 우주에 가본 적이 없어. 진짜 우주로 가야 해. 우주로 가야 해. 불가능한 것들은 모두 우주에 속해 있으니까. 우리는 우주로 가야 해. 아무도 나를 지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지하 창고에서 혼자 이 놀라운 기계장치를, 영원하고 무한한 동력을 만들었네. 난 내 기계가 놀랍게도 완벽하다는 걸 알았어. 마지막 창문을 달면서, 못을 박아넣으면서 나는 울었지. 정말 많이 울었어. 왜냐하면 이 기계장치는 기적이었으니까. 자, 누가 기적에 올라탈 텐가? 나는 기계장치에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였어. 누가 기적을 타고 기적을 항해할 텐가? 난 광장에 나가서 매일 소리쳤어. 누가 기적에 올라탈 텐가? 누가 기적을 타고 기적을 항해할 텐가?

아무도 내게 답하지 않았지. 아무도 내게 신경쓰지 않았어. 아무도 내가 기적을 만들었다는 걸 믿지 않았어. 혹은 기적을 믿지 않았어. 이렇게는 안 되겠어. 나는 생각했지.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사람들은 많은 생명들을 죽이면, 그래서 그 땅에 생명이 하나도 않게 되면, 혹은 그 땅이 이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이 변해버리면 모든 것을 차지했다고 생각해. 모든 것이 밝혀졌다고, 알려졌다고,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하나의 먼지조차도 남지 않았다고 믿어. 하지만 그건 망상에 불과하네. 우리는 우주로 가야 해. 노인은 새처럼 작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우주로 가야 해. 우주에는 무수한 언어와 무수한 상징과 무수한 현실과 무수한 시간과 무수한 공간과 무수한 죽음과 무수한 삶이 있네. 무수한 0과 무수한 무한과 무수한 수와 무수한 부재와 무수한 존재가 있네. 난 내 기적을 증명하기 위해 기적 위에 올라탔어. 그리고 자네들을 만들었지.

자네들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네. 자네들은 이미 숱하게 알려지고 발생한 기적들이었으니까. 이제는 기적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숱한 사실들이었으니까. 우주를 탐험한 늙은 개들과 쥐들과 미생물들과 원숭이들을 위하여! 자네들은 영광스럽게 죽어야 하네. 절대 후회해서는 안돼. 왜냐하면 자네들은 방주에 올라탄 선택된 짐승들이니까! 방주 위에서 노아에게 한탄을 하던 짐승들이 있던가? 죽여달라고 울부짖던 짐승들이 있던가? 신을 저주하던 짐승들이 있던가? 아니, 짐승들은 기쁘게 살아남았네. 늪 같은 빗물에 잠겨든 도시 위를 우아하게 항해하면서 짐승들은 축배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네. 신을 칭송했다네. 짐승들은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 그들은 짝의 몸 속을 파고들며 노래를 불렀어. 암사마귀는 숫사마귀의 머리를 베어 물면서 흐느끼듯 황홀하게 신음했고 숫지네는 암지네의 내장을 쑤셔발기면서 신을 찬미했네. 오, 재난을 기적으로 바꾸기 위해 죽어간 짐승들이여! 길고 긴 유랑 끝에 돌아간 고향에서 그들을 반겨주는 후손들은 아무도 없었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그들의 유일한 후손이며 조상이었기 때문이지!

그때서야 몇몇 짐승들은 울부짖기 시작했어. 그들은 선택과 생존과 기적이 무슨 의미인지 지나치게 천천히 깨달았어. 노아는 그의 아내의 턱에 입을 맞추었고 노아의, 이름을 잃어버린 아내는 짐승처럼 울부짖었어. 우리가 돌아갈 때도 우리를 반겨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을 걸세.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도 우리의 기적을 원치 않았으니까. 아무도 기적을 원하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았으니까. 신조차도.

신조차도 기적을 믿지 않았네. 신은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고 곧바로 쓰러져 잠들었지. 혹은 꿈꾸는 멍한 눈으로 죽어가는 짐승들을, 그리고 살아남은 짐승들을 보았지. 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눈 먼 신은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물을 흘리는 짐승들을 꿈꾸면서도 잠에서 깰 수 없었어. 신은 오래도록 잠들었고 몽유병자처럼 우주를 떠돌았네. 신은 많은 신들을 낳았고 많은 신들은 신을 낳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어.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신들은 기적을 믿지 않았고 기적이 아닌 일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으니까. 그들은 사지가 잘려나간 그림자처럼 무력했어.

