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스테이크 8

남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터무니 없는 착각이야. 난 모든 쥐들만큼이나 오래 살았으니까. 난 너보다 적어도 수십억 년은 더 살았을 거야. 난 내 어머니만큼이나, 아니, 내 조상들만큼이나 늙었단다. 물론 내게도 어린 시절은 있었지. 하지만 어느 밤부터는 아직 죽지 않고 내 뼈와 근육 속에 남아 있는 목소리들이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네 증조모는 처음으로 달에 도달한 쥐였어. 그녀는 훈련조차 받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우주선 속으로 숨어들었지. 최초의 우주인은 로켓의 발사가 끝나고 난 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다다라서야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렸지. 우주인은 역겨움과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지만 우주복 바깥으로 소리는 거의 새어나가지 않았어. 투명한 유리 헬멧 안으로 흰 수증기가 퍼져나갔고 네 증조모는 검고 향기로운 여사제의 눈으로 우주인을 올려다보았지. 그렇게 네 증조모는 달까지 날아갔어. 영원한 무중력의 변두리에 고립된 작은 중력의 섬 내부에서 네 증조모는 우주복도 안전장비도 없이 당당하게 견뎌내었지.

우주인은 네 증조모를 쫓아내지 못했어. 네 증조모가 최초의 달-쥐가 될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우주인도 곧 알아차렸어. 네 증조모는 오만하고 날카로운 소리로 찍찍거렸고 우주인은 요제피네의 노래를 듣는 군중처럼 매혹된 채 네 증조모의 검은 눈을 내려다봤어. 우주인은 네 증조모의, 위대한 첫 달-쥐의 훌륭한 동반자가 되었지. 우주인은 네 증조모를 받아들였고 그녀의 부드러운 턱과 머리를 애무하듯 조심스럽게 쓰다듬었어. 네 증조모는 우주인의 손바닥에 올라탄 채 달의 허공을 항해하였고 놀랍게도 조금 날아오르기까지 했단다. 그녀는 졸도하지 않고 기적처럼 희박한 중력을 잘 참아내었어.

그녀가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요제피네는 오직 그녀를 위해 환희의 송가를 불러주었지. 요제피네는 네 증조모의 목덜미에 그 위대한 입을 맞추며 축복했고 관중들은 감상적인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렸어. 축제의 기쁨에 달아오른 수컷 쥐 하나가 네 증조모의 굴 속으로 숨어들었고 네 증조모는 머지않아 네 할머니를 낳았어.

네 할머니는 형제자매들 중 가장 영리한 쥐였어. 그녀는 글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교육의 혜택을 누리지는 못했지. 그녀는 네 증조모의 젖을 함께 빨던 형제에게 강간당해 네 어머니와 삼촌들을 낳았어. 네 어머니는 네 할머니의 염원이었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머리가 좋지 않았지. 그래서 의무교육이 끝날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어. 그래도 네 어머니의 목소리는 무척 아름다웠고 네 어머니가 광장에 홀로 서서 수줍게 찍찍거릴 때 네 어머니를 요제피네로 착각하는 쥐들이 네 어머니 주위로 둥글게 모여들어 검은 눈을 축축하게 적시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 네 어머니의 동급생들은 네 어머니가 멍청한 만큼 더 매혹적이라고 생각했어. 네 어머니에게 청혼한 뒤 거절당한 수컷 쥐들은 앙심을 품고 네 어머니를 강간했지. 그래도 네 어머니는 꿋꿋이 교실용 굴로 매일 등교했어. 네 할머니는 네 어머니가 글을 읽기를, 그래서 불가능한 세계로 불가능할 정도로 부풀어오르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등교하던 순간까지 글을 익히지 못했지. 네 어머니는 시처럼 아름답게 노래했지만 직접 시를 쓰지는 못했어.

너를 낳은 뒤 네 어머니는 미쳐버렸어. 그녀는 열 개의 가슴을 늘어뜨린 채 뒷골목이나 배수로가 교차하는 광장에 서서 카나리아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어. 그녀의 자줏빛 젖가슴은 찍찍거림과 함께 파르르 떨렸고 쥐들은 감격에 취해 울다가도 네 어머니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키며 경멸적으로 찍찍 웃어댔지. 네 어머니는 실패한 여가수처럼 보였어. 모든 재능을 갖추었지만 다만 결정적인 운을 소유하지 못해 운명으로부터 쫓겨난 골목의 비극적인 여자처럼. 너는 간혹 다른 쥐들이 그렇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배우가 되겠다고 골목이나 광장에서 벌거벗은 채로 노래하는 창녀가 아니라 진짜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어. 그건 네 어머니의 경우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처럼 보였어. 너는 쥐였지만 남자였고 길거리를 떠돌다 강간당해 임신할 일도 없었으니까.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자궁에 염증이 생기고 온몸이 짓물러 죽어버릴 걱정도 없었으니까.

