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와 광인들의 물방울

할아버지의 연금술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지도 몰라요. 무엇보다도 시간을 내키는 대로 조율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를 마치 신과 같이 받들어지던 고대의 왕처럼 보이게 했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시계의 원리를 안다면 누구라도 시간을 바꿀 수 있다고, 그건 연금술 고유의 영역조차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아무도 할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죠.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다소 자조적인 어투로 할아버지를 비꼬아 비난하고는 했어요. 결국 할아버지는 자신의 무능함에 대하여, 자신이 가진 재능의 범상함에 대하여 사람들을 설득하던 일을 관두었죠.

할아버지의 명성은 마을 전역에 자자했지만, 그가 지닌 재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으로는 한 명도 없었어요. 요제프 칼 삼촌이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연금술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생명공학이나 수학의 영역에 가까울 거예요. 물론 삼촌이 할아버지의 재능을 오도한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긴 했어요.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연금술이 일종의 효험 좋은 주술과도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한동안 우리 집에는 기적을 바라고 모여든 병자들이 들끓었어요. 다리가 불구인 자, 눈먼 자, 침묵의 운명을 타고난 자, 하나의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샴쌍둥이, 얼굴이 검은 자, 얼굴이 푸른 자, 말을 더듬는 자, 제 다리, 혹은 팔, 심지어는 목이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달려 있는 여섯 번째 손가락과 같다고 생각하여 잘라내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자, 그러나 죽고 싶지는 않다고 속삭이는 자, 목을 잘라내면서도 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던 자, 잘린 발로 걸어다니면서도 아무런 통증도 역겨움도 느끼지 못하는 탓에 발목의 뼈가 모두 닳아 없어진 자, 세속적인 건강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이 언제나 초인종 앞에서 서성였죠. 할아버지와 나는 대체로 그런 자들의 방문을 무시했지만 할아버지의 연금술을 과신하는 이들은 그가 신으로부터 받은 권능을 적절한 일에 사용하지 않고 사유화하려 한다며 할아버지를 매도했어요. 자선활동을 강행하라는 공문이 오고 나서야 할아버지는 한정적으로 환자들을 받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 해가 떠오르고 질 때까지 초인종을 누르는 모든 사람들을 들여보내주기로 한 거예요.

하나의 성기와요도구를 공유하는 두 명의 쌍둥이 소녀, 벌거벗은 하반신에 남성기와 여성기를 동시에 드러내며 달려온 남자, 혹은 여자, 아직 다 자라지 않았던 나보다도 훨씬 키가 작았던 소인 남자, 건조하고 윤기없는 갈색 털이 마치 원숭이처럼 목과 어깨, 무릎과 종아리 안쪽까지 돋아난 여자아이, 눈꺼풀과 콧대, 입술조차 없이 다만 대기에 고스란히 노출된 검고 아름다운, 무척이나 둥근 눈동자를 드러내보인, 들숨과 날숨이 간신히 드나드는 자그마한 콧구멍과 치아만을 어떠한 피부의 치장도 없이 그대로 내보인 선홍빛 얼굴의 사내, 아마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할아버지가 서커스단을 기획하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당시에는 지성이 없는 짐승들보다는 우수에 찬 눈빛으로 허공을 빤히 바라보는 불운한 인간들을 흥밋거리로 내보이는 일이 더 유행했으니 말이죠. 그들은 할아버지가 진짜 의사라고 믿었어요. 할아버지 본인조차도 첫 주말에 그들을 맞을 때에는 그들이 곧 실망하고 그들의 불우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들은 할아버지의 연구실에, 시간의 파편들이 떠다니고 죽은 종달새의 내장이 기묘한 빛깔을 내면서 서서히 증류되고 있는 신비로운 공간에 홀려들었어요. 그들은 그곳에 가득차 있는 기적이, 음울한 흑마술이 그들을 조금씩 치료해주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들은 나날이 할아버지를 경외에 찬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할아버지는 군소리 없이 그들의 장단을 맞춰주었지요.

거대한 톱날을 들고 찾아온 여자가 자신의 다리를 잘라달라고 사정하였을 때, 할아버지는 고분고분하게 톱의 날을 불에 담가 소독했어요. 아, 그녀가 제발 징그러운 다리들을 잘라달라고 소리질렀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아무런 경계심 없이 평소와 같은 백치같은 미소로 환자를 맞아들였던 이모조차 깜짝 놀라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죠. 그녀는 자신이 벌레가 아니라고, 이렇게 많은 다리들을 타고 난 것은 분명 누군가의 실수인 것이 분명하다고, 그건 절대 자신의 책임이 아니며 그녀 스스로는 다족류 특유의 갈팡질팡하는 걸음걸이나 허공에서 떠도는 실과 같은 다리들이 꿈틀거리는 모양을 무척이나 경멸하고 있다고 호소했어요.

