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7

삶이 일회적인 것이라고 믿을 때는 모든 게 쉬웠죠, 하고 교사는 말했다. 아이들은 옥상에서 뛰어내린 뒤 천사가 되리라는 희망에 잠겨 사라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바스라져 산산조각난 몸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이제 우리는 천사가 정신이 아니라 육체, 그것도 가장 새빨간 고기라는 것을 알죠. 교사는 슬프게 웃었고 그녀의 자줏빛 잇몸이 드러났다. 신원미상의 시체들은 실습용으로 기증되고 냉동고 속에서 눈꺼풀의 근육이 돌이킬 수 없이 손상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멍하니 침잠하는 자줏빛의 시체를 느껴요. 근육이 벌려지고 신경섬유들이 찢겨나가고 뇌가 수백 개의 촘촘한 단면으로 쪼개지고 난 뒤 아이들은 다시 학교로 와요. 그 애들은 마치 한 번도 찢어지지 않은 것처럼 웃고 그런 애들을 볼 때면 나는 당장 찢어지고 있는 것처럼 메슥거려요. 가끔 나는 가슴이 벌어진 채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선생님은, 인형은 엄숙하게 뻐끔거렸다.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아니에요. 교사는 슬픔에 젖은 얼굴로 속삭였다. 이건 그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에요. 죽음을 믿을 수 있다면 그 편이 가장 좋겠죠. 천사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고 믿으면. 하지만 사방에는 고기가 있고 고기들은 시뻘건 피를 흘리면서 살아 있어요. 도처에 널려 있는 고깃덩이들을 그 누구도 새로이 발견하지 않죠. 고기는 너무 흔한 것이고 천사들은 뼈에서 발려나온 부패해가는 고깃덩이에 불과해요. 적어도 최초의 죽음은 감사와 함께 이루어졌을 거예요. 아이들은 죽을 수 있음에 끝으로 돌진할 수 있음에 감사했을 거예요. 하지만 죽음 뒤에는 영원한 끝이 아닌 영구적인 고기가 남죠. 부패해가며 불멸하는 고기. 그 애들은 영원히 죽어야 함을, 그리고 죽음의 뒷면에 깊이 침잠한 삶을 감당해야 함을 깨달아요. 아이들은 언제 죽었냐는 듯 학교로 돌아가고 감사할 수 없다고 말해요. 살아있음에, 가장 치욕적인 기적처럼 살아있음에 도저히 감사할 수 없다고. 슬픔도 원망도 감사도 없이 살아있는 것, 다만 살아있는 것, 내가 그 애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매일 끔찍하던 부서짐의 순간을, 갈비뼈 아래로 냉혹하게 틈입하던 단면의 날카로움을 느껴요. 우리는 다시는 죽고 싶지 않고 영원히 죽어버리고 싶죠. 그렇지만 사회자님, 죽음은 신조차도 베풀 수 없는 기적이에요. 신은 오직 삶만을 가르치죠. 빌어먹을 기적으로 도래한 생명을. 한 번 발현한 생명을 사물을 사물들의 시체와 사물들의 그늘을 사물이 아닌 것으로 돌릴 방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세계를 떠도는 무수한 먼지의 소음은 해일과 같은 적막에 잠겨든 뒤에도 여전히 사물이니까요.

난, 복화술사는 인형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굵은 남자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당신 같은 사람이 있음에 감사해요. 당신은, 그리고 당신의 사랑스러운 학생은 감사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어쩔 수 없이 당신에 감사해요. 당신이 아이들의 죽음을 바라 주어서, 그리고 아이들의 미결된 죽음과 함께 살아 주어서.

교사의 얼굴은 젖어 있었다. 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천사의 학교라는 이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실이에요. 그 애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익명의 푸른 얼굴들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출석조차 부르지 않죠. 이름과 생년월일 같은 건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교사는 목이 멘 듯 잠시 침묵하였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삶이 감옥 같다고 말할 때마다 난 속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프지만 그 애들의 이름을 불러 위로해줄 수는 없어요. 난 그 애들의 이름을 모르고 그 애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저 검붉게 부풀어오른 어깨를 끌어안고 문지르며 감옥 안에서도 창문을 상상할 수 있다고 위로할 뿐이죠. 아, 사물들에게도 살과 삶이 있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이름도 구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도 없는 사물들에게 그토록 깊은 그늘과 예민한 촉수들이 있다는 건. 하나를 잃은 것이 차라리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감정도 고통도 기대도 서글픔도 절망도 삶도 마침내는 존재조차도 없이 떠내려갈 수 있다면. 그러나 가혹하게도 사물들은 사물들의 삶을 가지고 있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염적인 생명들. 솔직히 나는 아이들에게 무얼 더 가르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애들이 잘 견디고 있다며 기특해 하죠.