너는 죽어가는 네 미친 어머니를 두고 바깥으로 나갔지만 무대에 설 수는 없었어. 차라리 시궁창에 남았다면 넌 길거리 공연이라도 할 수 있었을지 몰라. 너는 가장 경멸적이고 모욕적인 시선조차도 얻지 못했고 눈 먼 거울의 어렴풋한 응시만을 앞에 두고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 너는 끔찍하게 실패한 수컷 쥐들의 길을 따라 경찰이 되었고 미쳐버린 여자아이의 수발이나 들고 있지.

그렇지만, 여자는 말했다. 난 당신의 연기를 좋아해요. 당신의 목소리는 깊고 아름다워요. 당신의 어머니도 비슷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쥐 경찰은 그가 미친 것 같냐고 물었고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달은 터무니없이 거대한 둥근 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제야 밤을 넘어서 먼 곳까지 달려갔음을 알았다. 경찰은 차량이 막혀 늦을 것 같다고 보고했고 그의 상관은 무성의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날, 차량들은 지체없이 곧고 시원스러운 선으로 달려나갔다. 남자는 아직도 바다에 가고 싶냐고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함께 눈을 감았다. 일그러진 물의 울음소리와 행성의 언저리에서 흘러내리는 흰 모래들의 향기를 그들은 오래도록 꿈꾸었다.

보호소로 돌아갔을 때 다른 소녀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TV 전원을 켰다. TV의 음량을 최대로 맞추어놓은 뒤 여자는 29번 채널을 틀었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 남자가 번개를 맞고 쓰러져내렸다. 감전당한 몸은 흰 스파크를 튀기며 바들거렸다. 여자는 키득거리며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벌거벗은 어린 돼지 두 마리가 화면 안쪽으로 들어와 남자를 가리키며 놀란 듯 소리쳤다.

그는 죽었어.

바보야, 천사는 죽지 않아.

왁자지껄한 폭소가 흘러나왔고 아이들은 남자의 얼굴 근처에 주저앉아 창백한 머리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남자는 신음소리를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돼지들은 점점 대담하게 남자의 무방비한 몸을 더듬어댔다. 여자아이 돼지가 남자의 옆구리에 달려 있는 지퍼를 열었고 그 속에 분홍빛의 클레이가 매끄럽게 발라져 두툼해진 손을 쑥 밀어넣었다. 남자는 고통을 참는 듯 경련했고 여자아이는 대담하게 남자의 창자를 주물럭거렸다. 여자아이는 클레이를 굳혀 만들어진 남자아이 돼지의 귀에 입술을 대고 무어라 중얼거렸고 남자아이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천사는 정말 죽은 것 같아. 남자아이는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때 눈부신 흰 빛의 번개가 밤을 관통하며 남자의 몸에 다시 내리꽂혔고 남자는 식은땀에 축축하게 젖어든 상체를 힘겹게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옆구리를 천천히 더듬더니 고통에 희게 질린 얼굴로 헛구역질을 했다.

누가 내 몸을 열었어?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고 어린 돼지들은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이 친구들, 누가 내 몸을 열었는지 알고 있나요?

남자는 화면을 향해 물었다. 그때 비에 젖은 그의 오른쪽 날개가 부러져 떨어졌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날개를 다시 연결하려 애썼지만 형편없이 젖어든 클레이는 접착력을 잃은 채 힘없이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것은 연출되지 않은 장면인 것 같았다. 남자는 당황한 듯 카메라를 향해 눈짓했고 카메라는 곧 남자의 왼쪽으로 시점을 옮겨 잘려나간 날개가 화면에 비추어지지 않도록 했다. 남자는 대사를 잊어버린 듯 오랫동안 침묵했고 돼지들은 초조한 눈치로 남자의 턱 끝을 바라보았다. 천사들의 웃음과도 같은 빗소리가 그들을 함뿍 뒤덮고 있었다. 그들을 돼지와 천사로 만들던 클레이가 빗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얼룩덜룩하게 망가진 그들의 분장은 마치 부모를 잃고 길거리를 헤매는 서글픈 괴물처럼 보였다. 혹은, 호수로 돌아가는 길을 잊고 축축한 공중을 표류하는 은빛 물고기처럼.

그들은 해야 할 대사, 그들에게 정해진 운명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오랫동안 침묵으로 방황하였다. 세 쌍의 검은 눈들에 섬뜩한 흰 조명의 불빛이 번뜩였다. 남자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고 돼지들은 안심한 듯 그래요,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는 몸을 잃어버린 영혼들이 살고 있어. 촬영을 하는 배우들은 카메라 속에 일정량의 영혼을 남겨두는데 배우들이 화면의 세계를 떠나고 나면 그 영혼만이 화면 안쪽에 남아 홀로 밤을 보내는 거야. 살아 있는 채로.

여자아이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어요. 일본의 공포영화였는데, 검고 윤기나는 머리를 허리 아래까지 길게 늘어뜨린 창백한 얼굴의 소녀가 TV 화면 밖으로 기어나오는 영화였죠.

그 소녀는 어떻게 됐는데? 남자아이가 물었고 여자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기억나는 것은 소녀가 서글프고 음울한 자세로, 마치 짐승처럼 네 발로 엎드려 기어나오는 모습뿐이라고.

하지만, 남자아이는 소리쳤다. 여자아이는 원래 모두 돼지인걸!