할아버지는 아무도 그녀의 아름다운 다리들을 혐오하지 않으며, 그녀가 징그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대신 그녀가 그녀 자신의 다리들을 끔찍스럽게 미워하고 있다는 걸 믿는다고 말해주었죠.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뚫고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 비명만큼이나 날카롭게 벼려진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그의 연구실 바깥에서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죠.

울음소리는 차츰 잦아들었어요. 나와 이모는 연구실 문 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의 담화를 엿듣고 있었죠. 그녀는 할아버지의 환자였으나 우리의 환자는 아니었고, 우리에게는 환자들의 비밀을 엄수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신의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한순간의 소요가 잦아든 뒤로는 문틈 사이로 귀를 갖다대어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죠. 귓속에는 차고 무거운 침묵만이 흘러들어올 뿐이었죠.

결국 우리는 그들의 밀담을, 그녀의 광증을 엿듣는 일을 포기하고 소파에 앉아 서로의 옆에서 각자 솔리테어 카드놀이를 했죠. 이모는 몰라도, 나는 혼자 하는 놀이가 더 익숙했기 때문에 그녀의 옆에 앉아서도 개인을 위한 놀이에 몰두하고는 했어요. 기억 속에서 마치 찰나처럼 왜곡된 짧은 순간 이후 그녀는 문을 열고 만족스러운 불안을 이목구비에 매단 채 거실로 나왔어요.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죠. 그녀는 여전히 두 다리로 서 있었는데 무엇을 잘라낸 것이냐고요.

그녀의 눈동자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게 대답했어요. 좀 전까지만 해도 만신창이로 찢겨나간 천 조각처럼 비명을 지르던 목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냥한 어투였어요.

그녀는 네 다정한 할아버지, 기적을 선물하는 의사선생님이 그녀의 발톱 열 개를 모두 잘라 주었으며, 다음 주에는 발가락을, 그 다음 주에는 발목을, 그 다음 주에는 종아리를, 그 다음 주에는 사타구니를 잘라내 주기로 모든 수술 스케쥴까지 잡고 나오는 길이라고 설명했지요. 우리는 벌써 수술을 마치고 난 뒤 사용할 휠체어의 도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단다. 하고 여자가 황홀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마리이모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그녀의 길고 아름다운 두 다리를 바라보았지요. 그러고는 곧장 이모의 하얀 다리를 무릎담요 속으로 숨겼어요. 그녀가 혐오하는 두 다리의 곧고 아름다운 모양을 들키면 언제라도 이모의 두 다리가 찢겨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혹은 다리를 혐오하는 그녀의 시선을, 누구보다도 타인을 잘 공감하는 상냥한 이모 역시 이해하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그녀 또한 자신의 두 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모든 기도를 바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는지도 모르죠.

칼 삼촌은 이런 사달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그의 다락 속에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모의 두 다리를 훔쳐내기 위해 그녀를 설득했을지도 모르죠. 삼촌은 이모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갖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 무렵부터 싹이 트기 시작하던 이모의 광증은 순전히 삼촌의 작품일 거라고 난 짐작하고 있었어요.

어린시절을 서커스단에서 보냈다던 삼촌이 이모에게 보여주는 기묘한 마술들은 어딘가 끔찍스럽고 음침한 구석이 있었죠. 한 번은 식사자리에서 그가 이모의 곰인형을 들고 온 적이 있었어요. 분홍색 털에 윤기나는 코와 수염을 매단 사랑스러운 녀석이었죠. 그는 곰인형에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로 주문을 걸더니 인형의 입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죠. 자그마한 곰인형의 배가 불룩하게 올라오고 삼촌의 가늘고 마른 손목뼈가 불거지는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비명을 질렀죠. 식사자리에는 이모의 사랑스러운 붉은 연인도, 할아버지도 없었기에 칼 삼촌을 말릴만한 사람은 찾을 수 없었어요.

삼촌은 수줍은 듯 귓가의 얇은 피부까지 선명한 붉은색을 돋우며 곰인형의 입에서 손을 빼내었죠. 난 그때까지 곰인형의 입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그건 아마 이모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이모는 마치 자그마한 강아지의 배를 찔러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창백하게 굳은 채 투명한 눈물과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어요.

칼 삼촌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곰인형의 입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경멸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죠. 곰의 입 속에서 빠져나온 그의 손, 창백한 뼈마디가 불거져나와 날카로운 칼처럼 보이는 그의 손은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붙잡고 있었어요. 그건 양 날개에 검고 아름다운 눈동자를 매단 나방이었어요.

우리의 환호성에 기쁜 듯이 수줍게 웃던 칼 삼촌의 모습은 그의 마술에 호응해준 우리 스스로도 뿌듯하게 만들 정도였죠. 삼촌은 나방의 부드럽고 연약한 날개를 집어 마리 이모에게 건네주었어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파들파들 떨리는 여린 살갗을, 도저히 우리와 같은 조직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이질적인 피부를 쥐었죠.