한 번은 사회면의 기자가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주 정중하고 신중한 사람처럼 보였는데도 아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하더군요. 아이들이 정상인 것처럼 보인다고 아이들이 전부 치료된 것 같다고. 마치 한 번도 미치지 않았고 한 번도 강간당하지 않고 한 번도 살해당하지 않고 한 번도 자살하지 않고 한 번도 죽지 않은 것처럼 아이들이 행복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어요. 모든 게 한 번으로 끝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애도를 즐길 수 있었어요. 한 번의 배신만으로 이야기가 끝난다고 생각할 때는.

하지만 죽음 이후에도 삶이 있고 미쳐버리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고 자살한 뒤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전과 달라졌죠. 모든 게 이전과 달라졌어요. 신을 처음으로 죽이고 난 뒤에 우리는 신을 처음으로 발명했을 때처럼 행복해했지만 신은 괴물의 거대하고 풍만한 자궁으로 몇 번이고 되살아났죠. 우리는 그제야 신이 죽으면서 계속해서 살아나는 발작적이며 영속적인, 빌어먹을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 아이들을 죽인 자는 사형당한 뒤에도 멀쩡히 살아 있죠. 놀라운 건 가장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일수록 신에게 충실하고 숭고하며 신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삶에, 신에 그 누구보다도 순종적이었다고 생각하죠. 그들은 전기 의자나 교수대 위에서 한 번의 죽음을 치러낸 뒤에 마치 그 자신이 부활한 신이라도 된 양 감격하여 도시 곳곳을 떠돌죠. 락스타처럼 추앙받고 그 자신처럼 불멸하는 책을 펴내는 작자들도 있어요. 하지만 살해된 아이들을 추앙하는 자들은 없어요. 아이들은 취약한 천사의 심장을, 점액질의 축축한 내장을 피부 밖으로 꺼내놓은 채로 다시 살아났고 아이들을 연민하는 자들은 있어도, 정말이지, 숭배하는 자들은 없어요. 아이들 스스로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신을 사랑하지 못해요. 숭배와 신성은 살해자들의 속성인 것처럼 보여요. 아이들은 심장 밑을 꿰뚫는 냉혹한 통증과 막연하고 모호한 검은 물로 가득 찬 악몽에 시달리며 삶을 배회할 뿐이에요. 신은 가혹하게도 새로운 신을 강요하며 아이들은 신성으로 영원히 되살아나죠.

생명은 병처럼 전염적이에요. 아니, 생명 자체가 일종의 병과 같아요. 빌어먹을 바이러스는 숙주의 내부에 오래도록 잠복해 있다가 가장 치명적인 독으로 숙주의 심장을 짓뭉개고 떨리는 푸른 입술에 입을 맞추고 호흡을 불어넣는 다른 입술로 넘어가죠. 그런 일이 수천만, 수억 번 반복되어요. 우리는 에너지와 존재가 어디로도 사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실종되고 난 뒤에도 사물들의 시체는 영원히 남아있다는 걸 알아요. 썩어버리고 난 뒤에도 유골마저 바스라진 뒤에도 허공을 떠도는 천사들의 울음소리가 있다는 걸 알아요.

가장 좋은 건, 교사는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우리도 독을 가지고 있다는 걸, 숨을 내쉴 때마다 살해자의 검은 칼날을 쏟아내고 있다는 걸 깨닫는 거예요. 살해자들이 희생자들인 만큼 희생자들 역시 살해자들이라는 것을. 이제 세상에 멸균된 공간은 어디에도 없어요. 해치고 전염시키고 찢고 아프게 만드는 것이 끔찍하게 두려워서 추락하고 목을 맨 아이들은 결국 다시 살아서, 독으로 거게 물든 고통스러운, 병든 숨을 내쉬고 말죠. 생명은 최악의 방식으로 퍼지고 순환하며 번져나가요.

복화술사는 어느덧 다시 꺼내든 인형의 입을 야릇하게 벌리며 말했다. 아이들은 무섭죠. 정말 무서워요.

교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형의 입이 다시 클로즈업 되었다.

사실 나는 소아 공포증이 있어요.