우주로 오기 전에 나는 시간에 관한 독특한 장치를 개발했네. 신은 하지 못 한 일이었지. 신은 시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어. 신은 숫자를 이해하지 못했어. 신은 백치였고 그가 만들지 않은 것은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신이 아닌 짐승들은 숫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 적어도 신이 알지 못하는 만큼은 알고 있었어.

자, 이런 걸세. 짐승의 두개골 뼈를 갈라내고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려나간 두개골을 드러내는 걸세. 뇌는 탯줄처럼 혹은 물고기의 내장처럼 젖어 있지. 나는 뇌를 0.13mm 도려내. 내가 도려내는 부분은 바로 시간과 숫자를 감지하게 해 주는 독특한 영역이지. 시간의 살을 덜어낸 짐승은 더 이상 시간을 느끼지 못하네. 숫자도 셀 수 없고 시간도 느낄 수 없어. 그러면 그 짐승은 신이 되는 걸세! 1초는 영원이고 3초나 10분이나 39년은 모두 같은 시간이지. 모두 같은 영원이야. 모든 시간은 모든 영원이고 모든 수는 무한이네. 무한과 영원밖에 남지 않은 백치는 신이 되는 거야. 적어도 신의 시간과 신의 수를 살 수 있는 것이지. 중국의 진시황이 나를 알았다면 내게 기꺼이 세상을 주려 했을 걸세. 하지만 그는 오래 전에 죽었고 시간과 날짜를 셈하는 그의 비밀스러운 살은 멀쩡히 붙어 있었지. 아무도 감히 황제의 두개골과 뇌를 갈라 상처낼 생각을 할 수 없었어. 나는 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순수한 시간을 발견한 걸세. 단절되지 않은 하나의 영원한 순간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비밀을 발견한 거라고.

난 몇 마리의 실험쥐들을 신으로 만들었고 마침내는 거울을 보고 내 두개골을 스스로 잘라내서 내게 영생의 수술을 했네. 난 영원히 살아 있고 원한다면 자네들도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어. 자네들은 영원히 살고 영원히 죽을 것이네. 그건 신적인 일이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지.

소년은 중얼거렸어. 핏방울이 떠다닐 텐데요. 뇌수도, 잘라낸 두개골 조각도 우주선을 떠돌 거예요. 조각들은 기계장치의 은밀한 자리에 끼어들 것이고 우주선은 망가질 거예요.

노인은 웃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기계장치는 완벽하므로 고장날 수도 없다고 말했어. 자네들이 아무리 전선을 잘라내 보았자 우주선이 가라앉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우주선은 영원을 떠돌 걸세. 하지만 자네들은 영원을 느낄 수 없게 만드는 둔탁하고 음탕한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영원을 느낄 수 없겠지.

공업용 가위를 생명줄처럼 절박하게 움켜쥐고 있는 남자는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해. 우리는 미쳐버렸습니다. 천사들은 얼어붙었고 우리는 더 이상 천사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늙은 쥐는 실종된 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암캐는 그림자들의 저주와 같은 속삭임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림자들은 날마다 암캐에게 죄를 저지르라고 종용해. 남자의 그리고 여자들의 목을 물어뜯고 천사의 고기를 삼키라고 속삭여. 암캐는 그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게 두려워서 구토를 해. 암캐가 침대에서 구토를 하자 남자는 암캐의 배를 걷어차고 암캐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려. 암캐는 납작하게 문질러져 피를 흘리는 작은 벌레를 생각해. 납작하게 짓이겨진 심장과 짓이겨진 어둠을.

그림자들은 암캐의 등을 떠밀고 암캐에게 서두르라고 비명을 질러. 하지만 어느 순간 그림자들은 침묵해. 암캐는 그림자들이 오래도록 말하지 않았음을, 그림자들의 언어를 상상한 건 암캐 자신임을 깨달아. 그리고 암캐는 완전히 미쳐버려. 암캐는 남자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발겨지는 고통을 느껴.

