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의 무운시 1 (29번 채널, 맹아원)

너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난 무언가를 죽을 정도로 바라본 적이 없어.

너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 왜냐하면 가장 향기로운 장미, 속이 둥글게 접혀들어 분홍빛을 풍기는 취약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너는 잘생기지 않았어. 하지만 난 네가 아름답다는 걸 알았어. 넌 바퀴벌레의 밀지에서 갓 태어난 희고 축축한 알처럼, 거미줄에 매달린 마른 낙엽처럼 아름다웠어. 넌 흉측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아름다웠어. 아무도 너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차라리 너를 경멸하고 두려워할 정도로.

난 너를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어. 하지만 어째서 가지면 안 되지?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잖아.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난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살아왔는데. 내가 바랐던 건 너뿐이었는데. 두려울 것이 없는 소녀들이 아무런 죄악감 없이 길거리에 피어 있는 젖은 장미의 목을 꺾어 식탁에 장식하는 것처럼 너를 훔쳐갈 수는 없는 걸까?

할 수 있는 것 같았어.

이전까지는 한 번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갖는 것 말이야. 그것도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것.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장미의 요구를 들어주면 영원히 장미를 가질 수 없을 게 뻔하니까. 무언가를 갖는 사람들, 거침없이 소유하고 쟁취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장미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 나도 네 목소리를 듣지 않기로 했어.

그러니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너는 모두 들어야 할 거야. 너는 벌어진 채로, 열린 채로, 출혈하는 채로, 가장 은밀한 생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노출한 채로 나를 들어야 할 거야. 왜냐하면 내가 너를 원했으니까. 길가에 떨어져 있는 너를 주워온 건 나니까.

이렇게 간단한 일일 줄 몰랐어. 마치 꿈처럼 너는 그곳에 있었지. 난 언제나처럼 비좁은 골목길에서 확 트여 있는 새로 만든 도보와 연결되는 낡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갔고, 눈과 얼음이 나를 미끄러뜨려 너무 깊은 곳으로 내동댕이치게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발 끝에 힘을 주면서 온 신경을 기울이며 올라갔고, 도보와 횡단보도가 바로 연결되어 있는 곳, 그곳에 네가 쓰러져 있었지.

너는 피를 흘리고 있었어. 거대한 화물트럭이 너를 짓밟고 지나갔어. 그게 아니면 아주 비싼 자동차, 어찌 되었든 네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을 값비싼 무언가가 너를 으스르고 지나간 거야.

너는 갓 피어난 꽃처럼 제 정체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꽃처럼 미친 듯이 향기롭게 웃고 있었어. 네가 웃는 걸 보고 난 현기증이 났어. 넌 아름다웠으니까. 아, 모텔의 지하실에서 산파도 없이 아이를 낳던 창녀들도 너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어.

너는 처음으로 생을 깨달은 것처럼 당당하고 오만하게 웃고 있었어. 네가 깨어지는 걸 생으로 깨어지는걸, 조각조각 바스라진 파편들이 생을 너무 잔혹하게 찢어발겨서 복구할 수도 없이, 그렇게 훼손된 채로 피흘리는 걸 보았어.

너는 웃고 있었어.

왜 웃었던 거야? 너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갓 태어난 아이 같았어. 타인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와 서글프게 울부짖는 눈 먼 아이가 아니라, 너 스스로 자궁을 찢어발겨 죽어가는 여자의 피투성이 배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피로 늘러붙은 눈꺼풀을 열어젖히는 아이.

내가 너를 주워가는 걸 아무도 막지 못했지. 그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너를 원으로 빙 둘러싸고 눈물을 흘리거나 당황스럽게 코를 막거나 눈을 가리고 뒤돌아 뛰어가는 사람들 그중 누구도 너를 주워갈 생각을 하지 못했어. 그 착상은 오직 내게만 떠올랐던 거야. 너를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 너를 훔쳐갈 수 있다는 생각.

