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1(람세스 호텔)

충분히 잘 상상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녀는 숨을 참았다.

승객들은 여자에게 무심했다. 소년은 해치에 고개를 내밀고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목이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에 맨 얼굴을 내밀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러나 곧 소년은 해치의 틈에서 고개를 빼내고 무어라 중얼거렸다. 람세스 호텔에 대해, 그곳을 구성하는 기묘한 규칙들에 대해, 그곳을 통과하는 다른 몸들에 부착된 서로 다른 규칙들에 대해.

그녀가 승선하게 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다. 수화물이 있었고 티켓이 있었고 검문, 소란과 침묵, 긴 잠과 여행이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어떤 과정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잠수함-우주선에 올랐다. 그녀는 그저 숨을 참았고 숨을 참고 있던 수많은 방랑자들에게 합류했다.

여자는 우주선에 오를 때까지의 그녀와 이곳에 들어선 이후의 그녀를 동일시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적재된 승객들은 마취된 채 사물처럼 잠들어 있었으나 그녀는 불면하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어째서 이곳에 오를 수 있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신원 불명의 유령과도 같은 생물들이 산 채로 우주선을 배회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 중에는 살해자도 있었고 범죄자도 있었으며 돌연변이, 불치병자, 불구자들도 있었다. 흐릿한 실내에서 그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유사성, 미세한 차이들을 짓무르는 서글픔이 있었다. 언젠가 그들이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그곳이 정확히 어떤 장소인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미쳐버린 소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멀거니 듣기만 했다. 람세스 호텔에서는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어요. 괄목할 만한 재능을 발휘하면 누구나, 누구나, 굳이 분신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평생을 연루되어 왔던 중력에 맞붙은 거대한 복합체의 덩어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상을 더 이상 기억할 수조차 없었다. 그곳에는 숲이 있었다. 식물들은 집을 게걸스럽게 삼켰고 늪처럼 끈적거리는 울음으로 도시를 잠식해갔고 호수는 돌이킬 수 없이 얼어붙었다. 숲이 여자에게 속삭였던 이야기들은 그녀의 피부에 흔적으로 남았으나 여자는 그것에 얽힌 비극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녀와 비슷한 처지일 것이 분명한, 적어도 숨을 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할 승객들은 그녀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었다.

잠수함은 호텔의 한 층의 단면과도 같은 구조였다. 미로처럼 가로놓인 복도들이 있었고 일렬로 수십 개의 방들이, 그 속에는 마취된 채 꿈을 꾸는 승객들이 있었다. 복도 바깥에서 서성거리는 불면자들은 한결같이 숨을 멈춘 채로 쏘다니고 있었다. 어떠한 목적도 대화도 없이. 그녀는 어디에도 도착하고 싶지 않았다. 낙원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한때 혁명을 꿈꾸었고 가슴 속에 숨겨둔 폭탄으로 무언가를 파열시키고자 했다. 그녀의 몸을 관통하는 광폭한 열정과 고통으로 그녀와 합류할 장소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폭탄을 불발했고, 오로지 그녀의 폭탄만이 불발했고 혁명은 실패했다.

독재자는 청년들이 들이닥치기도 전에 물러났고 새로운 여왕이 들어섰으며 폭발의 기회마저 상실한 유예된 불꽃들은 왕궁 뒷골목에서 점화하였고 거리는 끔찍할 정도로 한산했고 불투명한 진열장의 유리들 그 속에서 여자가 보지 못하는 곳을 멀거니 바라보던 마네킹의 평면적인 눈들 새들은 허공에서 구토하였고 여자는 정신을 잃었고 아니 사실은 멀쩡히 깨어서 그녀가 살아 있는 것을 그녀의 심장이 아직도 터질 듯 뛰고 있는 것을 그러나 결코 터지지 않은 것을 깨닫고 말았으니, 세상은 유래없이 평화로웠고 시민들은 평화로웠고 나무 틈새 그늘을 물어뜯으며 행복하게 짖어대는 검은 개들. 그들의 눈은 너무도 깊고 맑았으니, 여자는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고, 이제는 어리고 잔혹한 낙관에서 깨어나라고 충고하는 소리. 왜냐하면 그녀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홀로, 그녀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으니까.

바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바뀌는 것은 그리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일이 아니었다. 여왕은 혁명가들의 분투와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순전히 우발적인 충돌에 의하여, 마치 지상에 떨어진 작은 위성처럼 그녀의 삶을, 그녀가 기억하는 몸들을 휩쓸었고 세상은 그녀가 사랑했던 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이 바라던대로 유동식만으로 연명하던 늙어빠진 군주는 폐위 되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고통스러운 결심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숨을 참았다. 고통스러울 때는 호흡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숨을 참았다. 변화를, 죽음을, 노쇠를, 미래를, 무엇보다도 과거를 붙들어두기 위해, 잠수함에는 그녀처럼 숨을 참고 있는 승객들이 많았다.

