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24

교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하나의 죽음과 하나의 현실, 결코 현실들을 뒤섞어서는 안 돼. 유리, 너는 정말 심각한 상태구나. 네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계속 공부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어. 다른 아이들은 죽음에 잘 적응하고 있단다. 아이들은 죽음이 하나의 악몽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그게 사실이 아니라도 그걸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단다.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사실만을 믿을 수 있어야 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하겠니?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니? 너는 미쳤어, 유리. 삶을 위해서는 단 하나의 단일적이며 지속적인 현실이 필요해. 미치지 않는 삶을, 비명과 울부짖음과 망상과 발작, 정신착란, 무방비하게 깨진 목 긴 유리병과 그 속에 감금당한 파란 새 없는 삶을 위해서는 사실과 사실을 독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단다. 어떤 사실을 선택해도 좋아. 네게 가장 익숙한 사실을 선택하렴. 다른 사실들은 이제 더 이상 사실이 아니야. 다른 죽음은 죽음이 아니며 다른 삶은 삶이 아니야. 알겠니? 진실은 아무 상관 없어. 미치지 않고 사는 데에 진실은 중요하지 않단다.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어. 진실조차도 진실을 알지 못해. 신조차도 진실을 알지 못해. 신은 돌이킬 수 없이 미친 여자니까 신이 하듯이 해서는 안돼. 신은 피투성이 심장들을 먹고 사는 히스테리 여자니까. 너는 존재하지 않는, 미치지 않은 신에게 기도해야 해. 미치지 않았고 긴 수염을 길렀으며 머리 빗는 일을 잊지 않고 매일 샤워를 하는 신 말이야. 심장을 먹지 않고 입술은 음탕한 피투성이의 붉음으로 번들거리지 않고 자기 날개를 매일 찢어버리지도 않고 함부로 다리를 벌리지 않는 신 말이야. 천사들을 사랑해서 흐느끼지 않고 연루된 사물들의 그림자 속에서 잠들지 않고 핏 속의 깃털을 주워들고 미분 불가능한 연속 함수의 그래프를 멍하니 바라보지 않고 날아다니는 목소리들을 들으며 흥얼거리지 않는 신. 너무 많은 시들을 쓰지 않고 오직 한 권의 단정하고 잘 정리된 성서만을 활자체로 써내려가는 신. 목이 굵고 체격이 좋은 신. 빈혈의 파리하고 창백한 푸른 표지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지 않은 신. 너를 강간하지 않는 신. 너를 용서하지 않는 신.

교사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짐승들은 이미 몇 개의 훌륭한 모델들을 만들어냈단다. 너는 마음에 드는, 네가 익숙해질 수 있는 신을 찾아 그 혹은 그녀에게 기도하면 돼. 기도를 위한 신을 네가 직접 만들어도 좋지만 너처럼 미친 여자아이는 분열증적인 신을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으니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신들 중에서 선택하는 게 좋을 거야. 유리, 교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삶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특히 너처럼 어린 아이들은 죽음과 삶을 혼동하며 진실을 추종하고 깨진 거울처럼 어지러운 세계를 모두 살아가려고 마음먹기도 한단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유리. 하나의 파편과 다른 파편을 완전히 분리하는 게 중요해. 알겠니? 하나의 파편이 다른 파편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에는 그저 불가능한 암시나 예감 같은 것으로 생각하렴. 모두가 그렇게 하듯이.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믿거나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고 믿으렴. 나선형이나 원반 형태의 시간관은 좋지 않아. 미친 짐승들만이 바로크적인 나선 형태의 시간을 산단다. 네게 많은 시간을 썼어, 유리. 알겠니? 견딜 수 없다면 돌아가.

여자는 의아한 듯 물었다. 어디로요?

다른 아이들은 여자와 교사를 흘끔거리며 쳐다보다가 곧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거나 책을 들여다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다른 일을 찾아 하기 시작했다.

교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왔던 곳으로.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에서 왔어요. 나는 죽음의 교실에서 태어났고 죽음의 교실에서 자라났고 죽음의 교실에서 말하고 있어요.