주인 남자가 없는 시간 암캐는 그림자들을 피해 집을 떠나. 길고 차가운 빙하기의 도로를 따라 암캐는 오래도록 뛰어가. 암캐의 심장은 찢어지듯 박동하고 암캐는 숨을 몰아쉬면서 고통을 느껴. 그림자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 하지만 암캐는 그림자들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어.

그림자들은 암캐에게 더 멀리 가라고 소리치고 있어. 암캐는 구부러진 길을 따라 계속해서 뛰어가. 한참이 지나서야 암캐는 길이 어디에도 없었음을 깨달아. 암캐는 이렇게 계속해서 뛰어가다가는 언젠가 그림자들에게로 돌아가게 되리라고 생각해. 그래서 암캐는 뜀박질을 멈춰.

암캐의 발밑에는 작은 마당만 한 유빙이 있어. 암캐는 어느덧 북극해로 이어지는 강의 초입까지 뛰어온 거야. 암캐는 유빙 위에 서 있어. 유빙은 암캐를 두고 강을 따라 흘러가. 암캐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견뎌내며 하염없이 떠다니는 우주의 짐승들처럼 아무런 의식도 목적도 심지어는 두려움도 없이 떠내려가. 암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이동했지만 그건 사실 암캐 다리의 움직임과 열량의 소모를 바탕으로 한 육체적인 이동은 아니야. 유빙은 북극해까지 떠내려가고 암캐는 한없이 펼쳐진 희멀건 얼음의 세계를 놀라움으로 둘러봐. 남자였다면 밤처럼 짙푸르게 반짝이는 은은한 빛의 세계를 볼 수 있었을 거야.

암캐는 운명처럼 떠내려가고 운명처럼 먼 곳에,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이르러.

그 이야기는, 우주선의 남자는 이렇게 말해. 나의 운명에 대한 예언과도 같았습니다. 그들이 모두 죽고 난 뒤, 홀로 남은 삶 속에서 나는 늙은 쥐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새겨 봤습니다. 늙은 쥐의 이야기 속 암캐처럼 나는 검푸른 밤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결코 밤을 만든 적이 없으며 유빙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이 빌어먹을 기계장치도 내 작품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위에 올라선 채, 내가 알지 못하는 방향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떠돕니다. 나는 기적을 원했지만 이런 기적을 바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선을 하나씩 자릅니다. 전부 잘라낸 뒤에도 기계장치는 멈추지 않습니다. 코드를 뽑아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TV의 노이즈처럼, 육체를 불태워낸 뒤에도 웃으면서 비명을 지르는 인형처럼, 나는 모든 것이 끝난 밤 위를 떠돌고 있습니다.

암도마뱀은 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기침을 했어. 하지만 내게 물을 가져다주는 짐승들은 없었지. 어쨌거나 나는 계속 연기를 이어나가야 했어.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마뱀은 나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 여자는 실험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나와 함께 영생을 살고 싶느냐고 물었을 때 여자는 웃었어. 그리고 떠났어. 한 장의 쪽지와 하나의 텅 빔. 당신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여자는 내가 끔찍했던 거야. 그 여자는 어리고 아름다웠어. 여자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어. 난 그 애가 몇몇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 애는 고맙다고 말했어. 여자가 주저할 때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러면 그 애는 고맙다고 말했어. 벌거벗은 그 애의 몸은 젖은 목련처럼 희고 싱싱했어.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그 애 옆구리에 파란 얼룩이 피어나기 시작했지. 썩기 시작하는 목련처럼. 난 멍이 들었느냐고 물었고 그 애는 모르겠다고 했어. 사실 여자는 옆구리든 어디든 멍 따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어. 하지만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지. 보랏빛과 푸른빛이 섞인 아름다운 멍자국은 점점 퍼져나가고 있었어.

마침내 그 여자의 얼굴까지 푸르게 바뀌었을 때 난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 여자는 깜짝 놀라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어.

나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여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울었어.

난 여자를 끌어안았어. 여자에게서는 물을 채운 화병에서 썩어가는 목련의 냄새가 났어.

여자는 끔찍하다고 말했어.

내가? 아니면 네 멍이?

여자는 미안하다고, 하지만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어. 여자는 내게서 식물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제발 씻고 오면 안 되느냐고 물었어.

난 방금 전에 씻었다고 말했고 여자는 나를 슬프게 올려다봤어.

