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과 레몬캔디의 물방울 – 고해성사 1

분명 삼촌이 그의 유년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침묵만을 고수했던 것도 아니에요. 당신한테 말한 적이 있죠. 삼촌은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꽤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고.

삼촌이 어릴 적, 그러니까 서커스에서 도망쳐나온 뒤 한동안 수도원 소유의 고아원에 들어갔다는 걸 내게 이야기해 준 것은 이모가 연인을 찾아 집을 나서고 삼촌이 지상에 선 박쥐처럼 구석자리의 그늘에 매달려 끝없는 잠을 자고 있을 때였어요. 내가 그에게 다가가자 삼촌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고 난 그의 수척한 얼굴에서, 핏발이 잔뜩 선 눈빛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내 인영에 되려 죄책감을 느꼈죠. 난 그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사실 그 역시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삼촌은 날 내쫓는 대신 그의 유년에 대해 허둥지둥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작은 소요라도 간절한 사람처럼, 지독히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 수 있는 사람처럼. 난 삼촌의 옆에 웅크려 앉아 이야기를 들어 주었어요. 삼촌의 얼굴과 눈을 밝혔던 내 피부의 열기가 점점 식어가고 나 역시 오랫동안 불을 밝히지 않은 차고 어두운 방의 암흑에 물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난 그의 그림자처럼 옆에 앉아 다시 차갑게 식어가는 얼굴을, 조금씩 부옇게 올라오는 어스름을 차례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삼촌은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어요. 난 그의 말들이 오랫동안 허공에 머무르며 지어낸 허구인지, 실제로 그의 피부와 눈, 귀를 통해 외부세계로부터 들어온 정합한 인상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가 내게 해준 말은 모두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비슷한 일인지도 모르죠.

다시 쓰는 일. 유년을 다시 쓰는 일.

응. 고적한 어둠 속에 함께 웅크리고 앉아 있는 건 마치 그 방을 어둠으로, 어둠을 그 방으로 바꾸어버리는 일 같았어요. 난 아직도 그 방이 밤만큼이나 넓게 느껴지고 밤이 그 방만큼이나 비좁게 느껴져요.

레몬캔디의 침묵. 여자는 예정되어 있는 대사를 연기하듯 자연스럽게 그에게 되묻는다.

무슨 일인가요?

아니요.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당신도 삼촌을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이 묻으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죽인 사람들이 맞나요?

너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레몬캔디는 삼촌의 비좁은 어둠 속에서의 기억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끝내 그의 목을 졸라주지 못했어요. 어쩌면 그는 그것만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어둠 속에서 불안으로 일렁거리던 빛무리, 죽음의 예감이 아닌 삶의 예감으로 흔들리던 눈빛을 난 배신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아무도 해칠 수 없어요. 아무도 사랑할 수 없고 아무도 죽일 수 없어요.

그건 당신 삼촌도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는 이모를 훔쳤잖아요.

그가 훔친 건 그녀의 죽음이 아니라 삶이에요. 그는 더 이상 죽어가지도 않는 것을, 그러니 더 이상 온전히 살아있지도 않은 것을 훔쳤어요. 그가 훔친 건 타인의 죽음이에요.

나도 삼촌을 훔쳤어야 했나요? 해부실에서 그의 나비를, 나비의 자궁을 도려내던 사람들로부터 그의 시신을 되찾아왔더라면.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어요. 당신은 그를 질투할 필요도 없고요.

난 삼촌을 질투하고 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삼촌이 그 어두운 방에서 갈라진 목소리로 내뱉던 말들마저 난 훔쳐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가 수도원 시설에서 지내던 날, 삼촌은 그곳에 없는 아이처럼 살았대요. 수도 사제들이 관리하던 서류에서 삼촌의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지 삼촌은 자신이 누군가 대신 그곳에 잘못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그가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마을까지 내려가 다음날 새벽에야 들어와도 그를 꾸짖는 사람조차 없었어요. 삼촌이 서커스에 있을 무렵에도 그는 물론 조용한 아이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요. 서커스 단장은 항상 그에게 무엇인가를, 소년들의 아름다운 불을 대신할 수 있을 만한 묘기를 요구했고 삼촌은 서커스의 짐승들을 울부짖게 만드는 채찍소리에 시달려야 했죠. 단장은 아이들을 그렇게 훈련시키곤 했거든요.