교사는 교단에서 뛰어내려 여자를 끌어안았다. 잘했어, 유리. 너는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모두가 그렇게 했단다. 모두가 성스러운 단순함에 굴복하였고 성스러운 단순함을 신봉하기로 마음먹었단다. 하나의 삶 속에서 하나의 삶만을 믿고 사는 게 처음에는 불가능하게 느껴지겠지만 넌 점점 잘 적응하게 될 거야. 수업이 끝나면 반장이 네게 신들의 표본을 알려줄 거야. 학교 구조도 설명해 줄 거고 기도하는 방법도 설명해줄 거란다.

반장, 교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단발머리의 창백한 여자아이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교사는 여자를 끌어안은 채로 계속 이야기했다. 교사에게서는 적갈색의 잎처럼 부드럽고 서글픈 냄새가 났다.

잘할 수 있을 거야. 너는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인식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가려 애쓰는 사물들을 내버려두고 거미줄에 걸려서 죽어가는 나비들을 역겨워하지 않고, 속수무책으로 너를 떠나가는 사라짐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여자는 이곳의 짐승들이, 자기 것이 아닌 제단에서 피를 흘리는 짐승들, 자기와는 무관한 신을 믿고 죽음 이후의 삶을 살고 흩어져 있는 꿈들을 잊으려 애쓰는 짐승들이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상은, 가장 악독한 형태의 망상이다. 정상은 끔찍한 환각이며 광증이다.

교사는 악몽들과 부서짐과 사라짐에 대해 알면서도 여자를 위로하듯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여자는 치밀어오르는 구역감에 기침을 해댔다.

난 꿈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에요. 여자는 흐느끼며 속삭였다. 난 단지 더 이상 강간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더 이상 살해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더 이상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에요.

교사는 교단 위로 올라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이 애는 죽이고 싶지 않았다는구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교사는 달콤한 폭소를 억누르며 비밀처럼 웃었다. 이 애는 죽고 싶지 않았다는구나.

다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아이들은 여자를 흘긋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들과 함께 웃었으나 곧 웃음을 그쳤다.

교사는 말했다. 내가 너희처럼 어렸다면 난 하늘로 올라갔을 거야. 너희는 어째서 지상에 남아있는 거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내 담임선생님은 나를 미워했어. 정말이야. 그 여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미워했어. 그때 우리는 한 마리 암캐를 기르고 있었고 개는 내 발을 핥고 있었어. 담임은 비명을 지르면서 내 뺨을 때렸어. 뭘 하고 있는 거니? 담임은 붉은 눈으로 나를 쏘아보면서 그렇게 물었어.

뭘 하고 있는 거니?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어. 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우린 뭘 하고 있고 너희들은 또 뭘 하고 있지?

남자아이 한 명은 갑작스럽게 손을 들고 우리는 살아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여자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래, 우리는 살아 있어. 우리는 살고 있지. 하고 대답했다. 우리는 삶의 꿈을 꾸고 있어.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꿈,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대화, 먼저 암소의 젖을 짜냅니다. 손을 모으고 부드럽게 짜냅니다. 그리고 암소의 젖을 암소에게 먹입니다. 암소가 토해낸 것은 암소의 두개골에 붓습니다. 그걸로 좋은 거야. 얘들아. 암소의 젖을 마시고 암소는 살아간단다. 암소의 젖을 마시고 암소는 점점 죽어간단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혹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심연의 길. 우리는 오직 헤매기 위해서 길에 들어서지. 목적지 같은 건 없어. 길도 없어. 길이라고 이름붙인 건 나선형 혹은 직선 혹은 원형 형태의 꿈의 관이란다.

담임은 내가 빌어먹을 년이라고 했어. 따돌림을 당하고 개처럼 기어서 그 애의 발을 핥아야 하는 건 나라고 했어.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어.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고개를 끄덕였어. 차량 앞 유리에 부착해 놓는 머리가 무거운 인형처럼 나는 머리를 달랑거리면서 울었어. 암캐는 내 무릎을 어루만지면서 위로하고 있었어. 그 애가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큰 슬픔을 느꼈어. 이해가 되니? 얘들아. 한 마리의 가장 작은 새를 선물받은 여자는 지상에서 가장 큰 모욕을 받고 울었단다. 새는 너무 여리고 아름다워서 여자는 가슴이 뜯겨져나가는 것 같았어. 여자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모멸감에 헐떡이면서 울었어. 나는 그 여자처럼 울었어.