당신한테서 노인 냄새가 나요. 늙은이 냄새 말이에요.

여자는 푸른 멍으로 뒤덮였지만 여전히 아름다웠어. 난 여자에게서 목련 썩는 냄새가 난다고 말했고 여자는 미친 듯이 웃었어. 우리는 함께 웃었고 벌거벗은 채로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잠들었어.

여자는 내 몸의 반점들을 하나씩 더듬으면서 그것들이 처음부터 있었느냐고 물었어.

난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대답했지. 여자의 몸은 깊은 호수처럼 혹은 죽음처럼 푸르딩딩했어.

여자는 간혹 자신의 죽음을 꿈꾼다고 속삭였어. 그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바라던 별들을 보지 못한 채로 눈을 감고, 죽어가는 그녀를 꿈 꾸는 그녀는 황망하게 내려다본다고 말했어. 그녀는 마치 살해당한 것처럼 죽었고 여자는 그녀를 꿈 꾸는 일을 견딜 수 없다고 말했어.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읊조렸습니다. 장미는 개의 꿈을 꿀 수 있는가? 개는 새의 꿈을 꿀 수 있는가? 하나의 새는 모든 새들의 꿈을 꿀 수 있는가? 모든 새들은 하나의 새의 꿈을 꿀 수 있는가? 하나의 꿈은 다른 꿈을 꿀 수 있는가?

난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가 내 아이를 낳길 원했어. 여자가 임신했을 때 난 뛸 듯이 기뻤지만 여자는 내 아이가 아니라고 말했어.

그럼 누구의 아이인데?

눈 먼 여자처럼 연푸른 눈이 나를 응시했어.

열두 살 때, 난 처음으로 섹스했어요.

난 더 이상 묻지 않았어. 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말했어.

여자는 울면서 속삭였어. 아이는 태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온몸이 부패한 빵처럼 퍼렇게 변한 채로 울고 있었어. 난 그녀의 푸르고 젖은 입술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수술을 받겠느냐고 물었어. 그녀는 놀란 듯 보였지. 그리고 한 장의 쪽지와 한 장의 당신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한 장의 이별과 한 장의 텅 빔. 그게 다였어.

쥐는 암캐가 유빙 위에서 흘러가는 아름다운 밤들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우주에 간 것 같았어. 실제로 암캐는 우주에 속해 있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암캐는 울면서 잠들었고 별들의 꿈을 꾸었고 암캐의 꿈을 꾸었고 남자의 꿈을 꾸었고 무명 배우의 꿈을 꾸었고 세계의 꿈을 꾸었어. 암캐는 최초의 식물과 첫 번째 과일과 나비들과 늑대와 고양이와 햇빛과 밤과 이슬과 그늘과 그림자, 호수와 심해와 알려지지 않은 물고기들의 꿈을 꾸었고 천사들과 유령들의 꿈을 꾸었고, 신이 되었어. 신들은 유빙 위를 떠도는 암캐의 꿈을 꾸고 있어. 아무런 목적도 의식도 없이. 꿈에는 원래 어떤 목적도 없으니까. 꿈은 치밀하게 연출된 각본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신들은 그저 꿈을 꾸는 거야. 신들은 유빙 위에서 밤을 떠도는 암캐의 꿈을 꾸고 암캐는 유빙 위에서 밤을 떠돌며 신들의 꿈을 꾸는 거야.

신의 꿈은 끝나지 않습니다. 암도마뱀은 예언자처럼 혼몽한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신의 꿈은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고 영원을 대물림하지도 않았지만 나의 아이를, 나의 부모를 꿈꾸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나는 기계장치 속의 짐승들을 몇 번이고 꿈꾸고 그들을 몇 번이고 다시 살며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합니다. 꿈 속의 꿈은 영원히 되풀이됩니다. 하나의 꿈이 사라지는 순간 다른 꿈은 하나의 꿈을 다시 꿈꿉니다. 꿈이 꿈을 꾸고 있는 한, 보르헤스의 증오스러운 거울들이 절망적인 증폭의 임무를 계속 수행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꿈 속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심장과 독수리의 피투성이 부리,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꿈꿉니다. 신들은 고통과 슬픔과 절망과 죽음과 고독을 꿈꿉니다. 고통과 슬픔은 신들을 꿈꿉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꿈꾸는 오이디푸스와 오이디푸스의 탄생을 꿈꾸는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어머니는 오이디푸스와 섹스하여 오이디푸스를 낳습니다. 오이디푸스는 그의 아버지를, 그의 아버지는 오이디푸스를 낳습니다. 죽음조차 꿈을 멈출 수 없습니다. 꿈은 죽음 역시도 꿈꾸기 때문입니다.