삼촌은 그녀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나방을 박제로 만들어주겠다고 했어요. 만약 그녀가 살아 있는 날개를 만지길 원한다면 나방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도 말했죠. 그가 어릴 적에 살던 서커스의 천막 뒤쪽에는 수백 쌍의 눈을 매단 검은 나방들이 붙어 있던 나방의 서식지가 있었으므로, 그는 얼마든지 그와 유사한 서식 환경을 만들 자신이 있다고도 덧붙였어요.

하지만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마리 이모는 미지근한 땀이 흘러 미끄러워진 손가락에서 미친 듯이 경련하고 있는 나방의 날개를 놓치고 말았고, 순간 스스로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듯 경련할 뿐 날개를 휘젓지는 못하고 있던 나방이 마룻바닥 아래, 깊은 나무 틈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우리는 다시는 그 나방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한밤중에 불을 켤 때면 항상 바닥 깊은 틈 속, 먼지 구덩이 속에서 먼지로 변해가는 날개를 말리며 숨어 있던 나방이 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우리의 눈동자 속의 투명하고 누르스름한 전구빛 속으로 달려들것만 같다는 환상에 휩싸이게 되었죠. 여하튼 그때 이모는 작은 신음소리만을 내뱉은 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날개가 잘린 나방처럼 파들파들 떨고만 있었죠.

삼촌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서 횡설수설하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어요. 가늘고 긴 등을 한껏 구부린 채로 끊임없이 속살거리는 그의 모습은 하얀 배추나비를 위로하는 거대한 파리의 모양처럼 흉측하고 신비롭게 느껴졌어요. 그는 이모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새로운 나방을 꺼내줄 수 있다고, 나방들은 결코 혼자 떨어져나가는 법 없이 한밤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려오는 부드럽고 흉악한 태풍처럼, 혹은 너울성 파도처럼 몰려다니며 거대한 대기의 몸부림 같은 무늬를 이루기에 한 마리의 나방을 잃는다 해도 곧 다른 나방을 만날 수 있다고 속삭였지요.

그때 이모는 파리하게 질려 아무런 말도 듣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삼촌의 말이 그녀 뇌리에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는 것은 이후 그녀의 강박적인 망상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었죠. 그녀는 어릴 때부터 소중하게 간직해온 수십 개의 곰인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곰인형의 입에 칼집을 내고 마치 마술을 부리던 삼촌의 모습을 따라하듯 가느다란 손목을 입 속에 집어넣고 인형의 배를 헤집어놓고는 했던 거예요.

처음에 그녀는 그녀의 방이나 화장실과 같이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은밀한 장소에서 그런 강박적인 충동을 해결했을 거예요. 그러나 남몰래 제 머리카락을 뽑는 병증에 걸린 사람이 곧 사람들의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을 한 움큼 부여잡고 두피에서 피가 흘러내릴때까지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처럼, 그녀도 차츰차츰 그녀의 광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게 되었어요. 난 이모가 곰인형의 입 속에 잔혹한 손을 집어넣고 뱃속을 무례하게 만지작거리는 선뜩한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었죠. 안식일과도 같은 주말에 기적을 바라며 할아버지를 찾아온 미치광이들도 이모를 보고 그들과 동류의 환자라고 짐작하며 줄을 서라고 다그쳤을 정도였어요. 한 번은 참다 못해 이모에게 무얼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죠. 그녀는 내 귀를 다정하게 감싸쥐고 그 속에 입술을 붙인 채 비밀스럽게 속삭였어요.

알들을 찾는 거야. 이 속에 알들이 들어있는 게 틀림 없어.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 가엾은 애들은 작고 연약한 몸으로 알을 파먹고 나와 번데기를 짓고 제 불쌍한 유년을 남김없이 파먹은 뒤 인형의 입밖으로 나와 젖은 날개를 펼치려 안간힘을 쓰다가 좁고 어두운 바닥 틈새로 떨어져 산 채로 먼지 속에 매장되어버리고 말거야. 그 애들은 한 번도 날지 못한 채로 먼지가 되어버리고 말겠지. 난 그 애들을 구하고 싶어.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한 순간도 살지 않아도 되도록. 난 알들을 전부 호수에 던져넣을 거야. 가장 차고 안락한 물속에서 날개를 잊고 잠들 수 있도록.

곰 인형 속에 드글거리는 하얀 나방 알들이 들어있으리라는 강박적인 망상은 그녀에게 희고 포슬포슬한 솜과 까슬한 모래, 심지어는 먼지마저 무언가를 잉태하고 있는 알로 보이게 만들었어요. 그녀는 날마다 손바닥에 먼지며 모래, 털실이나 빛의 파편 같은 것을 한 움큼씩 쥐고 창밖으로 쏟아버리기를 반복했어요. 그녀가 더 이상 무엇도 태어나지 않을 때까지 그 짓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할 때도 난 이모를 말리지 못했어요.