오랫동안 불이 머물고 떠난 자리, 시꺼멓게 그을러버린 링의 앞에 우두커니 앉아 동그란 테두리 너머의 허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만 있는 사자에게 단장은 거침없이 채찍을 휘둘렀어요. 사자의 유리구슬과도 같이 투명한 눈과 마른 코, 붉은 혀가 비어져나온 얼굴에 시뻘건 상처가 생길 때까지. 허벅다리나 등, 엉덩이 부위를 때릴 때면 이제는 그다지 울지도 않게 된 사자는 얼굴을 때릴 때면, 예민한 감관들이 몰려 있는-누군가는 영혼이 드나드는 길이라고까지 이야기하는- 급소를 맞을 때면 어김없이 비통한 소리로 울부짖었죠. 소년들이 훈련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단장이 그들 세계의 경계선으로 만들어놓은 금을 넘어갈 때, 분필로 그려 넣은 보라색 금을 밟고 바깥을 향해 달려가는 눈빛을 단장이 발견할 때, 단장은 그들을 불러모아 사자의 옆에 세우고 사자의 얼굴을 가차없이 채찍질하곤 했죠. 사자는 오래도록 학대당한 짐승 특유의 눈빛으로, 더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제 어둠 속으로 파고드는 굴종한 짐승의 눈빛으로 허공을 노려보았고, 아이들은 그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으며 사자와 함께 흐느끼곤 했어요. 그 애들은 자신들이 단장의 위치에서 사자를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사자의 옆에서 그의 흐느낌을, 뚜렷한 통증 없이 사무치는 불길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삼촌은 말했어요. 더욱이 불안과 고통에 지칠대로 지친 사자가 원한을 가지고 달겨들어 목을 물어뜯는다면, 그 대상은 분명 그에게 채찍질을 해대는 단장이 아니라 그의 곁에서 그의 채찍질을 감내하고 있는, 그러나 상처도 없이 말갛고 투명한 피만을 흘리는 아이들이 될 것이라는 것도 우리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어, 하고 삼촌이 말했죠. 그래서 그들은 단장의 날카롭고 비정한 채찍과 사자의 눈, 고통에 짓눌려 흐려진 눈빛 모두에게 위협을 당해야 했다고, 그 시간만큼 스스로의 존재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다고 이야기했어요.

난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삼촌의 곁에서 그의 유년을, 내가 잃어버린 유년의 조각을 훔쳐듣고 있는 내가 학대받는 사자의 곁에서 그의 고통을 훔쳐들어야 했던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긴 했죠. 물론 삼촌에게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타인이 자신의 고통을 비유 대상으로 삼는 일, 타인이 자신의 고통을 잣대로 삼아 제 통증을 재어보는 일은 누구나 싫어하는 일이니까. 내가 삼촌의 목소리를 듣듯 삼촌도 내 침묵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듣는 것이 그의 말이 아니라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죠. 사실 난 삼촌의 목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의 말투 역시. 그가 말해주었던 내용이 너무나 매혹적이었으니까, 난 몇 번이고 서커스단에서 불을 뿜는 소년들의 얼굴을 상상했고 노란 나비들의 울음소리를 상상했으며 그가 만든 병에 감염된 사람들이 죽어가며 들었던 노래에 대해 상상하곤 했으니까. 그건 더 이상 삼촌의 목소리가 아닌, 내 목소리로 내 안에서 현상되곤 했어요. 그 이미지들에 삼촌의 어투는 아주 희미한 얼룩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죠.

괜찮아요. 내가 듣고 있는 건 당신의 목소리니까.

그래요. 나도 당신의 침묵을 듣고 있어요.

이야기를 계속해요. 당신의 삼촌과 우리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유년의 기억이 솔직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사하다는 걸, 그러니 당신도 삼촌의 유년을 당신의 것처럼 상상하는 일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을 테니.