담임은 우리를 오래도록 지켜봐 왔다고 말했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혹은 화형당한 예언자. 하지만 그 애를 암캐로 만든 건 내가 아니었어. 나는 그렇게 변명하는 대신 담임의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어. 너는 빌어먹을 년이야. 알아? 네가 무얼 했는지 아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알아요. 내가 교수형 당해야 마땅하다는 걸. 전염병이 퍼지자 방랑객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찾아오는 손님 또한 없었죠. 프로크루테스는 마침내 자신의 침대에 누웠어요. 그의 침대는 그의 몸에 꼭 들어맞았어요. 그는 그의 꿈이 침대보다 길어지기를 묵묵히 기다렸어요. 교수형당한 사람처럼 붉고 굵은 그의 목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는 참았어요. 그는 기다렸어요. 마침내 그의 꿈은 이전의 꿈보다 길어졌고 그는 자신의 발목을 잘라냈어요. 혹은 팔목을, 혹은 머리를, 혹은 그 모든 것을.

상상해봐, 얘들아. 발목이 잘려나간 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 혹은 머리가 잘려나간 채로 발목을 썰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남은 몸. 잘려나간 머리는 나무침대 아래의 구석에서 자신의 최후를 멀거니 올려다보고 있겠지. 잿빛의 집쥐들이 머리통 근처에서 수줍게 찍찍거리고 있겠지. 누군가 그 암소의 머리통에 우유를 부어주어야 해. 암소가 우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암소가 우유의 꿈을 꿀 수 있게. 우유 속에 빠진 한 마리 파리처럼 암소가 순수할 수 있게. 첫 햇살의 달콤하고 비린 냄새, 암소가 우유를 상상하며 죽어갈 수 있게. 누군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암소에게 우유를 쏟아부어야 해.

교사는 물고기처럼 손을 퍼덕거리며 초조하게 교단 위를 서성거렸다. 담임은 승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어. 담임은 내가 빌어먹을 년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아봤다고 말했어. 그녀는 아스테카의 파멸을 예견한 예언자처럼 의기양양해 보였어. 불구덩이 속에서 환희로 웃음짓는 예언자처럼. 칠레의 대지진 때 종말처럼 문드러지던 지상 위에서 신을 찬양하던 숭배자처럼. 대지진은 감옥을 무너뜨렸고 수도원을 무너뜨렸고 썩어가고 있던 모든 강물을 무너뜨렸고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사형수는 지상의 절멸과 피투성이 시체들 위에서 신께 기도드렸지. 그의 눈에서는 따뜻하고 행복한 숭배의 눈물이 흘러내렸어.

담임은 예언자처럼 나의 종말을 축복하며 신처럼 자비롭게 나를 용서해주겠다고 했어. 나는 그녀의 용서에 감사를 표하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 애를 암캐로 만든 건 내가 아니었어. 다리가 다리임을 포기할 수 없듯, 다리가 다리임을 벗어던질 수 없듯, 그러나 첫 번째 조우를 마주하기 위해 고개를 돌린 다리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렸지. 다리는 다리가 아닌 무언가가 되었지.

담임이 교무실로 돌아간 뒤, 텅 빈 교실에는 나와 암캐밖에 없었어. 암캐는 나의 그림자처럼 벌거벗고 있었어. 나는 암캐에게 다리는 다리임을 그만둘 수 없다고, 하지만 다리임을 그만둔 다리도 있다고 말했어. 다리는 다리가 아닌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어.

암캐는 모든 것을 이해했어. 그래서 그녀는 벌거벗음을 그만두었고 그녀의 등 위에 올라탄 첫 번째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순식간에 무너져내렸지. 그녀는 더 이상 그녀의 황홀한 흰 등을 밟고 지나갈 그림자를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서글픈, 잊혀진 다리가 아니었어. 그녀는 불현듯 일어섰고 두 다리로 걸어갔어. 그 애는 맨발을 내밀었고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그 애의 발을 핥았어. 나는 그 애의 그림자처럼 그 애의 뒤를 따라 걸어갔고 그 애는 강렬하게 증발하는 햇빛처럼 반짝이고 있었어.