여자아이는 남자아이를 흘겨보며 말했다. 우린 모두 돼지야. 그걸 잊으면 안 돼.

기계적인 폭소음이 흘러나왔다. 웃음소리는 빗소리에 섞여들여 희미하게 증발되었다. 남자는 그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TV 밖으로 나온 소녀의 긴 머리채를 잡아당겼고 그 속에서 번들거리는 검은 눈을 보았다. 눈은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머리칼에 가려진 창백한 얼굴은 화상으로 얽어 있었다. 소녀는 수치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흐느꼈고 주인공은 TV의 우물 속으로, 영원한 검은 심연으로 돌아가라고 소녀에게 다그쳤다. 소녀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주인공은 소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그녀를 TV 속으로 밀어넣었다. 소녀는 무섭다고 했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더는 살아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주인공은 살인자처럼 냉혹한 얼굴로 소녀를 TV의 황량한 화면 속으로, 오로지 우물밖에 없는 흑백의 정적인 장면으로 밀어넣었다고 남자는 말했다.

소녀는 비명을 질렀고 마침내는 TV 속에 갇혔어. 남자는 소녀가 담겨 있는 TV의 화면을 의자로 깨부수었고 산산조각난 TV의 화면들은 흰 빛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어. 주인공의 양 볼에는 TV 파편에 긁힌 붉은 상처가 남았어. 시간이 지난 뒤 주인공은 시골에 사는 부모님과 전화 통화를 해. 부모님은 자취를 하는 주인공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주인공은 망가진 TV와 악몽 이야기를 하지. 부모님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며 그들의 마을에서 발견된 여자아이의 시체 이야기를 해. 소녀는 버려진 우물에서 발견되었고 입과 항문과 음부에서는 부패해가는 정액이 검출되었으며 그녀의 얼굴은 화상으로 얽어 있었다고. 불과 물의 형벌에 동시에 시달린 소녀의 죽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고 부모님은 말해.

남자는 흐느끼면서 그 소녀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다고 말하고 남자의 부모는 괜찮다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안전이라고 말하며 남자를 위로해. 주인공은 볼에 남은 흉터의 벌어짐을 검지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화면을 응시하고 야릇한 웃음을 지어. 그리고 영화는 끝나지.

두 어린 돼지들은 남자를 보며 그게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었고 남자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어린이 여러분, 여름밤에는 TV를 너무 오랫동안 보면 위험하답니다, 하고 말했다.

돼지들은 가만히 앉아서 비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수척해진 얼굴을 뒤로 젖히며 비를 맞았다. 밤의 표면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어두운 색의 피처럼 보였다. 여자는 형벌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형벌과 구원의 관계, 형벌과 죄의 관계에 대하여. 전류는 젖은 대기를 타고 치명적인 전염성의 비명을 퍼뜨리며 흘러간다. 여자는 검은 화면 속에 침잠한 그녀의 눈 먼 반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모든 반영에 그녀의 징후가 묻는다면 반영들은 그녀가 잊어버린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을까? 모든 허상과 반영은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야생적인 창자와도 같았다. 그녀는 언젠가 상담사가 제안했듯 검은 방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그녀의 화면을 기도하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이미지가 그녀의 망막에 맺히는 것을, 1/16초를 넘어 영원과도 같은 찰나를 머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TV 속 돼지들은 조명에 희게 젖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었다.

소녀가 불쌍해요, 하고 여자아이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TV 속 소녀의 귀신은 언제든 너를 죽일 수 있어, 하고 남자는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그래, 소녀는 치명적이고 불길한 검은 눈을 가지고 있어. 남자아이는 남자의 말을 받아 중얼거렸다.

이중적인 실존을 가능케하는 비밀스러운 반복들, TV의 화면은 분열한 물방울들의 원색으로 깜빡였고 그 빛 속에서 은밀하게 흘러드는 비의 모양을 그들은 결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여자가 잠든 사이 세 마리의 돼지들은 화면을 등지고 늑대를 기다린다. 여자는 교실의 꿈을 꾼다. 교실에서 여자는 죽은 아이들의 흰 꽃에 둘러싸여 있다. 죽음은 만연한 사실이며 생명은 죽음보다도 집요하게 남는 꽃의 흰빛이다. 여자는 의자에 앉아 미래는 은폐된 사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래는 어느 순간에도 이미 존재하는 사실이다. 가장 유능한 예언자조차도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그들은 은폐되어 있는, 그들을 배제시킨 앎을 눈 먼 자처럼 천천히 더듬어갈 뿐이다.

TV 인터뷰에 등장했던 여교사가 교실로 들어선다. 여자는 미래로부터 소외된 비극적 주인공에 대해 생각하고 교사는 여자에게 꽃을 정리하라고 지시한다.

전부요?