좋아요. 삼촌이 수도원에서 지낼 때의 이야기를 하죠. 삼촌은 그때 누구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도 자신을 학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도 그의 존재로 인해 채찍을 맞지 않으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그런 자유가 그에게 해방감을 가져다 주었죠. 그는 원하는 만큼 식당에 남아 천천히 빵을 뜯어 먹을 수 있었고, 언제라도 마을에 내려가 검푸른 숲길을 쏘다닐 수 있었어요. 그가 가여운 들개에게 먹던 빵을 건네 주어도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하지만 그는 갈수록 그의 피부가 투명해지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어요. 그는 차라리 누군가가 그를 학대해주기를 바랄 지경이 되었죠. 그는 마치 산 채로 유령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어요. 그는 온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에 망자들의 길목으로 접어들 수도 없었고 강을 건너기 위해 그를 안내할 사공을 배정받지도 못한 채 이승에서 유령의 모습으로 계속 떠돌아야만 하는 형벌을 받은 것만 같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는 소소한 악행들을, 그를 이승에 붙들어놓을 수 있는, 그래서 누군가가 그를 벌하고 학대할 수 있을법한 구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고해성사실에서의 일도 그중 하나였죠. 삼촌은 수도원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악행을 저질렀어요. 남의 죄를 가로챈 일이었죠.

그는 비좁은 관과 같은 고해성사실의 한쪽 칸, 베일이 드리워진 신부의 자리에 들어가 밤을 지새우곤 했죠. 간혹 밤과 낮의 경계를 잊어버릴 정도로 지친 신도들이 죄인의 자리로 들어가 죄를 고하는 소리를 훔쳐듣기 위해서였어요. 삼촌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죄인들은 그들의 갖가지 악몽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삼촌은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대신 그들의 악행을 모방했죠. 하지만 대부분은 그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부녀자와 사내, 아이를 탐하는 일은 그의 욕망과는 어긋나는 일이었죠. 그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 이들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어요. 그를 해치지 않는 이들을 도저히 욕망할 수도 없었고요. 금품을 탐하고 물건을 훔치는 일들은 손쉽게 따라 할 수 있었죠. 그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요. 아마 그즈음에는 삼촌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다른 사람들도 정말 그가 유령이라고 믿는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였으니까요. 고해성사실의 죄인들은 그들이 죄를 용서받는 대신 죄를 도둑맞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알지 못했어요. 삼촌의 수법이 그리 교묘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그의 이름을, 그의 얼굴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일종의 면죄부가 되었죠. 하지만 그들의 범죄들을 모방하는 일에 대해 삼촌은 어떤 쾌감도 느낄 수 없었어요. 악행을 저질러도 그의 마음에 남는 얼룩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자를 볼 때처럼 가슴 안쪽에 선뜩하게 새겨지는 멍든 빛깔은 없었고 삼촌을 책망하고 벌주는 이도 없었으며, 그는 결국 누구도 아프게 하지 못했고 누구도 그를 아프게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는 종종 원죄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선한 신, 혹은 전능한 신의 존재를 상정하기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생물들의 죄에 대해, 살아감이라는 벌 이전에 지워진 합당한 죄에 대해.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살아가며 동시에 죽어가는 기이한 고통을 감내해야 할만한 죄는 생각해낼 수 없었어요. 선악과를 먹고 안식의 땅으로부터 쫓겨나온 것? 지혜로운 뱀의 속삭임을 듣고 실재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배워나간 것? 붉은 껍질 안쪽의 하얀 속살을 탐하면서, 자라난 열매를 짓씹어 삼키고 소화시킴으로써 생물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 썩어가는 사과를 몸 안쪽에 품고 서로 다른 썩어감을, 서로 다른 죽음의 시간을 감내하려 한 것? 신부들에게 원죄에 대해 물어봤더라면 그는 타인을 설득시키는 데에 익숙한, 자비롭고 확고한 어투로 삼촌 역시 설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삼촌은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들에게 질문할 만한 용기가 없었죠. 만약 신부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지나친다면 삼촌은 더 이상 불투명한 피부 아래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투명한 유리병처럼 깨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요. 결국 그는 원죄에 대해, 그리고 악몽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숱한 죄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저질렀던 하나의 죄만큼은 짙은 얼룩으로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삼촌, 그러니까 수도원의 유령 소년이 평소처럼 고해성사실에 숨어들었을 때 소년은 자신보다 먼저 죄인의 방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죠. 격자무늬의 벽 바깥쪽에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사내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으니까요. 소년은 진정하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잠자코 비좁은 고해성사실 안쪽으로 스며드는 울음소리와 습기를 감내하고 있었죠.