할아버지는 매주 멀쩡한 발을 들이밀며 흐느끼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지쳐서 이모의 이상도 알아차리지 못했죠.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여자가 두 개의 발목을 잘라내고 휠체어를 타고 나오던 날, 그녀의 만족스러운 미소와 검은색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었던 잘린 발, 하얗고 자그마한 피투성이 두 발을, 너무 섬세하여 생명의 몸에 붙어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조각된 정교한 모형처럼 보였던 두 발을, 더 이상은 살아 있지 않은, 그러나 죽은 것도 아닌, 생명으로부터 분리된 채 마치 생명처럼 썩어가는 두 발을 보았을 때도 나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죠.

사실 할아버지는 아무도 고쳐주지 않았어요. 그는 누구도 제대로 진단하지 않았고, 다만 그들 스스로가 내린 진단을 인정해주었을 뿐이었지요. 여남은 다리를 견디지 못하는 여자를 위하여 그녀가 가져온 톱으로 그녀의 발목을 잘라 주었고 하나의 자궁을 공유하는 삶을 견디다 못해 서로와의 오랜 합일로부터 떨어지기를 원한 샴쌍둥이 소녀를 화해시켰으며, 그들을 위해 새로운 유리 자궁을 하나 만들어주는 식이었지요. 샴쌍둥이 소녀는 몸 속의 하나의 자궁, 썩어가는 자궁과 몸 밖의 유리 자궁, 결코 썩지 않는 자궁을 하나씩 갖게 되는 셈이었어요. 나머지 신체는 대개 쌍이 맞았지요. 그들은 머리도, 목도, 다리도, 팔도, 유방도, 신장도 모두 한 쌍씩 있었으므로 그것을 하나씩 공유하면 된다는 데에 모두 합의한 상태였어요. 다만 심장이나 위장, 배꼽과 성기, 방광과 항문과 같은 은밀한 장기들의 지분을 나누는 데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러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그들을 위한 모조 성기, 모조 자궁과 항문, 방광과 배꼽, 심장과 위장을 하나씩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상태였어요.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모조성기를 빌려주겠다고, 그럼 서로가 다른 연인을 만나고 있는 상황이라도 언제든지 각자의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들은 마침내 서로를 안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한 명의 연인을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무척이나 만족했어요.

또, 오랜 연인으로 배신당한 여인이 찾아왔을 때, 할아버지는 그녀를 위하여 사내를 저주해 주었어요. 그녀의 바람대로 사내가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병조차 걸리지 않고 생의 순간순간을 모조리 만끽하고 살아가기를 빌어 주었고, 그녀는 그녀와 그녀의 아이를 모욕하고 내버린 사내가 생의 한 순간 순간을 건강한 정신으로 견뎌내는 상상만으로 조금 위로를 받은 것처럼 보였지요. 할아버지는 만약 그에게 연금술이라는 기적을 내려준 신이 있다면 그가 그녀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그녀의 성기를 찢고 아이를 잉태했던 배를 걷어찬 사내가 그녀의 바람대로 오래도록, 조금의 광증과 병, 노화에도 시달리지 않고 마치 처음부터 그랬듯 명료한 감각과 정신으로 생의 끝까지를 똑똑히 견뎌내며 살아갈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지요.

할아버지의 연구실 주변에, 달 아래 모여 젖은 날개를 펼치던 나방의 군집처럼 들끓었던 이상자들 중에 자신의 광증을 고치기를 원하는 이는 사실 아무도 없었어요. 그들은 그들의 광증을 끝간데까지 돌보아주기를 바라고 있었죠. 할아버지의 연구실 안팎에서 우린 모두 날것의 광증을 앓았어요. 아무도 우리를 비웃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죠. 다만 우리는 마음껏 서로를 경멸하고 사랑하며,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광증에만 몰두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어요. 이모는 그녀가 입을 찢어놓은 곰인형들이 그녀가 잠든 사이 침대맡에서 빠져나가 얼음호수에 투신하는 장면을 악몽속에서 겨울의 안개에 가려져 희미하게 비추어지는 거울 속에서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곰 인형들은 희게 벌어진 입을 무력하게 벌리고 속에 들어찬 나방의 알들을 모조리 게워내며 차디찬 물 아래로 떨어져내렸다고 했죠. 뒤집어진 곰의 아가리에서 꿀럭이며 흘러나오는 알들은 마치 유골단지에서 쏟겨 나오는 모래처럼 보였다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성숙한 생들이 부조리하게도 꼭 삶을 마치고 죽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지친 유령들처럼 보였다고 이모는 말했어요. 그들은 마치 해방된 것처럼 보였다고요. 마치 악마의 저주에 걸려 스스로가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아가미 사이로 헐떡거리면서 젖지 않은 산소를 간신히 들이키며 살아가던 인어가 물 속으로 몸을 던진 뒤 비로소 젖은 아가미를 마음껏 꿈틀거리면서 숨을 들이키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곰인형은 텅 빈 자궁으로 물방울들을 호흡하면서 숨을 쉬었죠. 물 속에서 그의 벌어진 입술은 활짝 피어났고 곰인형은 행복해 보였다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망령들처럼 죽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쉬는 입술은 물에 젖어 어두운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고 이모는 말했어요. 어둠 속에서, 경계 잃은 모든 형상들은 나무보다 먼저 꽃을 피워내는 것만 같이 보였다고, 장미 가시에 입을 맞추면 가시에 꿰뚫린 엷은 나뭇잎과 같은 입술이 장미와 하나가 될 것만 같이 느껴졌다고, 이모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잠에 취해 쉰 목소리로 덧붙였죠.