나는 서른다섯 개의 전선을 끊었으나 지금 내 앞에는 무한한 전선들이 있습니다. 0의 전선은 처음부터 무한한 전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나 두 개의 전선을 남겨 두었어야 합니다. 0의 전선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는 무한한 전선을 꿈꾸고 있고 무한한 전선은 0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지상은 없습니다. 끔찍한 멀미와 슬픔, 절망 속에서 무한한 모든 것들이 있지만 지상은 없습니다. 지상을 꿈꾸어도 지상은 없습니다.

누군가 이 빌어먹을 꿈들을 끝내 주기를. 그러나 대체 누가? 꿈이 아닌 그 무엇이 꿈을 끝낼 수 있단 말입니까? 난 이 기계의 구조를 모릅니다. 꿈의 구조 역시 알 수 없습니다. 난 꿈들에 번호를 매겨 그것들의 규칙을 찾아보려 했지만 꿈을 꾸는 동안은 번호들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몇몇 꿈에서는 번호를 기억하기도 하지만 공란이 너무 많은 메모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나는 죽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갓 태어난 아이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마콘도 최후의 아이처럼 진흙투성이의, 붉고 축축한 아이의 꿈을.

암도마뱀은 연기가 끝났을 때 그녀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카메라 한 대만 남아 있었어. 난 누구 한 명이라도 오디션장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어. 마침내 감독이 돌아왔을 때 나는 감독에게 어땠냐고 물었어.

감독은 생경한 얼굴로 뭘 말하느냐고 되물었지.

연기 말이에요. 감독님.

감독은 미안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어. 그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장면들을 보므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장면은 도저히 기억할 수 없다는 거야. 감독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아가씨, 당신이 연기를 한 건 정말인가? 하고 묻더군.

나는 그렇다고. 감독이 내게 기회를 주었으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독은 이 곳에서 다른 배우들, 스텝들과 함께 나를 촬영하고 있었다고 거의 애원하듯 말했어.

감독은 이 건물에는 수백 개의 방들이 있고 감독들과 배우들, 스텝들은 방들을 바쁘게 오간다고 말했어. 따라서 내 연기가 지루할 경우 배우들이나 스텝들은 얼마든지 다른 방 또 다른 방으로 이동할 수 있고 마지막 순간에 아무도 나를 지켜보지 않은 건 사실 불합격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어. 내 연기는 관중을 붙들어놓을 만한 연기가 아니라는 거야.

난 감독을 거의 끌어안듯이 붙들면서 우연치 않게 모두가 방을 비웠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어. 난 정말 긴 연기를 했기 때문에 내 경우는 더 불리하다고 소리쳤어. 카메라를 확인해 줘요. 나는 울면서 속삭였어.

감독은 아무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

제발, 카메라를 확인해 줘요.

난 내가 얼마나 완벽한 연기를 했는지 알고 있었어. 난 두 번 다시 그런 연기를 할 수 없을 거였어. 그토록 긴 대사를 한 번에 연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난 두 번 다시 그 대사들을 기억할 수 없을 거야.

제발, 나는 애원했어. 다른 감독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동영상 파일이라도 줘요.

감독은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대고 확인해 보더니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다고 말했어.

아무것도요?

그래, 정확히 말하면 너 같은 암도마뱀이 찍힌 동영상은 없는 것 같군.

혹시 가면을 쓰거나 분장을 하고 연기했니?

난 아니라고 말했어.

감독은 그러면 안타깝지만 파일은 줄 수 없겠다고 말했어.

집으로 돌아가. 감독은 측은한 듯 부드럽게 말했어.

하지만 난 여배우가 되어야 해요.

감독은 피로한 듯 말했어. 특수 분장을 하거나 가면을 쓰고 혹은 인형탈 안에서 연기를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특수 분장도 가면도 인형탈도 필요없는 사람을 고용하는 일이 가장 간단할 거야. 지금 이 층에도 여배우가 되겠다고 나선 여자아이들이 수두룩 해. 그 애들이 모두 포기하지 않는 이상 네게 기회가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구나.