그때 사내는 고해하기 시작했어요. 신부님, 저는 남의 개를 묻었습니다. 그건 제가 기르던 개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습니다. 숲 안쪽에서 남몰래 기르던 개가 다리를 물어뜯었을 때 전 견디지 못하고 배를 걷어차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절 그토록 따르던 개가 갑작스레 발작을 한 것은 지독한 악몽이나 병,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도 그때의 저는 아무런 사정도 알려고 하지 않고 그 가엾은 짐승의 연약한 배를 걷어차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제 개를, 주먹만큼 어릴 때부터, 어미의 시체 옆에 웅크리고 앉아 제대로 짖지도 못하고 낑낑거리는 것을 데려와 몰래 피를 씻기고 짐승의 뼈를 주었을 때부터 가장 연약한 살을 쓰다듬었던 그 개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제 개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개를 기르던 숲의 공터에 개가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 저는 제 개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죽은 개를 묻어주지 못했다는 것이었죠. 신부님도 죽은 가족이나 개가 있었더라면 잘 아실 겁니다. 삶에서 차지했던 육신보다 두둑하게 올라온 봉분을 보지 않고서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요. 팔뚝보다 작은 아기를 묻고서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편평한 봉분, 돌 하나의 높이만큼도 올라오지 않은 봉분의 모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신부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전 제 개를 묻지 않고서는, 묵직하게 올라온 살만큼이나 풍만하게 부푼 봉분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개를 기를 수도, 개를 추억할 수도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개를 훔쳤습니다.

마을로 내려가 병든 아이들을 돌보고 기도를 드리던 날이었어요. 고수머리의 어린 소년이 살던 집이었는데 그곳은 어쩐 일인지 절망적인 그늘이 짙게 깔려 있더군요. 나 역시 같은 우울에, 봉분을 확인하지 못하고 개를 떠나보내야 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그곳에도 죽은 개가, 아직 묻지 못한 개가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죠. 난 그 집 사람들이 내게 따뜻한 스프를 대접했을 때, 깨끗하게 닦인 은제 스프로-아마 그 집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물건일 것이 분명한- 천천히 스프를 떠서 입 속으로 집어넣으며 주변을 둘러 보았지요. 예감대로 짙은 죽음의 악취가 조금씩 스며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난 조심스럽게 부인에게, 테이블의 한쪽 끝에서 우수에 잠긴 얼굴을 잔뜩 수그리고 앉아 있던 가냘픈 여인에게 특별히 기도를 드릴만한 사람이 더 없느냐고 물었고, 부인은 화들짝 놀라며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그리고 히스테릭하게 오르내리는 목소리로 더는 죄를 숨길 수 없으니 털어놓겠다고, 마치 어린 소녀가 오페라 가수의 아리아를 서툴게 따라하듯 높고 불안정한 음정으로 이야기하게 시작했어요. 그녀의 집에는 지금 죽은 사람이 머물고 있다고, 그러나 그의 죽음이 그녀나 가족들의 탓은 아니라고요. 그때 집에 있는 것-정확히 살아 있는 것은- 그녀와 그녀의 고수머리 소년, 그리고 저뿐이었죠. 그녀는 얼마 전부터 남편이 집을 비울 무렵이면 초인종을 누르던 집시 행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검은 얼굴에 침울한 눈빛을 지닌 그가, 낯선 색의 피부와 낯선 무늬의 옷을 입은 그가 불길하게 느껴졌기에 부인은 그가 집에 올 때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릴 때마다 모른 척했지만, 낯선 색에 공포보다는 호기심을 느낀 아이가 그녀가 한눈을 판 사이에 문을 열고 말았고, 사내는 부인과 아이에게 아무런 말 없이 보랏빛의 아름다운 향료를 건네주었다고 했어요.

