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물방울

그녀의 안에서 최초의 사유가 발발하는 순간, 태양은 여느 때와 같이 검고 축축했다. 반신이 잘린 지렁이들은 하수구 내부로 기어들고 있었고 검거나 더 검거나 더 검은 어둠이 술렁이고 있었으며 모든 것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소녀는 처음으로 절망했다.

잿빛 터럭 사이에 밤처럼 검은 눈이 달린 다른 시궁쥐들과 그녀가 다르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 갈대처럼 등이 굽은 산파가 돼지염통 같은 탯줄을 갉아먹을 때, 그녀를 낳아 준 여인을 잃어버렸을 때, 수천 개의 출혈하는 자궁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녀는 절망조차 없는 새까맣고 편평한 공포에 휩싸여 찍찍거렸다. 어쩌면 그때, 그녀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최초의 사유, 최초의 절망은 영원히 현현하지 않고 영원히 배곯는 쥐들의 뱃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본능에 따라 주둥이를 문댔다. 언제나 출산중인 그녀들의 몸, 언제나 축 늘어져 달콤하게 흘러나오는 그녀들의 젖, 그녀들은 본능에 따라 들이밀어오는 주둥이들을 견디었고 제 몸을 허락도 없이 갈취하는 무례한 쪽쪽거림을 견뎠다. 소녀는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 그녀들을 먹고 자라났다. 그것은 허락도 없이 그녀를 낳은 누군가에 대한 복수심 때문도, 누군가 죽은 제 몸을 허락도 없이 물어뜯을까 두려웠기 때문도 아니었다. 쥐들은 미래를 상상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녀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던 것은 순수한 결핍. 순수한 허기와 순수한 공포. 그때는 이름을 붙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짙고 축축한 갈망들. 소녀는 유달리 얼굴이 흰 쥐였다. 사실 얼굴뿐만 아니라 가슴과 등, 배와 궁둥이까지 모두 희었다. 희지 않은 것은 선홍빛의 주둥이와 자그마한 네 개의 발, 그리고 파리의 겹눈만큼이나 붉은 두 개의 눈뿐이었는데, 그녀는 제 붉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유달리 희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젖을 먹기 위해 앞발을 움칠거릴 때마다, 끝없는 하수로를 달려나가며 흔들리는 가슴을 내려다볼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유독 흰빛이 내비쳤다. 어쩌면 그녀가 다른 쥐들과 달랐던 것은 그녀의 털 색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사유가 발발하고 난 뒤부터는 모든 것이 끔찍하게 어려워졌다. 그녀의 등 위에 올라타는 검은 몸들도,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마른 젖에 주둥이를 들이밀기 시작하는 갓난 새끼들도 모두.

그녀가 세 발자국을 뗄 때마다 어디선가 검고 통통한 쥐 한 마리가, 그게 아니라면 끔찍하게 말라비틀어진 쥐 한 마리가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그녀는 그를 찍찍거리면서 거부할 수도 있었을 것이나 도저히 찍찍거릴 수 없었다. 그녀의 내부에서 비등하는 관념들에 질식해가는 그녀는 도저히.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 하염없이 파들거리는 수염을 내려뜨린 채 모든 일이 그녀를 스쳐지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어쩌면 찍찍거리는 일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지도 몰랐으므로,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찍찍거림은 이제 다른 쥐들의 찍찍거림과는 달랐으므로. 그녀는 과거와 미래를 기억하고 상상하며 관념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가능했고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수구의 쥐떼들처럼, 그녀의 선조와 후손들처럼 끔찍하게 불어가는 사유는 찍찍거림의 내부에 겁도 없이 늘러붙었으므로. 그녀는 아무런 절망도 없이 찍찍거릴 수 없었다. 그것은 아무런 후회도 기대도 없이 버릇처럼 찍찍거리는 쥐새끼들의 울음소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그들은 그녀의 찍찍거림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고 그녀의 더러운 내장 속을 파고드는 성기를 견뎠고 그녀의 연약한 귓속에 쏟아져들어오는 찍찍거림을 견뎠고 쥐의 배와 쥐의 피부, 쥐의 털과 쥐의 눈빛을 견뎠고 암컷 쥐로 살아가는 수치를 견뎠다.