그래, 전부.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꽃들을 쓰레받기에 쓸어 담는다. 꽃들은 젖은 채 아직 싱싱하다. 너무 빨리 매장된 시체들이 아직 붉고 축축한 피를 머금고 있는 것처럼. 다음 시퀀스에서 여자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다. 아이들의 얼굴은 희거나 검고 그들의 입 속은 심해처럼 푸르다. 교사는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여자가 대답하자 교사는 여자에게 교단으로 나오라고 지시한다. 여자는 아이들의, 발작적으로 부풀어오른 얼굴들을 보고 교사는 여자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말한다. 여자는 고개를 젓지만 교사는 고집스럽게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은 너뿐이라고 말한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입술을 깨문다.

하지만, 여자는 속삭인다. 내게는 말할 만한 사실이 없어요. 거짓을 지어내도 괜찮나요?

교사는 화가 난 듯 침묵하다가 여자를 내려다보며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자는 연극을 한다. 여자는 그녀가 내뱉는 것이 미래의 연극임을 본능적으로 안다. 서툰 예언자처럼 여자는 미래의, 어쩌면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사실들을 늘어놓는다.

자연은 그 법칙을 능가한다. 강요된 번식으로 침잠하는 잿빛들, 붉음과 녹빛을 빼앗긴, 표백된 검음은 절룩거리며 춤춘다. 난 춤을 추고 있어.

여자는 교단 앞에 가만히 선 채로 그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웃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은 불어 터진 풍선처럼 보인다.

물 속에 너무 오래 잠겨 마비된 다리로, 껍질이 벗겨져 나간 살로 나는 춤을 추고 있어. 춤은 중력과 중력 너머의 궤도에 대한 위험스러운 복종이며, 그 철저한, 지나친, 과장된 복종은 극복될 수 없는 걸음걸이에 대한 조롱과도 같아. 난폭한 웃음은 죽음을 불러와. 그리고 죽음은 삶을 가져오지.

신체 이전의 몸짓, 어휘 이전의 언어, 얼굴 이전의 가면, 삶 이전의 죽음, 죽음 이전의 유령으로 여자는 말했다. 재발견된 신을 제단 위에 세워 두고 그에게 신성한 자살을 강요하는 미래의 신들, 여자는 말했다. 그녀는 교실이 일종의 세트장이며 아이들은 터무니없이 늙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꿈의 극장에서 활보하듯 손을 휘 저으며 소리친다.

동작들, 동작들, 동작들, 죽음을 불러오는! 응시하는 비명은 삶을 향한 저주와도 같다. 동물적 확실성과 무한한 체념의 궤도 사이에 존재하는 불가해한 인력, 그 힘을 처음으로 발견한 춤은 황홀을 이기지 못하고 절름발이가 되어버렸고 그의 발을 잘라주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간 의사는 슬픔에 눈이 멀었으며 그들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짐승들은 경악과도 같은 검은 비명으로 혀가 녹아내렸지만 어휘 이전의 언어, 얼굴 이전의 가면, 신체 이전의 몸짓과 삶 이전의 죽음, 죽음 이전의 유령은 죽음과 신체와 삶과 얼굴과 어휘 이후에도 남아 있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집요하게 남아 있다.

여자는 현기증처럼 회전하고 도약하는 춤에 대해 노래한다. 교사는 곤혹스러운 얼굴로 여자의 팔을 붙잡는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말은 한 마디도 송출할 수 없다고 교사는 전한다. 그러므로 여자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그녀의 말은 방송할 수 있는, 매개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형식의 언어가 아니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자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속삭인다. 하지만 칭송받으며 죽은 어리고 미친 천재들, 비너스의 유방 속에 암을 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장미를 관찰했던 미치광이 극작가, 거짓을 고발하고 환호 속에서 기꺼이 죽어간 노트르담의 장미들.

교사는 여자는 그러한 미래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자는 처음부터 다시 말해야 한다. 벌어진 가슴에서 분출되는 끔찍한 궤적들을 모두 지우고 여자는 처음부터.

교사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피에 불은 아이들의 희고 검은 얼굴들 뒤에는 두툼한 마분지로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서 있다. 그들이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지 여자는 알 수 없다.

언어는, 교사는 말한다. 추상적인 것이 아니야. 언어는 언제고 가장 구체적인 물질들이 될 수 있단다. 지금 같은 경우 네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너야.

여자는 젖은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고개를 숙인다. 여자는 침묵하고 곧 여자를 위한 박수와 웃음 소리가 울려퍼진다. 교사는 아주 재치 있는 자기소개였다고 여자를 칭찬한다.

여자는 교실의 책상으로 돌아가 앉고 동쪽에서부터 검푸른 밤이 하늘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상담사에게 여자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여자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고, 어쩌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정상적인 환경일지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여자는 29번 채널을 보았냐고 물었고 상담사는 고개를 저었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 여자는 29번 채널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돼지들은 비를 맞고 있었어요. 그들의 분장은 분홍빛 눈물처럼 녹아내렸고 가면의 내부는 텅 비어 있지 않았어요. 분장 안쪽에는 끔찍하게 들어찬 흰 살이 있었어요. 분명 그 안에는 뼈가, 그보다 안쪽에는 역겨운 액체가 가득 차 있겠죠. 가면의 안에는 가면이 아닌 것이 층층이 들어차 있어요. 하지만 감정의 안쪽에는? 슬픔과 고통과 증오의 안쪽에 들어차 있는 것은 뭐죠? 돼지들은 일본의 귀신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어쩌면 당신도 본 적이 있는 영화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상담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텔레비전에서 귀신이 나오는 영화라고 했는데,

그래, 상담사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을 없애기 위해 주인공은 귀신이 갇혀 있는 화면을 깨뜨렸고 귀신은 영원한 심연과도 같은 우물 속에 갇혀 갈기갈기 찢겼다고 했어요.