방청객에서 안도 섞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정말이에요. 아이들은 나를 볼 때면 예고도 없이 머리를 잡아당기곤 하죠. 난 꽃이 꽃을 무서워하는 것만큼이나, 선인장이 바다를 두려워하고 상어가 사막을 무서워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을 무서워해요. 아이들은 날 거침없이 벌거벗기고 다리를 들춰올리죠. 그리고 내게 성기가 없다는 걸 알고는 꺄르륵 웃으면서 그 작은 고사리 손가락으로 내 배를 찢어내요. 한 번은 정말 큰일 날 뻔했죠. 다시는 TV쇼로 돌아오지 못할 뻔 했다니까요! 그때 우리는 해변으로 바캉스를 떠났는데 내 파트너는 바다로 수영을 하러 갔고 난 모래사장에 누워 쉬고 있었어요. 아니, 왜 웃는 거죠? 내게도 충분히 더 검어질 수 있는 피부가 있답니다. 방청객들의 웃음소리, 박수와 웃음 기계음, 인형은 과장되게 입을 벌리며,

익사 사건이 있고 난 뒤였어요. 난 빌어먹을 물만 보면 없는 이가 다 빠질 정도였지만, 인형은 동굴처럼 검은 입속을 장난스럽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실없는 파트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돼지처럼 뒤뚱거리며 바다로 들어가더군요. 내게 바다로 들어가서 놀지 그러냐고 묻길래 주둥이를 물어뜯어 주었죠. 복화술사는 인형의 입을 그의 자줏빛 입술을 향해 붙이며 킬킬거렸다. 여하튼 모래사장 위에서 난 황금빛의 축축한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어요. 그때 갈색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여자아이가 다가오더니 분홍빛 통통한 손가락으로 나를 주워들더군요. 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내 자리에 되돌려 놓으라고 소리쳤지만 여자아이는 귀 먹은 것처럼 내 말을 무시했어요. 교사는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인형의 검은 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교사의 얼굴 옆선은 조명에 가늘게 이지러져서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그 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서는 내 입 속에 손가락을 밀어넣고 웃었죠. 그러고는, 오, 그 애는 내 입과 귀에 모래를 밀어넣었어요. 난 구역질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서 그 애가 나를 희게 달아오른 황금빛 먼지로 가득 채우는 걸 멍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죠. 파트너가 수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 영원 같은 시간 동안 난 끔찍하게 거북스러운, 마비된 몸으로 노랗게 변해버린 아이의 악몽 같은 미소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 이후로 난 아이들만 보면 이빨 없는 입이 바들바들 떨리고 숨이 막혀 기절하고 만답니다, 끝!

인형은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며 익살을 떨었고 다시, 웃음과 박수의 기계음과 방청객들의 웃음소리. 교사는 당신의 인형은 정말 사랑스럽군요, 하고 복화술사를 향해 웃어보였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사와 카메라를 향해 무릎을 굽혀 과장되게 인사했다.

당신의 인형이 겪은 불행에 대해서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하고 교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인형을 보면 아주 작고 손쉬운 사냥감을 눈 앞에 둔 맹수처럼 잔혹해지죠. 하지만 인형의 얼굴에 가위를 꽂거나 인형의 입과 귓속에 모래를 부어넣는 장난을 치지 못하면 아이들은 미쳐버리고 말아요. 마침내는 자신의 얼굴에 가위를 꽂고 제 입과 귓속에 모래를 부어넣게 되어버리죠. 그래서 난 아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잔혹하게 구는 걸 말리지 않아요.

아이들은, 교사는 서글프게 말했다. 정말 놀랄 정도로 빨리 배워요. 난 여자아이가 인형의 음부를 가위로 찢어내고 그 속에 엄지손가락을 박아넣으면서 욕설을 퍼붓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방과 후였고 다른 아이들은 취침실로 들어간 뒤였죠. 난 학습 교재를 챙기러 교실로 돌아갔는데 그때까지 교실에 불이 켜있는 걸 보고 놀랐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는, 교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잠깐의 침묵 뒤 교사는 말을 이었다. 그 애는 강간당한 뒤 살해되었던 아이였어요. 성폭행 뒤 범인은 그 애의 음부에 가위를 꽂아넣었고 그 편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고 경찰에게 자백했다는 것이 기사화되었죠. 보기 좋다, 창녀야, 하고 그 애는 끔찍하게 큰 소리로 비명처럼 외쳤고, 난 경악한 채 그 애의 손에서 인형을 뺏어들었어요. 인형은 너무나 절망적으로 망가져 있었어요. 난 인형을 당장 버리려고 했고 그 애는 내게 매달려 애원하면서 인형을 돌려달라고 했죠. 넌 인형을 미워하는 게 아니니? 하고 내가 묻자 그 애는 인형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울었어요.