나는 가장 먼저 손을 들어 사탕을 쟁취한 소녀처럼 기뻤어 너는 얼마 남지 않아서 널 안아들고 다시 돌아오는 건, 왔던 길을 따라 다시 얼어붙은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고 골목을 미끄러져 지나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난 널 숨길 생각도 하지 못했어.

여유가 있었다면 여행용 트렁크 가방에 너를 모조리 긁어모아 넣었을 거야. 피 한 방울 내장 한 조각 살점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너를 전부 가져갈 수 있도록.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너였으니까. 그 모든 것이 웃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난 너무 초조했고 불가능한 범죄의 실현에 속이 뒤집힐 정도로 어지러웠기 때문에 네 일부밖에는, 오른쪽 얼굴이 뭉그러진 네 머리와 작은 발밖에는 가지고 올 수 없었지. 그 둘은 바닥에 늘러붙지 않은 유일한 것이었어.

넌 정말 막 태어난 아기처럼 뜨겁고 붉었어.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지. 너는 계속 눈을 뜬 채였고 일그러진 입술은 분명 웃고 있었어. 그래. 그때부터 난 꽃에게 말을 걸듯 네게 말을 걸었지.

모텔방으로 돌아간 뒤에 난 너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어. 아름다움을, 죽어가는 향기로운 꽃을 너 이전에는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보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네 피투성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네 작은 턱과 볼을 매만지면서, 짐승의 머릿고기로 해체되어가는 네 얼굴을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너를 사랑하려 애썼어. 갓 낳은 괴물 같은 아이를 사랑하려 애쓰는 여자처럼. 하지만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 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너를 사랑한다고 느꼈어 너를, 아직 벌어져 있는 네 미소를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서 찢어질 것처럼 부풀어올랐으니까.

고기가 웃을 수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너는 웃고 있는 고기였어. 가장 치명적인 핏물을 썩어가는 탐스러운 속을 드러낸 채 웃고 있는 그 격렬한 틈. 난 너를 삼켜야 할지, 주방용 나이프로 회칼로 본나이프로 너를 잘라내어서 너를 씹어 소유해야 할지 고민했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정말 고기처럼 잘려나가 삼켜진 너는 더 이상 웃을 수 없을 테니까. 난 웃지 않는 너를 원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조금만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네가 계단을 올라 계단 앞에 바로 이어져 있던 횡단보도를 향해 돌진하고, 그런 너를 트럭이나 버스 혹은 SUV 차량이 들이박고, 네가 혹여라도 고통스럽게 살아나지 않기 위해 그대로 엑셀을 밟아 너를 완전히 으스러뜨리고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한 뒤, 잔혹한 낙관을 전부 짓뭉갠 뒤, 너의 잔해를 너의 흔적을 너의 치명적인 미소를 남겨둔 뒤 달아나버리기 전에, 그 전에 너는 학교 실내화 가방을 한쪽 손목에 걸고 빙빙 돌리며 걸어가고 있었지.