상담사는 의아한 듯 대꾸했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좀 다르구나. 내가 본 영화에선 그런 방법으로 귀신을 없앨 수 없었어. 주인공은 귀신의 원한을 풀어서 귀신을 그녀가 속한 곳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그러한 방법은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 결국 주인공은 저주받은 비디오 테이프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저주를 옮겨서 저주로부터 벗어나.

그건, 여자는 말했다. 이상해요. 저주가 전염적이라면 전염당한 사람과 전염시킨 사람 모두 같은 저주를 앓아야 맞아요.

상담사는 반박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렇구나, 하고 대답했다. 난 사실 그런 귀신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상담사는 말했다.

왜요? 지난번에는 일본의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상담사는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죽은 여자들은 복수하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은 죽인 자의 칼날로 칼날 너머의 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너도 알잖니.

여자는 상담사가 위험한 방식으로 말한다고 느꼈다. 죽기 전에는, 여자는 대답했다. 몰랐어요. 죽기 전에는 아무도 죽음이 어떠한 방식으로 실패하는지 말해 주지 않았어요.

보호 교사가 여자에게 편지를 전해 주었을 때, 여자는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 채널이었다. 살해당한 여자들로 결성된 시민 단체가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들은 죽었을 때 그대로 찢겨진 옷을 걸치고 있거나 완전히 발가벗고 있었고 붉은 글씨로 NO MORE DEATHS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기자는 피켓을 들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인터뷰했다. 여자의 흰 가슴은 모자이크 처리되었지만 검푸른 멍으로 뒤덮인 얼굴은 그대로 화면에 드러났다.

여자는 여가수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죽음 이후 그들이 얼마나 혼자였는지, 죽음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이었는지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살해한 살인자에게만 관심을 가졌을 뿐 내게는 관심이 없었어요. 아니, 그들이 관심을 가진 건 기껏해야 죽기 전에 내가 어떠했는지, 내가 강간당할 만큼 예뻤는지, 내가 살해당하기 적당한 시간에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는지, 내가 살해당하는 여자들이 흔히 종사하는 직업의 여자였는지 하는 것뿐이었죠. 살해자가 체포된 이후 나는 홀로 남겨졌어요. 텅 빈 집과 텅 빈 죽음, 텅 빈 미래와 텅 빈 존재, 몸 안에는 살해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살해당한 채로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어요. 악몽 같은 시간이 계속되었어요. 세상은 전혀 다른 색으로 변질되었음에도 여전히 같은 속도로 운동하고 있었고 난, 그리고 우리는 모두 홀로였죠. 나처럼 살해당한, 혹은 죽음을 강요당한 여자들은 지나치게 과다한 홀로를 견디고 있었어요.

우리는, 여자는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여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벌거벗은 몸을, 몸에 남은 끔찍한 흉터를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상처는 피부가 되었고 어쩌면 피부는 상처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요. 우리는 법칙과 인구와 사건에 용해된 실종자들을 찾아나서는 언어예요. 여자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차림은, 기자는 주저하며 물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여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거리에서 벌거벗고 있다는 건, 우리를 함부로 잡아채거나 모욕하거나 내동댕이치는 불특정적인 시선과 폭력을 견뎌야 한다는 걸 의미해요. 오늘처럼 카메라가 있는 경우, 여자는 검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무뢰배들은 우리 곁에 오지 않죠. 기껏해야 멀리서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그쳐요. 하지만 아무도 없을 때, 광장에 우리의 벌거벗은 몸들만 남겨졌을 때, 우리는 가장 끔찍한 악몽과 맞서 싸워야 해요.

하지만, 기자는 집요하게 물었다. 아무도 당신들에게 그런 걸 강요하지 않았어요.

여자는 야릇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중력 역시 지상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곧 여자는 침묵하였으나 여자는 여자의 침묵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여자는 채널을 돌렸고 거대한 흰 거품들이 땅을 향해 쏟아지는 꿈과도 같은 광고 장면이 나왔으며 초록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한구석에 웅크리고 주저앉은 채 욕설을 내뱉으며 흐느껴 울었다. 초록의 머리는 엉망으로 풀어헤쳐져 있었고 그녀의 옷은 찢겨져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초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초록과 보라는 놀란 듯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같은 흰 방을 사용하는 소녀들에게 큰 관심이 없었으며 말을 거는 일도 없었으므로.

초록은 잉크처럼 검은 눈물을 흘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씹할, 씹할, 난 게스타스야. 알아? 예수의 왼쪽에 매달려서 예수를 위해 충고하던 남자. 난 예수를 위해 그가 당장 뒈져야 한다고 빨리 뒈질수록 고통은 덜할 거라고 충고했지만 사람들은 내가 도둑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예수보다 더 가혹하게 핍박하지.

