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의 무운시 2

샴쌍둥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오직 천사들만이 지극히 절제된 무호흡으로 노래를 부를 뿐이었지.

메시아는 뒤돌아보며 날갯짓한다 메시아는 오래도록 나는 동작을 연마해온 암캐다 메시아는 비상하는 암캐다 우리가 지상에 남겨진 암캐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암캐 우리는 메시아의 날개를 찢고 장미처럼 검붉은 황홀한 피가 흘러내리는 어깻죽지에 입맞추며 그녀를 잡아먹을 것이다 그녀는 반쯤 잘려나간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그 날카로운 뼈와 날개로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황홀하게 웃을 것이다 우리는 황홀하게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황홀하게 출혈하며 날아오를 것이다 우리는 비상하는 암캐가 메시아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기원보다 더 오랜 비밀에서부터 나는 동작을 아무도 믿지 않은 동작 우리 자신도 믿을 수 없었던 그 망상적인 동작을 연습해왔으니까 우리는 산 채로 메시아들을 잡아먹는다 그녀들은 바다에 떨어져 익사하는 까마귀처럼 아름답다 아무도 까마귀가 에메랄드처럼 잔혹하게 반짝이는 대양까지 날아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까마귀가 죽어가는 것을 아무도 목격하지 않았다 심지어 바다조차도 까마귀의 검은 깃털로부터 눈을 돌렸다 까마귀는 비명도 추락도 없이 검푸른 대양의 가장 깊은 심연에 집어삼켜졌다 하지만 까마귀는 죽기 위해 바다로 간 것이 아니다 까마귀는 살기 위해 바다로 간 것이다 아무도 그가 바다 위에 날아 있는 것을 마치 바다를 소유한 것처럼 거세게 검은 날개를 펄럭거리는 것을 그의 날개 사이에서 끔찍하게 하얀 태양이 뭉그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천사들은 추락하기 직전의 구름처럼 불길하고 희게, 도망도 비상도 몸부림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어.

소녀는 그녀가 이미 과거형으로 서술하기 시작했음을 멈출 수 없이 미지근한, 역겨운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더럽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소녀는 대양 한복판에 좌표도 없는 우주의 중턱에 내버려진 채 표류하면서 그녀가 끝까지 숨을 참고 견딜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끝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끝이 그녀를 박살내고 그녀의 피부를 찢어내고 열어젖혀 날개로 만들기 전에 그녀는 결국 숨을 들이쉬고 말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어쩌면 받아들이는 순간에도, 그녀의 가장 내밀하고 비밀스러우며 취약한 곳을 그것으로 채우는 동안에도 알아듣지 못할 것을 들이키게 될 것이다. 작고 연약한 가슴이 찢어발겨질 정도로 격렬하게 그녀는 살게 될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삶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최후의 불이 어디에 있는지 소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아직 그녀에게는 희미하고 아스라한, 백조의 언어와도 같이 불길한 예감밖에 없었다.

소년은 천천히, 땅 속에서 피어나는 최후의 장미처럼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무대로 올라갔다. 그는 벌거벗고 있었다.

천사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소녀는 더 이상 천사들의 합창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웅웅거리는 곤충들의 날갯짓, 언어적 규칙과 음절의 분절들을 잃어버린 짐승의 노래 같았다.

소녀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무대 위에는 모두가 있었다. 이제 무대 아래 남은 것은 소녀뿐이었다. 발가벗지 않은 것은, 무대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샴쌍둥이 소녀와 소녀뿐이었다. 오직 그녀들만이, 거울의 안팎에 가로놓인 그녀들만이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그녀들만이 천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대는 저쪽이었고 소녀는 무대 위에 있지 않았으며 아무도 무대 바깥에 남은 소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여자는 불길한 평어체로 바뀌어버린 문장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녀는 미쳐버린 것일까? 언제부터 그녀는 미쳐버린 것일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TV 프로그램에 골몰할 때부터? 29번 채널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부터? 학교의 남교사, 29번 채널의 전속배우를 빼닮았던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부터?

23. 당신이 목을 매단 것은 참지 못하고 숨을 내뱉어버린 것은 당신이 끝까지 믿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29번 채널의 돼지-집도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왜냐하면 당신은 배우가 아니었으니까. 당신은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교사에 불과했고 그와 무척 닮은 당신은 그렇지만 배우가 아니었으니까. 돼지를 연기하는 배우를 연기하는 교사였던 당신은 그 끝에 남는 명사를, 더는 유예할 수 없는 거미줄에 매달린 나방과도 같은 끔찍한 생명을 발견하고야 말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결코 배우일 수 없는 그를, 영원히 실패할 꿈에 돌진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희망도 상상해낼 수 없었던 그를, 그는 소녀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현진, 그 애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일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구태여, 아마 그 애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던 소녀에게 그 이름을 붙여 부를 이유가 없었다.

