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교실

소년은 물지 않는 개였다.

6반 아이들 모두 소년이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쓰레기를 쏟아부어도, 볼을 꼬집고 가슴을 할퀴어도,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주물러도, 자지를 빨라고 강요해도, 오줌을 입속에 쏟아부어도 소년은 물지 않는다. 소년은 온순하고 손쉬운 죄악이었다. 현존의 기만적인 전회와 조작에 서툰 아이들도 얼마든지 짊어질 수 있을 정도로.

6반 아이들은 소년을 중심으로 짜인 정교한 테피스트리처럼 서로에게 화합하고 섞여들었다. 개인주의 시대의 철저한 단자들답게 서로에게 어떠한 인력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같은 장소를 공유하며 선결된 시간만을 함께 보낸 뒤 떨어져나가는 다른 반 아이들과는 달리, 6반 아이들은 혈연을 신봉하는 가족주의 최후의 유산인양, 서로 피를 나눈 형제들인양 끔찍하게 서로를 아꼈다. 그들은 주말이면 선생과 함께 캠핑을 갔고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도 교실에 남아 화단을 가꾸거나 축제 준비를 하고 교실 뒤편의 알림판을 꾸미는 일을 하였다. 물론 소년도 그들과 함께였다.

소년은 고체처럼 응결된 그들로부터 떨어져나갈 명분이 없었다. 6반 아이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결속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소년을 매질하였으며 침을 뱉고 썩은 우유를 먹였다. 소년이 울부짖고 애걸할 때까지도 화장실에 보내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

하나의 생, 연약하지만 짙은 냄새를 풍기고 활동하며 성장하는 진짜 생명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형식적인 계약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엉성한 집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충성적이고 견고하였다.

교사들은 입을 모아 6반 아이들을 칭찬하였다. 새로 편성된 보건교육 시간마다 특별수업을 진행하는 보건선생도, 원어민 교사와 그를 보조하여 영어를 가르치고 음악수업도 따로 진행하는 젊은 여교사도 6반 아이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순하고 협력적이라는 데에 동의하였다.

물론 그들이 소년의 존재, 소년의 죄악, 소년의 불행에 대하여 완전히 무지한 것은 아니었다. 소년에 대한 학대는 교실 바깥에서도 이루어졌기에, 예컨대 화장실에서 걸레 빤 물을 소년에게 붓는다거나 바닥에 떨어진 오줌방울을 핥도록 종용하거나, 소년의 더러워진 머리를 쥐어뜯고 실내화로 짓밟으며 엄숙한 표정으로 키득거리는 아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 일은 불가능했기에, 입을 모아 6반 아이들을 칭찬하는 보건교사도 원어민교사도 음악교사도 모두 그들의 악행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주기마다-원어민 교사는 일주일에 한 번, 음악교사는 이틀에 한 번, 보건교사는 이주에 한 번-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짧은 훈계와 매질로 그들의 죄를 완전하게 용서하기에 이르렀기에 그들은 죗값을 치른 아이들, 심지어는 신음도 비명도 반항도 없이 묵묵하고 숭고한 태도로 벌을 감내한 아이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묘한 것은 소년의 학대에 대한 훈육이 가해자인 6반 아이들뿐 아니라 소년에게도 이루어졌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처벌의 보편성은 부조리할지언정 불가해한 일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소년 역시 6반에 소속된 확고불변의 결속체였기 때문이었다. 6반은 마치 하나의 생물이라도 되는 양 정교하고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었기에 학교의 사람들은 6반 아이들을 개별체 하나하나의 합이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 대하였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6반 아이들은 참으로 6반 아이들다웠다. 그들은 식성과 성격, 말버릇과 습관마저도 빼다박은 듯 똑같았던 것이다. 마치 수십 쌍의 쌍둥이라도 되는 양, 유성생식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특이성과 차이를 모두 제거해 정규화된 유전자암호로 번역해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질의 생물이라도 되는 양, 하나의 군집 단위로 생존하는 종이라도 되는 양 그들은 생활을, 잠과 악몽을 함께하였다.