부인은 그 향기로운 모래가루가 독인지 먼지인지, 그것도 아니면 보석의 가루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내가 건네준 가루를 유리병에 담아 그녀의 침대 밑에 보관했다고 했어요. 그녀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가루, 서서히 그녀를 중독시켜 죽여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 가루에 매혹되어 계속해서 사내에게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어제, 남편이 사냥을 위해 검은 숲으로 나갔을 때 어김없이 검은 피부의 집시 사내가 찾아왔고, 그녀는 이제 스스럼 없이 그의 앞에서 유리병을 꺼내 그가 건네주는 보랏빛의 아름다운 가루를 그 속에 집어넣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사내의 얼굴에 유리병을 엎지른 것은 순전히 우연한 사고였다고 부인은 호소하듯 말했죠. 사내는 그녀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작은 키였는데, 그녀의 뒤에서 뛰어오다 미끄러진 소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그녀 또한 휘청거리게 되었고 그때 그녀가 조심스럽게 모래가루를 옮기고 있던 유리병이 사내의 입술 위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당황한 사내가 숨을 크게 들이켰고, 그는 곧 얼굴이 그가 건네주었던 향료와 같은 보랏빛으로 변해 졸도하고 말았다고, 그녀는 놀라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혹시 그녀와 아이를 살해할 수도 있는 독성이 있는 가루들을 창문 밖으로 날려보내는 일에 열중했고 그 사이에 심장이 멎은 사내는 곧바로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그녀는 차마 사내의 시체를 처리하는 무시무시한 일을 가녀린 몸으로 해낼 자신이 없어 그저 그의 시체를 그녀의 침실에 누인 채로 방치하고만 있다고 이야기했죠.

난 그녀의 손을 잡고, 불안할 정도로 커다란 눈동자로 테이블을 주시하고 있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검은 얼굴의 사내를, 내가 잃어버린 검은 개를 한밤중에 들쳐매고 몰래 숲으로 향했죠.

부인과 아이는 흐느끼며 나를 배웅했어요. 내가 그들의 은인이라고, 그들은 결코 나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입술은 똑같이 검푸른 빛깔이었어요. 난 그들 역시 사내를 죽인 독과 같은 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어쩌면 사내는 그들과 함께 죽음으로써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굳이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죠.

숲 속에서 사내를 묻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요. 난 오래전부터 내 개를 묻기 위한 자리를, 개를 묻는 방법을 계속해서 구상해 왔고 실제로 몸을 움직여 흙을 파고 묫자리로 봐 두었던 자리에 사내를 눕혀 흙을 쌓는 일을 날이 밝아오기 전에 끝낼 수 있었죠. 난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두둑한 봉분을 검은 개의 몸 위에 덮었어요. 그러고 나면 잃어버린 개를, 개의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죠. 이제는 내 개의 죽음을 마음껏 애도하고 새로운 개를 기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새벽에 수도원에 들어가 온몸에 묻은 검은 흙을 닦아내면서 난 아직도 내 머릿속에 검은 개가, 내가 잃어버린 개가 내 발길질을 감내하며 낑낑거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그래요. 그제야 난 실감할 수 있었죠. 내가 묻은 건 내 개가 아니었던 거예요. 신부님. 저는 남의 죽음을 훔치고 타인의 시체를 묻었어요. 제가 죽이지도 않은 이의 죽음을 훔쳐 제 개의 무덤을 만들려 했죠.