하지만 언니는, 보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신을 믿지 않잖아.

초록은 보라의 말을 무시하며 침대에서 자고 있는 파랑을 보고는 저년은 밤낮 없이 자는군, 하고 욕지거리를 했다.

난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다른 애들은 웃고 있었어. 초록은 갑작스럽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들은 내가 정말 미쳤는지 궁금해했어. 눈을 떠 보니 책상과 의자들이 모두 교실 구석으로 밀려 있었어. 안경을 쓴 여자애가 나도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어. 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행성들의 변두리로 밀려난 빙하의 섬처럼 앉아서 그 애를 바라보았어. 그 애는 어서 책상과 의자를 밀라고 했고 난 그 말대로 했어. 애들은 약을 한 것처럼 이상해 보였어. 그 애들은 정말 미친년처럼 아무런 맥락도 없이 키득거렸고 간혹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기도 했어.

안경을 쓴 여자애는 내게 괜찮느냐고 물었어.

뭐가?

그 애는 이상스럽게 웃으면서 넌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지? 하고 물었어. 다른 애들은 그럴 거지? 하고 그 애의 말 끝을 따라하면서 나를 괴롭혔고 난 알았다고, 그러니까 빌어먹을 말장난은 그만하라고 말했어. 애들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욕을 하느냐고 물었고 난 씹할 원래 물을 마시듯 욕을 한다고 그런 게 중요하냐고 물었어. 애들은 물론 중요하다고 그건 신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말하더군. 망할놈의 신의, 신의가 무엇이냐고 왜 그런 이상한 말을 하냐고 나는 물었고 땅딸막한 남자애는 신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선택이라고 말하더군. 난 살면서 아무것도 선택해 본 적이 없다고 했고 그 애들은 삶은 선택들의 연쇄라고 말했어.

그래, 하고 나는 모든 빌어먹을 말장난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려고 대답했어. 내게는 신의가 있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할 계획이라고 했어.

애들은 그 좆같은 새끼들은 더 이상 나를 듣고 있지 않았어. 그 애들은 살해를 계획한 범죄자처럼 복도쪽 창문을 살폈고 앞문과 뒷문이 잠겨 있는지 확인했어. 그리고 그 애들은 그걸 꺼냈어.

그거? 보라가 물었다.

그건, 초록은 야릇하게 웃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였어. 벌거벗은 여자. 청소 도구함을 열고 그 애들은 벌거벗은 여자를 꺼냈지. 난 그게 여자의 시체라고 생각하고 비명을 질렀고 애들은 기겁하며 내 입을 막았어. 자세히 보니 그 여자는 아직 살아 있었어.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아이는 그 여자가 진짜 인형이며 그들이 발견한 가장 아름다운 보물이라고 말하더군. 난 그 여자를 어디서 구해왔냐고 물었고 여자애는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말했어. 우리는 그녀를 어디서도 구해오지 않았어. 그녀는 청소도구함에 있었고 우리는 그녀를 발견했을 뿐이야.

그래, 나는 웃으면서 말했어. 그럼 너희들은 집안에 매장되어 있던 유골을 단지 찾기만 했을 뿐이라는 거지. 옷장 속에 들어 있던 유령을, 혀 밑에 묻혀 있던 루비를.

여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희었어. 그녀는 사람이었지만 알비노 쥐처럼 희었지. 털을 뽑아낸 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녀는 사람이었어. 그녀는 눈을 뜬 채로 누워 있었어. 그녀는 먼 곳을, 천장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곳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어. 애들은 쓰러져 누운 여자 옆에 꼿꼿이 선 채로 키득거렸어.

난 그 애들한테 무얼 하는 중이냐고 물었고 애들은 보고 있다고 말했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할 작정이냐고 묻자, 하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녀야, 하고 대답했어. 그녀는 죽은 여자를 연기하고 있어, 하고 안경을 쓴 여자아이는 은밀하게 속삭였어.

아니야, 하고 얼굴이 그을은 남자애가 말했어. 그녀는 산 여자를 연기하는 죽은 여자를 연기하고 있어.

그래, 안경을 쓴 여자애가 말했어. 맞아. 그녀는 산 여자를 연기하는 죽은 여자를 연기하고 있어. 내가 착각했던 거야.

그녀는, 초록은 젖은 눈으로 여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를 닮았어. 그래서 난 그 애들이 너를 훔쳐갔다고 생각했지.

난, 여자는 대답했다. 상담사와 함께 있었어. 상담실, 경찰차, 그리고 보호소, 난 돌아와서 TV를 보고 있었어.

난 그 애들이 너를 죽였다고 생각했어.

난, 여자는 검은 출혈로 문드러진 초록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TV를 보고 있었어.