그녀는 종종 꿈속에서의 황홀경에 대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곤 했죠. 몸 없이 부유하는 느낌, 석양에 젖어 피처럼 불그스름한 안개에 섞여 눈동자조차 없는 혼곤한 눈을 뜨면서도 유동적이며 항상적인 그녀의 자아를 유지하는 일의 경이로운 감각을 그녀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그녀는 언제나 몸 없이 자기동일성을 보존하는 유령들을 동경해왔으며, 그녀 역시도 형태 없는 은밀한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일시에 관찰하며 동시에 모든 것의 살 속으로 스미는 유령이 되고픈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화장대 거울에 반사된 식물의 상이 오랜 악몽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진저리를 치며 거울 바깥으로 뛰쳐나갔다고 했죠.

어항에 손을 넣어본 적이 있니? 하고 이모가 물었을 때 난 한 번도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이모는 실제로 어항에 손을 집어넣고 금붕어의 미끄럽고 역겨운 아가미에 손가락을 대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아가미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어느 정도 미쳐 있는 듯이 펄떡펄떡 뛰고 있었고, 그녀는 사신을 바라보듯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맥동하는 금붕어의 혈맥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어항에 구토를 했다고 말했죠. 언젠가 그녀도 그녀의 혈류에 차고 커다란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그녀의 생명을, 기이할 정도로 끈질기게 운동하고 있는 그녀의 구체적인 형상들을 관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딘지 꺼림직한 느낌이 가슴속에서 비집고 올라왔다고 했죠.

난 이모의 무지도 이모의 순수함도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몽상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난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고, 그녀가 불가해한 악몽만을 부러 상상한다고 생각했죠. 난 형식이 없는 감성이 천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목적이 없는 합목적성이 불합리하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그렇기에 그녀의 수다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그녀를 따라 어항에 손을 넣어볼 생각은 해보지 못한 거죠. 만약 내가 언제라도 그녀를 따라 금붕어의 눈을 만져 보았다면, 내 손 아래에서 연인의 눈동자처럼 반짝거리는 물거품을 느껴보았더라면 난 지금 비밀스럽게 회전한 무대의 뒷면처럼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녀를 따라 어항 너머의 거북스러운 세계로 건너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도 이모와 같은 꿈을 꾸지 않았죠. 이모를 무참히도 사랑했던 칼 삼촌조차도 그녀의 광증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가 이모를 사랑하는 만큼 이해하고 있었다면 그녀의 눈앞에서 식물처럼 말라붙은 나방의 비참한 날개를 쥐여 주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할아버지조차도 그녀를 사랑스러운 아이처럼 대할 뿐 그녀의 우수와 깊은 광증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죠. 할아버지는 이모의 가슴이 불거져 나온 이후 한 번도 그녀를 그의 연구실 안에 들인 적이 없어요. 곰 인형의 뱃속을 뒤적거리면서, 투명한 빛을 머금고 반짝거리며 천사의 날개처럼 흩날리는 솜뭉치들을 떨구면서 광인들의 줄 한복판에 서 있는 마리 이모를 할아버지는 한 번도 진단해주지 않았죠. 할아버지는 이모의 손이 잠겨 있는 나방의 자궁 속에 손을 넣어본 적이 없어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 중 누구도 나방의 뜨겁고 축축한 자궁 속을 뒤적거려본 적이 없죠. 칼 삼촌도 마찬가지예요. 그가 손을 집어넣은 곳은 무수한 알들을 잉태한 나방의 모태가 아니라 눈속임을 위한 인형의 텅 빈 뱃속이었을 뿐이니까요. 사실 그 무렵의 이모는 네 살배기 아이보다도 더 사고뭉치였어요, 하고 레몬캔디는 갑작스럽게 덧붙였다.