그때 예정보다 일찍 골목에 들어선 나는 네 작고 부드러운 뒷머리를 보았어. 네 머리카락은 겨울밤처럼 푸르스름한 검은빛이었지. 그때 난 네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고 취약한 생명에 불과했지. 너는 한 번도 삶을 의심하지 않았을 테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늘 같은 길을 돌고 있었겠지. 그런 너를 나는 특별히 경멸하지도 않았을 거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너를 트럭을 혹은 버스를 혹은 값비싼 고급 승용차를 가로질러 뛰어가는 너를 나는 붙잡지 못했을 거야. 나는 너를 보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바닥에 쓰러져 형체도 남지 않은 너, 오직 일그러진 미소만으로 반짝이는 너를 보고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겠지. 너를 갖고 싶어서 죽을 것 같았겠지. 그리고 다시, 나는 너를 보고 말을 걸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조금 더 전에는 어떨까? 네가 아직 골목에 들어서기도 전에 나는 너와 내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문득 이해할 수 없는 예감에 이끌려 뒤를 돌아봐. 그리고 네 얼굴을 마주볼 거야. 하지만 네 얼굴을 이해하지는 못할 거야. 너는 아무런 의미도 매혹도 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테고 난 네가 어째서 행복한지 알 수 없겠지. 너는 아름답지 않을 테니까.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 언제나 이해하지 못한 것은 뒤늦게야 이미지를 갖게 되니까, 그때 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만을 알아보지 못하는 개처럼 멍청하게 너를 바라볼 것이고, 오로지 미래의 이미지로 유보되어 있는 너, 결국에는 영원한 과거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을 네 얼굴을 해독할 수 없는 상징과 단서를 바라보듯 내려다볼 것이고, 너는 내게 웃어보이겠지. 너는 상냥한 아이니까 네가 상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네가 취해야 하는 상냥함조차 의심해본 적 없다는 사실을 난 이미 알고 있어. 그건 그리 대단한 비밀도 아니지.

너는 무척이나 착하고 상냥하고 부드럽고 순진한 아이였다고 너를 돌보던 맹아원 교사가 그렇게 말하더구나. 교사는 놀랍게도 네 또래의 소녀처럼 보였어. 교사는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

왜냐하면 그 애는 내가 담당하는 학생이 아니었으니까요, 하고 교사는 작고 사랑스러운 새의 부리같이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속삭였어.

난 진실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 이상 그 교사를 추적하지 않았어. 더는 너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지. 맹아원을 샅샅이 뒤질 수도 있었을 거야.

그 교사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네가 쓰던 물품들, 네가 입던 낡은 잠옷-그건 원피스였어! 그것도 하늘색의-과 신발 몇 켤레, 네 그림 몇 점, 그리고 네가 쓴 그 두툼한 노트들 네가 밤마다 몰래 불을 켜고 잠든 아이들 머리맡에서 쓰곤 했다던 그 노트들을 전부 받아왔지. 그게 네가 살아온 모든 흔적들은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남겨진 것, 내게 건너온 것은 그것뿐이었지.

교사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아직은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은 채 내게 속삭였어. 당신이 그 애의 부모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 애는 고아였으니까.

모텔로 돌아와서 난 네 살에 게걸스럽게 들러붙은 파리들을 쫓아내고 유품들을 정리했지. 네가 어째서 일반 학교가 아닌 맹아원에 다닌 건지, 맹아원에 어째서 네 잠옷이 있었던 건지, 잠옷을 두고 맹아원에서 살았던 거라면 어째서 낡은 실내화 가방을 들고 통학을 했던 건지, 맹아원을 떠나서는 네가 어디에서 잠을 잤던 건지 고아원에서 맹아원으로 통학을 했던 건지, 그렇다면 맹아원과 고아원은 날마다 걸어서 통학을 할 만한 지근거리에 있을 텐데 왜 난 한 번도 같은 동네에서 고아원을 보지 못했던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어.

난 네 진실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들뿐이었어. 장미를 소유함으로써 벌어지는 경이로운 사실들, 장미를 가진 여자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비밀들. 아니, 아니야. 나는 이제 진실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해. 나는 네가 가진 아름다움의 비밀을 캐내고 싶어 했고 그래서 그토록 지리멸렬하게 생각하던 진실을 갈구하게 되었어. 진실이라는 것이 천사들의 고기일 뿐이라고, 네 미소 이외에는 그 아름다움 이외에는 어떠한 진실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희귀한 나비의 진화 과정을 추적하면 나비의 아름다움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곤충학자처럼 네 주변부를 더듬어갈 수밖에 없었지.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러한 사고방식, 주변부를 더듬어 역사적인 맥락을 그 사실들의 지층을 밝혀내려는 고고학적 작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그 본질을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찾아 심부로 다이빙하려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고 나도 마찬가지이니까.