대화 없이 서성거리는 그들을 붙잡아 이야기를 듣는 일은 기만적이고 피로한 작업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그들의 고통을 원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한 객실 문 앞에 주저앉아 있는 소녀에게 눈을 맞추었고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소녀의 이름을 물을 자신은 없었다. 소녀는 검고 비쩍 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여자가 내려다보는 것을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여자는 소녀의 옆, 문과 문 사이 빈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소녀는 자주 숨을 참는다고 말했고 여자는 숨을 참는 것이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예컨대 엘리베이터나 골목길, 공원이나 갤러리 같은 곳에서 마주쳤다면 그녀들은 결코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미치지 않은 여자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는 한정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렇듯 소모적인 문장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을 통과하고 그들을 훼손시키는 어떠한 격렬함도 전해줄 수 없는 문장들을 싫어 했으므로. 서로를 마주보고 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서로 숨을 참고 있는 이곳, 어디에도 사실로 기록할 수 없는 부유와 추락의 장소에서는 어떠한 말이든 할 수 있었다. 사실이 아닌 말, 사실일 수 없는 말이라도.

소녀는 발이 아프다고 했다. 그녀는 밀실에 앉아 홀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독을 가진 벌레에게 발이 물린 것 같다고.

여자가 고개를 기울여 소녀의 발을 들여다보니 과연 두 개의 발은 한여름의 오렌지처럼 육중하게 부풀어 있었다.

소녀는 발을 잘라내려고 해보았으나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칼을 깊이 박아넣을 수 없었다고 했다.

여자는 소녀의 발목 위에 손가락을 얹어 절단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소녀는 키득거리면서 간지럽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발을 잘라내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거야, 하고 여자는 문득 생각했다. 소녀의 발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석회가 발려진 흰빛의 흐릿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언가가 부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종말이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계속 숨을 쉬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내부와 외부에서 밀려오는 타자들의 웅성거림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여자는 다시 숨을 멈추었고 그녀의 옆에서 작게 허밍하는 소녀를 볼 수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숨을 내쉴 수 있게 되기까지, 소녀가 얼마나 자주 무호흡에 상태에 진입했을지 여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여긴 네 방이니? 하고 여자가 묻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방 안에는 아직 잠을 자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고 소녀는 무척이나 나직하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숨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여린 목소리. 여자는 소녀의 목소리가 어린 쥐의 신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넌 어디로 가고 있니?

소녀는 여자를 의아한 듯 바라보며 속삭였다. 당신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요.

그러나 소녀가 기억하는 소녀들, 소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여자들은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소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자들은 어딘가 닮았고 또 치명적으로 다르죠. 그들에게는 이름이 없으니까 난 그들에 대한 추억들을 세목화해서 분류할 수도 없어요.

다만, 하고 소녀는 말을 이었다. 가장 최근에 보았던 여자는 교사였죠. 난 다리가 없는 소년을 들쳐메고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는데 그녀는 끝내 문을 열지 않았어요.

그 여자는 내가 아닐 거야, 하고 여자는 황급히, 그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의 말이 아득하고 검은 복도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듣고 여자는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난 병원에 있으니까. 지금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

소녀는 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직도요?

그래. 여자는 소녀가 더 물어주기를, 그래서 그녀가 그녀에 대해 더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기다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여자가 소녀에게 그러하듯, 소녀 역시도 여자에게 지나치게 캐묻지 않았다. 그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물을 용기가 없었고 한없이 주춤거렸으며, 망설인 끝에 서로를 만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남에 대한 초조한 욕망은 끔찍하게 서글펐으므로 그들은 계속 서로의 곁에 앉아 대화를 닮은 문장들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당신 같은 여자를 보면, 하고 소녀는 속삭였다. 둥근 귀 끝은 어디에서 내려왔는지 모를 그늘에 잠겨 검푸르렀다. 난 입을 다물어요. 그녀들이 내게 말을 걸까봐 고개를 숙이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그래서 침묵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내게 웃어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애원해요. 하지만 몇 번은 결국 웃고 말았죠. 그녀들도, 나도.

복도 너머에서 뱀처럼 날렵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걸어왔다. 그는 표를 요구했으나 여자와 소녀는 그에게 건네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들은 모두 불법 탑승자들이었으니까. 대신 소녀는 보랏빛으로 부풀어오른 기형적인 발을 올려 보여주었고 사내는 그것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여자는 소녀가 아직까지 망가진 발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무호흡의 세계를 떠도는 새들이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또다시 해치가 열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치에 머리를 들이밀고 중얼거리던 소년은 목이 부러져 죽었을까? 그 애는 아직도 살아 있을까? 여자는 그 애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호텔의 한 층을 그대로 떼어낸 곳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소년에게 팁을 줄 수 있는 승객들은 없었고 소년의 연출을 원하는 이들도 없었다. 그들은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고 오직 영원과도 같은 찰나의 무호흡 상태로 이곳을 영유하고 있는 방랑자들에 불과했으므로. 그들은 모두 살아 있는 몸이었고 그 누구도 유령이 아니었다.

소녀는 갑작스럽게 여자에게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듣지 못했다.