이모는 정해진 규칙도 없이 내킬 때마다 불쑥불쑥 산책을 나가곤 했죠. 새벽 세 시건 저녁 열 시건 상관없이, 은빛 달을 따라 오솔길로 들어서거나 들개의 울음소리를 쫓아 긴 치맛자락을 비에 젖은 흙에 질질 끌며 산을 오르기도 했다니까요. 어떤 날에는 사냥꾼이 나뭇가지 위에 매달아둔 올가미에 목이 걸려 죽을 뻔한 적도 있다니까요. 그날따라 잠을 설치며 그가 설치해둔 덫들을 돌아보면서 밤중 산보를 하던 사냥꾼이 허공에 매달린 아름답고 창백한 짐승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이모는 그날 목이 졸려 어처구니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거예요. 사냥꾼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목을 감싸쥐고 잔기침을 하는 이모를 데리고 우리 집까지 배웅해주었어요. 기묘한 전설들과 소문을 은밀히 탐독하던 젊은 청년은 경악한 할아버지가 이모의 안전과 정황을 잔뜩 쉰 목소리로 캐물을 때까지 그가 귀신에 홀린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의심했다고 해요. 할아버지의 연구실은 그 이후로 더욱 굳건한 경계선으로 자리잡았지요. 물론 오직 이모에게 있어서만요. 그녀는 어릴적에 드나들었던 연금술사의 작업실을 점점 더 괴상하고 비밀스러운 형태로 연상하기 시작했어요. 칼 삼촌이 그녀에게 쥐여주었던 가엾은 나방은 할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서식하고 있을것이라는 추측을 들었을 때, 할아버지의 작업실 한쪽 벽에는 박제된 식물들과 나방들, 날개 달린 모든 시신들이 전시되어 있을 것이며, 맞은편 벽에는 나방의 군집이 서로 살을 맞대고 너무도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어 그것들이 몸을 부풀리며 전율하는 모습은 마치 밤하늘이 푸르게 떨리는 광경처럼 보일 것이라는 그녀의 몽상을 들었을 때, 난 도저히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을 정도였어요.

사실 할아버지의 작업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건 이모뿐만이 아니었다는 건 나중에 그 집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도 알지 못했어요. 난 기억의 세부까지도 고향집과 정확하게 일치할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죠. 난 우리 집이 카페 건물의 꼭대기층에 세 들어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기에 지붕 밑 방이 우리의 거실이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요. 난 1층 카페 주인에게서 구옴쿠키를 얻어먹은 적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매일같이 학교에 갔다가 위충으로 뛰어올라가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인사를 종용하던 백발의 노인들, 항상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지만 어쩐지 어린 내게는 꺼림직하게 느껴졌던 그 주름진 얼굴들이 마들렌 속에서 풀어지는 콩브레의 접힌 종이인형처럼 환하게 펼쳐졌어요. 유감스럽게도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은 텅빈 폐건물이 되어 있었지만 난 가게 주인들이 하얗고 미끄러운 도자기 잔에 어린 내게는 기묘하게만 보였던 새까만 음료를 따라 내오던 창문을, 이제는 유리조차 없이 휑하게 뚫린 창문을 들여다보고 한때 그 자리에 있었던 인상들을 기억해낼 수 있었죠.

우리의 다락으로 돌아갔을 때 난 내 기억의 큰 부분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남아 있는 사람을-결국은 칼 삼촌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동안 난 할아버지의 작업실에 문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군가 문을 억지로 뜯어낸 것이 아니었어요. 할아버지의 작업실이라고 기억되는 장소는 박공 지붕의 한쪽 끝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그곳에 놓여 있는 마호가니 책상에 새겨진 무늬와 널브러진 책들의 형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 틀림없어요. 물론 할아버지가 그곳에 앉아 연구를 할 때와는 달리 신비로운 금빛의 물질들이 공중을 떠돌아다니는 일은 없었죠.

그렇다면 이모는, 할아버지의 방문 앞에서 다른 환자들이 그의 광증을 이해받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뻔히 바라보던 이모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요? 발목을 자르며 흐느끼던 여자의 밀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그날, 훤히 드러난 여자의 신체를 우리는 어떻게 훔쳐볼 수 있었던 걸까요? 어쩌면 내 기억의 상당한 부분들이 이 집을 떠난 이후 새로이 부풀어 난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느낌이 들었어요. 바닥에서 검은 나방이 날아오를 때까지 난 더 이상 누군가를 찾아 집을 떠돌아다닐 의욕조차 잃고 앉아 있었죠. 나방은 마치 이모가 붙잡고 한데 떨었던 그 날의 나방이 시간의 궤도를 직선으로 주파하여 곧장 날아온 것처럼 검고 윤기나는 그대로였어요. 난 기억의 살아있는 유물을 붙잡고 그날 이모가 그러했던 대로 날개의 파동을 느껴보려 했지만 내 손가락이 닿는 순간 나방은 순식간에 먼지로 변해 풀썩 내려앉고 말았어요. 그래요. 모래로 만든 병사들처럼. 난 그제서야 집안에 떠도는 먼지들이 모두 누군가의 손에 닿아 죽어버린 나방의 기억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러자 문득 한낮과 한밤 내내 이 비좁은 다락 안에 갇혀 보내며 떠올렸던 몽상들이 떠올랐어요.

난 할아버지가 잠이 든 시간 몰래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체하며 그의 책상 위에 앉아 혼자만의 회의를 시작하곤 했죠. 이모의 화장대와 책상, 식탁에 있는 의자들을 모두 모아 할아버지의 책상 주변에 내려놓고는 그곳에 먼지보다도 뿌연 어스름으로 이루어진 유령들이 착석하기를 기다렸어요. 그 무렵에는 유령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곤 했었거든요. 구체적으로는 낮엔 인간의 살을 모사하며 발끝만을 고분고분 따라다니던 그림자들이 한밤에는 한자리에 둘러앉아 밀담을 나누리라는 생각이었어요. 난 할아버지의 책상 앞, 가장 상석이라고 생각되던 자리에 앉아 허공에서 흘러가는 유령들의 피부를, 검은 먼지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죠. 그렇게 바라보다보면 유령들의 입모양을, 그들의 언어를 가로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물론 난 한 번도 유령을 보지 못했죠.