그래서, 인형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인형을 돌려주었나요?

그래요. 교사는 대답했다. 돌려줄 수밖에 없었어요. 인형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인형이 뭔데요?

사물이죠.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물. 하지만 정오가 지나가면 사물은 다시 제 그림자를 발견하게 되죠. 그런 공격성은 대부분 살해당한 아이들에게서 나타나요. 아이들은 제 몸에 닥친 일들을 그대로 기억하고 반복해요.

범인을 찾아가서 복수하는 경우도 있나요? 인형이 물었다.

아니요. 복수심이 범인이나 범인을 닮은 성인 남자를 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대부분의 살해된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그 살해를 반복하고 그게 아니면 인형이나 개, 고양이, 병아리와 같은 사물들에게 폭력을 가하죠. 마치 폭력의 답습에 사물을 향한 방향성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마치 잔혹함의 본성은 사물과 연약함에 대한 갈취인 것처럼. 게다가 아이들의 대다수는 학교에 남고 싶어 해요. 아이들은 더 이상 바깥을 꿈꾸지 않아요. 삶은 영원한 내부이고 바깥에는 죽음조차 없다는 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가끔 애들은 너무도 늙은 여자처럼 보여요. 남자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애들은 늙은 여자처럼 숨죽여 흐느끼고 늙은 여자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큰 소리로 비명처럼 웃어대죠.

적어도, 교사는 말했다. 나는 살해당한 인형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아이들이 직접 정리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요. 난 아이들이 인형의 얼굴에 게걸스럽게 가위를 꽂아넣고 숨죽여 흐느끼며 그 조그맣고 여린 입에는 어울리지 않는 욕설을 내뱉으며 피처럼 검은 눈물을 흘리는 동안 교실 뒤에서, 혹은 복도 창문에 가만히 서서 그 애들을 지켜봐요.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사실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오면-아이들은 놀랄 정도로 얌전해지죠. 그러면 난 그 애들에게 인형들과 짐승들의 잔해를 직접 정리하도록 시키고 아이들은 순순히 쓰레받기와 대걸레를 들고 교실 위를 천천히 쓸고 닦아요. 고양이의 목에 남은 검붉은 멍 자국을, 자살한 아이들의 이마를 관통한 문구용 가위를 볼 때면 난 죽을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아이들에게 죽음의 연기를 그만두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그 작고 폐쇄적인 원마저 지워버린다면 아이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쳐서 폭발해버리고 말 거예요. 검은 독으로 가득 차 부풀어오르는 축축한 개구리처럼, 해변에서 죽음의 가스로 팽창하는 혹등고래처럼. 아이들은 예민해요. 그 애들은 지나치게 살아남았고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엷은 피부는 벌어진 상처처럼 붉게 젖어 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군요. 인형은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질문 드려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교사는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아이들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십니까?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여자아이요, 그 애는 결국 전학을 갔죠. 우리에게 전학은 이별을 의미해요. 그 애가 같은 방식으로 자살한 뒤에 난 오랫동안 그 애에 대해 생각했어요. 편지를 보내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한 통의 편지도 부치지 못했죠. 그 편지들은 내 서랍에 고스란히 쌓여 있어요. 버리지도 부치지도 못한 채. 그럼, 감사 대신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그 애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했죠. 난 화가 났지만 결국 그 애의 말을 받아들였어요. 우리는 모두 글을 썼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의 작문을 걷었을 때, 고집스럽게도 이전과 완전히 같은 형식으로 감사할 것들을 적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그 애는 무척 이상한 글을 썼는데 그 글을 지금 마지막으로 그 애에게 읽어주고 싶군요.

교사는 초점 없이 멍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즉흥시를 읽는 시인처럼 긴 문구를 읽어내렸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해요.

선생님, 사막만큼 물을 닮은 것은 없어요. 적막만큼 소리를, 빛만큼 어둠을. 출구를 초과하는 언어로 나는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요. 나는 나를 찢어버리고 싶어요. 나는 나를 살해하고 내 가슴에서 뽑아낸 천사의 심장을 잘 벼려낸 은색의 가느다란 나이프로 썰어 먹어요. 심장에서는 검붉은 피가 흐르고 피에 젖은 내 입가에 천사의 깃털처럼 투명한 날벌레들이 들러붙어요. 난 나와 함께 천사의 고기를 나누어 먹을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지만 모두가 각자의 시체에 몰두하고 있고 내 시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생의 의지와 날 것의 심장으로 축축한 벌레들뿐이에요.