다음 날 담임은 조회 시간에 나에 대해, 내 비열한 악행에 대해 이야기했어. 암캐를 암캐로 만들었던 아이들은 암캐가 두 다리로 일어선 것을 보았어. 무너진 다리 위에서 암캐는 똑바로 직립하고 있었어-의자 위에 앉아 있는 것 역시 직립하는 것이므로- 암캐를 암캐로 만들었던 아이들조차도 숭고한 분노에 휩싸여 나를 비난하였고 나는 벌거벗은 채 두 개의 길목 위에 엎드려야 했어.

하지만 아무도 그 다리를 건너가지 않았어! 얘들아, 믿겨지니? 나는 벌거벗은 채로 엎드렸는데 아무도 다리를 찾지 않았어. 다리는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았고 심연 사이로 벌어져 있는 두 개의 땅을 아무도 지나가려 하지 않았지. 나는 벌거벗은 채로 잊혀졌어. 단 한 명의 여행자도 단 한 개의 이동하는 꿈도 그림자도 없었어. 풍경조차 없이, 나는 홀로였어.

다리임을 그만둬야 해, 나는 생각했어. 다리임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젖은 땅을 붙잡고 있느라 벌어져 피를 흘리는 손톱과 발톱을 모두 잊고 그대로 손을 놓아 떨어져내려야 한다고. 그러면 다리는 산산히 부서질 것이고 나는 인간의 비명을 혹은 짐승의 비명을 내지를 것이고 다리는 더 이상 다리가 아닐 테니까. 하지만 다리가 여전히 다리라면? 떨어져내린 뒤에도, 무너진 뒤에도 다리는 여전히 다리일 뿐이라면? 오, 얘들아. 너희는 알고 있지. 다리가 무너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너희는 무너진 잔해를 질질 끌고 여기까지 왔고 나는 너희에게 다시 다리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어. 우리는 봉분조차 없이 생매장되고 질식해가는 심연 속에는 거울과 메타포들이 가득하지. 우리의 메타포들과 우리의 거울들 앞에서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찾아 내려오기를 기다려. 하지만 봉분 없는 무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아무도 발견하지 못해. 우리는 생매장된 채로 영원히 잊혀져. 땅은 너무 많으니까, 흙은, 구멍은, 심연은, 죽음은 너무 많으니까 아무도 우리를 찾지 못할 거야. 언어만큼이나 많은 흙, 언어만큼이나 많은 죽음과 언어만큼이나 많은 메타포.

다시 다리가 되면 다리로부터 부서지던 순간을 잊을 수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다리로부터 무너져내려야 할 거야. 다시 다리가 되었으므로 너희는 다시 무너져내려야 할 거야. 죽음은 피할 수 없으므로. 너희는 몇 번이고 다시 죽어야 할 거야. 암소의 젖을 짜내 암캐에게 먹이고 암캐의 고기를 암소에게 먹이는 거야.

담임은 나를 경멸하고 있었어. 난 매일 이 자리에서, 교사는 왼쪽 앞에 앉은 아이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군가 나를 짓밟고 지나가기를 나를 다리로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조롱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았어. 나는 더 이상 다리조차 아닌 것 같았어. 오직 담임만이 나를 경멸했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어. 언젠가 그녀가 나를 밟아 무너뜨리러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어. 다리는 마침내 손님을 맞이하고 그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해 등을 돌려 뒤를 돌아보고 무너져내리지. 하지만 다리가 본 건 다리의 그림자였어.

얘들아, 내 사랑스러운 유령들, 내 사랑스러운 암소들. 전학생에게 잘 대해주렴. 우리는 결국 남의 묘를 지키는 묘지기밖에는 되지 못하겠지. 기껏해야 남의 신을 받들어주는 무당, 혹은 남의 몸에 영혼을 비비적대며 울부짖는 유령일뿐이야. 남의 묘 앞에서 우리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지키던 묘에 우리가 묻힐 수 있기를 바라지만 결국 우리는 영묘와는 전혀 무관한 곳, 버려진 늪에 묻히겠지.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닌 묘들을 돌보며 평생을 희망하는 거지. 유령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짐승의 소리로 울면서 악몽들을 낳고 마침내 우리는 그 희멀겋고 보잘 것 없는 악몽조차도 가질 수 없음을 깨달아.