이처럼 기묘한 유기물의 핵에 소년이 있다는 것은 확고불변한 사실이었기에 소년을 배제하고 다른 아이들만을 혼내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벌을 받고 뉘우친 아이들은 죄의 무게로부터 홀가분해진 상태로, 새로운 정신과 이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소년을 학대하였다.

그들의 괴롭힘은 갈수록 독특한 기지를 발휘했다. 소년의 목과 성기에 분홍색 리본을 묶어놓고 소년의 짧은 머리칼에 방울을 달아놓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란 담임선생이 순간적으로 발작적인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소년의 입술에서 피가 섞인 침이 흘러나오자 누군가가 무척이나 불온한 성적 농담을 내뱉었고 아이들은 그것을 맞받아 점점 더 수위가 높고 천박하며 상스럽기까지한 이야기들을-모두 소년을 대상으로 하며 소년을 향한, 소년과 연관된-퍼붓기 시작하자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이 치달아 담임선생이 엄습해오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슬그머니 교실 바깥으로 나가는 일도 있었다.

소요는 소년의 얼굴에 오줌을 쏴갈기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여자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깔깔거렸고 남자아이들은 좋아하는 소녀가 볼 수 없도록 흉기로 사용된 성기를 조심스럽게 갈무리하며 수줍게 깔깔거렸지만 그들의 표정과 제스쳐는 남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었기에 소년은 누가 제 얼굴에 오물을 퍼부었는지, 누가 저를 관망하며 비웃었는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오줌에서는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비린내가 풍겼다. 오줌의 맛과 냄새 자체는 그리 역하지 않았으나 소년은 그들의 웃음소리를, 끔찍하게 번져가는 화음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인접한 음계에서 동시에 발발하는 일 없이, 두 음 혹은 세 음 이상 떨어진 적합한 수열의 위치만을 건드리며 발발하는, 행복을 표현하는 음악가들의 레토릭으로 울려퍼지는 완전화음들, 한 치의 오차도 불협도 없는 완벽히 둥글고 매끄러운 유리공과도 같은 웃음소리, 소년은 그들의 맑고 순수한 행복에 도저히 감응할 수 없었다.

소년의 몸은 젖지 않을 때보다 젖어 있는 때가 더 많았고 피부 깊숙이 배어드는 오물의 얼룩과 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소년은 더 이상 자신이 기억나지 않는 유년, 그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본질, 어미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보석과도 같은 의미를 살아간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내부에 황홀한 울림이 존재했더라도 그것은 이미 썩은 우유와 오줌, 걸레 빤 물에 부식되어 녹아 없어져 버렸을 것이었다.

이제 소년은 타인의 행복한 웃음소리로 오염된, 경계들의 겹침에 불과하였다. 서사와 서사의 마주침, 서사와 서사의 중첩과 겹침으로 이루어진 사랑의 마법과도 같은 발생은 어디에도 없었다. 소년에게는 6반 이외에 다른 어떤 서사도 없었으며 어쩌면 그것은 다른 아이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아이들은 졸업 할 것이었다.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고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며 소년을 잊어갈 것이었다. 그들이 물러난 이후, 소년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던 화성의 울타리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이후 무엇을 살게 될 것인지 소년은 알 수 없었다.

끝없는 검은 밤과 잠의 표면에서의 무한한 표류, 그리고 그는 6반에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고서 한 번도 떠난 적 없이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6반이었던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져 6반을 반영하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는 이 교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6반의 담론들로 구성된 효과에 불과하였으므로 6반이 아니라면 다른 어디에서도 표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줌을 마시지 않고 더러운 실내화 바닥에 입을 맞추지 않고 가혹한 학대자들을 사랑하지 않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맞추고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간단 말인가.

교실 바깥의 누구도 소년을 쓰다듬어주거나 학대하거나 밀치고 넘어뜨리고 조롱해주지 않았다. 학대받는 소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속의 중심체였으므로, 소년은 6반의 아이들이 언제나 소년에 대하여, 물지 않고 반항하지 않고 묵묵하게 그들의 죄를 감내하는 개에 대하여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년을 학교에 보낸 이후로 그의 부모는 더 이상 소년을 찾지 않았다. 그가 소리소문 없이 아이들과 함께 캠프에 가도, 학교에서 밤을 지새고 돌아가도 찾는 이는 없었다.