천사의 고기를, 그 애는 정확하게 이렇게 썼어요. 당신과 함께 나누어 먹고 싶어요 선생님 죽은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천사는 발가벗겨져 찢겨 죽은 뒤에도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어요. 심장에서는 멎지 않는 불그죽죽한 피가 흘러내려요. 그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향기로워요. 선생님. 사라진 낙원에서 여물어가던 사과처럼, 진주의 영혼으로 끈적하게 차오른 점액질의 열매처럼, 내 언어의 증인이 되어줘요 선생님, 나와 함께 천사의 고기를 먹어줘요. 보물은 항문 밖으로 튀어나온 탈장된 내장이고 난 그 보물을 찢어발겨 삭제해버리고 싶어요. 파리는 내 벌어진 음부에 알을 낳았고 난 수천 마리의 구더기들을 임신했어요.

처음으로 추락하는 동안 난 창문들의 집요한 시선을 보았어요. 창문들은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결코 죽지 않을 거라고. 나는 결코 보물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보물의 삶은 사물의 삶이고 사물들은 처음부터 죽어 있기 때문에 결코 생명을 잃을 수 없다고. 날카롭고 단단한 철의 냄새가 났어요. 난 분주하게 나를 쓸어담는 손들을 보았어요. 나를 창녀라고 욕하는 소리도 들었죠. 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었기 때문에, 내 치마가 배 위로 뒤집어져 있었고 내가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가장 은밀하고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보이지 않는 축축한 내부를 바깥으로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창녀라고 했어요.

파리들은 내 안에 흰 것을 배설했고 흰 것들은 내 붉음을 파먹고 자라났어요. 순식간에 부화해 나를 떠도는 천사들은 나를 짐승의 무감각한 붉음으로 응시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나는 글을 쓸 때, 당신과의 식사를 상상할 때, 내가 죽음만큼이나, 아니, 삶만큼이나 치명적인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아요. 글쓰기는 금기이고 위반이며 욕망이고 관능이죠. 그러므로 나는 쓰는 거예요. 글쓰기는삶은 내가 소유한 유일한 범죄니까. 난 언어의 반죽으로 붉게 으물러 썩어가는, 내가 아닌 것들을 봐요. 나를 먹는 파리들의 게걸스러운 흰 미소는 마조히즘이죠. 하지만 마조히즘은 감사와 달라요. 선생님. 그건 전혀 다른 종류의 기쁨이에요. 마조히즘은, 웃음은 체념이 아니에요! 난 기꺼이 나를 찢고 내 안에서 돋아나는 역겹고 메스꺼우며 황홀한 생명들을 느껴요. 그렇게 나는 죽고 태어나요. 내가 아닌 것으로. 나를 잃은 것으로. 감사와 행복에 체념하지 않는 가장 지독한 것으로. 글쓰기 없이, 나는 나의 죽음을 초과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언어는 부드럽게 나를 넘쳐 흐르고 나는 내가 아닌 것들을 죽어요. 나는 사물이 아닌 것을 죽이고 사물이 아닌 것을 살아요.

선생님. 사막만큼 물을 닮은 것은 없어요. 깊은 갈증 속에서 나는 붉은 심장을 깨물어요. 나는 내가 아닌 것의 입 속에서 훼손되어 가는 얇은 근육의 뭉치를 보아요. 불순한 검은 피로 점철되어 있는 붉은 고기. 천사는 창녀처럼 신음하고 창녀처럼 아프지만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아요. 물론 감사하지도 않고요. 내가 죽었기 때문에, 그리고 살았기 때문에 창녀라면 난 기꺼이 창녀를 찢고 가장 깊은 곳을 열어젖히겠어요. 당신은 으깨진 심장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울고 있는 나를 봐요. 당신은 울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유롭게 웃고 있는 나를 봐요. 나는 신의 분비물로 신의 냄새를 풍기며 밤의 진실을 쏟아내요. 내 잔해를 부산하게 치워내던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내게 닿지 않으려 몸을 움츠렸던 건 그들이 내 안에서 날뛰는, 그리하여 마침내는 삐져나온 천사의 고기를 천사의 자궁을 천사의 사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에요. 천사들을 나를 에워싸고, 내게 낯선 사실로 붉게 달아오른 눈들을 매정하게 벌려요. 난 마취된 잇몸처럼 뼈에 가만히 들러붙어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곳을 횡단해요. 날개들은 더러운 분비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고 어쩌면 다시는 날 수 없을 테죠.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아이는 저녁의 교실에서 찢긴 옆구리를 비밀스럽게 보여주었어요. 그 애는 커터칼로 실밥을 뜯어내었고 솜처럼 하얀 내장이 불룩 비져나온 옆구리를 보여주었죠. 그 애는 그런 식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애를 강간하기 위해 누군가 거칠게 절개했던 옆구리를 보여주었어요. 그 애는 내게도 그런 상처가 있느냐고 물었고 나도 내게 남은 몇 개의 벌어짐을 보여주었죠.