얘들아, 우리의 피투성이 죽음, 피와 살을 가진 죽음을 위해 전학생을 잘 보살펴야 한단다. 다리가 다리일 때의 규칙들을 기억하렴. 다리가 무너지는 순간을 위하여 다리는 다시 다리가 되어야 한단다. 우리는 결국 같은 글을 영원히 반복해서 쓰고 있는 거야. 오직 하나의 글, 하나의 시, 하나의 메타포를 무한하게 증폭시키고 있는 거지. 그럼에도 단 하나의 조각조차도 발견되지 않을 거란다.

사냥꾼 그라쿠스가 써내려간 죽음의 묵시록을 아무도 읽지 않을 거란다. 사냥꾼 그라쿠스는 그의 강으로 돌아갔지. 죽음의 바람은 심연으로부터 불어오고 있고 그라쿠스는 영원히 떠내려가야 한단다. 리바의 시장은 홀로 남겨질 테지. 실종자와 유령에 관한 그의 완성되지 못한 논문도 그와 함께 남겨질 테지. 아무도 그의 논문을 읽지 않았지. 리바의 시장은 실패한 연구자인데 왜냐하면 그가 그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려 했기 때문이야. 논문은 결코 발표해서는 안돼. 심지어는 글로 써서도 안돼지. 유령과 실종자에 대한 망상은 머릿속에 쌓아놓은 뒤 곧바로 무너뜨려야 하는 거야. 가장 좋은 것은 쌓아가는 순간순간 바로 무너뜨리고 무너뜨리며 쌓아가는 거지. 그래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누구도 읽지 않을 생각들이 무수한 실패와 출판의 거부와 짐승같은 고독을 겪지 않을 테니까. 다리는 무너지면서 쌓아올려져야 해. 다리가 다리임을 상기하기 전에 다리는 무너지고 또 다시 쌓아올려져야 해. 얘들아, 그건 아주 위험하고 또 불가능한 일이지. 아주 어려운 일이란다. 너희는 결국 너희가 다리라는 걸 상기하고 말았지. 무너지고 난 뒤에도, 너희는 다리에 대한 관념을 잊을 수 없었지. 논문을 출판해서는 안 돼. 출판하려 시도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는 종이 위에 적어내려서도 안돼. 그건 끔찍한 낭비니까. 어디에도 번져가지 않을 질병을 배양하기 위해 나무를 살해하고 우체부를 학대하고 무엇보다도 너희 자신을 불가능할 일로 괴롭힐 필요가 없을테니.

다리는 다리임을 내면의 비밀로 간직해야 해. 희망의 싹을 도려내면 희망 없음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거야. 뿌리가 뜯겨져나간 땅은 오히려 희망의 씨앗이 숨겨져 있을 때보다 더 명확히 희망의 부재를 부재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겠지. 이런 식으로 리바의 시장은 유령과 실종에 대한 무수한 논문을 썼고 그 논문들은 모두 잊혀졌고 심지어는 잊혀지기도 전에 발견되지도 않았으며 나는 망각된 사물처럼 교실 앞쪽에 앉아 개와 죽음에 대한 많은 논문들을 구상하고 있었단다.

나는 스무 편 가량의 긴 논문들을 썼고 심지어는 시도 썼지. 시를, 그래, 얘들아, 시를 썼어. 아직 출판하지도 종이에 옮겨쓰지도 못한 시들이 39425편 있단다. 난 하나도 잊지 않았어.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열 편의 시를 쓸 때마다 첫 번째 시를 다시 복기해보곤 했단다. 스무 편을 쓸 때는 첫 번째 시부터 다시 고쳐쓰고 마흔 편의 시를 쓸 때는 스물한 편째의 시를 고쳐쓰는 식이었지. 시의 제목을 나는 모두 숫자로 지었어. 나는 시를 쓰고 외우고 다시 고쳐쓰고 하는 과정을 수만 번 반복했어. 39425편의 시들을 나는 정확하게 외우고 있지. 물론 외우거나 고쳐쓰는 과정에서 피치못할 수정이 가해졌을 가능성도 있어. 무의식 중에 나는 전혀 다른 시를 3949의 시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지. 나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기억의 변형을 수정할만한 증거자료는 어디에도 없어. 모든 것은 내 뇌의 주름, 혹은 얼룩 위에 쓰여졌고 내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지. 너희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야.