그제서야 내가 사물의 최후를 목격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매일같이 불가해한 환상에 시달리던 이모의 광증을 난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결코 현상의 경계에 다다른 적이 없기에 꿈과 뒤섞인 현실을 사는 거예요. 현실과 기억, 꿈을 구분하는 일은 우리와 같은 광인들에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온전한 현실을 살 수 없는 자들, 잊혀지고 외면당한 자들, 고독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진 자들은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오직 언젠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직접 발을 디딜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우리는 현실에 속해 있지 않으니까요. 과거 시민사회의 남성과 백인들이 유독 정치에 열을 올렸던 것도 그곳이 그들에게 속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시민권조차 갖지 못했던 할아버지와 나, 이모는 선거일도 의원후보들도 알지 못했으니까요. 아마 할아버지는 한때 이웃들의 시간을 다스렸던 국왕의 이름도 알지 못할 거예요. 할아버지는 왕의 수호를 받는 선량하고 고결한 국민들의 집단에 속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매주 찾아오는 광인들을 더 반겼던 거예요. 우리는 서로의 광증에 은밀하게 결속되어 있었다고 느꼈으니까요. 물론 아무도 타인의 광증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일말의 통증도 이해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동질감을 느꼈어요. 알아요. 아주 묘한 형태의 결속이었죠. 그들도 나도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고 서로의 이름을 물어본 적도 없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환자들의 신원을 알지 못했던 건 아니에요. 우리 집에는 이렇다 할 접수대도 없었고-그야 사실 할아버지는 의사가 아니었고 우리의 작은 다락도 병원은 아니었으므로- 개인의 신상정보를 적는 서류도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오직 자신의 광증을 토로하는 이들의 벅찬 울음을 잠자코 들어주기만 할 뿐이었지만, 가끔은 아주 유명한 사람이 방문하기도 했으니까요.

리틀 알버트 실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래요. 굳이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고 해도 행동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댈 수 있을 거예요. 존 B. 왓슨 박사를 행동심리학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어주었던 바로 그 실험이죠. 털달린 짐승들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던 가엾고 순진한 어린아이는 귀를 찢어발기는 듯 고통스러운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쥐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털 달린 인형만을 보아도 발작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죠. 인간에게 인공적으로 공포를 주입시킬 수 있다는 그의 가설은 확실하게 증명되었고 지극히 원초적인 감정조차도 학습될 수 있다는 암울한 진실을, 동양의 철학자들이 수천 년에 걸쳐 논쟁했던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다소 황당무계할 정도로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냈죠. 최근의 학자들은 아기를 대상으로 행해진 그 악마적인 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비난하지만 그의 실험이 이루어낸 성과는 이후 행동주의 심리학의 광적인 열풍 현상으로 증명되었어요. 당시에는 그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학문 분과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자극과 행동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은 인간을 짐승과 같은 선상에 놓았으며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의 이러한 은밀한 선회는 철학의 쇠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정도였으니까요. 행동주의 심리학의 광신적인 열풍 속에서 철학자들은 더 이상 세계의 진실을, 인간만의 고유한 지성을 연구할 수 없었고 그들은 과학적 실험을 돕기 위하여 명확한 언어의 체계를 확인하는 분석적인 작업에 매달린 채 세계의 진실을 찾겠다는 철학의 오랜 염원을 과학에 넘겨주어야 할 정도였죠. 그러니까 리틀 알버트가 진리 탐구의 방식을 좌우했다고 보아도 틀릴 게 없다는 이야기에요.

넌 그의 말에서 뚜렷이 두드러지는 치명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대신, 레몬캔디의 달뜬 목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침묵과 침묵, 침묵만이 너의 역할이었으므로. 말을 하는 당신이 듣지 못하는 당신을 듣는 것이 네게 부여된 과제였으므로. 레몬캔디가 너의 침묵을 듣는 동안 너는 그의 소요를 듣는 것이었다. 별이 없는 밤에도 어둡고 텅 빈 하늘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눈먼 천문학자처럼. 보이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을 별의 현존을 믿는 맹인의 침묵처럼.

빛의 흔적에 따라서 드러나고 비로소 발생하는 공간과 같이, 너희 유령들은 조심스레 서로의 존재를 누설하고 있었다.