그럼 나는 어떡해요? 난 미친 듯이 울었어. 나는 모든 꿈 속에서 울듯 그렇게 울었어.

나는 어떡해요? 나는 여배우가 돼야 해요.

감독은 고개를 저었어. 그는 미안하다고 말하지도 않았어. 미안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어. 이해하지 못한다면 받아들이려 애쓰기라도 해야 한다고.

나는 우주를 떠도는 늙은 과학자와 소년과 남자와 늙은 쥐와 암캐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지만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어.

감독은 거울로 뒤덮인 한쪽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어. 돌아가지 않을 거니?

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어.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난 울었어. 그렇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

감독은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고 말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가령 나는 오직 여배우가 되지 못할 경우에만 죽는다고 소리쳤어. 셰익스피어가 되지 못한 셰익스피어를 생각해요! 카프카가 되지 못한 카프카를 생각해요! 바르톡이 되지 못한 바르톡을 생각해요! 피카소가 되지 못한 피카소를 생각해요!

너는, 감독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어. 셰익스피어도 카프카도 바르톡도 피카소도 아니잖아. 그 작자들은 모두 사람이고 남자야. 너는 한 마리 암도마뱀일 뿐이고. 암도마뱀은 결코 여배우가 될 수 없어. 다른 꿈을 갖는 게 빠를 거란다. 아가씨, 너는 매끈하고 깨끗한 편이니까 돈 많고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의 애완 도마뱀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암도마뱀에게는 그것보다 더 나은 미래가 없지.

난 그런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등이 굽은 그림자가 거울 속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어.

난 여배우가 아닌 그 무엇도 될 수 없다고 했어.

하지만, 하고 감독은 나를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며 말했어. 너는 여배우가 될 수 없어.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어째서?

그게 내 숙명이니까. 난 관중들 앞에서 연기하는 나를 꿈꾸어요. 화면 너머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수천, 수만 쌍의 눈들을 꿈꾸어요. 그들은 내 긴 대사를 듣고 황홀하고 절망적인 꿈에 잠겨들어요. 나는 그들의 안에서 수천, 수만 개의 내가 돼요. 수천, 수만의 내가 아닌 낯선 이가 돼요.

난 거울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여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속삭였어.

감독은 은근하게 웃으면서 두 개의 거울 사이에 서서 말하라고 충고했어. 그러면 이미지들은 무수하게 번져 흐르면서 증폭되어 무한한 관중들 앞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그건 모두 내가 아닌가요?

그래, 그건 전부 너지. 감독은 검고 불투명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어.

그건 모두 너야.

난 내가 아닌 눈들이 필요해요. 내 것이 아닌 시선들이 필요해요. 나는 여배우가 돼야 해요.

감독은 영원히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았어. 그는 엑스트라로 출연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조차 하지 않았지. 그래도 우리는 밤 내내 대화했어.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 있다고 말했어. 가령 장미는 무용수가 될 수 없지. 나방은 변호사가 될 수 없어. 물고기는 가수가 될 수 없고. 그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일이야. 물고기가 새들의 꿈을 꾼다고 해서 물고기가 가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건 다만 깊은 망상의 일종일 뿐이지. 정신병 말이야.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거울들 앞에서 연기 해. 두 개의 거울을 사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난 울면서 소리쳤어. 관중들이 필요해요. 나를 보는 관중들 나를 꿈꾸는 관중들 내가 꿈 꿀 수 있는 무수한 몸들이 필요해요! 그들이 모두 나를 지켜봐야 해요.

그는 불가능하다고 짜증스럽게 말했어.

그럼 나는 어떡해요? 난 여배우가 돼야 하는데 여배우가 될 수 없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요?

감독은 홀로 연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 나는 감독에게 나를 봐달라고 말했어. 당신이라도 내 연기를 봐 달라고. 그리고 내 연기를 찍어 달라고.

감독은 화를 내면서 싫다고 말했어. 너는 정말 무례하구나. 너 같은 짐승들은 널렸어.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너 같은 암컷들은 닭장 안에 가두거나 밟아 죽여버렸지.

나는 울었어. 그러면 그렇게 해요.