노트들에는 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어. 너는 이름이 없는 아이였을지도 몰라. 나처럼. 맹아원에서 교실에서 교사들이 고아원의 교사들이 너를 지칭하는 단어는 있었겠지만 너는 끝내 그 단어에 익숙해지지 못했겠지.

너처럼 이름을 갖지 못한, 이름을 살지 못한 아이들이 종종 있어. 나도 그런 아이였고 자라나서도 나는 이름을 갖지 못했지. 나는 몸을 파는 잡년이었고 암캐였고 창녀였고 화냥년이었지만 그게 내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노트 안에 특별한 내용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야. 노트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쓸법한 오백 원짜리 싸구려 그림 일기장이었고 유치한 캐릭터 그림 아래에 조잡한 감상들 어린아이들이 공유하는 모호하고 확고한 신념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세상에, 그건 일기 따위가 아니었어. 너는 무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슬픈 것들을 쓰고 있었어.

네가 끔찍한 약시였다는 걸 노트를 건네주면서 교사는 설명해 줬지. 그래서 너는 처음부터 빛의 이미지들로부터 배제된 채로 태어난 맹아들과는 달리 글을 쓸 수 있었지만 문장들은 가지런하지 못했고 오른쪽으로 큼직한 줄에도 걸리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기울어져 있었지. 그래서 문장들을 알아보는 건 그리 쉽지 않았어.

하지만 문장들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네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 맹아원에서는 일기를 쓰지 않고 교사들은 그 누구의 일기도 검사하지 않을 테니까. 너는 점자를 배워 점자책을 읽는 훈련만을 했을 뿐이겠지. 아무도 네가 글을 쓰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한밤, 눈 먼 아이들이 영원한 어둠 속에서 잠들 때 남몰래 불을 켜고 너무 흐릿한 평면의 존재 위에 글을 써내려갔겠지. 너를 새겨넣듯이. 그러나 너는 글을 쓰면서도 네가 새겨졌는지 네가 잘 그려졌는지 확인할 수 없었을 거야.

누가 네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거니? 난 그런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읽어봤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런 꿈을 몇 번이고 꾼 적이 있는 것 같았어.

어쩌면 네 글은 그리 특별한 게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난 어릴 때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다닐 때도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런 글은 정말 처음 읽어봤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서 울면서, 오로지 경이로 흐느끼면서 네 머리에 들러붙어 알을 낳는 불결하고 신비롭게 반들거리는 젖은 생을 심어넣는 파리들을 쫓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너를 읽었어.

소녀는 죽지 않았다. 오직 소녀만이 죽지 않았다. 살아남음에는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소녀가 살아남은 것은 그녀가 특별히 아름답기 때문도, 운이 좋기 때문도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살아남은 것은 그저 살아남은 것이었다. 소녀는 태어남 이후의 삶을 받아들였듯 살아남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죽음에 아무런 이유가 없듯 살아남음에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소녀는 그 많은 죽음들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붉은 숲에서 소녀는 홀로였다.

이제는 붉지도 않은, 나무들도 없는, 벌거벗은 잿빛의 폐허에서 소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 누구도 공유하지 않는 언어, 환각이나 망상과도 같은 언어로 소녀는 글을 썼다.

아무도 나를 읽어주지 않을 거야. 아무도 나를 읽을 수 없을 거야.

소녀는 차라리 그들이 돌아오기를, 그래서 그녀를 마저 겁간하고 찢어내고 짓이기고 불태우기를 바랐다. 그러면 더 이상 미쳐버린 언어로 사유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사실은, 소녀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언어, 미쳐버린 언어로, 이제는 언어일 수 없는 무언가를 적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사라진 언어였으니까. 지극히 자폐적인 언어, 우주에 유기된 식물의 웅얼거림과도 같은, 그렇지만 달에 내동댕이쳐진 장미가 여전히 햇빛을 찾아 움직이듯이 소녀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향해 글을 썼다. 그것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미래 이미 파기되어 버린 미래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어버린 미래였다,