나는 이 자리에, 여자는 왼쪽 앞줄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서 지금도 너희에 대해 몽상하고 너희에 대해 시를 쓰고 있단다. 내가 너희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걸 알면 내 담임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아주 오래전에 그 담임의 학생이었고, 얘들아, 사실은 지금 이 순간도 그녀의 학생이란다. 지금 나는 너희의 담임교사인 꿈을 꾸고 있지만 또 다른 꿈에서 나는 이미 끝까지 지나쳐왔던 암캐란다. 그 꿈에서 지금은 비현실적인 공상 혹은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불가해할 정도로 구체적인 예감이지. 꿈들은 기울어진 축을 따라 자전하고 그와 동시에 공전하고 있어. 시계방향으로 혹은 시계의 반대 방향으로 혹은 나선형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기하학으로. 불완전한 회전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어.

난 누군가 내게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을 때를 대비해 둘러댈 변명거리들을 시의 한쪽 구석에 정렬해 놓지만 아무도 묻지 않아. 나는 아직 미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 나는 얌전히 앉아서 눈꺼풀의 밑면에 시들을 지나치게 많은 시들을 적어넣고 있지만 아직 바깥이 온전히 보이는 것처럼 행동해. 암캐를 암캐로 만든 건 내가 아니에요! 그럼 대체 누가 암캐를 암캐로 만들었지? 누가 암캐의 고기를 암소에게 먹였지? 누가 암소의 젖을 암캐에게 주었지? 독일의 철학자는 생식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했어. 생의 빌어먹을 사이클을 절단내고 우리는 절멸을 향해 조심스럽고 신중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고 그는 말했을 거야. 강간당하는 것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는 것을 그만두고 살해당하는 것을 그만두고 하멜른의 쥐떼처럼 검은 강을 향해 순순히 기어가야 한다고. 백지의 수의를 뒤집어쓴 채로. 알겠어? 조롱당한 작가들, 그들이 무엇을 썼는지 봐. 우리는 백지를 발명해냈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텅 빈 공간을 발견해냈어. 그것은 죽음의 완벽한 메타포였고 검음의 절망적인 반대항이었어.(하지만 대체 누가 검은색의 반의어가 흰색이라고 했지? 그건 내가 국어 시험에서 유일하게 틀린 문제였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야. 얘들아, 너희를 가르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어째서 검은색의 반의어가 흰색인지 이해할 수 없어. 검은색은 흰색에 반하는가? 검은색은 흰색을 증오하는가? 검은색은 흰색 없이 존재할 수 없는가? 검은색은 홀로 검을 수 없는가? 검은 땅은 흰 땅 없이 존재할 수 없는가? 검은 여자들은 흰 창 없이는 번식할 수 없는가? 검은 죽음은 희고 날카로운 칼의 메타포 없이는 발아할 수 없는가? 검은색은 흰색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는가? 그림자는 빛을 떠나 진창이 된 몸을 질질 끌며 기어갈 수 없는가? 마침내 찾아낸 그늘 아래에서 그림자는 눈을 감고 찢겨나간 육신을 꿰맬 수 없는가? 검은 빛은 존재하지 않는가? 흰 그림자는 존재하지 않는가? 검음은 흰색을 배반하는가? 흰색은 검은색을 살해해야만 하는가? 혹은 흰색을 위하여 검은색을 남겨두어야 하는가? 어째서 검은색은 흰색의 반의어지? 어째서 검은색은 흰색에 반해야만 하지? 어째서 흰색은 검을 수 없고 검은색은 흴 수 없지? 하지만 나는 또 빌어먹을 메타포를 사용하고 있군. 백지가 검음의 반대항이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백지가 검음의 반대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군. 이 순진하고 멋모를 유령들, 혹은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늙은 아이들은 내 메타포를 그대로 모방하고 반복하겠군. 이 애들은 흰색이 검은색의 반의어라고 철석같이 믿을 거야. 혹은 의아해하겠지. 어째서 흰색은 검은색의 반의어지?