소녀는 학교를 떠난 뒤 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실패했으니까. 언제 죽어도 애도되지 못할 길거리의 사물과도 같은 존재가 그녀였으니까. 이 도시에는 창녀들이 많았고 그녀들에게는 창녀, 암캐, 몸 파는 년, 화냥년 이외에는 다른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없는 그녀들은 묘비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희망조차 없었다. 물론 모든 창녀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배우가 되겠다느니 하는 불가능한 낙관을 제외하고서라도 돈을 벌어 집을 사겠다거나 개를 사서 기르겠다거나 하는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접근 가능한 대상을 가지고 있는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것을 너무나 바랐기 때문에. 끝없이 요구했기 때문에.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 그래서 차마 이름붙일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래서 보이지 않는 형체를 밝혀낼 수도 없는 그것을 죽을 만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깊고 즉각적인 갈망, 대상이 없는 목마름에 희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다. 여자는 그것이 차라리 절망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한없이 넓고 아득한, 대상을 가릴 수 없이 멀리까지 뻗쳐 있는 밤의 뿌리와도 같은 정동.

소년은 소녀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붉은 숲에 홀로 남겨진 소녀. 미쳐버린 채 다른 곳을, 불가능한 곳을 상상하는 소녀.

사람이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을까? 그토록 깊고 애타게 다른 곳을 상상하는 것이 가능할까?

여자는 소년에게, 이제는 어두칙칙하게 변색되어 부패해가는 소년에게 묻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애는 소녀일지도 몰랐다. 여자에게는 그 애의 성별을 알만한 방법이 없었다. 그 애는 처음부터 너무나 훼손된 채로 여자를 마주했고, 단지 그 애의 실내화주머니가 파랬기 때문에, 그 애의 잠옷 원피스가 파랬기 때문에 그 애의 검푸른 머리가 짧았기 때문에, 여자는 그 애를 소년이라고 상상한 것이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 애는 이제 어떠한 성도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그 애의 벌어진 미소는 음부보다도, 번들거리는 내장보다도 깊었고 그 애는 이제 살아있지 않았으니까.

왜 그런 글을 쓴 거야?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숨을 참은 거야? 하고 물어도 그 애는 영원히 대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여자는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울지 않는 소년 앞에서, 슬픔의 흐릿한 기미조차 내비치지 않는, 갓 도축된 돼지의 머리처럼 환희에 가까운 비명과 함께 와해되어가는 머리 앞에서 여자는 미친 듯이 울부짖고 싶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숨을 참을 수 없을 거야, 우리는 단 한 번도 함께 숨을 참을 수 없었어, 나도 예전에는 글을 썼어, 학교에서 백일장 대회를 할 때 난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썼지. 그때 무슨 글을 썼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다만 주제가 어머니였으니까 나도 그에 대한 글을 썼을 거라고 기억할 뿐이야. 어떤 아이는 그림을 그렸는데, 난 그 그림을 본 적도 없이 무척 좋아하게 되었는데, 결국 끝까지 그 그림을 한 번도 보지 못하게 되었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림을 찾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지.

미술부 아이들이 동아리실로 쓰는 미술실을 어렵게 찾아갔을 때도 거기에는 그 그림이 없었어. 그곳에는 단 한 점의 색도 없었어. 오직 끝없이 그어진 수백 수천 개의 검은 선들뿐이었지.

난 그 그림을 좋아하는 것만큼 내 글을 좋아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백일장에 나가지 않았지. 풀밭 위에, 벤치 위에, 돌계단 위에 멀거니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때웠어. 그림을 그리는 다른 애들을 도저히 바라볼 수 없어서 호수만 바라보았지. 그곳에는 둥글게 뭉쳤다가 안개처럼 넓고 엷게 퍼지는 날파리떼가 있었어. 날벌레들은 웅웅거리면서 집적된 모양을 바꾸고는 했지. 나는 너무 거세게 숨을 들이키다가는 그것들을 기도 속으로 빨아들이게 될 것 같아서 은밀하게, 그것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서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어.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폐속에 작은 날파리 한 마리를 기르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거야. 그건 나와 함께 죽어가겠지. 난 떼어낼 수 없는 독과도 같은 시체를 내 폣속에 담그고 죽어가겠지. 하지만 지금 내 폐는 깨끗해. 난 담배도 피우지 않고, 날파리 한 마리도 내 폣속에 들이지 않았으니까.