이제 찍찍거림도 한 마리 앙상한, 혹은 통통한 수컷 쥐의 무게도 사라졌다. 그녀는 곧 새끼들을 배게 될 것이다. 일 년도 지나기 전에, 그녀의 배에는 열댓 마리의 새끼들이 드글거릴 것이고 그녀의 자궁 속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그녀의 호흡을, 그녀의 혈류를, 그녀의 영양을 갈취할 것이다. 그녀는 여린 속을 인질로 잡힌 채 그 자그마한 기생생물들에게 속수무책으로 그녀의 심장과 폐, 위장과 혈관을 모두 빼앗길 것이다. 그들이, 얼굴도 이름도 없는 그들이 그녀의 숨과 그녀의 피와 그녀의 진물까지 갈취해가는 동안 이름 모를 수컷 쥐는 또 그녀의 위에 올라탈 것이다. 언제나 비쩍 마르거나 통통한 잿빛 쥐. 악몽보다도 새까만 눈.

그녀는 최근 들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녀는 제 뱃속에서 나온 새끼들에게 둘러싸여 갈가리 찢어 먹혔으나 결코 죽지 않았다. 주둥이가 찢기고 눈알이 파이고 귀가 물어뜯겨도. 그녀는 제 위에 올라타 찍찍거리는 낯설고 익숙한 무게를,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을 견뎠다. 귓속으로 기어드는 작은 벼룩. 언제나 찍찍거리는. 그녀는 도저히 찍찍거릴 수 없었다. 찍찍거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들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을 터이기에. 그녀는 그들이 그러하듯 아무런 생각도 없이 찍찍거릴 수 없었다. 창백하고 눅눅한 세계. 언제나 희미하게 번져나가는 파열과 나직한 찍찍거림. 그녀는 바깥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사유라는 것이, 그녀를 찢어발기는 쥐새끼들에 대한 악몽이, 그녀를 짓누르고 찍찍거리는 파렴치한 무게에 대한 증오가 그녀를 괴롭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찍소리도 할 수가 없었고 그녀의 위를 고요히 떠가는 아득한 수면에 대하여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쥐 어미의 젖으로만, 피도 오줌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젖으로만 만들어진 강물에 대해, 모기떼의 알도 장구벌레도 침전물도 없이 순수한 흰빛의 세계에 대해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그녀를 짓뭉개는 무례한 찍찍거림. 그녀는 삶이 정신나간, 불온한 농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녀의 몸 속에서 병처럼 번져나가는 사유, 그녀를 질식시키고 절망시키는 사유, 그녀는 입을 다물고 그녀의 자궁을 갉아먹고 밑을 갉아먹고 쏟아져나가는 시꺼먼 새끼들을 견뎠고 그들이 그녀의 축 늘어진 젖으로 달겨들며 단단한 잇몸을 부딪히며 벌써부터 찍, 찍찍거리는 끔찍한 소란을 견뎠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사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유는 절망적인 질병이며 폭력일 뿐인데 그녀는 아무에게도 사유의 고통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의미도 없이 움칠거리는 수염자락만큼이나 무의미한 찍찍거림뿐이었으니까.

그녀는 멍울과도 같은 젖을 물어뜯는 주둥이들도, 미칠 듯이 뜨거운 침과 함께 귓속으로 흘러드는 찍찍거림도 뿌리치고 황홀에 겨운 찍찍거림이 그녀의 입술에서 터져나올 때까지, 턱끝까지 번져온 사유를 찍찍거리며 발설할 때까지 그녀를 살게 만드는 악몽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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