난 이 애들에게 대답해줄 말이 없어.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흰색은 검은색을 배신할 것이고 흰색은 검은색을 살해할 것이란다. 흰색은 살해자이고 검은색은 희생자란다. 그러므로 흰색은 검은색의 반의어란다. 하지만 너희는 희고 또 검구나. 우리는 모두 희고 또 검지. 심지어는 흰색조차도 희고 또 검고 검은색도 검은 동시에 희지.

얘들아, 나도 잘 모르겠어. 흰색은 어째서 검은색의 반의어이지? 검은색은 어째서 흰색의 바맅에서 질질 끌려다니면서 흐느끼는 거지? 하지만 검은색은 흰색의 발치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어. 믿을 수 없이 느린 속도로, 그러나 분명하게 멀어지고 있어. 흰색은 그림자를 잃어버릴 것이고 검은색은 빛을 잊을 것이고 하얀 그림자는 공중을 둥둥 떠다니며 너희에게 말을 걸 거야. 사랑하는 아이들아, 하얀 그림자들은 너희를 유혹할 것이고 너희를 다리가 아닌 것으로, 죽음도 유령도 아닌 것으로 이끌 거야. 검은 유령들이 너희를 끌어안을 것이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위로할 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출구의 메타포조차도 발견되지 않았어. 우리는 출구의 망상조차도 만들어내지 못했어.) 얘들아, 시를 쓰는 여자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단다. 가정과 자상한 아버지와 관대한 어머니, 희생자의 지위와 반짝이는 검은 상처, 콧잔등을 간질이며 흘러내리는 봄비와 부드럽게 타오르는 검은 밤, 다정한 입맞춤과 애틋한 기다림, 그 모든 것들을 잃게 된단다. 홍채는 눈 먼 여인의 연한 하늘빛으로 변하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강간하며 어머니는 할머니를 강간하고 할머니는 손주를 솥에 넣어 삶으며 손주를 위한 송아지 고기를 준비하고 벌어진 하늘의 상처에서는 별처럼 많은 구더기들이 흘러내리고 암소는 암캐의 고기를 물어뜯고 있으며 암소의 창자와 함께 흘러내린 흰 우유를 마지막 만찬으로 마시고 있는 암캐는 너희를 검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사랑할 거란다. 가장 작고 사랑스러운 새는 끔찍한 모욕이 될 거란다.

시를 쓰는 건 죽음보다도 위험한 행위야. 시를 쓰는 건 사랑과 출혈로 붉게 달아오른 홍채를 이식하는 것과 같아. 돌이킬 수 없는 경이를 몸 속에 품고 흰 모래 속에 몸을 묻는 것과 같아. 검붉은 버찌가 열리기를 기대하면서. 글쓰기는 죽음보다 위험하고 위대한 글쓰기는 더더욱 그렇지. 백지의 글쓰기만큼 위험한 건 없단다. 나는 내 몸 속에 시를 써넣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위대한 시인이 되었으며 동시에 미친 여자가, 투명한 다리, 암캐가 되어버렸지.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내 비밀을 그 누구도 발견하지 않을 거야.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수만 편의 시를 완성할 수 있을 거야. 생애 내도록 쓰고 또 고쳐쓰는 시들은 사실 전부 같은 시지. 그것은 생명이고, 피투성이인 묘이지. 묘의 밑에는 남의 살과 남의 영혼과 남의 흐느낌이 묻혀 있단다. 우리는 그 묘가 우리의 것이라고 믿고 혹은 언젠가 우리의 것이 되리라고 믿고 평생 그 묘를 지키지만 그것은 결코 우리의 것이 되지 않지. 우리는 잊혀진 땅에서 묘지기조차도 없이 질식해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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