내가 유일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글, 내가 마지막으로 썼던 글은 가장 좋아하는 거짓말에 대한 작문 숙제뿐이었어. 원래는 수업시간 안에 써야 했던 글이었는데 시간 안에 완성하지 못해서 방과후까지 혼자 남아서 글을 썼지. 하지만 글을 다 썼을 때 교무실 문은 잠겨 있었고 난 결국 어디에도 그 글을 제출할 수 없었어. 그리고는 그 글을 다시는 읽지 않았지.

그러니까 난 아무도 쓰지 않을 글을 쓴 거야. 그 글은 네 글처럼 절박하고 애틋하지는 않아. 네가 원한다면 읽어줄게.

여자는 악몽에 취한 사람처럼 멍하게 일어나 모텔의 티테이블과 식탁, 찬장, 거울 뒤 수건들과 화장품을 놓아두는 선반, 심지어는 신발장과 금고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그곳에 어린 시절의 노트 따위는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글을 다시는 읽지 못할 것이었으니까. 죽은 소설가의 머리 앞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을 읽어내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은 영원히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여자는 미친 듯이 비좁은 모텔 방을 샅샅이 뒤져댔다. 하지만 그곳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을 증명할만한 어떠한 기록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짐승처럼, 여자의 공간에는 현재뿐이었다. 마치 그녀가 처음부터 창녀로 태어난 것처럼. 역겨운 단내가 얇은 플라스틱을 투과하여 흘러내리는 러브젤과 콘돔, 콘돔, 콘돔들.

여자는 서랍장 뒤에 쌓여 있는 잿빛의 부드러운 먼지뭉치 속에서 배를 까뒤집은 채 죽어 있는 바퀴벌레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죽은 바퀴벌레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그것이 죽었기 때문에 역겨운 반점들이 그득한 그 끔찍한 배를 드러내보이고 있기 때문에 여자는 더 견딜 수 없었다.

여자는 바퀴벌레처럼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여자는 바퀴벌레처럼 죽을 것이었다. 누구도 여자의 죽음을 슬퍼해주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여자가 잃어버린 작문 숙제를 검사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누구도 여자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여자를 읽어주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끝까지 푸른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괴물 같은 태아의 그림을 보지 못할 것이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오열했다. 엷은 벽 너머로 그녀와 꼭 닮은, 그러나 내부로 닫힌 벽 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이 아닌 바깥으로 한없이 퍼져나가는 환희로 내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창녀가 쾌락과 환희와 경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자는 믿을 수 없었다. 벽 너머에 드러누워 혹은 엎드려 혹은 반쯤 일어서 혹은 뒤집혀 물구나무를 서고 있을 여자는 창녀일 것이다. 이런 싸구려 모텔에서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은 전부 창녀였으니까. 글을 쓰는 여자 어린 시절의 작문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여자는 결코 이런 끔찍한 모텔, 벽면마다 길고 음탕한 거미줄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낡은 서랍장 뒤에는 솜뭉치 같은 먼지들이 수북히 쌓여 있고 바퀴벌레가 배를 까뒤집은 채 질식사한 그런 모텔방에서 몸을 열어젖히지는 않을 테니까.

어째서 여자는 그녀가 창녀인 것을 즐길 수 없는 것일까? 시를 사랑하는 시인들이나 음악을 사랑하는 작곡가들, 파괴를 사랑하는 자동차 폐기장의 인부들과 공사 소음을 사랑하는 공사장의 노동자들, 폐지를 사랑하는 압축 기술자처럼 어째서 여자는 벌어진 몸을 내주는 일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째서 여자는 창녀이면서도 창녀일 수 없는 것일까?

여자가 지쳐 흐느끼는 동안에도 벽 너머에서의 끔찍한 황홀경의 비명은 계속되었다. 싸구려 복제화 액자 밑의, 분홍빛 꽃무늬가 프린트 되어 있는 벽지에 여자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어쩌면, 저 너머에서 여자는 죽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여자의 팔다리를 찢어내고 목을 조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리고 향기로운, 햇살처럼 싱그러운 여자아이의 손에서 바스라지는 나비처럼 여자가 찢겨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비는 여자아이를 사랑했을까. 여자는 그녀를 열어젖히는 손을 사랑했을까.

여자는 죽고 싶었다. 여자는, 범죄 속에서, 죽고 싶었다.

찢어지는 비명에 벽이 경련하고 있었다. 여자는 산 채로 찢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없이 벌어지기를. 깨진 거울의 파편처럼 모든 곳으로, 그녀가 알 수도, 기억할 수도, 절망할 수도, 후회할 수도 없는 모든 다른 곳으로 흩어지기를.