난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애들은 쓰러진 채 가는 숨을 내쉬는 네 벌거벗음을 보고 웃고 있었어. 난 참지 못하고 그 애들에게 당장 그만두라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쳤고 그 애들은 내게 달려들어서 때리기 시작했어. 내 머리칼을 쥐어뜯고 내 얼굴을 할퀴고 내 옷을 찢어서 벌거벗기고 내가 정말 미쳤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어. 끔찍하게 어지러웠고 세계는 붉은 빛으로 폭발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애들은 내 위에서 나를 물어뜯고 있었어. 나는 그 애들이 어디에도 없는 아이들이라는 걸,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 하지만 그래도 악몽은 끝나지 않았어. 벌거벗은 곰들이 나를 겁간했고 아이들은 곰의 피부 속에 붉게 잠겨든 채로 울부짖듯이 웃었어. 곰들은 칼날처럼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검은 피로 젖어 있는 성기를 가지고 있었어. 그들은 날 선 성기로 내 배를 찢어냈고 절개된 내 자궁에서 물방울처럼 닮은 두 개의 인형을 꺼냈어. 인형의 머리와 몸은 온통 붉었고 그 애들은 이빨이 하나도 없는 늙고 쭈글쭈글한 입으로 내 가슴을 물어뜯었어.

곰들의 안쪽에서 달콤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어. 곰의 내부에서 아이들은 전원을 끄는 것처럼 간단하게 심장과 뇌를 잇는 중추적인 신경다발을 끊어내버릴 수는 없을 거라고 죽은 새의 유골들이 다른 중력들로부터 이탈하여 쏟아지는 혜성의 밤 전까지는 악몽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 난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어디까지가 망상인지라도 알려달라고 애원했고 곰의 가죽 속에서 아이들은 그럴 수 없다고 내가 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뿐이라고 말했어. 곰들은 내 절개된 배꼽 안으로 성기를 밀어넣으며 사정했고 그곳에서는 순식간에 자줏빛의 손가락이 피어올랐어. 손가락은 피아니스트의 것처럼 가늘고 길었어. 난 창백하게 마비된 손톱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고 곰의 피에 얼룩덜룩하게 젖었을 아이들은 그게 죽은 여자의 것이라고 대답했어. 손가락들은 계속해서 돋아났어. 가공할 만한, 절망적인 생명력으로 손가락은 절개되지 않은 배의 살마저 찢어내고 자라났어. 난 몇 마리의 하얀 암쥐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찍찍거리며 하혈하는 것을 보았어. 그녀들은 계속해서 시뻘건 덩어리들을 낳고 있었어. 자궁에서는 끝도 없이 붉은 것이 흘러내렸고 그 덩어리들은 전부 살아 있었어. 난 생명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난 악몽이 영원한, 야생적이며 가장 파멸적인 생명력으로 들끓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난 태양에 처음 도달한 먼지가 황홀하고 잔혹하게 죽어갔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가장 역겨운 방식으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난 지금들과 여기들이 무수한 조각들로 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중력들과 궤적들, 발산되는, 찢겨나가는 외피들과 전염성의 주변들, 분열적인 코기토들,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것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난 TV의 전원을 끄듯 악몽의 전원을 꺼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난 내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을 알았어. 난 내 것이 아닌 미래를, 나를 소유하고 있는 끝을 알았어. 난 미래의 연극이 어떠한 8자를 그리며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지 알았어. 곰들은 눈과 귀와 코에서 검은 피를 흘리면서 뒷걸음질쳤고 수백 마리의 암쥐들이 내 옆에서 붉은 암쥐들을 낳았어. 교실 내부는 생생하고 역겨운 비린내로 가득 찼어. 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너를 닮았고 난 그녀가 벌써 두 번 혹은 세 번이나 죽었다는 것을 알았어. 보물은 섬유 조직과 신경 다발로 붉게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교실 천장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대들보가 있었고 그 대들보에 목을 매고 있는 거대한 암곰의 허벅다리에서는 최초의 어미 쥐들이 흘러내리고 있었어. 절망적인 열기와 악취로 가득 찬 밀폐된 공간 속에서 나는 헛구역질을 하면서, 영구한 사실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눈을 떴을 때 애들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난 끔찍한 두통에 시달리며 어디까지가 사실이냐고 물었고 애들은 모든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어. 하지만 난 엉망으로 벌거벗은 채였고 내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 난 흐느꼈고 애들은 말없이 책상들과 의자들을 제 자리로 열을 맞추어 밀어 놓고 있었어. 아직, 초록은 절망적으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그 청소도구함에 벌거벗은 네가 있을까 봐 무서워.

여자는 비상벨을 눌러야 할지 고민했지만 결국 누르지 않았다. 장미색의 입술을 가진 간호 교사들은 그녀들의 방으로 오지 않았고 끝나지 않은 악몽을 데리고 나가지도 않았다. 소녀들은 눈을 뜬 채로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밤을 지새웠다.

상담사는 여자의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소견서를 작성해 주었고 보호 교사는 주저하며 여자에게 인터뷰 요청 편지를 전달해 주었다. 제안된 인터뷰 날짜는 그 주의 금요일이었다. 방송사의 인터뷰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29번 채널에서 보낸 편지는 아니었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인터뷰를 수락하겠다고 전했고 그 주의 금요일에 여자는 꿈 속의 교실도 상담실도 정체되어 있는 차 안도 도로도 보호소도 아닌 곳으로 향했다.