그 애는 다시 돌아왔어. 다시 돌아와서 미안하다고, 너를 두고 가려는 게 아니었다고 속삭이면서 내 귓불을 깨물었어. 난 더 이상 그 애를 몰아붙이지 않았어. 그 애가 돌아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날이 저물고 다시 떠오르고 아침도 밤도 없는 낮들이, 끔찍하게 긴 낮들이 계속되고, 영원과도 같은 낮들이 계속되고,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할 수도 없는 그런 잔혹한 낮들, 갈기갈기 찢어 난도질해버리고 싶은 빌어먹을 별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네가 돌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하고 나는 말했어.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그 애는 말했지.

나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어.

듣고 있어? 하고 그 애가 물었을 때, 나는, 그래, 듣고 있어. 네 검고 둥근 눈, 네 머리칼이 바람 없이도 흔들리면서 사각대는 소리, 네 고개가 물 속에 비친 인영처럼 흔들리는 소리, 네가 말하는 모든 것, 그리고 네가 말하지 않은 모든 것을 난 듣고 있어, 하고 대답했지.

우리는 마치 서로의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대화를 나누었어. 마치 같은 언어로 말을 나누는 것처럼.

그 애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고 나도 그렇다고 말했어.

우리는 함께 숨을 참고 우주로 날아올랐어. 아니, 우리는 비상조차 없이, 한 번의 날갯짓도 없이 이미 우주에 있었지.

그곳이 우주라는 걸 우리는 동시에 알아차렸어. 그곳은 그리 검지도 아득하지도 신비롭지도 황홀하지도 않았지만 우주였어. 왜냐하면 밤은 끝이 없었고, 그 애와 함께 있을 때 낮은 밤이었고, 계속되는 것은 끔찍한 낮이 아니라 향기로운 밤이었고, 그 애의 눈을 닮은 검고 촉촉한 밤, 언제든지 잠들 수 있는 밤 설령 불면하더라도 자유롭게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밤이었고, 우리는 함께 숨을 참고 있었지.

그 애가 내 꿈 속에 들어온 것인지, 내가 그 애의 꿈 속에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기적처럼 동시에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마치 대화를 나누듯이 숨을 참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지.

우주는 내가 가장 아끼는 거짓말이었어.

그리고 우주는 내가 가장 아끼는 거짓말이야, 하고 그 애가 말했지.

그러니까 우주는 우리가 가장 아끼는 거짓말이야.

난 너를 우리라고 불러도 괜찮느냐고 물었고, 그 애는 놀랄 정도로 감미롭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

우리는 함께 우주선을 상상했어. 우주선은 긴 복도식 호텔처럼 보였지. 문이 잠겨 있는 방들이 일렬로 아득하게 늘어서 있는 복도들이 몇 층이나 있었어. 우리는 마치 그곳을 여러 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움직였지. 하지만 모든 것은 끔찍할 정도로 경이로웠어. 그러니까 그건 사실 처음 겪는 사실이었어. 그래,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어. 우리는 우리가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사실에 속해 있고 사실을 유영하고 사실을 꿈꾸고 사실을 생산하면서 사실로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난 울고 싶었지만 숨을 참고 있었기 때문에 울음도 함께 참지 않으면 안 되었지 우주선의 해치에는 우주에 고개를 내밀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람세스 호텔에 대해서 중얼거리는 남자아이가 있었어. 그 애는 길을 잃은 거겠지.

우리는 그 애를 내버려 두고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갔어. 그곳은 거대한 공연장이었지 한쪽 벽면에 붙어 있는 원형의 무대 주변에 마찬가지로 원형인, 신부의 드레스처럼 흰 테이블보에 감싸인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어. 우리는 그중 한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착석했고 곧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유달리 키가 큰 정장 차림의 남자가 다가와 빈 와인잔과 작은 과자들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쌓여 있는 접시를 가져다 주었어.