내가 내 아이들의 비밀을 누설하는 이유는, 교사는 말했다. 그 애들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쳤기 때문이에요. 비밀이 거짓이 되기 전에, 그 비밀들을 사실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몇 개의 응시와 몇 개의 들음과 몇 마리의 증인들이 그 비밀들을 사실로 그릴 수 있을 거예요. 학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교사는 신음하듯 말했다. 많은 짐승들이 짐승들이 여러 번 죽을 수 있다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듯. 그래서 너무 많은 죽음들이 거짓이 되어버렸죠. 아이들은 매일 죽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몇 살인지 기억하지 못하듯 스스로 몇 번 죽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요. 그 애들은 삶보다 많은 것을, 불가능한 것을 죽었어요.

나머지 주말 내내 여자는 꿈을 꾸었다. TV의 화면이 폭발하며 조각난 파편들이 여자의 눈과 입, 이마와 목 가장 여린 곳을 파고들었다. 파편에서 분출되는 은근한 침묵이 여자를 아프게 했다. 이어지는 꿈 내내 여자는 그녀를 둘러싸고 형성한 죽음들을 보았다.

첫 번째 죽음에서 여자는 아홉 살이었다. 여자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거대한 트럭이 여자를 향해 다가왔다. 트럭의 앞면이 여자의 몸에 맞닿을 때까지도 여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트럭은 여자를 관통하며 지나갔고 여자는 형편없이 으스러진 몸으로 바닥에 쏟기었다. 여자를 치고 지나간 트럭은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다. 그곳은 CCTV조차 없는 외진 횡단보도였고 많은 짐승들이 로드킬당하는 장소였다.

죽었기 때문에 여자는 전학을 가야 했다. 여자가 앉았던 자리에는 흰 꽃이 놓였다. 두 번째 죽음은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다. 여자는 흰 새의 꿈을 꾸었다. 새는 검은 하늘을 흘러내리는 유성처럼 날고 있었고 여자는 새의 등 위에 엎드린 채 표류하고 있었다. 새의 흰 깃털이 여자의 피부를 간질이며 파고들었다.

새는 검은 부리를 벌려 야릇하게 속삭였다. 우리는 물방울처럼 닮았어. 너는 우리가 무엇인지 기억해야 해. 하지만 밤을 넘길 수는 없을 거야. 물방울 너머의 물방울, 분열된 물방울들, 잘려나간 물방울은 표면장력에 의해 엇비슷한 둥근 모양을 갖추고 그 둥긂의 곡선은 여기 있음이며 물방울들은 분열된 코기토를 가지고 있어 우리는 분열된 사유들이야.

감성을 사유하고 사유를 느끼는, 부적합한 방향으로 휘어진 촉수들, 여자는 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꿈의 직관으로 여자는 새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적어도 새의 언어가 진실에 근접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새의 등 위에서, 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는 새의 얼굴이 꿈의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했다. 새는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처럼 날고 있었다. 여자는 새에게 언제까지 날 것이냐고 물었고 새는 밤과 꿈이 계속되는 동안이라고 대답했다. 여자는 참을 수 없는 서글픔에 눈물을 흘렸다. 여자는 새의 깃털에 얼굴을 묻었다. 희고 축축한 깃털들이 여자의 입속으로 밀려들었다.

밤을 관통하는 광확적인 효과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 설령 누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주지 않더라도. 여자는 속삭였다.

사실은, 새는 중얼거렸다. 오직 접촉 가능한 눈만이 가지고 있는 거야. 우리에게 그런 눈이 주어졌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야.

여자는 그 꿈이 먼 미래의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은 여자가 우연하게 미래의 꿈으로 흘러들었고 그곳에서 미래의 입술들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분열된 코기토들의 여기 있음은 세 번째 계열의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는. 여자는 검고 짙은 눈물을 새의 눈부신 목 위에 떨어뜨렸다. 새는 여자의 미래일까?

여자는 새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새는 대답하지 않았다.