미친 듯이 터져나오던 비명이 갑작스럽게, 마치 꿈처럼 중단되었다.

갈빛의 피로 얼룩진 침대 한쪽 끝에 앉아서 여자는 미안해, 하고 속삭였다. 아무래도 읽어줄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왜, 대체 왜 소년은 평평한 형상의 기호들을 결코 식별할 수 없을 맹아들 옆에서 글을 쓴 것일까?

노트는 수십 권 있었다. 여자는 소년의 글을 옮겨써 줄 수도 없었다. 맹아원 고아의 글을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듯 창녀의 글을 읽기를 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므로. 설사 누군가가 그들을 원한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그들을 찾아 나설 수 없을 것이다. 창녀와 고아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 가장 더럽고 누추한 그늘 속에 숨겨져 있었으니까. 바퀴벌레의 역겨운 시신과 생을 만개하는 끔찍한 흰 반점들을 헤치고 찾아낼 만한 가치가 그들에게는 없었으니까. 그녀는 이미 어린 시절의 노트를 잃어버렸고 소년은 이미 몸을, 그가 무엇을 썼는지 설명해줄 깊은 언어를 잃어버렸으니까.

내가 신이었으면 네가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텐데, 모든 것을 사랑했을 텐데, 하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멍청한 생각이었다. 그녀는 신이 아니었고, 모든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였으며, 신은 이미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왜냐하면 그녀가 신이었다고 해도 소년의 몸에서 퍼져나가는 암세포를, 인간의 내장을 파쇄하며 퍼져나가는 철가루들을 사랑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모든 것을 동시에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여자와 소년은 그 모든 것에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교사 남자가 끝까지 배우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여자는 모든 것에 그녀가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소년은 글을 썼다 아무도 그의 글을 읽어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소년이 몰랐을까? 교사들이, 맹아들이 쓸 수 없는 일기 따위는 볼 필요도 의무도 없는 그 교사들이 소년의 일기를,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불가능할 것이었던, 그러니까 소년 외에는 아무도 고려하거나 검토할 필요가 없던 그 일기를 읽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정말 몰랐을까? 그걸 알고 있었다면 소년은 어째서 일기를 썼을까?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그들에게 허락된 어둠을 갈취하면서 홀로 빛을 밝혀 비뚫어진 문장들을 써내려간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썼던 것이겠지. 숨을 참고 다른 곳을 상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어쩌면 바퀴벌레는 자살한 것일지도 몰랐다. 바퀴벌레의 몸을, 그 역겨운 다리들과 반점들을, 지나친 생을 버틸 수 없어서. 더 넓은 생으로, 비좁은 몸을 찢고 나오는 그 무한한 생명으로 돌진한 것일지도 몰랐다.

바퀴벌레는 살기 위해 죽은 것이다. 배를 까뒤집고 그 몸을, 그 역겨움을 초월하기 위해. 더 불결한 곳, 더 불길하고 끔찍한 것으로 향하기 위해.

옆 방의 창녀는 죽었을까? 죽어서 더는 비명지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섹스가 끝났기 때문일까? 그녀를 샀던 남자 혹은 여자가 침묵을 종용하였고 여자는 참을 수 없는 환희에서 갑작스럽게 알몸으로 쫓겨나 입을 다물고 서글픔을 삼켜야 했던 것일까? 그녀가 분출해내지 못한 열림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무도 그 무엇도 열림을 메울 수는 없을 텐데 여자는 고통스러울까? 갑작스럽게 쾌락의 열림을 부정당한 여자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내부로 수축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고통의 비명은? 고통의 신음은 어디로 갔지?

어쩌면 옆 방의 여자는 죽어버렸는지도 몰랐다. 쾌락 때문에, 우리에게 가능하지 않은 열림 때문에 그녀는 은하처럼 아득한 생명을 향해 죽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죽었을지도 몰라.

여자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흠칫 놀라 몸을 움츠리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여자는 옷 매무새를 정리할 여유도 없이 모텔 문 밖으로 뛰쳐나가 먼지에 찌들어 검붉은 카페트를 밟고 옆 방문을 두드렸다.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복도는 악몽처럼 고요했다.

여자는 오른손을 주먹 모양으로 만들어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모텔에는 방에 설치된 초인종이 없었기 때문에 문을 두드리는 것 외에 여자가 그들을 부를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어쩌면, 모두 떠났을까? 불길함과 끔찍한 상상만을 여자에게 남겨둔 채로 문을 열고 사라졌을까? 여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이곳까지 걸어오는 그 짧은 순간에 복도를 건너 순식간에 모텔 바깥으로 영원한 밤 속으로 사라졌을까? 그게 아니라면.