우리는 숨을 참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마시거나 먹을 수 없었지만 기꺼이 받아들였어. 그 사람에게 고맙다고 속삭이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대 위로 올라갔어.

그는 순식간에 정장을 풀어헤쳐 벗어내고 벌거숭이가 되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어. 그들이 짐승의 뼈처럼 보이는 거대한 날개를 어깨에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천사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어.

메시아는 꺾인 목을 가지고 있다 메시아는 미래를 향해 뒤 돌아간다 메시아는 복수하지 않는다 메시아는 뒤로 나아간다

그들은 그리스 원형극장에서 소포클레스의 연극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코러스들처럼 아릅답고 신비로운 목소리로 웅얼거렸어. 입술을 둥글게 모으고 숨을 가능한 한 짧게 내쉬면서 부르는 노래였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숨을 들이쉬지 않고 노래를 부르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 간혹 숨을 너무 낭비해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린 천사는 다른 천사와 입을 맞추면서 숨을 고르고는 했어.

천사들 틈에서 머리가 두 개 달린 소녀가 등장했을 때, 난 그 애가 어딘지 익숙하다고 생각했고 너도 그런 것 같았지. 너는 소녀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머리와 나를 번갈아서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저 애들 너랑 닮은 것 같아, 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였지.

난 이해할 수 없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왜냐하면 난 그녀들을, 나와 닮았다는 그녀들을 알아야 한다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난 그녀들을 알지 못했으니까. 두 개의 머리는 불가해할만치 익숙했지만 난 그녀들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고, 그녀들도 특별히 나를 주의깊게 바라보는 기색은 없었어. 어쩌면 무대에 비해 객석이 너무 어두워서 우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난 수치스러웠고 넌 두려운 것 같았어. 어째서? 저 애들은 내가 아니야. 닮았다고 해서 내가 그녀들일 수는 없어. 그녀들은 무대 위에 있고 난 너와 함께 객석에 앉아 있으니까 너도 알고 있잖아! 하고 외치고 싶었어.

넌 내게 해명이라도 바라는 듯한 눈치였지만 내게는 변명할 만한 언어가 없었어. 나도 왜 그녀들이 나와 닮은 것인지, 왜 그녀들은 무대 위에 멀거니 서 있고 난 무대 아래에 너와 함께 남아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난 잃어버린 쌍둥이 자매를 바라보듯 그녀들을 바라보았어. 하지만 그녀들과 내가 공동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지. 왜냐하면 우리는 유년 없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숨을 참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니까. 우리는 반드시 닮음의 원인을 밝혀내지 않아도 돼. 마치 유년을 벗어난 듯이 굴어도 돼. 왜냐하면 우리는 우주에 있으니까. 우리는 유년을 두고, 마치 몸을 두고 거울 속에 들어간 정념처럼 그렇게 몸서리칠 수 있으니까. 의도도 방향도 없이 요란하게 사랑하고 침묵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는 신을 연민할 수도 있으니까.

어둠 속에서도 네 얼굴은 선명하게 보였지. 너는 당장이라도 울부짖을 것 같은, 숨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이었어. 하지만 나는 삶에 무능했듯 설명에도 무능했고 결코 너를, 그리고 나를 설득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어째서 그녀들이 나와 닮은 것인지, 나는 한 가지의 만족할만한 설명도 제시할 수 없었어.

그녀들은 황금빛 스팽글이 달린 화려한 무대 의상을, 몸에 꼭 달라붙는 타이즈에 치렁치렁하게 별들이 수놓인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있었어. 나는, 그제야 나는 내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 너도 마찬가지였지. 우리는 벌거벗고 있었어. 마치 붉은 숲에서 너와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우리는 벌거벗고 있었어. 서로의 몸속에 틈입할 듯이, 가장 내밀하고 비참한 존재를 어루만질 듯이, 서로를 망가뜨려서라도 위로할 듯이 가슴골을 타고, 겨드랑이 밑에서, 의자에 맞붙은 엉덩이와 등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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