밤의 끝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은 얼굴을 마주볼 수 없을 것이었다. 얼굴과 얼굴, 일그러진 머리와 얼굴이 벗겨진 두개골. 여자는 새의 운명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새는 느낌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다만 그것을 목격하는 몇 개의 눈만을 가지고 있다면. 하지만 새는 여자를 응시하지 않았고 여자 역시 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자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새의 등 위에서 무너져내렸다. 멀어져가는 밤의 아득한 추락 속에서 여자는 새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달의 광원에 가려진 검은 얼굴은 얼룩처럼 보일 뿐이었다. 여자는 밤과 달에 눈이 멀었고 새는 그대로 달려들어 눈 먼 여자의 목을 물어뜯었다.

눈을 뜬 소녀는 그녀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검은 캐딜락이었다. 그녀의 위에 올라타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부시게 흰 목덜미를 가지고 있었다. 소녀는 비 오는 가을의 이파리처럼 흔들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희고 가느다란, 새를 닮은 손가락이 소녀의 목을 졸라왔다. 소녀는 눈을 감았고 모든 것을 잊기 전에 미래의 분명하고 단단한 현존을 떠올렸다. 목구멍을 짓누르며 기도를 파고드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유리구슬들.

소녀의 음부와 항문에는 찰과상과 열상이 남았으며 약간의 정액이 발견되었다. 시체 안치소의 창백한 어둠 속에서 소녀는 깨어났다. 검시관은 소녀에게 아무런 인사도 말도 없이 묵묵한 침묵으로 소녀의 죽은 몸을 갈랐다. 소녀의 자궁과 창자가 창백한 불빛 속에서 클로즈업되었다. 소녀는 죽은 채로 그녀를 가르는 날카로운 빛의 비린내를 느꼈다. 검시가 끝난 뒤 검시관은 소녀의 사인을 적으며 소녀에게 다음부터는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충고했다. 소녀의 내장은 깨진 유리병에서 흘러나온 장미꽃의 잔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검시관은 한숨을 내쉬며 소녀의 내장을 소녀의 몸 속에 침착하게 집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소녀는 말했다. 난 바깥에 나간 적이 없어요.

검시관은 검은 눈으로 소녀를 응시하며 아니라고 말했다. 너는 바깥에 나갔고 검은 캐딜락으로 들어갔어. 너를 본 사람들이 있단다. 그들은 네가 아무런 반항도 없이 순순히 캐딜락으로 들어갔다고 하더구나. 그래도, 검시관은 말했다. 너를 죽인 남자는 바로 체포되었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굴다간 넌 다시 강간을 당할 거고 다시 살해당할 거란다.

소녀는 검시관의 말이 사실임을 알면서도, 바깥에 나간 적이 없다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넌, 검시관은 말했다. 이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죽는지 모르는 것 같구나. 네 몸을 지키는 건 너뿐이야.

검시관은 끔찍하게 피로해보였다. 그는 소녀가 자기 딸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소녀에게 불필요한 충고를 굳이 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녀의 세 번째 죽음이 무엇인지 그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결코 그런 충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 죽음은 열넷 혹은 열다섯이었다. 여자는 골목에서 고양이의 목을 조르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 애의 볼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여자는 아이가 고양이를 살해하는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다. 아이는 여자의 어린 시절과 물방울처럼 닮아 있었다. 여자는 아이에게 가혹함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는 고양이에게 첫 번째 죽음의 물컹하고 막연한 섬뜩함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여자는 사과를 쪼갰고 사과는 끝없이 쪼개졌고 여자는 영구한 벌어짐 앞에서 넋을 잃었다. 아이는 웃고 있었다. 벌어진 미소의 틈에서 여자는 역겨운 고무의 냄새를 맡았다. 아이를 강간할 수는 없었다. 여자가 원한 것은 이미 발생한 죽음의 재현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이의 삶을, 파리의 날갯짓처럼 오만하고 발가벗은 생을 원했다. 그녀는 천사의 붉은 심장을 사과처럼 쪼개었고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어 아이와 나누어 먹었다.

천사는 텅 빈 공동을 가슴에 지닌 채 그녀들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발견되었다면, 발견된 것은 심장이 없는 시체였다. 발견되지 않았다면, 남겨진 것은 사실이 될 수 없었던 비밀들이었다. 그러나 새는 꿈이 사실이듯 고통과 죽음, 심지어는 실종 역시 사실이라고 말했다. 더듬는, 뜨거운 눈의 접촉만 있다면. 여자는 벌어진 가슴을 집요하게 바라보았고 그 속에서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근육의 뭉치를 보았고 비어져 나온 신경다발은 여자의 볼을 스치며 붉은 상흔을 남겼다.