사내가 구역질을 하며 흐느끼는 동안, 삼촌은 메슥거리는 속을 다잡으며 고해성사실을 빠져나갔어요. 수도원 뒤쪽 정원에선 마침 나무 아래에 떨어져 죽은 어린 새의 시체가 마치 계시처럼 그의 앞에 놓여 있었어요. 그는 고개가 꺾인 채 여린 살갗을 뚫고 나온 뼈가 선명하게 드러난 새를 손에 들고, 상처난 목 위에 들러붙은 구더기를 털어낸 후 나무 아래에 작은 봉분을 만들었어요. 사내의 말대로 흙을 두둑하게 쌓은 봉분을. 하지만 그건 삼촌의 개가 아니었어요. 삼촌은 개를 기른 적도 없었고 어떤 동물도 어떤 생명도 그에게 길들여진 적이 없었기에 삼촌은 그의 죄를 똑같이 모방할 수도 없었죠.

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난 서커스단의 천막에서 발견했던 짐승을, 내 앞에서 거품을 물고 죽어가던 짐승의 육신을 떠올렸죠. 난 그걸 묻어주어야 했을까요? 그러면 난 삼촌이 계승받지 못했던 죄를 품고 그 황홀한 얼룩을 유년으로 삼은 채, 유년의 빈자리를 채우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어째서 난 그때 짐승을 묻어줄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요. 하지만 서커스단에서 있었던 일도 삼촌에게 이야기하진 않았어요. 난 당시에 그를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미묘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굳이 입밖으로 내어 확언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난 서커스단에서 있었던 일을 삼촌의 노래가 아닌 내 글로 적어내고 싶었어요. 그래요. 지금 당신과 내가 하고 있는 일처럼.

고해성사실의 격자무늬 벽 사이로 스며드는 눅눅하고 불쾌한 냄새, 칠흑 속에 웅크리고 앉은 사내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한동안 망령처럼 삼촌의 주위를 떠돌았다고 해요. 삼촌이 묻은 건 하찮은 새끼 새만은 아니었죠. 그는 부러진 나뭇가지나 시뻘건 핏줄이 흉측하게 돋아난 낙엽, 자그마한 자갈 같은 것도 묻어준 적이 있었지만 그것들의 무덤은 모두 흩어져 있었기에 아무도 남몰래 무덤들의 마을을 만들고 있는 소년의 악행을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그가 묻은 것 중 가장 커다란 생물은 안식일에 맞춰 기적과도 같이 생을 마친 주교의 시체였죠. 신도들은 깨끗하게 닦아놓은 주교의 시신을 기도실에 안치해 둔 채, 그의 시신에서 기적을 확인하기 위한 방안을 은밀히 모색하며 수런거리고 있었어요. 기적을 행한 성자들은 종종 썩지 않고 밀랍과도 같이 새하얀 얼굴로 영면에 들곤 하기에 주교의 관 역시 투명한 유리 속에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 수도사제가 제안했고 다른 이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양을 삼촌은 지켜보았어요. 삼촌은 주교의 벌거벗은 시신을 두고 다들 기도에 들어간 사이 몰래 기도실에 들어가 어둠 속에 묻힌 시신을 끄집어내렸죠. 성수로 몸을 닦기 위해 벌거벗은 주교의 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게 보였어요. 어둠 속에서 사자(死者)의 피부는 더욱 순결하고 깨끗하게 보였다고, 삼촌은 무척이나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죠. 그 무렵 소년은 성인 남자의 어깨까지 머리가 닿을 정도로 자라 있었기에 유난히 키가 작은 편이었던 주교의 시신을 간신히 들쳐메고 기도실을 나올 수 있었다고 했어요. 등 뒤에 와닿는 시신의 가슴과 도드라져 나온 갈비뼈, 축 늘어진 성기와 물기가 묻은 무릎의 감각을 선연하게 기억한다고 삼촌은 말했어요. 그는 예수의 십자를 짊어지고 행군하는 로마병사가 된듯한 느낌으로, 죄를 두고 달아난 이의 원죄를 대신 짊어진 심정으로 숲을 향해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고 해요. 어스름 속에서 소년의 어깨에 눕혀 있는 사내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신부는 없었어요. 한밤중에는 누구나 벌거벗는 법이니,

수도원 안뜰에서 빗자루로 낙엽을 쓸던 신부들은 평소처럼 소년의 모습을 모른 척했어요. 벌거벗은 사내가, 투명한 어둠에 젖어든 사내가 방금 영면에 든 주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로요. 그들은 죽은 이가 벌거벗을 수 있으리라고는, 그것도 유령의 등에 엎어져 발을 질질 끌며 기어갈 수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해요. 그래서 그들은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모른척했고, 소년의 악행을 보지 못했죠.