하여튼 난 리틀 알버트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오는 순간 그의 얼굴을 곧장 알아볼 수 있었어요. 난 그의 꾹 다문 입술과 다소 고집스럽게 지켜뜬 눈, 동그란 머리통과 불거져나온 이마를 금방이라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난 알버트의 본명이 더글라스 메리트이며 그가 불과 다섯, 혹은 여섯 살의 나이에 뇌수종으로 사망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지만 그건 문제가 될 게 없었죠. 간혹 여행지에서 죽은 시인의 모습을 보고 그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도 있는 법이니까요. 우리 집에는 그와 같이 이름도 몸도 없이, 심지어는 오래전에 신원조차도 잃어버린 채로 떠도는 유령들이 있었으니까요. 리틀 알버트는 그 기념비적인 흑백사진이 찍히던 때와 같은 모습으로 그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공포의 성질을, 미지로만 보였던 인간의 감정의 심연을 더 잘 파악하게 된 어른들을 멀거니 올려다보았어요.

할아버지가 그를 껴안고 연구실로 들어갔을 때까지 그는 긴장된 두 손을 펼치지 않고 있었죠. 그때 이모는 우리의 유명인을 껴안아보기 위해 알버트에게로 달려갔고 그녀의 왼손에 힘없이 매달려있는 작은 곰인형을 본 순간, 갈색 털이 수북하게 난, 심지어 길게 찢겨진 입안에서 하얀 솜털을 게워내고 있는 털복숭이 인형을 본 순간 알버트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말았어요.

그때 곱슬거리는 금발을 허리까지 기른 여성이,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손짓했죠. 할아버지는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신원도 묻지 않고, 바다의 포말에서 하얗게 피어오른 비너스처럼 알버트의 입에서 부풀어오르는 거품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한 다락의 비너스에게 아기를 넘겨주었지요.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나갔고 우리는 귀가 찢어질듯한 비명을, 절망적인 비명을 쉴새없이 내지르는 알버트의 작은 입술과 기묘한 여자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죠. 난 그녀가 알버트의 모친이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오래전에 뱃속에서 사산한 아이를 찾아 헤매는 광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었죠. 하지만 난 이미 오래전에 알버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잃어버린 아이가 있다면 그게 곧 알버트일 것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결말을 이 소동에 부여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세상에는 어떠한 인과도, 사건과 사건, 현상과 현상을 잇는 명확한 법칙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요. 특히 우리와 같은 광인들, 유령들, 소외된 사람들, 죽은 채로 살아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더욱요. 거대한 자석으로 왜곡된 시간과 공간처럼 세계가 어떠한 내적인 규칙도 없이 몽상과 같은 불가해하고 심지어는 불쾌하기까지 한 사실들을 제멋대로 현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요.

이모는 현관문을 향해 주인을 떠나보낸 개처럼 울부짖었어요. 리틀 알버트, 아빠 리틀 알버트를 데려와요. 이모는 그렇게 울부짖었어요, 리틀 알버트, 데려와요, 리틀 알버트, 하고. 아직도 그렇게 울부짖고 있어요. 난 그녀가 리틀 알버트가 되기를 원했는지, 그래서 이 아늑하고 비참한 다락 속에서 화초처럼 썩어가던 그녀를 누군가가 멀고 척박하며 신비로운 땅으로 납치해주기를 원했는지, 그게 아니라면 정말 그녀의 말처럼 리틀 알버트를 원했는지, 그 애를 품고 그 애의 무덤을 돌보고 그 애의 유령을 기르기를 원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우리의 작은 밀실은 순식간에 폐허처럼 변해버렸죠. 허공을 떠돌던 작고 따뜻한 침방울들은 순식간에 천장 너머로 날려 사라지고 말았고 우리는 같은 악몽을 꾼 것인지, 악몽의 시작은 어디부터이며 우리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는 생의 첫 순간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는 유년을 악몽 속으로 들어가며 시작한 것은 아닌지 혼몽한 정신상태로 끊임없이 의심해 보아야 했죠. 알버트, 리틀 알버트를 데려와요, 아빠. 하지만 우리가 모두 같은 악몽울 꾸고 있는 것이라면 어째서 리틀 알버트는 우리의 감실로부터 나갔고 우리는 이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걸까요? 리틀 알버트가 그 애의 작은 무덤으로 되돌아가는 동안 우리의 살은 이대로, 산 채로 대기중에서 썩어갈 텐데. 우리가 한낮을 떠도는 유령이라면 우리를 데리고 유령들의 세계 바깥으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생전의 습관에 따라 하릴없이 안개 속을 떠돌지 않아도 되는 깊고 어두운 흙 속으로 돌려보내줄 여자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린 리틀 알버트가 되고 싶었어요. 그와 함께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 잠에서 깨어났다는 확신조차 없었고, 동시에 영원히 잠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으므로, 광인들끼리의 서글프고 혼몽한, 더욱이 무용하기까지 한 결속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애틋했으므로 아무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죠. 우리는 리틀 알버트를 잊은 체 했어요. 리틀 알버트를 데려와요, 아빠, 빨리. 이모의 흐느낌에 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그녀의 울음은 아침에 마시는 커피만큼이나 익숙한 것이었기에 칼 삼촌 말고 이모의 흐느낌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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