감독은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어. 넌 예전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거야. 넌 언어를 가졌고 언어가 꿈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나는 울부짖었어. 그건 상징일 뿐이에요. 난 살아 있는 눈들과 목소리들과 존재들과 그림자들이 필요해요. 관중 없이는 배우가 될 수 없어요. 나는 여배우가 돼야 해요.

난 너와 섹스하고 싶지 않아. 감독은 말했어.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어. 너는 내게 줄 수 있는 게 없고 나도 네게 줄 수 있는 게 없어.

나는 웃으려 애쓰며 말했어. 그래도 당신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도 있을 거예요.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은 지나치게 많은 여백을 가지고 있고 그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해서 괴롭잖아요. 내게 필요한 건 단 한 장면이에요. 일 초라도, 한 순간이라도 좋아요. 일단은 그걸로 족해요. 나를 여배우로 만들어줘요.

감독은 미친 여자처럼 웃으면서 말했어. 내가 너와 대화하는 건, 네가 나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야.

당신은요? 나는 놀라서 물었어. 당신은 나를 꿈꾸고 있지 않나요?

감독은 은근하게 웃으며 대답했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그건 불확실한 일이야. 너는 네가 아닌 누군가가 너를 꿈꾼다고 확신할 수 없어.

난 집요하게 말했어. 난 당신이 나를 도와주기를 바라요.

감독은 두 개의 거울을 선물할 수 있다고 말했어.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난 여배우가 돼야 해요. 여배우가 돼야 해요.

두 개의 거울 사이에 서서 연기를 해. 네가 네 증인이 되는 거야. 너의 거울들이 너의 증인이 되는 거야.

난 나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난 경멸스럽게 증폭된 나들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장미는 개의 꿈을 꿀 수 있는가? 개는 새의 꿈을 꿀 수 있는가? 하나의 꿈은 다른 꿈을 꿀 수 있는가? 나는 앞선 연기의 대사를 인용해 중얼거렸어.

감독은 좋은 말이라고 칭찬했어.

이건 연기예요. 대사에 불과하다고요.

그래. 감독은 나를 올려다봤어. 검은 눈, 꿈이 가진 두 개의 눈동자. 연기는 거짓이 아니야. 연기는 증명될 수 없는 사실이지.

난 두 개의 거울을 샀고 그 사이에서 연기했어. 하지만 그건 여배우의 일은 아니었지. 자신의 모방물들 속에서 또 다른 모방물을 연기하는 것 말이야. 나는 다른 목소리들 다른 얼굴들 다른 눈들이 필요했어. 그래서 오디션들을 보러 다녔어. 수백, 수천 개의 오디션들. 첫 번째 오디션에서 연기했던 대사는 두 번 다시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없었으므로 나는 다른 대본을 찾아 헤매야 했어. 그것들은 처음 것만큼 완벽하지 않았고 오디션을 보면 볼수록 나는 내 연기에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어.

연기를 하면 할수록 처음의 절망적인 열기는 사라져갔고 나는 끔찍하게 차가운 텅 빈 배경에 홀로 남아 있게 되었어. 연기가 끝날 때까지 나를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내 연기는 아무도 붙들어두지 못했고 나는 내가 입술을 떼자마자 나를 두고 나가는 스텝들과 감독, 배우들의 뒷모습을 슬프게 보아야 했어.

연기를 이어나가면서 나는 누군가 나를 찾아 돌아와주기를, 나만이 남겨진 텅 빈 방에 들어와서 나를 발견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어. 나는 가끔 거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나와 긴 한담을 나누는 감독의 꿈을 꾸었지만 감독은 나를 꿈꾸지 않는 것이 분명했어.

나는 수천 장의 지원서를 썼고 지원서들에는 수천 번 반복되어 쓰인 내 연락처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내게 전화를 걸지 않았어.

TV를 틀면 나보다 못한 여배우들이 수두룩했어. 심지어 돼지나 새, 쥐 여배우들도 보았어. 그녀들은 성공했고 여러 다큐멘터리와 뉴스에 출연했지. 그녀들은 영웅이 되었어. 마침내는 도마뱀 여배우가 주말 연속극 주연으로 등장하더군. 그때 나는 철저히 속았다는 것을 알았지. 도마뱀 여배우가 주연으로 나온 거야.