쥐 경찰의 차량 뒷좌석에 앉은 채, 여자는 유리창에 점점이 남은 물방울들을 보았다. 물방울들의 모양은 미세하게 달랐다. 독특한, 환원불가능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물방울들. 여자는 물방울들을 하나하나 세어 나가며 메스꺼운 멀미를 느꼈다. 물방울과 물방울을 바꿀 수 있다면, 어느 물방울이든 다른 물방울과 바꿀 수 있다면, 소녀와 소녀의 죽음을 여자와 여자의 죽음을 바꾸어 설명할 수 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아도 되었을까? 하지만 죽음들과 죽음들은 고유한 날을 가지고 있었다. 여자는 죽은 여자들로부터 빠져나온 검은 피가 어디로 사라지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검은 피도 분열된, 일그러진 코기토를 가지고 있을까? 다리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리는 피의 거울 속에 비추어지는 얼굴은 여자의 일부를 가지고 있을까?

그날은 차가 막히지 않았다. 비에 젖은 검은 도로를 질주하면서 남자는 홀로 대사를 읊었다. 살인자 또한 어쩌면 임무 수행 중인 죽은 자이고 새들을 지상에서 없애는 일이 그에게 맡겨진 비밀스러운 임무제멋대로인 춤의 걸음걸이는 임무의 임박한 종결을 알려주고 어쩌면 여자는 이미 땅 속으로 귀환 중.

그건 뭔가요? 여자는 물방울이 맺혀 은하처럼 젖어든 검은 눈으로 말했다.

하이너 뮐러의 그림쓰기의 비밀스러운 변형.

여자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눈을 돌린 채 대사를 읊었다.

살해자는 죽은 자이고 그는 이미 죽은 새이며 살해자는 그의 눈에 남겨진 흰 새들을 모조리 없애버린다. 새들은 천사이다. 천사는 새들의 날개를 가지고 있으므로 새들을 살해해 그 깃털을 날갯죽지에 매단 도래하는 후손들은 모두 새이며 동시에 천사이다. 천사는 새들의 죽음을 바란다. 새들의 날개와 새들의 죽음과 새들의 고기. 살해자는 새들의 날개를 달고 비틀거린다. 살해자는 새의 항문 속에 몸을 밀어넣고 춤을 춘다. 새는 살해자의 입술 속에 꽁지를 밀어 넣고 천사의 목소리로 운다. 항문과 음부와 입속에서 흘러나오는 흰 분비물, 다빈치의 어린 시절을 강간한 새는 다정하게 그의 벌어진 입술을 쓰다듬는다. 천사들의 비밀스러운 임무, 제멋대로인 춤과 새들의 죽음. 새들은 죽어가는 천사들 앞에서 비틀거리며 춤을 춘다. 천사들은 절멸하는 새들을 보며 흐느낀다. 새들은 천국의 우박처럼 쏟아진다. 세계가 끝나리라는 것을 천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새들을 죽여 그 흰 깃털로 천사가 되었고 구원과 멸망을 동시에 이루기 위해 천사가 되었으며 또 새들을 죽였다. 얼어붙은 세계의 비밀스러운 임무는 종말을 향한 카운트 다운, 죽은 새들의 자궁 속에는 여자들의 축축한 배아가 심겨져 있다. 가장 음험하고 미친 여자들이 땅 속으로 돌아간다. 천사들은 새들을 땅 속에 묻었고 죽은 새의 유골 속에서 여자들의 배아가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여자들은 벌어진 꽃의 입술로 웃는다.

그건, 남자는 앞을 응시하며 말했다. 꼭 묵시록 같구나. 넌 세계의 종말 같은 걸 바라니?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가 곧 남자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음을 깨닫고 말했다. 아니요. 난 종말을 믿지 않아요. 애석하게도, 무언가는 남겠죠. 여자는 남자에게 삶이 지겹지 않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놀란 듯 차량 거울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도발적인 검은 눈으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하지만 난 종말을 바라는 건 아니야. 죽음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여자가 말했다. 전혀 달라요.

뭐?

종말과 죽음 말이에요. 봐요. 난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있죠. 강간당하고 죽고 죽인 이후에도 삶은 끝나지 않았어요. 난 내가 잃어버린 얼굴들을 영원히 알지 못한 채로 늙어가겠죠.

넌, 남자가 중얼거렸다. 정말 늙은 여자처럼 말하는구나.

그래요. 여자는 말했다. 사실 난 당신보다 훨씬 오래 살았죠. 당신이 살아서 닿지 못할 곳에서 나는 표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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