여자는 절망적인 예감에 몸을 떨며 1층으로 내려갔다. 더러운 유리 너머에서 TV를 보고 있던 모텔 주인은 여자의 다급한 요청에 긴장하며 함께 방으로 향했다. 모텔 주인이 여자보다 두툼한 중년 여자의 주먹으로 문을 부수어버릴 듯 세게 두드리고 소리를 질렀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곧 모텔 주인은 만능열쇠로 방문을 열어젖혔다.

노란 장판 위에 킹사이즈의 침대, 노랗게 변색된 시트와 베개 두 개, 낡은 식탁과 찬장, 작은 서랍장과 더러운 골목을 향해 열린 창문은 여자의 방과 거울처럼 빼다박은 구조로 놓여 있었다. 그녀들은 함께 텅 빈 방 안으로 들어가 욕실을 살펴 보았지만 누런 얼룩이 침전된 욕실 커튼을 젖혀 보아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물기조차도 없었다. 세면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말라붙어 있었다. 방 안에는 머리카락 하나 없었다. 마치 시간을 돌린 것처럼, 가구들은, 심지어는 간이 포트와 컵들까지도 아마 모텔 주인이 처음 의도했을 상태 그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분명히 여자가 들었던 비명의 주인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모텔 주인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여자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함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방에는 사람의 흔적이 조금도 없었다. 더러운 시트에도 주름 하나 잡혀 있지 않았다. 베개에는 머리 눌린 자국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묵었다면 반드시 풍겨야 할 살의 냄새, 땀과 털과 피와 배설물의 냄새가. 하다못해 향수나 로션, 화장품 냄새나 물 비린내조차 나지 않았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올라가 여자의 방과 연결되어 있는 벽, 여자가 조금 전에 손가락을 대 보았던 것과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여자의 공간과 마주해 있는 그 벽을 두드려 보였다.

그곳은 마치 거울 속처럼 차갑고 조용하였다. 만약 시계가 달려 있었다면 세 개의 길고 가지런한 화살표들이 거꾸로 돌아갔을 것 같았다.

여자는 끔찍하게 지친 채로 소년의 머리가 있는, 그리고 소년이 남긴 흔적들이, 여자와는 무관하였을 여자에게 올 만한 이유가 없었던 유품들이 가득 쌓여 있는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여자는 소년의 옆에 드러누운 채 고개를 돌려 부패한 사과처럼 보이는 소년의 미소를 바라보며 모텔 주인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 이 모텔에 자리를 잡을 때를 제외하고 여자는 모텔 주인과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다. 장기대여한 방의 월세를 내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고 모텔 주인은 살가운 대화를 나눌 만큼 사근사근한 여자가 아니었다. 아니, 그녀는 모텔 주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상냥한지 불퉁한지조차 알지 못했다.

처음 이 모텔에 들어왔을 때 여자는 형언할 수 없는 몰락의 경험 때문에 백치처럼 멍청하게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모텔 주인은 시골 출신인지 끔찍하게 거센 사투리를 썼고 여자는 모텔 주인이 방까지 여자를 안내하며 이러저러한 말들을 밭의 이랑처럼 거칠게 굴곡진 구불구불한 문장들을 내뱉었지만 여자는 한 마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여자는 그저 네,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방문한 낯선 외국 도시의 택시 기사에게 그러하듯. 여자는 가능한 한 상냥하게 보이기 위해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모텔 주인도 여자가 그녀의 심한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고 그녀에게 모텔 열쇠를 건네 주었다.

그 이후로 여자는 모텔 주인이 어딘지 껄끄럽게 여겨졌다. 그녀의 날카로운 갈빛 얼굴이, 짐승처럼 검고 불투명한 두 눈이, 무엇보다도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가득 채워진 가슴이 거북스러웠다. 모텔 안팎을 오갈 때도 여자는 모텔 주인이 말을 붙일까봐 초조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지나가고는 했다. 그래서 모텔 프런트에 구식 브라운관 TV가 있다는 것도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

긴장에 마비되었던 몸이 누르스름한 침대 시트 위에서 느슨하게 풀어지면서 여자는 어릴 적 여자가 즐겨 보았던 것과 놀라울 만큼 비슷한 형태의 TV에 대해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여자의 앞에 재현된 이미지 속에서 모텔 주인은 파충류와도 같이 곧고 음흉한 검은 눈으로 희미한 굴곡과 함께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TV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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