삼촌은 죽음을 직감하고 몇 해 전부터 눈에 띄게 식사량이 줄었던 사내, 예수처럼 비쩍 마른 수척한 사내, 악몽의 무게보다도 가벼운 뼈를 검은 숲 깊은 자리에 내려놓았어요. 처음 묻었던 작은 새의 무덤이, 시신에 비해 지나치게 묵직한 흙의 봉분이 있는 곳이었죠. 소년은 이틀 동안 굶어가며 흙을 팠어요. 삽까지 구해올 여력은 없었기에 손톱이 깨지고 빠져 붉은 피가 흙에 섞여들 때까지, 더 이상 시신의 입에서는 비어져나오지 않는 피가 검은 흙과 섞여 사자의 몸에는 머물지 않는 통증이 소년의 몸을 진득하게 깨물 때까지 삼촌은 계속해서 깊은 구덩이를 팠죠. 그리고 삼촌은 여느 개들을 묻을 때와 같이 주교의 알몸을 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었어요. 좁고 깊게 판 구덩이에 주교를 흙에 기대는 모양새로, 그러니까 반쯤 구덩이에 기대어 선 채로 밀어 넣었는데 삼촌 스스로도 믿기 어렵게도, 구덩이는 신부의 작은 몸집에 관처럼 꼭 맞는 크기였죠. 삼촌은 비스듬한 틈새에 놀랍도록 꼭 들어맞는 하얀 나신을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어요. 모두가 그의 비천한 도둑질을 경멸한다 해도 틈새에 꼭 들어맞는 몸의 인상만으로도 모멸을 견뎌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구덩이 주변으로 흩어진 젖은 흙을 덜렁거리는 검붉은 손톱으로 다시 긁어모아 주교의 머리까지 차분하게 뒤덮고 난 뒤, 삼촌은 멀리에 있는 자갈들까지 가져와 지금껏 쌓아본 중 가장 큰 봉분을 만들었죠. 그건 삼촌 나름의 경외감의 표시이기도 했어요.

누군가 지나간다면 금세 들킬 정도로 눈에 띄는 무덤이었죠. 주교의 몸을 뒤덮은 흙에 삼촌의 뜯겨나간 손톱과 검붉은 피가 섞여있다는 사실도, 누군가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금방 추적할 수 있을 비밀이었죠. 하지만 삼촌은 결국 누구에게도 그의 악행을 들키지 않고 수도원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날, 평소처럼 밤을 새고 새벽에 샤워실에 숨어들어 검은 흙을 씻어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돌아간 기도실에는 어찌된 일인지 깨끗한 유리관에 누워 있는 주교의 시신이 있었다고 삼촌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삼촌의 작은 손톱은 여전히 피투성이었고, 물로는 차마 씻어낼 수 없었던 검은 흙이 엉겨붙어 엉망이었지만 소년이 묻었다고 믿었던 사내는 여전히, 비쩍 마른 몸에 이번에는 하얗고 부드러운 수의를 걸친 채 투명한 관 유리 아래에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고, 신부들과 다른 소년들 사이에 섞여 주교의 영면을 위해 기도를 올리면서도 제가 묻었던 비쩍 마른 알몸의 사내가 짓고 있던 표정을, 그의 얼굴을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었다고 삼촌은 말했어요. 그가 묻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는 도저히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고요. 삼촌은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수도원 소유의 묘지에, 볕이 가장 잘 드는 땅에서 깨끗하게 관리되어 반짝이며 빛나는 묘비를, 우아한 필체로 음각되어 있는 이름을 훔쳐 그가 묻었던 사내의 봉분 앞에 놓아두는 상상을 반복했지만 결국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은 벌거벗은 몸을 훔치듯 이름을 훔쳐낼 수는 없었다고 쓸쓸한 말투로 덧붙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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