그녀의 등은 늪에서 헤엄치는 악어처럼 매혹적인 녹빛으로 빛났고 그녀의 두 눈은 밤처럼 검고 아름다웠어. 그녀는 분명 도마뱀이었지. 그녀는 유리병 속에 담긴 채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연기하고 있었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병의 부드러운 표면과 그녀의 달콤한 눈, 나는 그녀가 나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녀가 나일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그녀는 나를 꿈꾸지 않은 거지? 나는 어째서 그녀를 꿈꿀 수 없었던 거지? 나는 수천 개의 오디션들을 보았고 수만의 짐승들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단 한 마리의 짐승도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았어. 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어. 나는 지독하게 꿈꾸었고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모든 벽들을 두드렸어.

난 매일 연기했고 연기했고 또 연기했어. 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이룬 건 그녀였지 나는 아니었어. 그녀가 유리병 속에 갇힌 도마뱀 여자를 연기하고 있는 이상 나는 영원히 그녀를 연기할 수 없을 거야.

나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창문을 타고 낡은 호텔 객실에 숨어들었어. 객실은 다행히 텅 비어 있었지. 나는 욕실 문을 잠그고 거대한 흰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받았어. 물로 가득 찬 욕조는 눈 먼 여자의 심연처럼 연한 푸른빛으로 빛났어.

나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고 은빛의 깨끗한 나이프로 심장을 찔렀어. 그리고 나는 죽음을 꿈꾸었어. 하지만 내게 남은 누군가는 삶을, 빌어먹을 삶을 꿈꾸었고 난 응급실로 이송되어 살아남았지. 병원비를 낼 돈은 없었어.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어.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는 날이면 나는 습관적으로 내 심장을 찔렀어. 팔과 다리를 베어냈고 더 이상 자라지 않을 때까지 꼬리를 도려냈고 스스로 머리를 잘랐어. 열 번의 죽음과 열 번의 실패와 무한한 실패, 누군가가 내 사망 신고서를 대신 작성했고 내게 영원한 죽음을 선고했어. 나는 차라리 행복했어. 더 이상 그녀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까. 더 이상 오디션을 볼 필요도 없었고 더 이상 여배우가 되지 못한 채 살아갈 필요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어. 하나의 꿈은 영원한 꿈이며 무한한 꿈들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걸. 난 계속 오디션을 볼 테고 실패를 꿈꿀 테고 여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빌어먹을 꿈을, 그리고 여배우가 될 수 없다는 빌어먹을 운명을 버릴 수 없겠지.

암도마뱀은 흐느끼면서 간신히 속삭였다. 널 TV에서 봤어. 29번 채널에서, 그리고 다른 채널들에서. 너는 아주 유명한 여배우지. 널 죽여도 나는 여배우가 될 수 없을 거야. 날 죽여도 여배우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여자는 여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여자는 솔직하게 말했다. 난 여배우가 되길 원했던 게 아니야. 난 살인자가 되고 싶었어. 아이들을 남자들을 여자들을 죽이는 살인자. 잔혹한 살인자와 관대한 희생자 모두가 되고 싶었어. 그걸 연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암도마뱀은 여자의 가슴에 작은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거짓은 또 다른 진실이야.

여자는 말했다. 난 관중들을 위해 살인하는 게 아니야. 난 나를 위해 살인하고 싶었어. 하지만 살인은 빌어먹을 연기가 되어버렸지. 모두가 날 여배우라고 말해. 심지어는 꿈에서조차. 난 여배우를 꿈꾸고 있어. 난 더 이상 살인자가 아니라 여배우를 꿈꾸고 있어.

연기는, 암도마뱀은 헐떡이며 말했다. 거짓이 아니야. 넌 살인자고 그리고 여배우인 거야. 넌 살인자이며 동시에 살인자를 연기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너는 여배우인 거야.

우리는, 여자는 속삭였다. 서로의 죽음을 꿈꾸기로 약속했어. 하지만 그 애는 그 애의 죽음을 꿈꿨지. 나의 죽음을 꿈꾸지는 않았어. 난 진심으로 그 애의 죽음을 원했고 그 애는 자신의 죽음을 원했지. 그 꿈에서 나의 죽음을 원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 그 애의 얼굴은 짓이겨진 장미처럼 붉었고 나는 어린애처럼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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