여자는 소녀를 두고 복도 너머로 걸어갔다. 인사도 미소도 없이. 그녀들은 그러한 의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잠수함에 처음 타 본 것처럼 여자는 벽을 더듬거리면서 천천히 복도 끝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해치가 어느 쪽에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여자는 계단이 복도와 연결되어 있지만 한 층의 단면과도 같은 층들과는 별개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단에서 복도로 진입하는 일은 잠수함 바깥에서 잠수함 안쪽으로 들어서는 일과도 같았다.

계단에서 그녀는 더 이상 소녀의 검고 마른 얼굴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여자는 작고 부드러운 맨발로 두툼한 천 위를 걷듯 소리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이곳이 현실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적인 미래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병실 침대에서 숨을 참고서 여자는 끝없는 지하를 떠올렸다. 그러나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끝은 무한한 것일 수 없다는 사실을 여자는 알고 있었다.

지하는 거대한 광장과도 같았다. 개방되어 있는 층 한가운데 여자의 무릎까지 오는 높이의 둥근 무대가 있었으며 그 주위로는 수십 개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무대 위에는 공중에 매달려 침묵하는 짐승들이 있었다. 전시된 것이 침묵인지 공중 곡예인지 짐승들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로 여자는 그들을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유달리 두툼한 개들은 고기처럼 매달린 채 여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들은 날갯짓하지 않았고 작고 둥근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여자는 짐승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불가해함의 치명적인 위협에 매혹당한 채 그들을 응시했다. 간혹 미약한 신음이 들렸을 뿐, 언어를 닮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자는 공중그네의 몇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직 채용되지 않은 배우들의 빈자리일지도 몰랐다. 여자가 두 손을 무대 위에 짚은 채 짐승처럼 구부린 자세로 무대 위에 올라서자 짐승들은 놀란 듯, 그러나 힘없이 푸드득거렸다.

여자는 무대 뒤쪽에 있는 배우들의 출입구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수십의 대기자들이 있었다. 여자는 대기실에 가만히 서서 그녀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으나 스태프로 보이는 남자는 면접자들의 이름 대신 번호만을 확인했고 면접자들은 아무런 지시도 없이 자신의 차례에 맞추어 나무 세공이 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여자는 그녀의 기회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 수십의 대기자들이 처음과 같은 자세로 꼼짝 않고 서 있었으나 대기자들이 드나들 때만 미세하게 열리던 문이 활짝 열렸고 왁자지껄한 환호성 소리가 들렸으며 대기실을 채우고 있던 열 명 가량의 대기자들이 문 안쪽으로 춤을 추듯 빨려들어갔다. 대기실에 남은 대기자들은 어리둥절한 채, 혹은 욕설을 내뱉으면서 무대로 밀려나갔다.

짐승들은 처음과 같은 자세로 묵묵히 매달려 있었다.

여자는 유달리 키가 큰 사내에게 다가가 사정을 물었고 그는 채용이 끝났다고 퉁명스러운 투로 쏘아붙였다.

여자는 사람들의 흐름에 맞추어 황급히 방을 나서느라 숨이 차 헐떡거렸다. 하얀 석회벽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틈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 여자는 확신할 수 없었다. 무언가가 천장을 두들기고 있었고 여자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바깥을 갈망하는 폭도들의 울음소리가 얇은 천장 밑으로 새어들었다. 다시 숨을 멈추었고 여자는 황홀과도 같은, 그러나 궤양과도 같은 피로와 절망이 여전히 이끼처럼 늘러붙은 무호흡의 상태에 접어들었다.

짐승들이 고깃덩이처럼 침묵하며 매달려 있는 가운데 묵시록에 등장하는 천사처럼 차려입은 배우들이 무어라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맞아들지 않는 화음이 엉글어져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들을 노래하고 있었다. 텅 비어 있던 테이블과 의자는 음식과 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자는 견딜 수 없는 초조함에 뒷걸음쳐 계단이 있는 진공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소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소녀가 몇 층의 어느 방향의 복도에 있었는지 도저히 기억할 수 없었다. 객실에는 호실 숫자가 없었고 각 층의 높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지표를 여자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어느 복도로 들어서서 어느 객실 문에 등을 대고 앉아 있는 어느 소녀를 보았을 때, 여자는 소녀가 두 번의 호흡 전에 보았던 소녀와 같은 소녀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소녀는 이전의 소녀처럼 검고 앙상하였으나 그처럼 검고 앙상한 소녀들은 너무도 흔했으므로 어둠 속에 가려진 소녀의 발을 보기 전까지 여자는 소녀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여자는 소녀의 곁에 앉아서 무례해 보이지 않도록 은근하게 소녀의 발밑을 살피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여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늘질 만한 물체도 없이 기묘하게 어두운 얼룩뿐이었다.

여자는 갑작스럽게 소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몇 번 호흡을 하는 동안 무호흡의 시간을 견주어볼만 한 대상도 없이 홀로 앉아 있었을 소녀는 이미 사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호흡하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사물밖에 없었으니까.

그때 소녀가 작은 소리로 허밍을 했고 여자는 그제야 소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는 결국 발을 잘라버린 것일까? 부풀어 오른, 짓무른 상처는 이제 어디에도 쓸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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