인터뷰는 카페의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경찰은 회의실 바깥 테이블에 사복 차림으로 앉아 있었고 여자는 기자와 함께 회의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회의실은 독립된 공간이었지만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안팎에서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여자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경찰이 순진하고 어리숙한 실험실의 알비노 쥐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아직 한 번도 죽지 않고-로드킬당하거나 실험실에서 마약 성분의 과다 투여로 심정지를 일으키지 않고-살아 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자는 크림색의 셔츠와 진주색 스커트를 입고 있는 하얀 암쥐였다. 암쥐는 자신이 인사이드미러의 사회부 기자라고 전했다.

처음 들어보는 신문이네요, 하고 여자는 다소 무례하게 말했다. 암쥐는 짐승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여자는 요즈음에는 쥐들도 기자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인사이드미러의 사회부는, 암쥐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쥐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인사이드미러의 사회부에는 쥐들 기자들밖에 없죠.

여자는 놀랍다고, 취재를 하면서 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냐고 물었고 암쥐는 지금까지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이제 인터뷰를 시작해도 될까요? 암쥐는 물었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쥐는 우선, 가장 최근의 죽음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죽음과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떤 관련이요?

그러니까, 암쥐는 불투명한 검은 눈으로 여자를 마주보며 말했다. 원한 감정이 개입되었느냐는 거에요.

아니요. 여자는 대답했다. 그건 원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난 그 애를 죽이기 위해 집으로 초대한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그 애는 나를 죽인 남자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그 애는 아주 상냥했고 난 그 애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나는 그 애를 위해 사과를 쪼갰고 우리는 함께 천사의 고기를 먹었어요.

여자는 경찰과 변호사, 상담사에게 했던 진술을 반복했다. 천사의 가슴은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여자는 비밀스럽게 덧붙였다. 벌어져 있었어요.

암쥐는 세간의 관심을 느끼느냐고 물었고 여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많은 편지가 와요. 난 그 편지들을 전부 읽어보았어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죽음은 그렇지 않았어요. 난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고 죽은 채로 그대로 살아남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계절을 지나쳐야 했어요. 감옥도, 상담도, 보호소도, 인터뷰도 없었어요.

기자는 희생자와 같은 보호소에서 지내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래요. 여자는 읊조리듯 대답했다. 우리는 같은 방을 써요. 그 애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이 어떻게 영구적인 집요함을 간직하고 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우리는 같은 방을 쓰고 그 애는 내 위에서 잠들어요. 우리는 종종 죽음을 꿈꾸지만 악몽의 끝에서는 항상 많은 양의 산소를 들이쉬며 깨어나요. 우리는 아직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알아요. 어쩌면 우리가 아는 건 그것뿐일지도 몰라요.

그건, 암쥐는 다정하게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기자는 희생자가 여자를 보고 괴로워하지는 않느냐고 물었고 여자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간혹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요. 눈 먼 밤의 일그러짐에 반영된 응시처럼, 우리는 더 이상 이해할 것이 남지 않은 서로를 봐요. 그리고, 여자는 덧붙였다. 그 애는 내 침대에 걸터앉아서 내게 온 편지들을 읽어요. 그 애는 그 편지들을 마치 자기 것처럼 좋아해요. 언젠가 우리는 우리가 완전히 섞여버릴 거라고 생각해요. 비가 오는 날에는 그런 느낌이 더 절박하게 들어요.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완벽한 혼동에 몸을 맡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별들의 고독 속에서 발버둥치는 천사들, 사랑하는 애인에게 창녀의 분장을 해 주는 창녀, 창녀의 웃음 속에는 웃음이 있다. 창녀의 얼굴가죽 속에는 창녀의 웃음이. 허공에 매달린 창녀의 얼굴 가죽들. 여자는 죄책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나뿐인 두개골을 억지로 열어젖히는 젖은 손가락들, 물고기의 심장은 심해처럼 젖어 있다. 암쥐에게서는 시큼한 포도향이 났다.

여자는 그녀와 함께 사는 세 명의 룸메이트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에게 나는 파랑, 보라, 초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파랑은 아주 늙은 여자에요. 그녀는 살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쥐들을 죽였어요. 하지만 그녀가 보호소에 들어온 건 그녀가 쥐들을 죽였기 때문은 아니에요. 여자는 암쥐의 검은 눈을 보며 말했다. 암쥐는 불편한 기색 없이 여자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미쳤기 때문에 갇혔어요.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보라는 어린 아이에요. 그 애는 공중을 부유하는 피부조각들을 온종일 들여다보는 그런 종류의 아이에요. 초록은 수십 명의 정신과의들을 독살하고 이곳에 갇혔다고 말하지만 난 정신과의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도둑이에요.

암쥐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보라에 대해 더 알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암쥐는 보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떠한 것을 좋아하는지, 다른 친구는 있는지, 주로 어떤 말을 하는지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왜 세 여자들을 색깔의 이름으로 부르는지도. 여자는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말했으므로.

정말요? 암쥐는 놀랍다는 듯 물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는 그녀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말해졌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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