그의 부모는 선천적인 방랑자들이었다. 역병과도 같은 치명적인 유행병이 도는 동안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맨몸으로 여행을 다녔다. 소년이 학교에 가기 전에는 매일 식사를 챙겨주고 씻겨주며 옷을 갈아입혀주는 성의를 보였으나 소년이 스스로 등교하고 책가방을 챙기고 이를 닦을 줄 알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천성과도 같은 방랑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화분 아래쪽에 숨겨져 있는 현관문 열쇠를 열고 집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둑한 창문을 보고 소년은 집이 텅 비어 있음을, 그를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차라리 6반의 유기체 한가운데에서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잠드는 일을 택하였다.

소년을 학대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년의 생을 유지하는 일이었기에 아이들은 소년을 오래도록 굶기지 않았다. 그들은 싹이 핀 감자와 흙탕물, 하다못해 개미가 우글거리는 사탕이나 먹다 남긴 과자 같은 것이라도 소년에게 억지로 먹였다. 소년은 대부분의 오물을 토해내었지만 배곯은 위장에 침잠한 얼룩은 소년의 생명을 연장하였다.

아이들은 소년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소년의 죽음을 위시한 농담조차 꺼내지 않았다. 창문에 소년을 밀어넣고 떨어뜨릴 듯 위협한다는 발상은 곧장 기각되었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소년의 죽음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심장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유기체가 심장을 간질거리며, 심장을 어루만지며, 심장을 할퀴며 고통스러운 권태를 소진하려 하지 않듯, 그들은 소년의 생을 철저하게 관리하였다.

학대는 오로지 삶의 무참하고 더러운 진창 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지반 위에서 이루어졌다. 소년은 4층 건물 바깥의 창가자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 복도 창가 자리에 배치되었다. 책상 위에 낙서를 하던 커터칼로 소년의 여린 턱끝과 손가락, 팔등과 성기를 할퀴는 장난 역시 파상풍의 위험성에 대한 끔찍한 영상을 본 아이 한 명이 그 충격적이며 불길한 내용을 친구들에게 공유한 이후로 금지되었다.

그들은 말 잘 듣는 개를 기르듯 소년을 사육하였다. 타자를 배척하여 몰아내는 방식으로, 완전무결한 단자의 환상을 가꾸는 방식으로 공동의 텃밭을 가꾸어나가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면역의 메커니즘과 같이 가장 불결하고 가장 가엾으며 가장 끔찍한 소년을 그들 결속의 심부에 몰아넣었으며 그를 중심으로 모세혈관과도 같이 뻗어나온 유기체를 이루었다.

그들은 물지 않는 개인 소년이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라도 독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참치 캔을 주어 길들인 길고양이가 쥐약을 섞어놓은 음식을 의심없이 받아먹고 죽어가는 것처럼 소년 역시 그들 최후의 가학적인 기벽에 순순히 응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 역시 소년과 함께 죽어가리라는 사실을. 그러나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갈망과 충동에 지쳐 무력해진 어른들과는 달리 한없이 펼쳐진 검은 늪을 우주라고 믿고 눈을 반짝이는 시간을 살고 있었기에,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수억 개의 별과 은하, 우주를 모두 눈 안에 담는 것도 가능하리라고 믿었기에, 완전화음과 순정율, 천국과 지옥의 극단적인 양분법을, 죄의 사함과 고해성사의 신비로운 메커니즘을 믿고 있었기에 죽음에 대한 체념적인 욕망은 아직 그들의 한없이 찬란한 내부에서 발발하지 않은 미지의 사건이었다.

그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개가 오래, 가능하면 평생토록 연명하기를 바랐으며 그를 위해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하였다. 6반 아이들은 현상의 외부는 알지 못하는 불치의 유기체를 계속해서 살아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명해낸 조악한 죄악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랐다. 소년은 아이들과 자신을 잇고 있는 수차례 찢어지고 봉합된 환부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목줄을 걸어주는 순간에도 소년은 몸부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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